미술품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이 될까? 좀더 속물적인 용어로 미술품의 가격(Price)은 어떻게 결정되나? 고호의 '해바라기'가 400억, 피카소의 '곡예사와 어릿광대'가 120억에 팔렸다는 소식에, 뭐가 저리 비싸? 저리 비싸도 되는거야?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것이다. 400억이다 120억이다 하는 미술품의 가격은 어떤 근거로 결정이 되는 것인가? 아마 미술품 가격 결정제도에 대해 우리가 아는 일반상식이란 경매제나 호당가격제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경매제라는 것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고, 또 미술품의 가격을 크기로 결정하는 호당가격제라는 것도 우리나라와 일본밖에는 없는 불합리한 제도이다.미술품의 가격은 콩나물이나 고등어와 같이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투합(投合)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미술품 가격 결정은 전적으로 화랑이나 작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들이 부르는 게 값이라 하여 이를 호가(呼價)가격이라 한다. 완벽한 미술품의 가격결정제도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호가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부르는 값과 실제 거래되는 가격이 다르다는 데에 문제가 컸다. 1억원에 호가되는 작품이 실제 얼마에 팔렸는지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만이 알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술시장을 불신했다. 미술 시장에 대한 불신은 단순히 미술품에 대한 외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산물인 예술품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술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작가도 미술품을 생산하며 생활도 하고, 또 그 밑천으로 새로운 작품을 재생산하여야 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재화는 돈으로 환산된다. 미술품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랑에서는 돈으로 인정을 되는데 화랑만 벗어나면 전혀 재화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느 화랑에서 1억원에 거래되는 미술품을 가지고 은행에 가봐라. 어느 은행에서도 담보로 써주지도 않는다. 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은 경매회사에 일정액의 수수료(약 10-20%)를 지 급하고 소유권을 이전한다.이해의 편리를 위해 간단히 도식적으로 설명을 했지만, 실제 경매시장에서의 가격결정은 위와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행위와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다.경매제도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독특한 문화양식이다. 경매시장은 신뢰할 만한 사회적 절차나 규칙에 따라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신념, 가치 등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하나의 문화양식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경매제는 예술품의 가치마저도 돈으로 환산하여 작품에서 인간을 소외 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작품의 가격결정이 단순히 상품논리로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매제는 고고학, 평론, 미학, 재료학, 경제학, 법학 등의 전문지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시행 될 수가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1. 미술품 경매의 정의미술품 경매는 경매회사가 취급하는 다양한 경매물품 중 미술품을 대상으로 하는 경매를 말한다. 미술품이 다른 경매물품과 다른 차이점은 미적 가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미술시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차 시장이 미술가와 소장가 간의 직접적인 거래에 의해 형성되는 시장이고 2차 시장이 화랑이나 중개인을 통한 거래에 의해 형성되는 시장이라면, 3차 시장은 경매에 의해 형성된다. 경매시장에서 미술품의 가격은 1·2차 시장에서의 거래실적과 경매를 통한 판매기록을 바탕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미술품의 미적 가치와 가격간의 상관관계를 예측하는 데 있어 비교적 안정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2. 미술품 경매제도 도입의 목적정부가 미술품 경매제도의 도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술시장의 양성화, 미술품 가격의 공신력 제고, 미술품 감정의 공신력 제고라는 경매제도의 순기능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개선하고 미술품 유통시장의 선진화와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술품 경매제도는 진행과정과 결과가 공개되고 가격이 구매자들 간개.영국-100여개, 프랑스-20여개.기타-150여개.소더비, 크리스티 60%.필립스, 드루아, 기타 40%.ⅰ)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의 대명사 크리스티세계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크리스티와 소더비 중에서 ‘크리스티'란 이름은 문화 예술품에 관한 한 보기 드문 지식과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동일시된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차지하는 크리스티의 위치가 그만큼 탄탄하고 확고하다는 의미이다. 크리스티는 176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J. 크리스티가 런던의 폴 몰에서 첫 경매를 실시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서적류만 다루던 소더비와 달리 미술품을 포함한 온갖 물건을 경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1859년 윌리엄 맨슨과 토마스 우즈가 합류해 ‘크리스티 맨슨 앤 우즈’라는 합작회사로 재탄생했으며, 1973년 런던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경매회사로 성장했지만 크리스티에도 시련은 있었다. 런던에서 안정된 위치에 만족한 채 제1차 세계대전 후에도 여전히 빅토리아풍의 회화나 프랑스의 바르비종파를 다루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1957년에 길버트 스튜어트의 작품 에 사상 최초의 적은 값이 매겨지자, 크리스티는 비로소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당시 소더비는 이미 미술품 분야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었다. 1964년 소더비에 의한 파크 바넷의 흡수가 오히려 크리스티에게는 자극이 되었다. 오랫동안 런던에 안주해 왔던 크리스티가 뉴욕과 그 밖의 곳에 진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뉴욕과 런던을 거점으로 세계 43개국 129개의 지사를 가지고 있으며, 18개의 경매장에서 연간 800회 이상의 경매가 열린다. 크리스티가 경매계에서 갖고 있는 기록도 다양하다. 1926년 롬니의 는 60,900파운드에 팔려 양차 대전 사이에 거래된 미술품 중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미술품으로 기록되었다. 1970년에는 벨라스케스의 을 2,310,000파운드에 판매해 미술품 중에선 처음으로 100만 파운드가 넘는 거래를 성사시룹 루이뷔통 모엣 헤네시(LVMH)가 인수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던 필립스에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준 셈이 되었다. 필립스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 역시 비리에 연루된 소더비와 크리스티와 차별화되는 홍보 마케팅. ‘필립스: 또 다른 경매 방식’이라는 문구를 내건 필립스의 광고는 경매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독점의 고리를 깨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필립스가 지난해 뉴욕에서 개최한 ‘인상주의 작품과 모던 아트 경매’에서는 매물의 40%만이 팔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고객을 뺏어오려고 비현실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장했다고 비판했으며, 그 때문에 43,900,000달러의 매출을 올렸지만 손해가 많았다. 필립스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공한 것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세계 3위라고는 하지만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아직까지는 유명 작품 확보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ⅳ) 프랑스 유일의 국영 경매장 드루오프랑스 국립경매장인 드루오는 파리9구 드루오 가(佳) 9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프랑스어로 오텔 드루오(Hotel Drouot). 일찍이 고대 로마제국부터 있어왔던 경매제도는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중세 때 다시 파리를 중심으로 재건되었다. 프랑스에 경매가 출현한 것은 루이 왕이 1254년 내린 칙령에 의해서, 근대적인 경매제도의 정착은 1552년 앙리 2세의 칙령에 기초한다. 1950년대까지 미술시장의 중심이었던 프랑스는 196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에 밀려 폐쇄된 시장으로 축소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그 활약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세계 시장의 7% 미만에 그치고 있다. 4세기에 걸친 프랑스 경매장과 경매사 제도는 프랑스 정부의 엄격한 관리와 후원 아래 운영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경매사 자격 제도를 가지고 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가 주식회사체제로 운영되는 데 반해, 프랑2002년 7,350만 유로ⅴ) 물랭 드 갈레트의 무도회/ 삐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1990년 7,810만 달러ⅵ) 수염없는 자화상 / 빈센트 반 고흐1998년 7,150만 달러ⅶ) 무고자의 도살 / 피터 폴 루벤스런던에서 4,950만 파운드에 낙찰ⅷ) 가슴을 감싸안은 여인 / 파블로 피카소2000년 5,560만 달러ⅸ) 자주붓꽃 / 빈센트 반 고흐1988년 5,300만 달러ⅹ) 꿈 / 파블로 피카소1997년 4,840만 달러?) 정물 / 폴 세잔느1999년 6,050만 달러5. 한국형 미술품 경매제도 운영모델한국형 미술품 경매제도란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갖고 있는 구조적 장애요인을 극복해낼 수 있는 적응력을 가지면서 더 나아가 미술품 유통구조의 선진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진 경매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형이라고 해서 경매제도가 가져야할 보편적인 기준을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국 사례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우리나라에 적합한 미술품 경매제도의 모델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민간주식회사가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드루오나 영보제 같은 국립경매회사는 민간 자율적인 시장질서를 저해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경매사 일인 중심의 드루오 경매는 시장개방에 대한 경쟁력이 낮다. 신와옥션 같은 조합식 경매는 폐쇄적인 일본시장에 맞도록 고안된 것으로서 애초에 모델로 상정되기 어렵다. 이미 서울경매가 소더비를 모델로 경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드루오를 모델로 하여 경매사 일인에 의한 경매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아트갤러리와 비교하면, 서울경매는 투자규모가 큰 만큼 매출규모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것이 현단계로서는 문제이다. 앞으로 미술품 경매제도가 미술시장에서 기대하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미술시장의 규모 확대가 일차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전제로 제2의 경매회사가 설립되어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체 미술시장에서 경매시장의 비중은 약 30%가 적정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까지 경매회사가 성장하기
1.월마트의 역사(1) 월마트의 규모 및 구조월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상점으로써 2003년 1월 31일 회계연도를 마감했을 때의 매출액이 2445억 달러였다. 월마트의 종업원은 세계적으로 130만명 정도로 예상되며 미국에만 3200개가 넘는 점포와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한국, 독일, 영국에 걸쳐 1100개가 넘는 점포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월마트를 방문하는 한주 동안의 고객수는 약 1억명 정도로 예상된다. 샘 월튼의 열정에 의해 월마트는 고객만족과 매일의 가장 낮은 가격을 목표 인도되어 왔다. 월마트는 4가지 세분된 체제로 나뉘다. 월마트 슈퍼센터, 할인점, 지역상점과 샘스클럽 창고, 전세계의 다양한 고객에게로의 판매가 있다.(1) 월마트의 매출액 변화(2) 월마트의 주당 가격♣ 월마트 본점 ♣ 월마트 할인점 ♣ 월마트 슈퍼센터월마트 본점은 월마트 할인점은 월마트 슈퍼센터는아칸소주 밴튼빌 세계 곳곳에 널리 월마트 할인점의 크기에 위치해 있으며 퍼져 있으며 미국에 를 거대화 시킨 매장월마트가 처음 시 50개 주를 거쳐 약 으로써 더 넓은 규모작된 곳이기도 하 3000여개의 점포가 와 더 많은 물건을 할다. 있다. 인 판매하고 있다.♣ 샘스클럽 ♣ 지역상점 ♣ 배송센터샘스클럽은 거 월마트의 지역 상 배송센터는 120개의대한 회원중심의 점은 소규모로써 지 커뮤니티를 가지고 상도매점으로써 약 역에 위치하여 월마 점들에게 효율적으로4천 6백만명의 회 트의 상시 저가 정책 물건을 배송하고 또원을 보유하고 있 에 따라 운영 되고 샘스클럽과도 밀접한다. 있다. 연계를 하고 있다.(2) 월마트의 역사월마트는 1962년 샘월튼에 의해 아칸소에 첫 상점을 열게된다. 1969년 월마트는 법인으로 등록되었으며, 1970년 처음으로 분배센터와 아칸소 벤톤빌에 본점을 만들었고 뉴욕 증권시장에 회사를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하게 된다. 1979년 연 매출이 최고인 10억달러를 기록하였다. 1983년 샘스 클럽 창고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198있는 매장이 되도록 노력했다. 고객들은 세일을 기다릴 필요 없이 언제나 저가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① 롤백정책(Rollback)롤백정책이란 예전의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재 가격 인하 등의 이유로 공급자 측에서 상품 가격을 인하해 월마트에 제공하면, 월마트와 공급자는 잉여 이득을 고객의 몫으로 돌려주기 위해 가격 롤백을 시행하는 것이다. 또는 월마트가 기한을 정해놓고 특정 품목을 예전 가격으로 환원하여 판매하기도 했는데, 최소한 그 기간은 90일 동안 지속되었다.② 열 걸음 규칙월마트의 고객 서비스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열 걸음 규칙이다. 열 걸음 안에 고객이 보인다면, 다가가서 고객의 눈을 응시하며 필요한 일은 없는지 말을 붙이라는 것이다. 샘 월튼은 이것에 대해 많은 매장들을 둘러보며 강조를 했고 월마트의 이러한 문화는 매장의 매니저와 판매원들이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샘 월튼이 어릴때 부터 실천해 왔던 것이었다.③ 월마트의 구호나에게 W : 여러분이 선호하는 월마트 매장에서 쇼핑할 때나에게 A : 우리 동료들의 이런 열정적인 외침을 들을 때나에게 L : 놀라지 마십시오.나에게 몸부림 : 모든 소리는 우리 월마트의 구호입니다.나에게 M : 일부의 사람들은 그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지만나에게 A : 우리는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나에게 R : 그것은 우리 회사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방법입니다.나에게 T : 사실, 여러분이 참여하기를 바랍니다.그게 뭐죠 ? : 수 년에 걸쳐 우리 회사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월마트 매장, 동료들 그리고 고객들과 함께 성장해누가 최고죠 ! : 왔으며, 그래서 우리의 구호는 많은 다른 언어로고객이 왕 ! : 들을 수 있습니다.월마트의 구호는 그 기원은 창업자인 샘 월튼이 한국의 테니스공 공장을 방문했고 그곳의 근로자들이 매일 아침 회사 구호와 유연 체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고 동료들에게 그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얘기를 했다.세워야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서서히 월마트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러 나라에 진출을 시도했다. 멕시코,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영국, 독일, 중국, 한국, 일본등의 나라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점차 매출은 놀랄만한 수치로 뛰어오르게 되었다. 물론 모든 나라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고, 맞부딪쳐야 할 도전 과제와 위험 요인은 너무도 많았다. 그 이유는 각 나라마다의 문화가 다르고 성공할 수 있는 요소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월마트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1} 유통유통업의 대명제라고 할 수 있는 월마트는 저마진의 현실화를 실현하기 위해 저가 전략과 저비용, 공급업체와의 제휴강화를 적절히 연계하고, 컴퓨터시스템 등 신기술을 적극 도입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누려간다.(1) 하이테크 기술을 핵심으로 한 배송 센터? 리테일 링크인터넷을 기반으로 공급자들에게 월마트와의 거래 정보를 완벽하게 제공할 수 있는장치로써, 그 자료는 매일 업데이트 된다. 이것으로 인해 공급자들은 구매 주문을즉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그 전날 팔린 상품의 물량까지 확인할 수 있다.① 라인러셔계산대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기획된 장치로, 고객들이 줄을 서 있는동안에도 그들이 구입한 제품을 스캔해 계산할 수 있는 장치이다.(ex) 처음 중국에 들어갔을 때,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② UCP(Universal Product Code) : 바코드③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이런 기술의 도입, 활용을 통해서 데이터 수신의 고속화와 정확화로 전송비용을 절감하고 본부로부터 점포나 유통센터로 화상전송이 가능해져서 물건이 신속하게 저비용으로 유통 될 수 있게 한다.(2) 전자 데이터 교환공급업체에게 주문을 전송하고 기타 필요한 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위성 통신을 사용해 모든 월마트점은 본사와 연결되어 있었고, 필요한 상품을 즉시 주문하고 보플레이션을 저지하는 데 일조했고, 영국에서는 생계비 효율성을 증가시켰으며 중국에서는 운송 체계의 혁명을 몰고 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됐다. 일본에서는 현지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의 소매 기업 세이유의 일부를 매입하는 것으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일단 경쟁이 시작되자 그 성과는 일본 기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이런 이면에는 남아프리카와 유럽에서 겪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있다. 간섭주의를 표방하는 유럽은 자유방임주의 미국 시장보다 인건비가 비싸고 노동조합도 훨씬 강경했으며 규제 또한 까다로웠다. 월마트는 유럽 대륙에서는 영국과 독일에만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해외 사업에서 월마트의 발목을 붙잡는 난제들은 곳곳에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매장의 통로가 좁은데 예상보다 많은 고객들이 찾아와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선호도를 살피지 못해 그들이 즐겨 찾는 절단 육류와 순금과 순은 장신구 코너를 갖춰놓지 못한 상태였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월마트는 그 모든 시행착오를 바로잡았다.또한 멕시코 시티에서는 주차장을 널찍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고객들은 버스를 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주차장은 없애고 고객들을 점포 정문까지 실어 나르는 셔틀 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서히 500대 기업중의 1위에 빛나는 월마트는 만들어진다.(1) 독일월마트가 해외 사업을 벌이면서 가장 고전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인구 8000만 명의 유럽 최대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였다. 처음에 독일에 슈퍼마켓을 세웠을 때만 해도 월마트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월마트는 독일의 문화에 맞게 통로를 넓히고 계산대를 추가하며 직원을 추가로 고용했다. 그래서 독일내의 문화를 훈련시켰다. 복잡한 매장과 불친절한 점원에 익숙해 있던 독일인들은 처음에 월마트의 저렴한 가격과 친절하고 능숙한 판매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와 상대적으로 협소한 매장 때문에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사업은 맨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배송 센터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오랫동안 월마트 문화가 꽃을 피우는 게 불가능한 지역으로 여겨져왔다. 초반 월마트 사업을 시작했을 때 배송 센터도 없었고 그나마 소유하고 있던 매장은 무척이나 열악했다. 그러나 2002년 텔슨, 리테일 링크, 라인 러셔 등의 첨단 기술을 사용했다. 셀프 계산대까지 시험 운용할 정도였다. 리테일 링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공급자들에게 월마트와의 거래 정보를 완벽하게 제공할 수도 있는 장치로서, 그 자료는 매일 업데이트 된다. 공급자들은 구매 주문을 즉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그 전날 팔린 상품의 물량까지 확인할 수 있다. 라인러셔는 계산대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기획돈 장치로, 고객들이 줄을 서있는 동안에도 그들이 구입한 제품을 스캔해 계산할 수 있는 장치이다.그러나 상시 저가 정책, 청결한 매장, 신속한 유통, 친절한 판매원을 갖춘 월마트는 중산층 계급을 겨냥했다. 처음에는 중국에 월마트가 들어선다는 것이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미국 내 라이벌 중에서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없었다. 이렇게 때로는 대범하게 다른 기업보다 먼저 해외진출을 하기도 했다. 월마트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안전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제공했다. 월마트 같은 하이퍼마켓들이 도입될 때까지 중국인들은 눅눅한 노천 재래시장에서 식품을 구입했다. 월마트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원시적인 재래시장과 위생적인 첨단 하이퍼마켓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재래시장에서는 비좁은 통로에 작은 노점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고 수많은 인파가 그 속에서 싼 물건을 찾아 이리저리 밀려다녔으며, 바닥엔 물이 고여 있어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그러한 열악한 쇼핑 환경에서 중국인들은 월마트의 넓은 통로, 깨끗한 바닥, 매력적인 상품 진열, 상시 저가 정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덜 혼잡하고 덜 짜증스럽고 덜 불편하게 돌아다니면서도 상품은
동서 문화 교류사 강의와 내가 전공으로 하고 있는 관광학은 새로운 문화를 교류를 다룬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동방견문록’을 중간고사 과제 주제로 선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제시된 서적 중에서 관광학 전공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성인이라면 누구나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마르코 폴로와 ‘동방견문록’을 읽고 보다 깊이 알고 싶어서이다.4학년 2학기여서 취업 관련 여러 행사들과 크고 작은 면접들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는 지금, 두꺼운 책 한권을 읽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여행과 관련된 주제의 책을 선택하여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직접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며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중국 항주시에서 8개월간 어학연수 생활의 경험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설레일 수 있었다.이탈리아 태생인 마르코 폴로는 그의 아버지, 숙부와 함께 중국을 여행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동방견문록’이라는 여행 책을 만들어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중국을 소개한 사람이다. 지금처럼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기가 아니고, 편한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여행을 하며 낯선 문화를 관찰하여 기록하였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마르코 폴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관광학을 공부 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내게 중국 생활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관광학도라면 한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되어 ‘동방견문록’을 선택하였다.책을 읽기 전 책과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동방견문록’의 정식 명칭은 ‘세계의 기술(記述)’로 알려졌다고 한다. 여행기의 주인공인 마르코 폴로는 1275년에 서아시아·중앙아시아를 거쳐 원나라의 상도(上都)에 이르러 쿠빌라이(세조)에게 벼슬한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1290년에 일 한국(汗國) 국왕에게 시집가는 왕녀 코카친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고 해로(海路)로 페르시아만(灣)의 호르무즈섬에 도착한 을 구술(口述)하여 필기하도록 한 것이 ‘동방견문록’이다. 책에는 당시의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중국·남해(南海) 등에 관한 기사가 풍부하고 정확하며, 특히 중앙아시아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루스티첼로가 필기한 원본은 없어졌으나 원본을 윤색 ·가필 ·삭제한 많은 사본들이 만들어져 전해지다가, 1934년 이 사본을 혼합하여 A.C.물과 P.펠리오의 공동편집으로 단일본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1964년 정운룡의 번역으로 을유문화사 세계사상교양전집으로 처음 출간되었다.‘동방견문록’에 관한 간단한 내용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책을 읽기 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수업시간에도 교수님께서 한번 언급하신 것 같은데 ‘동방견문록’은 서방 사람들에게 그 내용이 너무나 낯설고 충격적이며 믿기 어려운 내용이기에 마르코 폴로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가 실제로는 중국을 가지 않고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상상을 이용하여 전하였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처음에는 동방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서방 사람들이 단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오해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의 행적을 믿지 않는 구체적인 근거들을 읽으니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나도 그의 이야기를 의심하고 있었다."마르코 폴로" 진실 혹은 거짓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갔었다?그러한 주장에 대한 유일한 증인은 마르코 폴로 자신이다. 우리가 수많은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리, 실제로 마르코 포로는 콘스탄티노플과 흑해를 넘어간 적이 한번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의 중국학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론에 의하면, 그는 몽골의 쿠빌라이 칸을 만난 일도 없으며 그 황제의 칙사를 지낸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카라코룸이나 북경은커녕 그가 자신의『동방견문록Travels of Marco Polo』에서 보았다고 하는 다른 도시들도 대부분 실제로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달리 말해, 마르코 폴로는 그가 쓴 책의 상당 부분을 베끼거나 꾸며낸 셈이 되는 근거로 삼고 있다.(1) 마르코 폴로가 보고했어야 마땅할 것들이 모두 빠져있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 중국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만리장성을 보았을 것이다(그리고 실제로 마르코 폴로가 여행했다고 주장하는 경로를 따라가 보면 그는 적어도 한 번쯤 이 만리장성을 넘었어야 했다).그러나 마르코 폴로는 만리장성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그 당시 중국에 이미 잘 알려졌으며 널리 보급되어 있던 서적인쇄술에 대해서도 서술해놓지 않았다."마르코 폴로에 의해 묘사된 도시들의 장터는 틀림없이 대량으로 인쇄된, 그리고 개중에는 삽화가 들어 있는 대중 서적들을 파는 노점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우드).또한 차를 마시는 것이나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 또는 여성의 전족 등 중국의 전통적 관습에 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수년 동안 중국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2) 중국 문헌에서 마르코 폴로에 대한 설명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마르코 폴로의 말대로 그가 중요한 사신이자 황제의 착사였다고 한다면, 그런 인물이 한 나라의 역사에서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3) 마르코 폴로가 했다고 하는 여행 경로는 뒤쫓아 가는데 상당한 무리가 있다."지금도'마르코 폴로의 발자취'를 따라갔노라고 자랑하는 탐험대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명한 탐험 연구가들은 페르시아의 국경을 넘어 마르코 폴로의 경로를 뒤쫓아 가기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우드).(4) 낯선 풍습과 도시 또는 나라에 대한 묘사에 이상하게도 개인적인 감정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카물 Kamul은 탕구트 주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 주에는 도시와 성이 많고 위대한 칸에게 예속되어 있다" 라든가 "텐둑Tenduk은(중략) 동쪽에 있는 주로서, 도시와 성들이 많다"는 식으로 수백 페이지 이상 설명되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직접 체험했다면 그런 식으로 쓸 수는 없을 것이며, 다른 문헌을 보고 베꼈을 경우에만 그렇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설령 언급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는 보통 3인칭이나 1인칭 복수로만 등장한다."측량사 마르코는 오랫동안 인도에서 살았다. (중략)여행객이 그 도시를 떠날 때, 그는 말을 타고 7일 동안 평야를 달린다.(중략)우리는 이제 센구이Sengui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6)기행문의 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 책은『마르코 폴로의 여행』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기행문과는 전혀 다르며 일화나 실제 사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담아놓은 메모 정리 상자나 다름없다. 이 책의 본문은 느닷없이 중동의 연대기로 시작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이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만 몇 가지 알 수 있을 뿐,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마르코 폴로의 구체적인 여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다음에는 다른 문헌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엮어 쓴 책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리적, 경제적 또는 사회심리학적 여담이 이어 진다.이 책을 읽은 후 나의 견해는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을 하는 동안 ‘동방견문록’을 쓴 것이 아니라 여행이 끝난 후 그것을 이 책의 저자인 루스니첼로에게 이야기 해 줌으로써 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하는 도중 자신의 감정이나 추억에 취해 사실보다 과장하여 이야기 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고, 몇 년 전에 겪은 일이라 상세히 기억하지 못해 잘못 알려준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몇 부분이 빠지거나 과장되었을 뿐 그는 중국을 여행하였을 것이다.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대해 의심하던 내가 그의 여행기를 확신하게 된 것은 내가 살았던 ‘항저우’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이다.“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라는 중국의 옛말처럼 항저우는 그야말로 천당과 같은 도시였다.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할 만하하며,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마치 천국에 와 관광지로써 서호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항저우로 찾아오게 하는 명소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관광지로의 명성은 변함이 없는 듯 하다.서호에서 유람선을 띄우고 뱃놀이를 즐기는 대목과 탁자와 의자, 연회에 필요한 집기들을 갖추고 화려하게 치장된 선실을 묘사한 대목은 지금의 그것과도 너무나 똑같았다. 나도 서호에서 유람선을 두 번 정도 탄 적이 있는데 그의 묘사가 진실이라면 지금의 유람선과 그 모습이 똑같고, 서호에서의 뱃놀이 풍경 묘사부분 역시 지금의 그것과 똑같아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그만큼 옛것을 현대에까지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마르코 폴로는 ‘호수는 도시의 한쪽 면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기 때문에, 배 안에서 있노라면 도시 전체의 장엄함과 아름다움, 궁전과 사원, 큰 나무가 있는 물가의 정원들을 감상하면서 진정한 감흥을 느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가 본 서호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주로 저녁을 먹은 후 자전거를 타고 서호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바람을 쏘였다. 저녁이 되면 도시가 있는 쪽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으로 장관을 이루고 도시가 없이 나무 숲 도로가 펼쳐진 쪽은 은은한 조명을 곳곳에 설치하여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어 너무 아름다웠다.서호가 있어 다른 도시들보다 습한 공기의 항저우는 삭막한 도시가 아닌 조용하고 운치를 느낄 수 있으며, 주로 중국의 부유층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다른 도시보다 공기가 좋고 살기에 좋다는 것이 중국 현지인들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저우의 사람들은 호탕하고 시끄러운 다른 도시들의 사람들보다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을 지녔다고 했다. 마르코 폴로 역시 책의 내용에 항저우를 흐르는 운하로 인해 도시의 공기가 매우 깨끗하다고 했으며, 도시 전체에 소란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사람들은 작업장에서도 아주 침착하고 성실한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조용하다고 설명하고 있다.항저우의 광장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층의 집들에 관한 설명에서는 야시장이 열리는 항저우의 광장을주었다.
Ⅰ. 동양의 전통숙박시설1. 한국의 한옥① 특징*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 있게 결합된 구조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 있게 결합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이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공존하는 한반도의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한국의 독특한 주거 형식이다.*지방, 신분에 따른 다양한 구조한옥은 지방에 따라 구조가 다른데, 북부 지방에서는 외부의 냉기를 막고, 내부의 열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방을 두 줄로 배열하는 형태의 겹집 구조와 낮은 지붕의 한옥이 발달했다. 이에 비하여 남부 지방에서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방을 한 줄로 배열하는 홑집 구조와 마루 구조가 발달했다.또한, 한옥은 상류주택과 민가에 따라서도 구조를 달리한다.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상류 계층의 주택은 신분과 남녀, 장유(長幼)를 구별한 공간 배치구조를 하였다. 즉, 집채를 달리하거나 작은 담장을 세워 주거 공간을 상·중·하로 구획했다. 상(上)의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양반들이 사용했고,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행랑채는 하(下)의 공간으로 머슴들이 기거하는 곳이었으며, 중문간 행랑채는 중간 계층인 청지기가 거처하는 중(中)의 공간이었다.상류주택은 장식적인 면에도 치중하여 주택의 기능면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에서도 뛰어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집을 지을 때도 구조에서부터 재료에 이르기까지 장식적인 면보다는 기능적인 면을 더 중시했다. 재료로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들을 사용했는데, 기둥과 서까래·문·대청바닥 등은 나무를 썼고, 벽은 짚과 흙을 섞은 흙벽으로 만들었으며, 창에는 역시 천연 나무로 만든 한지를 발랐다. 바닥에는 한지를 깐 뒤 콩기름등을 발라 윤기를 냈고, 방수의 역할도 하게 하였다.지붕으로는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이 가장 보편적이다. 부유한 집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올렸고, 서민들이 거주하는 민가에서는 대부분 볏짚으로 주며, 구하기 쉽고 비도 잘 스며들지 않아 지붕의 재료로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② 대표적인 곳*전주 한옥마을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 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전주 한옥마을에는 양사재, 한옥 생활 체험관, 승광재, 동락원, 설예원, 아세헌, 풍남헌, 학인당의 숙박시설이 있다.-위치: 전주시 완산구 노송광장 1길-양사재전주 한옥마을의 숙박시설 중 하나로 모든 숙박 객에게 아침식사와 전통차를 제공하며 미취학 아동의 경우 무료로 투숙할 수 있다.2. 일본의 료칸① 특징*다다미일본 여관은 그 형태가 다다미로 되어있다. 일본 여관에서는 보통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 등으로 갈아 신는데 이러한 습관은 일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다미 문화에 의한 것이다. 다다미는 일본 특유의 실내용 장판이다. 벼의 줄기를 건조시킨 짚을 실로 단단히 묶은 뒤, 짠 등심초로 겉을 싼 두툼한 판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깔려 있는 수로 방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도 사용되고 있다. 부드러운 탄력성,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뛰어난 특성, 그리고 소리를 빨아들이고 차단하는 성질이 있어 일본의 기후 풍토에는 안성맞춤이다. 짚을 재이용하는 다다미 문화는 쌀을 주식으로 삼아 온 일본의 식생활 문화와도 관계가 깊다. 다다미방에 들어갈 때는 실내용 신발도 벗는다. 최근에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방까지 그대로 갈 수 있는 여관도 늘어나고 있다.*다다미 위에 깐 이불에서의 취침일본에서는, 다다미위에 침구를 깔고 잔다. 침구로서는 일본 특유의 이불이 이용된다. 이불은 이불과 요, 담요나 얇은 이불, 베개 이불과 같은 형태는 에도시대에 그려진 풍속화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 재질이나 품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여관에 따라서는 새 깃털로 만든 이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일박 2식 제공료칸은 기본적으로 일박 2식 제공의 숙박 요금제도로 되어 있다. 2식이란 숙박 당일의 저녁 식사와 다음날의 아침 식사이며, 대부분의 여관에서는 방으로 식사를 가져와 방 안에서 식사를 한다. 여관에 따라서는 큰 식당이나 식사 전용실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방에서의 식사는 일본 여관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예전의 하타고(여인숙)나 혼진(에도시대의 역참에서 막부 직속의 유력 무사 등이 숙박하던 공인된 여관)에서의 습관이 계승된 것이다. 방에서의 식사는 가벼운 식사가 중심인 호텔의 룸서비스와는 달리, 본격적인 식사가 제공된다.*온천온천의 나라 일본답게 일본의 료칸에는 온천이 있다. 보통 야외 온천이 많은데 남녀가 다른 탕을 쓰고, 숙박객들은 언제든지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 료칸의 온천은 그 료칸의 대표적인 상품이 되며, 경쟁적으로 마시는 온천, 탄산 온천과 같은 특색 있는 온천을 개발하고 있다.료칸에는 온천을 숙박객이 온천을 즐길 때 이용할 수 있는 유카타와 신발이 구비되어 있으며, 온천 후 마실 수 있는 차가 준비되어 있다.② 대표적인 곳*미사사, 사이키백칸 료칸동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돗토리 현의 산촌마을 미사사(三朝)에 자리 잡은 사이키백칸(齊木別館)에 발을 옮겨 놓는 순간, 오카미(女將)라고 칭하는 안주인이 지배인과 종업원을 대동하고 현관까지 나와 정중하게 손님을 맞는다. 료칸 입구에 ‘환영’이란 단어와 함께 내 이름 석자가 적혀 있다. 사이키백칸은 극진한 서비스와 뛰어난 음식, 전통 문화를 제대로 살린 시설 때문에 수천 곳에 달하는 일본 전역의 료칸 중에서도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숙박요금: 료칸은 대부분 주말과 평일, 객실, 계절과 음식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며 아침과 저녁식사가 나온다. 1인 기준으로 2만9550 ~ 9만4650엔(100 수 있는 탕도 있다.-먹을거리: 미사사 지역에서 재배한 죽순과 야채를 이용한 요리, 동해에 인접한 사카이미나토 항구와 요나고에서 공급하는 대게, 생선회 등이 나온다.-볼거리&레저: 우노마치 향토문화 갤러리, 다이센 골프장-예약: 전화 (81858) 43- 0331, www.saikibekkan.co.jpⅡ. 서양의 전통숙박시설1. 영국의 B&B(Bed & Breakfast)B&B (Bed & Breakfast)는 다른 유럽 여러 나라와는 달리 영국에만 있는 숙박시설이다. 원래 민박으로 탄생한 것이지만 지금은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호텔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개인 경영이며 달걀 요리를 곁들인 영국식 아침식사가 딸려 나온다. 런던의 B&B는 특정 지구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걸어서 찾는 편이 좋다.① 특징*'Vacancy' 팻말영국의 B&B는 현관 앞에 현관에 'Vacancy'라는 팻말을 걸어두어 여행객들에게 현재 투숙가능한 방이 있고 없음을 알려준다. 'Vacancy'라는 팻말이 걸려 있으면 빈방이 있다는 것이고 ' No Vacancy'는 만원이라는 뜻이다. 입구에 반드시 벨이 있으므로 Vacancy팻말을 확인한 후에 벨을 누른다. 안에서 주인이 나와서 요금을 말해주고 방을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가 이루어지면 방 열쇠와 또다른 현관 열쇠를 준다. 외출 때 그 열쇠를 갖고 나가지 않으면 밤중에 돌아와도 들어오지 못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저렴한 가격, 풍성한 아침식사B&B는 훌륭한 영국식 제도이며, 여행자들이 찾을 수 있는 개인 숙박 시설 중 가장 싸다. 최저 가격으로(일인당 £18~35) 보통 집에서 침실 한 개가 주어지며 욕실도 같이 쓸 수 있고, 아침식사도 풍성하게 차려 준다. 아침은 전통적인 영국식으로 준비한다. 구운 빵과 버터, 잼, 달걀, 베이컨, 소시지, 주스, 우유, 커피 등이다. 작은 B&B에서는 손님용 침실이 하나밖에 없어 정말 그 집에 초대 받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더 고급스러운 B&B에는 각 방게 방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B&B가 많은 곳B&B가 집중해 있는 곳은 우선 빅토리아 역의 남쪽이다. Belgrave Rd., George's Drive, Warwick Way 세거리와 그 주변에는 무려 100곳의 B&B가 있는데 교통편이 좋기 때문에 약간 비싸 싱글룸이 20에서 30파운드 정도이다. 지하철 피커딜리 라인의 Earl's Court 역 주변은 그곳보다 조금 싼 B&B가 있다. 도심 쪽의 출구로 나와 큰길을 따라 왼편으로 가서 다시 한번 왼쪽으로 꺾어든다. 오른쪽으로 가서 오른편의 골목으로 들어간다. 이 주변은 영국 사람보다 아랍 사람들이 많아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별로걱정할 일은 없고 심야까지 영업하고 있는 스낵이나 아랍 레스토랑이 많아서 편리하다. 또한 여행자들이 많은 곳이어서 할인 티켓을 취급하는 작은 여행사나 환전소도 많다.② 대표적인 곳*Heathrow House Bed & Breakfast히드로 국제공항에 가까운 Feltham에 위치해 있는 Heathrow Bed & Breakfast는 훌륭한 영국식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고, 런던 중심부에 있어 윈저궁등 런던시내관광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규모가 작고 아담한 민박 개념의 하우스이기 때문에 영국의 전통과 문화를 느끼기에 충분하며 청결하고 조용한 공간이다.여행자에게는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며, 원한다면 계획도 세워줄 뿐만 아니라 자동차 렌트, 버스 여행 등 예약도 해준다.-위치: 히드로 중앙버스터미널에서 285번 버스를 타고 Hanworth library 맞은편에서 하차. 맞은편으로 길을 건너서 신호등 있는 곳까지 걸은 후 신호등을 건너면 맞은편 왼쪽 첫번째 건물.-하루 숙박요금: 42.00(USD)2. 스위스의 샬레(Chalet)① 특징스위스의 집이라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흔히 달력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샬레(Chalet)라는 전통가옥이다. 요즘엔 호텔이나 식당도 이런 모습으로 꾸며서 손님을 끌고 있지만 원래 샬레는 알프스기슭에서 생활하는 축산농가의 전형적인 가옥형태이
Erickson 심리사회적 발달이론1. Erickson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의 비판점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은 프로이드의 성격발달이론과는 달리 성격발달의 과정을 전 생애에 걸쳐 다루었으며 성격의 중심 구조를 자아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각 발달 단계에서 이루어야할 과업을 정해 이를 실행하지 못하면 발달 지연과 같은 위기가 온다고 하였다. 그의 이론에 대해 내가 생각한 비판점을 제시해 보았다.첫째, 각 단계의 과업과 위기시의 부정적인 면이 보편적이지 못하다.그의 이론은 매 단계마다 이루어야 할 발달과업이 있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불신, 수치감, 죄의식, 열등, 역할혼미, 고립감, 침체성, 절망과 같은 부정적 영향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수업을 들으며 나의 경우와 내 주위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며 비교해 보았지만 이 이론은 보편적이지 못했다. 프로이드의 이론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초아에 중심을 두었지만 에릭슨의 경우 자아에 초점을 두었다. 반면 에릭슨이 중심을 둔 자아는 누구나 같은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삶의 모습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가정환경, 사회적?경제적 지위, 문화의 차이 등으로 인해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를 단계를 나누어 과업을 이루지 못해 위기가 오면 마치 정상적인 발달을 하지 못하는양 부정적 측면을 내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5단계와 7단계의 발달과업이 보편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둘째, 청소년기에 정체감이 형성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에릭슨이 발달단계를 공부하면서 가장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5단계인 자아 정체감 형성 단계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청소년기에 잘못된 선택으로 마약중독이나 청소년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 평생을 힘들게 살아가기도 하지만 일부는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해내어 그 위기를 전환점을 삼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보면 청소년기의 방황은 자신이 조금만 의지를 갖고 이겨낸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나라의 청소년의 경우 더더욱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청소년은 입시전쟁으로 진지하게 자아 정체성을 생각해보기 보다는 주변의 압박과 분위기에 휩쓸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로 인한 우울증이나 역할혼미를 겪는다. 자아정체성의 확립은 청소년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각 개인의 삶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2. Erickson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의 교육적 시사점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은 “정체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중 교육적 시사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성격발달을 전 생애에 걸쳐서 설명하였다.프로이드의 이론은 만 12세부터 시작되는 생식기까지의 아동의 시기에 한해서 한 인간의 성격과 행동이 결정된다고 설명하지만, 에릭슨의 이론은 발달을 전 생애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또한, 발달 과업의 실패 시 ‘발달 지연’이라고 하여 이후에도 수정 가능한 의미로 발달개념을 좀 더 유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올바른 자아실현을 위해 교육을 통한 계속적인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촉진, 유도하며, 자아실현이 인간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