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중국 견문록’ 를 읽고내가 이번에 읽게 된 책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라는 책이다. 내가 한비야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됐던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중학교 때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읽게 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이라는 책. 그 뒤로 이 시리즈를 다 읽게 되었고 이 중국 견문록은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이 책은 정말 중국을 여행할 사람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유명한 고적들에 대한 애기는 거의 없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적혀있다. 한비야가 1년 동안 중국어를 배우면서 밥 먹고, 공부하면서, 놀면서 만났던 사람들. 여기에 그 사람들에 소박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중국 사람들에 대해 우리보다 못하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열심히 뛰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거대한 인구의 나라, 앞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나라.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 것 같다.한비야의 책은 자질구레한 부분이 많다. 이러한 부분들이 문화유적답사기 같은 깊이 있는 책들에 비하면 잡다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나 나는 이러한 신변잡기적인 느낌들이 좋았다. 이것이 한비야만의 특이한 매력이 아닐까? 이런 것들이야말로 여행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학문적인 내용과는 다른 일상 속에서의 참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열정이 있어서 호기심이 있어서 세계를 여행하고 지구를 세바퀴 돌고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중국으로 홀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 또한 항상 변하지 않는 그녀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아직도 우리는 조금만 참고, 조금만 참고 하면서 늘 미래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지루한 일상생활 속에 얽매여 있으면서 끊임없이 준비만 하면 언제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올까? 우리는 어쩌면 지금을 즐기고 살아갈 수 있는데 아직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완벽한 지도를 가져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 스스로 얻은 세부사항으로 내 지도를 만들어갈 작정이라는 한비야. 그의 도전정신은 나에게 중요한 일깨움을 주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는 마음이라는 한비야의 말처럼 나도 내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며 노력한다면 시간이 흐른 뒤 한비야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KBS스페셜, ‘워킹푸어’를 보고워킹푸어(Working Poor)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생활보호 수준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영상물에서는 다양한 워킹푸어의 사례들이 나왔는데 그 중 박연자씨는 저녁에 출근하여 밤새도록 청소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지하철역의 청소용역 근로자이다. 퇴근후에는 하루 종일 봉투 붙이는 일을 하며, 거기에 재봉틀 일까지 3가지의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야간수당이 붙어도 고작 118만원 이다. 지하철에서 일을 하다가 감전사고로 팔을 다쳐 지금까지 계속 치료를 받고 있을 만큼 건강도 좋지 않고, 10만원의 사글세방에서 대학생인 아들과 생활하지만, 주인은 돈을 올려달라고 한다. 그녀의 삶은 온통 걱정 뿐, 여유란 없다.일본에서는 지난 6월 일명 ‘묻지마 살인’ 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한 노동자가 지나던 행인 16명을 무차별 살상 한 것인데, 일본 내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짓을 한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 더욱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일본도 워킹 푸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지난 8월 독일에서열린 3차 학술대회에서 저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토론을 했지만, 저임금 문제는 여전히 세계적인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이렇듯 워킹 푸어의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는 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생활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미국의 볼티모어에서 만난 스쿨버스에서 일하는 여성도 생활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생활임금보다 더 적은 최저임금만을 받았다면 아마 노숙자신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티모어에서 최저임금의 보완책으로 시작된 생활임금제도는 가족이 최소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주며, 각 도시의 물가와 사정에 맞게 책정되어 진다고 한다.워킹푸어가 증가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기업이 정규직의 수를 줄이고 파견사원이나 계약직 사원, 위탁사우언,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수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53%로 OECD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거기에 최저 임금 노동자는 전체의 13.1%이고,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덴마크의 노동자를 보면, 정규직과 임시직이 거의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청소관리직과 사무원들의 월급차이가 없다고 한다. 청소관리의 남성은 근무조건에 만족하며 딸을 승마를 가르치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잘사는 나라에서는 정규직과 임시직을 차이를 별반 두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안은 심각해지고, 가나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큰 부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 간의 불평등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최대로 소득 양극화에 따른 결과가 되었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고소득층이 늘어나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더 큰 부자가 되는 중산층보다 더 많이 가난해지는 중산층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사회에 가난한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 역시 억제되므로 중장기적인 경제성장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안은 심각해지고, 세금 거두는 일도 어려워진다. 눈앞의 성장곡선만 따라가서는 좋은 사회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태아기의 발달*목차*I. 서론II. 본론1. 태아기의 유전적요소가 결정하는 발달적 특징2. 태아의 발달3. 임산부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III. 결론I. 서론태내발달은 모체 내에서 이루어져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태내기는 다른 어떤 발달단계보다도 민감한 발달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태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요인과 임산부의 특성, 건강상태, 심리상태, 생활습관 등과 같은 환경적 요인을 파악하여, 태아의 정상적 발달을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본 글에서는 태아기의 유전적 요소가 결정하는 발달적 특징과 모체 내에서의 태아의 발달과정, 임산부가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요인들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태아기 발달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II. 본론1. 태아기의 유전적요소가 결정하는 발달적 특징유전은 인간의 발달 한계, 특히 신체적 성숙과 관련된 한계를 설정한다. DNA에 의해 전달되는 유전을 성숙속도의 차이, 기질적 차이를 만들어 내며, 비정상적 발달을 가져오기도 한다. 먼저 유전인자는 성장급등기, 치아발달, 사춘기, 폐경기 등을 결정하는 등 성숙속도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키, 몸무게 등은 환경적 영향도 있긴 하지만 유전자의 결합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1)비정상적 발달에 대한 유전적 요소클라인펠터 증후군은 남성으로서 x염색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xy 대신에 xxy형을 이룬다. 이러한 남성들은 정소의 발달이 불완전하여 생식이 불가능하며, 가슴이 크고 키가 크며, 약 25%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다. 남성 1,000명중 1명 정도의 빈도로 발생하며,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통한 호르몬 보충치료로서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지만, 제2차 성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생동안 계속적으로 주사해야 한다.터너 증후군은 여성으로서 x염색체 하나가 없는 것으로 xx 대신에 xo형을 이룬다. 이러한 여성들은 생식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2차 성 특징이 나타나지 않고이러한 남성들은 평균보다 키가 크고 지능이 낮은 경향이 있다. 이들이 충동 억제 능력이 부족하고 호전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정상적인 남성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남성 1000명중 1명의 빈도로 발생하며, 특수한 치료 방법이 없다.)2. 태아의 발달수정 후 약 2주에서 8주 사이의 기간인 배아기 동안에도 대단히 빠른 속도의 세포분열이 거듭된다. 배아초기에 유사한 세포들은 조직이 되고 점차적으로 신체기관이 된다. 특히 임신 3-4주 동안 배아는 풍진바이러스(rubella virus)와 같은 정상적 세포분열을 방해하는 파괴적 영향에 대단히 민감하다.자궁내벽에 착상한 직후부터 자궁 내의 환경은 아기의 정상적 성장을 위해 변화를 거듭한다. 맑은 물과 같은 액체로 가득 찬 양막주머니(amnidticsac)가 점차적으로 아기를 둘러싼다. 양막주머니의 생성과 동시에 태반이 형성된다. 태반은 성인물질이 아기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합성되고 동시에 교환되는 장소이며, 아기발달에 유해한 침입자의 유입을 막는 장소이다.배아기는 인간의 성장과정 중 가장 성장이 활발한 시기이며 이 기간 동안 여러 신체기관이 형성된다. 긴 원통형의 신체형태가 확립되고 뇌와 심장의 전구체가 형성된다. 임신 4주 말경에는 머리, 상체, 하체 그리고 꼬리를 볼 수 있다. 사지의 전구체, 전외, 중뇌, 후뇌, 눈 그리고 귀의 전구체도 관찰된다. 임신 2개월 말경의 배아는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며 무게는 2.25g, 길이는 28mm(1인치) 정도이다. 거의 모든 내부기관이 형성되고 얼굴, 사지, 손가락 그리고 발가락 등의 외부적 특징이 확립된다. 임신 3주경의 배아는 이미 약한 자극에 반응할수 있다.임신 3개월의 태아 즉 임신의 첫 3분기의 말에 이르면 길이 약 7-8cm, 몸무게 14g 정도로 성장하며 머리크기는 전체 몸길이의 3분의 1이된다. 이시기의 태아의 팔은 얼굴을 향하여 구부러져 있고, 무릎은 위장 쪽으로 구부린 독특한 태아자세를 관찰할 수 있다. 아직 눈꺼풀은 붙어 있다. 이 시기동할 수 있다. 이 시기동안 태동이라고 부르는 태아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가벼운 뒤틀림 정도로 경험되다가 후에는 태아의 발, 팔꿈치 혹은 주먹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명백한 움직임으로 나타난다.임신 5개월이 되면 피부가 두꺼워지기 시작한다. 특히 손가락과 발가락 위를 덮은 피부형태에 의해 태아의 개별성이 나타난다. 등과 팔, 다리에는 털이 덮이며 머리카락과 눈썹도 형성된다. 임신5개월 이후부터 임신말기까지 매 10일 마다 약 2-3cm의 비율로 성장을 계속한다.임신 6개월 말경에는 감각수용기가 발달된다. 태아는 촉각에 민감하며 근육 움직임에 의한 접촉에 반응할 수 있고 쓴맛에 반응하여 혀를 내밀 수 있으며 망막과 대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가 발달되기 때문에 빛에도 반응할 수 있다. 또한 자궁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진동과 청각자극에 반응 할 수 있다.임신 25주경의 태아는 자궁환경 내에서 활발한 기능을 한다. 삼키고 소화하고 배설하고 돌아다니며, 엄지손가락을 빨고 휴식하고 그리고 성장한다. 그러나 자궁환경을 벗어나면 생존할 수 없다. 자궁 밖의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경계의 조절능력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수정후 약 30주, 즉 210일이 지나면 모체에서 분리되어 나와도 조산아보육기 (incubator) 속에서 키우면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임신 210일을 생존가능 연령(Age of viability) 이라고 한다.)9개월 말에는 태반이 퇴화되기 시작하므로, 어머니의 항체가 태아의 혈액에 유입되어 출생 후 몇 개월 동안 태아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되지만, 어머니의 혈액 중 유해성분이 태아의 혈액을 파괴할 수도 있다. 태반은 900g 이상 커질 수 없고, 태아의 머리는 자궁경부의 최대 확장치 이상으로는 커질 수 없기 때문에 대략 38주가 되면 분만하게 된다.)3. 임산부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1)연령임산부의 연령은 태내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은 첫 월경을 시작한 후 1년부터 폐경기까지 약35년간 임신이 가능하지만, 이상적인 자궁환을 준다. Rh인자는 인구의 약 85%의 적혈구에서 발견되는 단백물질이다. Rh 인자의 부조화는 Rh+의 남성과 Rh-의 여성이 Rh+의 자녀를 임신하게 될 때 발생한다. 그러나 첫 아이는 Rh+의 남아라고 할지라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둘째 아이부터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태아와 모체의 혈관조직은 분리된 체계이기는 하지만 분만과정중의 출혈로 인해, Rh-의 혈액과 Rh+의 혈액은 섞이게 된다. 그 결과 첫 아이 출산 직후에 모체의 혈액은 Rh+인자에 대항하기 위한 항체를 생성한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이 항체는 태반을 통해 태아의 혈액 속에 들어가서 Rh+태아의 적혈구를 파괴하기 때문에 조산하거나 사산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태아들은 빈혈증과 파괴된 적혈구에 의해 분비된 독성물질로 황달증세를 보이며 정신지체를 나타낸다. Rh-의 어머니에게 매번 임신할 때마다 임신 즉시 Rh 면역 그로브린(RhoGam)을 주사하면 Rh항체 형성을 막을 수 있다.풍진(rubella)은 모체의 감염시기에 따라 태아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달라지는 대표적 질환이다. 임신 11주 이전에 어머니가 감염되면 귀머거리, 심장결함, 시각적, 지적 결함을 갖는 아기가 태어나나 임신 13주와 16주 사이의 감염은 3명의 태아 중 1명의 비율로 결함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러나 임신 16주 이후의 감염은 태아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풍진은 임신초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 질환에 대한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임신 6개월 이전에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3) 영양태아에게 가장 위험한 것 중의 하나가 부적절한 영양공급이다.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칼로리와 단백질이다. 임신을 하면 평상시보다 많은 염산, 철분, 칼슘 등이 임산부에게 필요하게 된다. 아연과 같은 미량 원소들은 비록 양이 아주 적더라도 정상적인 발달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영양소이다. 적절한 영양공급은 임산부의 영양 상태에서 결정된다.)임신 2개을 증가시켜 태아의 심장조직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산소를 부족하게 하여 조산, 체중미달아의 출산, 유산, 사산 또는 신생아의 출생 직후의 사망의 원인이 되며, 출생 후 행동장애, 정신지체, 인지발달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를 출생 후 11살까지 연구한 결과 신체적 장애와 지적장애가 뚜렷이 나타났고, 그들이 커서 읽기나 수학에 뒤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적응력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흡연은 태아에게 치명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나 담배를 피는 남자의 정자에서 기형적인 것이 많이 발견되었다.)산모의 음주는 태아 알코올증후군을 유발시켜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임신 기간 동안의 지나친 음주는 태아의 비정상적인 얼굴, 작은 머리와 신체, 선천적인 심장장애, 지적 발달의 지체, 중추신경장애, 체중미달 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학습무능력, 운동장애, 과다활동, 과민성, 침착성의 결여, 주의 집중력의 결여, 성장지체 등으로 이어진다.5) 정서상태임산부의 신체적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정서상태도 태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임산부가 장기간 스트레스나 흥분상태에 처하게 되면 태아는 평소보다 움직임이 많아진다. 고민을 많이 하는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는 발달이 느리고, 허약하고, 이상행동을 나타낸다. 그리고 임산부의 불안수준이 높을 경우 신생아가 많이 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남편이나 자녀의 사망, 이혼, 실직, 경제적 문제등과 같은 큰 충격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며, 자연유산, 조산 및 난산을 유발 할 수 있다.6) 약물 복용임부가 복용하는 약물은 변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태반을 지나서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혹은 약물이 태반, 또는 태아에게 있어서 약물대사 작용을 일으키거나 약물이 어머니의 생리를 바꾸어 자궁 내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약물의 종류에 따라 일시적으로만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어떤 약물은 치명적이면서 영구적으로 태아에게 영향났다.
백제 부흥운동에 대한 고찰*목차*1. 머리말2. 부흥군 봉기의 원인3. 부흥운동의 전개과정4. 부흥운동의 영향5. 맺음말1.머리말660년 백제는 멸망하였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660년 7월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 사비성이 함락당하고 의자왕이 항복을 했지만 백제유민들이 왕조의 부흥을 목표로 부흥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백제 유민들은 무너진 백제왕조의 부흥을 위해 활발하게 부흥운동을 전개하였고, 백제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부흥운동이 완전히 진압된 이후였다.이러한 백제부흥운동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본고의 목적으로 삼았다. 우선 선행된 연구를 살펴보겠는데 백제부흥운동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찍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과 연구목적이 일본학자들에 의해 일본사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백제부흥운동 자체보다는 백제 부흥운동에 왜가 어떤 관련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하여 연구의 초점이 맞춰졌으며 일본학자들의 백제 부흥운동에 대한 역사지리적인 연구는 주류성과 백강의 위치를 비정하는 데 모아졌다. 이러한 일본학계의 연구경향은 한국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백제 부흥운동연구에 있어서 지명고증문제는 중요한 논제로 다루어 졌다.한국학계에서 부흥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80년대 들어와서야 시작되었다. 심정보는 백제부흥운동의 주요거점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하여 유진당군의 활동과 유인궤의 행적에 대해 살펴보았다. 최효식은 부흥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개설적인 글을 선보였다. 이도학은 웅진도독부와 백제유민들과의 관계를 부각시켰으며 노중국은 부흥운동의 발생에서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백제 고지에 대한 신라의 지배형태에 대해서 『삼국사기』지리지의 기사와 통일신라의 관제변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또한 부흥운동군 지도자들의 활동과 부흥운동과 고구려와 왜와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부흥운동의 전반적인 상황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호영은 백제부흥운동을 신라가 삼이를 보거나 들은 자들에게 의분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 의분의 감정은 곧 나당군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되어 갔을 것이다.세 번째는 문화적 차이에 따른 백제유민과 점령군과의 사이에 일어난 갈등이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 의하면 당은 백제를 멸망시킨 후 유민들을 위무하면서 중국인 관료들로 하여금 감시하도록 하였는데 중국인과 백제인의 습속과 생활풍속이 서로 맞지 않아서 갈등을 일으켰다고 한다. 아마도 당군은 정복자로서의 우월의식을 가지고 백제유민들의 삶을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등의 행위를 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갈등이 누적되면서 백제유민들은 당군에 항거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네 번째는 직접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지방의 군장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부흥운동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의자왕의 항복과 더불어 당군에 항복의 예를 갖추었으나 이후 흑치상지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흥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국왕인 의자왕의 항복으로 중앙정부의 지방지배체제가 작동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지방 군장들의 투항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지방 군장들의 행동이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권리들을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나마 보전하고픈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대개 점령군에 수용되어 최소한의 기득권은 유지시켜 주는 것이 점령지 지배정책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백제와 신라의 관계 때문에 나당연합군의 주도세력이었던 당군에 투항한 백제의 지방군장들은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당군에 투항한 후 보장되리라 믿었던 지방군장들의 기대는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왕족과 중앙귀족들, 많은 백성들이 당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상황을 목도한 지방 군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나당점령군 치하에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백제의 지방 군장들과 유민들은 백제 부흥운동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다섯 번째는 백제 유민이 가진 성 등에서 싸웠는데 부흥군은 결국 패배하여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한편, 이 시기에 부흥군은 바다 건너 왜국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660년 9월, 부흥군은 왜에 사람을 보내어 각각 헤어진 병졸을 모아 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10월에는 당의 포로 100여인을 헌상하면서 군사지원을 요청하고 아울러 왜에 머물러 있던 왕자 풍(豊)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왜국의 제명천황은 ‘유사는 넉넉히 주고 예로서 보내어라’라고 하여 백제 부흥군에 대한 군사지원을 명백히 하였다.웅진강구전투와 두량윤성전투는 661년 2월에서 4월에 걸쳐 일어났다. 이 시기 임존성에 근거를 두었던 복신과 도침은 사비성을 공격하기로 하고 도침이 거느린 군대는 웅진강구에 진을 쳤고, 복신은 두량윤성에 주둔하면서 배후지원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도침이 거느린 부흥군과 당군 사이에서 웅진강구 전투가 벌어졌다. 도침군은 두 책을 세운 뒤 당군을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패배하였고 퇴각하던 군사들은 강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은 등 많은 병력의 손실을 입었다. 두량윤성 전투는 부흥군과 신라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인데 복신이 거느린 부흥군은 신라군을 맞아 1달여 동안 싸워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이 전투에서 실패한 신라군은 회군하는 도중 또 부흥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군수품을 빼앗기는 패배를 당하였다. 두량윤성 전투에서 부흥군이 승리하자 이제까지 사세를 관망하던 여러 지역의 세력들이 부흥군에 가담하게 되었다. 흑치상지 열전에 남방의 200여성이 부흥군에 호응하였다고 한 것은 이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해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부흥군이 일어났을 초기에는 부흥군 장군들은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좌평 여자진(餘自進)과 복신이 각각 일영(一營)을 세웠다고 한 것이라든가 흑치상지가 처음에 본부 즉 풍달군으로 돌아와서 망일한 자들을 불러모아 봉기하였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독자적인 활동을 하던 부흥군들이 점차 복신 ?도침을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었다.그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객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유인궤의 강력한 주장과 설득으로 그대로 유진하기로 한 당군은 전열을 새로이 정비하여 백제부흥군에 대해 적극적인 공격에 나섰다. 그리하여 662년 7월에 지라성(支羅成)? 대산책(大山冊)? 사정책(沙井冊) 등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전투는 지라성 전투였는데 이 전투에서 당군은 세작들을 이용하여 성내의 방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을 간파한 후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부흥백제군은 당군에 변변히 대적하지도 못하고 패배하여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지라성 등의 거점성 함락은 백제부흥군이 이제까지 유지해온 운량도 차단작전에 큰 차질을 가져왔고 이에 대하여 진현성(眞峴成)의 군비를 특별히 강화하였지만 유인궤의 공격에 결국 진현성도 함락되고 말았다. 지라성 등과 진현성이 나당군에 의해 함락되어 큰 타격을 입게 된 부흥군은 662년 8월에 내사지성을 근거로 하여 신라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였다. 백제부흥군이 내사지성을 근거로 하여 습격을 해오자 신라는 대군을 일으켜 이 성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내사지성에 진을 치고 있던 백제부흥군은 신라군의 공격에 완강히 저항하였지만 패배하였고 이리하여 부흥군은 웅진 동쪽의 거점성들을 모두 상실하게 되었다.이처럼 동방의 거점성들이 함락되면서 전투의 주도권은 나당군이 장악하게 되었다. 663년 2월 신라군이 공격해오자 거열성에 주둔한 부흥군들은 완강히 저항하였지만 견디지 못하였고 700여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거열성을 함락시킨 신라군은 다시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 결과 부흥군의 남방거점도 모두 신라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거열성 등 백제의 남방거점들을 장악한 신라군은 그 여세를 몰아 덕안성을 공격하였다.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덕안성은 부흥백제국의 새 수도인 피성과도 인접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진군해 오는 신라군을 덕안성에서 막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부흥군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양군 사이에 몇 차례의 공방이 있었는데 부흥군은 승기를 잡지 못하였다. 8월 17일 신라군이 주류성을 포위하고 28일 백강 전투에서 제왜연합군이 대패하였다는 것과 풍왕이 고구려로 피신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흥군은 더 이상 항거할 기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왕자 충승(忠勝) 등은 왜군과 함게 신라군에 항복하였고 주류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는데 663년 9월 1일의 일이었다. 주류성이 함락되자 두량윤성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성들도 항복하였다.그렇지만 여전히 항복을 거부한 채 나당군에 대항한 성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수신(遲受信)이 지키고 있었던 임존성이다. 신라군의 공격에는 문무왕이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서 참여하였지만 임존성의 부흥군은 항복하지 않고 30일간이나 잘 버티어 마침내 신라군을 물리치는데 성공하였다. 임존성의 부흥군이 이렇게 신라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임존성은 지세가 험하고 견고 할 뿐 아니라 군량도 풍부하였으며 주둔한 군대의 수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임존성 공격은 유진 당군이 맡게 되었는데 유인궤는 임존성 함락을 위하여 이미 항복한 흑치상지를 이용하기로 하였다.임존성도 신라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긴 하였지만 상황은 점차 어렵게 돼서 대다수의 성들이 나당군에 항복하여 버렸기 때문에 지원 세력도 없었으며 3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백제 유민들은 많은 인명의 손실을 입었고 생활도 매우 궁핍하게 되어 지속적인 저항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한 때 행동을 같이 하였던 흑치상지가 당군의 앞잡이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오자 임존성의 군사들은 크게 동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성의 저항은 급격히 무너지게 되었다. 이러한 국면을 도저히 전환시킬 수 없게 되자 지수신은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몸을 피하였다. 이로써 부흥군의 첫 봉기지이자 마지막까지 저항하였던 임존성은 당나라 군대에 함락되고 말았다.임존성이 함락 된 후 당은 이제 백제 유민의 저항은 완전히 평정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삼국사기 문무왕 4년에는다.
'옥토버페스트' 들여다보기00학과목차1. 뮌헨과 '옥토버 페스트' 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 3. '옥토버 페스트'에서 배울 점1. 뮌헨과 옥토버 페스트☞뮌헨: '맥주의 도시' - 16c 빌헬름 4세가 궁정 공식 양조장 '호프브로이 하우스' 세움 -현재 유명맥주회사 6개가 있는 독일 최대의 맥주 생산지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1) 200여년의 역사 -1810년 10월 루드비히 왕자와 테레제 공주 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승마대회를 열고 매년 승마대회를 열자고 결정한 것이 시초(테레지엔 비제) → 다음해 열린 승마경주 이후 차츰 즐거운 맥주파티 모임으로 변화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 1818년 회전목마와 그네, 처음 등장 - 1896년 양조회사들의 협조를 받아 기업형 텐트가 세워짐 ※전쟁기와 콜레라 유행하던 시기 빼고는 지속 ※올해로 175회를 맞이함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2) 9월 3째주 토요일 '옥토버페스트' - 10월 축제라는 뜻이지만 9월 3째주 토요일 낮 12시 정각 뮌헨시장의 “ O' zapft is” 외침으로 시작http://hesse-library.mokwon.ac.kr/deutsch/festiv/oct/oct-01.htm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3) 16일의 축제기간 9월 3번째 토요일~ 10월 1번째 일요일 → 각각 3번씩의 주말과 일요일, 한정된 기간 내에 휴일을 많이 포함 시키는 축제 노하우!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4) 7000명의 퍼레이드 -축제 2일째 오전 '고유의상 퍼레이드' -다운타운부터 축제장까지 7km 의 긴 행렬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5) 126만평의 축제장 - 14개 맥주회사의 대형텐트가 주요행사장 - 1개의 텐트에 최대 1만명 수용가능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6) 1000cc의 맥주잔 -마스: 1L짜리 맥주잔 -2.5kg 정도의 무게 -축제기간의 맥주 → 보통 독일맥주보다 훨씬 강하고 맛도 신선2. 숫자로 알아보는 옥토버 페스트7) 600 만명 의 축제 방문객 -뮌헨인구 4~5배 정도에 이르는 방문객 -1인당 맥주소비 약 1리터 -축제 방문객의 지출액 1조원 →경제적 효과 多3. 옥토버 페스트에서 배울점1) 저비용고효율의 축제: 전담직원 단 6명-주최측은 장소만 선정, 각 회사가 알아서 시설 설치 2) 축제를 통한 지역의 경제적 효과 극대화: 행사장 임대를 통한 이익을 줄여 싼 가격에 맥주를 즐길 수 있게 함으로써 보다 많은 방문객을 유도3. 옥토버 페스트에서 배울 점3) 환경친화적 축제 : - 1991년부터 강력한 규제방안을 시행 → 쓰레기 배출량 40%감소3. 옥토버 페스트에서 배울점4) 확장사업을 통한 재원 확보; 로고 사용료 ※ 한국의 축제도 전통축제의 세계화에 성공한 옥토버 페스트 처럼 전통문화축제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 필요참고문헌김춘식, 남치호, 세계축제경영 , 김영사, 2002 사순옥 지역축제의 세계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 카프카연구12권, 2005 이민수 낭만과 전설이 숨쉬는 독일기행 , 예담, 2002 허용선 환희와 열정의 지구촌 축제기행 , 예담, 2003 KBS특파원 지금 여기의 세계사 , 웅진씽크빅, 2007{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