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의 개화사상 >1. 김윤식의 생애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자는 순경(洵卿)이며, 호는 운양(雲養). 1835년에 출생한 김윤식은 박규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대원군이 하야한 다음해인 1874년에 대과에 합격하여 출사하였다. 그는 1881년 영선사로 청나라로 가서 텐진 등지의 근대문물을 보고 이홍장과 미국과의 국교수립에 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그러던 중 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 청군의 파병을 요청하라는 밀명을 받은 김윤식은 결국 청군의 향도관으로 귀국하고, 임오군란이 진압되면서 민씨 정권의 총애를 받는다. 하지만 박영효가 갑신정변 실패로 망명 한 2년 후 그 아버지인 박정양의 장사를 지냈다는 것과 청나라로 납치된 대원군의 귀국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유배 길에 오른다.1894년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김윤식은 외부대신으로 복귀한다. 본래는 동도서기의 입장에서 친청적 자세를 보이던 김윤식이었지만, 이때부터는 친일적 인물로 변해간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거치면서 다시 낙마, 제주도로 유배됐다가 1901년 제주도 농민 봉기의 영향으로 전라도로 옮겨져서 1907년까지 유배생활을 한다. 그가 유배에서 풀려난 것은 당시 농상공부대신이었던 송병준이 김윤식이 70세 이상의 고령이라는 점을 들어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권고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 중추원 의장으로 임명되면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일본으로 가서 영친왕을 방문하고 그 곳 정계와 인연을 맺는 등의 친일 행적을 보이면서도 나철의 대종교(창설 당시에는 단군교)창설을 후원하기도 한다.이 시기에 김윤식은 두문불출이었으나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자 이용직과 더불어 독립청원서인 대일본장서를 총독부와 일본정부에 제출하여, 징역2년을 선고받고 대제학의 직이 면직되고 자작의 작위도 박탈해가니 비로서 김윤식은 만년의 누명을 벗을 수 있어 기뻐하였으며 대종교청년회장으로 추대되고, 이듬해 1월21 일 88세로 장서하였다.2. 개화에 대한 인식 : 온건개화파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등의 온건개화파는 부국강병을 위해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실현하되 민씨일파와의 타협 아래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서양의 근대과학기술문명만을 받아들여, 개혁을 점진적으로 수행하자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청과는 종래대로 사대외교를 계속 유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온건개화파의 이러한 개혁정책은 기본적으로 청에서 실시하고 있던 양무론(洋務論)적 개혁입장과 비슷하였다.3. 동도서기적 개화사상김윤식은 유학적인 사상 기반을 벗어난 김옥균, 박영효 등의 변법개화파에 대해 “갑신의 여러 도적이 구주(歐洲)를 크게 존승하여 요순(堯舜)을 가벼이 여기고 공맹(孔孟)을 폄하하여 윤리강상의 도(道)를 야만이라 일러 그 도로써 바꾸고자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그의 스승인 박규수의 논지에 충실하려 하였다. 김윤식은 “ 서법(西法)이 동래하여 인류가 이적이나 짐승으로 화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나, 오히려 동교(東敎)가 서쪽으로 갈 조짐이 있어 이적이나 금수도 모두 인류로 화할 것이다.” 라고 하고, 그 증거로써 독일이 한문학교를 설립하여 성명지학(性命之學)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 박규수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그들은 물질적 차원에서는 서구의 문물을 밭아 들이되 정신적 차원에서는 동도를 지키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그는 조선의 문명국가로써 다만 시무(時務)에만 힘쓰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조선의 시무는 청렴을 숭상하고 가난을 제거하여 백성을 구휼하는 데 힘쓰며 조약을 잘 지켜 우방과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서양의 종교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종교를 수용할 경우 바로 동양의 기본윤리 질서가 해체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윤식의 논리는 당시 개화 정책을 추진해 나간 관료들의 공통된 견해로 볼 수 있다.그의 이러한 사고는 외면적으로는 당시의 보수세력인 성리학파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통과 현대의 틈바구니에서 양자의 역할 분담을 통하여 난국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김윤식의 동도서기론은 나름대로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보이며 근대 문물의 도입에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갈등으로 인하여 그 구체적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다수가 결국 친일파로 변절하게 되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4. 김윤식의 정치사상(1) 내수자강론 (內修自强論)김윤식의 자강론(自强論)은 같은 개량적 개화파인 김홍집의 의견에 뜻을 같이 한다. 김홍집은 단지 부강(富强) 뿐만 아니라 정치를 바로잡고 나라와 백성을 보전하며 밖으로는 외국과의 싸움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자강의 제 1선무라고 대답하였다. 전통유교도덕과 정치제도의 충실에 의하여 백성과 국가를 편안하게 함과 동시에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강의 본질이라고 하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어디까지나 그 수단으로 위치한다고 보았다. 김윤식은 전통적 유교문화를 부정하는 근대화 추진에는 반대하였다. 이것은 후일 동도(東道)=성인지도(聖人之道) 자체를 부정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던 김옥균 등의 급진개화파와 분열하게 된 계기가 된다.김윤식의 자강론은 군비(軍備)를 내정(內政)보다 중요시하는 청(淸)의 양무론(洋務論)과는 달리 전통유교에 의한 내정의 충실에 더 역점을 두는 내수자강론이다. 그리하여 김윤식은 정부의 정책을 올바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맡은 직무를 소신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오늘날, 인간의 생활양식에서 교육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교육이 모든 성장의 토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은 주로 학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들의 생활양식을 통해 학교문화를 탐구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개인과 집단의 성장의 토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학교문화의 바탕 위에서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학교의 사회적, 심리적, 교육적 분위기라는 학교풍토란 용어로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최근의 한국 교육풍토는 어떠한가?한국 교육은 대학진학을 위해서 개인의 재능과 성격, 특성은 무시되고 오로지 성적위주의 교육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시작은 유아 영재교육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영재학교에는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자격요건을 아무리 강화해도 학생들이 넘쳐나는 실정이며, 사교육 시장의 확대는 학생들을 서열화 시키기 위한 온갖 경시대회로 어린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학교문화가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콜린스와 포라스의 비전에 대한 정의에서 보면 효과적인 학교는 ‘향상을 위한 갈망’, ‘성장가능성’, ‘새로운 내용의 가치에 초점’, ‘증진의 뚜렷함’, 그리고 ‘우수 학생의 봉사’가 우선되었다. 또 ‘상상된 미래’에 대해 분명히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해 내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는 그런 비전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저 명문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데에만 주력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학교는 창의력 개발을 강조하고 새로운 정책이나 시도를 해보지만 사실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하여 학교는 당연히 이와 같은 형태라는 것으로 우리에게 내재되어 이제는 한국의 학교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더 나아가 문화의 개념을 생각해 보면,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다른 한 부분에 영향을 주는 유기체적 성향을 지렇다면 우리의 학교 문화에서 이런 유기체적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한국의 중학교, 고등학교 문화는 상대적으로 학생들이 경직되어 있고 질문이 거의 없으며 교사와의 대화는 거의 단절된 분위기에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 보다는 강압적 성격을 띤다. 학업 이외의 학생들의 생각은 좋지 않게 여겨지고 있으며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늦은 학원 수업과 공부로 지쳐 있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학교가 추구하는 상징은 바로 ‘성적’이며 개인의 자아는 상실된 채로 독립설과 창의성은 사라져가고 학생들의 능력개발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학교 문화란 것은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만들어 가는 결과물이다. 학교가 훌륭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들이 협력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는 학교에서의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학교 문화는 학교 구성원들에 의해 형성된 관계, 믿음, 가치와 감정들의 집합이다. 학교 구성원의 협력은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 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학교 문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 문화가 사회화 동떨어진 관계 속에서 분리되어 형성된다고 보는 시각은 고쳐져야 한다. 학교와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교육 받은 사람이 학교에서의 문화습득이 실제로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형성하여야 한다.앞에서 쭉 이야기 해 보았듯이 학교 문화란 것은 사회 전반, 개개인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사실 나는 현재의 학생들만큼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이 지방이고 시골이어서 그런 면도 있지만 지금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이 과열되어 있다.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느꼈던 것을 지금은 훨씬 더 어린나이부터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일까? 지난 12월 4일 OECD 교육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결코 쳐지지 않는 상위권 성적을 자랑하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학생들의 학교만족도와 교육여건에서 최하위 권을 차지하였다. 이런 통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얼마 전, 과제를 하기 위해 한국 교육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던 나는 우연치 않게 한 반송사에서 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꼴찌라도 괜찮아’. 한국의 중3 학생들과 핀란드의 학생들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형식이었다.우리나라의 중3 학생들은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연합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학생들은 행여나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될까봐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교복에 의해 자신이 평가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교복에 따른 서열화’이다. 학교마크가 학생의 품질을 검증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경쟁을 한다. 각자에게 매겨진 점수에 따라 길이 갈리기 때문에 서로에게 공부를 조금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서로의 등수를 확인하며 눈치를 본다. 하지만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너무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나라, 학력이 가장 높은 나라로 평가 받고 있는 핀란드. 이곳은 학생 간 격차가 크지 않고 상위권이 두터운 나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학원이나 숙제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핀란드의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다. 그저 점수만 기재될 뿐이다. 학생간의 서열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평가에 중점을 둔다. 등수에 의한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등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 자신 스스로가 전보다 나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이런 문화로 인해 핀란드의 시험 분위기 또한 한국과 매우 다르다. 모르는 사람은 손을 들어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선생님은 그에 응해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도움을 준다. 무엇이 틀렸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하고 시험을 통해 더 알게 하려는 의도이다. 선생님이 답안을 고칠 기회까지 주의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한국과는 시험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험의 목적은 학생간의 비교가 아닌 학생 개개인의 발전을 비교하는 데에 있다. 또한 핀란드에서는 우월반이 없다. 그 대신 보충수업을 대신 하는 특별수업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수학과목이 부진한 학생은 그 과목의 특별 수업을 개인 과외와 같은 형식으로 받는다. 한국에서의 수학 교과서에는 문제의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일괄적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핀란드의 수학 교과서에는 문제마다 난이도가 다른 색깔로 표시되어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문제만 풀면 된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차이점은 핀란드는 우월한 학생이 얼마나 많은가에 초점을 두지 않고 부진한 학생이 얼마나 적은 가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일찌감치 선을 그어 두고 우수한 학생을 더 많이 양성하려는 우리나라의 교육 문화와는 전혀 다르다. 한 학생이라도 낙오되지 않도록 교육시킨다. 이로써 “경쟁 없는 학교” 를 양성하는 것이다. 최대한 학생들이 같이 갈 수 있도록 교육문화를 만들어 두었다. 그러므로 핀란드의 학생들은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부모들은 늦은 시간까지의 학원수업과 과외가 올바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피곤해하는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답이 안 나오는 문제를 두고 계속 오답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리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가시간의 활용이다. 이것이 뭐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차이에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먼저 핀란드에서는 폭풍우나 큰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쉬는 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것을 좋게 여기고, 점심시간에 나가서 축구를 하면 공부에 방해 된다고 꾸지람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또한 핀란드에서는 시간을 가지도록 한다. 핀란드의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 가지 이상 예체능 분야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학원수업시간, 야간자율학습시간이 채우고 있는 것을 핀란드에서는 자신의 꿈을 키우고 즐기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몰론 공부를 하는 것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키울 시간이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한국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내가 그 당시에 겪었던 일과 똑같은 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꿈’이 없는 것.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원서를 쓸 때 까지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곤 했었다. 목표가 막막해서 공부에 대한 회의까지 들었었는데, 현재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거의 대부분 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냥 좋은 고등학교에 가서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그저 그런 목표를 가지고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고 이야기 할 때 마음이 아팠다. 결국엔 자신의 적성을 찾지 못하고 성적에만 급급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보면 후회가 남게 될 확률이 높다. 답답한 교실에 눌러 앉아 공부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는 그 시간을 조금만 꿈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든다면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핀란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취미를 살려 자유로이 고등학교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또한 서열화가 강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잘하는 학교에만 가려고 한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체고를 간다. 학생의 장래희망은 법관이지만 체고에 간다. 우리의 생각으로 보면 굉장히 의아한 일인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역시 고등학교간의 수준차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학교에 가든지 자신의 꿈을 동등하게 키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핀란드 학생들에게 느껴지는 학교는 좋.
< 철당간 >▶ 청주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두개의 화강암 지주와 20개의 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간의 밑에서 3번째 단에 당기(幢記)가 양각되어 있어 그 조성년도(고려 광종 13년, 962)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당시 '준풍(峻豊)' 이라는 고려 독자의 연호를 널리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그러나 본 당간이 소재했던 용두사(龍頭寺)의 규모 및 창건과 폐사년대는 정확하지 않다.당간이란 절 앞에 세워 부처의 위신과 공덕을 나타내고 정의구현을 목적으로 당이라 불리는 깃발을 달아 두기 위한 것인데 만든 재료에 따라 철당간, 석당간, 목당간으로 불리우며, 간두의 모양에 따 라 용머리 모양을 취한 것을 용두당, 여의주를 장식하면 여의당 또는 마니당, 사람의 모양이면 인두 당이라 하였다.현재 전국에는 청주의 용두사지 철당간, 공주 갑사의 철당간, 나주 동문밖 석당간, 담양 읍내리 석당간 등이 남아있으나 본 철당간 만이 조성년대가 명확하다.? 철당간은 내가 정말 많이 지나다니면서도 국보인지 몰랐던 것이다. 사실 상당공원에 가기 전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르게 되었다. 철당간은 백화점 앞 광장 중앙에 떡하니 서있다. 도심에 있고 매일 태연히 지나다니다 보니 별로 문화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름은 굉장히 익숙하지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것이 왜 철당간인지,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너무 도심에 있고 따로 터가 떨어져 있지 않다보니 진지하게 중요한 문화재란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도록 놓아둔 것이 아쉽다. 조금 더 국보임을 알 수 있도록 표시 같은 것을 정확히 해두었으면 한다.< 상당산성 >종목 : 사적 212호분류 : 성지(성곽)시대 : 조선시대소재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28-1▶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최초의 정확한 축성년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장군이 쌓았다는 기록,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고적조에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7,772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이었던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까지 3년간,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 하에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하였다. 또한 이듬해 성 내에 구룡사와 남악사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후에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산성 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ㆍ군기고ㆍ창고ㆍ수고ㆍ장대ㆍ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ㆍ서문(미호문)ㆍ남문(공남문) 등 3개 문과 동암문ㆍ남암문 2개 암문, 치성 3개 소, 수구 3개 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뤄진 정비공사로 동ㆍ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예전에는 성 안에 다섯 개 연못과 여러 개의 샘이 있었고, 사찰도 세 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다섯 개의 연못이 모두 합쳐져 큰 저수지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은 산간벽촌으로 남아 있었던 마을을 지난 1982년과 1983년에 청주시가 산성을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마을 전체를 한국 재래 한옥기와집으로 개량하여, 보기 드문 전통 한옥마을로 바꾸어 보존하고 있다. 현재 32가구가 모여 사는 산성 안의 한옥마을은 27집이 음식점을 경영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대체로 토종닭과 오골계ㆍ꿩요리 등을 전문으로 하고 반주로 이곳 명산물인 대추술을 함께 내놓고 있다.? 나는 상당산성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소풍으로 간 적도 있고 가족들끼리 단풍을 구경하러 온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올라가서 사진만 찍고 놀기만 하느라 상당산성이 어떤 곳인지, 어떤 것들이 있는 지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인문지리 리포트의 주제가 주어 졌을 때 가장 먼저 생각 난 곳이 바로 상당산성이다. 청주에 사는 나에게는 익숙하지도 하지만 낯선 곳이다.도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상당산성으로 출발했다. 상당산성을 고등학교 때 올라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택했다. 가는 길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해 있었다. 상당산성 못지않은 진풍경이었다. 상당산성에 도착해서 먼저 한 일은 증거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들어가는 문에서 사진을 찍고 하나하나씩 둘러보았다. 산성 입구의 넓적한 돌계단을 따라 들어서면 공남문(남문)이 있다. 그 앞에는 산성에 대한 소개가 써있는 안내판이 있다. 그 안내판을 보고 천천히 길을 따라 가면서 보았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새롭게 상당산성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였다. 상당산성에서는 행사도 많이 하기 때문에 사람들도 많이 찾고, 그냥 경치를 즐기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도 많다. 예전에는 소풍을 왜 이런 곳으로 오는거냐면서 불평을 했었지만 이번기회를 통해 가보니 유적도 보고 경치도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던 점은 교통편이었다. 갈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내려오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데 한참동안 오지 않았다. 결국 30분여를 기다려서 버스를 탔지만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그리고 상당산성을 안내하는 책자 같은 것이 없어서 일일이 보면서 다녀야 했고 음식점도 너무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남문 쪽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소개하는 책자를 조그맣게 라도 만들어서 배치해두고 음식점을 골고루 분포 시켜서 어디서든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우암어린이회관 >? 우암 어린이회관은 내가 정말 어렸을 때부터 가보았던 곳이다. 그때의 기억도 되살려 보고 싶고 입장료도 저렴하기 때문에 상당산성에서 내려가는 길에 별 생각 없이 들렀다. 본관은 옛날과 변함없었다. 들어서면 작은 연못이 있고 공룡의 뼈가 전시되어 있다. 1층은 과학자나 과학이론을 쉽게 설명해놓고 시각적인자료(그림, VTR)를 통해 이해를 돕게 되어있다. 대학생인 나로서는 정말 이지 볼게 없었다. 하지만 새로 생긴 곳을 가보고 싶어서 들른 전시관들은 내가 보기에도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곳이었다. 우선 나비관을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곳에는 각종 나비와 나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비와 나방을 구분하는 법 등이 써있었고 나비와 나방을 수집해 놓고 그 밑에 각각의 설명이 있었다. 계절에 따른 나비의 변화도 있었고 생전 모르던 나비들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다음엔 세계의 탈이 전시되어 있는 탈관을 갔다. 재미있는 탈도 있고 각 나라의 전통적인 탈도 있었다. 탈관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공포의 집처럼 짧게 꾸며놓은 곳도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 다음으로는 공룡전시관을 갔다. 아무래도 공룡의 모형들이 있다보니 아이들이 제일 많은 곳이었다. 나도 어린아이처럼 마냥 신나서 이것저것 구경하였다. 알고 있는 공룡도 있지만 모르는 공룡이 더 많았기 때문에 더 즐거웠다. 역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서 본관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마지막으로 별, 행성들이 있는 우주전시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입구부터 화려한 불빛으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별자리를 불빛으로 표시해 놓은 것이 입구에 전시되어 있었고 들어가는 길에는 행성을 모형으로 제작해놓은 길이 있었다. 각 행성에서 나의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재어 볼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입체영상관도 있었다. 입체영상관은 작동이 되지 않아 관람 하지 못했다. 행성모형을 지나면 여러 가지 우주이론들이 나오는데 시각자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전시관들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흥미롭고 유익한 곳이었다.? 우암 어린이회관의 본관은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 진 곳이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맞춤법이라든지 시설이 매우 미흡하였고, 심하게는 폐관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물론 사람들도 거의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새로운 전시관을 짓는 것도 좋지만 본관을 새로이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전시관들은 좋은 점이 많지만 체험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두고도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것을 그때그때 고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린이회관 안에 있는 놀이기구 시설이다. 이것 또한 매우 오래전에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부실해 보인다. 조금 부실해 보이는 게 아니라 눈에 확 띄도록 녹이 슬어서 안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얼마 전에는 안전사고도 일어났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이렇게 부실하게 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 놀이기구의 재정비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음악을 듣다제24회 서원대학교 음악학과‘한국음악 정기연주회’를 보고목 차…들어가며 ‥‥‥‥‥3Page1. 25현 가야금 3중주 [산조] ‥‥‥‥‥3Page2. 해금, 가야금 2중주 [황토길] ‥‥‥‥‥4Page3. 아쟁 협주곡 [천축] ‥‥‥‥‥4Page4. 25현 가야금 협주곡 [뱃노래] ‥‥‥‥‥4Page5. 국악가요 [배띄어라] ‥‥‥‥‥5Page6.관현악 [Prontier] ‥‥‥‥‥6Page7. Encore공연 ‥‥‥‥‥6Page…나가며 ‥‥‥‥‥6Page-참고 문헌‥‥‥‥‥7Page…들어가며국악의 이해, 교양 과목으로 국악의 이해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입소문’이었다. 지난 학기에 수업을 들었던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교수님께서 치마를 입으신다는 것과 학생들과 어울리길 좋아하신다는 것, 두 가지였다. 정작 국악에 대해서는 듣지도 않고 신청을 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시간, 들어가자마자 시험지 등장! 쉽지 않은 과목이라는 것을 실감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강의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 시험지를 보고 내가 국악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국악 악기들을 구분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국악에 대한 흥미가 조금씩 생겨났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국악 공연을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청주에서 마땅히 볼 공연이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제출기한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때마침 커뮤니티에 밝은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학교에서 주최하는 였다. 친구들과 모여서 택시를 타고 청주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한국음악 공연이라서 한편으로는 설레고 한편으로는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들어가서 팜플렛을 보니 연주자 중에 강의 시간에 보았던 분도 계시고 국악 시간에 많이 접해 보았던 악기들이라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한국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이 곡의 구성이 어떻다 라기 보다는 이 곡의 느낌이 어떠했나를 위주로 써나가겠다.1. 25현 가야금 3중주 [산조]사람들의 집중을 받는 가운데 세 명의 연주자들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와서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역시 첫 곡이라서 기대도 크고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이 곡은 김희조 작곡의 25현 가야금 삼중주 곡으로, 중중모리-세마치)-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Coda)로 짜여있다. 1994년 서울새울가야금삼중주단이 서울 시립 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으로 초연했던 12현 가야금 삼중협주곡에 바탕한 곡이다. 일단 장단에 대한 흐름이 설명되어 있어서 어떻게 진행 될지 예상을 하고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배운 장단들의 이름을 보니 곡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고 어느 부분이 어떤 장단인지 헤아려가며 들을 수 있었다. 이 곡은 일반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다. 중중모리로 시작해서 점점 빨라지는 형태를 보여 점점 흥겨워 진다. 게다가 25현 가야금은 개량된 것으로 줄이 많기 때문에 보통 가야금보다 음역이 넓기 때문에 세 명이 함께 연주를 하니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가서 들으니 가야금의 소리가 정말 맑고 영롱하여 듣기에 매우 좋았다. 그리고 곡의 흐름이 지루하지 않고 현대 음악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고 경쾌해서 듣기가 편했다. 생소하지 않고 친근한 느낌마저 들어서 다음 곡에 대한 기대를 더욱 가지게 하는 연주였다.2. 해금, 가야금 2중주 [황토길]첫 곡에 대한 설렘을 뒤로 하고 두 번째 연주자들이 나왔다. 단아하면서도 현대적인 드레스 모양의 한복을 입고 세 명이 나왔는데 가야금 3중주에서 장구를 함께 쳤던 분이 또 장구를 치셨다.) 이 곡은 한국의 아름다운 황토길에서 악상을 얻어 작곡하였으며, 전체 5부분으로 구분한다. 17현 가야금만이 갖는 3옥타브의 음역을 넘나들며, 해금과의 주고받는 응답형식과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서양 음악적 기법과 농현)을 첨가하였다. 황토길에서 생각해 본 우리들의 삶을 두 악기를 통해 재해석 하고자 한 곡이다. 나는 해설과 같이 황토길에 대한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었지만 일단 처음에 해금의 소리를 직접 듣고 수업 시간에 음향시설로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듣기 전에는 약간 거슬리는 소리가 나고 부드럽지 않아서 호감이 생기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들으니 그 거부감이 사라졌다. 생각보다 해금의 소리가 좋았고 해금과 가야금의 조화도 훌륭했다.3. 아쟁 협주곡 [천축]두 번째 곡이 끝나고 협주곡이란 말에 어떤 것일지 기대를 했는데 갑자기 무대 뒤의 그림이 올라가더니 숨겨져 있던 협주 단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전의 곡들은 세 명 또는 네 명이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걸 보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아쟁 연주자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 연주가 시작 되었다. 아쟁은 강의 시간에 실제로 듣지 못했던 악기라서 더 기대가 되었다. 천축이라는 말은 옛날 혜초라는 스님이 쓴 최초의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에서 따온 말로써,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길인 비단길을 상상하면서 쓴 곡으로 동양과 서양의 감정모두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곡이 시작되기 전에 생각한 것은 서양악기와 동양악기가 잘 어울러 질까 하는 것이었다. 곡이 시작되니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매우 잘 어우러졌고 역시 악기가 많아서 웅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아쟁의 낮은 음색이 그 웅장함에 깊이를 더해 주었다. 아쟁의 소리가 그렇게 낮은 줄 미처 알지 못했었기 때문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한쪽엔 바이올린, 해금, 가야금, 아쟁, 플루트 등이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엔 첼로, 가야금, 클라리넷, 색소폰, 피콜로 등이 있었다. 이렇게 악기들이 많아서 웅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곡이 생각했던 것 보다는 약간 단조로워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4. 25현 가야금 협주곡 [뱃노래]역시 이곡도 협주곡이라서 악기의 구성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뱃노래는 굿거리장단의 흥겨운 경상도 민요인데 조금은 낯익은 곡이었다. 제 1악장은 파도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도입부로 시작하여 굿거리 장단)으로 이어지면서 분위기를 고조 시킨 후 자진모리장단으로 연결되며 마지막으로 빠른 4박자로 경쾌하게 끝난다. 제 2악장은 느린 중모리 장단으로 시작하여 단모리로 변화를 준 뒤, 다시 처음의 굿거리로 이어진다. 이 곡은 12현 가야금의 특징인 농현, 퇴성), 전성과 25현 가야금의 넓은 음역을 이용한 분산화음 사용으로 전체적으로 전통과 새로움의 조화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곡은 시작부터 매우 흥겨웠다. 마치 연주하는 사람들이 배에 타서 뱃놀이를 하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야금의 맑은 소리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고, 리듬이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절로 흥이 나서 가야금소리 하나하나가 몸에 리듬을 실어준 듯 했다. 그런 느낌을 가진 채, 가야금 연주자의 빠른 손놀림을 주시했다. 손놀림보다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 보는 것이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을 감았더니, 가야금의 다양한 음을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쟁 협주곡[천축]과 같이 악기가 많았으나 산만한 느낌은 없었고 매우 조화가 잘 된 느낌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높은 음색을 내는 플루트의 소리였다. 마치 국악에서 피리의 소리를 듣는 듯이 동양 악기들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파도를 표현하는 바이올린과 해금도 인상 깊었다. 적절한 떨림을 이용하여 바이올린과 해금이 어우러져 파도를 표현하니 진짜 파도가 연상되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우렁차게 들리는 북소리도 매우 경쾌하고 활기찬 기운을 느끼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5. 국악가요 [배띄어라]계속 되는 연주에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 무렵이었다. 국악가요라고 해서 색다른 무대를 기대하고 들었다. 시작부터 매우 흥겨운 반주가 나왔다.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이야 벗님네야 어서가자 배 띄워라동서남북 바람불제 언제 기다리나 술 익고 달이 뜨니 이때가 아니 드냐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이야 벗님네야 배 띄워서 어서가자.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자강 건너 벗님네를 앉아서 기다리랴 그립고 서럽다고 울기만 하랴.배 띄워라 배 띄워라.)아주 시원시원하게 노래를 풀어 나갔다. 색다른 가요에 다른 사람들도 흥이 나는 듯 했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 했다. 노래하는 분도 흥에 겨워 약간의 몸동작까지 곁들여 가며 열창을 하셨다. 고상하게만 듣고 있던 사람들의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 드는 좋은 무대였다.6.관현악 [Prontier])공연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곡! 곡목 해설을 보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순서였다. 아마도 연주 곡목란에 연주자의 사진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이 곡은 2002 Busan Asian Games Official Music 으로 전통국악과 서양음악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요소 그리고 양방언)이 음악적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표현한 곡이다. 연주가 시작되고 생각보다 깔끔하고 정돈된 연주에 갈수록 기대를 갖게 되었다. 곡 해설에서 보이는 것처럼 서양음악과 전통국악이 매우 조화를 잘 이루어 내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서 더욱 듣기 좋은 연주로 거듭났다. 집으로 돌아와서 원곡을 들어 보았는데 원곡에서는 태평소가 사용된 것 같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가 그 역할을 대신 한 것 같다. 그리고 전에 곡에서는 없던 꽹과리와 피아노가 합세를 하였다. 가야금과 해금의 어울림도 좋았고 중간 중간 심벌즈의 울림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진취적이고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생소했던 '세계화‘라는 용어가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세계화와 무관하게 살아왔던 많은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화 흐름에 휩쓸리고 있다. 이제 세계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현대를 사는 교양인이라 불리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계화란 무엇인가?세계화란 사회학자들이 전 지구적인 사회적 관계와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키는 과정을 지칭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용어이다. 세계화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현상이기도 하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계의 문제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준다.)즉, 세계화는 개인과 국가만의 현상이 아닌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가정할 때 그것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거쳐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화 논의는 주로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세계화라는 문제의식이 시장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화 논의가 경제학자나 기업인에 의해 주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계화라는 담론에 철학적으로 다가가거나 사회운동 차원에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논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세계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도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먼저 한국 사회의 환경 실태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환경’, ‘환경 친화적’인 것에 대한 강조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갑작스레 우리사회에 등장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환경의식, 시민사회의 환경운동, 환경정책, 그리고 기업의 상품과 이미지의 변화를 포함하는 대단히 포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가 추구해 온 산업화 · 근대화의 필연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다. 한국의 산업화 · 근대화는 시대적 과제였고, 경제성장과 동의어로 간주되었다. 당시 경제성장과 지역발전을 위한 환경의 이용과 파괴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고, 또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권장되기도 하였다. 한국사회는 검은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환경과 공해문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대가로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격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이와 같이 한국의 환경오염은 대부분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심각하게 발생하였다. 하지만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파괴된 부분도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다른 나라의 환경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대체적으로 환경론자들은 세계화에 부정적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식량 제국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고, 세계화 속에서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무한한 경제성장과 국경 없는 자유무역의 조급증 논리에 사로잡힌 정부들이 무소부재의 세계화 경제를 만들기 위해 지역 및 국가경제 사이의 장벽을 계획적으로 없애는 과정에서 작은 것과 지방적인 것들은 사라지고 이것이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전통경제학자들은 무역으로 새로운 기술의 이전을 촉진하고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주므로 세계화는 환경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에 대해 환경론자들은 자유무역이 국가 간 소득격차 증대, 환경 보전적 전통사회와 가치체계의 붕괴, 환경오염산업의 범지구적 확산을 통해 환경파괴가 심화된다고 다시 반박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화과정은 세계자본주의의 재구조화과정이며 이러한 재구조화과정은 기존의 불평등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초국가적 활동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이런 세계화 된 상황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학적 상상력이 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사회학적 상상력이란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즉 정치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으로, 단일 가족 연구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 예산에 대한 비교 연구로, 신학교에서 군부대로, 또는 유류산업에 대한 고찰에서 현대시 연구로 시선을 옮겨가는 능력이다.그것은 가장 비개인적이고도 관계가 먼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에서 가장 친밀한 인간 주체의 속성까지 아우르는 능력이며, 또한 그 둘 간의 관계를 볼 줄 아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