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감상문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멋모르고 다이어리라 하는 스케줄러에 시 한편씩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시인지, 어디 나오는 글귀 한 구절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년 전 M.C the Max라는 밴드가 불렀던 노래 가사 중의 일부와 비슷하여 그것을 인용해 본다.눈부신 햇살이 밤하늘에 뜨면, 그때는 우리 둘 이별해도 되요. 저 모든 별이 사라지면 보낼 수 있겠죠.내 눈물이 모여 바다가 되는 날, 그 때는 우리 둘 해어져도 되요. 한여름 날에 눈이 오면 보내줄 수 있죠.그 어린 나이에 내가 무얼 알아서 이런 내용에 마음이 動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을 보면 시란 그리고 노래란 그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생각이 문뜩 떠오른 이유는 라는 고려가요를 접했을 때, 내 마음이 그때와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과 그것의 표현이 그렇게 신선하고 멋있을 수가 없다. ‘헤어지고 싶다’(유덕하신 님믈 여해아와지이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헤어질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많이 듣고 보고 한 터라 익숙해 진 표현이며 내용이지만, 지금도 역시 이 가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다를 것이다.모래 벼랑에 심은 밤이, 그것도 구운밤이, 싹이 날 리가 만무하며, 옥으로 새긴 연꽃을 바위에 접붙이면 그 곳에 세 묶음의 연꽃이 필 가능성도 역시 없다. 철심을 박아 주름을 만든 무쇠로 재단한 제복이 어느 때에 가서 헐어질 것인지 이 역시도 짐작할 수 없으며, 무쇠로 만든 소가 소나무 산에서 쇠풀을 다 먹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싶은 일에, 그 보다 더 일어나기 힘든 일을 보태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는 임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헤어질 마음이 전혀 없고, 이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마음이라는 것이다.잘 알지는 못하지만, 앞에서 인용했던 노래 가사는 에서 영감을 얻어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지금도 이런 표현에 대해 감탄하는데, 수 백 년도 더 이전에 이런 가사가 있었단다. 과거를 살았던 선조들의 문학적 표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 노래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이 곡을 임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변치 않을 자신의 마음에 대한 표현이라고 읽었지만, 여타 고전시가 장르들이 종종 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면서 한편으로 그것이 임금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을 노래한 작품임을 고려하면, 이 노래 역시 그렇게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민요처럼 불렸을 이 노래가 궁중 음악으로 편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수많은 서민들의 노래 중에 몇 가지가 궁중 음악으로 편입될 때에는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라져 가는 노래들 중에 그 뜻이 깊은 것을 고르기 보다는, 당시의 많은 사람에게 향유되던 인기 있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사랑이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고, 내일 당장 세상이 끝난대도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 마음이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잘 표현된 가 그때에도, 지금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아닐까. 이별을 할 때도 역시 그렇다. 의 내용은 직접적으로 가지 말라고 임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가면 발병 난다’든지 ‘발병이나 나 버려라’든지 하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결국 ‘그러니까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된다. 김소월의 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라고 말하면서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라는 표현을 함께 쓰고 있는데, 물론 이를 이별의 슬픔을 축북으로 승화시킨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을 진달래로 표현하고 ‘갈것이면 나를 밟고 가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진정 앞에서 말한 ‘고이 보내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반어와 같은 수법을 통해서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와 닿고 재미도 있는 것이다.
컴퓨터교육과 2008060007 황 은 미1970년대 시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1979이 시의 제목은 ‘슬픔이 기쁨에게’ 이다. 최근 유행가 제목인 ‘바보에게 바보가’ 가 떠오른다. 시에서 ‘나’로 표현 된 ‘슬픔’이라는 화자가 ‘너’로 표현되고 있는 ‘기쁨’이라는 청자에게 하는 이야기인 듯하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진 사람을 슬픔으로 기쁨이라는 감정을 가진 사람을 기쁨으로 표현했기에 대유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시에 대한 내용을 보기에 앞서, 이 시를 한 눈에 보았을 때 ‘-겠다.’ 로 문장을 마치는 행이 총 19행중에 일곱 개의 행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이 ‘주겠다.’ 라고 행을 맺고 있으며, 나머지는 ‘멈추겠다.’와 ‘걷겠다.’, ‘걸어가겠다.’로 끝맺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문장을 계획 또는 실행으로 옮기고자 하는 강한 의지라고 해석한다. 나 또한 여기에서 이 문장들을 그렇게 해석했다. 여기에 덧붙여 내용을 고려하면, 화자가 의지를 담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들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화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하게 된다. 또한 이것에 70년대 독재정권과 민주화의 격동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런 의지가 담긴 표현이 단지 시대적 풍토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민주투사가 두 주먹 불끈 쥐고 격문을 외쳐대는 소리처럼 강건하게 들리기도 한다.시의 내용을 기준으로 세분화해서 보면, 1~2행, 3~6행, 7~13행, 14~19행까지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내 생각에 의한 분류일 뿐이지만, 이렇게 나누고 보면 2개의 행 → 4개의 행 → 7개의 행 → 6개의 행으로 나누어지는데 마치 의도적으로 점차 시상을 확장시켜 나간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두 분류의 행의 수가 바뀌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먼저, 처음 두 행에서 ‘너’는 슬픔을 가지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슬픔이 사랑보다 소중하다고 표현했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존재이며 사랑과 같이 긍정적인 것이다. 실상 우리는 내 인생에 기쁨만 가득하고 슬픔이란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길 원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슬픔이란 부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슬픔은 나의 슬픔, 아픔이기보다 타인의 슬픔을 알아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뒤에 나오는 행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시대적 상황을 가미해보면, 이 시대에 슬픔 하나 가지지 않은 서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고, 이에 따라 슬픔을 가져보지 않았던 자, 슬픔을 가지지 않은 자는 이 시대의 서민, 민중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정리하면, 민중에 속하지 않는 슬픔을 모르는 자에게 타인의 슬픔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고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시인 또는 시적화자의 생각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3~6행, 그리고 7~13행에는 하나의 일화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애상적인 시가 아닌 경우, 겨울밤은 시련과 고통의 시간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겨울밤은 말 그대로 춥고 어두운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에 나타난 할머니는 추위와 떨고 있기까지 하다. 시인이 직접 본 체험담인지 아니면 머릿속으로 그린 장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장면을 그림처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귤을 팔고 있는 할머니는 우리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이웃이기도 하지만, 소외된, 슬픔을 가진 그런 존재이며, 그런 할머니에게서 얼마 되지도 않는 귤 값 좀 깎았다고 기뻐하는 ‘너’는 할머니와 같은 타인의 슬픔을 모르는, 무관심한 존재이다. 6행에서 너에게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세상은 불공평하다.)”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세상은 어떤 이에게는 많은 것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주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렇듯 슬픔이 평등하다는 말은 슬픔은 어떤 이에게나 모두 똑같이 준다(혹은 주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해석에서 한참 고민을 했는데 시의 전반에 걸친 ‘주겠다.’ 의 의미가 모두 슬픔을 모르는 자, 기다림을 모르는 자에게 그것을 알게 해주겠다는 것으로 상통한다고 보면, 은유법을 이용하여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7~13행에서 역시 ‘너’의 모습들이 표현되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른 나에게 한 번도 웃어주지 않은 너의 모습과 동사자에게 가마니 한 장 덮어 주지 않은 너의 무관심한 모습이다. 여기서 ‘너’는 냉정하고 싸늘하기까지 하다. 평등하게 웃어 주는 행위는 슬픔인 ‘나’에게 평등하게 ‘기쁨’을 나누고 관심을 갖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으니 ‘너’만 기쁨을 알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참 이기적이고 잔인하다. 9행의 동사자라는 말은 말 그대로 얼어 죽은 사람이다. 얼어 죽어서 슬픔을 아는 누군가가 지나가다 덮어주었던 것인지, 가마니를 덮고 추운 길에서 자다가 얼어 죽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죽은 사람이 다시 얼어 죽는 것은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 실제로 죽은 사람이 또 죽을 수는 없지만,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말도 있듯이 극한 상황에 가슴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무관심한 ‘너’를 잘 나타내고 있다. 가마니 한 장 덮어주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인데, 남이야 내 도움이 필요하든지 말든지, 죽든지 말든지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13행에서 ‘나’는 이런 ‘너’에게 기다림도 주겠다고 말한다. 기다림이란 단어는 어떤 느낌을 주는가. 단어 하나 만으로도 그립고 뭔가 애잔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고 초조하기도 하며, 마냥 기다리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슬픔을 모르는 ‘너’라면 기다림을 아는 것 역시 어려울 것이다.사실, 다른 부분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 부분(7~13행)에서는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슬픔과 기쁨은 반대되는 감정적?정서적 속성이듯, 슬픔과 기쁨으로 표현되고 있는 이들도 대비되는 속성을 지니고, 그런 위치에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어둠이라는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있는데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면 그 아픔을 잘 알고 보듬어 줄 수 있었을텐데 ‘너’는 웃어주지 않았다. 여기서 ‘너’는 ‘나’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신경을 써야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카프시라면, 너와 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정도가 될 것이다. 이 시는 70년대에 쓰여진 시 이므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민중과 그에 대비되는 시대 상황이나 계층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화자와 ‘너’ 사이에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약한 위치에 있는 ‘나’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너’에게 슬픔과 기다림을 주는 것이 실현 가능한 일일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슬픔, 사랑, 기다림과 같은 잔잔한 느낌의 시어들을 가지고 이러한 시대적 현실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한 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다.마지막으로 14행~19행을 보면, 이 세상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싸락눈이나 진눈깨비가 아닌 함박눈이다. 또한 눈은 세상에 내리고 있다. 지엽적인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에게도 기쁨에게도 함박눈이 내린다. 슬픔에게는 함박눈의 차가움이 부각되어 추운 겨울에 고통을 더 안겨주는 존재이고, 기쁨에게는 함박눈의 사전적 의미대로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의 존재일 것이다. 화자는 함박눈을 멈추겠다고 했다. 함박눈의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나누기에 애매하지만, 함박눈을 멈추는 것은 앞에서 화자가 앞에서 평등이라는 단어를 두 번 이나 사용한 것을 생각하면 모두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봄눈 역시 눈이지만, 여기서의 눈은 이 세상이 아닌 보리밭에 내리고 있다. 아까와는 다르게 지엽적이다. 봄에는 날이 건조한데, 민중들이 일구는 건조한 보리밭에 내리는 봄눈은 봄 가뭄을 해소하는 촉촉한 눈이다. 이 눈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가는 것은 따뜻함을 전해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후에 화자는 눈 그친 눈길, 다시 말하면 평등해진 이 길에 따뜻함이 살짝 쌓여 있는 길을,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너’와 함께 걷겠다, 걸어가고자 한다. 슬픔을 외면하는 ‘너’에게 슬픔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에서 계속 슬픔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슬픔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슬픔은 모른 체 하고 등 돌리는 것 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너’와 함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슬픔에 대한 힘’이란 이런 아름다운 것일 것 같다.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는 것 역시 ‘너’가 기다리는 것의 슬픔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이해했는데, 크게는 사랑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서적만 해도 한 두 권이 아닌데, 무엇이 가장 바른 답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문학 관련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도 정작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는 것 같다.여기저기에서 문학이 무엇인지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 간단하게는 “언어를 표현매체로 하는 예술 및 그 작품”) 이라는 말로 아주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문학이 갖고 있는 가시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국어사전에는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라고 등재되어 있으며, 문학이 내적으로 담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함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 주된 몇 가지 갈래를 문학의 정의에 함께 포함하고 있다.문학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누구나 다 문학이라고 인정하는 문학의 하위 장르인 시와 소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시는 화자가 자연을 보고 거기에서 느끼는 순간의 감흥을 글로 표현한 것, 혹은 개별 상황에 대한 화자의 시선이나 가치 등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 표현의 방식에는 개별 작품마다 다양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시라는 짧은 형식의 글에 작가가 담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들인 것 같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있음직한 사건을 허구적으로 상상하여 창작한 것이면서, 이 또한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이 창작한 창조물이기에 시적 자아, 소설의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로 표현되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시선으로 그려 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의 세계에 대한 감정, 그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등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문학이 아닐까 한다.몇 가지 경험에 의한 사례를 통해 문학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가 가장 최근에 읽었던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눈물 콧물 다 흘리게 하는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서인지 와 닿는 느낌이 더욱 컸다. 특히 어떤 장에서는 주어가 ‘너는’으로 서술되어 있어서인지, 엄마를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데도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을 책으로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내게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미리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이유 모를 눈물이 자꾸 흘렀다. 그동안 날 낳아주신 부모님께 내가 어떻게 대했는지, 과거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후회감으로 앞으로는 부모님께 정말 잘 해야겠다는 등의 막연한 생각들도 생겨났다.이와 비슷하게,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중학생 시절에 우연히 접했던 프로스트의 과 천상병 시인의 이라는 시는 내게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다.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느 길을 택해서 가는 것이 좋을지 많은 고민을 하던 때여서 그랬는지 정말 크게 공감을 하고 깨달았던 시가 프로스트의 시였다. 귀천은 아직 인생을 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풍파와 싸우며 세월을 보낸 후에 이 세상에 한 인간이란 생명으로 태어나 살다가는 긴 시간을 짧은 소풍으로 표현한 그것에 경이감을 느꼈던 것 같다.이렇게 문학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그간 살아온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도 하여 반성하고 여러 가지 깨우침을 주는 역할을 한다.문학은 경험과도 많은 관련을 맺는데,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들었을법한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라는 말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너무나도 많고 가 보아야 할 곳도 너무나도 많은데, 한 인간이 태어나고 죽을 때 까지 경험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제한적이다. 문학 이외의 실용문등의 비문학도 많은 정보와 지식을 알게 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문학은 특히 내가 되어보지 못한 것이 되게도 하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살게도 한다. 두 번째는 문학은 그 작품을 창작해 내는 작가의 경험의 축적과 산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 어떤 주인공의 장황한 일대기와 같은 글을 써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학을 접하는 독자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점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읽었던 문학 책을 자라고 성인이 된 후에 다시 그 책을 보게 되었다면 과거와 시간이 지난 후에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느낌이 같을 수 있을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사고하게 된다.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학생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 보는 것은, 같은 대상을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다름이 자명하다. 독자는 나름의 자신의 경험과 주관을 가지고 문학으로 표현된 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시(문학)는 자연과 인생의 모방이라고 한 것이 짧고 명료한 한마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모든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문학에는 인간의 삶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에 명쾌하지는 않아도 한마디로 표현된 나름의 문학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한다.문학은 크게는 두 가지, 대게는 세 가지 정도의 기능을 가진다고 한다. 문학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면 좀 더 자세히 문학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을 덧붙이도록 하겠다.문학의 기능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억압하지 않고 인간?에게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정인 힘을 인지하게 만든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그것에서 얻은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문학은 반성을 강요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싸울 것을 요구한다. 부끄러움과 자각을 이끌어내는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든다. 이처럼 문학은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유용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삶에 역설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 (김현)?문학이란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체험에서 벗어나려는 상상력에 의한 새로운 체험을 모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의 의미나 존재를 밝힌다. 독자는 문학을 읽으며 경이의 느낌을 받고 때로는 재인식의 체험을 겪는다. 문학에 있어서 경이의 경험과 재인식의 경험은 그만큼 우리들의 둔해진 감수성을 일깨우고 가다듬어주고 또한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즉, 문학은 관습의 울을 뚫고 현실세계의 정체를 직시하도록 독자의 의식을 일깨워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잠든 의식을 일깨워 보다 나은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문학] 陶山十二曲跋을 읽고퇴계선생문집 권지 43에 보면 선생께서 지으신 도산 12곡에 붙인 발(跋)이 등재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陶山十二曲跋’이다. 그 시작을 右陶山十二曲者(우도산십이곡자)라고 하고 있으니 도산십이곡을 쭉 적고 난 후에 그 끝에(왼편부터) 발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노인이라고 지칭하면서 도산십이곡이라는 시조를 지은 까닭을 스스로에게 묻고 또 스스로 답하는 형식이다. ‘발’은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이라는 뜻으로, 이 글에 도산십이곡발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합당해 보인다.그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특히 한림별곡과 같은 류의 글을 교만하고 방탕하고, 무례, 방자한데다 희롱하고 업신여김을 겸하고 있다고 하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음악과 글을 비판 하고 있다. 이별이 지은 육가에 대해서 한림별곡보다 낫다고 칭송 하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로 마음에서 어긋남이 없는 경지의 것이 적다는 노인의 판단이다. 앞서 언급하였던 것과 같이 글에 등장하는 노인은 모두 이황 자신을 가리킨다. 자신을 노인이라고 한 까닭에는 딱히 文에 대해서는 잘 알지는 못하나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의 시각으로, 도산십이곡을 지은 사람이 아닌 객관적인 모습으로 비판적 성찰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글에서는 오늘날(당시)의 시와 그 보다 더 오랜 옛날의 시를 비교하며 비판한다. 읊을 수는 있으나 노래하기는 어려운 시의 현실을 말한다. 그것은 한글로 지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황은 자신이 도산십이곡발을 한시로 짓고 있으면서도 한글로 지어진 글에 대해 더 높이 평가를 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이런 비평은 왜 이황이 도산십이곡과 같이 우리말로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훈민정음이 지어지고 120여년이 지난 후에 지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당시에는 한글로 학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상황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이 이 글은 단지 발문적인 의미로서의 기능보다 현실의 文과 관련한 비판을 주된 것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이황은 노래로 부를 수 있도록 이별의 노래를 모방하여 도산육곡을 둘 지었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지금의 도산십이곡이며 앞부분은 志에 대해 이야기하고 뒷부분은 學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는 자신의 쓴 글의 내용을 직접 말하고 있다. 이별의 노래를 모방하였다고 하는 말을 ‘故嘗略倣李歌고상략방이가’ 라고 하였으니, 이는 앞서 이별을 칭송하였던바 있으므로 그처럼 노래로 부를 수 있도록 하면서도 마음에서 어긋남이 없는 경지인 ‘溫柔敦厚온유돈후’에 다가가려 애쓴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이 글을 보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의 의미를 이황은 잘 꿰뚫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서 그가 생각하는 노래, 문학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지도 모르나, 문학 중에도 소설이나 다른 장르에 비해 세계나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흥을 노래한 시의 경우가 비교적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감동을 안겨주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짧은 노래일수록 말 한마디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으므로 그 만큼 효과가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에도 유행가나 가곡이나 할 것 없이 아름다운 노랫말에 사람들은 귀 기울이고 감동하여 속으로 되뇌며 마음에 새기려한다. 마음에 새긴 것은 곧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 만큼 아름다운 노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 _ 국내외 학자들의 견해 중심으로언어학자들은 흔히 세종대왕을 몇 백 년 앞서간 천재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에 아주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들어서 우수한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외래어 남용에 대한 많은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늘 사용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한글의 우수성은 해외에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대해서 알아보고, 또한 한글의 우수성과 그 사례를 찾아보기로 한다. 덧붙여 국내외 언어학자들의 한글에 대한 견해를 알아보도록 한다.1. 우수한 우리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자음자음은 옛 글자를 본떠 만들기는 했지만 그 창제 방법과 목적이 매우 독창적이다. 자음은 발음하는 기관의 모양을 본떠 'ㄱ,ㄴ,ㅁ,ㅅ,ㅇ' 다섯 자를 기본자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목구멍을 혀뿌리가 막는 소리로부터 'ㄱ'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훈민정음의 자음은 입모양, 발음할 때 혀뿌리의 형태를 본 따 만들었다.나머지의 자음은 기본자를 바탕으로 각각 획을 더하는 가획 (예. ㅋ, ㄷ/ㅌ, ㅂ/ㅍ, ㅈ/ㅊ, ㆆ/ㅎ 등)과 글자를 나란히 쓰는 병서 (예. ㄲ, ㄸ, ㅃ, ㅉ, ㆅ등)의 원리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ㆁ(옛이응), ㄹ(반설음), ㅿ(반치음)을 이체자로 하여 총 17자의 자음을 만들었다.㉡ 모음모음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본 요소인 삼재(三才), 즉 천(天), 지(地), 인(人)을 상형한 'ㆍ, ㅡ, ㅣ'를 기본자로 하여 초출 (예. ㅗ/ㅏ, ㅜ/ㅓ), 재출 (예. ㅛ/ㅑ, ㅠ/ㅕ), 합용 (예. ㅘ/ㆇ, ㅝ/ㆊ)의 원리로 만들었다. 이렇게 총 모음 11자이다.ㅣ . ㅡㄱㅋ ㄴㄹ ㄷㅌㅂㅍ ㅅㅎ ㅈㅊ* ㅇㅁ #@덧붙여, 최근에 들어와서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인정받게 된 것에 대한 사례로 삼성전자 휴대폰의 문자 자판기를 예로 들 수 있다.이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본뜬 것으로 '천날-나랏글' 입력 자판은 특허출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2. 한글의 우수성과 그 사례영국의 존 맨이라는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는 저서 '알파 베타'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했다. 또 지 가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사실이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한글을 세계 모든 언어의 순위에서 1위를 매겼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또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 상(UNESCO King Sejong Prize)'를 만들어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공적을 세운 단체나 개인을 선정하여 상을 주고 있고, 1997년 10월에는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한글의 우수성은 이렇게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토록 한글이 우수하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글은 창제원리가 굉장히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문자이다.앞서 살펴보았듯, 한글은 자모음 28자가 제각각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몇 개의 기본자를 만든 뒤, 이것들로부터 파생시켜나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거의 모든 단어들을 외워야하는 중국어와는 달리 몇 개의 기본자만 외우면 다른 파생자들은 쉽게 외울 수 있는 형태를 갖췄다. 또한, 한글은 문자 활용도가 매우 좋다.한글은 중국어의 음절문자와 달리 음소문자를 만들었다. 창제 당시 조선이 한자 문화권에 속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음소문자를 만들 생각은 굉장히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음소를 다시 모아서 한 음절을 만드는 음절방식의 표기 체제를 가진다. 즉, 음소문자이자 음절문자이다.몇 가지 한글 창제와 관련한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운학(聲韻學)의 2분법에 의하면, 東은 t(성모) - u?(운모)로 이루어진다. 한글은 2분법이 아닌 3분법으로, 같은 글자가 t(초성) - u(중성) - ?(종성)으로 이루어진다. 한글의 성공적인 요인으로 문자체계에서 終聲復用初聲(종성부용초성: 종성을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지 않는다)으로,역시 과학적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앞서 말했던 창제원리를 말한다. 天地人을 반영하는 ‘ㆍ, ㅡ, ㅣ’의 세 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초출, 재출, 합용자로 나아간 것이 모음이고, 소리를 내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기본자를 만든 후, 소리의 특성을 반영하여 유기성은 가획의 원리로, 경음은 병서의 원리로 창제한 것이 자음이다. 모아쓰기 방식을 채택한 것이 문자운영의 적절성이라 말할 수 있는데, 자모를 일직선 위에서 나란히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음과 모음의 순서로 위에서 아래로 하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하여 네모 모양의 음절로 모아쓰는 것이 그것이다. 글자 모양은 ◁ ▷ □ ◇와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되며, 모음으로 시작하는 경우라도 음가 없는 ‘ㅇ’을 써서 글자 모양을 자음으로 시작하도록 만든 것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은 읽기 체계가 비교적 간단하다.근거 1. 한글의 모음은 언제나 일정한 소리를 낸다. 영어의 경우, 한 가지 문자가 굉장히 다양한 소리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e’같은 경우에는 무려 10여개의 각기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달리 한글은 언제나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읽기가 매우 쉽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때 쉽다고 느끼는 것이다.근거 2. 한글에는 묵음자가 없다. 영어 같은 경우에는 묵음자가 있기 때문에 발음법을 몰라 난감한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한글은 소리와 표기가 일치한다.㉢ 한글은 창제기록이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문자이다.대부분의 문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해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누가 창제했는지도 기록으로 남아있지도 않다. 이에 반해 한글은 세종실록에 ‘한글은 세종대왕이 손수 언문 28자를 만들었으며, 그 문자의 이름이 훈민정음이다.’) 라고 기록에 드러나 있다.㉣ 한글은 무한한 소리 표현이 가능한 문자이다.한글 8800여개 소리표현, 일본 300, 중국 400여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한글의 한 소리마디는 첫소리(초성), 가운뎃소리(중성), 끝소리(종 무슨 글자든 그대로 다 읽고 쓸 수 있는 글자임은 잘 알려져 있다.㉤ 한글은 가장 진화한, 또 정보시대에 적합한 문자이다.영국 리스대 샘슨 교수는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음성학적으로 같은 계열의 글자를 파생해 내는 한글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문자라며 ‘자질문자(資質文字·Feature system)’)라는 새 분류이름을 붙였다.또 한글은 정보화시대의 중요요소인 컴퓨터사용에 가장 적합한 문자이기도 합니다. 일자일음, 일음일자 체계인 한글은 컴퓨터 명령체계에 있어서 인식이 가장 쉬운 문자이기 때문에 명령 언어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앞서의 핸드폰 문자 자판은 '엄지족'이 생겨나게 된 기본 토양이 되기도 한 것이다.3. 언어학자들의 견해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은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다.) 여러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각 음의 음성적 특징들을 시각적으로 잘 살려서 만든 창조적인 알파벳이라고 찬양했는데, 이에 대해 각 학자들의 견해들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조금씩 살펴보도록 하겠다.○제1기(18세기말-1950년대): 한글을 다른 문자의 한 지파로 보려는 호기심시기,초기 선교사들 중심, 범자기원설, 이두기원설 등○제2기(1960년대-1970년대): 한글을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하려는 찬탄의 시기,라이샤워 페어뱅크, 맥콜리 등, 음소적이고도 음절적인 장점라이샤워 페어뱅크“한글은 아마도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모든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체계일 것이다.”맥콜리 시카고 대학 언어학 교수한글의 우수성에 감탄해 20여년 동안이나 한글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20년 안 한글날을 기념하여 “포스가 한글 가리켜 가장 좋은 알파벳이라고 최상급 형을 쓴 것은 정당화 될 수 있다. 그것은 벨의 가시 언어 기호 1867 보다 400년이나 앞선 것이다.”라고 말 하며 “한글날은 그 문자의 우수성으로 봐서 세계의 언어학계, 나아가 세계의 문화애호가가 다 같이 기념하고 경축해야 할 날.”이라고 언급했다.다른 나라 학자들에게 훈민정음 탄생을 축하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샘슨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언어 연구학으로는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매겨(합리성,과학성,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진열해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복합문자: 음소+음절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 자질을 겸함. 쿨마스 등○기타포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교수“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알파벳을 발명하였다.”레드야드 컬럼비아 대학 교수/미 역사학자“한글의 가장 특이하고 흥미로운 요소이것은 정녕 언어학적 호사의 극치이다. 이 처럼 멋과 뜻을 갖춘 합리적인 낱 소리 글자는 다시없다 (중략)....”『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이다.”라고 말하였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4. 마치며훈민정음이 이야기 되는 곳에서는 항상 그것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도 함께 이야기된다. 프랑스 언어학자인 장-폴 데스구트 파리 8대학 교수가 한글날을 맞아 부인 김진영씨와 공동으로 의 세종대왕 서문과 정인지의 해례를 프랑스어로 옮겨서 만든 책 「L’ECRITURE DU COREEN」(한글)을 파리의 아르마탕 출판사에서 펴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천문학자가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세종성'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나채운(장로회 신학대학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평가하는데 있어 훈민정음은 현재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비교할 수가 없다. 1992년 새 국제공항의 명칭을 현상공모 했을 때 총 586명의 응모자 의견 가운데서 '세종국제공항'으로 하자는 의견이 단연 1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