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느꼈다.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사실 책을 읽기는 처음이다. 이 책의 1장 처음에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대의 노동의 착취와 사용자의 횡포는 이 전에 ‘향수’라는 영화와 책으로 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이 순간 내가 왜 경영학 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쉽게 말해 어느 곳의 임금 노동자가 될 것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혼란스럽고 암울하기도 하다. 사실 나는 가난이 싫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경영학과에 왔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데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에 말씀하셨던 ‘돈’에 관한 이야기, 즉 자본에 관한 특성 등등이 생각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목적이 잘못되어서인지 공부하는 것이 재미가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대학에 온 것이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돈을 쌓기 위함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보다 훨씬 더 강한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말이 좋아 자유경쟁이지 약육강식이요, 승자만이 살아남는 철저한 시장의 원리가 적용되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사실 공산당 선언이 하나의 책 제목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몇 장 안되는 발표자료 같은 것 이여서 좀 당황스럽고 놀랐다. 공산당 선언을 보다보면 마르크스는 계급을 크게 부르주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크게 나눈다. 책을 읽기 전 내가 알았던 이러한 식의 계급은 생산력 유무에 따른 구분 인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의 본문을 보면 현대 부르주아지 자체가 긴 발전과정의 산물이며,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에서의 일련의 혁명이 낳은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보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서 부르주와 계급을 생산적 혁명이 낳은 산물로 보고 있다. 또한 부르주와의 혁명적 과정에서 당시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 폐해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지배를 확립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전원적 관계를 종식시켜 왔다. 부르주아지는 인간을 “타고난 상하관계”에 묶어 놓는 잡다한 봉건적 끈을 가차 없이 끊어버렸으며, 그 외의 모든 인간의 관계를 적나라한 이기심, 냉혹한 “현금지불관계”로만 만들어 놓았다. 또한, 가장 신성한 종교적 정열의 환희, 기사도적 열정의 환희, 세속적 감상주의의 환희를 자기중심적 타산이라는 얼음같이 차디찬 물 속에 빠뜨려버렸다. 또,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용해시켜 버렸으며, 결코 무효화될 수 없이 공인된 무수한 자유 대신 저 자유무역이라는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를 세워 놓았다. 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적나라하고 후안무치하고 노골적이고 야수 같은 착취로 대체한 것이다. 이처럼 부르주와를 착취의 계급으로 바라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거기에는 상대적 박탈감 이라는 것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는 절대적이기 보다는 항상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간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상대적 약자에 놓아 거기서 나오는 피해감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 같은 선언을 보면 우리가 착취를 당하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 같다.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부르주아라는 계급이 생기고 모든 관계는 금전적인 것들로만 맺어졌다고 본다. 물론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이니 그러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제도가 그러하고 사상이 그러하듯이 무엇이든지 처음 생겨나면 불완전하게 마련인 것이다. 잘못 되면 고치면 된다. 물론 근원 자체가 잘못 되어있다면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가 물질적 생산에 공헌한 사실만큼은 인정해야할 사실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쳐보려는 시도가 유토피안 사회주의자들로 부터도 나왔지만 그들도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산력에는 인정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실재로 자본주의는 그 후로도 계속 내부의 모순된 점들을 수정하며 나아갔다.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착취를 통하여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적인 성격을 부여해왔다. 복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이겠으나 부르주아지는 산업의 발 밑으로부터 산업이 딛고 서 있는 일국적 기반을 빼앗아냈다. 기존에 확립된 모든 일국적 산업들은 이미 파괴되었거나 나날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모든 문명민족들이 생사를 걸고 도입하려 하는 새로운 산업, 이제 더 이상 토착 원료자원을 가공하지 않고 가장 먼데서 온 원료자원을 가공하면서도 그 생산물은 국내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구석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산업이 그 낡은 산업들을 몰아내고 있다.부르주아는 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판로를 개척해 나가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세계 시장의 착취’라고 표현한다. 부르주아지의 생산방식을 다른 나라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넘어 문명의 도입을 요구하고 부르주아의 방식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었다. 실재로 미국이 현재 실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정책은 그들의 엄청난 잉여자금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아니가. 자본을 매개로한 시장질서는 이전의 재화와 용역으로 편성되는 국제 질서와는 그 파괴력이 사뭇 다르다. 돈이 돈을 벌어온다. 이익 가치가 없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마르크스는 유물론적 역사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와의 권력 집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딛고 서 있는 토대인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은 봉건사회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이 특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봉건사회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조건, 농업과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말해, 봉건적 소유관계는 이미 발전되어 있는 생산력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만큼의 질곡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은 산산이 부서져야 했으며, 실제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자유경쟁이 대신 들어섰으며, 또 자유 경쟁에 맞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뒤따랐고, 부르주아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가 뒤따랐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중앙집권화를 반대했다. 현재는 이미 국가라는 개념이 잡혀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질서를 갖고 살고 있었고 단지 동맹관계를 맺어 살아 왔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 하나의 국가적 계급 이해, 하나의 관세 구역이 된 형태를 맺어 국가를 중심으로 하나로 모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중앙집권화가 계급화를 심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중앙집권화가 될수록 부르주아들에게로 권력이 집중되고 갈수록 두 계급간의 대립과 투쟁은 심화되는 것이다.마르크스는 자본이 단지 금전적인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인 지위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들었다. 자본에서 얻어지는 권력은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사회적인 권력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적소유의 폐지를 주장했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조건으로 전제하는 소유를 우리가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한 계급(부르주아)에게 집중된 부를 이제는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교육의 중지를 요구했는데, 그러한 교육이 프롤레타리아를 계급주의적 이데올로기안에서 마치 기계처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낸 자유, 교육, 법 등의 개념은 모두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단군신화, 사실인가 허구인가 성상과 우상최창훈, 김준재목 차12345단군 신화, 사실인가 거짓인가단군신화의 의미성상과우상사례결론-단군신화, 사실인가 거짓인가- 단군신화는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무리 3,000명을 이끌고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워 나라를 다스릴 때,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생활하라고 하였으나, 호랑이는 이 시련을 참지 못하여 나가고 곰은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그 단군은 고조선을 세웠다는 내용이다.삼국유사(일연 1281),제왕운기(이승휴 1287),응제시주(권람 엮음 1462),세종실록지리지(1454),동국여지승람(조선성종),동국통감(서거정 등 1485) 신화적 내용 = 건국의 주체가 되는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에서 하강하였다. 단군이 비범한 출생 유래를 갖는다. 역사적 사실 = 단군이 왕위에 오르고 치민교화 하는 과정 부족의 이동이나 다른 부족과 연합하게 되는 것-신화와 역사의 의미- 신화 = 국가의 기원이나 신의 사적. 유사이전의 민족사 등의 신성한 이야기 myth의 번역으로 그 어원은 그리스어 mythos(미토스: 말해짐으로써 전달된 것) myth의 사전적 의미: logos(로고스: 논리적인 사고 내지 그 결과의 언어적 표현) 의 대응개념으로 거짓된 이야기. 우화. 근거 없는 통념 등으 로 해석 역사 = 인간 사회가 거쳐온 변천의 모습 또는 그 기록 history의 번역으로 그 어원은 그리스어 historia(히스토리아: 탐구, 탐구를 통해 획득한 지식)-신화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게 된 배경-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 확산되어 갈 때 신들에 대해 복잡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던 그리스 로마의 종교를 비롯한 여타 종교에 대항하기 위해 기독교 외의 종교 교리나 사상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폄하하여 '신화'라고 하였고,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편견 때문에 신화를 허구나 거짓된 이야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싹트게 되었다.-낭만주의에 의한 신화의 재평가- 신화는 진위의 문제로서가 아닌 믿음의 문제로서 종교적 진리와 결부시켜야 된다고 주장 종교학에서도 신화를 종교경험의 한 차원으로 설정-종교학과 역사학을 통한 단군신화의 해석- 종교학 = 환웅이 천부인을 받고 지상으로 강림하는 것, 곰이 금기를 통해 사람의 몸으로 변하는 것, 웅녀가 신성혼을 통해 한 나라의 시조를 낳는다는 것 등은 환웅이나 곰 등이 기존의 모습에서 거듭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전이 되는 종교 경험의 구조와 일치 역사학 = 고조선을 한국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국가로 보고 단군신화를 고조선의 건국 신 화로 다룸. 신석기시대의 곰 숭배 신앙과 연결.-단군신화에 대한 바른 접근 방법- 삼국유사 의 내용에 따르면 건국시조의 출생과정과 같은 신비로운 일들을 '신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신이'라는 말은 불가사의한 것, 괴이쩍은 것, 수상한 것, 위태로운 것으로 인간의 행위가 아닌 것을 이르는 말로 신화라는 말보다 더욱 그 개념의 층위가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에 관한 기록은 폄하적 가치를 지닌 '신화'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과 그와 관련된 '신이사'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결국 사실이냐, 허구냐 라는 양자택일 식의 극단적인 태도는 역사성과 상징성이 복합되어 있는 단군신화에 대한 올바른 접근 태도는 아닐 것이다.-단군신화에서 대종교로- 대종교 창립 배경 = 단군사상을 중심으로 일제 침략에 대항하기 위함 1909년 단군교 창립 (나철) 1910년 대종교로 개칭 단군신화의 대부분을 교리로 삼음-단군신화에서 대종교로- 대종교 창립 배경 = 단군사상을 중심으로 일제 침략에 대항하기 위함 1909년 단군교 창립 (나철) 1910년 대종교로 개칭 단군신화의 대부분을 교리로 삼음-단군신화의 의미- 단군신화는 구전 전승되던 것이 고려시대에 와서 문자로 정착된 것이기 때문에 후대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군신화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견해는 옳지 못하며 문자 그대로 모두 사실로 여기는 견해 또한 옳지 못합니다. 단군신화가 사실이냐 허구냐에 골몰하는 태도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배달민족의 자부심으로 새 역사를 건설에 왔다는 현실에서 단군신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국내에 세워진 단군상은 약 360여개. 그러나 그 중 온전한 단군상은 몇이나 될까? 단군할아버지가 민족정기의 '화신'에서 졸지에 '우상'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울릉도 봉래폭포 관광지구에 있는 단군상의 목이 절단되었다. 울릉도 단군상은 이미 지난 99년 11월 24일 코가 잘려 나가고, 목이 3/4정도 절단되었던 적이 있다. 지난 4월 3일 오전 경기도 파주에 있는 10개 교에 건립되었던 단군상 10기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0기 모두 가는 줄톱으로 코가 잘린 채 발견되어, 학교에서 교육청과 경찰청에 신고하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경기도, 서울, 경북, 경남, 광주 등의 초·중·고교와 관광지에 세워진 수많은 단군상이 훼손되었다.단군상 파손의 실태단군상 파손의 실태단군상 파손의 실태우상금속, 돌, 나무 등으로 만들어 인간이 숭배하는 상성상그리스도교에서 성모 마리아 등의 성인이나 예수를 묘사한 조각개념1. 우상숭배 : 물질적인 것이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믿거나 추앙하는 일 ex) 나무나 돌, 뼈로 만든 그림이나 조각상(동물상, 인간상, 의복상, 기타 등등) 2. 성상숭배 : 말 그대로 성상(聖像), 즉 성스러운 상을 숭배하는 것으로서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 드리고 성상에 입맞추고 하는 행동 등을 말한다.성상주의적 태도 : 종교는 나름의 성상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떠한 형태로든 보이는 이미지로 그들의 종교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발견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성스러운 대상을 형상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였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상화가 종교에서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 많은 경우 제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일반 신자는 신이한 힘을 지닌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즉, '성스러운'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대상을 형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성스럽게 여기는 태도를 성상주의적 태도라고 이름할 수 있습니다.반성상주의적 태도 : 예를 들어 예수가 보이지 않는 십자가만 생각해봅시다. 같은 기독교면서도 가톨릭이나 정교회와는 달리 개신교의 교회에는 예수의 상이나 그림이 보이지 않습니다.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교회에 들어갈 때 상을 향해 성로를 긋거나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나아가 가톨릭의 성상주의적 태도를 '우상숭배'라는 극한적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상화를 배격하는 태도를 '성상주의적 태도'와 대비하여 '반성상주의적 태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반성상주의적 태도'는 신은 인간이나 동물 등의 형상으로 표현될 수 없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사례-나주 성모 동산 사례-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의 반성상주의적 태도- 유교 : 유교의 신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도 제사 때에 '신주'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신주는 신을 형상화한 것이 아닙니다. 신이 깃드는 곳, 의빙처 입니다. 신유학적 논리로 유교의 제사를 설명하면 자연에 흩어져 있거나 흩어져가는 기를 불러서 이 신주에 모셔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 모스크 : 넓고 밝은 텅 빈 공간,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으며, 내가 엎드려야 할 제단도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신의 형상은 더 더욱 찾을 수 없습니다.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참고 문헌종교다시읽기 네이버 블로그 www.imbc.com{nameOfApplication=Show}
제2차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 평가와 전망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상봉하고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하 ‘10.4 공동선언’으로 약칭)을 발표하였다. 2000년 6월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후 실로 7년여 만에 이루어진 정상회담이었고 공동선언이었다.10월 2일 노무현대통령이 군사분계선(MDL)를 걸어서 건너는 역사적인 장면을 보면서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국민의 기대가 크게 높아졌으나, 김정일위원장이 평양에서 노대통령을 영접하면서 매우 차분하고, 어찌 보면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된 모습을 보여 많은 TV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번 회담이 결코 쉬운 회담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갖게 했었다. 더구나 노무현대통령이 10월 3일 오전 정상회담을 한 후 옥류관에서 남측 인사들에게 베푼 오찬장에서 오전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남북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함으로써 회담의 결과에 대해 또 우려를 자아내었다. 그러나 남북정상은 이러한 모든 우려를 씻어내고 역사적인 10.4공동선언에 합의하였다.이러한 성공적인 합의는 남북 지도자들이 성실하고 차분한 자세로 7년여 동안 누적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앞으로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한 덕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대통령도 여러 가지로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정일위원장도 필요한 때마다 북측 관계자들과 협의를 하면서 결정을 내리고, 또 많은 서류를 가지고 회담에 임함으로써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고 한다.그렇다면 이번 10.4공동선언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이번 공동선언은 2000년 6월에 뒤이어 다시 한번 우리 민족과 전 세계에 대해 남북한이 상호 협력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주도권을 갖고 해결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점에서 이번 공동선언이 “6.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가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둘째, 이번 공동선언은 추상적이지만 중요 기본 원칙들과 구체적인 실천사업들이 배합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인도주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포괄적인 합의를 이루어 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남북 간에 상호 윈윈(win-win)하는 성과를 내었다.셋째,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민족과 국제사회가 동시에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적 의지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나, 이번에 서해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문제와 남북경협을 확대하고 심화하는 문제, 즉 안보와 경제를 상호 연계시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키로 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내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오는 제약 속에서도 남북한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넷째, 한반도에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기 위해 3자 내지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우리민족이 서로 힘을 합쳐 국제사회로 나아가 평화체제를 구축하되 ‘현상유지적’인 위험이 있는 평화체제가 아닌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깊은 뜻이 들어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다섯째, 남북은 경협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차관급’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의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시키고, 10.4공동선언의 전반적인 이행을 위해 남북총리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경협부문에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복원하는 노력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의 모든 분야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복원하려는 앞으로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여섯째, 이번 10.4공동선언은 북한의 ‘21세기 생존과 번영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남북 간에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경협을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고 동시에 남한과 여러분야에서 적극 협력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자신의 정책방향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구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실리추구 정책과 국제사회로 나아가는 노력을 한민족공동체 건설과 한반도 평화정착에로 유도해내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목 차Ⅰ. 서 론1. 개 요2. 한국 영화 산업과 스크린 쿼터(1) 스크린쿼터의 정의(2) 한국의 스크린쿼터 및 기타 문화 보호 정책(3) 스크린쿼터가 한국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Ⅱ. 본 론1. 스크린쿼터 축소를 둘러싼 6가지 논란과 쟁점2. 우리나라 현황1) 90년대 이전의 한국영화의 현황2) 연간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3) 한국영화의 평균상영일3. 스크린쿼터의 존속 이론의 타당성(1) 문화적 예외로서의 인정(2)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고 있는 할리우드(3) 영화산업의 특수성(4) 제작-배급-상영으로 이루어진 영화산업 메커니즘(5) 스크린쿼터 대체정책의 비효율성(6) 미국 BIT협정의 문제점(7) 스크린쿼터 폐지 시 영향 및 결과(9) 스크린쿼터 축소 시 영향 및 결과(10) 영화산업의 경제적 가치3. 외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영국 실패사례 -- 멕시코 실패사례 -Ⅲ. 결 론Ⅰ. 서 론1. 개 요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가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 대상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상이다. 또한 '실미도' , '태극기를 휘날리며‘, ’왕의 남자‘ 등의 영화는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 1천만 명의 관객이란, 우리나라 전체 인구를 약 4천만이라 할 때 4명 중 한 명은 이 영화를 봤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영화가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산업의 중흥이 스크린쿼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만 일까? 물론 우리나라는 강력한 헐리우드의 영향 아래에서 자국 영화점유율이 40%를 넘는 유일한 나라이고, 스크린 쿼터를 유지하여 미국의 약육강식 논리에 저항하는 몇 안 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제도적으로 국내의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 좋은 제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축소론 자들이 이야기하는 '스크린쿼터는 구시대의 유물이며,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겨야 한다. 스크린쿼터를 포기하고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여, 투자협정을 맺는 것이 우선이다.' 라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34.5%로 감소하거나, 총 40일이 줄어든 106일, 즉 29.0%로 감소할 수 있게 된다.한국 세관 법에 따르면 영화필름에는 미터 당 210원의 관세가 부과된다. 한국에서는 보통 2500미터 이상이어야 장편영화로 간주되므로 총 관세는 525.000원 또는 미화로 약 400불 정도인 셈이다.) 따라서 관세규제는 실질적인 통상장벽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한국은 영화감독들에게 얼마간의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불충분한 상태이다. 극장입장료 중 6.5%가 문예 진흥 기금으로 쓰이고 있으며 1997년 자료에 의하면 이 금액은 약 150억원(1150만 불)에 달한다. 그런데, 이 기금 중 1997년 한국영화산업 지원에 투자된 돈은 100억원(770만 불)으로, 이 액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푼돈에 불과하다.(3) 스크린쿼터가 한국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1980년도 이후 우리영화의 비중은 1982년 51.3%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1993년까지 지속적인 하락을 보였다. 특히 1987년 외국영화의 직배가 허용된 이후 이러한 하락세는 더욱 두드러져 1993년에는 우리영화의 점유율이 15.9%까지 하락하였다.) 1994년 이후 영상산업에 대한 국내 기업의 다양한 접근, 영상산업에의 우수 인재 유입, 그리고 스크린쿼터 감시단의 활동으로 우리영화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2002년 한국영화는 사상 최고인 관객 점유율 48.2%를 기록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산업의 발달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한국영화 수출현황)구 분1998년1999년2000년2001년2002년수 출 편 수33편75편38편102편121편수 출 가 격$3,073,750$5,969,219$7,053,745$11,249,593$15,014,181편당평균가격$93,144$79,590$185,625$110,290$124,084또한 국산영화의 수출이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등의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어 어려운170일? 한국영화의 평균상영일 170일(2004년 기준)로 이미 실효적 상영일(106일)을훨씬 넘는 수준이다.※ 현행 우리나라의 실효적 쿼터일수는 감경일수를 제외한 106일임.2. 스크린쿼터의 존속 이론의 타당성(1) 문화적 예외로서의 인정스크린 쿼터 제는 국내 뿐 만 아니라 국제 규약에서도 명시되어 있는 정당한 제도이다. GATT규정 제 4조 영화에 관한 특별 규정에서 GATT 규정 제 3조의 내국민대우에 대한 예외로서 명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스크린쿼터의 설정, 유지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OECD자유화 규약은 영화에 관하여 1년 이상의 특정 기간 중 국내생산 영화의 최소상영시간을 규제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국내의 영화진흥법 제 28조는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연간 대통령이 정하는 일수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영화진흥법 시행령 13조는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2이상으로 규정해 놓았다.1995년, 영화진흥법의 ‘스크린 쿼터’ 조항에 관련된 헌법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기각했다.) 판결에 따르면 스크린 쿼터는 ‘한국영화가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제작과 상영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이 재판은 이 조항이 극장업자들의 직업적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스크린 쿼터의 방식과 의도에 비추어보아 이것이 정당하게 시행될 만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스크린 쿼터 조항이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성 존중에 관한 헌법 제119조가 옹호하는 ‘경제 질서’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2)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고 있는 할리우드시장의 규모가 크고 큰 경쟁력을 가진 할리우드와 국내 영화 산업의 경쟁은 부당하다.산업 내 무역의 경우, 산업간 무역과는 달리 그 산업을 유지하는 국가의 시장규모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장규모가 크고, 더 큰 경쟁력(규모의 경제)을 지니는 헐리우드 영화는 한국영화가 나름의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시장에 진출하더라전문화되어야 할 제도이다.(5) 스크린쿼터 대체정책의 비효율성스크린 쿼터 대체 정책은 배급라인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그 효과를 발휘하기가 힘들다. 스크린쿼터의 폐지와 유지정책간의 절충안으로 축소안이 대두되면서 그 보조적인 정책으로 영화제작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배급라인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영화의 진흥에 기여하지 못하며 한국영화전용관의 설립도 현재와 같은 우리영화의 상영일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국에 200개 극장을 설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또한 설립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관객을 유인할 수 있을지 의문으로 그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6) 미국 BIT협정의 문제점미국과의 BIT협정을 맺기 위해 스크린 쿼터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한가지 점검할 것은 과연 한미투자협정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본질적 문제이다.BIT의 미국측 표준문안 제 6조에서는 체약국들이 협정 적용대상 투자의 조건으로서 일정수준 또는 비율이상의 국내부품 사용, 국내산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 사용 또는 선호를 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BIT를 체결한 41개국(1998년 1월 기준)중 자국의 영화산업이 산업적인 의미를 갖고 있던 나라는 없었다.또한 한미투자 협정 체결로 40억불외자유치효과를 내세우는 재경부의 주장은 그 계산 근거를 밝힐 수 없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또한 협상 자체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을 들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간 투자협정은 본디 아시아, 아프리카의 최빈국이나 동구권 국가를 대상으로 한 미국 투자자들의 투자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체결해 온 것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투자자 곧 가진 자를 보호하기 위한 협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가진 자와 가진 국가에 터무니없이 유리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투자협정 역시 여기에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 미국의 투자자 개인이나 기업은 한국 국가와 맞먹는 권리를 가지되, 한국 국가는 이들에게 그 어떤 명시적인 의무도 부과할 수가 없다. 나아가 투자와 투기와 명백히 구분되지 않고 있기 때상영하는 것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그쪽을 향하게 된다. 따라서 아주 흥행성이 뛰어난 한국영화를 상영하고 직배사의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는 경우 단기간에는 극장주의 이윤이 증가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직배사의 배급거부로 극장주의 이윤은 급격히 감소할 것이고 결국 흥행성이 뛰어난 우리영화의 지속적인 공급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하에서 대부분의 극장주들은 우리영화에 등을 돌리고 직배사의 시장장악력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이렇게 우리 영화산업이 붕괴하면 영화의 제작뿐만 아니라 배급과 상영 모든 과정에서 미국 메이저 영화의 직배사들은 거의 독점적인 협상력을 차지하게 된다. 매년 10편 미만으로 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영화의 배급 및 상영도 직배사의 영향력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되며 배급라인을 장악당한 상태에서 극장주들도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영조건을 감수할 수 밖에 없게 된다.(9) 스크린쿼터 축소 시 영향 및 결과스크린쿼터제 논란 속에서 절충안으로 나온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도 폐지론과 비슷하게 악순환을 밟을 수 있다.스크린쿼터의 축소는 영화계의 제작의욕을 위축시켜 제작편수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지속적인 우리영화의 붕괴를 촉발시킬 것이다. 일단 제작편수가 감소되면 우리영화 공급의 부족으로 추가적인 스크린쿼터 단축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의무상영일수 단축 -> 제작편수 감소 -> 의무상영일수 단축 추가요구 -> 의무상영일수 추가 단축 -> 제작편수 추가 감소 -> 반복 -> 우리영화의 붕괴위기” 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더라도 한국영화산업은 단지 붕괴되는 시간이 지연될 뿐 폐지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10) 영화산업의 경제적 가치영화산업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치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영화산업은 영상산업의 교두보로서 연간 14.6%의 성장률을 보여 평균 경제성장률 6.1%의 3.5배를 보여주고 있다. 18조 5천억이라는 영상문화산업의 총규모를 생각할 때, 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자국에 맞는 문화정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