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 정신과 그 현대적 의의-1. 禮禮 혹은 儀式(rites)의 관념은 儀禮의 規約이 중심이 된다. 의례 규약은 본질적으로 집행 예절이나 양식에 속하는 일단의 올바른 행위 규칙들이다. 그것은 원래 국가 이전의 공동사회와 부족들이 지닌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의식과 관습이었다. 유가 윤리학에 있어서, 禮는 윤리적 책임의 규칙들을 제시한다. 올바른 행동에 대한 일단의 형식적 처방들로서, 그것들은 삼중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한계를 정하는 것, 지지하는 것, 품위를 부여하는 것이 그것들이다. 한계를 정하는 기능은 禮가 허용 가능한 행동과 허용 불가한 행동에 대해 규제를 가하고 규정짓는다는 점에서 제일차적인 기능이다. 그것들은 사람들간의 갈등을 방지하는 데 기여한다. {論語}에는 "禮에 의해 일어난 것들 중, 調和가 가장 귀중한 것이다(有子曰禮之用, 和爲貴)" {論語}(學而)라고 적혀있다. 禮는 개인의 욕구, 욕망, 이익의 추구의 경계선을 그려주며, 통일과 조화를 도모하기 위한 질서정연한 형태의 절차적 규칙들을 제시한다. 이 질서정연함은 다양한 종류의 인간 관계들(倫), 즉 통치자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연장자와 연소자, 남편과 부인, 친구 사이에 있어서 구분, 혹은 사회적 구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禮는 행동의 적격성 혹은 허용 가능성의 조건들을 명문화하는 소극적인 도덕적 규칙들로 기능하는 것이다.禮는 또한 행동의 규정된 한계 내에서 욕망이나 이익의 충족 조건이나 기회에 대해 지침을 제공하려는 지지적 기능을 갖는다. 그것들은 욕망이나 욕구의 충족을 위한 사회적으로 용인된 통로나 출구를 제공한다.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자기-추구적 활동들의 노선의 방향을 그 동기 욕망에 대한 구속 없이, 재조정함으로써 우리의 욕망들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규칙들을 담고 있다.禮의 품위 부여적 기능은 '교양의 세련화'이다. 그것은 정서의 교육과 함양 혹은, 仁과 義의 정신에 일치하도록 정서를 변형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孔子가 음악과 예술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와 같이, '어떠한 기준'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바른 행동 규칙들은 孔子시대의 西周의 퇴락 이래로 그 구속력들을 상실했다. 그래서 孔子는 인간이 극기하려면 오로지 가능한 것인 '禮로의 복귀'(復禮)를 옹호했다. 군자가 자신의 입장을 취함에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서, 孔子는 "禮에서 너의 입장을 취하라"({論語}) 그리고 "만일 네가 禮를 배우지 않으면, 너는 너의 입장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論語}).그러나 자기-규정의 과정에 대해서 그 어떤 간단한, 간결한 공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준거해야 할 객관적 규범이 있어야 함은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孔子는 단지 본능이나 충동에 대해 확고히 반대한다. 외적인 규범이나 방도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孔子는 한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나는 허용 가능함과 허용 불가함에 관한 그 어떤 선입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論語}(理仁))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긴박한 상황에서 그러한 판단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2. 禮의 原理禮는 유교문화의 전통에서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하는 사회적 질서의 규범과 행동의 표준적 절차를 제공하며 동시에 유교적 제사의례의 구성과 절차를 의미한다. 예의 어원적 의미는 제사의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說文解字에서 예는 示와 豊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示는 신적 존재요, 豊은 제기인 豆에다 제물을 담아 신에게 봉헌하는 제사의례를 의미하는데 실제로 豊자는 禮의 옛 글자이기도 하다. 유교의 근원적인 예는 바로 종교의 가장 일반적 실천행위로 祭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예는 그 근원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근본개념으로 이해되면서 그 실제의 적용은 다른 어떤 개념보다 더욱 구체적인 현실에 관여한다. 朱熹는 禮를 하늘이치의 절도 있는 문채요 인간사무의 본이 되는 행동규범으로 정의하였다. 실제로 예는 인간 삶의 중대한 일에서부터 이웃과의 일상적 교제에 이르기까지서 의리의 이념적 가치와 예설의 실천 형식적 방법이 결합하는 데서 성립한다. 따라서 예는 보편적인 가치의 도덕성을 지니면서 구체적 현실의 변화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므로 각 시대와 사회에 통용하는 변화가능성을 지닌 구체적 의례와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인 가치로 적용되는 예의 원리가 구분되어 이해될 수 있다.예에 대하여 孔子는 仁의 실천방법으로서 자신을 극복하고 예법을 회복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여기서 예는 인간의 도덕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요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공자가 아들 伯魚에게 "예법을 배우지 않으면 설수가 없다"라 하면서 인격적인 실천의 자율적 독립성을 예에서 확인하고 있다. 孟子는 예를 인간성품의 도덕적 기본요소들의 하나로 파악하여 '사양하는 마음'이라는 선한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지적한다. 이에 비하여 荀子는 先秦時代 禮論을 집대성한 사상가로서 인간사회에서 각각의 분수를 한정짓는 기준으로서 객관적 규범으로 파악하고 인간성품의 악함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예가 갖는 의미를 좁게는 儀文形式, 넓게는 모든 典章制度라고 볼 때 순자사상은 넓은 의미의 예로서 그 기초를 삼고 있으며 여기에 성악설을 합쳐서 一家의 학설을 크게 발전시켰다.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문화와 생산을 발전시키는 데는 하나의 제도가 필요하며 제도는 일정한 격식을 요구한다. 이것이 곧 하나의 사회적 형식이며 순자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禮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사회의 모든 질서를 통제해 나가자면 모든 것이 규범에 적합한 가 아닌가하는 판별의 기준이 먼저 확립되어야 하는데 荀子에게 있어서 이기준의 척도가 바로 禮였다. 그러면 순자가 본 禮의 질서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賢愚· 貴賤·老少·貧富의 등차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등차의 기준이 가장 적절하고 세밀하게 규정된 것이 바로 禮였으며 어디까지나 先王의 禮 제정에 따라 사회적 혼란의 방지에 목적을 두었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상고대의 사회에서부터 예를 좋아하고 발달하였던 사실에서 근원을 찾아 볼 도 했지만 나아가 1910년 국권상실과 서양문물의 보급이 확산됨에 따라 국가의례의 급격한 붕괴가 일어나고 이와 더불어 가정의례도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광복 이후 관습화한 전통의례의 허례의식에 따른 폐단을 개혁하기 위하여 1969년 정부에서 을 제정하면서 생활 속의 가정의례는 유교문화 전통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폭넓은 변화를 일으켜 현대사회에 맞는 규범이 정립되지 못한 체 無禮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통 문화적 가치로서의 예를 현대의 우리사회 속에 보다 더 적합하게 계승하기 위한 방법을 탐색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로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3. 우리사회의 귀속적 규범문화와 禮한자문화권에서는 인간의 의미를 인간의 문자가 갖고 있는 관계성에서 찾게 되는데 인간이라는 낱말이 바로 사람(人)과 사람(人)의 사이(間)에 존재하는 참여적 관계성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매우 중요시되고 있는 人倫이란 것은 사람을 관계성의 종류에 따라 부자, 군신, 부부 등의 무리(倫)로 구분하고 그것에 따라 역할을 부여한 것이며, 최고의 가치로 말해지는 仁이란 두 사람(人+二)의 관계에서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는 본질적인 당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당위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잘못은 바로 가장 큰 죄악인 패륜, 불륜이 된다.이처럼 우리는 전통적으로 '사람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사람은 무엇을 실현해야 하는 가'까지 사람이 갖고 있는 관계성만을 중심으로 파악하여서 충·효·예의 원리에서 나타난 개체성의 실현목적이 우선이라는 의미를 간과하여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에만 집착하게 된 것이다.우리가 인간의 의미를 관계성에서 찾게 된 것은 개체들의 의미가 항상 집단과 전체와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 개체가 갖는 사람으로서의 구체적인 의미는 개체가 특정한 부분집단들에 대해서 갖는 불가피한 관계성 즉 父子, 君臣, 夫婦 등으로 표현되는 인륜 구조 때문이다.사람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관계성 속에 있기 때문에 나(我)라는 것의 의미 또한 당연히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 서 나의 행동은 내가 하고 싶은 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에서 발달한 순수한 형태의 독신자, 즉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돈을 쓰면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우리는 동일시 관계를 통해서 자유롭게 나를 우리로 확장하거나, 우리를 나로 축소할 수 있다. 동일시를 통한 나의 확장과 축소는 정의적 관계에 바탕하고 있는 일차집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이차집단에까지 확대된다. 사장과 사원의 관계는 가정에 있어서의 父子 관계와 유사하고 관청의 장과 아랫사람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이러한 환경에서 형성된 심리학자들의 일반적인 부정적 한국인관을 보면 담즙질적 성격, 우울적 성격의 혼합이어서 화를 잘 내고 불쾌하기 잘하면서도 현실적이라는 측면과 낙천, 성급, 강박성, 공격성, 억압, 가학, 피가학 성향 등이다.특히 윤태림은 유교문화와 한국인의 심성과의 연계성에 언급하여 유교가 미친 부정적 영향을 여러 가지로 들고 있다. 즉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을 가족주의, 감투 지향의식, 상하서열의식, 친소구분의식, 공동체 지향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집단주의로 말미암아 개인의 자립이 실현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公과 私를 혼동하고 이성과 감성을 혼동하며 개인의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이와 같은 한국인의 귀속의식과 부정적 측면의 심리적 성격은 도덕사회형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즉 불신의 근저에 부정심리가 있다고 볼 때 이는 원칙보다는 변칙을, 정직보다는 거짓을, 노력보다는 요령을 앞세워 공동생활의 질서를 깨뜨리면서 공익보다는 개인의 편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마음가짐이 되어 도덕적인 공동체사회 유지가 어렵게 된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귀속은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존재한다.오늘날 한국인이 갖고 있는 귀속의식은 대부분 조선시대로부터 연유되고 있다. 물론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혈연, 지연 등에 바탕 약하다.
1. 통합논술이란요즈음 통합논술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오르고 있다. 통합논술이 부상하게 된 이유는 시대적 변화 때문이다. 대학이 존재하려면 사회적 여건이 도와 주어야 하고 그러한 사회적 여건중에는 대학의 취업율이나 벤처기업등의 사업가로 성공하는 기업성공율 등으로 구분된다. 통합논술은 시대의 변화에 따를 창조적인 인재를 선발하기 위함이다. 순수 학문만을 연구하고 학문만으로 대학의 명분을 찾기에 시대적 변화가 급변하고 있다. 기업이 요구하는 학생은 학구적인 학생만이 아니라 문제에 도전하고 창조하는 학생이다.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해결능력이 없으면 급변하는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을 창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나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디지털시대에서 유비쿼터스시대로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인재로 육성하려면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의 암기나 주입능력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이다.통합논술이 중요한 이유는 그림과 같이 21세기 교육환경이 퓨전교육환경으로 바뀌었고 퓨젼교육환경은 미래의 유비쿼터스교육환경의 기본 교육조건이며 이러한 교육환경에 적합한 조건이 통합적 사고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사람이란, 당면한 과제, 문제, 사건에대한 해결능력을 스스로 판단하여 대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하고 혁신하는 도전적인 사람이다. 초일류국가나 초일류기업은 이러한 창조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창조적인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대학이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창조적인 사람의 사고력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통합논술이다.하나의 논제를 자신의 지식과 정보, 경험으로 관찰하고 판단하여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논제를 풀어가는 논거능력과 논증능력 이러한 논거와 논증을 바탕으로 논쟁하는 능력을 가진 학생(창의적인 학생)의 선발이 통합논술의 방향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문제점은 과학이나 수학, 의학이나 공학 등의 하나의 분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로 이끌어가는 통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고 있다. IT산업을 발달시키려면 BT, NT, CT 등의 다른 분야에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IT만을 연구개발하면 이미 경쟁력에서 밀려나는 세상이다.2. 현재 통합논술의 문제점통합논술은 독창성과 창의성 등 기존의 학교에서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것을 요구한다. 때문에 현재의 논술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통합교육과 그에 따른 통합논술을 시행하려면 그와 함께 학생들이 통합적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정책과 시설이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논술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교육 시설은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독창성과 창의성을 키워주고 있을까?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논술 지도사가 논술이론과 논술에 대한 철학을 갖추고 있어서 논술을 숙달된 조교처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논술 지도사들은 논술이론을 겨우 알고 있고 논술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서 논술을 잘 하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철학자들 중에는 철학 연구가는 있지만, 철학적으로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사실 칸트의 연구가로 칸트의 사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와 같은 범주의 문제이다.이는 철학교수들이 철학 지식이 머리에 있으나 그 지식을 나름대로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짚은 것이라고 보는데 다음의 예문은 논술 지도사들이 철학교수들과 비슷하게 논술지식은 알고 있으나 그 지식을 논술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사실 워낙 글쓰기에 자신이 없던 터라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대학 작문교재, 논술 길잡이, 문장론, 보고서 작성법 등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았으나 결과는 불만스러웠다. 내용이 지루하고 알아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목차만 보아도 질렸기 때문이다.”위에서 보이는 “내용이 지루하고 알아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목차만 보아도 질렸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논술 지도사들이 논술이론을 알고 있으나 그 지식을 논술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실마리라고 보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실마리가 현실에서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계속해서 예문을 보면,“저는 논술학원을 5개월 다니다가 끊었는데, 솔직히 논술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처음 한두 달은 맞춤법, 비문 수정, 글쓰는 요령 등을 가르쳐주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글 첨삭 반복이거든요. 논술은 결국 자기 생각이 중요한데 그런 것은 학원에서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애들이 학원 찾게 하지 말고, 학교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한다든지 해서 글쓰는 요령이나 논술 틀만 어느 정도 잡아주면 좋겠어요.”“ 전 3개월 정도 하다 그만뒀는데. 어떻게 보면 글은 개개인의 생각을 얼마나 글에 잘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잖아요. 근데 학원이나 학교나 학생들의 생각을 길러주지 않고 '주제에 대한 찬반 쓰기 요령' 같은 걸 가르쳐주는 건 우스운 것 같아요. 지금도 솔직히 고3들 몇 주 동안 논술 특강하는 식으로 준비하잖아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위에서 “논술은 결국 자기 생각이 중요한데 그런 것은 학원에서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라는 말과 “어떻게 보면 글은 개개인의 생각을 얼마나 글에 잘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잖아요. 근데 학원이나 학교나 학생들의 생각을 길러주지 않고 '주제에 대한 찬반 쓰기 요령' 같은 걸 가르쳐주는 건 우스운 것 같아요.”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두 학생이 말하고 있는 것은 논술 지도사들이 논술이론만을 알고 있고 논술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서 논술을 잘 하지를 못하고 있는 현실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논술지도사들이 논술이론은 알고 있는데 왜 논술이론대로 논술을 잘 하지를 못하는 것일까?논증과 설명은 철학을 배운 사람이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다. 위의 “논증과 설명은 철학을 배운 사람이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아주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라는 말에서 ‘철학을 배운’을 ‘논술에 대한 철학을 갖춘’으로 하면 윗말을 “논증과 설명은 논술에 대한 철학을 갖춘 사람이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아주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라고 할 수 있고말을 이렇게 하면 이 말은 글쓴이 앞에서 하는 말인 “논술 지도사는 논술이론과 논술에 대한 철학을 갖추고 있어서 글짓기를 숙달된 조교처럼 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말과 매우 가깝다고 본다. 또한 논술의 사전적 의미는 논리나 근거를 통하여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내세우기 위해 쓰는 글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객관성이 뒤따라야 하는데, 결국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글쓰기가 논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상문이나 수필과 같이 주관적인 글쓰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에서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글쓰기가 논술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논술을 하기 위한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건은 바로 논술지도사들이 주관적인 생각이 있어야 하고 이어서 이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으로 진술할 수가 있어야 하는 두 가지 조건이라고 보는데 이 두 가지 조건에 논술 지도사들이 문제가 있기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문제점들이 생긴 것이다.3. 대책과 앞으로의 방향미래 10년 15년 후에 급변하는 세계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총체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총체적인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독창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국 학교가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 과목별로 교육하던 시대에서 모든 과목이 통합적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교사도 없고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르는 교사나, 학부모 모두가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만 할 단계는 아니다. 이미 우리는 통합교육이나 통합개념의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이러한 통합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해오고 있었다. 다만, 통합이라는 개념이 낯설고 개념을 확립하는 과정이 너무 빠르다는 점 때문에 당황하고 있다. 돌계단을 하나씩 오르듯이 지금까지 교육해 오던 것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와 나만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서로 다른 학과의 교사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방법부터 하나씩 정립해 간다면 오히려 지금까지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이었던 교육방식이라면 효율적인 교육방법으로 학습하는 학생이나 교육하는 교사나 모두가 편해 질 수도 있다.
지도자론- 빈 클린턴, 등소평, 넬슨 만델라를 통해서‘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라는 말은 지도자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해주는 말인 것 같다. 지금 지구상에는 언어와 생김새, 문화, 생활양식 등 서로 다른 수많은 나라가 존재한다. 그 많은 나라가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가다보니 경쟁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집단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다음 세 명의 인물은 나라라는 커다란 집단을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훌륭하게 이끌었다는 평을 받은 역대의 대통령들이다.우선 미국의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있다. 그는 hope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흑인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클린턴은 흑인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익숙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중요한 가르침을 받게 되는데, 할아버지로부터는 남에게 항상 친절하라고 하셨고, 어머니로부터는 대화와 토론하는 습관을 배웠다. 이는 나중에 클린턴이 성장하면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새 아버지를 만나 좀더 낳은 곳으로 이사했지만, 새 아버지는 술에 취해 어머니를 폭행하곤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공부하였고, 케네디와의 만남을 통해 정치가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조지타운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다시 예일 대학 법학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그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을 경험한다. 바로 아내가 될 힐러리와의 만남이었다. 그들은 정신적인 교감이 특별했고, 서로에서 플러스알파가 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냈다. 내가 볼 때 그는 전형적인 인생 성공기의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 힘든 삶을 탈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결국은 자기 꿈을 이뤄내고야 마는 케이스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의 능력을 발현되었다. 그의 능력은 그의 삶 자체였다. 어린시절부터 키워온 대화 즉 외교능력, 학창시절 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그가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서인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시 했던 경제적 능력이 있다. 그의 선거 연설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문제는 경제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당시 미국이 가야할 길을 확실하게 지적하는 말이었고 이에 모두 공감한 미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당당하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경제부문의 정책을 보면 IT산업의 활성화와 금융시작의 개혁 그리고 루빈, 그린스펀 등 적절한 전문가 등용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정 수준만의 개입을 하면서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것이다. 내가 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대통령일 때 야당이 집권하게 되는데,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그들 속에 파고들어가 융합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기회주의니 중도주의적이라고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이것은 한 지도자의 천재적인 능력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클린턴에게도 많은 결점이 있었다. 그는 어린시절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유난히 많은 성 스캔들에 시달렸다. 특히 루윈스키와의 불륜 사건은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위험하게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한 그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였다. 그의 인기는 떨어지기는커녕 계속 유지되었다. 공과 사를 엄격히 분리하는 미국인들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사생활이 어떨지언정 공식적인 임무 즉 미국을 부유한 강대국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다음으로 중국의 지도자중 하나인 등소평이 있다. 등소평의 일생을 보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찍어도 될 정도로 전기적 경험을 많이 하였다. 나는 특히 정치계에서 사인방과의 대립은 정말 흥미로웠다. 그는 1904년 8월 24일 등소평은 사천성 광안현 협흥향 패방촌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등선성이다. 당시 운명이 다한 청나라 정부는 부패 무능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졌으며, 서양 열강들은 중국 침략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11년 손문이 이끄는 신해혁명이 발발했을 때 등소평은 불과 7세의 어린이로 서당 학교 다닐 때 이름은 등희현이었다. 등소평은 경제개혁에서 거대한 성취를 이룩하였지만 그에 비해 정치개혁에서는 오히려 손실이 더 많았다. 등소평은 대외개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지만 서방의 정치제도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등소평은 "4개의 기본원칙"을 고수하면서 정치와 사회적 안정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념적으로는 극히 보수적인 노선을 걸었다. 이로 인하여 중국의 경제개혁은 거대한 성과를 거두면서도 앞으로 갈수록 더욱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79년 북경 서단 민주사건의 진압, 87년, 89년 자신이 선정한 후계자 호요방과 조자양 축출, 6.4 천안문 민주운동 진압 등은 등소평 일생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등소평은 아주 개성적인 인물이다. 그에게는 전기적인 경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있다. 그에게는 위인의 기백이 있으면서도 감히 사실을 바로 볼 수 없는 기록도 있다. 그에게는 선량한 면이 있는 동시에 인정사정없는 면도 있다. 아래에 소개한 등소평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등소평의 개성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93년 9월 하순 등소평의 막내딸 등용은 홍콩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매일 황주를 한잔씩 마셨다고 털어놓았다. 음주는 등소평의 몇 안 되는 취미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그가 문혁 중에 강서성의 트랙터공장으로 추방되어 노동개조에 종사하였을 때 그의 부인 탁림은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술을 장만해 주려고 애썼다고 한다."사인방"이 분쇄된 후에 등소평은 비록 북경에 있었지만 처음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는 복권된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마오타이주를 꺼내 단숨에 27잔이나 마셨다고 한다. 중국의 운명과 역사를 바꾼 이 철인 같은 사나이는 당시에 통쾌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고 한다. "이 세상 최대의 내란을 단숨에 다 마셔 버리겠다!"여기에서 등소평은 "사인방"을 극도로 증오하였지만 그가 진정으로 중국의 실권을 장악한 후에 "문혁"과 "사인방"을 부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최소한 모택동의 존엄성을 방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등소평은 흰 고양이 검은고양이 이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등소평의 주장에는 "묘론(猫論)"과 "모론(摸論)"이 있는데, "묘론"이란 "흰 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라는 것이고, "모론"이란 "돌다리를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야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고양이는 사회주의경제와 자본주의경제 쥐는 경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크게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만은 바꿔서는 안 된다는 즉 정치적으로는 굳건한 사회주의자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결국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대학생 등 지식인층과 충돌하였고 1989년 그 유명한 천안문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내가볼 때 우리나라로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공과 과실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이라는 공과 무차별정치탄압이라는 과실이 바로 그것이다. 등소평은 중국에서는 공산당 대장정을 통해 아예 사라질 뻔한 공산당을 중국을 장악하게 하고 중국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미국의 원조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장개석 총통의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버린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잘못한 점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개혁정책들이 중국의 고유한 전통을 무너뜨리고 지식인들을 탄압하여 중국의 문화를 쇠퇴하게 했다는 것이다.한편 작은 대포라는 그의 별명의 유래를 통해 그의 성격과 정치적 특성을 알 수 있다.1925년 6월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등소평은 상해의 노동자 파업 소식을 듣고 그것을 성토하다 프랑스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모스크바로 도피하여 중산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때 등소평은 22세였다. 유학시절에 그는 둥근 얼굴, 다부진 체격, 뛰어난 언변으로 동기생들 사이에서 "작은 대포"라 불리었다고 한다. 1978년부터 그는 중국공산당의 주요한 정책 결정권자로서 당에서 제정하고 시행하는 새로운 발전 시기의 노선과 방침, 정책을 영도하였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와 모택동 만년기의 오류를 시정하고 모택동의 업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 인민민주전정의 견지, 공산당 영도의 견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의 견지라는 4개 기본 원칙을 주장하였다. 그는 당의 전국적인 사업 중점을 경제건설에 두고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중국의 실제 상황에 결부시켜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는 사회주의노선을 견지하면서 현대화건설을 위한 네 가지 필수 요건을 강조했다.첫째, 행정기구와 경제체제의 개혁을 통하여 간부의 혁명화, 연소화, 지식화, 전문화를 실현한다. 둘째,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한다. 셋째, 경제영역과 기타영역의 범죄활동을 방지한다. 넷째, 당의 조직과 기강을 정비한다.내가볼 때 그의 장점은 무엇보다 항상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 원수나 정부 수뇌, 외국 공산당 지도자, 기타 정당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을 접견하는 외교적 활동이었다. 여러 차례 외국을 방문하여 중국인의 해외 교류를 확대하고, 중국의 대외 경제, 기술, 과학 교류를 증진시키는 등, 중국의 현대화건설에 유익한 국제적 여건 조성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그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남아프리카의 영웅 넬슨 만델라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7세기 중반에 백인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빈곤과 질병, 무지 속에서 살아온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 자유를 얻게 해준 사람이 바로 넬슨 만델라이다. 1918년 남아공화국 트란스케이에서 출생 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게 된 만델라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한평생 살아갈 것을 결심하게 되고 청년동맹과 민족회의를 결성해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권운동의 투사이다. 44세 때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뒤 72세의 나이에 석방되었다. 그는 350년에 걸친 인종차별 제도를 철폐시켰는데, 흑백분리정책이란 이름 하에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았던 남아공 백인정권의 흑백차별정책을 종식시켰고 흑인 다수사회인 남아공에서 백인통치를 끝내는데 결정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되었다.
교육방법은 환경이 변하고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 왔다. 그 목적과 방법에 따라 교육은 다양한 면모를 보여 왔다. 밥 파이크는 이러한 시점에서 성공적인 교육을 위해 창의적 교수법을 제시했다. 그는 창의적 교수법이란 어떤 묘책이나 기법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학습능력, 기억능력, 실용능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실행되기 위한 5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원칙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직접체험과 소그룹 토의, 그리고 학습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닌 어떻게 실행하느냐를 목적으로 한다. 또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강사가 교육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나의 교육과정을 살펴보았다.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와서까지 내가 받은 교육을 보면, 그 목적에 따라 여러 방법이 이용된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창의적 사고와 행동에 초점을 두었던 것 같다. 강의법이 이루어졌지만, 분단별 학습이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토론수업이 진행되었고, 과목마다 직접 체험하는 실습을 최대한 진행하였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입시공부가 시작되어 고등학교 때까지는 개념을 숙지하기 위한 강의법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H?R시간과 C?A시간이 있어 토론학습과 경험학습을 보충해주었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진 못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는 수업에 따라 그 방법이 달랐다. 강의 중에는 고등학교 때처럼 일반적인 강의법인 과목도 많았지만, 발표자가 발표를 하고 학습자들끼리 서로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며 마지막에 교수님께서 정리해주시는 형식의 복합적인 교육 방법을 보여주는 과목이 많았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자연-예체능계 영역 수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수강자가 조금 많아도 실습수업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수업의 성격이나 수강 인원에 따라 달라졌었다.이렇게 과정별로 교육을 되새겨 보니, 밥 파이크가 제시한 성공하는 강사들의 14가지 창의적 교수법이 신빙성 있어 보였다. 그 중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몇 가지를 내 경험과 접목시켜 보았다. 첫 번째인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기는 고등학교 때는 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사용되지 않았었다. 선생님은 그냥 필기를 하셨고, 우리는 받아 적으며 외우는 방식의 수업이 진행되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는 거의 대부분이 프레젠테이션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시간의 절약과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참가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잘 나타난 것 같다. 왜냐하면 중?고등학교 때는 입시라는 벽이 충분한 동기가 되어 별다른 자극이 없어도 되었다. 대학교에 와서는 토론수업의 경우에만 그것이 적용되었는데, 토론을 해야 할 경우 내용을 모르면 수업시간 내내 조용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내용을 미리 공부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업들이 간단한 과제로 대체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학습을 유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 번째인 시각 교재 활용은 역시 시설적으로 발달한 대학교에서 잘 나타났다. 발표수업이 많았는데, 핸드아웃 자료나 PPT자료 그리고 영상자료도 자주 활용되어 학습자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집중을 유도한다. 네 번째는 그룹참여를 유도하라는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과정과 대학교에서 자주 일어났었다. 초등학교 때는 자리 자체가 분단별이었고, 토론?토의 수업이 자주 있어서 오늘날 대학에서 토론수업의 기초를 제공해 주었었다. 다섯번째는 내가 대학교에 와서 확실히 고등학교때와는 다르다고 느낀 부분인데, 창의적 교재를 만들라는 것이다. 대학교에서는 우리에게 창의적으로 무엇인가를 생산하게 하는 과제를 내주었다. 직접 답사를 가고 체험을 해야만 해결 할 수 있는 과제들은 나로 하여금 수업에 집중하게 하였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하였다. 책과 인터넷 검색만 통해서 해결해왔던 과제와는 정말 달랐다. 스스로 창작하고 팀원과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여섯번째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대학교에 와서 처음 A+를 받아본 과목에서 적극 활용되었던 부분이다. 생활과 원예라는 과목이었는데, 수업중에 꽃꽃이와 압화, 분재만들기 등 실제적이고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열심히 했고, 그 어느 과목보다 애정을 주었던 과목이다. 때문에 과제였던 식물일지도 실제로 화분을 기르며 꼬박꼬박 썼고, 시험공부 할 때도 다른 과목보다 한 번 더 보는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내 스스로도 A+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 과목은 처음이었다.
-김영하이 소설은 MBC의 광고로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 중간 중간 문단이 시작할 때 마다 계속해서 내용과는 상관없는 광고문구로 시작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의 상황을 떠올리게 됐다. 내용과는 상관없는 광고문구들을 보면서 내가 깊은 생각에 빠진 채 번화가를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번화가의 길거리에는 무수히 많은 상가 간판이 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찾아가는 이 말고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만 눈여겨보는 것은 아니다. 이 처럼 나는 책의 내용에 집중할 때쯤 나오는 광고 문구를 보면서 내가 골똘히 생각하며 걷고 있는 번화가의 간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소설에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주인공 ‘그’와 ‘그녀’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만나고 사랑한 이야기와 그 두 사람이 지금 현재의 시점에 서울극장이라는 실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이 그것이다. 같은 극장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와 ‘쇼걸’이라는 영화를 같이 상영하는 것에 대한 약간을 불만 섞인 기사를 보고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글로 만들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두 영화에 관한 대비나 비교를 통해서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주제와 연관되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 부분보다는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삽입해서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내가 주시했던 부분인 영화의 주제의식이 단지 두 영화의 공통점이 ‘혼자보기 좋은 영화’라는 결론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그러면 이 작품의 두 축의 하나인 ‘그’와 ‘그녀’의 옛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학생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와 ‘그녀’는 과거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에 학생운동을 계기로 해서 만나게 되었다. ‘전혜린’이라고 묘사된 그녀와 ‘그’의 만남과 사랑의 이야기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생운동이다. 여기서 학생운동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와 ‘그녀’는 같이 망월동을 찾는다. 시간이 지나 ‘그’는 ‘C'와 다시 망월동을 찾는다. ‘그’와 ‘그녀’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와 ‘C’는 막걸리를 한 됫박 마신다. ‘그’는 ‘그녀’와 학생운동이라는 하나의 관념에 묶여있다. 그들이 사랑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 당시에 대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자유롭게 표현될 수 없는 분위기를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