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1. 연구 목적인간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늘 불만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항상 더 나은 모습으로의 변신을 꿈꾼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변신을 통해 제한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초월의 세계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인간이 원하는 욕망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의 세계 속에서 변신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즉,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내재된 욕망을 문학을 통해 풀고자 하는 것이다.변신의 의미를 광의로 해석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삼라만상이 순간순간 변화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범위를 좁혀서 보면 변신이란 자의나 타의에 의해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형태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변신 모티프를 핵으로 하여 구성된 변신담은 신화, 전설, 민담에 두루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민중의식의 기저에 있는 상상력의 발현이기 때문에 변신의 양상 역시 매우 다양하다.고전문학에 있어서 인간이 변신을 관념하게 된 원초적 사유는 먼저 인간이 스스로의 변화 때문에 자신이나 다른 존재의 변화에 대하여 큰 흥미를 느끼고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변신을 상상하였다는 데 있으며 변신이란 것이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변신을 상상적인 세계에서 관념한다는 것이 무한한 정신적인 자유를 부여해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질서의 세계(현실)에서 여러 가지 한계를 절감하며 살고 있는 인간은 현실의 삶에 대해 억압을 느끼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에서 그 속박을 벗어나 구자아를 떨쳐 버리고 새롭게 변화, 재생하고자 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설화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온 만큼 거기에는 인간의 무의식의 모습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인간과 자연의 구별에 없었던 원초적 시대에 대한 기억이라든가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인간 탐구에 대한 문제 등이 고스란히 내재해 있다. 이러한 정신적 유산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설화는 고전소설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렇서의 인위적인 형태변모라든지 정신적인 성장과 같은 관념적인 형태는 제외되며 인간계와 비인간계와의 관계 아래 이루어지는 외형적 변모를 주된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계에 속하는 존재, 즉 사람이 비인간계에 속한 존재로 변모하거나 반대로 비인간적인 존재가 인간으로 변모, 또는 비인간적 존재가 또 다른 이물로 변모하는 것 모두 이에 해당된다.)설화에 나타나는 변신의 양상은 아주 다양하나, 대체적으로 다음의 5가지로 정리된다. 이를 항목을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 1. 둔갑둔갑은 변신을 행하는 본체가 자의적인 욕구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둔갑의 경우에는 변신 후에 허물이나 껍질을 남기지 않는다.둔갑은 변신을 행하는 본체가 인간이냐, 동?식물 또는 광물이냐에 따라 인간둔갑, 동물둔갑, 식물둔갑, 광물둔갑 등이 있다. 또, 변신의 주체가 정령인 정령둔갑도 있다.인간이 다른 부류의 존재로 변하는 인간둔갑에는 인간이 동물, 식물, 광물, 인간정령으로 변하는 5가지 양상이 있는데, 동물로의 둔갑이 가장 많다. 그런데, 둔갑을 행하는 인간은 신이한 능력을 갖춘 사람, 둔갑술을 익힌 사람, 둔갑을 가능케 하는 주물을 가진 사람 등이다. 신이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행하는 둔갑은 탈해와 수로왕, 해모수와 하백 등이 자신의 신이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경쟁을 벌일 때 보여 주는 것과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주로 신화의 주인공들이 보여 주는 것이다.둔갑술을 익힌 사람에 의한 둔갑의 예로는 ‘중으로 둔갑한 호랑이’, ‘요술부리는 소년’ 등이 있다. ‘중으로 둔갑한 호랑이’에서는 호환에 갈 운명을 타고난 정승의 외아들이 도사의 지도로 둔갑술을 익히고 호랑이와 둔갑경쟁을 벌인다. 이들이 벌인 둔갑의 순서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아들 → 새 → 소 → 개 → 고양이 → 아들호랑이 → 중 → 호랑이 → 매 → 쥐 → 호랑이(죽음)이 이야기에서 아들과 호랑이는 위의 순서와 같이 둔갑하면서 싸움을 벌이는데, 아들의 변신체인 개를 먹으려는 호랑이의 변신서 서해 용왕의 해치려는 사미로 등장한다.강태공전에서 여와씨는 주왕에게 원한을 품고 요괴 셋을 불러 주왕을 망하게 하라고 지시한다. 구미호는 이에 후궁인 달기를 잡아먹고 가짜 달기가 되어 주왕을 요혹시키고 주왕은 패망하고 강태공에게 패하여 달기는 본형으로 돌아가 도망치다 죽음을 당한다. 그 외 장국진전, 장인걸전과 이화전 등에도 여우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여우는 꾀가 많고 의심 많은 성격으로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요수로 간주외고 사악하고 현혹적인 동물론 인식되었던 것이다. 여우가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영역의 침범으로 볼 수 있다. 여우의 변신은 인간의 동물에 대한 우월성을 바탕으로 하여 악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여우는 인간의 허점을 이용하여 인간세계로 들어오려고 하는 악의 표상인 것이다.이런 여우의 정체를 아는 데는 인간보다 능력이 우월한 도사(초월적인 능력)나 아니면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동물이(개나 매의 충실하고 동물적인 감각) 그것을 알고 중간 존재인 인간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인간이 영리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우둔함을 말해주고 있다.이러한 여우와 비슷한 유형으로 뱀이 있다. 인간이 동물로 변신한 것으로, 삼자원종기(삼설기)에서 욕심 많은 부자가 뱀이 되었다. 신선이 된 친구의 도움으로 잠시 사람으로 변했지만, 또다시 욕심을 부려 다시 뱀의 허물이 씌워 지게 되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뱀이 인간으로 변신한 것은 아니나, 인간이 죄의 업보로 인해 동물로 변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읽을 수 있다.추한 인간이 미인이나 재인으로의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박씨전에서 박씨는 추한 용모를 지니고 있다가 도사 성격을 띠고 있는 아버지 박처사의 도움을 받아 어느 날 목욕하고 황홀한 미인으로 변신한다. 박씨전에서 나타난 변신은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는 측면을 강하며 이는 금령전과도 상통된다. 추한 모습의 허물을 벗어버리면 그 속에 아름다운 본형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과 동물의 변신에서도 공통된요인과의 접촉으로 인한 탄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난의 탄생은 주몽, 박혁거세, 탈해, 알지, 가락국의 시조에서부터 알 수 있듯 주인공의 비범성과 자궁과 같은 창조의 근원성, 그리고 다산에 의한 끊임없는 생명력을 추구하는 것이며, 씨족이나 부족의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금방울전의 탄생이야기는 주몽의 탄생과 상통하는 것으로 금방울의 일생이 영웅의 일생이라는 점에서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탄생은 미리 주인공의 초인간적인 비범성이 작품 속에서 가능하도록 하는 복선을 깔고 있다. 그들의 일생은 전형적인 건국신화 주인공들의 영웅적 성격을 충실히 계승하며 그 일생을 답습한다.고대인에게 있어 알이란 생명이 탄생하는 신비한 존재이며, 생명의 시원으로써 관념화되어 있는 존재였다. 그것은 창조의 가능성이며, 출생, 재생, 그리고 새로운 삶의 상징이다. 알로 태어났다가 다시 아이가 나온다는 변신은 주인공의 비범한 탄생을 나타내는 것인 동시에 생명력 상징에서 연유되었다. 알의 둥근 모양은 완전성을 나타내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합일성을 나타낸다. 원과 방울이라는 형태에서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은 끊임없는 생명력에 대한 염원에서 비롯되며, 우주의 정기를 타고 나서 완벽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모티브는 독자들의 원망의 인간형이며 정신적인 위안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2. 3. 착주(捉呪)본체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물이나 주술에 의해서 그 형체를 바꾸게 되는 것을 착주라 한다.착주변신에 이용되는 주물로는 방망이, 지팡이, 탕건, 휘양, 망태, 소머리 탈 등이 있는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다. 도깨비 방망이에 의한 주물 착주는 인간화 뿐인데, 마음씨가 착한 혹부리 영감은 혹을 떼었지만 마음씨 나쁜 혹부리 영감은 오히려 혹을 하나 더 붙였다는 ‘혹부리 영감’이나,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된 착한 동생을 흉내내다가 자기의 신을 서 발이나 되게 늘였다고 하는 ‘은방망이 금방망이’ 이야기처럼 신체의 일부분만 변하는 부분 변신이그는 그것도 불만스러워 개 백정에게 발견되도록 하여 다시 저승에 갔다가 다시 태어났는데, 이번에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찌나 좋던지 세상에 나오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아이구 좋아라!”하고 소리쳤더니, 산모가 요사스럽다고 진자리에서 깔아뭉개어 죽였다. 그가 다시 저승에 가니 염라대왕이 보고서, “이놈이 왜 이렇게 저승 출입이 잦아? 그 놈은 나가다 말고 들어왔으니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해 주어라.”하였다. 그는 먼저번에 섣불리 입을 놀렸다가 죽은 경험이 있는 고로 나이 들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이 이야기는 저승을 무상으로 출입하며 사람 → 구렁이 → 강아지 → 사람 → 사람의 순서로 환생하였다는 내용인데, 환생이 염라대왕의 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비롯하여 환생에 관한 여러 가지 사고를 포괄적으로 지니고 있다.넷째, 금기를 지키지 못하고 파기하였을 때 변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에서 금강산으로 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를 구하러 가던 사람들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뜨리고 뒤를 돌아다보았기 때문에 죽어 돌이 되었다. 이 돌은 금기를 깨뜨리지 아니하고 정상에 오른 처녀가 꾀꼬리의 말대로 약수를 떠다가 떨어뜨림으로써 다시 사람으로 변한다. ‘浴身禁忌說話’에서도 남편이 아내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뜨리고 들여다보니, 사람이 아닌 큰 잉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남편이 이를 보고 놀라는 순간에 그 잉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하늘나라에서 처자와 함께 살던 나무꾼이 고향에 다니러 왔다가 말에서 내리지 말라는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다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수탉이 되어 하늘을 향하여 울게 되었다.다섯째, 설화의 주인공이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을 경우에 변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개가 먹은 떡국을 자신이 먹은 것으로 누명을 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매를 맞아 죽어 뻐꾹새가 되었다는 ‘뻐꾹새의 유래’ 이야기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로 대표되는 세계와의 싸움에
사씨남정기목차Ⅰ. 서론Ⅱ.「사씨남정기」분석1. 서포 김만중의 생애2. 소설의 흐름3. 인물을 통한 분석4. 김만중의 부귀영화 욕망과 소설을 통한 정당화Ⅲ. 마무리Ⅳ. 감상Ⅰ. 서론「사씨남정기」는 김시습과 허균의 뒤를 잇는 중세 소설문학의 거장인 서포 김만중의 국문소설이다.조선조의 양반가의 여성들은 대부분 한글을 터득하고 있었다. 양반가에서는 여러 가지 교육서를 통해 부녀자들에게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부덕을 가르쳤는데, 이러한 여성 교육서들을 통하여 한글을 쉽게 깨칠 수 있었다. 게다가 양반가 여성들은 평민가의 여성들보다 가사에의 부담이 적었고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은 조선조 여성들이 소설의 열렬한 독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케 한다. 소설을 통하여 여성을 교화하는 것은 다른 방법들 보다 훨씬 능률적이고 효과적이었을 듯하다. 작가들이 소설의 독자였던 양반가의 여성들을 의식하고 교화적인 소설을 창작하였다면 그것은 자연스레 ‘여성 길들이기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효용론적 소설관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또한 「사씨남정기」는 처첩(妻妾)간의 갈등이나 의붓자식과의 관계 등 가정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가정소설의 초기작품으로도 파악 가능하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 즉 집에 안주하고자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왜 가족주의라는 형태로 체계화, 의식화되어 한국의 문화에 뿌리깊이 내리게 되었는지의 이유 중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은 유교이념이다. 유교적 가족주의 및 그 규범과 가치체계가 소설과 깊은 관련을 지닐 것은 매우 필연적인 일임에도 이제까지 가정소설은 비교적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가정소설은 티비 드라마, 영화 등의 형태로 오늘날에도 존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정소설은 새로이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따라서 이번 과제에서는 서포 김만중의 생애를 통해 「사씨남정기」를 조명하고 가정소설, 여성 길들이기의 시각에서 작품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Ⅱ.「사씨남정기」분석1. 서포 김만중의 생애서포의 삶은 그의 소설 형성에 많은 영향을 「사씨남정기」의 작품 속에서 유한림의 유배생활 속에 나타나 있는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서포가 살았던 시기가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였던 만큼 정치적인 혼란이 많이 대두되어 당쟁이 매우 심했다. 서포의 가계는 모두 서인의 중심적 인물들로서 남인과 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의 유배 생활 첫 번째는 1674년 (그의 나이 38세) 때 효종비 복상문제로 서인의 몰락과 함께 어전에서 영의정의 파직을 주장하다 당색이 짙은 언사라는 질책을 받고 금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논박을 받았던 허적의 간청으로 풀려나게 된다.그리고 두 번째는 숙종 12년 지경연의 자리에 있을 때 김수항의 파직 부당성과 장숙의 일가를 둘러싼 희빈 책봉 뒤의 무리들에 대한 중용의 부당성을 공박하여 숙종에 직언한다. 그의 나이 51세(1687년) 때 숙종 13년에 있었던 정치적 사건으로 화를 입어 평북 선천으로 유배를 당했다.다음으로 세 번째 유배 생활은 그의 나이 53세(1689년) 때, 원자의 위호를 정하라는 명에 거역하다 대간들의 계에 의해 남해 적소로 귀양길을 떠나게 된다. 그 여파로 자손들마저 제주 거제로 유배 가게 되었고 서인의 거두인 송시열은 사사되었으며, 어머니 윤씨 부인은 시름 속에 그 해 겨울 사망하였다. 효성이 남달랐던 서포였지만 유배지의 병상에서 장례마저 못 치르고 통곡하다가 오십육 세로 일생을 마친다. 이리하여 모부인 윤씨와 영원한 이별이 되었고 불귀의 객이 된 최후의 유배지로서 남해는 「사씨남정기」의 작품 배경이 되고 있어 최후까지 이어졌던 모친과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한다.2. 소설의 흐름《사씨남정기》는 양반사대부 가문인 유한림의 가정과 서로 다른 양반사대부들의 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사정옥과 교채란 사이의 갈등을 통해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동시에 양반가정의 추악한 내막을 드러내고 있다. 구성은 '성혼', '요망한 첩', '간악한 문객', '가화', '남정', '가운회복' 등 제목을 단 몇 개의 장들로 나뉘어 있는데 이야기줄거리는 크게 두 음을 유혹하는 한편, 동청이라는 한량을 끌어들여 그와 함께 남몰래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갖가지 흉계를 꾸미다 마침내 자기 소생인 장지까지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덮어씌운다. 간계에 속은 유한림은 십 년 세월 함께 살아온 사씨를 집에서 내쫓는다. 이때부터 서글프고 괴로운 사씨의 '남정'이 시작된다.소설의 뒷부분은 '남정'부터 '가운회복'까지이고 조정에서의 정치적인 사건의 해결을 주로 다루었다. 집에서 쫓겨난 사씨는 시부모 선산에서 초가집을 얻어 여생을 마치려 한다. 그러나 행방을 알아낸 교씨는 동청과 함께 또다시 흉계를 꾸며 냉진이라는 사나이를 보내어 사씨의 절개를 꺾으려 하지만 사씨가 먼저 떠났기에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유한림도 자신들의 죄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교씨와 동청의 모함으로 간신 엄승의 손을 빌려 '임금을 기롱한' 죄로 귀양가게 된다. 유씨가문은 마침내 파산몰락의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곧 황제의 은사령으로 유한림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를 모함한 원수들의 행차와 마주친다. 이를 안 교씨와 동청은 건장한 관졸 수십 명을 뽑아 유한림의 목을 베어오면 천금의 상을 주겠노라고 한다. 쫓기던 유한림은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쪽배 한 척을 발견하고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그 배에는 소복단장한 부인이 그를 맞이하는데 그녀는 바로 사씨였다. 이 무렵 조정에선 전횡을 일삼던 엄승상이 처형되고 동청과 냉진도 차례로 처단된다. 교씨는 낙양땅에 도망쳐서 창루의 창기로 타락한다. 예부상서로 복위된 유연수는 사씨부인을 데리고 서울로 가던 중에 교씨를 만나 그녀를 처단한다.3. 인물을 통한 분석(1) 사씨유교에서 인간은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지닌 존재로 파악된다. 이러한 인간관에 따를 때, 소설 속의 인물이 아주 이상적인 인물이라면 그는 철저히 선한 본성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된다. 그의 본성이라는 것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이고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씨는 엄밀한 의미에서 주동인물다운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사씨는 개인적 욕 사씨는 유연수가 정식으로 예를 갖추어 맞아들이자 비로소 소복을 벗고 가묘에 고하는 절차를 갖는다. 남편으로부터 정절을 의심받자 소복을 하고 지내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통해서 예법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며, 남편의 가문에 수용되자 소복을 벗는 것도 같은 맥락에 놓이는 행동이다. 그것은 남성중심적인 담화에서 만들어 내는 천사 이미지의 형성에 일조를 한다. 조선조의 양반가 여성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예법을 작가는 사씨를 통하여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의 의식 속에 가부장적 사고를 확대 재생산하고자 한다.(2) 유연수사씨남정기에서는 가정적 갈등이 중심이되 국가적 갈등이 병존한다. 가정의 문제는 곧 국가의 문제이다. 가정에서의 처/첩 대립은 조정에서의 충신/간신 대립에 해당되며, 간신이 징벌되고 유연수가 본래의 지위를 회복되자 가족이 모여 다시 가정을 이루고 혼란을 일으켰던 교씨의 징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건의 이러한 전재 양상은 조선사회의 지배적 이념인 유교와 그에 따른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족 또는 가문중심이고, 남성중심이며, 철저히 수직적이다. 사건 전개의 과정에서 혈연적 정통성과 규범적 정당성을 지니지 않은 첩과 간신의 무리는 모두 배격된다.천자와 유한림은 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집안을 어지럽히고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게 된다. 윗사람의 도덕적 수양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따라서 윗사람의 총명 상실은 유교적 이념과 질서의 변화 내지 약화 현상을 반영한다. 유연수가 총명을 잃도록 한 것은 그의 남성으로서의 애욕이다. 사씨는 유연수가 택한 여자가 아니고 그 부모의 의사에 따라 유씨 집안의 며느리가 된 여자이다. 사씨의 현숙함은 남성으로서의 유연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정실과는 의무감으로, 첩실과는 애정으로 결합된 이중생활을 하던 조선시대 남성들의 갈등이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연수는 그의 아버지가 죽자 억압되었던 애욕이 분출되면서 총명을 잃는다. 유연수의 이러한 모습은 궁극적으로 유교 이념과 그것을 지만 이러한 행위를 선택하게 하는 조건과 상황은 무시되고 당사자인 교씨만 악인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의 신분상승 욕망은 첩이라는 이유 때문에 먼저 아들을 낳고도 부인 대접을 못 받고 자기가 낳은 자식마저 자식 대접을 받지 못하게 하는 법과 인습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축첩제도는 자손을 많이 두어 후사를 잇고자 하는 명분 아래 남성의 애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처첩의 지위 분별, 서얼금고법(庶?禁錮法) 등은 첩의 입장에서는 모순되고 부당한 것이다. 교씨의 신분상승 욕망에는 수직적 봉건질서를 위협하는 수평적 사고, 가문중심의 질서를 위협하는 개인중심적 사고가 깔려 있다. 교씨를 처벌하는 장면은 작품내에서 가장 폭력적이다. 규범을 위반한 여성에 대한 가혹한 징벌은 여성을 길들여서 남성에서 순종하게 만드는 가부장적인 여성길들이기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사씨가 ‘상공을 모셨으니 너무 가혹하게 하지 말고 죽은 신체나마 온전하게 해주자’고 제안하는 것은 사씨의 너그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것과 동시에 고귀한 존재와 접촉한 사람을 모독하거나 불경하게 대하는 행위는 바로 공경의 대상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했던,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교씨의 처벌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가 정실의 지위를 얻고도 동청과 관계를 계속함을 그려 윤리적 부도덕성을 부각시킨다. 가문이 안정된 뒤에 사씨가 첩으로 임씨를 천거하는 내용에는 축첩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첩이라는 일방의 부도덕성으로 돌려 은폐하고 있다. 혹자는 김만중이 이 소설에서 양반사대부 가문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축첩제도가 얼마나 커다란 불행과 사회적 악덕을 낳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고 말하지만 유교질서의 확립과 정당화라는 소설의 큰 흐름에서 이러한 주장은 정당성을 잃는다고 보여진다.4. 김만중의 부귀영화 욕망과 소설을 통한 정당화김만중은 당대의 유교적 질서에 안주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망과 유교이념에서 벗어나 현세적 삶을 초월하려는 욕망 사이에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은 인물이다.다.
루소-에밀1762년 5월 말경에 출간된 『에밀』은 그해 6월초에 이미 소르본과 파리의회에 의해 금지되었고, 저자가 체포령을 피해 스위스로 도주해서 1766년 1월 영국으로 피신하기까지 4년간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었다. 『에밀』은 루소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규정한 작품으로서 그의 인간학으로부터 도출된 교육론 체계를 담고 있다.물질세계는 외부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어떤 의지에 의해서만 운동한다. 그 운동의 법칙성으로부터 하나의 지성적 존재, 즉 신이 드러난다. 보좌신부의 입을 통해 루소는 신을 세계의 도처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내부에서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소에게는 물질의 운동과 세계의 목적성으로부터의 신 존재 증명은 단지 유물론에 대한 반박을 위한 것일 뿐이고 감정에 의해서 내적으로 확증된 신 존재가 가장 확실한 것이다.이렇게 종교철학적으로 볼 때 루소는 이신론자(理神論者)로서 '자연종교' 이외에 역사적 종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식의 내면적 증거에 근거하는 동시에 이성과 합치하는 자연종교는 미묘한 신학적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도덕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개의 큰 진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신조로 삼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고 보편적이다. 여기서 루소가 말하는 자연종교가 기본적으로 믿는 것은 '섭리하는 신의 존재'와 '영혼불멸' 그리고 '의지의 자유' 등이다.바로 이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 갖고 있는 종교적 시각의 대담함으로 인해 『에밀』은 금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밀』의 제 4부에 우연히 삽입된 듯이 보이는 이 「사부와 신부의 신앙고백」은 결코 전체와 이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종교야말로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특히 '자연선'에 관한 형이상학은 교육론을 결정짓는 관건이 된다.『에밀』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 모든 것은 선했지만 인간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은 타락한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는 본래적으로 선한 존재이지만 문명화 된 사회 안에서 악에 물들었다는 기본적인 전제 위에서 루소는 흡사 자연 상태와 같은 갓 태어난 어린이의 타락하지 않은 상태를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가를 교육의 과제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외면적 직업을 위한 훈련으로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대하여 루소는 인간이 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는 자연주의적인 교육을 최고의 교육적 이상으로 삼았다. 좋은 교육이란 어린이를 어떤 특별한 사회적인 조건하에서 양육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 - 따라서 모든 조건에 적합한 인간과 시민을 육성해내는 교육이다.루소의 교육론은 과거의 교육이론과 완전히 결별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루소는 자신의 입장이 타협과 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독창적임을 의식하고 이전의 교육방법을 고수하던가 아니면 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채택할 것을 권하였다. 루소가 교육의 영역에서 가져온 새로움이란 우선 유아기의 특수성과 가치의 재인식이다. 루소는 어린이를 더 이상 어른을 기준으로 하여 이해하지 않고 어른과는 차이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어린이의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동안의 관찰을 중시하였다. 미완성의 과도기적인 단계로 간주되던 유아기를 그 나름대로 완성된 삶의 형태로 본 것이다.어린이가 자신의 유아기를 향유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국 행복과 그 조건이 되는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론을 의미한다. 이 때 자유는 방임이 아니라 자연을 뜻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흐름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소의 교육하지 않는 교육, 이른바 '소극적 교육'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교육이 아니라, 선하게 타고난 존재인 어린이에게 섣불리 교훈을 주고 미덕을 주입시키지 말고 단지 범할지도 모르는 실수와 악덕을 예방하고 장차 지식 습득을 위한 능력들을 완성하면서 자연적인 성장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의 교육학은 자연적인 순서에 의해서 순차적으로 발달하는 인간능력들의 발달심리학에 의거하고 있다. 루소는 최초로 교육학을 심리학 위에 세움으로써 근대 교육학의 선구가 되었다.물론 『에밀』은 교육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실제적 교본은 아니다. 루소는 다양한 경험적 상황은 배제한 채 인간 교육의 일반 원리들을 찾아보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론적이며 보편적인 범형을 만들었을 뿐이며 각 교육자들은 특수한 교육적 상황에 따라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용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사실 『에밀』은 그 집필 의도가 단순히 교육론에 있지 않았고, 이미 루소의 다른 저서에서 일관되게 주장된 원리에 대한 철학적 저서로 간주된다. 이 원리란 물론 '인간은 자연적으로 선하다'는 것이다. 『에밀』은 '본래적 선'에 관한 철학론이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 모든 것은 선했다"는 성선설(性善說)은 기독교적 원죄설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관점이며 이로 인해 『에밀』의 저자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제1부는 교육의 총론과 출생에서 5세까지의 어린이의 발달을 논하고 있다.이 시기는 본능적 욕구의 만족만을 요구하는 시기이므로 자연적인 활동과 발육을 억제해서는 안 되고 또 어떤 특정한 인간을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특히 어린아이는 반드시 친모가 젖을 먹여 양육하고 기존 사회에서 결여된 아버지와 어린이와의 깊은 관계를 심어주어야 하며, 어린이는 시골에서 여러 가지로 단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제2부는 전형적인 어린이 시기로서 5세에서 12세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말을 할 줄 아는 시기로서 언어를 습득하고 경험을 학습하는 때이다. 루소는 이 기간을 소극적 교육의 시기로 보고 지리나 역사와 같은 어린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피하고 감각교육, 사물교육, 육체의 훈련이 시작되는 시기로 보았다제3부는 소년기로서 12세에서 15세까지에 해당된다. 이 시기가 바로 적극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성훈련과 지성을 가꾸는 시기로서 이때 역시 책 속의 지식에 치중하기 보다는 어린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물교육, 사실의 관찰을 중히 여기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장래 사회가 필요로 하고 개인적으로도 유용한 수공업과 기술 습득을 장려한다. 이것은 귀족 사회의 생활을 비판하고 시민의 신성한 노동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제4부는 청년기로서 흔히 제2의 탄생기라고 하는데 15세에서 20세 까지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도덕적, 종교적 감정의 교육 시기로서 우정과 동정 등의 인간적 감정과 성의식이 생긴다. 또한 감정에 의해서 이성이 완성된다. 이 시기에 사회로 진출해야 하나 사회가 부패하여 배울 것이 없으므로 역사에서 인간의 자연성을 인식케 해야 한다. 또한 고어 연구나 연극의 관람 등을 통해서 고상한 취미를 길러 주어야 한다. 특히 이 부분의 특징은 을 통해서 그의 철학 사상과 종교 사상을 전개함에 있다.제5부는 결혼기로서 이상적인 여성 소피를 만나 생활을 확립하고 감정의 안정 등 내적 자유를 얻는 완성기로 볼 수 있으나 동시에 시련을 겪는 가운데 사회생활을 준비하게 된다. 여기서 여성 교육론이 나오는데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겸손의 미덕을 기르고, 항상 청결해야 하며, 수예를 배우고, 육아, 경로, 간호, 가사정리 등 현모양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조물주의 손에서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 라고 하는 유명한 서두의 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주안점은 외적 환경(사회·가족)이나 습관·편견의 나쁜 영향에서 어린이를 보호해서, 그의 이른바 ‘자연’의 싹을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롭고 크게 뻗어나가게 하자는 데 있다. 루소는 아이가 ‘작은 어른’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아이에게 어른이 갖추어야 할 도덕과 지식 등을 요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그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은 그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자연은 우리 모두 문명을 등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인간 본성을 되찾자는 뜻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이분법적인 논쟁은 필요 없다. 우리는 선함과 악함을 함께 지니고 태어났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선함은 더욱 발전시키고, 악함은 드러나지 않게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자는 것이다.
「조신전」의 이해와 감상제출일: 2008년 10월6일 (월)목차1. 「조신전」이란?1-1. 「조신전」의 이해1-2. 「조신전」전문2. 「조신전」과 「민장사」2-1. 「조신전」의 시간 인식2-2. 초현실적 세계와 초월적 존재3. 깨달음에 대해3-1. 「침중기」3-2. 「태평통재」3-3. 「조신전」과 「태평통재」4. 감상5. 참고자료1. 「조신전」이란?1-1. 「조신전」의 이해이 작품은 정토사의 건립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사찰 연기 설화에 해당한다. 하지만 배경적인 내용보다도 설화 그 자체가 지닌 구조가 특이하여 서사적 흥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른 문학에 대한 영향관계 때문에도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이 작품을 설화로서보다도 완전한 소설로 보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이름다운 여인을 사모하던 주인공의 현실적 꿈이 꿈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소원 성취로 인해서 오히려 더 많은, 감내하기 어려운 불행과 고통을 겪는다는 내용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낳게 한다. 이 설화가 불교적인 인생관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는 것으로 보는 것도 그러한 문제의식이 불교적인 세계 인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끊어야 할 승려가 세속의 처녀에 대한 연정을 성취해 주도록 관음보살(觀音菩薩)에게 빌고 있는 광경에서 현실의 초극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어렵게 이룬 사랑이 고통의 원인이 되어 사랑에 대한 열망이 부질없는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며 또한 인생에 대한 진지한 숙고(熟考)도 가능하게 된다.이 이야기는 '현실-꿈-현실'이라는 몽유양식(夢遊樣式)을 통해 인생무상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환몽설화로 후대의 많은 몽유록(夢遊錄)과 몽자류소설(夢字類小說)에 서사구조를 제공한 것으로 지적되어왔다. 한편 몽중 체험이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특징 때문에 이 이야기는 불교적인 인생무상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꿈 이야기의 원조가 우리 문학사에서는 결국 조신의 꿈이 아닌가 생각된다.1 번 낙산사(洛山寺) 관음보살(觀音菩薩)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러기를 수년간, 그 사이에 여인은 이미 시집을 가 버리고 말았다. 조신은 다시 불당(佛堂)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았음을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었다. 그는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꿈속에 홀연히 김씨 낭자(娘子)가 반가운 얼굴로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저는 전부터 스님을 어렴픗이 알고부터는 마음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힐 반려가 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 어쩔 줄을 몰라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사십여 년 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그러나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나물 죽마저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실의에 찬 모습으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간신히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십 년 동안 초야로 두루 헤매 다니니 옷은 누덕누덕 헤어져 몸조차 제대로 가릴 수가 없었다. 명주(溟洲)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십오 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었다. 통곡을 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아이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羽曲懸)―지금의 우현(羽懸)―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부부는 이미 늙고 병이 들었다. 거기에다가 굶주림에 지쳐 일어나지도 못했다. 십 세 된 계집 아이가 밥을 빌러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파서 울부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으니, 부부는 탄식을 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아내가 눈물을 훔치더니 갑자기 말을 꺼냈다."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다웠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고 고왔습니다. 한 가지라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얼마 안 되는 옷감이라도 생기면 그대와 나누어 입었습니다. 이렇게 살아 온 지 오십 년 동처럼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 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이 있어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젊은 얼굴과 예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과 같고, 굳고 향기롭던 그 가약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 같을 뿐입니다. 이제 당신에겐 내가 있어서 누가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곰곰이 지난날의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뭇 새가 다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조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순경일 때는 따르고 역경일 때는 버리는 것이 인정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가고 머무르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명이 있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조신의 아내의 이 같은 말을 듣자 무척 기뻤다. 그래서 각각 아이 둘씩 나누어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할 때 아내는 말했다."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서로 잡았던 손을 막놓고 돌아서서 길을 떠나려 할 때 조신은 꿈에서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했다.이튿날 아침에 보니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다. 멍청히 넋이 나간 듯 세상 일에 뜻이 없어졌다. 이미 수고로운 인생에 싫증이 나 마치 한 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나 것과 같았으며,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사라졌다. 이에 관음보살의 상(像)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조신은 해현으로 가서 꿈 속에서 굶어 죽어 묻었던 큰 아이를 파 보니 그것은 바로 석미륵[石彌勒]이었다. 물로 깨끗이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에다 봉안 한 후,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私財)를 기울여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는 부지런히 착한 일을 쌓았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 - 2. 「조신전」과 「민장사」2-1. 「조신전」의 간이 꿈속에서의 오랜 시간과 대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신이 꿈속에서 보낸 시간은 현실에서의 평생에 육박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은 시간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속도로 흐르고 이는 곧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한정된 생명을 얼마나 연장시킬 수 있는가가 인간의 지대한 관심사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몽유담은 현실의 시간을 꿈에서라도 더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2-2. 초현실적 세계와 초월적 존재조신전은 낙산사의 두 성인 가운데 하나인 천수대비상의 영험을 말하고 있다. 조신이 울며 천수대비상 앞에서 소원을 빌자 꿈속에서 그 뜻을 이루게 된다.《삼국유사》에 실린 또 다른 작품 「민장사」는 조신전과 다른 것 같지만 분명한 공통점을 가진다. 먼저 민장사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보개라는 가난한 여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장사하는 상인을 따라 다니더니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보개가 민장사 관음상 앞에 가서 이레 동안 기도하니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은 바다에서 배가 난파되어 널조각을 타고 표류하다가 중국 남쪽 옛날 오나라 땅에 닿았는데, 어느 날 한 스님이 은근한 위로를 하며 개천에서 그를 옆구리에 끼고 건너뛰니 신라 땅에 닿았다는 것이다.「민장사」는 공간이동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조신전과 민장사는 현실의 시간에 비해 초현실의 시간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초현실을 가능케 한 초월적 존재의 능력을 나타내려는 공통적인 의도를 보여준다. 조신전에는 천수대비상이, 민장사에는 관음상이 등장한다. 그들을 재난으로부터 구해주는 영험한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 진다.3. 깨달음에 대해3-1. 「침중기」꿈은 모든 사람이 경험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신비스런 현상이다. 그렇기에 꿈을 소재로 한 작품은 무수히 많은데 그중에서 중국의 고전 「침중기」를 소개해보겠다. 「침중기」의 내용은 이렇다. 힘겨운 삶을 살던 노생이라는 젊은이가 신선의 도술을 터득한 여옹의 도움으로 깊은 잠에 남자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응당 공명을 세워 출장입상(出將入相)하고,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살며,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음악을 골라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가족은 번창하고 가재(家財)는 불어나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라고 하면서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출세욕을 대변하고 있다.우리는 여기서 노생이란 몽유자가 취한 삶의 정향이 꿈 이전과 꿈 이후 새롭게 변모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사랑과 미움의 도리, 부귀와 가난의 운수, 얻음과 잃음의 이치, 삶과 죽음의 정리를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깨달음에 도달한 변모는 지괴와 전기를 구분 짓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지괴가 유행하던 위진남북조 시대와 전기가 유행하던 당나라 사이에는 불교나 도교적 깨달음의 과정이 논리적 구조로 성숙되어 가능하게 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남북조시대의 분열을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중국 불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를 열었으며 도교 역시 불교와 같은 발전의 길을 걸었다. 우리의 경우도 나말여초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거치면서 서사구조의 상승의 단계를 체현하고 있는 조신전에서 그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3-2. 「태평통재」당나라 유학을 간 최치원이 과거에 급제하여 율수현위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초현관에 나가서 노닐다가 두 여인의 무덤을 보고 위로의 시를 지어 석문에 붙이니 이름조차 모르는 두 여인을 꿈에서 만나 운우지정을 나눈다.최치원은 육두품 출신으로 빈공과에 합격하였으나, 당나라 사람이 아닌 한계를 안고서 과거에 합격하고도 결코 당나라 사람과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능력은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기 않는다는 데서 오는 고독.최치원에서 발견되는 고독감은 자부심과 한 쌍을 이룬다. 여귀가 유독 최치원 앞에 나타났다는 작품 설정은 최치원의 시재가 귀신도 감동시킬만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이상적인 배우자로서의 기품을 최치원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인데 최치원은 자신의 능력을 아무도 알아주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