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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有)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과 인생 총정리
    1. 살바도르 달리, 그의 일생죽은 형의 그림자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얼룩진 유년기, 아버지와의 불화, 편집광적인 기질..갈라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이 모든 것이 그의 일생에 걸쳐 작품에 녹아들었고 역설적인 이미지 창조에 큰 역할을 하였다. 평생을 죽은 형의 그림자에 묻혀 살 수밖에 없었던 그를 사랑으로 구원한 갈라의 사랑 덕에 수 많은 작품 속에는 갈라가 출현케 되고 모든 여성의 모습이 갈라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화폭 하나하나에 그의 삶 자체가 녹아들어 그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환상의 세계와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약간 불안정하고 조금은 뒤틀린, 그런 그의 작품들은 마치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 하다.1) 초창기(1904-1929)그림1. 메뚜기아이였던 10살때의 나(1933)살바도르 필립 야킨토 달리 이 도메니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예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중류층집안으로 비교적 좋은 환경을 이루고 있었다. 달리가 태어났을 때 사실상 그는 3번째의 달리였다. 첫 번째는 그의 아버지 -살바도르 달리-이고 두 번째는 달리가 태어나기 9개월 전에 죽은 그의 형이다. 죽은 첫째아들과 둘째 살바도르 달리의 생일이 같았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은 그를 첫째 아이가 환생한 것으로 여겼고 그를 그렇게 대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서 죽은 형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에 강한 반항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후일 그는 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항상 자신이 형에 대한 콤플렉스에 빠져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이러한 성장환경은 그의 작품을 독특하고 매우 개성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여러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죽은 형의 삶까지 대신 산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부패한 것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그는 그림에 부패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달리는 어린 시절 학교 친구로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들은 그에게 곤충, 특히 메뚜기를 던지곤 했다. 그 이후 메뚜기는 특히 초현실주의 시기에 혐오와 공포의 상징이 된다. .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1929년에는 그가 좀 더 큰 세계로 나가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첫째는(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1929년 카다크에서 평생의 동반자 갈라 엘루어드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당시 유명한 프랑스 시인 폴 엘루어드의 아내였고 심지어 10살 연상이었지만 그들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또 다른 사건은 같은 해, 달리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들과 공식적으로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이후 그는 첫 개인전을 파리의 괴만 갤러리에서 성공적으로 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치러야 했던 대가가 있었다. 갈라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절연장을 보냈고 이렇게 근 30년 간 계속된 아버지와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공식적인 예술파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고, 또한 많은 전시회를 열어야 했다. 갈라와 달리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리가트 항구 북쪽의 작은 오두막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많은 시간은 은둔하며 지냈고, 그동안 달리는 생활비를 위해서 그림을 대량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초현실주의에 몰두 하였고 점점 급진적으로 변모됐으며 심지어는 1920년 초반에 그렸던 추상적이었던 그림과는 동떨어진 화풍으로 변모된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생각을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서 화폭에 담았다.그림4. Bulgarian Child Eating a Rat.1939그가 파리의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쫓겨난 것은 1934년의 일이었다. 대중 ‘심판(심의)’에서 그들은 달리가 모임의 나아갈 목표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그를 쫓아낸다. 1938년 그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드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와 같은 그림에서 꾸준히 세계 2차대전의 발발을 예견했는데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940년 나치 침공 불과 몇 주전에 달리와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그는 자연의 성질을 머지않아 과학에 의해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생명의 가장 근본은 나선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953년 크릭과 왓슨이 DNA 분자의 이중나선형 구조를 발견했을 때, 그의 이론은 좀 더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Nature Morte Vivante(Still Life-Fast Moving)"라는 그림에서 이런 생각은 직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1982년 갈라의 죽음 이후 그의 건강은 나빠졌고 스페인 푸볼에 있는 저택에서 발생한 화재에 화상을 입은 후 그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된다. 몇 년간의 은둔생활 끝에 1989년 1월 23일, 심장질환과 그에 따른 호흡기질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2. 그가 겪은 사회적 배경과 미술사적 경향(1) 사회적 배경 1 - 1차 대전(1914-1918)1차 대전이라는 전쟁 상황은 모든 것을 고갈시키면서 끝날 줄 몰랐고 통제는 극심했으며 미래는 점점 더 불확실해져 갔다. 이런 분위기는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이 전쟁의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던 주된 요인이었다.따라서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상상적 주제와 내용추구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던 시기로, 이 시기의 사람들(주로 다다이스트들)은 시위와 시낭송, 소음연주회, 미술전시회, 저술 등을 통하여 서구의 예술과 문학이 지니고 있던 전통과 편견을 공격하였다.이런 분위기는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전쟁 중 세계에 번지고 있던 병적인 흥분과 광기에 대한 반박을 오직 부정적, 무정부주의적이며 파괴적인 의도를 담은 형태로 표현했고 이성과 논리가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했으며, 유일한 구원의 길은 정치적 무정부주의적 상태와 본연의 감정, 직관적인 것과 비합리적인것 등에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점에서 그들의 사고방식은 칸딘스키의 내적 필연성, 즉 정신적인 것으로의 복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발단에 있어서는 부정적이고 비계1) 초기작품그림5. 라파엘풍의 긴목을 가진 자화상. 1920-1921. 유채소년기와 청년기의 초기 작품들에서부터 달리는 임파스토 기법이나 진동하는 듯한 붓놀림 등 어려운 회화 기법상의 문제도 쉽게 풀어버리는 풍부한 숙련성을 보여준다. 그림속의 빛으로 가득찬 화면에 나타나는 변형은 달리의 정신착란을 표현하기 위해 즐겨쓰여지던 화면이다. 달리는 스승인 피조트로부터 주황색과 보라색의 병치기법을 배웠는데, 이런 색상들은 초기 작품에서 많이 보인다. 자화상의 신비로운 모습은 라파엘에 동화된 상징주의적인 느낌을 주며 달리의 깊은 에고이즘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6. 소름의 시작, 1928특히 이 그림은 초기 작품들 중에서 완전히 초현실주의적인 성향을 띤 작품 중의 하나이다. 달걀 노른자처럼 끈끈하고 내장과 같이 부드러운 형태는 도망가는 선들, 글자, 그리고 숫자에 의해 표현된 엄격한 기하학적 공간의 도식 안에서 분배된다. 사물들의 정확한 표현과 재현된 내용 안에서의 비현실성의 혼합은 달리의 이후 모든 작품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한다.2) 중기작품a. 정신 착란의 그림그림7. 보이지 않는 남자, 1929~1933처음 예술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달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시와 이론적 주석을 발표하면서 회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였다. 이 글 중 몇몇 작품은 그의 초현실주의의 여러 특징과 유명한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일찍부터 예고하고 있다. 1929년 파리의 초현실주의에 가입하면서 그의 예술적 개성은 성숙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이 후 10년동안 달리는 이 운동에 전적으로 참여했으며 그의 화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그는 이 시기에 , , 와 같은 초현실주의의 공식적인 기관지에 정규적으로 글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때는 달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모델이며 뮤즈와도 같았던 갈라와의 관계가 시작되던 해이기도 했다. 특히 1930년대는 달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10년이었다. 이 때 그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표면화되는데 유연하게진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 사이의 혼동은 그 배경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이러한 이중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거의 불가사의한 상징이다.d. 꿈(dream)달리는 날카롭고 정밀한 소묘가 주된 역할을 하도록 물감을 단조롭고 적게 사용하고 다른 모든 기법을 포기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정밀함은 환상적인 주제와 대조를 이룬다. 이와 같은 역설적 표현은 20, 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많은 존경을 받은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환영적이고 기념비적인 도시의 그림에서 배운 것이며, 또한 카다케스의 꾸불꾸불한 절벽을 관찰하면서 배우게 된 것이다. 수평선의 암시가 인물들을 위협하는 이러한 텅 빈 풍경은 젊은 시기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빛으로 가득 찬 화면에 나타나는 정례식의 변형과도 같은 종류의 그림 안에서 달리의 정신 착란을 표현하기 위해 즐겨 쓰여지던 화면이다. 달리의 이미지는 비록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자유 연상에 의해 표현된다. 때때로 달리는 꿈을 거의 문학적으로 그렸는데 그러한 작품들은 잠에서 깨어나 캔버스에그림9. 초봄의 나날들, 1929옮기려 분투하는 화가에 의해서 기억되어져 다소 근거가 확실한 플롯으로 구성된 환영들이다. 종종 이러한 그림에서는 환영의 증인과도 같은 어린 소년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유년 시절로 회귀하려는 화가의 꿈과 잠재 의식의 비유로 나타난다. 달리는 형상을 다양한 오브제의 묘사로 대체하여 그림을 그린 16세기 매너리즘 화가 아르침몰도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이중 이미지 또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주제를 접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1933년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하였으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인용하면서 꿈의 내용을 적용시킨 완전한 예이다. 은 수평선과 원근법으로 처리된 두 개의 거대한 선 또는 레일에 의해서 결정된 공간의 분리, 그리고 유리와 같은 깨끗함과 이미지들의 자의성과의 대비는 어린 시절 꿈의결과이다. 절단된 배경과 풍경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형상들의 대비는 불협화음으로 표현다.
    예체능| 2010.12.30| 11페이지| 2,000원| 조회(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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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로병사의 비밀 활성산소편 정리 및 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생로병사의 비밀- 활성산소편비디오감상문??대학교 ??학부학번: 이름:올해 64살의 이복순씨는 계속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뼈가 살이 완전이 마비되는 것같아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관절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활성산소다. 의사는 활성산소가 많아지면 신생혈관물질들을 증가시켜서 관절염증을 악화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백내장은 수정체에 하얀 이물질이 껴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물질은 과산화지질로 이것 역시 활성산소가 그 원인이다. 활성산소는 안구의 불포화지방과 반응해 과산화지질을 만드는 것이다. 환자들은 활성산소가 2 ~ 10배정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활발한 물질교환을 활성산소가 막아서 이런 증상들이 생긴다. 외국의 한 여자는 피부암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달리기선수였는데 그 원인은 활성산소였다.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암의 여러요소 중에 활성산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몸의 대사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활성산소는 모든 염증질환을 포함한 자기면의 힘, 질환까지 유발하는 물질이다. 운동을 너무 과하게 하거나 하는 경우 활성산소가 생긴다. 이 활성산소는 노화와 암, 혈관질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것은 지질과 결합해 혈관을 막는다. 동맥경화가 이런 경우이다. 상처에 난 세균을 죽이는 과산화수소도 활성산소이다. 이처럼 활성산소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연령별로 활성산소량을 측정해보기로 했다.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대상인데 50대는 296으로 가장 많았고 40대 281 등 활성산소는 노화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수록 활성산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스트레스와 알코올에 관련된 것이므로 이런 것들의 섭취를 줄여야한다. 옛말에 “직업을 잘 골라야 오래산다” 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종교인의 평균수명이 79세로 가장 높았고 연예인과 정치인이 73세였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체육인이었다. 체육인은 평균 63세의 수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건강해야 할 체육인이 이렇게 평균수명이 낮은 걸까? 그 이유는 역시 활성산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체육인의 과도한 운동으로 인한 활성산소가 몸에 쌓여 체내에서 전달물질이 잘 전달되지 않아 몸이 나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활성산소는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어떤방법으로 제거할수 있을까? 축구선수들은 90분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 그들의 활성산소량을 측정하기로 했다. 그 대상은 미드필더. 체력소모가 많은 편이다. 축구처럼 과격한 운동은 활성산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선수들은 경기당일 활성산소량이 정상인보다 훨씬 많았고 기준치를 넘긴 선수들도 있었다. 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상범위보다 활성산소량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항산화제를 복용한다. 한 선수는 비타민 C나 셀레늄이 많이 들어있는 물질을 먹고 있다. 그는 그것들이 항산화작용이 뛰어난걸로 알고있기 때문에 자주 섭취한다고 한다. 노정근 선수도 항상 비타민C를 복용한다. 또한 냉장고에는 건강식품이 가득하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시에는 럭비구단이 있다. 럭비는 체력소모가 많은 경기이기도 하다. 연습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이온음료를 먼저 찾는다. 선수들의 피로회복을 위해 구단이 마련한 영양식으로 키위를 먹는다. 신선한 과일을 먹는 이유는 떨어진 에너지레벨을 회복하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항산화물질이 많은 껍질을 그대로 먹기도 하는데 항산화물질을 다로 복용하는 선수는 없었다. 키위뿐아니라 컬러가 있는 과일은 항산화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최근 암발생률이 늘어나는 가운데 과일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과일 중 사과의 폴리페놀은 대장암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다. 포도는 염증질환환자의 염증을 억제하고 껍질과 씨앗에 이런 성분이 많다고 한다. 배는 발암물질의 배출을 유도하고 단감은 간암세포의 발생을 줄인다고 한다. 취재진은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찾게되었다. 실험대상은 전립선암 32명이었는데 그들에게 3주동안 토마토소스를 섭취하게 한 것이 실험과정이었다. 3주 후, 암세포의 DNA손상도를 본 결과 무려 30%정도의 감소를 보였다. 주목할 만한것은 암세포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토마토소스를 먹은 시험군은 암세포가 훨씬 많이 죽어있는 것을 사신상에서도 볼 수 있었다. 과일의 항산화물질은 어떻게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걸까? 그래서 연구팀은 과일의 항산화능력을 보기위해 키위를 선택했다. 키위에는 비타민C가 높았다. 실험은 건강한 비흡연자 3개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양의 키위를 먹였다. 평소와 같은 식사를 하게하고 추가로 키위만 먹인 것이다. 6주 후 DNA손상정도와 혈장내 산화정도를 보았다. 키위의 섭취량이 많을수록 DNA손상의 복구가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키위의 섭취량에 상관없이 활성산소량이 모두 비슷하게 줄었다. 그래서 연구진은 식사에 키위를 첨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재 식이요법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활성산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항산화물질에 관련된 약을 팔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역시 자연식품이다. 그중 마늘 양파 미나리가 활성산소의 감소에 특히 좋았다는 연구가 있다. 마늘의 알리신은 체내의 B1과 결합하여 항산화작용과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특히 생마늘과 마늘장아찌의 항산화능력이 뛰어나다. 마늘이 많이 나는 지방의 주민들은 장수하는 편인데 그들은 마늘이 자신들의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그들은 후식도 마늘식혜로 먹는다.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특별한 이상은 달리 없었다. 91의 나이에 비하면 무척 건강한 편이다. 마늘처럼 항산화물질이 많은 농산물 산지들은 장수마을인 경우가 많다. 올해 나이 60세인 강모씨는 폐암3기를 진단받아 수술마저 불가능했다. 처음에 나온 외국 달리기 선수인 사라 크리스틴(뉴질랜드)는 악성 피부암을 진단받았고 김명헌씨는 대장암진단을 받았다. 이 세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암을 이겨내 제2의 삶을 살고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암을 이겨낸 투병과정이다. 생사를 넘나들던 암환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그들은 모두 현재 건강해보인다. 암투병중 가장 중요했던 건 식이요법, 그는 항상 식단에 항산화물질이 많은 것들을 먹었다. 부추와 브로콜리를 빼지 않았고 고추나 양파는 항상 먹었으며 청국장도 계속 먹었다. 그는 암 발생 이후 계속 이런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간식은 주로 제철에 나는 신선한 과일을 먹었다. 그가 암을 이겨낸 방법은 식단에 있었다. 그리고 약사였던 대장암환자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채식으로 대장암을 이겨냈다. 사라는 피부암을 진단받았고 그녀에게 선고된 3개월에서 5년이란 시간을 이겨냈다. 과일은 그녀의 밥이자 반찬이다. 서로 색깔이 다른 과일을 먹기 좋게 자르고 요구르트를 뿌리는 것으로 그녀의 아침은 끝난다. 과일과 야채가 최고의 식이요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라. 신선한 과일을 섭취하면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물질이 많기 때문에 내 몸이 균형을 찾게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과일을 아침에 꼭 먹인다. 학교를 통해 암예방물질이 뛰어난 과일을 무상공급하는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이런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정부뿐만이 아니라 과일이나 야채제공업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FIVE A DAY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에 5가지 이상의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자는 운동인데 이제까지 말한 것들이 바로 이런 프로그램과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것은 아이들이 과일을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아이들에게 과일섭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에서는 학교어린이들에게 과일을 먹기 위한 휴식시간까지 준다. 과일냉장고도 지급할 뿐만 아니라 과일의 중요성에 대한 미디어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CEO들에게도 이런것들의 중요성을 홍보하였고 그리하여 노르웨이는 현재 과일수요량이 크게 늘었다. 노르웨이의 과일은 전량수입되는 편이라 과일이 비싼데도 많은 사람들이 과일과 채소를 찾는다. 정부의 적극적이고 꾸준한 홍보가 노르웨이 사람들을 바꿔놨다. 마트의 한쪽엔 과일bar가 있다. 다양한 과일을 잘게 잘라서 놓고 종류에 관계없이 과일의 무게(g)에 따라 판다. 채식은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보약이다. 현재 알려진 질병이 대부분은 세포의 산화가 그 원인인데 그것은 결국 활성산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일과 채식은 활성산소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채식도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12.02| 3페이지| 1,000원| 조회(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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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경영기업사례- 버크셔 헤서웨이
    목 차Ⅰ. 서문Ⅱ. CEO의 윤리경영. Berkshire Hathaway1.기업윤리를 보는 관점2.굴지의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3.버크셔의 구성원들4.올바른 CEO의 표상, 워렌 버핏⑴ 윤리적인 행동을 장려하는 사내 분위기⑵ 공정한 세금납부⑶ 사회환원 정신5.버크셔의 위기. 힘든 선택들Ⅲ. 한국 기업윤리와 외국의 기업윤리1. 좋은 평판의 가치, 윤리의 가치2. 도요타의 사회공헌 시스템3. 한국기업의 윤리문제들과 앞으로의 방향Ⅳ. 결론Ⅴ. 출처Ⅰ. 서문: 시작하기에 앞서기업은 단순히 각각의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란 조직은 사회조직체 중 가장 많고 다양한 존재로,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개인과는 차원이 다르며 그 영향력은 단순히 경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이렇게 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관계로, 우리는 그들에게 개인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는데 현실에서는 윤리를 기업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는 많은 기업들은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윤리적인 이슈와 문제점들을 떠안고 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기업의 행동방향을 정할 때 경제적인 목적에 심취한 나머지 윤리적인 결단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 과거에는 기업의 윤리성을 검증할 만한 연구나 노력들도 적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오면서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으로 기업의 투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공정경쟁을 추구하는 세계화 흐름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성장만 해오던 기업들이 이제는 그들의 성장에 대한 분배와 책임의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자리 잡히고 기업은 오직 이익 추구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업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기업윤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으며, 는 일은 흔치 않다. 따라서 경영은 책임감 있는 개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경영진이 도덕적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이익만을 위해 기계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순식간에 그 기업은 비윤리적 기업으로 변질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업윤리에 있어서 경영자의 윤리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관계로 우리는 CEO의 윤리의식이 매우 확고하면서도, 매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워렌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Berkshire Hathaway)’에 대해 조사하게 되었다.2. 굴지의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연도연말주가($)버크셔 헤서웨이S&P차이196617.508.011.73.7196720.5015.730.915.219683782.711.071.71970397.13.911.019717079.515.664.919728014.318.94.619737111.314.83.519744043.726.417.31975385.037.242.2197694147.323.6123.7197713846.87.454.2197815713.86.47.41979320102.518.284.3198042532.832.30.5198156031.85.036.8198277538.421.417.01983131060.022.446.6198412752,76.18.81985247093.731.662.11986280214.218.64.4198729504.65.10.51988470059.316.642.71989867584.631.752.91990667523.13.120.01991905035.630.55.1199211,75029.87.622.2199316,32538.910.128.8199420,30025.01.329.7199532,10057.437.619.8199634,1006.223.016.8199746,00034.933.41.5199870,00052.228.634.6199956,10019.921.040.9200071,00026.69.135.7200175,6006.511.918.4200272,7503.822.986년에 버크셔의 CEO인 버펫이 회사용 제트기를 구입했을 때 찰스 멍거는 ‘이것은 주주의 이익을 좀먹는 괴물이야.’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이런 멍거의 반응에 버펫은 제트기를 자조적인 의미로 ‘인디펜서블(indefensible, 변명의 여지가 없는)호’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찰스는 제일 먼저 인디펜서블호를 팔아버리겠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버크셔의 조직원들과 간부들은 청렴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 기업의 이익보다 주주의 이익, 그리고 주주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4, 올바른 CEO의 표상, 워렌 버핏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가 선정한 존경받는 세계 100대 기업우리가 버크셔 헤서웨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기업의 CEO인 워렌 버핏이다. 그는 올바른 인품으로 윤리적 행동기준을 적극 준수하며, 건전한 윤리적 규율 안에서 기업경영의 성공을 추구한 대표적인 경영자이다. 우리는 기업을 하는 경영인으로서 개인적인 도덕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기업환경과 윤리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영자의 윤리는 가히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버크셔 헤서웨이의 경우에는 경영자인 워렌 버핏의 윤리관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버크셔 헤서웨이는 경영자의 올바른 기업윤리 방침에 따라 1996년, 투자보고서를 인터넷 상에 올려놓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지금도 투자자들이 월요일 아침, 증시개장에 앞서서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항상 보고서를 게시한다. 현재 버크셔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이런 투자보고서 이외에도 회사에 대한 솔직하고 정확한 정보 등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버크셔 헤서웨이는 솔직함과 투명성을 중시하고 있는 기업인 듯 하다. 이런 CEO를 가진 버크셔 해서웨이의 목표는, 영리추구를 하되 법률준수와 윤리적 기준의 한계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경영이다. 이런 점은 CEO인 워렌 버핏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재산기를 바랍니다.” 버핏은 직원을 뽑을 때도 두뇌나 에너지보다 성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기업윤리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을 채용하면 그 사람이 결국 회사를 망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버크셔 헤서웨이는 ‘부를 사회에 환원하라’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이념을 가장 잘 실천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CEO인 워렌버핏은 ‘나는 기업과 내가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곤 한다.’ 라고 말했다.두 번째로는 ‘세금은 공정하게 납부하고 불평은 하지마라.’ 라는 사례가 있다.버크셔는 2003년 매출에 대해 세금으로 33억달러를 재무부로 보냈다. 이 금액은 2003년도 미국 내 모든 기업들이 납부한 총 소득세의 2.5%에 해당하는 큰 돈으로 미국 전체 세금 납부액 순위 중 10위권 안에 든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미국 주식시장 가치의 1%정도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는 9,386쪽에 달하는 연방 소득세고지서에 의거하여 44억 달러의 세금을 납부 하였다. 한 신문은 ‘버크셔만큼 세금을 내는 기업이 600개만 있으면, 미국 내의 어떤 회사도 연방 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버크셔의 회계는 투명하며 영리를 추구하되 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세 번째 ‘관대하게 배풀라.’ 버크셔의 CEO인 워렌 버핏 개인의 자산 중 85%(310억 달러 외에 60억 달러가 여러 곳의 버핏 가족재단에 전달되었다.)를 가치 있는 일에 사용 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미국역사상 가장 헌신적인 행동이었다. 는 버핏과 게이츠의 협력을 평가하면서 새로운 ‘자선의 황금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버크셔는 ‘자선 활동을 활발히 하라.’라는 말을 해가며 많은 사회환원 활동을 하고 있다. 윤리적 경영에는 여려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고 경영자의 태도, 조직의 관행 및 토의 방식 등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기업윤리가 기업경영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조직차원에서생산권’들의 불매운동목표가 되었다. 판매원들과 고객들이 이 재생산권단체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에 관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출이 뚝 떨어졌다. 결국 버크셔는 자신들의 투자가 사회환원 프로그램의 파급효과 의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결국 그들은 자선 프로그램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버크셔 헤서웨이의 경영진들은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버크셔 헤서웨이라는 기업은 그렇게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버크셔 초기에 투자한 사람들 중 수백명이 이미 백만장자나 억만장자가 되어 있어서 회사의 자선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그 속에 속한 주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버크셔의 많은 투자자들이 그들의 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그들 자신의 단체나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한 예로 도널드와 마일드레드 탑 오스머는 1960년대 초 각각 2만 5,000달러를 투자했는데 1995년 도널드가 사망했을 때, 그는 약 7,000주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것은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또 1998년 마일드레드가 사망했을 때에는 자선단체에 7억 5,000만 달러가 넘어갔다. 이렇게 버크셔 헤서웨이는 CEO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과 투자자들조차 윤리적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Ⅲ. 한국 기업윤리와 외국의 기업윤리최근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윤리에 관련된 문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다. 주주대표소송, 소액주주운동, 공무원 뇌물방지법, 기업윤리 강령, 공익신고(내부자신고), 환경윤리 등 기업윤리와 관련된 말들이 자주 거론되고 여론과 시민들이 다 같이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윤리와 관련된 환경이 크게 바뀌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삶의 질이 중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회사의 이미지나 윤리적 행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기업은 비윤리적 행위로 인한 손실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게다가 여론과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최근, 기업들은 기업윤리에 없다.
    경영/경제| 2008.11.18| 12페이지| 3,000원| 조회(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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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속의 한국 미술교육
    목 차Ⅰ. 미술교육의 목적과 현재Ⅱ. 과거의 미술교육Ⅲ. 교육과정의 변화 및 문제가. 교육과정의 변천나. 우리 미술 교육의 문제Ⅳ. 우리나라와 프랑스 미술교육의 비교가. 프랑스의 교육제도나. 프랑스의 미술교육Ⅴ. 결론Ⅵ. 참고문헌Ⅰ. 미술교육의 목적과 현재미술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미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을 시각화 하는 창조력을 신장시킨다는 의미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소화해내는 통찰력을 갖춘다는 의미를 갖는다. 역사의 어지러운 변화 속에서도 예술은 시대보다 한 발 앞서서 가장 먼저 그 시대의 흐름을 직감하고 표현해왔다. 그러므로 미술 교육은 단순히 세상을 묘사하는 표현기술에 그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소화하기 위해 만든 교육이라 할 수 있다.천재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가 아니다. 우리는 범인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해내는 능력, 새로운 사고방식을 생각해내는 능력,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내는 능력이 갖춰졌을 때야 비로소 그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창작활동을 할 때 길러지는 것이며 그 중심에 미술교육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미국의 교육학자 로슨(D.Lawson)은 바람직한 미술교육의 목적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 각 개인의 성장 발달을 돕는 데 있다" 고 했다. 따라서 미술교육은 개인의 능력, 심리, 이상에 맞게 미술을 경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하게 미적쾌락을 위한 미술교육은 원래의 의미와 목적이 상실된 교육이라 볼 수 있겠다.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호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요즘 시대의 미술은 ‘보다 더 아름답게. 보다 더 세련되게’ 를 그 모토로 삼고 지극히 심미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정신적인 면만을 중요시하는 과거의 교육은 지금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지금의 미술 학도들은 로마시대 비너스 석고상이나 전통산수화가 아니라 뮤직비디오, 만화,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미적 안목을 키운다는다. 우리 사회의 예술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역시 저급한 수준의 교육을 부추겨 왔다. 사실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전개되었으나 미술 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현재 고등학교 교과과정 내에서의 미술교육은 소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의미 없는 교육일 뿐이다. 필수도 아니고 단지 점수만으로 평가할 뿐더러 그것이 공정하지도 못하다.또한 우리 미술교육역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그것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압축해내는 조건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외세의 간섭으로 무분별한 외국의 교육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미술교육은 사실 그 정체성이 의문스러울 정도로 비주체적이다. 우리는 서양의 미술교육을 맹신하여 그것을 충분히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은 채 그것이 진짜 현대적 예술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전통이 없는 현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미술교육에 대한 철학없이 서양의 미술교육을 형식적으로 따라하지 말아야한다, 전통 미술교육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나름의 정체성과 창의성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선진적 미술교육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Ⅱ. 과거의 미술교육과거의 미술교육은 통치 수단이었던 유교와 함께 발전하고 변형되었다. 또한 그러한 미술 문화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궁중이나 사대부, 또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졌다. 모든 계층이 미술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감상하며 비평을 하는 문화가 생활에 자연스럽게 뿌리박았음을 우리는 민화나 세화에서 알 수 있다.특히 외세의 침략에 의해 단절된 과거의 미술교육은 크게 세 부류로 묶을 수 있다.첫째, 일반 화가나 그림에 취미를 가진 사대부의 미술교육활동둘째, 성균관, 사학, 향교, 서당 등에서의 미술교육 활동셋째, 국가 기관인 도화서에 소속되어 그림업무를 보며 한 미술교육 활동넷째. 민화나 세화에서 스스로 깨닫는 활동.우리의 미술교육은 전수형식으로 기술이 중시되는 가운데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서양 또한 초기 미술교육은 ‘테크네’ 라고 불의 학원 미술 교육을 옛 사대부들과 도화서의 화가들이 본다면 식겁해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미술교육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계 전체의 문제인듯 싶다.지금부터는 우리나라 미술교육계가 시도한 형식적인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우리 미술교과과정이 가진 기본적인 문제들을 지적해보겠다.가. 교육과정의 변천일제 독립 후 시행된 미술교육은 공작실기 같은 실용위주의 교육이었다.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상적인 미술교육은 시행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1955년 되어서야 처음으로 교과별 교육과정이 제정되었다. 1956년 내한한 미국의 피바디(Peabody)교육사절단으로부터 전수된 창조주의 미술교육은 이 후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주 된 흐름이 된다. 피바디 사절단은 모방과 사생중심의 수업방식을 탈피하게 하였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경제개발과 반공 이데올로기 같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실용성을 강조하는 미술교육이 행해졌다. 80년대와 90년대부터는 개성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인간중심 교육이념이 강조되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연구단체들이 창설되어 미술교육이론에 대한 연구활동을 활발히 진행시켰다. 학습의 비중을 높인 교육론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된 건 80년대 이후부터이다.타 교과에 마찬가지로 미술 역시 사회적, 문화적 변천에 따라 개정되어져 왔다. 정부 수립 이후 시행된 총 7차의 교육과정은 국외의 이론적 흐름과 사회 정치적 변화와 연계하여 미술교육의 수업방식 및 평가기준을 변모시켰다. 초기의 실용 중심의 교육은 새로운 교육사조의 유입으로 창조주의 교육으로 전환된다. 제 7차 교육과정에서는 미술의 창조함과 더불어 이해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나. 미술교육의 실질적인 문제그렇다면 교과과정의 개정과 연구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 학교에서 실행되는 미술수업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현직 미술 교사의 주장에 따르면 제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미술교과서는 미술 수업에서 큰 쓸모를 거두지 못기1 주제 표현주제의 특징과 목적 등을 생각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기2 표현 방법평면과 입체의 특징을 생각하여 자유롭게 표현하기2 표현 방법평면과 입체의 특징을 생각하여 다양하게 표현하기2 표현 방법평면과 입체의 특징을 살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3 표현 방법평면과 입체의 특징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3 조형 요소와 원리조형 요소와 원리를 알고 다양하게 표현하기3 조형 요소와 원리조형 요소와 원리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3 조형 요소와 원리조형 요소와 원리를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4 표현 재료와 공구재료와 용구의 기본적인 사용 방법을 알고 표현하기3 조형 요소의 원리조형 요소와 원리를 알고 표현하기4 표현 재료와 공구재료와 용구의 특성을 탐색하여 표현하기4 표현 재료와 공구주제나 표현 방법에 알맞은 재료와 용구를 선택하여 활용하기4 표현 재료와 공구재료와 용구의 특성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기1 서로의 작품 감상작품의 표현 특징을 찾아 설명하기1 서로의 작품감상서로의 작품과 미술품에서 표현특징을 찾아 비교 설명하기1 서로의 작품 감상서로의 작품과 미술품의 미적 가치를 이해하고 판단하기2 미술품의 감상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미술품의 표현 특징을 찾아 설명하기2 미술품의 감상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미술 이해하기3 미술 문화유산 이해우리나라와 다른나라 미술의 툭성과 배경 이해하기1 서로의 작품감상작품을 보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2 미술품 감상우리고장과 우리나라의 미술품에흥미와 관심 가지기교과과정을 반영한 미술 교과서가 실제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데 교과과정의 개정은 말해서 무엇할까 싶다. 미술교사들은 일관된 수업을 위해, 보다 실용적인 교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교과서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교과서의 활용횟수를 줄인 자율적인 수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미술교사의 역량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미술수업은 지적 영역에서 몹시 취약하다. 별다른 이해 없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학생들에게 미술에 대한 낮은 인식을 유발한다. 현재의 교과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해 인격체를 완성시킨다는 목적을 지닌 대중적 미술교육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예술가의 육성을 국가의 존재가치와 연결시키는 국가적 차원의 사고방식에서 그들은 우리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가.프랑스의 교육제도프랑스 교육은 우리와 비교할 때 교육에 대한 사고방식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학생의 학습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방학을 6개로 나누어 시행하며 초, 중학교의 경우 수요일에는 수업이 없다. 대신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문화, 예체능프로그램이 정규 수업을 대체한다. 문화, 예체능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정서적 휴식 및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재능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행되는 것이라고 한다. 수업에서는 교사의 자율성이 중요시된다. 즉 프랑스의 수업은 교과서의 비중이 낮으며 수업방식을 정하는 것은 교사의 권한이다. 교사는 교과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청각자료 및 보조 자료를 활용하여 수업을 이끌어 나간다.나.프랑스의 미술교육과정미술교육의 교과 과정은 미학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미술수업에서는 예술적 창작과 조형실습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지식 습득과 타 과목과의 연계 역시 강조하고 있다. 예술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문화를 습득하게 하는 것이 프랑스에서 미술교육을 실시하는 이유이다. 프랑스의 미술교육과정은 초, 중등학교의 각 단계 별 차이는 있으나, 주된 영역으로는 ‘조형예술실습’, ‘예술, 문화적인 지식의 습득’. ‘작품 소개 및 설명’ 등이며 몇 개의 하위영역으로 나누어진다.표-2 초, 중학교 미술 교육의 주요 영역 및 하부 영역주요 영역하부 영역1. 조형실습관련 영역?다양한 재료와 테크닉, 도구 등을 발견하고 사용하기표현효과를 전제로 모든 재료를 사용하여 테크닉 구사하기형태, 색깔, 재료, 오브제, 이미지들의 조형 방식 찾아내기여러 장르의 예술과 빈번히 접촉하기자신의 고유한 작업 방식 구축하기2. 지식습득(예술,문화)관련 영역?미술 작품 및 미술가들과 친숙해지기미술가들의 작업 방식의 제 양상 이해하기 된다.
    예체능| 2008.10.21| 11페이지| 3,000원| 조회(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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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와 직업윤리
    목 차Ⅰ. 서문: 희망직업이 미술작가인 이유Ⅱ. 본문1. 현 미술시장과 작가들의 상황2. 작가 ‘낸시 랭’3. 미술작가가 가져야 할 윤리의식들과 문제점⑴표절⑵미술계 권력의 상하구조4. 예술가가 되기 위하여Ⅲ. 마치며Ⅳ. 출 처Ⅰ. 서문: 희망직업이 미술작가인 이유본인이 희망하는 직업이 미술작가인 이유는 내가 미술이라는 분야를 가장 좋아하고 아끼기 때문이다. 직업선택의 일반원칙에는 ‘자신이 원하고, 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골라야 한다’ 라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을 굳이 적용시켜 보자면, 내가 원하고, 나에게 맞는 직업이 바로 미술작가인 것이다. 물론 내 마음 속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거나 예술을 향한 폭발적인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미술을 취미로 즐기기에는 나에겐 일반인보다는 많은 미적, 기술적 재능들이 있고 그것을 감당할 능력도 어느 정도는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따라서 이런 내가 위의 능력들을 가지고 미술작가라는 직업을 가진다면, 다른 직업을 가졌을 때의 결과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것은 내가 예술가라는 사실은 곧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서 크거나 작거나 일정수준의 도움은 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미술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는 것은 직업윤리정신에 부합하는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이제 예술가는 장래성 있는 직업이 되었다. 과거 보릿고개 시절, 예술가는 흔한 속된말로 ‘춥고 배고픈 직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삶이 풍요로워지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서 사람들은 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부유한 경제인에서부터 일반 대중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예술을 향유하고 있고. 신문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그림가격이 최고치를 갱신했다는 기사가 뜬다, 또한 TV에서는 이 레포트를 읽고 있는 지금도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기업에서조차 기업을 대표하는 이미지나 상징그림으로 상대회사와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렇게 시대가 요구하 자랑한다. 또한 그들의 작품은 세계 미술계의 발전, 아니 넓게는 인류 문화의 발전을 가져온다. 그래서 나는 많은 보수와 명예, 혹은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내가 가진 재능 중 최고의 것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미술적 재능이었다. 가까운 미래, 내가 미술작가를 한다면 내 속에 숨겨진 개성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얻는 것 뿐만 아니라 높은 가격대의 작품을 만들어낼 약간의 가능성까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고, 중소기업CEO에 맞먹는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다. 높은 보수와 자아실현, 그리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미술작가란 직업. 이것은 분명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으로 보였고 나는 그것이 되기 위해 오늘도 매진하고 있다.Ⅱ. 본문1. 현 미술시장과 작가들의 상황요즘 많은 사람들이 미술시장을 기웃거린다. 돈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만원 이상 하는 미술품은 보통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미술을 사랑하는 작은 마음으로 30만원 가량 하는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세계에는 미술품에 대한 소유와 미술에 대한 감성과 기쁨이 함께 존재한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이 세계다. 이렇게 적은 돈을 가지고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가고 있다. 인터넷 경매를 통한 미술품 판매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하루에 20점 가량의 작품이 경매상한가인(최고가인) 즉시구매가에 판매되고 있다’ 고 한다. 인터넷 경매사이트는 억대의 그림들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최소 십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의 그림들을 파는 곳이다. 어찌보면 슈퍼마켓의 저가상품들 중에서 좀 우수한 것들을 모아서 파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까지 남김없이 경매 상한가에 판매되는 것을 보면 요즘의 미술품 구매 열풍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런 작은 시장 뿐 아니라 세계시장도 미술과의 사랑에 빠져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세계적 미술품 경매회되기도 한다. K옥션에서 올해 5월까지 경매 결과를 분석하여 10번 이상 낙찰된 작가 25명의 가격 상승률을 보여주는 ‘가격변동지수’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에서 한번 팔렸던 작가들의 작품가격이 5년간 약 2.5~3배로 상승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파른 가격상승에 힘입어 미술품투자펀드까지 생겨났다. 결국, 미술이라는 것은 과거에는 종교나 신화와 함께 인류의 역사에 섞여 존재해 왔기 때문에 엄숙하고 고달프며 철학적이거나 어려운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미술=돈‘ 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미술품을 재테크의 방법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등 미술시장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와 범위가 커지고 있다. 이제 ’춥고 배고픈 작가’라는 수식어는 끝났다. 미술을 전공해도 밥값정도는 벌 수 있게 되었으며 학벌보다는 자신의 능력이 평가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이런 미술작가들의 지원과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은 미술작가를 희망하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수 없겠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인 의식주가 해결된 지금, 이런 미술세계의 낙관적 상황은 당분간 계속 될 듯하다.2. 닮고 싶은 작가. 낸시 랭초대받지 않은 비엔날레에서'꿈과 갈등‘ 터부 요기니 시리즈낸시랭. 그녀는 '걸어다니는 팝아트'라고 불리는 행위예술가다. 그녀의 나이는 불과 30살,나와 6살 차이일 뿐으로, 아직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 미술계와 미디어에서 뜨거운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 그것이 설령 비방과 거품일지라도 말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나 3세때 한국으로 왔고 필리핀 마닐라의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홍익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그녀는 팝아티스트로서 쌈지, 대구 동아백화점 등 기업체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또한 광고·패션모델,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이런 평범한 작가소개 말고 하나의 흥미있는 이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일이다. 이것은 그녀의 일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굉장히 무겁고 어려웠다. 그러나 낸시랭,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은 보다 쉽고 상업적이며 대중 친화적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늘 평행선을 달린다. 한 부류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고 그녀의 행동에 열광하며 , 한 부류는 그녀를 매우 혐오해서 그 두 집단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싫어하는 한 부류인 고고한 비평가들은 'I love dollars'를 외치는 그녀에게 그녀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폐해라며, 그것은 예술이 아닌 그저 저급예술쓰레기(키치)일 뿐이라고 한다. 또 어떤 대중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터부'를 깨는 그녀의 몸짓에 통괘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열광한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과감한 노출이 들어간 퍼포먼스와 '아트(art)'를 좋아하는 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세상이 무엇이라 말하든,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적이 되어 자기를 상처 입히던지 간에 그녀만의 목소리를 낸다. 말더듬이 웅변가나 말 못하는 벙어리나 결국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가가 할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는 점에서는 일반인이나 벙어리나 매한가지이니 그렇게 억눌려있을 바엔 차라리 속시원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을 하는 태도’는 호감이 가는 편이다. 그녀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말했다."'Just be yourself, dream and go for it.'(네 자신이 되라. 꿈을 향해 나가라).이건 그녀의 작품 속에 항상 있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네 자신이 되라.’ 이것은 어떻게 보면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복제의 유혹과 아름다운 이미지들 사이에서 추하거나 저급하거나 혹은 부끄러운 그대로의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되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녀가 비키니를 입던 아예 벗던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니까. 사람은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소중한 존들에게 무언가를 배울 때, 그것은 영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가자신이 다른 사람들 것을 베낄 때, 그것은 오마주라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남이 그렇게 하면 그것은 표절이 된다. 그러나 그 당사자가 자신이 되는 순간 인간의 관점이 얼마나 유연한지 우리는 그 최대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아직 작가가 되지 않은 나에게는 그저 하나의 해프닝이고 즐거운 안주거리일 뿐이지만 일선에 나가있는 작가들에게는 큰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는 바야흐로 이미지 시대이다. 이미지가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 수많은 이미지들을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얻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작금의 작가들은 표절의 유혹에 과거보다 쉽게 노출되고 그만큼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위험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지의 홍수로 인해 각각의 이미지의 출처와 사용 구분이 어렵게 되자, 작가들은 슬슬 그 많은 이미지중 하나를 선택하여 살짝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작품을 내기 시작했고. 남이 만들거나 찍은 이미지를 무단도용해서 쓰기도 했다. 예술가라는 사람이 타인의 작품을 베껴서 자신의 창작물인 양 하는 것은 분명히 표절이라는 부도덕한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누구도 혼자서 모든 것을 배우지는 못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은 아주 작은 성취감에 만족한다면 모를까 그 누구도 창조주가 아닌 이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그림을 보고, 조언자를 찾는다. 다른 사람의 작품, 특히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에 감탄하기도 하고 자문을 구해보기도 한다. 그렇다. 예술가던 대통령이던,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다. 이것은 가장 자연스럽게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아기에는 누구나가 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을 보면서 말하기와 걷기를 배웠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예술가라는 걸음마를 떼고서 그가 얼마나 멀리 걷는가이다.
    예체능| 2008.10.21| 8페이지| 3,000원| 조회(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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