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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키 로빈슨
    42 Jackie RobinsonM L B연 수입 70 억 달러 한화 7 조 5 천억 선수 평균연봉 : 250 만 달러 한화 27 억 세계최고의 야구시장 M L B 시장 규모흑인 선수 비율은 전체 선수의 약 10%재키 로빈슨 ( Jackie Robinson)브렌츠 리키와 재키 로빈슨 “ 인종적인 모욕을 당하더라도 화를 삭일 수 있겠느냐 ?” “ 흑인들이 맞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 맞서 싸우기를 참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인종 장벽을 넘어서다최초의 최고의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 1947 년 ~1956 년 2 루수로 활약하며 타율 .311,137 홈런 1,518 안타 데뷔 첫 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1949 년 MVP 와 타격왕 ( 타율 0.342) 흑인 최초 명의전당 헌액재키 로빈슨 데이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15.01.04| 10페이지| 1,000원| 조회(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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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근현대사와 나의 가족사 - 한국 경제사를 초점으로 본 우리 가족사
    한국 근현대사와 나의 가족사- 한국 경제사를 초점으로 본 우리 가족사Ⅰ. 시작하는 글Ⅱ. 1960년대 아버지의 삶.Ⅱ-1. 경제 개발 5개년 계획Ⅲ. 1970~80년대 어머니 아버지의 삶Ⅳ. 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 성장과 나와 형의 탄생Ⅴ. 1990년대 IMF경제위기와 우리가족의 시련 그리고 성장.Ⅵ. 마치는 글Ⅰ. 시작하는 글과제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과연 한국사와 나의 가족사의 연관성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먼저 떠안게 되었다. 역사는 올곧지 못한 길을 걸어왔다. 만약 한 사람이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그 인생을 걸어가게 된다면 다른 역경과 시련을 겪은 이들처럼 더 많은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어 보고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의 삶이나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인 것 같다. 큰 숲을 먼저 보자면 한국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결코 순탄치 못했다. 온갖 시련과 역경, 아픔을 겪었으며 그를 통해 점점 나아가고 성장했다. 우리 내 삶도 역사의 축소판이다. 사람들의 인생이 늘 순탄하다면 더 나은 성장을 하기 쉽지 않다. 이렇듯 역사가 지나온 모진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은 역사의 열차를 탄 승객들과 같다고 생각한다.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나의 가족들은 어떤 시련과 역경을 겪었는지, 어떠한 성장과 발전과정을 겪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번 과제의 요점이라는 생각이 든다.Ⅱ. 1960년대 아버지의 삶우리 아버지는 1958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8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나셨다. 당시 한국 사회는 이승만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진보당 사건조작, 신 국가 보안법 통과를 하던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지만 해방 후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시기였다. 이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밭일은 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몸저 누워계셨고 할머니는 막내아들인 아버지를 낳고 바로 새벽에는 장에 나가서 잡일을 돕고 오후에는 밭일을 하며 홀로 힘겹게 8남매를 키우고 계셨던지라 당시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더라 하는 관심이 있기 보다는 당장에 다음 끼니를 때울 걱정부터 하셨다고 한다. 보릿고개 때마다 무같은 야채들은 솥에 넣고 푹 끓여서 밥 대신 끼니를 대신하던 날이 태반이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9살이 되던 1966년 할아버지는 병상에서 일어나시지 못하고 결국 돌아가셨다.Ⅱ-1.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그 당시 한국사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로 경제 개발 계획이 시행되어지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경제 성장률은 매년 10% 안팎에 이를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했으며, 정부는 외국의 자본을 들여와 많은 공장을 건립하였고, 이에 따라 고용과 수출도 해마다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정부는 농업 생산력의 증가와 주요 국가 산업의 확보,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노력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공업화와 경제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당시 너무 어렸던 아버지를 제외하고 큰아버지와 고모는 대도시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그 돈을 상주 고향집에 보내줘서 그나마 할머니와 아버지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다들 성인이 되어가면서 대게 학업을 중 고등학교에서 포기하고는 부산이나 서울 등으로 가서 공장이나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 안 형편이 여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중학교 교복을 살돈이 없어서 할머니께서 바지에 물을 들여서 입고가라고 했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학교에 가지 않고 동네 뒷산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하셨단다.Ⅲ. 1970~80년대 어머니 아버지의 삶아버지와 달리 1966년생이셨던 어머니는 3남매 중 장녀로 인천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인천에서 작은 철물점을 하시면서 3남매를 키우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좀 더 여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셨다. 당시 한국 사회는 단 기간에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이러한 성장의 와중에도 노동자들의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인당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73년 8.6시간에서 80년 9.1시간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상위소득자 20%가 차지하는 소득점유율은 1970년 41.8%에서 1980년 46.7%로 증가하였다. 전태일의 분신과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반영하고 있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학업을 포기하고 전봇대와 전기 관련되는 일을 하셨다. 당시를 떠올리시던 아버지는 굉장히 고되고 힘든 하루들이었다고 하신다. 받는 임금에 반해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 일을 하셨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감전의 위험을 딛고 일했지만 안전장비가 턱 없이 부족해서 상당히 위험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에 놀라운 경제 성장에는 수많은 아버지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Ⅳ. 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성장과 나와 형의 탄생1989년은 우리 형이 태어났고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는 내가 태어난 해이다. 이 당시 1986~88년 동안 한국사회는 저 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3저 호황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률이 12%에 달하는 대호황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석유 파동 이후로 자리 잡은 한국의 중산층은 이 시기 현저히 증가했으며, 이들을 위시한 서민층의 구매력 증가와 전두환 정권의 3S정책이 시너지를 이루며 컬러 방송, 자가용 자동차 증가, 프로 스포츠 등의 민수 경제활동과 문화산업이 크게 증가했다. 이 시기에 맞물려 아버지는 전기 설비 회사를 설립하시게 되고 경제호황과 맞물려 사업은 굉장히 번창하게 되었다. 과거에 어렵고 힘들게 보내던 자신의 유년시절과 다르게 우리를 키우려했던 부모님은 나와 형에게 많은 것을 해주려고 노력하셨고 유복하고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 낼 수 있었다.Ⅴ. IMF경제위기와 우리가족의 시련 그리고 성장.아버지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해가고 있을 무렵, 한국은 IMF경제 위기를 직면하게 된다. 세계 경제침체에 따른 수출의 부진과 국내 경기 침체 그리고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의 증가 등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전기관련 설비 사업을 하시고 계시던 아버지는 한 순간에 힘들게 일궈오시던 사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동료사업자와의 금전적인 문제로 한 순간에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우리 집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금전적 문제로 살고 있던 집에서 예전에 할머니가 사시던 집으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곳에 가셔서 일을 하셔야 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외가 쪽과의 경제적 문제로 다투시는 날이 잦았다. 이로 인해 어머니가 집을 비우시는 일이 많았다. 운동선수로 합숙 생활을 하던 형이었기에 나는 거의 매일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IMF를 극복하는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 자율화 정책, 대기업을 각 기업으로 독립시키는 구조조정을 단행, IT 육성정책, 신용카드 정책,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IMF 2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경제지표상으로 실업률을 제외하고 성장·물가·경상수지 등에서 전반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주가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아졌고 금리는 낮아졌으며 환율도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1998년에 급속하게 내수가 위축되면서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1999년 들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회복속도를 보이며 두 자리 수 성장을 바라볼 정도였다. 1998년 무역수지 흑자가 390억 달러로 사상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1999년에도 239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 국민들은 더욱 힘을 모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대한민국의 외채를 갚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기부해 전국 누계 약 350만 명이 참여한 이 운동으로 약 227톤의 금이 모아져 세계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금모으기 운동은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했다. 이때 나와 형의 돌 반지도 금모우기 운동의 일환이 되었다. IMF위기 이전에 당시에 어렸었지만 가족과 함께 있다는 소중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나였다, 하지만 서서히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면서 우리가족도 전보다 더욱 끈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밤늦게 일을 하고 오셔서 내게 밥을 먹었느냐고 늘 물어보았다. 출근길에 나가시면서 항상 냉장고에 몇 번째 어디에 무슨 반찬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면서 걱정했다. 밤늦게 홀로 침대에 누워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뛰쳐나가서 어머니와 아버지 품에 안기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한 지붕아래 사는 가족이 같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에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가를 알게 해주었다. 이 시기 이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투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힘든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했던 금모으기 운동처럼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서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아갔고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다른 외적인 긍정적인 것들을 여러 가지 얻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으로서나 우리 가족으로서나 말이다.
    인문/어학| 2015.01.04| 5페이지| 2,000원| 조회(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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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츠 카프카 '변신'을 읽고 - 나는 변하지 못해 변신해버렸다. 평가A좋아요
    나는 변하지 못해 변신해버렸다.-변화와 변신을 중심으로 본 카프카의 『변신』I. 들어가는 말변신과 변화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에는 조금이나마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두 단어는 사용하는 곳이 전혀 다르다.『변신』작품을 보면 이 두 단어가 명확히 구분되는데,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한 것을 그레고르의 변화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다소 어색하다. 또한 그레고르의 변신한 후에 가족의 변화를 가족의 변신이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어색하다. 그렇기 때문에『변신』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을 ‘변신’과 ‘변화’를 중심으로 작품에서 그레고르는 왜 변신되어졌고, 가족들은 왜 그레고르의 변신에 대해서 어떻게 변화되어졌고, 또한 그것들을 통해서 어떤 결말을 가져오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II. 변하지 못하고 변신되어진 그레고르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변화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잠자는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되어졌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곤충으로 변신되어 진 것으로 생각된다. 과연카프카는, ‘잠자를 괴물로 변신시키는 것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져오려고 하였을까’이다. 잠자처럼 사느니 벌레처럼 사는 것이 나았기 때문에 잠자에게 해방의 수단으로써 벌레로 변신시킨 것인가, 아니면 잠자의 삶 자체가 벌레같은 삶이었기에 벌레로 변신시킨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함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12쪽)로 카프카의 소설『변신』은 시작한다. 그전에 어느 언급도 아무 이유도 없이 잠자는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물론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인간이 벌레로 변신할 수는 없다.『변신』에서 주인공의 변신은 작가의 의도를 담은 채 아무런 원인도 없이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신에 대해서 잠자가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14-15쪽) 라고 말하며, 해충으로 변한 자신을 매우 놀라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도 직장을 걱정한다. 그리고 잠자가 지배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뒤 하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자, 지배인님 보시다시피 저는 고집불통이 아니고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이 힘들기는 해도 여행하지 않고는 먹고 살지 못합니다. (...) 저는 사장님께 의무가 아주 많습니다, 지배인님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저는 부모님과 누이 걱정을 해야 합니다. 저는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겁니다. 허나 다시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애쓸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더 어렵게 만드시지는 마십시오.”(35쪽) 그레고르는 오히려 곤충으로 변신하기 전에는 지배인에게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요목조목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할뿐더러 오히려 지금의 모습을 약간의 감기나 몸살 걸린 정도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맨 앞에서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신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단순히 그레고르라는 인물이 감기 등의 이유로 휴가를 얻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그레고르에게 있어서 곤충으로의 변신은 하나의 도피이자 휴식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탈적인 행동에서 지배인에 대한 자신감도 엿보이고 오히려 즐기는 듯 한 모습까지도 보인다.『변신』에서 그레고르가 가지고 있는 직장과 일, 반복되는 일상과 지겨운 삶에 대한 탈출의 욕망이 곤충으로 변하면서 실현되는 것 같다. 외형적 변신이 그레고르 내면에도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스스로 곤충으로 변신했다고 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탈출은 그레고르가 진정하게 바라왔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곤충으로 변신한 후에 그레고르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어 점차적으로 고립되어간다. 언어적으로 자신을 표한 하지 못하고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탈출과 해방이라고 할 수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내면보다 외적인 것을 중시하는 차가운 얼음덩이리 같은 삶 속에서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일하는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해 노릇을 하던 그레고르의 변신은 그들에게 상당히 두렵고 무서운 처사였다. 그레고르에 대한 걱정인가, 생계에 대한 걱정인가? 가족들의 변화는 아들 그레고르에 대한 행동적 변화, 심적 변화, 능력적 변화 등을 보인다. 이러한 그레고르의 변신 자체를 가족에 대한 반란이라고 보고, 이러한 반란 진압의 수단으로써 가족들의 변화를 들어서 이것을 하나의 대립구도를 형성한다.“후일 그레고르가 돈을 많이 벌어, 온식구의 낭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감당하기도 했건만 말이다. 사람들이 익숙해졌던 것이다. 식구들이나 그레고르 역시도, 식구들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기꺼이 가져다주었으나, 특별한 따뜻함은 더 이상 우러나지 않았다.”(52쪽) 이것은 그레고르의 가족에 대해서 변신 전후의 행동에 대한 단서로써 볼 수 있다. 왜 가족은 그레고르의 변신을 하게 됨으로써, 그렇게 소중했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태도를 달리하게 되었고, 이러한 아들을 잃음으로써 하나의 변화를 하게 된 것이냐에 대한 단서이다. 앞에 글에 나와 있듯이 가족들은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아들의 경제적인 능력에 대해서 익숙해져버렸다. 익숙해졌다는 것은 타성에 빠졌다는 것인데, 타성이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법이다. 즉, 가족들은 이러한 익숙해져있는 상황에서 그레고르를 단순히 하나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신들을 부양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이러한 도구의 상실은 자신들의 경제력을 위해 자신들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인간의 소외, 인간에게 있어서 금전적인 도구로 전락을 보여주고 있다.그레고르는 변신을 통해서 가족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변신 전 그레고르에 의해서 가족들이 부양되어졌다면,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신하면서 가족에게 기생하는 존재가 되어진 것이다.IV. 액자와 또 다른 변화「그때 그는 벌써 비어버린 벽에 온통 털옷에 감싸인 여자의 사진이 눈에 띄게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급히 기어올라가 액자 유리에다 몸을 찰싹 붙였는데, 유리는 그를 꽉 잡아주었고 앞에서 잠깐 언급된다.「포장이 끌러진 옷감 견본이 펼쳐져 있는 책상 위에는 책상 위에는 그가 얼마 전에 어떤 화보 잡지에서 오려내어 예쁜 도금 액자에 넣어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떤 여자의 모습이었는데 털모자에 털목도리를 두르고 꼿꼿이 앉아 팔꿈치까지 온통 팔을 감싼 묵직한 털 토시를 보는 사람 눈앞에 치켜들고 있었다.」그레고르의 책상에는 옷감 견본과 이 액자가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옷감 견본은 그의 직업을 의미하는 내용이며 이에 대비 되어서 나타난 액자는 하나의 그의 취미이자 이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책상 위에 중요한 물건을 놔두는 것처럼 그레고르에게 있어서 이 액자는 곤충으로 변신하기 이전에도 중요한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화보 잡지에서 오려 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취미로 추측되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여성이 이상형이었음을 추측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그의 변신 이전에 중요한 물건이었던 이 액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의해서 없어질 위기에 놓이게 되고, 그레고르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겁을 주게 되며, 아버지로 하여금 공격의 명분을 주게 된다. 그만큼 이 액자는 그레고르에게 있어서 소중한 물건이었음과 동시에, 인간으로써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으로써의 모습의 그레고르를 아버지는 하나의 동물로써 위협으로 보았고, 결국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인간으로써 회귀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드러냈지만 가족들은 변화한 모습을 통해 그레고르의 경제적 공백을 이미 메꾸었기 때문에, 또한 아버지의 평화라고까지 그레고르의 인간으로써의 회귀는 이제는 새롭게 형성된 가족의 평화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어진 것이다. 이 액자로 인해서 아버지에게 사과로 공격당한 그레고르는 큰 부상을 입게 되고, 결국은 죽음까지도 이르게 된다.V.하숙인들의 의미와 그로 인한 변화「그런데도 누이동생은 참 아름답게 연주했다. 누이의 얼굴은 옆으로 숙여지 있고,을 들고 자기 방으로 좀 들어와 달라는 암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이것은 액자 이후로 하나의 그레고르에게 있어서 마지막 인간으로써의 저항으로 볼 수 있다. 그레고르는 곤충으로 변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에 대한 애정은 간직하고 있었으며, 바이올린 연주로 대표되는 예술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곤충으로써의 변신에 대한 최종적 인간으로의 회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있어서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역할을 사라져 있는 상황이었다.「“잠자 씨!” 가운데 신사가 아버지에게 소리치며, 다음 말을 못 잇고 둘째손가락으로,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레고르를 가리켰다. 바이올린 소리가 그쳤고, 가운데 하숙인은 처음에는 한번 머리를 흔들며 자기 친구들을 보고 웃더니 다시 그레고르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몰아내는 대신 하숙인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긴 것 같았다. 하숙인들은 전혀 흥분하지 않았으며 바이올린 연주보다는 그레고르가 한결 흥미롭다는 듯했는데도(...) 」하숙인은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다. 그들로 인하여 그레고르가 없음에도 가족들은 어느 정도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즉, 경제력을 상실한 아들인 그레고르보다 자신들의 경제력을 보충해줄 하숙인들이 더 소중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레고르는 예술과 누이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하숙인들을 보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나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자리찾기의 행위는 오히려 자신의 편이었던 누이동생과 어머니마저 반감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경제력을 되찾은 상황에서 그레고르는 하나의 벌레일 뿐이었고 이 벌레로 인해서 자신들의 경제력을 다시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편, 하숙인들은 경제력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특이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러한 경제력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바이올린 소리에도 감흥을 느끼진 못하지만, 곤충인 그레고르에게 있어서는 흥미로워한다는 점
    독후감/창작| 2015.01.04| 6페이지| 1,500원| 조회(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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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서전 - 에세이 : 보고 싶고 그립고 되돌리고 싶은 하지만 나아가야만 하는...
    보고 싶고 그립고 되돌리고 싶은하지만 나아가야만 하는...들어가는 말나는 유명한 사람들의 자서전처럼, 무언가 특별한 일들을 화려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 그런데 난 유명하지도, 무언가 특별히 큰일들도 없는데 말이다. 나의 자서전을 거창하고 화려하게 쓸 필요 있을까? 그냥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래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이 지난날 떠오르는 것들을 그때의 시각에서 또 지금의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이렇게 마음먹으니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걱정보다는 오히려 좋은 기회일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나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나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지? 그땐 왜 그랬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정말 오랜만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거 같다. 군대 있을 때는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다짐도 했었습니다. 막상 전역하고 나서는 그때의 그 각오는 온데간데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잊고 시간에 제 몸을 맞기면서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아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엔 꿈도 많았고 누구 앞에서도 제 꿈은 뭐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용기도 있었는데 그땐 뭐든지 될 수 있을 거 같았고 세상이 만만해보였다고 해야 되나 여하튼 쉬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제 자신과 타협해가면서 그러한 꿈도 점점 작아졌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지난 나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나를 계획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세상을 박차고 나오다!경북 ㅇㅇ 1988년 6월 20일 새벽, 내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형 다음으로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난 나는 처음부터 삶의 시작이 평탄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심신중격결손이라는 질병을 가지고 시골 종합병원에서 태어난 나는 병원에서 어렵다고 했다. 평소 점잖으시던 아버지는 병원에서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한참을 소리치며 자리를황을 나는 기억하진 못하지만 부모님께 들은 바로는 당시 시골의 작은 병원은 나의 출생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뻐하기보다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고생 많았다고 몸조리 잘하라고” 엄마에게 말씀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시집와서 할머니께 칭찬 받은 건 그때가 첨이라고 하셨다. 형을 낳았을 때도 그런 말씀 없으셨던 할머니였다. 나는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랐다. 아니, 모든 이들의 아슬아슬한 걱정 속에 과하게 보호받고 자랐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바빴고 나는 할머니 손에서 컸고 항상 할머니 등에 업혀 생활하고 할머니 화장실 갈 때도 다리를 잡고 안 놔줬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 일이지만 나도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과자 사달라고 조르던 생각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가는 것을 즐겼다. 동네 한 바퀴 돌면 동네 사람들에게 이쁨도 받고 과자도 많이 먹었다.청천벽력언제부터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태어났던 병원 병실에서 할머니 옆에 붙어서 매일 누워서 TV를 보았다. 할머니가 아파할 때 TV앞에 서서 개다리춤을 추며 할머니를 다시 웃게 했다. 짓궂으셨던 할머니는 내 고추 보자고 날 쫒아 다녔고 그래서 난 도망 다녔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병실에 누워계신 뒤부터 할머니는 그럴 기력이 없었던 같다. 어린 마음에 이제 나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아프다던 할머니 팔을 잡고 침대 밖으로 잡아당기던 바보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고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명절날에나 모일 온 친인척들이 할머니가 계신 병실에 찾아왔다. 키 큰 어른들 사이로 까치발을 들고 할머니 얼굴을 보려고 껑충껑충 뛰어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힘없이 처진 손가락으로 내게 오라고 손짓하셨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말씀 없으셨다. 그 때 내가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한말은 “할매, 메로나 사줘 메로나!”라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더 이상 손자한테 메로나를 못 사주는 먼 곳으로 떠나가셨할머니와 걸어 다녔던 길, 자주 갔던 동네 작은 가게, 특히 할머니가 제일 좋아 하시던 홍시는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먹을거리중 하나가 되어있다. 또 지금 내가 어른을 대하는 태도나 어른에 대한 마음가짐은 아마 우리 할머니 동네 많은 어른들을 대하면서 쌓여진 거 같다. 나는 그런 경험이 아주 값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와 생활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어른을 공경하지도 못했을 수도, 어른을 어려워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봉사활동을 가더라도 어린이집 보다는 양노원가는 것이 좋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이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이를 악물어도 소용없다.어릴 적 기억 중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은 많이 나지만 유독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빠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고 그때 엄마의 모습은 항상 순종적인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쭉 의존했던 나약하고 더군다나 몸이 허약한 나를 아빠는 나를 강하게 키우고 싶으셨나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시내에 전원빌라로 이사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지하게 어두운 밤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셨다. 밖에 슈퍼에 나가서 ‘안성탕면 3봉지’를 사오라고 하셨다. 깜깜한 밤에 혼자서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집 화장실을 갈 때 도 할머니 손을 잡고 꼭 붙잡고 갔다. 대소변을 보면서 할머니와 말이 끊어질까 계속해서 말을 걸었던 나였다. 가기 싫다던 나를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셨다. 이 와중에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형이 얄미웠다. ‘내가 형이라면 얼른 다녀오겠다고 나섰을 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기도 전에 눈물 콧물을 다 흘렸다. 현관을 나서 기전에 이미 반 실신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슈퍼까지 한 150m정도 되었을까? 마치 나에게는 천릿길처럼 느껴졌다. 현관을 나서서 1층에 내려오자마자 자동 등이 활짝 켜져 뒤로 고꾸라져버렸다. 바로 벌떡 일어나서 눈물을 휘날리며 뛰기 시작했다. 돈 5천원을 손에 꼭 쥔 마나 웃겼을까? 집으로 돌아오려고 슈퍼 문을 나섰을 때 내 각오는 비장했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겪고 돌아오는 군인처럼 라면을 끌어안고 내달렸다. 돌아오는 길은 좀 더 편안했다. 내 마음 속에 있던 큰 담 하나를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무슨 대단한 업적을 세운 위인처럼 당당하게 라면을 엄마 손에 쥐어줬다.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엄마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TV를 보던 아빠, 아빠도 내심 뿌듯해 하셨겠지..,불장난유치원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다시피한 동네 부랄 친구가 3명이 있다. 나까지 4명이서 온 동네를 휘졌고 다녔었다. 여름엔 동네 앞 냇가에 가서 물장난하고 겨울엔 큰 깡통에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4명이 몰려다니면서 사과 서리 같은 소소한 말썽은 피고 다녔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그날 이전까지는 말이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크게 사고 친 기억이다. 둥글고 큰 달이 밤하늘을 훤하게 비추고 있었고, 우리는 깡통에 나뭇가지를 채워 놓고 불을 붙여 돌리고 있었다. 그때는 돌리면 돌릴수록 선명해지는 불기둥이 신기했고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참을 돌리다가 팔이 아프면 깡통을 멀리 던져 버렸다 그때 깡통에서 밤하늘로 흩어져 쏟아져 나오는 불꽃의 잔해들. 지금의 불꽃놀이보다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근데 더 이상 불꽃이 아니었다. 화재로 번지기 시작했다. 불이 우리 키 보다 커질 때까지 꺌꺌대며 웃기만 했다. 우리는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혼날까봐 우리는 친구네 집 창고에 숨어있었고, 불은 인근 소방차가 와서야 겨우 꺼졌다. 경찰이 오고 동네가 난리가 났다. 경찰과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찾느라 난리였고 우리는 겁에 질려 정신없이 창고 구석에서 꼭 숨어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빠한테 회초리를 맞았었다.처음으로 경찰서도 가봤다. 그때 경찰관이 우리 감옥 간다고 얼마나 겁을 줬던지 우린 그 경찰서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얼마나 울었던지 정말 무서웠었다. 그땐 부모님들이 잘 해결해 주셨지만 제일 좋다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집은 멀었지만 ‘자전거의 도시’ 상주답게 자전거를 타고 매일 아침 30분을 내달렸다. 처음 학교생활도 힘이 들었고 도통 마음을 잡을 수 없었지만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것은 공부였다. 힘이 들었다 열심히 했는데 원하는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점점 뒤쳐져 가는 느낌만 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공부는 잘 했는데 아니었나? 다른 친구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 난 세상이 내가 태어난 그곳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던 거 같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 대부분 다른 고등학교로 흩어지고 과거 ‘슈퍼 심부름’처럼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사춘기였구나 싶다. 모든 것이 싫었다. 학교도 싫었고 내가 처해 있는 상황도 싫었다. 공부도 부질없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그때 난 너무 외로웠다.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전거를 열심히 밟아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차려준 식은 밥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었다. 답답했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어!” 그냥 얘기하고 싶었다. 그 때문인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발버둥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모님 걱정하실까 어려움을 애써 감추려하고 강인해보이려고 늘 노력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그에게 짐이 되고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힘들었고, 힘든 이들에게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그들에게 짐이 되리라는 강박관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내 마음 속 상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해 어쩌면 잊고 있었던 상처를 방치해 두었기 때문에 그토록 불안하고 힘들었나보다. 늘 누군가와 잘 어
    독후감/창작| 2015.01.04| 5페이지| 2,000원| 조회(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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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시 연수구청의 물 관리 -관리 현황 및 문제점과 해결방안-
    인천시 연수구청의 물 관리-관리 현황 및 문제점과 해결방안-1. 시작하는 글 - 연수구의 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2. 환경보전과의 물 관련 세부 업무1) 상수도 식수 관리 및 수질오염원 검사 및 관리2) 하천 관리3) 오수 및 단독정화조 관리4) 각 종 환경지도 및 주민참여프로그램 실시3. 연수구청 물 관련 산업의 문제점과 해결책1) 일반 시민의 물 관련 업무에 대한 접근성에 대한 아쉬움2) 업무의 비효율적 분담1. 시작하는 글 - 연수구의 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지방자치단체에서 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어디인가? 처음 생각 해봤을 때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주민 센터를 가거나 시구청 등을 방문할 때 우리에게 익숙한 부서는 민원업무 담당 부서나 세무부서, 주민복지과 등이다. 과제를 계기를 연수구청 홈페이지를 뒤적이다가 환경보전과가 지자체내의 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라는 것을 알았다.작년에 휴학을 하고 상주시 계림동주민 센터에서 업무보조로 1년 일을 했지만 물과 관련된 민원을 본 적이 잘 없어서 친숙하지 않은 부서이다. 그만큼 일반시민에게는 익숙지 않은 부서임에는 틀림없다. 얼핏 기억나기로 관할 동 하천 청소를 하는 날이 한 달에 한 두 번씩 있었는데 그 때 시청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환경보전과 직원들이었다. 그럼 일반 시민들이 잘 모르거나 혹은 관심이 없는 환경보전과가 하고 있는 물과 관련된 업무가 무엇인지 알아보자.2. 환경보전과의 물 관련 세부 업무연수구청 환경보전과에는 총 18명의 공무원 개인별로 다양한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물론, 물 관련 업무 뿐만아니라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다음으로 환경과에서 전담하는 업무를 나열해 보았다.-먹는물공동시설 관리-환경영향평가 및 사전환경성 검토-습지관리보호지역-환경배출시설 인/허가 및 지도 점검-수렵면허-야생동식물 보호-환경개선비용부담금 부과/징수-저탄소 녹색성장-도시농업-기후변화 대응 관련 사업-친환경제품구매 촉진-자동차 배출가스 단속 및 과태료 처분-기본 및 초과배출부과금 부과 관리-악취관련업무-석면피해구제제도-승기천 생태하천 관리-비산먼지 및 특정공사 신고관련-오수처리시설 설치 및 준공-공중화장실 관리-분뇨 등 관련업체 점검1) 상수도 식수 관리 및 수질오염원 검사 및 관리상수도 식수관리수질오염원 관리 강화수질오염원 관리○환경오염사고 방제작업용 장비구입ο 유흡착제(패드형)ο 방제작업용 보호장비(작업복 등)○환경오염물질 처리비용○환경감시 모니터링요원 간담회○저수조청소업체 및 유독물사업장 간담회○폐수 시료 채취용 무균채수병ο 무균채수병ο 유리병약수터 관리○약수터 성적서 코팅지 구입○약수터 자외선살균소독기 전기요금○약수터 유지 관리○약수터 수질검사용 무균 채수병출처: 연수구청 홈페이지 세출예산사업명세서이 자료는 연수구청 홈페이지 세출예산사업명세서에서 상수도 식수관리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예산지출의 상세내역은 제외하고 예산항목만을 나열한 표이다. 그리고 공원이 많은 연수구에는 여러 개의 약수터가 있다. 이런 약수터를 포함한 여러 음용지하수에 대한 수질검사나 관리 또한 환경보전과가 담당하고 있다. 매월 각 약수터의 수질검사를 실시하고 있고 이를 연수구청 홈페이지에 개시하고 있다. 다음은 수질검사 결과를 구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약수터 수질검사 결과(10월)◈ 검사기관 : 인천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 채수일자 : 2013.10.10(다음 채수예정일 11.13)◈ 검사주기 : 매 월약수터명항목일반세균총대장균군분 원 성대장균군암모니아성 질 소질 산 성질 소과망간산칼륨소비량여시니아판 정기준100CFU/㎖이하불검출/100㎖불검출/100㎖0.5㎎/L이하10㎎/L이하10㎎/L이하불검출/2L호 불 사350불검출불검출불검출1.3불검출불검출기준부적합병풍바위8검출불검출불검출2.3불검출불검출기준부적합포 망 골36불검출불검출불검출3.4불검출불검출적 합팔 각 정87검출검출불검출4.2불검출불검출기준부적합청 학 사1불검출불검출불검출5.1불검출불검출적 합베 겟 골32검출검출불검출4.1불검출불검출기준부적합산 우 물19검출검출불검출5.6불검출불검출기준부적합청 우4검출불검출불검출4.3불검출불검출기준부적합오 부 자3검출불검출불검출1.41.3불검출기준부적합검사로 인해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터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여진다.경 고 문○ 약수터명 : 호불사 외 6개 약수터위 7개 약수터는 연수구의 10월 수질검사결과 아래와 같이 먹는데 부적합하여 사용을 중지하였습니다. 이 물을 계속하여 음용할 경우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수질기준에 적합할 때까지 사용을 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아 래1. 검사일자 : 2013. 10. 102. 검사결과 : 부적합3. 검사기관 : 인천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2013 . 10. 18인천광역시 연수구청장관리자 : 인천광역시연수구 환경보전과 환경관리팀(전화번호 : 032-749-7901)2) 하천 관리연수구에는 남동구와 연수구를 가로지르는 승기천이 하나있다. 하천의 길이는 약 10여 km이고 이를 연수구청 환경 보전과에서는 승기천과 관련된 수질이나 유지 관리 또한 담당하고 있다.3) 오수 및 단독정화조 관리연수구에서는 총 3명의 공무원이 오수 및 정화조 관리를 하고 있다. 총 3명의 공무원이 아래와 같은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폐수 배출시설의 허가·신고 및 변경○ 폐수 배출업소 지도점검 및 시료채취○ 오수관리팀 업무 전반 지도, 관리○ 분뇨 등 관련 영업허가○ 분뇨 등 관련업체 지도.점검○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 처리 기본계획수립○ 분뇨 등 관련업체 지도점검○ 청소안내 관련업무○ 정화조오니 반입 및 수거실적 관리○ 가축분뇨배출시설 관련 업무 등 민원처리○ 분뇨 등 관련업무 타시도협조 업무○ 오수관리팀 예산 및 서무관련업무○ 오수관련 전산관리 업무○ 오수처리시설 등 설치 및 준공신고 업무○ 오수처리시설 등 변경 및 폐쇄신고 업무○ 오수처리시설 등 지도·점검○ 오수관련 생활민원처리○ 공중화장실 관리 및 지도 점검○ 건축물 증축, 용도변경 등 처리용량 관련 협의○정화조 청소업체 간담회4) 각 종 환경지도 및 주민참여프로그램 실시위에서 말한 업무 외에도 환경보전과는 물 환경과 관련해서 여러 지도 업무 및 주민 참여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기타수질오염원 지도점검 및 행정처분○ 환경오염사고 총괄 관리○ 대기ㆍ수질 상황실 운영 및 관리○ 환경오염사고 수습 및 사후 조치주민참여프로그램의 한 예로서 ‘승기천 정화사업 실시설계’ 주민 설명회가 있다. 이는인천 구월동 농수산물도매시장과 남동유수지까지 도심 6.2km를 관통하는 승기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는 사업으로서 주민들의 여러 의견을 수렴해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일부 시민들은 승기천 양쪽 공간에 자전거도로,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각종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했다. 반면 환경단체 쪽은 인위적인 시설물을 최대한 배제한 순수한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구청은 여러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민주적으로 물 관련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3. 연수구청 물 관련 업무의 문제점과 해결책1) 일반 시민의 물 관련 업무에 대한 접근성에 대한 아쉬움과제를 계기로 처음으로 지자체 물 관련 업무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관련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젊은 학생이나 웹서핑에 능한 사람이라면 관련 업무나 공고, 게시물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이라면 정보를 얻기가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이 먹는 물의 수질과 관련된 공고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약수터를 찾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많을 텐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고 수질검사 관련 용어 또한 어렵다. 다음 자료는 인터넷 기사를 가져온 것으로 이 문제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수질검사 4년 된 약수 등산객 물 먹이는 건가? 2012년 04월 18일 (수)뱀사골 등 폐쇄대상 불구 안내간판 수년째 방치해▲ 인천시 연수구 청량산 연수올레길에 자리잡은 뱀사골Ⅰ약수터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4년 전인 2008년 4월 15일 연수구청의 의뢰를 받은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의 수질검사 성적표가 부착돼 있어 등산객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인천시 연수구의 진산인 청량산이 당국의 부실한 약수터 관리로 신음하고 있다. 약수가 나오는 약수터는 수질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제 구실을 못하는 약수터에는 4년 전 실시한 수질검사표가 여전히 부착돼 있어 등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자연과학| 2015.01.04| 6페이지| 2,000원| 조회(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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