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ures of Being a StudentSchool days are said to be the happiest days of life and being a student can be the most exhilarating time. However, life as a student is not just enjoyable but really challenging. Being a student is serious thing to do. Students do face particular worries which load on the pressure. And of the worries, relationship problems are the most common concern among students. Students get pressures from relationship with parents, friends, and teachers.
어셔 가의 몰락-에드가 엘런 포우 지음그의 심장은 줄을 꼭 조여 놓은 류트줄을 건드리자마자 이에 응답한다.-드 베랑제(프랑스 시인 삐에르-장 드 베랑제(1780~1857)의 시 [거부(1831)]에 나오는 구절. 포우는 원래의 시에 '나의 심장'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그의 심장'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음산하고 어둡고도 조용하던 가을 어느 날, 구름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낮게 하늘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혼자서 말을 달려 유난히도 쓸쓸한 시골 길을 지나 땅거미가 드리워지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음울한 어셔 가의 저택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저택을 처음 보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울적한 감정이 내 영혼을 압도하였다. 견딜 수 없다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시적인 기질로 인해 어느 정도까지는 유쾌해질 수 있는감정을 갖고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황량하거나 무시무시한 것이 제아무리 준엄한 자연의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마음은 이를 보통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택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그처럼 어느 정도까지 유쾌해질 수 있는 감정을 갖고 있더라도 풀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광경에 시선을 주었다. 덩그런 한 채의 저택과 저택 주변의 간 소한 경관, 황량한 담, 멍한 표정의 눈과 같은 창, 몇 포기의 무성한 사초,몇 그루 되지 않는 쇠잔한 나무의 줄기들에 시선을 주었을 때, 나의 영혼 은 완전히 억눌린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그때의 느낌은 우리가 세상에서느끼는 어떤 느낌과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편 중독자가 약 기운이 사라져 고통스럽게도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했을 때의 느낌, 고통을 가리던 장막이 끔찍하게도 걷혀졌을 때 아편 중독자가 갖는 느낌과 비교한다면 그래도 비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은 차디차게 얼어붙 고 가라앉은 동시에 아픔에 젖어, 또한 생각은 채울 수 없을 정도롤 쓸쓸해져, 아무리 억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더라도 주인 앞으로 안내하였다.내가 들어간 방은 매우 넓었으며 천장도 높았다. 창문들은 길고 좁았으며 바깥쪽으로 돌출해 있었다. 그 창문들은 검은색의 떡갈나무로 된 마루로부터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안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심홍색의 희미한 빛이 격자형의 창문을 비집고 흘러 들어오고 있어서, 주위의 물건들 가운데 창문보다 크기가 큰 것은 충분히 구분해 낼 수 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방안 저쪽 구석이나 격자 무늬로 장식한 반 원형의 천장은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벽에는 어두운 색의 장막이 드리워 져 있었으며, 방안에는 잡다한 가구들이 수없이 많았따. 가구들은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 고색창연한 모양의 낡고 해진 것들이었다. 수많은 책과 악기가 어수선하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지만, 방의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지는 못했다. 슬픔의 분위기를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엄숙하고 심오하며 어찌하기 어려운 침울한 분위기가 방안을 감돌고 있었고 어디에든 깊이 스며 있었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어셔는 다리를 펴고 길게 누워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쾌할함이 넘치는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었따. 그런데 쾌할함이 넘치는 그의 따뜻한 표정을 대했을 때 그 안에 짐짓 지어낸 듯한 친절함 -인간사에 권태로움을 느낀 사람이 억지로 꾸며낸 듯한 친절함- 이 상당 부분 배어 있다는 느낌을 나는 처음에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나는 그것이 완전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잠시 연민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로데릭 어셔처럼 그토록 짧은 세월에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모습이 변해 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눈앞의 이 창백한 사나이가 내 어린 소년시절의 친구였다니, 도저히 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눈에 띄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예나 지덮고 있었던 것이다.마치 메카에서 자신의 몸을 천으로 감싸고 있는 이슬람 교도들처럼, 나는 언제나 어셔 가의 주인과 함께 단둘이서 보낸 그와 같은 수많은 엄숙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내 주위에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끌어들이거나 인도하여 함께 행했던 연구나 작업이 정확하게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제아무리 생각으로 정리하여 전달하고자 해도, 그런 나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흥분하여 극도로 광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든 대상 위에 유황불과도 같은 퍼런 광휘를 던졌던 것이다. 그의 길다란 즉흥적 만가들은 영원히 내 귀에 울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폰 베버의 마지막 월츠(폰 베버의 마지막 월츠는 고트리 프 라이시거(1798~1859)가 독일의 작곡가 칼 마리아 폰 웨버(1786~1826)를 기념하여 작곡한 곡임. 한편 폰 웨버는 초자연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음악을 작곡한 사람으로 유명함.)]의 격정적인 선율을 나름대로 기묘하게 뒤틀고 확장시키던 그의 연주는 고통스럽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한편, 그의 정교한 상상력이 깃들어 있던 그림들을 또한 그가 붓을 대면 댈수록 점점 더 모호해지던 그림들(그런 그림들의 모호함에 나는 몸 서리를 쳤는데, 이유를 모르면서 몸서리를 치는 바람에 더욱더 섬뜩하게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을 놓고, 나는 단순한 언어적 표현이라는 영역 안에 담을 수 있는 적은 분량의 의미 이상의 것을 끌어 내려고 헛되이 애를 쓰곤 하였다. 이들 그림에 담겨 있던 영상들이 지금도 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름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 구도를 극도로 단순화시키고 또한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는 보는 사람의 주의를 사로 잡고 압도하였다. 만일 그림으로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며ㅛ, 그는 바로 로데릭 어셔일 것이다. 당시 내가 처해 있던 환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화폭 위에 솜씨있게 투사해 놓은 순수 추상들로부터 견디기 비히 티에크(1773~1853) 는 독일의 작가로 [낡은 책과 푸른 창공으로의 여행]의 저자. 이 작품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그린 것임. 또바쏘 깜빠넬라(1568~1639)는 이탈리아의 신부이자 철학자로 [태양의 도시]라는 유토피아 소설의 저자) 어셔가 특히 좋아했던 책은 도미니크 파의 신부인 에이메릭 데 기론느의 [종교 재판 지침서]라는 조그마한 8절판 책이었으며, 폼페니우스 멜라의 저 작 중에 있는 고대 아프리카의 사티로스와 에기판스에 관한 대목들도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꿈에 취한 듯 앉아서 탐독하곤 했다.(에이메릭 데 기론 네(1320?~1399)는 스페인의 종교 재판관으로, 종교 재판 때의 고문을 다른 논문인 [종교 재판 지침서]의 저자. 뽐뽀니우스 멜라는 1세기 로마의 지리 학자로, 고대 세계의 지리에 관한 책인 [지지학]의 저자. 이 책에 전설상의 동물에 대한 설명이 나옴. 싸티로스는 숲 속의 정령으로,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이고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음. 에기판스는 희랍 신화에 등장하는 판 의 별칭.)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고딕체의 사절판으로 된 아주 희귀하고 기묘한 책인 [메이엔스 교회 성가대에 따른 사자를 위한 철야 의 식](확인이 불가능한 책. 그러나 사자를 대신하여 참회하는 의식을 기록한 유사한 종류의 저술들이 중세 시대에 많이 출간되었음. -본문의 작가명과 작품명이 역주와 다른 것은 포우의 기억력 착오이거나 식자공이 범한 오류 였을 것으로 추측된다.-)을 정독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어셔가 갑작스럽게 나에게 매들린 부인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나서, 최후로 매장하기 전에 14일 동안 시신을 저 택의 주벽 안쪽에 있는 수많은 지하실 안에 보관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 다. 바로 그때 나는 앞서 말한 책에 기록된 야만적 의식과 그것이 이 우울증 환자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속적인 것을 들 먹이며 이와 같은 기이한 의식 절차를 치루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놓고 나 는 한가롭게줄 테니 들어 봐. 그러면서 이 무시무시한 밤을 우리 함께 보내도록 하지." 네가 손에 든 고서는 란슬로트 캐닝 경의 [어지러운 약속 장소](이 책은 실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임. 포우 자신이 꾸며 낸 것일 가능성이 높음)였다. 나는 그 책을 어셔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진심에서 한 말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장난으로 한 말이었다. 사실 이 책의 장황 한 내용은 투박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내 친구와 같이 고귀하고 영적인 상상력을 지닌 사람의 흥미를 끌만한 것이 거기에는 별로 없다. 그러나 그 책이 그때 가까운 곳에 있던 유일한 책이었다. 그래서, 내 가 읽어 주는 멍청한 이야기를 듣는 사이, 현재 이 우울병 환자를 안절부 절 못하게 만드는 흥분 상태가 혹시 가라앉지나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질환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식의 이례적인 변칙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가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극도로 생기에 차서 내가 읽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판단되었다고 하자. 사실 그렇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면 내 계획이 성공적이었다는 것 때문에 당연히 자축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쎌레드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은둔자가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가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다음 마침내 폭력을 사용하 여 억지로 들어가려는 이야기가 나오는 그 유명한 부분에 이르렀다. 여기 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천성적으로도 용맹스럽지만 그가 퍼마신 술 기운 덕택에 더욱 더 힘이 솟아 있던 에쎌레드는 진실로 고집불통에다가 악의에 찬 은둔자와 담판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더라. 때마침 어깨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고 에쎌레드는 폭풍우가 불어닥칠 것이 걱정도 되었더라. 그리하여 즉각 철퇴를 치켜들어 문을 몇 번 후려갈기니 순식 간에 장갑을 낀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겼더라. 기운차게 구멍에 손을 밀어 넣고 닥치는 대로 .
Geoffrey chaucer (1342~3 - 1400.10.25)‘영시의 아버지’라 불리 우는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중세 영국 최대의 시인으로 근대 영시의 창시자이다. 초서의 시대제프리 초서가 살던 시기인 14세기 중세의 사상은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중세 영국은 귀족계급과 일반 평민 계층, 둘 사이의 어떤 계급도 인식하지 못했고, 그 신분은 태어나면서 동시에 결정이 되어버리는 것이었으며 신분 상승의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 와중에 중산계급층은 거대하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이 계층이 지속적으로 귀족계층에 편입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산계급층이 바로 제프리 초서가 속해있던 계층 이었다.초서의 생애초서는 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궁정에 출사하였으며, 아버지의 교육적 열의에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자랐지만, 런던의 실제 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그는 유년기서부터 중세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또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능숙했다. 궁정생활 도중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는데, 프랑스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당시나 그 이전의 중요 서적들과 상당히 친숙해 있음을 알 수 있다. 1357년에는 에드워드 3세의 제3왕자 라이오널(Lionel)의 부인 전속 시동(侍童)이 되었다. 백년전쟁에 종군하여 1359년 프랑스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이듬해 사면되어 귀국하여 궁정에서 위사(衛士)ㆍ방패 봉지자(捧持者) 등으로 근무했다. 그는 아내 필리프(1387년 사망)의 연줄로 제4왕자 존(John)의 권고(眷顧)를 평생 받았다. 1372∼1373년에는 특명을 받아 제노아 및 피렌체에 갔었다. 이때 아마 보카치오 및 페트라르카와 회담한 것으로 추측된다. 1376년 런던 항(港) 세관의 감시관에 임명되었다. 1376년과 이듬해에는 첩보(諜報) 임무를 띠고 프란드르로 가고, 1378년에는 프랑스 및 롬바르디아의 대사관부(附)가 되었다. 1388년에는 켄트주(州) 보안 판사가 되고, 이듬해 세관을 사직하고 켄트주 선출 국회의원이 되었다. 1388년 4월 켄터버리 순례를 하고, 이후에도 바쁜 공직생활을 했다. 그는 에드워드 3세ㆍ존 오브 곤트ㆍ리처드 2세 및 헨리 4세로부터 연금을 받았으며,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회당(會堂)에 묻히고, 1555년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초서의 문학적 생애와 그의 작품경향.【초서의 문학적 생애】제1기(1359∼1372)궁정을 중심으로 성했던 프랑스문학을 라틴문학과 함께 배우고, 특히 의 영향을 받아 이것을 영역(英譯)한 시대이며, 프랑스기(期)라고 일컫는다. 8철(綴) 2행 연구(聯句)를 자주 썼으며, 1369년 흑사병 때문에 부인을 잃은 존 오브 곤트에게 바친 (1369∼1370)이 있다. 이는 중세 프랑스 시에 유행한 사랑의 꿈 이야기의 우의시(寓意詩)이다. 그 밖에 마리아에의 기도의 시 《AㆍBㆍC》(1370) (1370)가 있다.제2기(1372∼1386)특히 단테와 보카치오의 영향이 짙은 시대로, 이탈리아기(期)라고 한다. 주로 영웅시형(弱强 5시각) 7행련(聯), 즉 ‘군주련(君主聯)’을 사용하고, 또한 영웅대운구(英雄對韻句)를 쓰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에 영향받은 야심적 사랑의 꿈 이야기 (미완성.1372∼1380?), 한 마리의 암매(雌鷹)에 대한 수컷의 싸움을 중심으로 성(聖) 발렌타인일(日) 배우자 선택의 광경을 그린 , 처음으로 이탈리아적 내용이 완전히 소화되어 그의 것이 된 (1382∼1386), 사랑에 순사(殉死)한 부인의 이야기 (1385∼1386.10명을 썼을 뿐 미완성) 및 보에티우스의 의 번역 등이 있다.제3기(1386∼1400)영국기(期)로 불려지는 완성기이며, 그의 최대 걸작 ((1393-1400.미완성)가 나왔다. 그는 이 작품을 단속적(斷續的)으로 죽을 때까지 썼다. 이것은 당대 영국의 실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 사회ㆍ인상에 대한 그의 깊은 경험과 원숙한 심경에서 우러나와 만들어진 것으로, 그 날카롭고 넓은 인간성의 통찰ㆍ풍부한 해학, 그리고 이것을 표현하는 만화경 같은 필치는 뒤에 오는 영국문학의 가장 우수한 요소를 남김없이 현시(顯示)하고 있다. 언어사적으로 보면, 혼돈되고, 방언투성이인 중세 후기의 영어에 일정한 문학적 표준어를 주어 통일된 영어의 기초를 구축한 것은 이탈리아어에서 단테의 업적에 비할 만하다. 또 상대(上代) 영국시의 두운법(頭韻法)을 떠나 오늘날의 프랑스풍의 운율법을 영국 시단에 확립한 것은 비길 데 없는 위대한 공적이다.초서에 이르러 비로소 영국문학은 유럽 대륙문학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고, 대륙의 사조와 더불어 움직이기 시작하게 되었다.【초서의 작품경향】초서는 군인ㆍ외교관ㆍ세관 감사관ㆍ공사 감독ㆍ임무관(林務官) 등의 공직을 다양하게 거쳤고 그 경험에서 얻은 인간 이해의 넓이와 깊이가, 그의 후기 작품에 보이는 현실주의적인 인간관에 잘 나타나 있다. 습작(習作)시절에는, 주로 G.마쇼, E.데샹, J.프루아사르의 작품들과 등, 당시 궁정에서 유행하였던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받아 그 스스로도 의 영역(英譯)을 시도하였고, 그 번역된 단편이 지금도 남아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1564. 4. 26 ∼ 1616. 4. 23세계 연극사상 최대의 극작가이며 영국문학사를 장식하는 대시인1. 셰익스피어의 생애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한 위대한 문호이다. 18세기 이래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발전했고, 모든 비평원리의 선례로 이용되며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 극이 배우의 등용문으로 되어 있다.셰익스피어는 영국 르네상스의 정점인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의 중부지방에 있는 워릭셔의 스트래퍼드 온 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반농반상으로 한때는 공직에도 재직했으며 어머니는 농가의 딸로 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장남이었다. 아버지가 1568년 읍장으로 선출 되어 유복한 시민의 아들로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며 마을의 문법학교에서 공부했으나 13세 때 집안이 몰락하여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8세 때 8살 연상인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으나 그들은 모두 요절, 18세기 이후 그들의 자손은 단절된 것으로 추측된다. 셰익스피어의 소년시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이 없고 연극과의 관계도 분명치 않으며 런던으로 나온 이유나 연대도 자세하지 않다. 런던 시절 배우로서의 생활은 1580년대 말로 추정된다. 런던의 극장 고용원이 되어 어깨너머로 연극이나 문학에 대한 소질을 익혔다. 레스터 백작 밑에서 일을 하다가 엘리자베스 1세 사망 이후 배우 단에 가담하여 무대에도 출연하는 한편, 상연용 각본을 가필하는 극단 전속작가로 근무하다가 차차 독립하여 희곡작가가 되었다. 1590년부터 약 20년 동안 극작에 전념하여 모두 37편을 발표하는 등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 1608년부터 창작력이 쇠퇴하여 1611년에 [눈보라]를 끝으로 붓을 꺾고 고향으로 은퇴하여 평화스런 여생을 보내다가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지만 인간심리의 통찰에는 깊은 안목을 가졌고, 완성과정에 있던 근대영어의 잠재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시극미의 최고를 창조했다. 그의 희곡은 총 36편이며 시집은 3권을 남겨 극 시인으로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며, 영국이 식민지를 모두 포기한다 해도 셰익스피어를 지킨다고 자랑할 만큼 그는 영국의 자존심이었다.2. 작품과 시대구분제1기: 습작시대 (1590~1594)이 시기의 희곡은 후기희곡에 비해 작품의 토대가 된 원전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플롯은 극적 구조 속에 통합된 것이 아니라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다. 언어도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나 진행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격구, 말장난, 미사여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이 시기에는 , , , 이렇게3편의 희극을 썼다. 특히 에는 후기 낭만 희극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사용했다. 아름답고 꿈 같은 숲의 장면과 남장여자가 바로 그것이다.이 시기의 사극은 모두 영국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다. 3부작 역사극 [헨리 6세]를 그의 처녀작으로 보고 있다. 그 속편에 해당하는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에 많은 영향을 준 요크가와 랭커스터가의 싸움인 장미전쟁(1455-85)의 최종단계를 그린 것으로 주인공 리처드 3세를 창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의 유일한 비극인 는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가 자신의 딸을 능욕한 자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하는 내용이다.제 2기 : 역사극과 희극의 완성기 (1595~1600)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사극과 낭만 희극을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전시켰다. 이 때부터 셰익스피어는 다양한 사건을 하나의 플롯 속에 짜 넣은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긍정적인 사고가 작품을 지배하고 있던 때이어서, 이 시기에 쓴 비극은 뿐이었고 본격적인 비극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극에 나타나는 비극성은 후기 비극들처럼 인간의 타고난 비극적 결함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저 여러 가지 우연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운명적인 비극이다. 따라서 인간 내면의 탐구나 깊은 철학은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순수한 청춘남녀의 지고한 사랑이 아름다운 대사와 장면 속에 그려져 있어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다.이 시기에 쓰여진 사극 , , 는 내용이 서로 이어지는 역사 사실을 다룬 작품이다. 이 외의 사극으로는 줄리어스 시저의 암살 전후의 내용을 다룬 로마 사극 가 있다.[리처드 2세]: 시인기질이 있으며 자기도취적인 국왕이 수많은 고난을 겪고 비극의 주인공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극.[한여름 밤의 꿈]: 아테네 교외에서 밤의 숲을 무대로 환상의 세계를 그린 낭만적인 희극.[헨리 4세]: 대표적인 역사극으로 리처드 2세한테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성립한 헨리 4세 치하의 음모와 혼란의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방탕생활을 하는 무뢰한이자 늙은 기사 폴스테프는 햄릿과 함께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성격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핼 왕자와 함께 벌이는 만행은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18세기 이래 셰익스피어의 성격론의 중심이 되어왔다.[베니스의 상인]: 감미로운 연애희극 속에 욕심 많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등장시켜 사회통념에 따라 악인의 운명을 겪게 하면서도 소수 피압박민족의 슬픔과 분노를 강하게 호소하여 인간에 대한 온정과 공정한 사회의 관찰의 시각을 보여준다.[뜻대로 하세요]: 아덴 숲을 무대로 궁정에서 쫓겨난 공작과 가신의 전원목가적인 생활이 배경이 되어 젊은 남녀의 연애를 낭만적으로 그린 걸작 희극이다.[십이야]ㅣ: 1600년 무렵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 최고의 희극으로 평판이 높다. 작품 전체가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분위기와, 익살. 재담. 해학 등 희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십이야]를 전후하여 셰익스피어는 로마의 역사에서 소재를 얻어 [줄리어스 시저]를 썼는데, 이때부터 몇 년간을 비극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위의 희극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도 이때에 쓴 희곡 중 하나이다.제 3기: 4대 비극의 탄생시기 (1601~1608)예술적으로 절정기를 맞은 셰익스피어는 이 시기에 위대한 비극 작품들을 썼다. 딸과 아내를 잃었다가 다시 상봉하는 내용의 를 제외한 이 시기의 모든 작품은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그렸다. 심지어 나 와 같은 희극조차도 재미보다는 혼란스러움을 준다. 이 극들은 내용이 비극적이고 너무 심각해서 화해로 끝나는 결말이 오히려 무리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문제 희극’이라 부른다.4대비극 중 하나인 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놓고 갈등하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번뇌를 그리고 있다. 지극히 사색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햄릿의 성격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끊임없이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은 외양과 내면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성격결함 때문에 비극스러운 종말을 맞는 왕의 이야기이다. 과욕 때문에 죄악을 저지르는 한 인간의 이야기인 도 주로 양심의 문제를 다루었다.지금까지의 비극과는 달리 는 공적인 문제나 충성심 따위가 아닌 개인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 극에서 주로 다루는 인간의 결점은 질투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극 중에서 사건 전개가 가장 빠르고 직선적인 비극이다.이 외에 사랑의 배신을 그린 와 친지들의 배신을 그린 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비극이다. 또 로마사극 와 도 이 시기에 썼다.제 4기 : 전기극의 시대셰익스피어는 마지막 시기에 3편의 희극과 1편이 사극을 썼다. 플레처와 함께 슨 것으로 추측되는 사극 는 영국 왕 헨리 8세가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항하여 영국국교회를 설립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과 는 둘 다 남편이 정숙한 아내를 의심하여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만 결국 그 의심은 풀리고 부부가 행복하게 재결합한다는 내용이다. 에서는 동생에게 부당하게 쫓겨난 프로스페로가 한 섬에서 마술을 익히며 딸과 함꼐 살다가 동생 일행에게 복수할 기회를 갖게 되나 용서해준다는 이야기이다. 이 세 희극의 공통점은 옛 허물을 용서하고 등장인물들이 새로이 행복한 생활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쓴 희극들과 작품 는 흔히 로맨스라고 부르는데, 코믹한 내용과 진지한 내용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들은 제 3기에 쓴 걸작들과는 달리 현실감이 부족하다. 이렇게 갑자기 습작 태도가 바뀐 것은 그가 말년에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뀐 탓도 있고 당시 관객들의 기호가 바뀐 이유도 있다.3. 셰익스피어와 그의 시대서양에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변방에 불과했던 16세기의 영국에서 인류사상 최고의 대문호가 탄생한 데는 셰익스피어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돌릴 수 없는 시대배경적 호조건이 뒤따랐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위세를 떨친 로마제국 중심의 유럽통치 시대에서 셰익스피어가 탄생한 1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등극으로 잉글랜드의 중흥이 시작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섬(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의 왕가 간의 끊임없는 분란으로 단명했던 그전 왕과는 달리 전후후무한 45년간의 장수 왕좌를 누리며 영특하고 희생적인 구국의 일념으로 섬을 통일하고 국력을 길러 대륙의 힘에 맞서 세계를 주름잡는 대영제국의 긍지를 영국민에게 불어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