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선과 순수한 색의 상관관계에 근거를 둔 새로운 미학이다. 왜냐하면 단지 순수한 구성요소들 사이에 순수한 상관관계만이 순수한 미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De Stijl 선언문에서De Stijl이란 네덜란드어로'양식'이라는 뜻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1917년 결성한 종합예술운동(입체주의와 추상주의미술) 그룹의 명칭 이며, 잡지의 제목이다.시대에는 오래된 의식과 새로운 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오래된 의식은 개인을 지향하고 있다. 새로운 것은 우주를 지향하고 있다. 개인과 우주 사이의 갈등은 오늘날 예술에서는 물론 세계대전에서도 반영하고 있다. 전쟁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즉, 모든 분야에서의 개인의 탁월성)으로 옛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은 시대의 새로운 의식의 내용(즉, 우주와 개인 사이의 동등한 균형)을 폭로하였다. 새로운 의식은 생활의 모든 사물들을 포함하며 모든 것에서 실현될 준비가 되어 있다. 개인(자연)의 탁월함, 전통, 독단은 이와 같은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 조형주의의 발기인들은 새로운 조형예술에서 자연형태들의 제약을 제거함으로써 순수예술의 표현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했던 것처럼 예술과 문화의 개혁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진적 발전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하도록 요구한다. -De Stijl의 제1선언문 에서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중립국인Netherlands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음. 20C에 들어와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 및 기계 문명의 발달은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기계적인 정확성과 규칙성을 느끼도록 하였으며, 그것을 새로운 미적 대상으로 도입 큐비즘의 영향Frank Lloyd Wright Hendrikus Peter Berlage신학자이자 수학자인 M.H. Schoenmakers - “신플라톤파적인 철학사상” - 저서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 「조형예술의 원리」몬드리안 (Piet Mondrian) 의 『신조형주의 (Neo Plasticism)』 쇤메케르스(Schoenmtijl형이상학적인 세계관M.H. Schoenmaekers의 신 플라톤적 철학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Het Neiuwe Wereld Beeld 와 조형적 수학의 원리(Beeldende Wiskunde) “3가지 기본 색채는 본질적으로 노랑,파랑, 빨강이다. 그것들은 실재하는 유일한 색들이다. “우리들의 지구나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의 형상을 만드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완벽한 반대 명제들은 수평적인 힘의 흐름, 즉 태양 주위의 지구의 궤도. 그리고 수직적인 것, 즉 태양 중심에서 시작되는 광선의 극히 공간적인 운동이다” 그의 이론의 요지는 유토피아적인 미래 즉 '완전한 조화가 지배하는 우주에 서의 예술적 기여' 및 그리고 '예술과 우주의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Piet Mondrian에게 영향을 줌증권거래소Hendrik Petrus Berlage1. 1917-1921년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신조형주의 이념이 그 모습을 찾아가는 형성기 Theo van Doesburg, Jacobus Johnnes Pieter Oud, Piet Mondrian, Jan Wils, Bart van der Leck, Gerit T. Rietveld 등 함께 창단. 2. 1921-1925년 러시아 구성주의 미술과의 조우로 인해 국제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성숙기 EL Lissitzky, Hans Richter, C. Van Eesteren 합류 3. 1925-1931년 몬드리안과 반 되스부르크의 결별로 인한 분열과 쇠퇴의 시기Theo van Doesburg (1883-1931) Artchitect, Painter, Writer, PoetryDe Stijl의 창시자Theo van Doesburg의 작품Page fromDe Stijl MagazineRhythm of a Russian Dance, 1918Composition VII, 1917Counter-Composition V, 1924Arithmetic Composition,1930Arithmetic Composition,1퇴하게 됨 몬드리안의 직각적 조형법의 관계, 통합, 화합, 균형, 합의에 대한 의문 끝에 반직각 조형법(대각선)시도 건축형성의 다양한 요소(색채, 선, 면, 불륨, 공간, 시간)들의 구축적인 통합 표현방법은 기본적으로 대각선과 색채의 불협화음에 근거 신조형주의의 평형적 관계와 대립하고 색면의 시각적, 공간적 긴장을 부여하는 대각선 구성 대각선 구성을 근본으로 한 요소주의는 인간정신의 복합적인 문제를 변형시키고 발전하는 조형평면으로 승화시키려 함.Villa Henny, 1919Robert Van't Hoff (1887-1979)Café de unie, The netherlads,1924Jacobus Johnnes Pieter Oud(1890-1963) architectDe Vonk, The netherlands, 1919Jacobus Johnnes Pieter Oud의 작품Weissenhof Row Houses, Germany, 1927Kiefhook Housing estate, The Netherlands, 1930Jacobus Johnnes Pieter Oud의 작품Piet Mondrian (1872-1944)Piet Mondrian의 신조형주의(1920년) 현대 예술의 조형수단은 원색과 무채색을 이용한 평면 또는 프리즘 형태이어야 한다. 조형수단 상호간의 동기성이 필요하다. 크기가 다르거나 색채가 다르더라고 그것들은 서로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조형수단에 있어서, 이원적 대립은 구성에 있어서도 요청된다. 일정불변의 균형은 대립적 관계에 의해 나타나고, 극한적 조형수단인 직선의 기본적인 대립은 사각형 속에서 표현된다. 대립되는 조형수단이 화해, 중화되는 균형은 비례관계로부터 생겨난다. 모든 대칭성은 배제되어야 한다. 기하학적인 추상이론의 선도적 역할/다양한 조형예술 전반에 영향Piet Mondrian의 추상화 과정Tableau 1, 1921Composition 8브로드웨이 부기우기Piet Mondrian의 작품De stijl의 창시 구성원. 기능주의적이omas Rietveld(188-1964) Furniture designer, architectRea and Blue chair,1917Gerrit Thomas Rietveld의 작품Schroder House,1924TagStoryGerrit Thomas Rietveld의 작품El Lissitzy(1890-1941) architect, printmaker, painter, illustrator, designer, photographer, teacher and theorist말레비치의 영향Proun “회화와 건축사이의 환승역”절대주의 회화로 전환Had Gadya,1919Beat the Whites with the Red Wedge,1919Proun, 1925El Lissitzy 의 작품De Stijl 건축의 이념1. 장식의 배제와 전통과의 단절2. 기계 생산에 의한 재료3. 비물질성과 무중력성4. 개방성5. 시간성의 도입6. 건축과 회화의 통합De Stijl 건축의 형태요소『데 스틸 (De Stijl)』건축의 형태 구성요소 이차원적 요소 : 점, 선, 면 등 평면 상에 위치해서 하나의 형태를 구성 삼차원적 요소 : 내부공간, 볼륨 등과 같이 길이, 폭, 깊이가 추가된 체계적 의미의 요소 사차원적 요소 :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변형된 구성에서 시간의 개념이 건축적으로 적용되어 가변적인 내부공간 구성, 유동적이며 동적인 형태를 구성신조형주의의 수평 및 수직선과 요소주의의 대각선몬드리안의 유토피아적 표현수단으로 적, 청, 황 등의 삼원색으로 제한 색은 면의 성질에 대한 보충적인 수단, 색채의 구성방식은 면과 밀접한 관계색채(Color)선에 의해 형성, 공간 구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 자유로운 평면의 구성과 면의 결합을 통한 공간형태의 변형으로 유동하는 공간의 성취면(Plane)긴장과 방향성을 가짐 수평선, 수직선, 대각선과 그 외의 이탈선(Line)이차원적 요소의 형태구성De Stijl 건축의 형태요소모든 건축의 내부공간은 볼륨에 의해 가시화되며, 이차원적인 요소들의 어진 형태를 구성볼 륨 (Volume)인간의 공간경험은 인간을 포함하는 공간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결과 이차원적인 요소에 의해 한계가 부여되는 무형의 실체 시간개념의 도입으로 사차원으로 확장 / 분할을 없앰으로서 내,외부 공간의 연속성내부공간 (Inner space)삼차원적 요소의 형태구성가변적인 내부공간 구성 → 슬라이딩 도어나 이동 칸막이 등의 사용시간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가능 시간개념의 도입은 입체파의 회화와 직접적 연관사차원적 요소의 형태구성De Stijl 건축의 특징면의 조합체계 ① 제1형식 : 형태를 구성하는 이차원적 요소인 선과 색채, 면의 위치가 변동됨에 의해 형태 구성 ② 제2형식 : 공간적인 면에서 가변성을 창출하고, 형태적인 면에서는 역동적인 형태를 구성 ③ 제3형식 : 시간개념의 도입으로 가변적인 내부공간 구성과 볼륨의 해체를 통한 유동적 내부공간 구성 ④ 제4형식 : 형태구성 위주의 건축에서 공간의 효용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표준화된 형태의 건축을 추구 / 원리 - 연결시키는 과정(부가와 중복), 감소시키는 과정(분할과 삭제)표준화된 형태의 건축 추구 보편적 건축재료를 사용한 보편적 건축의 수용 데 스틸의 붕괴 → 국제주의 양식으로 흡수키프호크 건물(1929) / 오우드 반 호프제4형식공간과 형태의 분화, 조화 건축의 4요소를 다각적, 종합적 파악 내, 외부 공간의 이중적 관계로부터 분리슈뢰더 주택(1924) / 게리트 리트벨트제3형식과거의 고정적 양식 탈피 대칭 및 파사드의 거부 가변적 공간 구조특수주택 계획안(1919) / 반 되스버그 반 에스테렌제2형식몬드리안 회화이론의 변화 (2차원 → 3차원) 직각구성 → 대각구성 회화 → 건축 위주의 이론 전개카페 오벳떼(1928) / 반 되스버그 한스 아르프제1형식결론데스틸 건축의 디자인 특성은 당시의 시대 정신에 부응한 새로운 조형예술 창조의 이념을 바탕으로 보편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건축의 형태구성과 시간성을 도입한 사차원적 공간개념은 오늘날 합리ow}
신화는없다과 목 명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가난을 원망하는 것만큼 못난 삶도 없다.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거니와, 이 가난한 조국을 원망해 본적도 없다. 열심히 일하라고 이 땅에 태어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리보다 앞서 가는 사람들과 똑같이 잠자고 똑같이 일해서는 그들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만 그들과 같은 삶의 질을 이룰 수 있다.]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워하고, 분발해야만 한다는 발전적인 모습이 정말 보통사람은 아니구나 라고 느낄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지니까 약간 꾸며진게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이 대통령 당선이후 나왔다면 민심잡기위한 전략을로만 보일텐데 05년도에 나온책이니 정말 대단한 인물이 아닐수 없다. 이런 진취적인 사상을 갖고 자신의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지은이의 모습을 보며 본받을 점이 많은 인물임을 느꼈다.[신화는 없다.]이명박. 지금의 17대 대통령으로써 믿을수 없을만큼의 빠른 승진으로 이슈가 될정도의 기록아닌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신화는 없다 라고 하였다. 자신의 위치 자신의 성실함으로 그리고 남다른 선경지명을 소유한 그는 신화라고 하지 않았다. 어떤일을 계획하거나 혹은 주어진 일에 능동적인 자세로 일을 파고들었다. 결코 일에 끌려다니지 않았고 회사와 나라를 생각하며 정열적인 모습으로 도전하며 부딪쳤다. 이런점은 꼭 배우고 싶은점 중의 하나이다.감명을 받은 내용은 입사 첫 근무이자 첫 해외공사로 기억되는 고속도로 현장에서의 일이었다. 지은이는 그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했던 연설을 기억하고 있었다.“한국전쟁때 우리는 그들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우리를 도우러 왔습니다.”라고 축연을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 경리과 말단 직원으로 일하는 지은이는 정도 많지만 할 말은 꼭 하는 인물로 비춰졌다. 우리나라에서 기능공들을 많이 몰고 갔기에 우리나라사람도 있었지만 그나라의 인부도 쓰면서 했다. 최초의 해외공사에 큰공사도 처음인 현대는 낙찰가를 너무 낮게 잡은탓에 적자가 나는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의 폭동으로 현장은 엉망이 되 가는 상황에 지은이는 끝까지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속에서도 금고를 꼭 앉고 끝까지 지켜내는 모습이 자신의 쓸떼없는 자존심, 또는 굴복하기 싫은 이유때문이라고 했지만 정말 깡패들이 칼을 들이미는 순간에도 그깟 자존심 때문에 목숨과 바꿀사람이 얼마나 될지 보통사람이 아니기 시작한건 이제부터였다. 이 현장을 통해 그는 정회장의 명령으로 그 현장을 맡게 되는 계기가 되고 그후 초고속 승진을 하게된다.지은이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이다. 무슨일을 할 때 완벽하고 일을 정복해야 한다는 그의 성격과 사람 관계의 유지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정회장의 신임을 한몸에 받을수 있던 것이 아닐까 한다.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지은이는 등록금을 면제 받을때까지만 학교를 다닌다는 조건하에 입학해서 3년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결국엔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야간학교지만 낮에 부모님 일을 도우며 학교를 다니며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을터인데, 배움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남달라보였다. 집에서 밀어주는 형들과는 달리 지은이는 어머니로부터 별로 이쁨을 많이 받지 못하였다. 관심도 좀 적었던거 같다. 하지만 지은이는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미워해본적이 없었고, 어머니의 가정교육으로부터 자신의 성공 비결이 있다고 하였다.이런 자서전의 책을 읽다보면 지루해지는 부분이 조금씩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명박의 [신화는 없다] 를 읽으면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열심히 사는것도 그렇지만 하물며 어머니한테서까지 별로 이쁨을 받지도 못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아무리 어려운 시대라지만 자립심 만큼은 꼭 배우고 싶다.그리고 사람관계 화술이 대단한건지 정이 많은건지 아니면 경영을 하는 사람으로써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만나고 또 지은이는 신기할 정도로 공산국가인 소련에서도 친구들을 만들면서 경영인으로써 탁월한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듯했다.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대학때까지 학비와 공부를 하기위해 친구조차 별로 없었고 내성적인 그였지만 학생회장을 하며 학생운동을 하며 자신의 성격을 직접 개조시켰기에 그는 성장할수 있었고, 그것이 남들과 다른점이었다.지은이의 장점은 약속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우리 어머니도 약속만큼은 꼭 잘지켜야 한다곤 하신다. 그래서 약속을 잡으면 좀더 일찍 나가서 늦지는 않게 노력하는 편인데, 지은이 역시 약속에 대해서는 남달랐다. 첫 해외 공사를 끝내고 회장으로부터 이명박은 의외의 곳으로 인사가 났다. 기계쪽이었는데 정확한 명칭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명박은 이곳으로 보내진 뜻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는 너무나도 자주 고장나는 기계들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차량을 다 분리한적이 있었다. 급히 써야하는 차량이었는데 다 분리를 하였으니 제시간에 쓸수 없게 되자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이명박이 하는일에는 별로 크게 걱정을 안하고 완전하게 믿고있었다. 원인은 주변 레미콘 공장에서의 분진으로 고장이 났던 것이다. 레미콘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분진방지막을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이명박은 레미콘 회사의 사정으로 인해 설치를 안하자 직접 불도저를 몰아 입구를 파서 운송을 아예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을 하게 되는데, 레미콘 회사의 사정은 청와대로부터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 밤낮없이 공장을 가동하여 할 겨를이 없었음에도 이명박은 약속을 약속이라며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한 일을 보면 대담한 인물로 볼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부모님께도 질문했었다. 이명박대통령의 승진이 뉴스에 나올정도 였나? 라는 의문을 갖고 여쭤봤다.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서울 시장때도 봉급을 안받았다고 했다.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받았던 땅이 많아서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만해도 어마어마 하다는 것인데, 한만큼 챙겨준거 같다. 땅값이 얼마 안할 때 받았다지만, 지금도 나라를 통치가 아니라 경영으로 어떻게 할것이가를 두고 고심의 고심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경부 대운하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그의 선경지명을 믿고 추진해 나가길 바래진다. 경영인으로써 지금의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할것으로 믿는다. 그의 무한한 진취적인 생각과 발전적인 모습을 자서전을 통해 본 결과는 역사의 한획을 그을만한 일 무언인가를 남길거 같다. 이 자서전의 훌륭한 점은 아직 시작에 불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써 경영인으로써 더 큰일, 훌륭한 일을 할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의 신념이 어떤지 알았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왜 따르는지 앎으로써 별로 나에겐 없던 신뢰가 생겨났다. 이명박 정권을 응원하는 한명이 더 생긴샘이 된 것이다.
도솔산...선운사(禪雲寺)담당 과목 : 한국건축사담당 교수 :소 속 :학 번 :이 름 :제 출 : 2007년 11월 29일목 차Ⅰ.선운사 답사 계획서 ? ? ? ? ? ? 1Ⅱ.선운사의 유래 ? ? ? ? ? ? 2Ⅲ.선운사의 연혁 ? ? ? ? ? ? 3Ⅳ.선운사 가람 ? ? ? ? ? ? 4Ⅴ.선운사를 오르며.. ? ? ? ? ? ? 10Ⅵ.선운사 답사기 ? ? ? ? ? ? 21Ⅰ. 선운사 답사 계획서도서관 참고 서적 검색서운사 사전 지식 필요성인터넷 자료검색 위치 및 선운사 홈페이지1)자료조사2)답사 일정출발일 :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1박2일)출발지 : 동양공업전문대도착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번지교통편 : 승용차 약 4시간 소요3)위치선운사Ⅱ.선운사의 유래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다.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34년 법당에 삼존상을 조성ㆍ봉안하였으며, 1658년에 시왕전(十王殿), 1659년에 해납료(海納寮)ㆍ삼선료(三仙寮), 1676년에 약사전(藥師殿), 1677년에 나한전(羅漢殿), 1678년에 극락전(極樂殿), 1682년에 칠성료(七星寮)ㆍ청심료(淸心寮), 1691년에 대승전(大乘殿) 등을 창건하였다.이 무렵 절에서 수행하던 대중은 무려 260여 명에 달하여 당시 사찰의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이어 1693년에 동운암(東雲庵)을 창건하고 1699년에 미륵전(彌勒殿), 1705년에 관음전ㆍ양계료(養鷄寮)ㆍ양봉료(養鳳寮), 1706년에 팔상전(八相殿), 1709년에 한산전, 1713년에 장육전 등을 창건하였다.선운사에서는 특히 걸출한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이 많이 배출되어 사격(寺格)을 드높였다. 조선 후기 화엄학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설파 상언(雪坡尙彦) 스님과 선문(禪門)의 중흥주로 추앙받는 백파 긍선(白坡亘琁) 스님을 비롯하여,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 탄영(幻應坦泳) 스님, 근대불교의 선구자 박한영(朴漢永) 스님 등이 선운사에서 수행하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어갔던 것이다. 현존하는 전각은 대웅보전과 관음전ㆍ영산전ㆍ팔상전ㆍ명부전ㆍ산신각ㆍ만세루ㆍ천왕문이 있고, 대웅보전 앞에는 6층 석탑과 괘불대ㆍ당간지주ㆍ석주 등이 있으며, 산내암자로는 참당암(懺堂庵)ㆍ도솔암(兜率庵)ㆍ동운암(東雲庵)ㆍ석상암(石上庵) 등 네 곳이 있다.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고, 보물 제279호인 선운사 금동보살좌상이외에도 영산전목조삼존불상ㆍ육층석탑ㆍ범종ㆍ만세루ㆍ백파율사비를 비롯하여 『석씨원류』ㆍ『선운사사적기』 등이 전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ㆍ장사송ㆍ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Ⅳ.선운사 가람1) 가람의 입지사찰은 전통적으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한다. 이렇게 좋은 입지에서 불심을 닦고 수도를 하면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몸으로 체득하게 됨으로써 성불의 경지에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의 구성 관계가 건축 행위로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전통건축을 건물 하나의 단위로만 파악하다 보면 건물 하나의 단위가 지니고 있는 개별적인 특성이 서양의 건물에 비해 미약하여 서양의 건축물이 눈에 익은 사람은 동양의 건물들이 변화가 별로 없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건축으로 오인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현재 선운사의 가람 배치도 이러한 건물들의 상호 관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며, 전체로서의 건물군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한국 건축을 음미하는 새로운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그럼 먼저 진입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매표소가 있는 일주문을 통과한 후 계류의 옆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천왕문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사찰 경내는 오른쪽 방향으로 직각으로 꺾어서 진입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진입 방식은 사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현재 천왕문 전면으로 작은 계류가 흐르고 있고 1977년 준공한 극락교가 놓여 있는데, 오히려 계류의 건너편에서 극락교와 같은 다리를 건너 진입하는 방식이 보다 자연스러운 사찰진입 방식으로 추정된다.누문 형식으로 처리된 천왕문을 통과하면 그 뒤로 만세루가 놓여 있고 다시 그 뒤편으로 기단을 조성하여 한 단 높은 자리에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천왕문, 만세루, 대웅보전은 전형적인 주축선형 배치를 보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만세루가 이름난 누각인 단층 건물이어서 대웅보전으로 접근하려면 건물을 돌아 들어가야 하므로 진입부에서는 주축선이 확연히 느껴지지 않는다.만세루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웅보전의 좌우로는 영산전과 관음전을 평행하게 배치하였다. 다시 영산전 왼쪽로 ’ㄱ’자 형태로 남쪽 으로 꺾인 기단을 조성하고 지장전(명부전)을 두었다. 그 두 건물의 사이인 영산전 왼쪽에 조성한 계단을 오르면 다시 팔상전과 산신각이 평행한 기단 위에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대웅보전과 팔상전, 산신각등의 건물 뒤쪽으로는 경사진 대지에 울창한 동백숲이 자리하공 씨다.현재 선운사의료하고 1618년 완공함으로써 사찰 일곽의 정비가 우선 일단락되어 주요한 틀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건물들을 15세기에 건립된 전각들과 비교해 보면, 천불전, 지장전과 같이 거의 비슷한 전각들로 재건되고 있어 기존의 틀을 살펴 공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15세기의 사찰 구성과 많은 유사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를 보면, 그 이후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초에 이르는 동안에도 많은 수의 부불전과 요사채들이 계속 건립되어 매우 사세가 번창하게 되었음을 알 수있있다.이후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때 형성된 사세를 유지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812년 2층의 장륙전을 단층의 영산전으로 개축하였으며, 1839년 폭풍으로 대웅보전의 오른쪽 2칸이 무너지자 1840년까지 보수를 하였다는 등 몇 건의 공사 관련 기록이 나오지만 17세가외 같이 집중적으로 불사가 이루어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절 전체 배치의 큰 틀은 조선 후기에도 계속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개중수만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1962년 조계종의 교구본사로 승격된 이후 현대에 들어 중창 불사를 하면서 사찰 배치에 미묘한 변화가 있게 된다. 중요한 것만 대략 살펴보면 1970년에 천왕문을 건립하였으며, 1973년에 영산전과 대웅보전사이에 위치하고 있던 요사채 건물을 헐고 현 위치에 관음전 건무를 재건하였다.요사채를 헐기 이전인 1990년 이전의 배치를 살펴보면, 아래 마당에서는 만세루와 그 옆의 요사채, 그리고 한 단 높은 곳에 주요한 두 개의 불전인 대웅보전과 영산전이 노전(爐殿)으로 연결되면서 지형에 부합 하는 횡으로 긴 장방형의 공간을 형성하고 그 모서리인 영산전과 명부전 사이로 다시 팔상전과 산신각으로 진입하는 축선을 형성하여 여러개의 주요 공간이 병렬하여 횡으로 연결된 배치 형태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주축선을 통해 대웅보전 영역으로 진입한후 좌측으로 전개되는 형태가 지금은 이전된 2채의 건물에 의해 매우 강하게 강화되어 있었음을 알 사용하여 중앙 어칸의 기둥 간격을 가장 넓게 하고 측면 쪽의 협칸은 좁게 계획하였다. 내부의 평면도 특이한 편인데, 중앙 3칸은 전후면 중앙에 놓인 고주를 생략하여 전후면을 통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좌우측 3칸은 중앙에 기둥이 들어서 있다. 그에따라 중앙 3칸은 대들보가 전후면의 기둥에 걸쳐 설치되어 있으며 좌우측의 3칸은 고주를 올려 가구를 결구 하였다. 이 건물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매우 자연스러운 형태의 부재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자연석 기단에 기둥은 일부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사용하였고, 자연목을 다듬지 않은 채 껍질만 벗겨 천연덕스러운 부재가 사용되고 기둥의 상하가 다른 부재를 사용한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어칸의 대들보 상부에 있는 종보의 경우에는 양쪽 모두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을 사용하고 그 끝에 용머리를 끼워 장식적으로 처리함으로써 해학적 표현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중앙 칸의 양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벽으로 처리하였으며, 내부의 서쪽 앞 두 칸씩은 칸막이로서 2층 모두 판벽으로 처리하였으며, 내부의 서쪽 앞 두 칸씩은 칸막이로서 2층구조를 만들어 종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대들보 위에는 낮은 동자주를 얹었고 기둥 윗부분에는 작은 나무토막들을 포개 쌓았다. 특히 뒷면이 대웅전과 마주보며 개방된 것은 설법을 위한 강당의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면의 판창을 열면 대웅전의 앞마당에서부터 강당을 포함한 공간이 막힘없이 트이게 되어 통풍과 전망을 아울러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창은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로 하였다.자연스러운 부재가 많이 사용되어 천연덕스럽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부재의사용은 조선 후기 목재의 공급이 어려웠던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좋은 건축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휘된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건축적 해결법이라 할 수 있다.?스님들과 일반인들이 앉아 다도를 하며 여유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주지스님이 새로 오면서 이같은 자리로 만들었다는데 많은 인파로정된다.
경부대운하 찬성 Report한반도의 물류 대란과 수도와 그 밖의 지역의 양극화를 막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 시작되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우선 정확한 판단을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어마어마한 예산으로 수많은 일자리와 부수적인 여러 산업들이 호황을 보며 우리나라의 경기침체의 끝을 볼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겠다. 반대입장에서는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나 후손에게 콘크리트로 된 땅을 물려줄것이냐며 전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소리만 해대고 있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지금의 경기침체를 벗어날 엄청난 기회임에도 말이다. 차로 운송하는 것보다 배가 좀 느리지만 한번의 운반하는 양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그만큼 물류이동으로 도로가 채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주변국들의 물류량도 늘어나면서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물류량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왜 무엇 때문에 반대하는것이가? 사실 그렇게 확실한 반증이 있는것도 아니다. 어떻게 될 것이다. 어찌 될 것이다. 라고만 하면서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다.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떠들고 있는것인데 그냥 이번 정부가 싫어서 일수도있지만 앞으로의 경제 전망을 보면 확실하게 분명하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운하 사업이다. 우리나라는 아직IT강국이라 한다. 하지만 인도가 급부상 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언제까지 1위를 차지한다는 법은 없다. 중국의 경제 급성장도 우리에겐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강대국들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발판을 지금 운하를 통해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건축토목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 지금의 정부의 계획대로 4~5년에 완공이 된다면 그동안의 풀린 자금으로 그 주위나 관련 업종의 수익이 엄청날것이고, 그로인한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살아나 있을것으로 보인다.환경적인 면이나 수질적인 면에서 반대하는 입장에서 특히 많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이제 산업혁명같은 자연을 뒤로한 돈을 좇아서만 발전을 바라는 시대는 지났다. 시민의식이 높아져 자연에 등지는 그런 사업이라면 애초에 계획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안이 있기 때문에 추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륙에 배가 나다닐 정도의 운하가 생긴다면 운하에는 분명 물고기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만들것이고 상류에서 하류까지 물고기의 서식을 고려한 설계가 이뤄질 것이다. 지금의 정부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욕먹을 사업을 하겠냐 이말인데. 반대하는 입장들을 읽어보면 너무 일차원적인 정말 나라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생각은 약간 짧다 싶은 그런 사람들인거 같다. 홍수 문제도 언급이 돼지만 이것만큼은 무슨말이 진실인지 알수 없다. 운하가 생기면 홍수가 덜한 것도 이해할수 없고 더한다는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난리에 들어가는 예산만 1조원이라는데 가장 시급한게 아닌가 싶다. 더운더 심각한건 경제난이다.이제 IMP때보다 더 힘들꺼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때는 어렸기에 잘 몰랐지만 지금도 좀 살기 힘든 사회임을 느끼는데 더 어려워 진다면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이번의 운하사업이 발판이되는 것이다. 한번 잘 풀리면 계속해서 그 여파가 커져 여러계층에서 부를 축적할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인 효과는 이정도라 할수 있겠다.장기적인 효과로는 물류 이동을 통한 국비확충 이라고 할수 있겠다. 민자사업을 끌어들인다면 그 운영을 민간 사업이 맡건 나라가 맡건 세금이 부과되니 국비가 증가해 우리사회의 복지 시설 및 편의시설이 늘어날 것이다. 노인문제도 그중에 하나인데 몇일전 신문에서 독거노인의 도시락에 관해서 나온적이 있는데 주말에는 도시락 하나로 세끼를 연명하고 있는 현실을 기사화 하였다. 복지가 잘 안 이뤄진다는 건데 이런 문제가 세금이 증가하면 더 나아 질꺼라 보고 있다.
경부대운하반대의견Report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정부에서 다른 다라들의 운하에 대해서 많이 조사를 했겠지만, 이 과제를 통해서 다른 다라들의 예를 봤지만 관광적인 특수나 많은 물동량을 볼수 없었습니다. 약간 무모한게 아닐까 생각되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고 조사가 확실히 이뤄져서 완벽한 성공을 바라보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뉴스를 통해서 보면 정부에서는 이미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첫 번째 반대의견으로는 속도. 즉 시간과의 싸움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입니다.지금의 교통수단이 빨라진 이유는 시간의 절약을 위해 날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속도에서 현격히 떨어진 배에 의한 물류이동을 위해 비좁은 땅을 가르는 운하를 건설한다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차량이나 기차, 비행기를 이용하여 수송을 하고 있습니다. 배는 위의 수송방법보다 많은량이 가능하지만 속도면이나 연료소모에서는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정보들을 빌리자면 정부에서 제시한 운하의 통과 시간과 현실과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문이란 것이 필한데 이것을 지날때마다의 소요시간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시간안에 통과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천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 견학을 간적이 있습니다. 월미도였는지 저학년때라 기억이 생생하진 않지만 갑문을 보기위한 견학이었습니다. 배가 그렇게 큰지는 몰랐는데 갑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구경했던적이 있습니다. 갑문에 물을 빼고 채우는 것이 그때보단 빨라졌겠지만 한두대 기다리다 보면 배가 정체되 있는 시간이 길어질것입니다. 식품의 이동일 경우엔 신선도를 보장할수 없는 점입니다.갑문이 몇 개 없다면 가능하지만 경부운하만 봐도 12개가 되고 리프트까지 이용한다면 시간이 중요한 수송에서 이용률이 높을지도 의문입니다.두 번째로는 물부족 국가로써 운하에 채울 물이 충분한가입니다.여름에는 강수량이 물난리가 날정도로 충분한 반면 겨울은 거의 메마른 땅에 지나지않습니다. 계절의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강수량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것인지 정확한 계획도 나와있지 않고 위에서 말했듯이 무모해 보일 따름입니다. 겨울에 보면 큰 강을 제외하면 작은 하천은 물이 말라 졸졸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운하에 적용 안될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안그래도 고여 있는물인데 그 물의 양까지 적어진다면 겨울에 얼게되어 사용을 못하게 됩니다. 여름에만 운하를 이용할 것도 아니고, 그 수심을 극복할만한 대책이 아직 나와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다면 음모론이라 할수 있겠지만 토목업계에서의 로비로 이 사업이 추진된다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물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운하를 이용해서 물을 채워둔다고 했는데 강수량이 점점 적은 겨울철로 갈수록 수위가 낮아져 갑문에 닿기도 전에 땅이 보인다면 어쩌려는건지 이해가 안됩니다. 이런것에 대한 정확한 방안이 나와있어야 반대하는 입장이라도 좀 줄어들텐데 정부에서 하는일에 반대 입장이 많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물길을 위해 가른 땅은 야생동물의 이동을 막아서 생태계의 영향도 주게 될것입니다. 그냥 흐르는 물도 깨끗하지 않는데 거의 정지 돼있는 물이 악취가 관광특수는 말도 안되고 폐나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마지막으로 관광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 전망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우리나라에 오는 관광객보다 나가는 관광객이 더많은 여행 적자시대에 있는 지금에 관광산업을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는 것은 외화 확보에 더 없이 훌륭한 국가 사업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운하 보려고 오는 외국인들이 많을까 싶습니다. 지금 아시아에 한류 열풍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오고는 있지만 그 드라마 장소라던가 명동, 인사동 등..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모이는데 운하 주변에 아무리 레포츠나 숙박업이 생긴다 한들 우리나라 경치가 그림같은것도 아니고 운하건설 계획을 보니 더 이상 넓히는 곳은 많지 않고 더 깊이 파고 옆에 둔치를 올리는 식으로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가 볼게 있어서 관광지로 만든다는지 알수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운하건설 예산으로 서울은 이미 포화상태니 위성 도시에 투자를 해서 홍콩이나 두바이처럼 상징적인 도시 이미지를 보고 관광을 올수 있게 만드는게 더 효율적이라 봅니다. 단지를 만드는 것이죠. 이 대운하 예산이면 충부하리라 생각 됩니다.레포츠 문제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중에 하나인데, 운하에서 뭔 레포츠를 즐길수 있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공간이 많다고 해도 그 깨끗하지 않은 물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이걸 하려고 다른나라에서 얼마나 유치할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