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or Vasarely - 1950 Victor Vasarely 1950 Zebre Gouache on board - 20 x 36cm Victor Vasarely 1970 Vega- Lep Acrylic on canvas 150 x 150 cm Victor Vasarely - 1969 Victor Vasarely 1969 Vega-Nor Acrylic on canvas - 200 x 200 cm Outdoor Vasarely artwork at the church of Pálos in Pécs 빅토르 바자렐리 ( Victor Vasarely , 1908~1997) 헝가리 출신 프랑스 미술가 바우하우스 전통 교육을 모홀리나기로부터 받았음Cataract, 1963 브리짓 라일리 (Bridget Riley, 1931~) 영국 런던 , 여류 미술가 주로 구불거리는 선들을 반복해서 표현함 . 미묘한 아지랑이 같은 느낌이 드는 물결무늬 골드스미스미술학교와 왕립미술학교 졸업브리짓 라일리 (Bridget Riley, 1931~) Hesitate, 1964, Oil on Canvas 106.7 x 112.4 cmMessage of Peace, 1988 Silkscreen, signed and numbered in pencil Edition: 300 78.74 x 101.6 cm 아감 Jacob Agam (1928~ ) Untitled II, 1990 Prints and Multiples, APSize:30.5 x 66 cm.{nameOfApplication=Show}
디자인의 역사1.산업혁명?18C 영국-기계혁명, 생산혁명, 디자인혁명 ?생산품의 질 하락, 인간소외 현상, 빈부격차 - 사회문제 대두!?영국 가내수공업 ?공장제 대량생산?경제독과점 ?경제민주화?과잉장식시대 ? 미적수준저하?1851. 영국 만국 박람회①팩스턴: 수정궁(by. 조립공법) - 주철로 된 구조물의 미학적 가능성 제시②전시품들은 기계로 제작되어 미적수준이 낮았으나, 새로운 기계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고,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커다란 기여를 함?존핸리벨터: 합판사용?마이클토넷: 나무를 구부리는 것 시도?세이커교도들: 소박함, 순수한 유용성, 단순한 형태 추구개념?러스킨의 “산업없는 생활은 죄악, 미술없는 산업은 야만이다”?모리스에 의한 미술공예 기법을 통한 최초의 디자인 품질 회복운동배경①산업혁명에 따른 기계제품의 범람과 품질저하②수공예의 쇠퇴와 자연미 파괴③노동력 소외와 빈부의 차 등 사회적 문제④중세 길드제와 고딕문화에 대한 동경-러스킨의 예술민주화 사상-퓨진의 고딕부흥운동-라파엘 전파의 유미주의적 사상이념적특징디자인을 일상생활 환경과 관련된 사상의 문제로 포착, 디자인을 통한 생활세계의 변혁을 꾀함①대중적, 민중적 실용미술의 발전을 통한 예술의 대중화와 통합화 지향②미술과 생활의 연계성 강조③순수미술과 실용미술의 통합을 강조방법, 장식적 특징1. 방법①인간의 유기적인 관계(공동체)와 종합성을 추구하는 수공적 생산품의 제작 추구②기계 생산에 따른 인공미의 부정과 수공예 부활③길드체제의 회복과 장인적 훈련의 강조④전통재료와 전통적 기법 사용2. 장식①과거 소박한 중세적(고딕) 수공예 장식 부활②복잡하고 혼란한 장식을 절제하고 종합예술로써의 통일된 스타일 지향③자연의 모티브를 활용하여 직물, 벽지 등 2차원적 패턴속에서 사용④단순하거나 평범한 형태와 모양, 반복과 대칭, 선적이거나 유기적인 형태로 제작*1기: 식물과 동물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 차용2기: 좀더 추상적 방향으로의 움직임, 신비로운 생물로부터 차용의의①최초로 시대적 디자인의 회복 근본에 둠③마샬포크너 상회의 일원이 되었고, 라파엘전파의 후예로서 영국 아르누보의 선구가 됨아더맥머도①센추리길드 설립: 최초의 영국공예 길드로써, 미술과 공예 운동을 일으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침②가구, 집기, 벽지, 직물 등에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유동적인 선을 사용함2. 미술공예 운동(1850-1914)개념?1890년경부터 약 20년간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전개된 새로운 시대의 형식을 탐색했던 장식미술운동배경①산업혁명과 미술공예운동②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재료의 출현, 건축주제의 다양한 모색③절충적이고 역사적 양식 확대에 대해 반발-모든역사적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형태에서 모티브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구축함 “신예술”④미학운동, 자포니즘의 장식성에 영향을 받음이념적 특징?새로운 통일적 장식양식 창출에 따른 과거의 생활양식으로부터의 해방?새로운 사회에 알맞은 실용적이고 종합적인 응용미술을 추구함*유럽전역의 국제적 양식으로 확산-영국: 모던스타일-이탈리아: 스틸리베르티(리버티)-독일: 유겐트스틸 (추상적 충주함)-오스트리아: 세세션 (직선적)방법, 장식적 특징①과거의 양식과는 다른 ‘신예술양식’으로, 장식적인 추상형식이 화려한 색채와 더불어 유행②자연의 유기적형태로부터 모티브를 찾아 양식화 하고, 곡선의 비대칭 구성을 특징으로 함③화려하고 평면적 장식성을 특징으로 유동적인 선과 곡선, 자연적 모티브를 즐겨 사용했고, 재료에 있어서도 철재와 유리를 많이 사용함④현대적인 기법과 유리나 철 등 현대적 재료를 적극 사용함의의①선과 색채, 면과 형태 라는 조형적 요소에 새로운 장식적 가치가 부가되었으며, 종합적인 디자인 수단으로서 새로운 의의를 갖게 됨②과거의 복고주의적 장식에서 탈피, 상징적 형태와 패턴의 미학을 받아들임으로써 미술을 모든 생활에 실용화③철, 콘크리트등의 활용 - 새로운 공감각 형성한계점①개인적, 상징적 취향의 과대장식과 수공 강조로 산업발전을 지연②견고한 구축성이나 기능적 요소를 배제한 상류취향③공방형태의 실험성으로 대중화의 발전을 가져 오였으며, 조절할 수 있다는 욕망을 상징화③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설계메킨토시①영국 글래스고 중심/ 직선과 직각을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음악적 분위기로 나타냄②디자인 모티브는 일본풍의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세련된 기하학적 직선을 사용, 시각적으로 명쾌한 이미지를 갖고, 건축, 철제, 난간, 문, 창틀, 가구, 조명기구 등에 응용함③수평과 수직으로 된 엄격한 선 외에 표면장식에서는 양식화된 꽃 무늬, 섬세한 격자무늬 등이 주된 패턴으로 사용 됨오토바그너①로스와 호프만, 올브리히와 함께 빈학파 창설②1890년대, 아르누보에 공명하여 19C 유행하던 건축에 있어서 역사주의적 경향을 부정, 새로운 형식을 모두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야 한다는 견지에서 실용적 양식을 제창③건축의 양식: 식용목적, 재료, 구조, 미적입장에서 규정 됨④올브리히, 호프만 등의 후계자에 의하여 분리파 운동으로 발전해 나감가우디①종교적 배경: 카톨릭 문화②자연환경적 배경: 카탈로니아 지역의 자연③자연적인 유기적 건축, 곡선적3. 아르누보(1880-1910)*자포니즘, 미학운동자포니즘(1872-1941. 프랑스)? 일본풍미학운동(1870-1900. 영국)?중국, 일본풍주요내용?용어: 1872. 프랑스비평가 필립버티에 의해?특징: 동물과 곤충, 식물같은 자연적 주제와 평면, 문양이 풍부한 표현, 간소한배색?우끼요에의 평면적이고 풍부한 문양에 영향 받음?선구: 크리스토퍼 드레서,오웬존스?특징: 해바라기 모티브와 추상화된 일본미의 혼성, 순수, 정돈된 선-과도한 고딕부흥에 대한 반동으로 미술공예운동과는 달리 예술의 사회적 윤리적 목적성을 거부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유미주의)?일본디자인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와 고도의 수공예적 숙련성에 영향 받음전파?격자구조는 20세기 모더니즘에 중요한 개념을 제공?디자인에서 자식주의 흐름을 대표함 (매킨토시의 작업에 반영)?아르누보와 분리파의 탄생 및 발판이 됨개념?오스트리아 중심의 아르누보?명칭은 아카데믹한 미술, 과거의 모든 예술로 부터의 분리를 목표로평가 됨대표자클림트표현주의 화가, 분리파의 창시자모저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가오토바그너건축가율브리히호프만3. 분리파(1897)4. 독일공작 연맹개념0 건축가 무태지우스가 결성한 디자인 진흥 단체 (제조업자, 건축가, 예술가, 산업가들을 모아)배경①미술공예 운동과 아르누보 - 합리적, 즉물적 독일 고유디자인 양식의 필요성 인식②산업화에 따른 공업과 미술의 통합 중요성 자각 (1906. 드레스덴 박람회) - 영국에서와 같은 합리적, 객관적 사고에 의한 명쾌한 조형창조 필요-미술+산업 혐력하여 공업제품의 질을 높이고 규격화이념적 특징①독일 제품의양적, 질적 향상을 위해 규격화를 추진해야 함을 주장②미술+공예+공업의 결합으로 양질화 (재료+기술+기능+미)③기계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의 창출의지 반영 (산업과 예술의 종합적 이념 추구)?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실현을 위해 규격화, 표준화 강조방법, 장식적 특징①간결, 장식없는 합리적 양식/ 기능적, 구조적, 기하학적, 순수추상적 디자인?미술과 산업, 기계와 디자인의 통일 추진②표준화, 규격화, 대량생산,기계의 수용의의①제품의 양적, 질적 생산과 표준화, 규격화의 길을 처음으로 제시하며 현대디자인 이념의 근대적 기초를 마련함②집단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사회를 위한 조형을 생각하고, 이전까지 디자인의 흐름을 통합, 표준화③바우하우스의 미술과 공예, 공업의 실천적 교육의 밑받침 형성④디자인의 개인적 실험 태에서 벗어나 보편적으로 인정된 표준스타일의 설정으로 향하게 하여 현대의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성을 인정 받음대표자무테지우스(DWB) (1907)*데스틸 (1917. 네덜란드)배경?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질서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절에 등장함?1917. 내덜란드에서 순수한 조형적 사고를 근대에 확립시키려 탄생특징?신조형주의의 영향 - 미술과 디자인의 순수화를 주장하며 기하학적 추상을 선호, 자연적 형태와 소재를 배제하고, 기본색 또는 흑백의 색상만을 사용함?간결하고 논리적인 스타일로 구성과 기능을 강조?추상적인 기하학 형태능주의 디자인) 확립-예술적 창작+기술적 기능+공학의 통합 으로 산업생산을 전제로 한 디자인의 추구방법, 장식적 특징①몬드리안의 조형주의를 기본으로 함②재료: 유리, 철골구조,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③조형적 원리: 순수한 기하학적 추상 강조④예술과 과학의 결합으로 질 좋은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 할 수 있는 길을 모색⑤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이 결합하여 건축을 중심으로 서로 통합함⑥교육의 귀납적 방법론은 현대디자인의 기초가 되고 있음의의①기계를 적극 사용②응용미술과 순수미술의 가치체계를 타파함③창의적 조형과 기술접목을 통한 현대디자인 개념 및 디자인양식의 모델 제시(디자인교육의 기본원리 확립)④디자인을 개인의 실험적 상태에서 극복시키고 보편화 될 수 있는 계기 마련*영향-국제주의 건축(박스형의 건물유행)-모던건축-기능주의 건축-교육과정의 체계적인 구축은 디자인 교육분야의 영향임*교육제도 시스템-형태, 재료, 색채의 성질에 대한 기본훈련을 매우 중시함-과거의 미술양식은 수업을 안함으로써 새로운 양식을 개발하도록 함-미술교육 제도면에서는 교육과정을 체계화 함-도제(기초교육, 예비과정) ? 직인(전문교육, 공방과정)? 준마이스터(종합적 조형교육)6. 아르데코개념?1925양식 - 1차대전의 승전국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향락적이고 사치스런 장식미술?합리적, 단순성, 구조적 기능성강조의 문화적 영향배경①1차대전 이후,파리 중심으로 전개②아르누보가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에 한계성이 있다는 것을 극복하려 등장 (공업방식에 맞는 합리성, 단순성 추구)이념적 특징①모더니즘(바우하우스, 직선)+ 장식미술(아르누보, 곡선) - 직선과 곡선의 조화!②20C 입체파, 미래파 등에 의해 개척된 모더니즘 양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장식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장식적 가능성을 보여주며, 19C 아르누보와 구별됨방법, 장식적 특징①다양한 역사적 시대와 이국적인 문화를 본보기로 삼으며, 아르누보의 곡선을 기하학화 하여 대칭적이고 직선적 형태를 추구함②에너지나 속도등의 기하학적 모티브, 여성의
죽음을 통해 영원해진 마크 로스코의 ‘정신성’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내면 깊숙한 심연의 세계로 들어가는 명상적 체험을 했다거나, 감정이 격렬해지고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는 말을 한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람들도 있으며 우주를 보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 존재로서 스스로의 작음을 깨닫게 하고 우주적인 공간을 체험하게 만드는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궁극적인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치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한 줄의 설명글도, 어떠한 형태도 없이 커다란 캔버스 전체가 색으로 가득한 색채덩어리는 무슨 힘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구체적 대상의 재현이 없이도 로스코의 그림, 그 자체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감동이 전해지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본 글에서는 로스코가 일생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그러한 경험과 더불어 그가 겪었던 철학적 고뇌의 결정체였던 그의 예술이 특히 죽음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 완성되어 갔는지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1. 개인적 비극을 통해 성장한다.마크 로스코는 러시아계 유태인으로 1903년 러시아 드빈스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학살 사건이 벌어지고, 유대인들은 학살의 공포 속에 살아야만 했다. 로스코는 이런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먼 후일 그는 러시아의 드빈스크를 회상할 때면 유대인을 죽여 파묻었던 구덩이를 회상하였다. 그는 이런 이미지들이 떠올라 평생 괴로웠으며, 그것이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유대인 학살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한 로스코는 제 2차 세계대전이 극심했던 시기를 살아낸 인물로,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염세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유대인이라는 점, 전쟁의 암울했던 시대적 분위기는 로스코의 우울한 기질을 더욱 증폭시켰을 것으로 보아진다. ‘비극적 경험은 예술의 유일한 원천’ 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비극적어진 사람들은 뭉그러진 얼굴의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어 인간의 공허함을 보여주고 있다. 로스코는 이렇듯 초기작에서는 실재하는 소재를 가지고 자신의 정신적 사유를 표현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그림 풍조는 점차 변화를 겪게 된다.니체의 ‘비극의 탄생’이란 책에 감명을 받은 로스코는, 특히 그리스 비극의 아폴론, 디오니소스의 대립에 주목한다. 형식과 규율을 중시하는 것이 아폴론적 요소라 한다면,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는 그것의 내면, 실질의 가치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대를 아폴론적 시대라고 평했던 유럽인들에게,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 로스코는 이 철학을 자신의 언어인 그림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미술에서 구체적 대상의 재현을 아폴론적인 요소라 한다면, 로스코는 이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비정형화의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성은 형체가 없기에 구체적 대상의 재현으로는 전달할 수 없다. 그는 곧 색채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조형 요소들을 제거하여 최소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색채에 있어서도 궁극에는 검은색, 갈색, 회색의 절제된 저채도만을 사용함으로써 외형적으로는 간결함의 극치를 보여주나, 내면적으로는 보다 한 단계 너머에 있는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 시그램 벽화 시리즈 - 열림과 닫힘의 경계에 있는 통로흔히 알려진 로스코의 회화는 오렌지, 노랑, 파랑의 강렬한 색채의 직사각형이 대기 속에 떠다니는 듯한 어렴풋한 추상 그림이다. 그러나 그가 일관적으로 강조해 온 것은 형식에 담긴 주제와 내용이었다. 그가 가장 경계한 것은 자신의 작품이 순수한 색채로만 되어있다는 점에서 자칫 시각적 즐거움에 그치고 마는 장식적인 것으로 오해받는 것이었다. 이런 우려 때문에 그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정신성’인 “비극성, 통렬함, 죽음 환희”를 더욱 강하게 주장하곤 했다. 266×238cm, 1959 런던테이트갤러리, 182.9×457.2×43cm, 1959, Oil paint, acryli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266×457×38cm, 1959, Oil paint, acrylic paint and glue on canvas,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로스코의 작품 외형은 추상 형태이지만, 조형요소로서가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정신성과 그 체험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어두운 적갈색이나 깊은 보랏빛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시그램 벽화 연작들을 단순한 사각형태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다.시그램 벽화에는 창문 같아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세상으로의 출입구 같기도 한 문의 형상이 담겨있다. 수평으로 길 다란 창문 형상, 수직의 사각형이 둘로 나뉘어져 짝을 이루는 듯한 문, 수평의 직사각형이 마치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눕는 관과 같아 보이는 문으로 그 형태는 다양하다. 이 사각형은 모두 관문이자 통로를 암시하며, 붉은 색의 배경은 금단의 공간을 상기시키면서도 비극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관람자는 거대한 캔버스 위의 형상화 된 사각형 앞에 서면, 건너편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문은 통로이자 동시에 차단된 진입로로, 경계를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든다. 관람자는 그림을 보면 볼수록 무엇이 통로이고, 어디가 벽인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건너편의 세계로의 경계에 막혀, 관람자를 갇혀 있게 만듦으로써, 자유롭지 못함을 체험하게 한다. 시그램 벽화 속의 문은 열려있으면서도 굳게 닫혀있는 것이다. 그 문들은 마치 자신의 내부 속에서 열림과 통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로스코는 이러한 느낌을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내적인 명상 속에서 진리의 통로를 찾을 것을 주장했던 것으로 보아진다.본래 시그램 벽화는 뉴욕의 초호화 빌딩인 시그램 빌딩의 포시즌적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으며, 그보다는 예술적 신념이 우위에 있는 사람이었다.1961년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로스코 회고전에서 큐레이터 피터 셀츠는 전시 도록에서 로스코의 사각형이 이집트 피라미드의 무덤입구와 유사하다고 평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지하세계로 열려 있는 입구이자, 죽음과 부활의 이미지로 해석되며 이러한 그의 형상화는 로스코 채플에서 고도로 승화된다.3. 궁극의 경지, 로스코 채플미술의 범주를 벗어나 정신성의 체험으로의 공간을 창조하고자 한 로스코의 희망은 1964년 4월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채플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서 그 결실을 맺는다. 채플 예배당은 벽면 장식으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회화를 중심에 두고 ‘체험적인 정신성’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설계하고자 한 획기적 기획이었다. 로스코는 채플의 건축 설계에 참여하면서 건축 형태를 팔각 구조로 하길 강력히 주장하였다. 관람객은 팔각 구조의 중심부에 섰을 때 시작과 끝이 이어진 여덟 벽면에 걸린 작품들로 둘러싸여져 압도당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팔각구조는 2차원 평면회화를 시각적인 체험만으로 한정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캔버스 속에 녹아낸 ‘정신성’을 3차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로스코 채플 내부의 각 팔면에는 높이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가 총 14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색과 보라색의 미묘한 색조 변화로 이루어진 캔버스의 평면은 단단한 물성이 느껴지는 불투명한 화면이 아니라, 얇고 투명한 막들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여러 겹 겹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기에 관람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공간으로 빠져 들어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는 로스코가 캔버스에 여러 번 덧칠을 하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캔버스 위에 색채를 칠한 후, 계란을 바르고, 캔버스를 말린 뒤에, 물감을 재차 칠하고, 그 위에 오일을 바른 후 색채를 덧입히는 행위를 수십 번이고 반복하여 작업하였다. 그렇게 완성된 색면은 빛을 발하면서도 장중한 깊이화가 3점이 있고, 1개의 캔버스로 된 단면화가 5점이 있다. 설치방식을 보자면 입구인 남쪽에는 단면화 1개가 있고 그에 상응하는 북쪽면에는 삼면화 1개가 위치한다. 그리고 동서 양쪽으로 삼면화가 마주보고 있으며 4개의 모서리에는 4점의 단면화가 있다. 14점의 캔버스들은 4미터가 넘는 높이이며, 삼면화는 폭이 7미터 반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이다. 14점의 캔버스의 색채를 면밀히 살펴보면 7개의 캔버스는 검은 형상이 어렴풋이 보이며, 다른 7개의 캔버스는 모노크롬 회화로 되어 있다. 캔버스가 14점으로 되어 있는 것은 예수가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하여 영생에 이르는 십자가의 14길을 의미한다. 로스코 채플 벽화의 주제는 죽음과 영생의 세계로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로스코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본 산타마리아 아순타 대성당에서 채플 벽화의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순타 대성당의 양끝에는 벽화가 위치해 있는데 그것은 각각 과 이다. 입구에는 의 고통의 이미지가 위치해 있고, 그에 상응하는 맞은편에는 이 있어,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이 영원한 안식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성당의 입구에서 들어서면서, 고통이 지배하는 에서 공포에 휩싸였다가, 맞은편의 을 마주하며 무한한 은혜 속에서 그 공포가 소멸되는 기분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체험을 실현시키고자, 로스코 채플의 남쪽 입구와 북쪽 면을 상응시켜서, 생의 고통과 영원한 안식의 양 극단을 보여주고자 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로스코 채플의 남쪽 입구의 단면화는 유한성의 불완전함을 지닌 인간의 생이라 해석할 수 있다. 관람자는 채플에 들어서면 먼저 자신의 삶의 유한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반해 북쪽의 삼면화는 삼위일체의 신의 영역이자, 영원한 영생인 죽음의 안식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관람자는 이 공간을 왔다 갔다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로써 초월적인 세계이자, 즉 죽음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현실의 사람이 초월의 세계로 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읽고 나서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지성과 인격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등대가 되어 줄 선생님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대학원 진학 전에는 6개월 동안 입시 미술 강사를 한 것 외에 교육 경험이 없었다. 그때는 사실 미술학원에서 같이 그림을 그려오던 1살 아래의 동생들의 입시 미술을 가르치는 것이어서 크게 어려운 줄 몰랐었다. 나 역시 20살밖에 되지 않아서 선생님이기보다는 선배언니 같은 마음이었고, 학생들과도 그러한 관계로 지냈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 하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지역복지센터에서 초등학생들의 미술 수업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이란 생각에 귀엽기도 했고, 정말 아이들만이 할 법한 표현을 할 때면 아이들의 마음에 동화되는 것 같아 형용하기 어려운 맑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점차 쉽게 대화가 통하지도 않고 장난기가 심해서 짖궃기까지 한 아이들이 솔직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서툴다니!’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처음에 대학원 진학할 때와 달리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찰나에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을 보게 됐다. 책 제목에 눈길에 가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지성, 감성, 영성을 기초로 교육관을 펼치며 미국에서 존경받는 교육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저자의 교육철학을 읽고 나의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을 되찾고자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다.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교사들을 위한 지침을 밝히고 있다. 자아성찰을 강조하는 명상학과 같은 측면이나,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어휘 사용과 더불어 추상적인 주장들이 많은 편인데, 그런 부분들이 조금은 거슬리긴 했음을 미리 밝힌다. 아래에서 그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1장에서는 이 책의 핵심 문장으로 시작한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자아의식)에서 나온다고 전한다. 이 정체성과 성실성(자아의식)이 얼마나 충실하게 단련되는 가에 따라 교사는 좋은 가르침을 행할 수도 있고, 아니면 타성에 빠질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훌륭한 교사의 자아는 가르침의 원천이자, 교사와 학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때 교사가 본인의 자아를 더 많이 알수록 자아의식을 더 많이 드러내게 된다. 이렇듯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은 내면의 소리로부터 나온다. 교사의 자아 내부를 잘 닦을 수 있는 방안으로 명상, 독서, 숲 속 산책, 일기쓰기 등을 들고 있다.또한 저자인 파머는 우리는 종종 권력과 권위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지지만, 이 둘은 다르다고 말한다. 권위는 삶과 행동이 주인인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교사인 경우 법의 강제성이나 테크닉과 같은 것에 의존한다면 교사로서의 권위는 잃게 될 것이다. 교사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실성을 회복하고 자아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진다면 권위는 저절로 찾아온다고 밝히고 있다.2장에서는 교사생활이 30년차인 교사의 인상적인 고백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 교사는 여전히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왜 그런가 물어보았더니, 학생들이 침묵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학생과 갈등이 벌어졌을 때, 교실로부터 끝임 없이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교사가 느끼듯이 학생들도 동시에 교실에서 공포감을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생의 경우는 점수를 낮게 받을까봐, 강의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자신의 무지가 노출될까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이 거리를 두고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 때 교육현장은 마비되어버릴 것이다. 이러한 단절의 해결책은 교사와 학생이 그 공포를 극복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함을 주장한다. 이 때 교사는 본인의 인격과 마음이 공포로 물들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병에 걸린 환자가 병 그 자체는 아닌 것처럼, 공포를 느끼는 사람(학생)이 곧 공포가 되지는 않음을 명심해야한다는 것이다.3장에서는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로 양극화된 소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에 보다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교육에서의 주 양극점은 교사와 학생이다. 그중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들에게 창조적 긴장감을 부여하여 학생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에서의 자유와 강제를 조화시키는 그러한 방법으로써 저자는 사랑의 힘을 제안한다.4장에서는 파머는 교사와 학생의 상호 이해의 장으로써 ‘진리의 커뮤니티’를 제안한다. 진리의 커뮤니티를 제안하기에 앞서 공동체인 커뮤니티에 대해 소개 하고 있다. 커뮤니티의 유형에는 치료, 민간, 마케팅의 3가지가 있다. 치료의 커뮤니티에서는 친밀성이 중대한 부분이고, 민간의 커뮤니티는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상호간의 갈등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커뮤니티는 치료와 민간커뮤니티를 결합한 것으로 교육자는 고객(학부모)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고객(학부모)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델은 교사의 직업윤리를 강조하지만 고객(학부모)이 항상 옳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교육의 대의를 그르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파머는 교사와 학생의 상호연결망인 ‘진리의 커뮤니티’를 안내한다. ‘진리의 커뮤니티’는 위계적이지 않으며 서로의 관찰과 해석을 공유하고 교감하는 상호작용적인 곳이다.5장에서는 ‘진리의 커뮤니티’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교실이여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교사들은 진도 나가기에 집착하기 쉬운데, 이렇게 일방적인 강의는 가장 나쁜 방법이다. 교사는 학문 분야와 관련된 소량의 샘플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방법부터 체크하는 법, 사용하고 적용하며 남들과 공유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끔 해야 한다. 이렇게 열린 학습 공간에서 교사는 가르칠 내용에 대한 뚜렷한 논리와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능숙한 솜씨가 있어야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데이터를 가지고 압도하려 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자발적으로 협력하면서 주제를 다루도록 배려해야한다.6장에서는 동료 교사들의 좋은 가르침에 대한 상호교환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교실 내 분위기, 교사 재능의 한계원인, 학습공간을 다루는 법, 교수방법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함께 논할 수 있다. 동료들 간의 커뮤니티인 가르침의 공간을 열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이러한 지도자는 1-3장에서 다루었던 내적인 자아성찰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 이런 내적 성품이 갖춰지면 교사는 지도자로써 상호지원의 커뮤니티를 형성시킬 수 있다.7장에서 파머는 교육을 교사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교사의 자아의식에서 시작한 문제는 교육개혁이라는 대규모 담론으로까지 시선을 확대한다. 하지만 보다 나은 방향의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증명해보여도, 제도적으로 가로막힌다면 교육개혁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열악함에 절망하는데 그친다. 하지만 파머는 여기서 교육개혁의 가능성을 운동역학을 설명하고 있다. 제도권의 억압은 곧 교육 개혁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개혁의 운동역학은 다음과 같다.첫째, 제도권 밖에서 현 체제보다 더 나은 가르침을 발견하게 된다.둘째, 뜻 맞는 교사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의 뜻을 이룩하기 위해 서로 성원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동체는 공식화 된다.셋째, 공동체의 뜻은 공적인 문제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제도권 안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당하게 된다.넷째, 여기서 대안적인 보상체계가 생겨난다. 그리하여 이 공동체의 비전은 추진되고 보상체계를 지급하라는 압력을 제도권은 받게 된다.파머는 이에 한 예시로 1955년 흑인인 로사파크스가 인종 문제에 불씨를 낳았던 사건을 소개하였다. 로사는 오랫동안 인종차별을 받아오던 끝에 마음을 먹고, 흑인 차별버스의 좌석에 앉는다. 그녀는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해 올 것을 당당히 거부했다. 공개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백인 제도권에 선언을 한 것이다. 이때 로사가 남긴 말이 뇌리에 남았다.“내가 제도권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했으므로 제도권은 이제 나에게 영향력이 없다. 더 이상 백인들의 ‘저 곳’이 나에겐 직접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다만 나의 직접적인 문제는 인종차별을 당함에도 저항하지 않고 제도권이 내 삶을 통치하도록 허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