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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논란에 대한 소감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논란에 대한 소감1. 서론한국근대사수업이 아니었다면 교과서포럼이란 단체에 대해서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조사를 하면서 수업을 듣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단 교과서포럼이란 단체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교과서포럼은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뉴라이트 운동 계열의 단체로서 2005년 1월 25일에 창립하였다. 교과서포럼은 창립선언문에서 창립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역사를 바로 세우기보다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을 바로잡고 미래세대를 올바르게 인도해야 해야 하겠다는 절박감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그리고 그들의 활동목적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각종 교과서를 분석·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실을 추구하는 학도로서의 성실성과 엄숙성, 및 겸허함을 견지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교과서포럼은 기존 대한민국 교과서의 현대사와 경제사 관련 서술을 문제 삼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수정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2008년 3월 24일에 출간하였다. ‘대안교과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교과서 검정을 받지 못한 책이다. 주로 수정된 내용은 일제 강점기 동안의 경제사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기술로, 현행 교과서에 비해 긍정적으로 다루어졌다.2. 본론처음에 조사를 하면서 제일 의문이 되었던 점은 어떻게 한 국가의 교과서가 어떠한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에 의해서 나올 수 있느냐였다. 국사교과서는 자신이 태어난 국가의 민족성을 배우기 위한 기본적인 교과목이다. 알아본 결과, 국사교과서를 통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조국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국가에서는 국정으로 철저히 검증을 통해 발간해왔었다. 하지만 역사학계내에서 2007년 2월에 이루어진 개정 7차 교육과정에서는 대강화 정책으로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국사 교과서를 서술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였다. 바로 국정에서 벗어나 검인정 체제로 2010년부터는 국사교과서가 편찬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학계의 자기 반성적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2008년 3월에 출판된 대안교과서 근현대사가 그 동안의 국사교과서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논란의 중심인 교과서를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소감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역사학을 잘 모르는 본인에게도 교과서의 논조에 흐르는 내용자체가 기존 국사교과서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민족주의 같은 것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 책에 서술된 부분에 대한 반박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크게 세부분으로써 첫 번째는 우리나라는 식민지시대 이전에 근대화로 발전할 만한 개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다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대한제국 시기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이다. 즉, 수탈론적 입장에서 광무개혁에서 이루어진 전제군주라는 정치적 분야만을 부각하여 당시 이루어진 경제, 산업, 농업 분야의 개혁을 평가절하하고 그로 인해 식민지체제하에 들어가는 것을 당연한 인과관계로 기술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는 식민지시대의 일제의 정책에 관해 다룬 부분에서 아직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 조선이 일제 식민지배하여서 여러 경제, 산업 등의 분야의 발전을 통해 근대화로 발전해 갔다는 서술이다. 본인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이었다.이 교과서의 일관된 논조의 흐름 중 하나는 일본,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여 근대화되지 못한 채 전근대사회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일본은 1876년 메이지유신으로 아시아의 호랑이였던 중국을 누르고 아시아의 1인자로 군림하고 나아가 제국주의 정책으로 대동아 공영론을 펼치며 세계적인 나라로 자리 잡았고, 중국 역시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 의화단 운동을 거치면서 근대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반해 조선은 전제왕권 하에서 왕토사상에 근거한 경제적 봉건성, 정치적 봉건성이 겹쳐지면서 발전의 싹이 트지 못한 상태로 머물렀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이 서구적 근대국가수립에 실패했는지에 관해서는 단순한 메이지유신, 양무운동등과 같은 내부 역량 차이로만 볼 수 없다. 한국에서도 내부역량을 키워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펼쳐왔다. 즉, 서구적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개화파, 위정척사파가 각기 근대수용과 근대배척의 기치아래에서 개화파는 갑신정변, 독립협회, 광무개혁 등을 거치면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하려고 노력했고, 위정척사파 역시 애국계몽운동을 통해 교육적으로 개화하려고 노력했다.이처럼 한국도 발전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중국, 일본에 비해 근대화에 뒤쳐진 이유는 내부역량 탓이 아니라 외압에 의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은 메이지 유신으로 급성장한 일본과는 달리 이중의 외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즉, 일본,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경제적 외압과 함께 청, 일본의 대결에 의한 동아시아나라의 정치, 군사적 외압에 동시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즉, 한국, 일본, 중국의 각기 내부역량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외부세력의 압력이 한국, 중국, 일본 순으로 강했기 때문에 한국은 식민지에 중국은 반식민지에 일본은 식민지에 놓이지 않고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즉, 내부역량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내부 역량에 차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는 외세의 압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근대 문물의 수용과 대응’이라는 단원에서 과학기술과 근대적 시설, 근대교육의 확대, 새로운 문학과 예술이라는 소제목 하에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여 설명하고 있다.즉,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 간의 경인선을 시작으로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으며, 자동차도 등장하였다....서양 문물의 도입에 따라 그 기반이 되는 서양의 정신문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점차 폭을 넓혀 갔다.’ 라고 서술되어 있다.하지만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란 제목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지듯이 당시 서양 열강에 의한 근대적 문물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에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경인선 철도의 건설에 관해 ‘러.일 전쟁 이후에 ... 경부선을 비롯한 여러 철도를 부설하면서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던 농토를 철도 부지에 편입시키고 농민들을 강제로 철도 부역에 동원하였다. ’라고 서술하였다. 즉, 대안교과서에서 철도의 도입 등 서양문물의 도입을 대중이 이해했다는 서술을 통해서는 자칫 모든 민중이 그러한 서양문물의 도입에 찬성하고 반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조선에 들어오는데 있어서는 대중의 희생이 뒤따랐고 그에 따라서 대중들은 서양 문물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즉, 서구의 과학 기술의 도입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었던 것이다.이처럼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식민지시대 일제에 의해 이뤄진 금융, 산업, 농업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이뤄진 정책에 관하여 대안교과서와 기존의 금성 교과서의 서술은 극히 상반된 입장에서 쓰여 졌음을 알 수 있다.
    교육학| 2008.12.11| 5페이지| 2,0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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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차 교육과정 성격과 구성 그리고 문제점
    * 제 7차 교육과정Ⅰ. 교육과정의 성격이 교육 과정은 교육법 제 155조 제 1항에 의거하여 고시한 것으로, 초 · 중등 학교의 교육 목적과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 수준의 교육 과정이며, 초 · 중등 학교에서 편성, 운영하여야 할 학교 교육 과정의 공통적,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이 교육과정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1.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지역, 학교,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교육과 정이다.2. 학습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이다.3. 교육청과 학교, 교원 ·학생 ·학부모가 함께 실현해 가는 교육과정이다.4. 학교 교육 체제를 교육 과정 중심으로 개선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5. 교육의 과정과 결과의 질적 수준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다.Ⅱ. 교육과정 구성의 방향1. 추구하는 인간상우리 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가.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나.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다.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마. 민주 시민 의식을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2. 교육과정의 구성 방침가.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한다.나.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과 선택 중심 교육과정 체제를 도입한다.다. 교육 내용의 양과 수준을 적정화하고, 심도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수준별 교 육 과정을 도입한다.라. 학생의 능력, 적성, 진로를 고려하여 교육 내용과 방법을 다양화 한다.마. 교육 과정 편성과 운영에 있어서 현장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바. 교육과정 평가 체제를 확립하여 교육에 대한 질 관리를 강(6),생물Ⅱ(6),지구화학Ⅱ(6)농업 과학(6), 공업기술(6), 기업경영(6)해양 과학(6), 가정과학(6)체육음악미술체육(4)음악(2)미술(2)체육과 건강(4)음악과 생활(4)미술과 생활(4)체육 이론(4), 체육 실기(4 이상)음악 이론(4), 음악 실기(4 이상)미술 이론(4), 미술 실기(4 이상)외국어영어(8)영어Ⅰ(8), 영어Ⅱ(8), 영어회화(8)영어 독해(8), 영어 작문(8)독일어Ⅰ(6),프랑스어Ⅰ(6)스페인어Ⅰ(6),중국어Ⅰ(6)일본어Ⅰ(6),러시아어Ⅰ(6)아랍어Ⅰ(6)독일어Ⅱ(6),프랑스어Ⅱ(6)스페인어Ⅱ(6),중국어Ⅱ(6)일본어Ⅱ(6),러시아어Ⅱ(6)아랍어Ⅱ(6)한문교련교양한문(6)교련(6)철학(4), 논리학(4)심리학(4), 교육학(4)생활경제(4), 종교(4)생태와 환경(4)진로와 직업(4), 기타(4)한문 고전(6)이수단위(56)24 이상112 이하재량활동(12)특별활동(4)8총이수 단위216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잠재가능성을 계발시켜 이상적 인간으로 만드는 의도적인 작용이다. 여기서의 이성적 인간이란 스스로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형성하고 학문과 덕을 습득하여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교육의 기능은 우리로 하여금 상식에서 심오한 학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탐구하도록 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교육의 첫째 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교육은 장소, 시간을 불문하고 이루어진다. 가정, 학교,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아는 힘을 기르게 된다. 또 교육은 우리의 인격 형성에 필수 요소인 덕을 쌓도록 가르친다. 이는 무엇인 선하고 무엇인 악한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교육은 우리의 몸을 건전하게 가꾸도록 작용한다. 아무리 학문과 덕행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건강한 몸이 허락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지·덕·체가 조화롭게 발달한 인격체를 기르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겠다.그러나 이러더 중요시하게 되고, 교사는 의욕, 열정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 현실은 과히 교육의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이러한 교육적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현행 교육 과정(7차 교육과정) 측면에서실제 교육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육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1. 선택중심 교육과정에 따른 문제점선택 중심 교육과정은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을 받은 후 11, 12 학년에서 학생들의 진로, 적성, 능력에 따른 선택을 존중하여 편성?운영되는 교육과정이다. 고등학교 2, 3학년에 새로이 도입된 선택 중심 교육과정은 학생의 능력뿐만 아니라 흥미나 장래 진로를 감안하여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학생 스스로가 선택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체제라는 의미에서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라 한다. 선택 중심 교육과정은 근본적으로 다양하고, 변화하는 학습자들의 교육적 요구에 학교 교육이 대응해 나가고,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우리 교육의 다양성, 수월성과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제7차 교육과정의 핵심적인 실천 과제라 할 수 있다. 결국 선택중심 교육과정은 선택과목을 단위학교가 어떤 식으로 개설?이수시키느냐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의 성패가 좌우되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핵심이다. 또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 및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고등학교 학습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출처] 선택 중심 교육과정|작성자 김동균내가 교생실습을 나간 부안여자고등학교에서도 교육과정에 맞추어 교과를 선택하여 이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띠었던 것은 외국어 영역이었다. 부안여고 에서는 외국어로 일본어와 중국어를 선택하여 이수하고 있었는데 내가 학교 다닐 2004년 당시 문과반은 일본어를, 이과반은 중국어를 선택하게 하여 일괄적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살펴보니 2004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 · 이과 상관없이 중국어나 일본어 둘 중 자신이 듣고자 하는 과목을 선택 문제는 선택중심교육과정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과는 무관한 교과목을 단순히 졸업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수강할 필요가 없다는 이점은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어렵거나 학생들이 기피하는 과목에 해당하는 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학생들이 기피하게 되어 사라지게 되는 과목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일정 과목을 무조건 선택하여 그 교과에 흥미와 관심이 없는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형태의 교육에도 문제점이 있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이 선택 중심 교육과정에도 이에 못지않은 문제점이 속속 발견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2. 수준별 교육과정에 따른 문제점수준별 교육과정이란 학생들의 능력 수준과 적성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달리하는 교육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학생의 능력 수준과 요구에 대응하는 차별적, 선택적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로 도입되었다. 이는 기본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하도록 하려는 취지로서, 기본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보충할 기회를,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학생에게는 심화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가가 국민의 기초·기본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의도 또한 내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모든 학생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로 실현시키고 각 학생들의 수준에서 최고의 학습을 이루고자 함이다.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의 필요성은 현재 교육 일선에서 실시되고 있는 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학급당 50명 내외의 과밀학급에서 능력, 적성, 소질 욕구가 다른 학생들이 획일적인 내용과 방식의 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학습에서 소외되는 학생들과 이와는 반대로 이미 학습을 모두 마치고 좀 더 심화된 내용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1) 수준별 교육과정 편성으로 교사 중심의 획일적인 일제 수업을 전개하는 것을 개선하 기 위함이다.2) 교과의 구성과 활요에서 학교별, 학급별, 교과별로 책임있는 학습자 중심의 재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3) 교수·학습 방법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았는데, 이는 등급의 정도를 의미하는 교육내용의 난이도 및 학습능력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수준별이란 교육내용의 개별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다시 말해 2수준 또는 3수준으로 나누고 나서 이를 학생 개인별로 학습할 수 있도록 세분하여 개별화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수준과 관련지어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학생들의 수준을 무엇으로 볼 것이며 어떤 기준에 의하여 수준을 가를 것인지가 전혀 연구 되지 않아 학교 현장 교사들이 학생의 수준을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교사의 평가에 대해 불신감을 갖고 불안에 떨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업은 수준별로 학급을 나누어 따로 배우면서도 성적을 내기 위해서 중간·기말고사는 모두 다 같은 시험지를 이용하여 평가를 하게 된다. 분명 배우게 되는 난이도나 내용면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할 때에는 똑같은 시험지로 본다는 것은 결국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핸디캡을 적용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차별 아닌 차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수준별로 학급을 나누게 되다 보니 우등반과 열등반이 자연스럽게 나누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예전의 우열을 나두던 방식과 똑같은 구분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내가 실습을 나갔던 부안여고에서는 모든 과목이 이러한 수준별 학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요과목인 수학, 영어만이 이것을 행하고 있었다. 앞의 1,2반은 심화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 반은 보충반으로 편성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제각기 배정된 반으로 이동하여 수업을 받게 되는 형식이었다. 배우는 내용 역시 조금의 차이를 두었다. 심화반은 조금 더 난이도 있고 심도 있는 내용을 배웠으며, 보충반은 기본적인 내용에 충실하여 기초를 다지는데 주력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점으로는 심화반에서 보충반, 보충반에서 심화반으로의 이동이 꽤 자유스러웠다는 점이다. 중간·기말 고사를 통해서 일정 수준을 넘겼을 .
    교육학| 2008.12.11| 7페이지| 1,000원| 조회(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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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너지자원의 실태와 대처방안
    목 차Ⅰ. 서 론 ------------------------------ 1Ⅱ. 본 론-------------------------------- 21. 석 유--------------------------------- 22. 원자력에너지 -------------------------- 83. 신재생에너지 -------------------------- 13Ⅲ. 결론 -------------------------------- 24참고문헌----------------------------------- 25Ⅰ. 서론5월의 따스한 봄 햇살을 맘껏 느껴보기도 전에 뜨거운 햇볕이 가득한 불청객 ‘여름’ 이 불쑥 찾아왔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지구의 온난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 지구의 온난화를 실제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남극대륙의 거대한 빙산이 떨어져 나가고 있고, 그린란드의 빙산이 녹아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태평양 ‘투발루’ 같은 섬나라는 해마다 해수면이 높아져서 면적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온난화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심각해 것일까? 그것은 바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증가 때문이다. 비단 지구의 온난화 문제뿐만 아니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우리가 마시고 있는 공기, 우리가 먹고 있는 물이 오염되고,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또한 생태계의 생물들이 점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실정에 놓이게 되었다.18C초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부터 석탄이 사용되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공업화가 진행되어 곳곳에 공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석탄의 사용량은 빠른 속도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19C말 석유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석유는 석탄을 제치고 제1의 에너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화석연료의 사용량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고 대기오염, 수질오염, 온난화 등의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1970년대부터 화석연료 사용의 문제점이 점차 없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석유의 소비량과 소비지역 분포를 살펴보면, 미국이 세계 석유 소비량의 25.1%를 차지하여 가장 많고 이어서 독립국가연합(12.5%), 일본(7.9%)의 순이다. 석유 소비량이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운송연료가 미국 석유 소비량의 3/5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역별 소비율의 분포를 보면, 대서양 연안지역에서의 소비량이 약 1/3을 차지하여 인구분포와 석유 소비량과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석유의 주요 수출?입국을 보면 주요 수출국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란 등이며, 주요 수입국으로는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이다. 석유의 국가 간 유동을 보면, 서남아시아에서 서부 유럽의 여러 나라, 일본으로의 유동과 베네수엘라에서 미국 ? 캐나다 ? 서부 유럽 여러 나라로의 유동이 탁월하다.이와 같이 석유의 소비량은 점점 증가되는 추세에 놓여있다. 물론 석유를 사용하면서부터 많은 각종 산업의 발전이 이루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려한 발전 뒤에는 환경오염, 온난화, 전쟁 등의 폐해가 숨겨져 있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1) 전쟁먼저 1991년에 일어난 걸프전쟁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이 계기가 되어, 미국·영국·프랑스 등 33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쿠웨이트가 원유시장에 물량을 과잉 공급하여 유가를 하락시킴으로써 이라크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었다고 비난한 바 있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 점령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속주로 삼아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이라크의 침공 직후 쿠웨이트 왕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피신하여 망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각국은 8월 2일부터 12개에 이르는 대 이라크 유엔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통해 이라크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이라크군의 즉각적인 쿠웨이트 철수와 쿠웨이트 정책에 중점을 둔 것에 기인한다.3) 환경 오염산업혁명 이후 에너지원으로 소비한 화석연료 연소량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대기 내 탄산가스 농도도 약 25%(연평균 증가율 1.2%)로 증가하였으며, 지구 대기권의 평균기온이 이미 0.5℃ 상승하였다. 산업혁명 전 농도의 약 2배가 되리라는 2030년에는 1.5∼4.5℃(평균 3℃)만큼 온난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바닷물의 수온도 상승하여 100년간 14.3~22.7cm만큼씩 평균해면수위가 상승하는 추세에 있는데, 2030년까지는 20~140cm만큼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화석연료 연소시 방출된 황성분의 증가와 더불어 산림과 각종 구조물에 피해를 주는 산성비, 불화염화탄소(chlorofluorocarbons:CFCS) 사용량 증가에 따른 성층권, 오존층의 파괴 및 이로 인해 자외선이 지표에 더 많이 도달하여 피부암 발생률의 증가, 생물종의 감소, 물고기의 어획량 감소, 농작물 수확량의 감소 등 지구환경의 장래는 심각하게 되었다.① 대기오염인류의 생활 활동 결과 발생한 물질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인간생활에 불쾌감을 주고 재해 위험성이 있으며 건강장애를 끼치거나 재산상의 피해를 끼칠 정도로 대기 중에 포함되어 있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권한을 방해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대도시에서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는 자동차의 배기가스, 공장의 매연 등에 기인한 것으로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및 분진 등이 대기오염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스모그 현상, 산성비, 지구의 온난화 등이 발생하게 된다.- 스모그로 인한 피해스모그란 연기(Smoke)와 안개(Fog)의 합성어로 공 장이나 자동차, 가정의 굴뚝에서 나오는매연이 안개와 섞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스모그에 는 런던형 스모그와 ? 광화학 스모그`라 불리는 로스 앤젤레스형 스모그가 있다.런던형 스모그는 공장의 매연, 가정 난방의 배기 가 스 등이 주요원인이며 석탄의 연소를 통해서 대기로 유입되는 매연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 극지방의 빙산이 녹아 해수면이 최소 10㎝에서 최대 2m까지 상승하여 낮은 곳에 있는 도시와 섬들이 침수하고, 농경지의 감소, 해안선의 변화 등이 일어나 수자원 관리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며, 또한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병충해의 피해가 크게 늘어나 농작물 수확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강수량과 수분증발량을 변화시켜서 이상기후가 발생하게 되면 생태계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추세가 100년간 지속되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2.5℃에서 5.5℃정도 상승하게 되고 해수면이 0.5m에서 최고 2.0m까지 높아져 적어도 10억명 이상의 환경난민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③ 산성비비는 지상에 떨어지는 동안 대기에 떠있는 가스와 먼지, 분진 등을 씻어 내는데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정상적인 pH가 아닌 강산성 pH로 변해 산성비가 내리게 된다. 산성비의 원인으로는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과 공장이나 발전소, 가정에서 사용하는 석탄, 석유 등의 연료가 연소되면서 나오는 황산화물이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나 다른 혼합물과 만나 황산이나 질산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즉, 산성비의 주요 원인물질은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이다. 황산화물은 우리가 소비하는 석유가 연소할 때 많이 발생되며 질소산화물은 자동차의 연료 연소 시 많이 배출된다. 이렇게 산성이 된 물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많은 생물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산성에 약한 물고기 종류에서 그 영향이 제일 먼저 나타나 점차 다른 생물로 확산되는데, 땅에 산성 물질이 쌓이면 그 땅에서 자라는 식물도 피해를 입게 된다. 또한 산성비의 영향으로 세계도처의 삼림이 황폐화되고 토양의 오염, 하천이나 호수의 물고기 떼죽음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공업지대 주변에 있는 침엽수림이 말라죽었고 독일에서도 1986년 현재 전체 삼림면적의 54%인 250ha가 피해를 입었으며, 스웨덴은 2,500여 호수의 낚시터와 초지의 20%가, 미국은 전한다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지역을 배제한다. 그리고 현지 지상조사 후 적합 판정된 지역에 대해 지질조사를 하여 이도 적합판정이 나오면 연방의회에서 이 지역을 처분장 후보지로 최종 확정한다. 각 단계들이 결정될 때마다 주민들이 확실하게 참여해야 하고, 100만년 동안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격리할 수 있는 지질구조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은 기존의 지질자료를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지질자료를 주민들에게 광범위하게 공개하고 설명하고 결정과정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 지역이 후보지에서 배제되지 않고 최초의 후보지로 선정되었을 때 주민들이 수긍하게 된다는 것이다.독일정부에서는 2030년 핵폐기장 완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1979년부터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20여년이 지나고 나서 이를 거의 백지화하고 다시 30년이란 시간을 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쏟겠다는 것이다. 시간표를 이렇게 길게 잡은 이유는 독일정부가 주민들의 참여와 지질조사 과정에 긴 시간이 투입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원자력 발전의 피해 사례로는 1979년 3월에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스리마일섬에서 일어난 사고와 1986년 4월에 일어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사고가 대표적이다. 먼저, 스리마일섬 사고는 발전소 2호 원자로에서 냉각수 급수계통이 고장이 나면서 냉각재가 파괴되고 원자로가 융해돼 방사능 물질이 밖으로 유출되면서 일어났다. 사고가 나자 반경 80km 내에 거주하는 주민 2백만명이 방사능에 노출됐다. 사고가 나서도 발전소 운영자와 정부는 방사능 유출이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야 펜실베니아 주지사는 임산부와 어린이들을 먼저 대피시켰고, 주변 23개 학교를 폐쇄하고 인근 주민들에 대해서도 긴급대피 명령을 내렸다. 5일 동안 계속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없었지만 주민들은 기형아 출산, 암 발생의 증가와 같은 각종 방사능 재해에 시달렸다. 피해 주민들은 원자력 회사에 소송을 제기해서 보상금을 받았으며, 실례로 방사능 노출로 다운증
    자연과학| 2008.12.11| 27페이지| 1,500원| 조회(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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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도시성장의 시기별 특성
    1. 조선시대 이전의 도시발달우리나라의 고대 도시는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서, 고구려의 국내성과 백제의 위례성과 공주 및 부여, 신라의 경주 등에 이르러 본격적인 도시 형태를 갖추고 발달하였다. 주로 방어를 목적으로 산지에 성벽을 둘러쌓아 산성을 축조하였는데, 고구려의 국내성은 산성을 쌓아 만든 압록강 북안의 만주부근에 위치한 대표적인 산성도시이다. 고조선 시대의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을 비롯해서 한강이남지역에 많은 부족국가들이 출현하였으나 도시의 발달은 미약하였다. 그것은 부족국가의 인구규모가 크지 않으며 부족국가사회의 정치조직이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본격적인 도시 발달은 삼국 시대에 이르러 시작되었다. 이때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였다. 왕이 있는 수도와 지방행정 중심지에 성곽을 축조하고 장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어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국내성과 평양, 백제의 위례성과 공주 및 부여, 신라의 경주 등이 대표적이다. 고구려의 평양은 평지에 성을 쌓고 방어용의 산성을 갖추었으며, 도시 계획에 따라서 시가지를 구분하였다. 백제는 금강의 하안 지형을 이용하여 토성을 쌓고 계획적으로 방어용 도시를 건축하였다. 또한, 신라의 경주는 하안에 반월성을 쌓고, 토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 정연하게 구획하였다. 경주는 전성기의 인구가 15~20만 명에 이른 대도시로 추정되며, 효율적인 통치를 위하여 지방에 5소경을 두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경과 지방 행정 중심지인 평양, 한양, 경주 등의 3경이 발전하였다. 이들 도시는 생산력을 갖춘 도시가 아니라 행정 중심지였으며, 하천 유역의 분지나 방어에 유리한 지역에 입지하였다.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의 주군제도를 모방하여 전국을 9개주 곧 상주, 양산, 진주, 광주, 춘천, 공주, 강릉, 전주, 광주와 5소경 곧 충주, 서원, 북원, 남원, 김해로 나누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도시 가운데 신흥공업도시나 신도모가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발달은 도시형성을 촉진시켰다.2. 조선시대 이후의 도시발달조선왕조는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도시발달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조선시대의 지방제도는 전국을 8도로 구분하고 그 아래 부, 목, 대도호부, 군, 현 등과 같이 약 330개의 행정구역으로 구분하여 통치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서울이외에도 관찰사, 수령들이 상주하고 있는 행정중심지나 군사 및 교통중심지인 충주, 공주, 전주, 대구, 원주, 해주, 함흥, 영흥, 평양 등의 지방도시가 형성 발전되었다. 즉 처음에는 행정중심지로서 정치적 기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으나 점차 교통과 시장기능이 더해졌다.조선시대 후기에는 상공업 중심의 도시발달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의 우리나라 도시는 정치적 기능을 기반으로 하는 전산업적 소비도시로 머물러 있었으나, 농업 생산성의 향상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전반의 활성화는 도시의 상업적 기능을 증대시키게 된다. (대동법의 시행, 사상의 대두, 지방 장시의 발달 등) 그러나, 20세기 이전 전 산업시대에는 시역 내에서도 농업 인구가 상공업 인구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전산업적인 모습과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머물러 있게 되었다.조선시대에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와 군현제의 실시로 정치와 행정 기능이 도시의 주된 기능으로 부각되어, 수도인 한양과 지방 행정 중심 도시인 충주, 청주, 전주, 평양, 함흥 등이 당시의 주요한 도시들이었다. 한양은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하였고, 수륙 교통이 편리한 장소로 풍수설을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지방을 연결하는 모든 간선 교통로는 한성을 중심으로 방사상의 모양으로 구축되었다.한편, 국경에는 방어를 위한 군사 도시가 형성되었고, 역원과 나루터 등의 교통의 요지에 도시가 발달하였다. 후기에는 상업의 발달과 함께 정기 시장을 중심으로 상업적 기능을 갖춘 도시도 등장하였다.① 한성부의 건설?풍수 지리설의 영향 : 국토의 중앙적 위치, 편리한 수륙 교통, 방어에 유리 도시에 관련된 지표 가운데 도시수, 도시인구, 도시화율은 도시발달의 변화단계를 구분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인구 관련지표는 해방 전의 경우 1930년을 분기점으로 증가하며, 해방후에는 1960년 이후에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1789년 이후의 우리나라 근대도시의 발달은 크게 4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1) 제 1시기(1789-1930)1876년 개항전까지 우리나라는 전산업시기로 볼 수 있다. 1789년의 경우 역사적 중추행정중심지였던 한성, 개성, 평양 등이 2만 명이상의 도시를 이루었다. 부목군현의 청사가 있었던 지방행정 중심지인 상주, 전주, 대구, 충주, 의주, 진주 등은 인구 1~2만명의 소 도읍으로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는 교통수단이 도보와 우마차에 의존하는 형태였고, 지역 간의 이동이 제한적인 자급형의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1877년 1월에 부산, 1879년 8월에 원산, 1883년 9월에 인천이 각각 개항을 하고 이를 근간으로 우리나라의 근대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하여 일본이 필요로 하는 자원의 개발과 대륙 침략의 기지 확보 등을 위해 이루어졌다.?대일 무역항구로 발달한 도시 : 부산? 인천? 원산 ?목포?신설 철도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 : 대전 ?이리 ?천안 ?신의주1920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우리나라의 도시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00년대의 철도의 개통과 함께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신흥 항만 도시가 발달하여 우리나라는 일제의 원료 공급 및 상품 시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해 실시된 부제에 의하면, 인구 2만 이상의 도시를 부(府 ; 오늘날의 시에 해당)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 부로 승격된 도시 12개 중에서 서울, 대구, 평양을 제외하면 부산, 인천, 남포, 목포, 해주, 청진 등 모두가 신흥 항만 도시였다. 그리하여 개항 후, 상주, 충주, 의주 등 내륙도시들은 인구가 감소하는 반면, 함흥,잇는 육상교통수단이 미비하여 전국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근대적 의미의 도시체계는 이루기 어려운 상태였다.2) 제 2시기(1930-1945)일제가 병참기지화 내지는 농공병진정책 등의 본격적인 식민지 정책을 수행한 시기로서 제조업 중심의 공업발달과 더불어 비약적인 도시성장이 이룩된 기간이다. 경인선을 시작으로 한 철도의 건설로 1920년 이후 서울, 평양, 대전, 이리 등이 성장하였다. 한편, 일제는 1930년 이후 병참 기지화 정책으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부 지방의 아오지, 회령, 강계, 길주, 삼척등의 탄전지대와 흥남, 성진, 함흥, 원산, 청진, 나진 등 신흥 광공업 도시가 발달하였다. 결론적으로 일제 강점기는 항만과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주요 도시로 발달하였고, 평양, 남포 등을 중심으로 관서 공업지대가 형성되었고, 교통상의 요지인 의주, 만포, 선천, 안악, 산천, 연안, 재령 등이 발달했다.일제는 철도와 신작로를 개설하여 국토 조직을 재편성하고, 원료의 반출과 제품을 소비시키기 위하여 기존의 시가지도 재조직하였다. 따라서, 철도역, 항구의 부두 근처는 모두 일인들이 장악하여 신시가지로 발달시켰고, 우리의 전통적 구 시가지는 대부분 쇠퇴하였다. 이로써 한민족의 정치, 경제 체계는 대부분 정체되었고, 도시가 기형적으로 발달하였다.도시 발달은 그 하부구조의 하나인 교통로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특히 철도는 근대국가에 있어 정치?경제?사회 및 기능의 제 측면에 걸쳐 필요불가결한 시설인 동시에 경제 발전과 도시발전의 혈관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나라에서의 철도는 한반도의 치안유지와 일제의 대륙침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철도로서의 기능과 자원수탈을 위한 수단으로 출발하였다. 일제에 의한 우리 나라 철도 건설은 도로 교통시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철도 교통시대로 돌입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지역 격차를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국유철도로 운영되어 국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민간 자본주의 발달보다 앞섬으로써 경제발전 과정에 있어서 파행성과 비정상적 도시발달을 초래하가 225만 정도, 76개 읍 인구의 합계가 160만 정도로 나타나, 남한지역내의 도시인구(읍 포함)총수는 380~400만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8. 15해방 당시의 남한인구 총수 약 1,657만에 대해 약 23%에 해당되는 수효였다. 즉 1945년 남한의 도시화율(읍급이상)은 약 23%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도중 해방과 동시에 반도 전역에 거주하고 있던 71만 3천여 명의 일본인이 이 땅을 떠났고 34만 7천명의 일본군인이 자국으로 귀환하였다. 대략 70여만의 일본인이 귀국한 대신 일본과 만주?중국 등지에 거주하던 120여만 명의 동포가 환국하여 서울, 부산, 대구, 마산, 대전 등 국내의 대소도시에 정착하게 되면서 인구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이 시기에 중?고등학교의 증설로 인해 학교가 도시에 위치하게 되었고, 이 또한 도시로의 인구유입을 가속화 시켰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에 의해 48만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월남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이들의 정착지는 주로 부산을 비롯하여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의 도시 지역이었고 농촌지역에 정착하는 예는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이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이루어진 극심한 인구이동의 결과는 40년대 후반부터 남한의 지역 구조를 크게 변동시키게 되었다. 1955년 이후에는 전후 복구 작업과 산업철도의 발달에 힘입어 관동지역에 광공업과 관련된 도시발전이 두드러졌고, 특히 충남, 전북, 경남지역에 인구규모 2만 명 이상의 도시발달이 진행되었다.4) 제 4시기(1960-1995)우리나라는 1960년 이후부터 현대적 의미에서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60년 이후 국가의 산업구조가 공업화로 전환되면서, 공업과 관련된 지역이 도시발달을 선도하였다. 1960년대 초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추진으로 기존 대도시와 남동 임해지역 신흥 공업도시의 인구급증(울산, 창원, 마산), 1963년 부산이 직할시가 되었고, 전체인구에 대한 도시인구비율은 42.6% 에 이르렀다. 또한 지역의 성장거점인 광주, 대.
    사회과학| 2008.12.11| 7페이지| 1,000원| 조회(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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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리지 서평
    우리나라 지리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지리 관련 학과에 다니고 있다면(등…) 누구나 꼭 한번쯤은 를 읽어봤을 것이다. 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영조 즉위 후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절도로 귀양를 가게 되면서, 계속되는 유배생활과 방랑 생활 가운데 쓰여진 지리서이다. 이 책은 총 , , 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은 사대부의 신분이 농?공?상으로 달라지게 된 원인과 내력을 서술한 것으로 팔도총론과 복거총론에 비해 비교적 짧게 서술되어 있다. 에서는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그 지리를 논하고 그 지방의 지역성을 출신인물과 결부시켜서 서술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주요 산맥과 산, 그리고 하천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택리지는 굉장히 실용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에서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을 택하여 그 입지조건을 들어 타당성을 설명하였는데, 그 조건으로 ‘첫째로 지리가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생리가 좋아하며, 다음으로 인심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고 했다. 이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된 택리지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크게 펼쳐진 우리나라의 지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의문점이 생기는 것도 있었고, 이중환 선생의 의견에 반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훌륭한 책이 구나’ 라고 느낄 정도로 감명을 받는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감히 몇 자 적어보기로 한다.먼저, 에서 이중환 선생의 실학사상에 기초한 사민평등 사상을 엿 볼 수 있다.‘ 순임금은 요 임금 때에 사대부였으나, 농?공?상의 일을 하고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후세에는 무엇 때문에 꺼리는가. 혹 사대부라는 명호로 농?공?상을 업신여기고 농?공?상의 신분으로 사대부를 부러워한다면 이것은 모두 그 근본을 모르는 자이다’< 사민총론 >라고 말하면서 사농공상의 구분이란 단지 직업상의 차이일 뿐이라고 하면서, 사민평등의 사상을 제시한다생각하던 그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이중환 선생은 그들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물론 ‘택리지’ 라는 책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 당시 남인계열이 양반들이 속속히 몰락하게 되고 이중환 자신도 몰락하게 되어 살 곳을 찾기 위해 헤매면서 몰락한 양반들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을 물색하는데 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상으로 삼았던 사대부 사회가 도저히 구제불능일 정도로 타락하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전국 어디를 돌아보아도 살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 그에게는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대부가 아닌 다른 삶, 살아 움직이는 장터나 비린내 나는 포구 등의 풍경과 서민들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농민과 상공인들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강거와 해거 등 다양한 성격의 가거지도 고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중환은 사대부들이 살기 좋은 곳, 즉 이상향을 찾기 보다는 실학사상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가거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중환의 사민평등사상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택리지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둘째로, 택리지는 그 시대에 비해 상당히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지리서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풍수지리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서술을 했다는 점이다.‘ 나주는 노령 아래 있는 한 도회인데 북쪽에는 금성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영산강에 닿아 있다. 고을 관아의 판세가 한양과 흡사하여 예부터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 많다.’ - 전라도‘그리고 사방에 산이 멀리 있어 평탄하고 넓으며, 산맥이 평지에 뻗어 내렸다가 물가에서 그쳐 들판 터를 만든 곳이 또 그 다음이다. … 산의 내맥이 약하고 둔하며 생생한 기색이 없거나 혹은 산 모양이 부서지고 비뚤어져 길한 기운이 적은 곳이다. 땅에 생생한 빛과 길한 기운이 없으면 인재가 나지 않는다 ’ - 지리이렇듯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풍수와 자연환경을 연관시켜 인재의 배출 지형을 관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을 것이다. 현대에는 기계가 발달해서 지형을 관찰하는 일이 손쉬워져 졌지만 조선시대 때는 형편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만약 현대에 ‘택리지’가 쓰여졌더라면 발달된 과학기술을 통해 지형에 관한 것들이 조금 더 명확하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쓰여졌더라면 더 훌륭한 우리나라의 지리지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셋째로, 이중환 선생은 자연환경이나 형세에 따라 그 지역의 인심이나 인재가 결정된다고 주장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환경 결정론적 사고를 불러일으킬만한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였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기가 첫째이고, 다음은 경상도로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지역이 오랑캐 땅과 잇닿았으므로 백성의 성질이 모두 굳세고 …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 좇는데,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 인걸은 땅의 영기로 태어나므로 전라도에는 인걸 또한 적지 않다 ’그 지역의 인심과 같은 경우는 직접 그 곳에 살아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다. 즉 그 곳 사람들과 직접 부딪쳐 보지 않고 부대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품성이나 행동 등이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형세에 맞춰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택리지를 읽었던 독자들(나를 포함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먼저, 그 당시 교통발달이 미약하여 사람들은 여러 곳을 많이 다녀보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태에서 택리지를 읽었다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가상의 이미지가 형성될 것이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 좇는데..’ 라는 글귀를 통해서 충청도 사람은 모두 이런 사람들뿐이고 인심 또한 이러하리라 생각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현대의 사람들은 다른 지방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등이 생기기 십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역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그 지역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 이러수 있을까? 이중환선생은 살기 좋은 땅을 찾는데 있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땅을 찾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에 완벽한 이상향 즉 유토피아 보다는 그와 비슷한 땅에서 살며 그 부족한 부분을 인간 스스로 보충하라는 메시지를 이 책에서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값이 하루아침에 천지차이로 올랐다 내렸다 하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중환 선생의 뜻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교통이 편리한 곳을 찾아, 교육환경이 좋은 곳만을 좇아 사는 우리 세대에게 이중환 선생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산과 물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삶을 우리가 말하는 ‘인간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 을 찾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이번 한국지지 수업을 통해서 이중환 선생의 를 처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읽는 내내 이중환 선생의 250년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나라 국토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리지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앞으로 선생님이 되어서 꼭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지역 분석 - 전라도>? 영광 법성포- 택리지 中‘ 영광 법성포는 바다 조수가 들어오면 바로 앞에 물이 돌아 모여서 호수와 산이 아 름답고, 민가가 빗살처럼 촘촘하여 사람들은이 작은 서호라 한다. 바다에 가까운 여러 고을들은 모두 이곳에 창고를 설치하고 세미를 수납하여, 배로 실어 나르는 장소로 삼는다. 장성도 역시 기름진 땅이다.’⇒ 법성포는 옛날 진나라의 중 마라난타가 백제 땅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곳이라고 전해 오는 포구이다. 고려 때 이자겸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 척준경의 배반으로 실패하고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 그때 이자겸은 칠산바다에서 삼태기로 건질 만큼 잡혔던 영광 굴비를 석어라는 이름을 붙여 사위였던 인종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법성포는 조선시대 영산포와 더불어 호남지방의 세곡을 갈무리 했던 조창의 기능을 맡았었다. 그 무렵 조창의 중심역할을 했던 영산포가 뱃길이 되었다.현재 법성포 내에는 영광읍에서 흘러드는 와탄천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흘러드는 대산 천이 법성포 앞바다에 토사를 퇴적시키면서 점차 수심이 얕아져 폐항의 위기 를 겪고 있다. 특히 썰물 때는 갯벌이 선착장 앞에 수백m로 펼쳐지기 때문에 30t 정도 되는 작은 배들도 입항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3시간이 넘도록 배를 기다려 야 함은 물론, 싱싱한 해산물을 실은 배들은 대부분 목포항이나 군산항을 이용하 고 있어서 항구로서의 기능이 더욱 떨어진 상태이다.? 광주- 택리지 中‘ 영산강은 서쪽은 무안, 목포까지 흐른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 경치 좋은 마을이 많 다. 강을 건너면 큰 들이 있는데 동쪽으로 광주와 경계에 닿았고, 남쪽으로는 영암 과 통했다. 날씨가 화창하고 물자가 많으며, 땅이 넓어 마을이 별과 같이 깔려있다. 또 서남쪽은 강과 바다를 통해 물자를 실어 들이는 이익이 있어 광주와 함께 이름난 고을 이라 일컫는다.’⇒ 광주시는 인구 수효로는 우리나라 도시에서 다섯 번째이며, 부산과 더불어 한반도 의 남쪽을 지탱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위의 기록을 보아 알수 있듯이 원래부터 광주가 전라도에서 가장 중심축을 이루는 큰 도시였던 것은 아니 다.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이름을 지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1896년에 전국 13도제가 실시되고 나주에 있던 전라남도 도 청이 이곳으로 옮겨 오기 전까지만 해도 광주는 나주의 행정 그늘에 묻혀 있었다.백제시대에는 무진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주로 불렀던 광주가 지금의 이름을 갖 게 된 것은 고려태조 때인 940년부터였다. 광주가 나주에 밀려 조선시대 말까지 전 라남도 지역을 대표하지 못했던 것은 나주가 수운이 편리하고 그 언저리에 넓은 농 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주는 고려 태조 임금의 처가가 있던 곳이었고 그 가 나라를 세우는 데에 도움을 받았던 지방인 데에 견주어 광주는 한때 후백제의 견 훤이 자리한 도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독후감/창작| 2008.12.11| 8페이지| 1,500원| 조회(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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