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시민의 대립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1. 서론인간은 그들이 존재했던 유구한 시간들 중 약 99%에 달하는 기간을 국가 없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극히 짧은 그 존재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 아마존 밀림이나,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몇몇 부족을 제외한다면 이제 지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은 국가 없는 상태를 떠올리기 어렵게 되었다.그리고 국가의 영향력은, 국방이나 외교와 같은 부분을 한정하여 담당했던 과거의 야경국가에서 탈피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국가들이 단지 예전부터 미덕으로 여겨졌던 국민의 보호라는 책임을 넘어서서 국민의 행복까지 규율하려는 복지 정부로 탈바꿈 하려는 추세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국가와 시민간의 갈등이 점차로 첨예화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미 약 2천 여년 전에 국가와 시민의 대립을 소재로 다룬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는 것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내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고야 말지만 나는 이번 리포트를 통하여 이러한 주체 간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보다 긍정적인 결말을 불러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2. 본론테바이의 왕이자 강력한 국가권력을 표상하는 크레온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외세를 끌어들여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던 오이디푸스 왕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오빠이기도 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광장에 내버려두고 누구라도 시신을 매장하거나 염을 하는 자는 ‘그와 똑같이’ 해 주겠다는, 즉 사형에 처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린다.크레온이라는 인물이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는 이 포고령 이라는 단어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법령’ 과 ‘포고령’, 물론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면 그리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법령은 조금 더 정제되고 상식에 근거한 단어로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데 비해 포고령이란 말은, 왠지 모종의 강제적인 의미가 덧씌워져 있는 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에테오클레스는 우리 도시를 위하여 싸우다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창수로서 전사하였으니, 그를 무덤에 묻어주고 지하의 가장 훌륭한 사자(死者)들에게 어울리는 온갖 의식을 베풀 것이오. 그러나 그와 형제 간인 폴리네이케스는, 내 말하노니, 추방에서 돌아와 조국 땅과 선조들의 신들을 화염으로 완전히 불사르고, 친족의 피를 마시고, 나머지는 노예로 끌고 가려고 하였으니, 그와 관련하여 나는 도시에 알리게 했소이다. 아무도 그에게 장례를 베풀거나 애도하지 말고, 새 떼와 개 떼의 밥이 되고 치욕스런 광경이 되도록 그의 시신을 묻히지 않은 채 내버려두라고 말이오. 나에게는 결코 사악한 자들이 올바른 사람들보다 더 존중받지 못할 것이오.)크레온은 도시에 재앙을 몰고 온 책임을 들어 폴리네이케스를 위와 같은 상황에 내버려두었다. 그는 테바이의 왕으로서 스스로 매우 합당한 처사를 내린 것이며 이것은 아무도 깰 수 없는 것이라고 누차 이야기하고 있다. 국가로 표상되는 그는 또한 ‘파수꾼’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령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컸던 사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파수꾼’들이 존재해 왔다. 나치 독일이나 소련의 비밀경찰 제도나 따로 이러한 기관을 마련하지 않았던 국가라 하더라도 사회가 조직 간의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로 굴러 갔던 것이다. ‘파수꾼’은 국가 권력행사의 충실한 보조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가지만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자와 파수꾼 사이에도 끊임없는 감시와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다.아직도 제우스께서 나의 존경을 받으신다면, 너는 이 점을 알아두어라. 내 맹세코 말하겠다. 만약 너희들이 그 매장의 장본인을 찾아내어 여기 내 눈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너희들에게는 죽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너희들은 이 비행을 자백할 때까지 먼저 산 채로 매달릴 것이다. 너희들이 앞으로는 어디서 이익을 취해야 하는지 알고, 아무 데서나 이익을 취하기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도록 말이다. 너는 수치스런 이익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보다는 파멸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게 될 테니까.)위의 인용문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감시 임무에 실패한 파수꾼들을 질책하는 부분이다. 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크레온이라는 인물은 채찍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참주(tyranny)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레온은 이러한 강제적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의 수족과 시민들을 통제한다. 이러한 수단은 실지로 효과를 발휘하여 파수꾼으로 하여금 시신을 매장한 범인인 안티고네를 발견하여 붙잡아오도록 기능한다. 그 후에, 국가를 대표하는 크레온과 시민들을 대표하는 안티고네 사이의 갈등이 나타난다.네. 그 포고를 나에게 알려주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시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또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불문율들은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요.)안티고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크레온이 국가를 위해서라는 근거를 달았다고는 하나, 시신을 가족조차 매장하지 못하게 하고 여름날에, 들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하는 것은 신들의 율법, 즉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크레온은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법령에 동조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대부분의 테바이 시민들은 안티고네의 입장에 서 있었다. 개인적인 뜻을 시민들의 일반의지로 위장하는 것은 독재자들이 곧잘 사용해 왔던 수법이다. 이에 대응한 안티고네의 행동은, 비록 피통치자의 신분인 일반 시민들도 강요된 법률에 대해 이의나 불만이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낼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안티고네의 대사는 그것을 가장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그 어떤 강력한 명령이라도 개인의 신념과 일반의지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안티고네에게 있어 방치된 시신의 상태로 있는 오라비 폴리네이케스를 묻어주는 것은 가족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합당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의 의지가 국가 권력과 대립하게 되었을 때에는 필연적으로 초래될 결과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야 할지에 대하여 탐구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법으로, 눈먼 예언자로 등장하는 테이레시아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그러니, 그대는 이런 일들에 관하여 심사숙고하시오, 내 아들이여!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실수를 하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고칠 줄 알고 고집을 피우지 않는 자는 더는 조언과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오. 고집만이 어리석음의 죄를 짓게 되는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사자(死者)에게 양보하여, 죽은 자를 찌르지 마시오. 죽은 자를 또 죽여보았자 그게 무슨 용감한 행위가 되겠소? 나는 호의에서 좋게 충고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것이 이익이 된다면 좋은 충고를 하는 자에게서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쾌한 일이겠지요.)
-비르투 로마나를 중심으로 본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로마는 조그만 도시국가로 시작하여 고대 시대의 가장 강력한 국가들 중의 하나로서 자리매김한 위대한 국가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인문학자 마키아벨리는 로마가 그렇게 크게 발전 할 수 있었던 원인에 주목했다. 마키아벨리는 오늘날 군주론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사실 공화주의자였으며 군주론을 쓴 이유는 여러개로 분열된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를 안타까워하며 도시국가들이 군주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군주제를 택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군주는 이런 자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성격이 더 컸다.르네상스는 말 그대로 ‘문예부흥’ 을 뜻하며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신의 가르침만이 모든 것의 진리가 된 암흑시기를 거쳐 중세 신 중심의 사회에서 탈피하여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문주의자들의 혁명적 운동이었다.그러나 당시 페트라르카, 살루타티 등의 초기 인문주의자들은 로마의 위대함을 그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성향이 강했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조국 이탈리아와 로마의 정치를 심도 있게 비교하여 정치적으로 분석해 나갔다. 그에게 ‘virtu’ 는 정치적 미덕이었고 평민과 귀족이 절묘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어 공동체 구성원의 힘을 최대로 모을 수 있었던 초기 공화정의 힘이었다.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공화정체에 존재했던 ‘공공선’ 덕분이었다. 같은시기 다른 국가들에서는 태생적 신분에 따라 모든 삶이 결정되었던 반면 일찍이 호민관 선출 등을 통해 귀족과 평민의 조화를 이뤘던 로마 초기의 공화정체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사사로운 이익 추구보다는 ‘명예’획득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했으며 또한 누구라도 공동체를 위해 능력과 자질을 갖고 훌륭한 업적을 쌓으면 그 신분에 관계없이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또 마키아벨리가 생각하기에 이런 사회적 풍토가 쉽게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 질 수 있었던 중요 요소 중의 하나로 종교를 드는데 법에 대한 두려움, 개인에 대한 공경 등 종교는 영원하며 모든 경우에 있어 절대적으로 작용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렇게 virtu가 칭송되는 사회에는 당연히 이러한 미덕을 가진 시민들의 수도 많을 것이고 훌륭한 가용자원의 풍부함은 언제 어떤 위기속 에서도 로마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게 하는 원천이었을 것이다. 공화제 속에서 생산되고 활성화되는 시민의 미덕(virtu), 합당한 재능을 통한 명예의 획득을 가능하게 하는 법제도(virtu), 법제도를 뛰어넘어 신에 대한 경외를 통해 인간의 타락 가능성을 제어해 주는 종교(virtu) 이러한 것들이 살아 생동하는 정치 공간 속에서 그들의 힘은 충분히 결집 될 수 있었다고 마키아벨리는 본 것이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화정체하에서 명성을 과도하게 얻는 사람이 등장 한다면 그것은 곧 현실에서 군주정의 모태가 되고 마는데 이는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포에니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부터 시작되었다.마키아벨리와 논문의 저자는 로마가 멸망한 원인으로 첫째로 시민간의 평등의 파괴, 둘째로 최고 지휘권의 연장, 이 두 가지를 들고 있다. 그런데 농지법에 의해 야기된 투쟁은 모든 시민들을 검소하게 유지시켜야 관직이나 명예 획득 등에 부의 기준이 개입되지 않고 건전한 공화정체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적절하지 못한 듯 하다. 로마에서는 전쟁이후 새롭게 얻은 속주들에서 수많은 재화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대농장 등장이나 시민 간의 재산 배분에 대한 갈등 등이 유발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이것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사회 재산이 늘어난 다는 것이 국가적으로 나쁜 일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오늘날 현대사회의 어느 국가를 살펴보아도 상류층과 하류층은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를 통한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 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재화분배가 차등화된 결과이며 모든 사람을 일괄적으로 평등하게 유지하려고 했던 공산국가들은 오늘날 북한을 제외하면 단 한군데도 남아 있지 않지 않은가? 문제를 들자면 자영농 몰락에 대해 그라쿠스 형제가 밀고 나간 농지법 개혁이 반대파에 의해 실패하게 된 것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12장 응용문제 10.a. 비례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4만 달러, 8만 달러, 16만 달러인 사람들 모두 소득과 관계없이 평균세액이 20%로 동일하고 역진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4만 달러인 사람이 14000달러의 세금을 내는 것으로 보아 35%, 8만 달러인 사람은 24000달러를 내므로 30%, 소득이 16만 달러인 사람은 40000달러를 내므로 25% 이므로 소득이 높아질수록 세율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 할 수 있고 누진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4만 달러인 사람은 만 달러를 세금으로 내므로 세율은 25%, 8만 달러인 사람은 2만4천 달러를 내므로 세율이 30%, 16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5만6천 달러의 세금을 내므로 35% 이로 보아 누진세는 소득이 증가할수록 세율은 높아짐을 알 수 있다.b. 비례세 체계에서 소득이 4만 달러에서 8만 달러로 증가했을 때 한계 세율은 세금 증가액 8000달러를 소득 증가액 40000달러로 나눈 것이므로 20%, 8만 달러에서 16만 달러로 증가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비율의 한계세율을 갖게된다.역진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4만 달러에서 8만 달러로 증가했을 때 세금 증가분 10000달러를 소득 증가액 40000달러로 나누면 25%의 한계세율을 가짐을 알 수 있고 8만 달러에서 16만 달러로 소득이 증가 하였을 때는 16000달러를 80000만 달러로 나눈 20%의 한계세율을 갖는다.누진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4만 달러에서 8만 달러로 증가했을 때의 한계세율이 14000/40000 이므로 35%, 8만 달러에서 16만 달러로 증가하였을 때는 32000/80000 으로 40%의 한계세율을 가짐을 알 수 있다.c. 비례세 체계에서는 평균 세율과 한계 세율의 비율이 일정하게 같으며 역진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평균 세율과 한계 세율이 동시에 하락한다. 반면 누진세 체계에서는 평균 세율과 한계 세율에서 모두 소득이 증가할수록 세율도 증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따라서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장으로 이직하려는 사람에게는 평균세율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한계 세율은 소득이 증가할 때마다 세금이 붙는 반면 평균 세율이 적용되면 이와 관계없이 일정량의 세금만을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조세체계의 수직적 공평성을 판단하는 데 적절한 세율은 한계 세율인데 이것은 앞의 이유와 비슷하게 한계 세율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세금이 더 붙으므로 상류 소득층과 하류 소득층의 소득 격차를 완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13장 응용문제 5.근로자 수산출량한계생산량총비용평균총비용한계비용002810-30/281284040/282230/222507070/501730/17367100100/671330/13480130130/801030/10590160160/90530/5695190190/95130/1796220220/96a. 한계생산량은 근로자 수와 산출량이 증가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b. 표참조c. 산출량이 50이 될 때까지는 감소하다가 그 이후부터 점점 증가하는 U자형 패턴을 볼 수 있다.d. 한계비용은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형태를 보인다.e. 한계생산량이 감소할 때 한계비용은 증가 추세를 보이므로 상호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메시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가.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며 문화 비평가인 맥루한은 이미 1964년 여름에 이 책 ?미디어의 이해?를 출간하여 전 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은 바 있지만 당시보다는 오늘날 훨씬 큰 설득력을 점차 얻어가고 있다. 책은 크게 2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부분에서 미디어에 대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이론을 설명하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26개의 미디어들을 각각 분석하는 내용들인데 서문에서 나타나듯이 맥루한은 기존의 선형적 사고를 배격한다는 그의 주장에 걸맞게 책의 각 부분들에서 기서결의 명확한 일관성을 찾기 어렵고 순서대로 읽지 않고 어떤 특정한 챕터만을 선별하여 읽더라도 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도록 안배해 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1990년대의 흐름을 두고 맥루언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라는 예언은 개인 주문 제작 형태의 책과 하이퍼텍스트라는 현실로 나타났고, 과 에 대한 그의 예언은 인터넷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21세기에 맥루한을 다시 읽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늘날 미디어는 일종의 무한 권력이기에 미디어가 삶의 모든 영역을 조정하고 주조하며 재편하는, 문명사의 낯선 국면 속에서 라는 물음은 라는 물음으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같은 과제 앞에서 일종의 백미러 구실을 한다. 저 앞으로 달음질 치는 미디어 시대의 문화 변동, 그 속도와 방향을 가늠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이렇게 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미디어가 어떻게 하여 점점 더 메시지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당시보다 현재에 맥루한의 예언은 더 호소력을 지니며.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된다’ 같은 전제는 MTV. 인터넷. 홈쇼핑. e-mail 등에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맥루한은 컴퓨터 테크놀러지가 언어를 즉각적인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대체하는, 전자 문화의 가장 깊은 범위까지도 예언하고 있다.제 1부 1장의 제목은 ‘미디어는 메시지다’ 인데 사실상 이 장이 맥루한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란 무엇인가? 일상적인 우리 생활에서 보통 미디어라고 한다면 우리는 신문, TV따위와 같은 매스 미디어들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미디어를 모종의 ‘내용(메시지)’를 담고 있는 매개체로 정의하는데 바꿔 말하자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계, 책, 필기구 등 어떤 것이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도구 및 기술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미디어는 인간 육체의 확장이라고 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어느 한 시대를 지배하는 미디어는 인간 오감의 활용 비율을 결정하며 이에 따라 인간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 변화하여 사회의 양상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미디어라는 형식이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매개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임을 주장하는 ‘미디어는 메시지다’ 라는 완전무결한 절대명제로 귀결될 수 있다.그렇다면 지금 미디어의 홍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엄청난 양의 미디어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것에 종속되거나 지배되지 않고 미디어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저자는 전기 시대에서는 TV 등의 미디어를 통해 문자문화 시대와는 달리 탈 중심화, 다양화 될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생각해 보건데 확실히 문자 문화 시대에 비해 전기 시대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호 관련성이 증대될 것이므로 탈 중심화는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미디어의 내용 역시 다양화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미디어 그 자체가 획일화되고 소비적인 측면에 국한되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때때로 미디어는 5장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지만 TV나 라디오와 같이 각각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미디어들도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이 이종교배로 인해 발생하는 혼성에너지는 단지 1+1=2 라는 법칙을 넘어서 더욱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러한 혼성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다. 게다가 매스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매체의 힘과 내용이 무관계에 근거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미디어가 내보내는 내용보다 미디어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금 미디어는 단순히 매체의 영역을 넘어서 그것이 인간의 영역을 확장시켜 준 것과 같이 스스로를 거대권력화를 시킨 것에 다름 아니다.점점 더 강력해지는 미디어와 그 강력한 실체의 제어에 무관심한 소유주들에 의해 현대 사회의 절대 다수인 불특정 개개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느새 미디어의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든다. 수 차례 제기되어온 문제들이지만 주요 TV편성이 상업성, 선정성, 폭력성에 치중되어 있고 신문도 그것들이 어느 성향을 띄고 있는지에 따라 같은 기사라도 읽는 이로 하여금 판단을 크게 혼란시킬 수도 있는 편파적인 내용을 곧잘 싣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책의 2장에서는 정세도의 차이에 근거한 핫미디어와 쿨미디어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정세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나로서는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여 정확한 비교가 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친숙한 표현인 바둑판에 비유하더라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바둑판 위에는 수많은 흑백의 돌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세도라는 것은 바둑판 위의 거의 면적이 바둑돌들에 의하여 어느 정도나 채워졌는지 그 정도에 따른 차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핫미디어라는 것은 바둑판의 거의 전체 면적을 돌들이 채우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이미 면적 자체가 수많은 점으로 가득차서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일말의 참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런 미디어의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핫미디어는 송신자의 의도가 상대적으로 정확하고 쉽게 수신자에게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미디어로 인한 권력유지라는 폐단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이용했던 장치가 핫한 미디어인 라디오와 같은 매체였음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경제학 원론 과제제1장 응용문제 4.- 당신이 친구와 농구경기 내기를 해서 100달러를 땄다고 하자. 지금 그 돈을 다 써버리거나 연 5%의 이자를 주는 은행에 예금할 수 있다고 하면, 지금 그 돈을 다 써버리는 선택의 기회비용은 무엇인가?- 100달러는 원화로 환전하면 10만 원정도의 돈이다. 지금 당장 이 돈을 써 버리자고 결심을 한다면 나는 평소에 눈여겨 두었던 게임, 음악시디를 구입하거나 또는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꽤 근사한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내가 100달러를 지금 당장 써버림 으로서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으로 이 돈을 은행에 예금 함 으로서 얻을 수 있는 지속적인 연이율5%의 이자수익, 또는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 생겼을 때 이를 구입 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들 수 있다.제2장 응용문제 2.- 무기(대포)와 소비재(버터)를 생산하는 경제를 생각하여 보자.a. 대포와 버터의 생산가능곡선을 그려라. 기회비용개념을 사용하여 생산가능곡선이 왜 밖으로 볼록한지 설명하라.b. 이 경제가 달성 불가능한 생산량의 조합(생산점) 하나와 비효율적 생산점 하나를 표시하라c. 이 경제에 두 정파가 있다고 하자. 하나는 강력한 군사력을 원하는 ‘매파’고, 다른 하나는 이를 원치 않는 ‘비둘기파’ 다. 생산가능곡선에 매파와 비둘기파가 선택할 점을 각각 표시하라d.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이웃 나라가 군비를 축소한 결과 매파와 비둘기파 모두 같은 양의 군비를 축소하기로 했다. 이 경우 어느 정파의 정책이 더 큰 ‘평화배당금’(증가된 버터 생산량으로 측정)을 얻을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a. 다음의 생산가능곡선은 무기(대포) 와 식량(버터)의 생산관계를 나타낸 표이다. 여기서 생산가능곡선이 밖으로 볼록한 모양인 이유는 자원과 기술수준의 제약으로 생산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체 생산력을 1로 두고 대포의 생산력을 x, 버터의 생산력을 y로 가정한다면 x+y 는 언제나 1로 같다. 그러므로 x(대포)의 생산을 늘리면 y(버터)의 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y를 늘리면 그 반대가 되는 반비례 관계를 가짐으로서 이 생산가능곡선은 밖으로 볼록한 모양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b.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는 점 A는 그와 같은 경제구조의 역량을 넘어서는 생산력으로 달성 불가능한 생산점이며 점 B는 주어진 자원과 기술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산점이다.c. 강력한 군사력을 원하는 ‘매파’의 입장에서는 전 국민의 생활수준(버터)이 조금 떨어지게 될지라도 강력한 무장을 원하기 때문에 점 C와 같이 버터가 조금밖에 생산되지 않을 지라도 무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지지할 것이다.반면 ‘비둘기파’의 사람들은 무장보다는 국민의 생활수준을 더욱 중시하는 입장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점 D와 같이 무기의 생산은 줄이고 국민의 삶의 질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선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