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여성 Hillary Rodham Clinton정치 분야의 리더에 관심이 있는 우리 조는 성공한 여성 정치인을 모델로 상정하였고 마가렛 대처, 힐러리 로댐 클린턴, 매들린 올브라이트, 한명숙 씨 등 다양한 여성 정치인 가운데 현재 가장 대중성 있고, 영향력이 큰 인물로 힐러리가 가장 적합하다고 의견을 일치를 보임.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1947년, 냉전시대에 태어난 그녀는 격렬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서 자라며 이전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앎의 기회와 선택'을 누리며 자람. 힐러리는 변화하는 시대와 자신의 내적 노력에 따라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여, 세계 여성들에게 '여성 권리의 성장' 몸소 보여준 하나의 상징이 됨.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변호사로서, 약자의 옹호자로서, 또한 국제적 우상으로서 힐러리는 미국의 정치적 대전쟁을 헤쳐 나옴.힐러리를 선택한 이유(1)법률 입안에 주역을 맡은 유일한 퍼스트레이디, 힐러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료,교육개혁을 주장하고 아동과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애씀. 그녀는 퍼스트레이디의 지위를 재규정 하였고, 빌 클린턴이 스캔들에 들 때마다 냉철하게 대처하여 남편의 정치적인 생명을 이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합리적이고 철저한 분석력과 논리 정연함으로 미국정계 에서도 인정받는 여성정치가. 그녀는 성공한 변호사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상원의원으로서 전 세계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냄.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여성 지도자, 힐러리 로댐 클린턴. 학생운동, 변호사, 인권 운동,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에 이르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서사적으로 조사하여 여성의 본질과 정치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알아보도록 함.힐러리를 선택한 이유(2)성공한 변호사이며 8년간 백악관을 지킨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는 1947년 10월 26일 일리노이에서 해군 하사관출신의 커튼제조업을 하시는 아버지(Hugh Rodham)와 어머니(Dorothy)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남동생인 Hugh와 받는 아동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짐. 1991년 미국의 가장 힘있는 변호사 100명에 선정되었고, 1992년 대선에서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을 지휘하여 남편 클린턴을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함. 백악관을 나온 후 2000년 뉴욕에서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저서로는「백악관으로의 초대」「사랑하는 삭스, 사랑하는 버디」「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등이 있음. 현재 뉴욕 북부의 채퍼콰에 살고 있음.힐러리에 대해서(2)1978년 빌 클린턴은 32세에 미국의 최연소 주지사로 당선되었고, 그때부터 힐러리는 정치인들의 도마에 오르기 시작함. 힐러리는 결혼 후에도, '힐러리 로댐'이라는 처녀적 이름을 유지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성과와 빌의 성과는 따로 평가 받아야 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직업과, 공직자인 남편과의 공.사의 이해 충돌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 그녀는 항상 여성의 독자성을 강조함. 하지만 그 당시 아칸소와 전반적 사회분위기는 부부관계에서 남성이 지배적이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고, 이 관습에 부딪혀 빌의 정치 행로에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침. 80년, 빌이 주지사 재선에 실패하자, 그녀는 변호사로서 '힐러리 로댐'을 유지하고, 그 외는 Mrs. 빌 클린턴을 사용하며 빌의 선거운동에 적극 가담. 그 후 82년~92년 까지 5선의 아칸소 주지사를 지낸 빌의 곁에서 힐러리는 농촌보건위원회 위원장, 교육 개혁 위원장을 맡으며 아칸소의 정책을 추진하였고, 아칸소의 교육, 복지, 의료, 경제 개혁의 성과를 빌과 함께 이루어냄.빌의 진정한 정치적 동반자(1)그녀는 또한 변호사라는 독자적 분야에서도, '올해의 시민상', '올해의 여성상' 그리고 1991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힘 있는 변호사 100인으로 선정. 92년 빌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자, 그녀는 법률회사에 휴가를 내고, 그녀가 관여한 단체들의 임원직을 사임하고 '힐러리 랜드'라는 자신의 참모진을 구성하여 선거운동에 적극 가담함.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Buy one, 개혁하려고 시도했고 후에 공직에 출마하는 최초의 퍼스트레이디가 됨. 클린턴의 백악관 개인 비서였던 앤 스톡은 힐러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는 갈피를 못 잡을 겁니다. 지금까지 정치적인 판단은 모두 그녀에게 맡겼거든요. 힐러리는 참모들을 거치지 않았어요. 빌에게 일이 생기면 바로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죠. 라고 했을 정도로 힐러리는 클린턴의 대통령직 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 그녀는 똑똑하고 유능했지만, 클린턴은 편안하고 애매함. 그는 직관적이고 그녀는 논리적임. 하지만 역경이나 적과 마주칠 때는 클린턴이 그녀보다 더 초연해짐. 그는 낯선 사람들을 구워삶았고 적들도 같은 편으로 끌어들임. 힐러리는 전사였다. 낸시 레이건처럼 그녀는 남편을 등 뒤에서 지켜보았고, 모욕들을 모두 기억했으며, 적들이 결집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라고 부추김. 클린턴은 타협도 하고 속이기도 함. 위험이 닥치면 그녀는 남편이 침착하고 집중된 상태에서 덤빌 수 있도록 지켜줌. 그녀는 그의 허영심과 강박증, 거부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들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누그러뜨리기는 함.보이지 않는 대통령(1)힐러리는 국정 업무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임.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싶어 하는 힐러리의 욕구는 보수적인 많은 국민에게 걱정을 안겨줌. 공식적인 정책입안자 역할을 하려던 힐러리의 노력은 국민의 심한 저항을 받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음. 백악관 참모진을 채워나가면서 수석 보좌관 자리를 실질적으로 힐러리가 차지했기 때문에 일부러 관직 경험이 부족한데다 상냥하고 회유적인 토머스 맥라티를 임명하기도 함. 그런데 국정업무에 대한 힐러리의 욕심은 클린턴 행정부에 가장 큰 정치적 실수를 안겨줌. 그것은 바로 의료보험정책 개혁. 클린턴의 목표는 국민 모두가 가입할 수 있는 의료보험을 제정하는 것. 그것은 새 행정부가 다룰 가장 야심찬 계획이었음. 그는 의료정책을 개혁할 선두 지휘자로 아내를 선택함. 보건부가 다루어야 할 사항을 퍼스트레이디가 담당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힐러리가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됨. 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선거직에 도전한 힐러리는 51%의 득표율로 49%에 그친 4선 하원출신의 릭 라지오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뉴욕주의 첫 여성 상원의원이 됨. 사실 처음에 그녀는 민주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설득과 언론과 대중의 억측을 극구 거절․부인했었고, 그녀의 측근들은 승산 없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출마를 말리곤 했음.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여러 곳에서 자문을 들었으며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음. 힐러리는 뉴욕 태생이 아니었고, 공직에 출마해본 경험도 없고, 당시 뉴욕의 터줏대감이었던 공화당원이자 뉴욕 시장인 줄리아니와 맞붙게 될 상황이었음. 뉴욕에서 혼자 힘으로 선거에 이긴 여성은 그 때까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공화당은 힐러리를 마녀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 뻔했음. 선거운동은 추악한 전쟁이 될 것이고, 심신의 소모는 감정적 공황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었음. 게다가 영부인 역할도 더불어 수행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선거운동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것이었음. 힐러리가 위와 같은 부정적 요소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즈음엔 남편이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인해, 연방 상원에 의해 탄핵이 추진되고 있었음. 다행히 탄핵안 표결에서 빌의 혐의가 벗겨짐에 따라 안도감을 되찾음. 이에 힐러리는 출마 쪽으로 마음이 기움.뉴욕 상원의원(1)영부인으로서의 그녀의 역할이 끝나고 난 뒤에도 그녀가 전문적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매력적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조건으로 제의를 받고 있었음. 재단 운영자, 텔레비전 진행자, 대학 학장, 기업의 최고경영자 등 혹독한 상원의원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보다 훨씬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음. 눈에 훤히 보이는 장애 요소들, 출마를 단념하도록 권하는 주변 사람들, 승산이 없다는 분석들, 남편의 스캔들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속하고자 하는 결혼생활에 대한 대중적 비판,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 등으로 힐자들에게 더 유익할 뿐만 아니라, 좀더 문명적인 선거운동을 펼치고자 했음.뉴욕 상원의원(2)힐러리 클린턴은 현재 강력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음. 그리고 이러한 추측은 상당히 일리 있어 보임. 그 이유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음. 1) 첫째, 민주당 내 후보군 가운데 뚜렷한 선두 주자가 없다. 뚜렷한 선두 주자가 없을 뿐 아니라 민주당에게 힐러리는 가장 유리한 후보자로 보임. 우선 그녀는 선거자금을 모으는데 있어 유리함. 그리고 힐러리는 두꺼운 고정 지지층(여성들)과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고 있음. 미국 살면서 누가 힐러리를 모르겠는가? 2) 둘째, 2004년 존 케리의 패배는 힐러리의 대선 후보 길을 닦아 놓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음. 케리가 당선 되었다면 2008년에도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목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임. 3) 셋째, 힐러리 자신도 출마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임. 힐러리의 자서전 출판 및 전국 순회 사인회 등도 그녀의 출마 의도로 해석되며, 최근 뉴저지주 메드포드 터프츠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아프간 대선에 유일한 여성 후보로 출마한 마수다 자랄 박사를 거론하면서 (아프간) 역사를 고려할 때 괄목할 만한 업적 이라며 아프간 여성들이 미국 여성들 보다 앞섰다 고 말한 것 또한 그녀의 출마 의도를 시사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음.2008년, 차기 대선 후보민주주의가 개국이래로 함께 흘러온 미국에서 힐러리는 이 시대 최고의 여성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음. 그녀는 특별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특수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것도 아님.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나, 그리고 이 글을 보게 될 우리와 같이 힐러리 또한 평범한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웰즐리 여대에 입학,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 때 학생회장을 했었던 화려한 이력 뒤에는 고등학교 때 선거에서의 낙방이라는 쓰디쓴 패배가 있었다. 또한 정치사상적으로도 그녀는 어릴적 부모님의 보수성향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었고, 자how}
불교와 여성 수업시간에 인간의 가장 오묘하고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의 대한 감성과학 다큐멘터리 3부작인 사랑 그 제 1부 900일간의 폭풍이라는 주제로 연인이 만나면서부터 헤어 질 때까지 과학과 감성을 통해 설명하여 사랑을 풀어준 다큐멘터리를 시청 하였다. 맨 처음에 제작진은 남녀 100쌍을 모집하여 그 중에 5커플을 대상으로 과학적인 실험으로 접근 하였다. 커플들이 100일 정도 되었을 때 뇌 촬영과 혈류 흐름을 측정했다. 뇌 촬영 할 때 각자 연인 사진을 보여주고 뇌를 스캔 촬영했다. 실험 결과는 그 커플들의 뇌는 유독 대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미상핵이란 부분이 화면상에 붉게 나타났다. 미상핵이란 6500만년전 인류가 포유류로 진화하기직전에 생성된 미세한 뇌로 이성보다는 본능표출을 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 미상핵은 사랑에 민감한 도파민을 촉진시켜 분비시키고 사람을 웃게 만든다고 했다.그 다음 6개월 후 이 커플 5쌍에 대한 뇌 스캔 촬영을 한 번 더 실시해 미상핵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실험 결과는 더 이상 활성화 하지 않았다. 대신 이성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부분이 활성화 되었다. 이런걸 보니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것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실제로도 이 5커플들은 사랑의 대한 태도들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외국대학의 한 교수와 인터뷰를 해보았다. 그 교수는 사랑은 900일 간의 폭풍 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래프로 보여준 열정과 기간의 관계를 보여 주었는데 사랑의 대한 열정은 1년 뒤 50% 가까이 떨어지고 1년이란 고비를 넘겨 사랑을 적절히 유지 한다고 해도 그 열정은 오르락내리락 소폭으로 진동할 뿐이고 더 이상의 연애 초반에 열정은 없다고 하였다. 이 영상을 보고 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여자 친구가 있는 나는 더욱 필기를 해가면서 보면서 초반 부분의 연인들이 나와서 “그 사람을 본 순간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이런 말이나 “여자 친구의 대해서 하루 종일 생각한다.” 이런 말들을 보면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라서 너무 잘 이해되고 좋았다. 하지만 열정적인 사랑이 6개월 이후로는 점점 소멸된다고 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금도 이 순간에도 나는 여자 친구가 보고싶고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맹세 할 수 있지만 연인은 그렇게 생각을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열정적인 감정의 대한 이야기에서는 열정이 급격히 불타올랐다가 아주 금방 식는데 하지만 그 만큼의 신뢰나 편안함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난 믿을 것이다. 나의 연인에게 더욱 잘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머리말,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책을 읽게 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때문이든지 자신이 읽고 싶어서 읽든지 보통 여러 권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책은 찾기 쉽지 않다. 또한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 반해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겸할 수 있는 책은 더욱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저술한 라는 책은 지금껏 무심히 지나쳐 왔던 많은 위인들의 재판 사건 현장을 돌이켜 보게 하여 역사책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생생한 역사의 진면목과 대면케 했다. 그리고 나를 마치 그때 그 현장으로 가서 지켜보게 하듯 생생하게 진행되는 역사의 전개 속으로 빠져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출중한 인물들 중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자들이 의외로 많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나 일제치하의 윤봉길 의사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최근의 우리시대의 인물 중에도 이들은 나타난다. 이러한 인물들은 서양역사를 보더라도 수없이 등장한다. 루이14세나 길로틴처럼 희대의 악명 높은 자들도 많이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시대적 소명을 다 한 자들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불의와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국가나 민족을 구하거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자기 한 목숨을 사형장의 재물로 바쳤기에, 그들의 생명은 더욱 고귀하고 그들의 이름은 후대에 영원히 빛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성현들의 생애와 그 재판과정을 음미하는 것은, 그들의 정의로운 양심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새김으로써 우리의 삶을 조명하고자 함이다.이 책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의 소트라테스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 기원후의 예수, 중세의 잔 다르크, 토머스 모어, 갈릴레이, 근대의 드레퓌스, 필리페 페탱, 로젠버그 부부와 D.H. 로렌스 등 모두 열 가지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역사적 수난을 당한, 즉 당대의 리게끔 하기 충분했다. 책의 가장 첫 시작은 인류의 첫 순교자 소크라테스의 재판에서부터 시작 된다. 먼저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알아보자. 소크라테스는 두말 할 것도 없는 세계 성인 중에 한명이다. 하지만 그가 법정에 올랐던 일흔 살, 당시의 모습은 은발의 대머리, 구부정한 허리, 튀어나온 눈, 두툼한 입술, 뭉툭한 코를 가진 그를 희랍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사티로스’에 비유 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그는 조각가인 아버지 밑에서 부유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워낙이 가업이나 돈버는 일에 관심이 없던 그는 노년에 매우 궁핍했다고 한다. 그런 가난과는 상관없이 그는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펠로폰테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항복함으로 온 아테네는 패전의 암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런 상황을 몰고 온 원인을 뒤집어씌울 희생양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희생양은 당연히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새로운 집권자였던 아니토스의 반대파들을 제자로 두었을 뿐더러, 평소에 권력자를 비롯해 수많은 실력자 그룹들을 찾아다니며 비판하고 다녔다. 결국 그는 기원전 399년 법정에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소크라테스는 손수 남긴 기록이 하나도 없다.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뿐더러 어떠한 이론조차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기억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제자 플라톤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플라톤의 네권의 책 “소크라테스의 변명”( 재판의 전 과정을 방청한 스무여덟 살의 젊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처형 얼마 후 그를 변호하는 연설의 일부를 정리하여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무지의 자각 위에서 지혜를 구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살피면서 사는 것에 철학적 사상의 근본이 있다고 역설 하였다고 말한다.),“크리톤” “향연”(아테네의 비극작가 아가통의 작품이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아가톤의 집에서 향연이 벌어진다서도 소크라테스의 이 말을 인용했던 부분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이 말에는 법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그가 크리톤에게 했던 말이 그것을 입증해 준다. “자네는 내려진 법의 판결이 어떠한 힘도 갖지 못하고, 개인에 의하여 무효화 되고 철회되면서도 국가가 존립하리라고 생각하나?” 소크라테스 그는 법의 안정성을 위한 순교자였던 것이다.그저 말로만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만 들었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재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그 유명한 한마디 “악법도 법” 이라는 말만 듣고 멋지다고 생각 했을 뿐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법의 안정성. 그것을 위한 그의 희생은 성인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이 아닌 그저 가장으로서의 소크라테스는 낙제자였다. 그리고 그런 낙제자가 세기의 악처, 크산티페를 탄생하게 했다는 점은 이제껏 알고 있던 사실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법학도가 아니기에 소크라테스의 성인적인 위대함보다 크산티페의 삶의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듯하다.◎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의 재판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막 수립한 이스라엘 법원에 한 건의 재심사건이 접수됐다. 제국주의 로마가 식민지 이스라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린 사형 심판을 다시 재판하도록 요청하는 소장이었다. 서기 33년. 유월절 축제를 하루 앞두고 체포된 예수는 24시간의, 재판이라기보다는 즉결 처분을 거쳐 사형 당했다. 지금 보면 완전한 불법이며 무효로 돌려야 될 재판에 가깝다.난감했던 이스라엘 최고 재판소는 고민 끝에 67년 결론을 내렸다. 예수에 대한 재판을 다시 열되 그 재판은 로마의 계승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할 것. 결국 체면은 살리면서 소송은 기각해 버렸다.다시 서기 33년으로 돌아가 그 말도 안 되는 재판 과정을 살펴보자.열두제자의 하나인 유다를 통해 체포당한 예수. 그는 성경에 예언된 것을 따르기 위해 한번의 반항 없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 예수는 유대 민족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던 하난 미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 되었던 부분이지만, 그 잔인성이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이었다. 이 재판은 크리스찬의 가장 슬프고도 가장 성스러운 사건이지만 유대인에게는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파렴치한 민족이란 꼬리표를 달게 했다. 크리스찬으로서 법학도는 아니지만 법학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재판이었다.◎무덤도, 초상화도 없는 프랑스의 성녀 - 잔다르크의 재판프랑스의 샤를 6세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두 나라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잠시 소강상태로 왕의 가장 강력한 지도력이 요구되던 그때에 미쳐 버리고 말았다. 또한 왕비 이자벨라 마저도 놀기 좋아하고 왕 몰래 사랑 놀음에 빠질 정도로 경박하기 그지 없었다. 이 때 권력 투쟁을 하던 부르고뉴 공작 필립과 오를레앙 공작 루이가 있었다. 부르고뉴 공작 필립은 프랑스가 거의 파국 직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실에 대한 원한으로 영국과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이자벨라 왕비와 손잡고 트루아 조약을 맺는다. 영국왕 헨리 5세와 프랑스 카트린 고주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양국의 왕위를 계승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상 프랑스의 왕권이 영국으로 넘어 간 것이었다. 하지만 1422년 양국의 왕이 몇 주 간격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프랑스의 오를레앙 파는 트루아 조약에 반발하여 샤를 왕세자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깃발 든 소녀 하나가 등장한다. 동레미라는 작은 마을에서 온 열여섯 살 난 이 소녀는 자신이 프랑스에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샤를 왕세자에게 왕관을 씌워드리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소녀가 바로 잔 다르크였다. 정신 나간 여자애의 말로밖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는‘한 여자가 나타나 프랑스를 파멸시킨 뒤 다시 로렌의 참나무 숲에서 한 처녀가 나타나 프랑스를 구원할 것’ 이라는 아더왕 전설집의 예언이 있었다.결국 잔느는 샤를 왕세자를 만나러 가게 된다. 여기서 그녀의 신통력을 시험하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샤를 왕세자라고 가르쳐 주는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 사더 지난 뒤였다.잔 다르크의 이야기도 여러 가지 신화와 영화 등으로 많이 접해 왔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녀의 재판을 알게 되니, 연민의 감정마저 들 정도로 안타깝다.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마지막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영국에서 화형을 당했던 그녀의 희생은 죽어서도 계속 되었던 것 같다. 성녀로 불리기까지 500년이 넘게 걸렸다는 점이 그것을 알게 해준다. 여성의 몸으로 그녀가 했던 일들은 같은 여자로서 존경하고도 남을 것 같다.◎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토머스 모어의 재판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라며 사형 집행관에게 여유와 해학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토머스 모어 말고 또 있을까? 르네상스 시기의 주요 저작인「유토피아」로 유명한 그는 한때 영국 국왕 헨리 8세 치하에서 대법관을 역임하며 전국민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수장령' 발표와 함께 전 영국에 몰아친 헨리 8세의 전횡에 단지 찬성하지 않고 침묵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반역의 누명을 쓰고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가장 잘 나가던 영국인 이라는 소제로 시작하는 토머스 모어의 재판 이야기는 그의 연대기를 간단하게 보여준다. 1478년 태어나 14세에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하고 18세에 링컨법학원에 입학하여 4년 만에 변호사 자격 취득한다. 그리고 50세에는 대법관의 자리에 오른다. 남들이 보면 상향곡선만을 그린 그의 삶이 이상적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법관의 자리를 사임한 그에게 일생의 위기가 닥친다. 1509년 헨리 8세의 등장으로 새로운 영국, 새로운 유럽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헨리 8세는 군주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통치기간 중에 사형당한 사람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여섯 명의 왕비 중 세 사람을 제 손으로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헨리 8세는 요절한 형 아서의 아내 캐서린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 결혼생활은 태어난 여섯명의 아기들 중 한명만이 살아남으면서 순탄하지 못했다.것이다.
이 책은1. 법의 목적은 평화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2. 권리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 주장이다.3. 권리를 위한 투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자의 의무다.4. 권리 주장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다.5. 권리를 위한 투쟁 이익은 사법, 사적 생활뿐만 아니라 국법, 국민생활에까지 미친다. 라는 다섯 가지 소주제를 통해 권리를 위한 투쟁에 대해 기술해 놓았다.예링은 “법의 목적은 평화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법은 모두 쟁취된 것이고 중요한 법규는 이에 대항하던 사람들로부터 싸워서 빼앗은 것이므로 법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평화는 투쟁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이다. 투쟁이 없는 평화나 노동 없는 향락은 에덴 동산의 시대에나 속하는 것이라 표현하면서 그 주장을 더 명백히 한다. 과거 권리를 얻기 위해 행해졌던 혁명, 폭동 등이 오늘날 소송으로 바뀌어 행해지는 것만 보아도 권리를 위한 투쟁은 시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소리 없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주권을 얻기 위한 폭동, 절대군주제를 철폐하기 위한 혁명, 신앙의 자유를 위한 전쟁 등 법이 생기기 위해서는 격렬한 진통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법이 아무런 고통 없이 생겨난다면 그 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법의 중요성을 모를 것이고, 법을 함부로 대하게 될 것이다. 법의 생명은 노력과 고통 속에 생겨나 사람들이 그 법에 애착을 가질 수 록 늘어나는 것이다.권리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주장이다. 여기서 예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이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권리를 주장하고, 이익을 얻지 못하다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링이 든 예 중 소송 사건에서 승소 여부가 불확실함을 변호사가 제소자에게 알리어 소송을 취하할 것을 권유 했는데도,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 소송을 진행시켜달라는 제소자의 대답을 들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만 해도 단순히 경제적 며 이에 저항하는 것이 의무라는 것이 예링의 주장이다.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육체적 생존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 생존인 것이며, 정신적인 생존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권리의 주장이다. 권리의 주장이 없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므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보존의 정신적인 의무 인 것이다. 여기서도 법 감정에 따라 권리의 주장을 달리 하는데, 정당한 권리에 대하 침해가 있으면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어도 그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법 감정은 계급이나 개인의 생존목적을 위해 법률이 필요하다는 감정으로 어떤 사회의 생존원리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이 법 감정이 사회의 생존원리와 관련됨으로써 권리를 위한 투쟁은 사회적 의미를 띄게 되고, 권리의 포기가 개인적으로 끝났을 때에는 무해 할 수 있지만, 이 것이 사회적으로 확장 될 때에는 사회전체의 권리가 몰락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법과 정의는 국가나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온 힘을 쏟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그것을 위해 노력할 때 구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리 주장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의 이유이다. 만약 전쟁에서 일 천명이 싸우고 있는데, 이 중 수백 명이 도망가 버린다면 충실하게 버티는 군사들의 입장을 위험해져 저항의 모든 부담이 그들에게만 지워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공동체에서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남은 사회 구성원은 더 많은 의무의 짐을 지게 되고, 사회는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충실하게 맡은 바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한 개인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면서 생기는 이익은 사법, 사적 생활 뿐 만 아니라 국법, 국민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자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자가 만약 개인의 법감정이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를 해치는 권리침해, 즉 정치적 자우에 대한 박해, 헌법의 파괴나 전복, 외적의 침략 등을 당했을지 않고 쉽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책의 분량이 적은 대신에 그 내용은 나에게 무척 어렵게 다가왔다. 이 책의 1장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마치 나의 머릿속에 하얀 지우개가 지나간 듯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멍한 생각만 들었다. 정말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인지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나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법 철학서를 한번만에 이해하는 것은 좀 무리였다. 하지만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現)이라는 말도 있듯이 한번만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두, 세 번 반복해서 읽으니 대충 내용의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좁은 사고로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리란 무척이나 힘들었다.예링은 이 책 저술의 직접적인 목적을 이론적인 면보다는 윤리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법의 학문적인 인식보다는 법 감정을 주장하는 용감하고 확고 부동한 태도를 촉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즉, 법의 이론적인 면이 아닌 실용적인 면을 이 책에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링은 여기서 법은 자의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음을 강조하며 우리의 그것에 대한 투쟁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예링은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투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겉으로 보자면 투쟁이라는 것이 평화를 위협하는 것처럼 간주될 수 있지만 예링은 ‘법의 목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투쟁이다’라는 주장에서 투쟁이 평화는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좀 더 나은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서술해 나감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평화가 합리적인 평화가 아닌 불합리한 평화라면 투쟁을 통해서 좀 더 나은 평화를 획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예링은 노력의 결실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취득할 수 있었던 부유한 상속인의 비유를 들어 현재 누리고 있는 평화를 거저 얻은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 평화를 하찮게 들어 노예와 농노제도의 폐지, 토지소유권과 상업 및 신앙의 자유 등은 격렬하고 오랜 기간 동안의 투쟁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었던 것을 보았을 때 그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법의 탄생에는 인간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강한 진통을 수반한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욱이 아무런 노력 없이 취득한 법은 그 향유자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한 민족이 그들의 법에 애착을 가져 그것을 주장하는 사랑의 힘은 그 법을 얻기 위해 바친 노력과 고통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민족과 법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견고한 유대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희생인 것이다.예링은 권리의 주장이 순수한 계산의 문제와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해는 단순히 경제적 손익의 문제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법 감정의 침해를 동반한 손해와 그렇지 않은 손해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법 감정을 동반하지 않은 손해는 순전히 계산문제이다.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크다면 권리를 주장할 것이고, 반대라면 권리를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법 감정의 침해를 동반하는 권리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소한 논쟁대상이 아니라 인격자체와 그 인격의 법 감정의 주장이라는 이상적 목표이다. 이 단계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소송에 수반하는 모든 희생과 불쾌감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소송자체는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명예, 법 감정과 자기존중을 위한 행위가 된다. 1평방 마일의 영토를 빼앗겼을 때 국가가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스스로 멸망한다는 비유를 통해 현재의 작은 평화를 위해 인격의 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스스로의 인격을 매장시키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침해에 대한 단호한 인격주장의 필요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국가?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 또한 평가받을 만하다. 실제로 법 감정 주장의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경우 법 감정의 주장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고 그 과정의 어려움 육체적 생존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 생존인 것이며, 정신적인 생존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권리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권리의 주장은 자기존중의 정신적 의무이며, 권리의 전적인 포기는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때에도 권리에 대한 침해가 법 감정의 침해를 동반하는가, 동반하지 않는가의 경우를 달리 취급해야 한다. 법 감정의 침해 없는 침해는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계산의 문제이며, 이 경우라면 화해를 해도 좋고 결과가 확실하지 못하다고 생각될 때는 소송제기를 보류해도 좋다. 하지만 정당한 권리를 빼앗으려 하고, 소송에 대한 권리자의 공포, 태만, 안일 등의 유약성을 약점으로 삼는 법 감정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든다 할지라도 권리자의 권리를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다. 법 감정에 대한 반응은 일반적인 사건처럼 단순히 기질이나 성격에서 오는 개인적인 동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반응에는 동시에 윤리적인 동기가 작용한다. 법 감정이 사회의 생존원리와 연결됨으로써 권리를 위한 투쟁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권리의 포기가 한 개인의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는 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개인의 행동에서 더 나아가 행위의 일반적인 원칙으로서 나아가게 된다면 권리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다.앞에서 권리주장의 사회적 의미를 언급한 바와 같이 불법에 대한 권리 투쟁은 사회전체에 의해 진행되지 않을 경우 법 감정은 둔해져서 민감성을 잃을 것이며 이익문제는 안일과 분쟁에 대한 혐오나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도망을 치는 자는 공동의 일에 대한 배반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망자는 적의 용기와 오만함을 북돋아줌으로써 적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법과 정의는 국가기관이나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온힘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그것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때 구현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안락함과 편의를 위해 권리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