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西安)서안은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꼽히는 도시로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 중 하나이다. 기원전 11세기부터 서기 10세기까지 13개의 왕조나 정권이 서안에 도읍을 정하거나 정권을 세웠다. 서안 1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서주(西周),진(秦),서한(西漢),당(唐)이 가장 흥성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었던 서안에서는 수많은 역사인문경관을 볼 수 있다. 서안의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온 고성벽과 돌로 된 서고(書庫)라 불리는 비림, 대안탑, 소안탑 등의 건축물은 물론이려니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 8대 기적' 중 하나인 진시황 병마용갱 그리고 중화민족의 발상지 중 하나로 반파(半坡)유적, 모계사회부터 부계씨족까지의 변천을 볼 수 있는 앙소(仰韶)문화와 용산(龍山)문화의 유적지 등 중화고대문명의 진귀한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으니 "오천년의 중국역사를 서안에서 볼 수 있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을 여행할때 서안을 필수 코스로 잡는것도 당연하다.1.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진시황릉(秦始皇陵)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여기에 묻혀 있다. 능묘는 37년간이 걸려 완공되었는데, 무덤의 둘레가 6㎞, 높이는 40m에 달한다.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는 개발이 되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도 내부는 볼 수가 없다.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은 등을 이용한 여러 가지 함정들을 설치해 두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비밀을 풀 수 없어 과학이 조금더 발전하여 그 비밀을 풀 수 있을때 발굴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진시황릉 까지 간다고 해도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릉 위에 오르는 정도의 관광을 할 수 있다. 요새는 릉 주변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어 미니 전동카나 마차로 릉 주위를 돌거나 공원 주변에 전시해 놓은 옛 유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2. 죽은 진시황을 지키는 진시황 병마용(兵馬俑)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서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진시황릉에서 북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이곳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서야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에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되었으며 700여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陶俑)과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 10만여개의 병기가 발굴되었다. 병기들 대부분이 실제무기이며 현재는 창고에 보관 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용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 스타일을 갖고 있어 그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병마용갱은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호갱은 당시 농민이 처음 발견한 것이고, 후에 2, 3호갱이 발견되었다.1호갱은 세 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동서 길이가 약 230m, 남북으로 약 62m로 총 면적이 12㎢ 정도이다. 1호갱은 동서 쪽을 향한 긴 모양으로 장군과 병사가 배열되어있고, 2호갱은 면적이 약 6000㎡이며,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2호갱은 발굴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전시되어 있다. 3호갱은 면적이 520㎡으로 凹모양이며, 병마용들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역시 현재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다. 학자들은 발견된 3개의 갱 외에도 진시황릉 근처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더 많은 병마용갱이 묻혀 있을 거라고 보고있다.3. 영원불사를 꿈꾸던 진시황의 흔적, 아방궁(阿房宮, 아팡궁) 유적지서안과 중국, 중국역사를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진시황(秦始皇)의 황궁이다. 지금은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고 흔적만이 있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규모를 알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서안시 서쪽 교외에 있는 이 유적지는 동서 2,500m와 남북 1,000m의 크기로 앞의 전(殿)과 뒤의 궁(宮), 두 부분으로 나위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의 유적지는 동서 1,300m와 남북 500m의 60만 평방미터의 면적으로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방궁의 건설은 한편으로는 황제의 위엄을 보이기 위함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황제에게 알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하나의 국가로서 정복하는 과정에서 경성(京城-북경), 함양(咸陽-서안)의 궁궐들을 다시 짓게 했는데 이것을 "육국궁전(六國宮殿)"이라 불렀다. 한번은 진시황이 각지의 12만 영주와 부상(富商)들을 함양으로 모았는데, 함양궁에 숲처럼 빽빽히 들어서서 입구까지 꽉 찼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은 남쪽으로는 위강(渭江), 북으로는 고원을 접하고 있어서 앞으로 넓힐 수가 없었다. 이에 진시황은 위강을 메워 남쪽의 평원까지 확장시켰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9년(서기 212년)에는 서주(西周)의 풍고근처에 아방궁의 전전(前殿)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방(阿房)'이라는 것은 '근방(近旁)', 즉 함양의 근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처 공사가 다 끝나기 전에 진시황이 죽고, 그 2세가 이어 공사를 계속하게 된다.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방궁의 크고 작은 전우(殿宇)만 700여 곳에 이르고,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고 해도 각각의 방이 모두 기후가 틀렸다고 한다. 진시황 생전에는 주변의 육국(六國)에서 가져 온 보석과 미녀들을 궁내에 보관해 두었고 매일 돌아가며 하루씩 각각의 방에 머물렀는데, 죽을때까지도 다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진왕조의 정치제제와 경제가 서서히 붕괴되고 농민봉기가 일어나 항우(項羽)가 병을 이끌고 함양을 함락시키면서 아방궁도 폐허로 남게 되었다.4. 양귀비와 현종이 겨울을 보내던 화청지(華淸池)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좋은 지하 온천수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일찌기 서주(西周)시기, 주유왕(周幽王)이 이곳에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目次1. 공자와 맹자는 누구인가?2. 공자의 교육관3. 맹자의 교육관4. 공자와 맹자의 사상비교5. 참고문헌1. 공자와 맹자는 누구인가?*공자*세계 4대 성인 중 한사람으로 유교를 일으켰으며,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이다.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鄒邑: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에서 BC 551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이다.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춘추 말기 사람으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주왕조 초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인(仁)이며,‘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다)'를 그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인(仁)을 단지 도덕규범이 아닌 사회질서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사상으로 생각했다.*맹자*‘성선설’을 주장한 중국의 사상가. 이름은 맹가(孟軻)이다.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쪼우셴현[鄒縣]에 있었던 추(趨)에서 출생하였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이다.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만년에는 제자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2. 공자의 교육관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문헌인 논어책을 펼치면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이 문구가 제일먼저 기재되어 있을 정도로 공자는 학문과 수양에 남다른 열성을 지닌 이였다. 그는 특히 詩와 禮를 중요시했다. 그러므로 아들 리에게 사람은 시를 배우지 않으면 할 말이 없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설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시를 통해서 지식을 넓히고 정서를 순화하고자 했다. 또한 禮로는 자기의 몸가짐을 단속하여 仁에 이르고자 한 것이다. 교육자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공자의 가르침은 주입식이 아니고, 제자들의 자질과 개성에 맞추는 계발식이었다. 그러므로 똑같은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제자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모퉁이를 가르치면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피교육자의 자발적 노력과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그는 詩와 禮 이외도 서경·역경· 악기·춘추를 정식 교과목으로 가르쳤고,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교육을 베풀었다. 다만 속수를 예물로 받았다. 이는 피교육자에게 그만한 성의와 예절을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또한 후배의 발전에 상당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다.공자는 춘추 시대를 겪으면서 극심한 사회의 혼란 원인으로 도덕적 타락에 입각하여 문제를 직시했다. 그리고 제안한 방법이 바로 인(仁)이었다.공자의 仁은 "인간이 타고난 내면적 도덕성"을 말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고, 조금 다르게 말하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대한 실천 덕목으로 효, 제, 충, 신, 서 등을 말하였다. 推己及人이라던지 德治라던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이러했던 공자였기에 정치와 사상은 덕치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덕치주의로 나타났으며, 정명정신이라 하여 지위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강조했다. 그럼 정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 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라는 뜻이다. 즉,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뚜렷한 만큼 그것에 상응하도록 의무를 지고 또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강조했다.3. 맹자의 교육관우리는 맹자를 성선설을 주장한 학자로 알고 있다. 공자가 춘추시대를 겪었다면 맹자는 전국시대를 겪었다. 그러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로가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공자가 도덕적 타락을 혼란의 원인으로 보았다면, 맹자는 혈기와 욕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보았다.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仁과 義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의 원인에 대한 대책으로 시비를 분별할 것을 말하고, 의를 쌓음으로써 대인, 대장부의 기개를 가지라 강조하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어질다 보았기에(性善說) 4단과 4덕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4단이란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이고, 4덕이란 인, 의, 예, 지이다.4. 공자와 맹자의 사상비교공자와 맹자는 둘 다 유가의 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난 것이라도 서로 다르듯이 공자와 맹자의 사상은 다소 다르다.
가르칠 교, 배울 학, 서로 상, 자랄 장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 배우는 일이 함께 실행되어야 자신의 학업이 향상된다는 뜻이다.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말이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의 〈학기(學記)〉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是故로 古之王者는 建國君民에 敎學爲先하니라.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와 학을 우선으로 삼았다.雖有佳肴라도 弗食하면 不知其味也요, 雖有至道나 弗學하면 不知其善也니라.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是故로 學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라.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知不足한 然後에 能自反也요, 知困然後에 能自强也니 故로 敎學相長也니라.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 한다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 수록 겸허(謙虛)해 진다는 뜻으로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스승은 부족한 곳을 더 공부하여 제자에게 익히게 하며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받아 더욱 학식이 풍부한 인재로 성장한다.푸를 청, 날 출, 어조사 어, 쪽풀 람(어조사 어는 ‘~보다’ 라고 해석됨)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이르는 말. (이 말은 전국 시대의 유학자로서 성악설을 창시한 순자의 ‘권학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學不可以已학문은 그쳐서는 안된다.靑取之於藍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而靑於藍쪽빛보다 더 푸르고氷水爲之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而寒於水물보다도 더 차다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지해서는 안 되며 청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出藍之譽, 出藍之才, 後生角高, 出藍之榮譽, 後生可畏뒤 후, 날 생, 가히 가, 두려울 외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 곧 젊은 후배들은 선인의 가르침을 배워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히 두렵다는 뜻이다.子가 曰 後生이 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이리오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 후진을 두려워해야 할지니 그들의 장래 학문이 오늘의 우리보다 못할줄 어찌 알리오. 만약 그들의 나이 사오십이 되어도 이름이 들리지 않으면 그때는 두려워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후생가외’는 공자가 제자 중 학문과 덕행이 가장 뛰어난 안회를 두고 한 말이다.안회는 亞聖이라고 불릴정도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찍 죽어버렸다. 그러자 공자가 하늘을 보고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라고 탄식을 했을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망하게 한다는 것은 공자의 도가 끊김을 말한다.안회를 두고 공자가 한말은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回也는 三月不違仁이오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니라’ 이 문구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공자는 살면서 仁하다고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문구에 나오듯이 안회에게는 도를 들으면 3개월동안 인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그 밖에 자공이 안회를 두고 평하기를回也는 聞一以知十하고 賜也는 聞一以知二 하노이다 라고했다.靑出於藍, 後生角高익힐 온, 옛 고, 알지, 새로울 신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 것을 안다는 뜻이다.論語 第2 爲政篇 11번을 보면‘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문구가 있다.(可以의 해석을 ‘가히 ~할만 하다’로 한다.)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에 대한 박식만으로는 안된다. 즉 고전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지식을 암기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과 표리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고전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결국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옛 것과 새 것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옛 것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는 오늘의 새로운 사태를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새로운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장차 올 사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설 수 없다.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에 대한인과법칙적인 원리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후진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리라.읽을 독, 글 서, 석 삼, 이를 도정신을 집중시켜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말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 하겠는가 (亦은 감탄의 의미로 쓰인다.)‘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쉽게 늙지만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一寸光陰不可輕’ 잠깐의 시간이라도 가벼이 하지 말라.
추락하는 일본일본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일어일문과 학생이라면 당연히 한번쯤은 생각해 봤어야 하거늘 나는 이제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 관한 책 중 가장 발매일이 최근이고, 리뷰나 댓글들을 통해 알짜배기 책을 물색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는, 오늘의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과 배경 등을 분석해서 저술한 『추락하는 일본』을 찾았다.『추락하는 일본』은 크게 6가지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1부 '경제대국에 드리운 그림자'에서는 경제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는 기술, 자본, 노동력이 감소하고 있는 실태를 조명했다. 2부 '인류사상 첫 노인국가의 등장'은 출생률 저하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문제를 건드린다. 3부 '한계에 다다른 옛 체제'에서는 단명정권으로 불안정한 일본내각과 신성성을 상실한 일본 황실의 문제를 파헤친다. 4부 '일본적인 것의 상실'은 먹다 남은 요리를 재탕하는 식당에 제조일자를 위장한 과자 전문점, 온천수에 수돗물을 탄 온천 등 직인의식이 무너진 현실을 진단했다. 5부 '우경화와 외교분쟁'에서는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주변 피해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의 만행과 지지율 확보를 위해 이러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정치가들의 문제를 짚었다. 6부 '일본사회의 변화'에서는 한류 붐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설명한다.일본의 추락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면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으며, 일본의 고도성장 배경과 그 이면의 그림자를 그리면서 오늘날 벌어진 일본의 몰락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일본의 현실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한국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귀감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작가가 이 한권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책에 쓴 사진과 객관적인 통계자료는 독자의 이해를 더욱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참고자료로 인한 방대한 양의 정보는 일본 現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나는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역사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일본자체만 가져다 놓고 평가해보라고 했을 때 나는 “일본은 치밀한 사회구조, 근면한 장인의식문화, 높은 기술력, 견고한 정치체제, 세계 2위의 경제대국, 동아시아 유일의 선진국 등을 자랑하는 매우 대단한 나라이며, 언젠가 우리나라가 따라잡아야 할 나라”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그 당시의 내 대답이 지금 현 상황에는 맞지 않는 대답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내 생각은 이내 침체, 붕괴, 쇠퇴, 위기 등 부정적인 단어들로 재인식 되었다.
기한: 6월 18일방법: 이러닝에 과제등록 아래 다섯가지를 요약하시오1. ****일본불교, 일본유교(프린트),일본불교1) 나라시대 신불습합, 2) 헤이안시대 본지수적설, 천태종, 진언종,3) 가마쿠라시대 호넨과 신란, 4) 무로마치시대 5) 에도시대를 약술하고 일본불교를 총괄일본유교 총괄일본주자학, 일본양명학, 일본고학을 설명하고 일본유교의 성격에 대해 총괄2.교재 118-125(일본예능),3. 132-139쪽(일본종교)4.교재 179-181쪽(일본인의 성),5. 216쪽-253쪽(일본문화키워드)을 요약하시오 일본불교, 유교, 일본인의 성등 일본문화에 대한 감상문을 쓰시오(1-2매정도) 교재와 위의 요약을 참고로하면서, 일본의 드라마, 영화, 문학작품, 직업정신, 근대사 인물 등에서 하나를 골라서 일본문화를 논평하시오. (2매정도) 다섯가지 요약①-1일본불교1) 나라시대 신불습합나라시대에 불교가 최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불교가 신도로부터 독립한 것은 아니다. 불교가 신도의 체계 안에서 굳건히 자리를 차지했다는 편이 옳은 해석일 것이다. 이처럼 불교가 신도와 융합된 것을 신불습합이라 한다.쇼무 천황의 불교적 행위는 일본의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신탁에 의해 행해졌다.동대사 대불 개안은 ‘신불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2) 헤이안시대 본지수적설, 천태종, 진언종본지수적설 : 헤이안 시대 중기 일본의 신과 佛을 직접 관련짓는 본지수적설이 나오게 되었다. 부처는 근본 실체이며, 신도의 신들은 부처의 화신이라는 설이다.본지수적설은 신도가 강한 일본의 풍토 속에서 불교가 생존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었다. 본지수적설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이후 신사에서는 자연스럽게 부처를 모시게 되었다.천태종 : 새로운 국가 불교로 발전한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이다.사이쵸가 당나라에 가서 천태교학을 배우고 천태종을 창시했다. 원래 천태종은 신도적 세계와는 어울릴 수 없는 교리였다. 사이쵸는 천태 불교의 신과 신도의 신을 과감하게 습합시켜 신도를 천태종 속으로 융합하였다.사이쵸 에 묻혀 버렸다.①-2일본유교일본주자학에도시대가 되어 평화의 시대를 다스리기 위해 주자학을 도입하게 됐다. 일본에서 주자학 도입은 조선과 깊은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고, 초기내용은 퇴계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하지만 일본의 주자학은 정신위주의 한국주자학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한국의 경우 윤리차원을 넘어서 진리와 맞닿으면 더 절실해진다고 믿었다. 즉, 한국은 진리 없는 윤리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주자학은 정신을 점차 탈락시키고 육체와 형이하학 위주로 발전되었다.일본인들에게는 우주만물을 규제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규제하는, 불변의 천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진정으로 이해되지 않았었다.일본양명학, 일본고학일본에서 천리는 양명학과 고학에서는 더욱 이탈하고 소멸되어 나타난다. 양명학과 고학은 주자학이 지니는 지나친 관념성의 폐단을 지적하며 나온 학문이다.일본의 양명학과 고학은 주자학의 사변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전보다 천리를 탈락시키는 과정으로 일관한다. 양명학자들은 천리를 하늘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했다. 결국 하늘처럼 섬길 대상을 임금, 부모같이 구체화하고 오륜을 최고의 가치로 격상했다. 고학자들은 양명학자들보다 더욱 천리를 부정했다.일본에서 양명학으로부터 고학에 이르는 발전 과정에는 주자학에 의해 지나치게 무시되던 욕망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있었다. 이는 중국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중국과 한국은 일본처럼 천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일본에서는 천리가 제거되어 현실이 곧 진리가 되었다.일본유교의 성격신도와 불교의 신불습합으로 유교는 일본에서 그 영향력이 매우 약했다. 때문에 일본의 유교는 ‘유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 그쳤었다.일본은 이상주의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이상이 결여된 현실적 실학주의를 따랐다.그래서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천리를 인정하고 따랐지만 일본에서는 천리를 따르기보다 현실과 욕망에 더 중점을 두었다.②교재 118-125(일본예능)1. 전통연극과 예능일본의 연극의 특징은 점차 감상되고 있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것이 우키요에이다. 민중적 풍속화의 양식으로 육필화도 그려졌지만 특히 판화로서 널리 보급되었다. 그림의 내용으로는 전통연극의 이모저모나 배우들의 다양한 모습, 미인화, 스모 선수들의 모습이 주 소재였으며, 역사적그림, 풍경, 새, 꽃 그림이 있다.5)칠기칠은 옻나무의 수피 안에서 배오나오는 점액이다. 이것을 정제하고 안료를 가해 목기에 칠한 뒤, 적당한 습도에서 건조시키면 접착성과 부식방지, 방습성이 좋은 피막이 얻어진다. 통상적으로 엷게 바른 다음 건조시키는 것을 수회 반복한다. 일본에서 칠은 고대시대부터 이용되어 왔는데, 7세기 이후 중국의 기술을 도입해 상자나, 식기, 가구, 불상, 건축 등의 미술 공예품으로 이용되고 있다.③132-139쪽(일본종교)1.일본의 종교1. 일본인은 과연 무종교인가일본인 중에는 무종교를 표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종교를 부정한다거나 심각하게 생각한 후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일본인들이 무종교라고 대답할 때에는 특정종파의 신자가 아님을 말하는 것으로,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무신론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일본의 주요 종교는 크게 신도, 불교, 크리스트교, 신흥종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신도는 애니미즘적 자연종교로서 일본인들의 자연관이나 조상 숭배 사상의 핵심으로 할 수 있다. 신도는 기본적으로 다신교이며, 모든 삼라만상은 신이 낳고 주관하며 모든 자연물에 신이 내려 있다고 믿는다.불교는 백제를 통해 전래되었다. 신도와 불교는 고대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독특한 신불신앙을 탄생시켰다.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은 종교에 대해 관대한 경향을 보이는 한편, 동시에 여러 종교를 수용하는 모순적 양상을 띤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출생이나 결혼 의식은 신도로 하고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른다.2.일본의 주요종교1)신도신도는 일본 고유의 자연종교이며 독특한 토착신앙으로, 자연에 대한 숭배심이 종교로 발전한 정령신앙 즉, 애니미즘의 일종이다. 초기에는 자연물과 자연현상을배함으로써 얻어지는 현실적인 이익이나 행운을 말한다.4)기온마쓰리교토 기온에서 7월에 열리는 야사카신사 마쓰리고 도쿄의 간다마쓰리, 오사카덴진마쓰리와 함께 일본 삼대 마쓰리로 꼽힌다.9-10세기에 역병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5)단오의 셋쿠5월5일에 지내는 남자 아이들의 마쓰리로 남자아이의 건강과 성장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실내에는 갑옷과 같은 무구와 무사인형 등을 장식하고, 정원에는 천으로 만든 여려색의 잉어모형인 고이노보리를 높게 세워 바람에 나부끼게 한다.6)도리이, 고마이누도리이는 신사의 경계영역을 표시하는 문이다.고마이누는 신사나 사찰 본당 정면 앞에 좌우에 놓여져 있는 사자를 닮은 짐승의 상이다. 해당 신사나 사찰에 사악한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지고 있다.7)祭り마쓰리일본의 마쓰리는 신의 강림에 임해 신을 받들고 신에게 봉사하는 것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일본 고유의 신앙인 신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마쓰리 때에는 반드시 사카키?나 고헤이御幣를 세우고, 신이 강림한 곳에는 그 표시로써 금줄을 쳤다. 다시山車는 신을 제장으로 영접하기 위한 교통수단이었다.마쓰리는 그것을 실행하는 일정한 집단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마쓰리의 3요소?모노이미物忌み : 마쓰리참가자가 일정 기간 음식을 삼가고 재계하는 것구모쓰供物 :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다. 멥쌀, 찹쌀, 니혼슈, 김, 야채, 과일 등을 바친다. 희생물을 바치는 경우는 없다.나오라이直? : 마쓰리참가자가 예식 장소에서 공물로 바친 음식을 신들과 함께 먹는 것.8)宮?り미야마이리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지역을 수호하는 신사의 우지가미를 참배하는 행사. 생후 30일 전후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지가미氏神에게 아이가 마을 구성원이 되는 것을 허락받는 의례다. 이것이 끝나면 우지코氏子가 된다. 아이의 이마에 한자 犬나 X표시를 그려 넣어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다.9)御輿미코시신령이 내려앉는 가마로, 신사의 마쓰리 때 신자들이 메고 행진을 한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도요우케타이신궁에는 오곡의 신인 도요우케오미카미를 모시고 있어서 고대 이래 각별히 지위가 높은 신사로 여겨져 왔다. 고대에는 천황만이 기도할 수 있는 신궁이었지만 가마쿠라시대 이후 일반인들의 참배도 많아졌고 에도시대에 들어와서 이세신궁 참배여행이 유행이 되었다. 이세신궁은 20년 간격으로 다시 재건축하는 식년천궁을 한다. 이번엔 2013년에 실시된다.25)장의일본 장례의 약 90%는 불교식으로 치러진다.26)正月정월공식적으로 1월1일부터 3일까지고 이때 모든 관공서나 대부분의 회사는 휴일이다.도시가미를 맞이하기 위해 12월 13일 대청소에서 시작하고 집을 장식한다. 흰종이를 드리운 금줄을 현관에 치고, 문에는 장식 소나무를 세우고, 도시다나年棚에 떡과 술, 곶감등의 공물을 가지런히 쌓아 놓는다.정월 전야는 오오미소카大晦日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절을 방문해 백팔번뇌를 씻기 위해 제야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날 도시코시소바를 먹는다.정월 초하루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고 하쓰모데를 하러 간다. 2일, 3일에는 친구나 업무 관계의 지인을 방문해 인사를 교환하고, 일본술인 도소를 마신다.27)주겐, 세이보주겐은 원래 중국의 도교의 용어로서 7월 15일을 뜻하는데, 일본에 전래되고 나서 불교의 본 행사와 결부되어 조상을 공양함과 더불어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공물을 보내는 관습으로 정착되었다.세이보는 주겐과 마찬가지로 12월 하순에 거래처나 신세를 진 분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행위나 또는 그 선물을 뜻한다.28)지장지장은 불교의 보살 중의 하나로서 지장 보살의 줄인말이다.29)칠석우리의 칠석과 유사하다. 7월7일 혹은 8월 7일에 갖는 별축제 행사이다. 견우성과 직녀성의 부부가 1년에 한번 7월 7일에만 만날수 있다는 중국의 칠석전설에 그 유래가 있다.30)히나마쓰리3월 3일에 열리는 여자아이의 마쓰리고, 가정에서는 히나단에 히나인형을 장식하고 가족이 히시모치를 먹거나 누룩과 술로 만든 시로자케를 마시고 식사를 하며 축하한다.31)하나미,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