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맹자
- 최초 등록일
- 2012.05.28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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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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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目次
1. 공자와 맹자는 누구인가?
2. 공자의 교육관
3. 맹자의 교육관
4. 공자와 맹자의 사상비교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공자와 맹자는 누구인가?
*공자*
세계 4대 성인 중 한사람으로 유교를 일으켰으며,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이다.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鄒邑: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에서 BC 551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이다.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춘추 말기 사람으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주왕조 초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인(仁)이며,‘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다)`를 그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인(仁)을 단지 도덕규범이 아닌 사회질서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사상으로 생각했다.
*맹자*
‘성선설’을 주장한 중국의 사상가. 이름은 맹가(孟軻)이다.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쪼우셴현[鄒縣]에 있었던 추(趨)에서 출생하였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이다.
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만년에는 제자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