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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열어주는 철학 이야기] 중간고사 대체리포트 `남명 조식의 생애와 사상` 평가A+최고예요
    I. 서론 - 내가 선택한 철학자에 대한 소개와 그 이유글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양심선언을 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저술서이든 논문이든지 간에 타인의 생각과 사상에서 그를 모방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고는 할지라도, 그 저술과 논문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유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을 쓰는 나 역시 타인의 저술서 따위를 참조하되, 유에서 다시금 유를 창조하는 방식을 택하여 표절, 모방이 아닌 나만의 문체, 나만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한다.나는 이번 과제물의 주제 선정에 있어 상당히 애를 먹었었다. 평소에 철학에 대한 관념이 부족했었던 탓일런지는 모르겠지만....철학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바다 건너 먼먼 개념처럼 느껴졌고, 철학자 역시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것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는 것이며, 우리의 생활과 늘 함께 있으며 철학자 역시 보다 가까운 곳에서 찾고자 하였다.그래서 이번 과제물을 쓸 때, 한국의 철학자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다. 흔히 철학자라고 하면 멀리는 이역만리 먼 땅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을 찾고, 가까이라고 하더라도 공자, 맹자, 노자, 순자, 장자 등 옆 나라 중국땅에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굳이 철학이라는 것이 해외에만 있는가? 우리 나라 땅에서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 철학을 행한 이들은 없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는데 이런 의문은 기존 내가 국사 교과서의 인물로써만 알고 있던 이들, 위인전기의 인물로써만 알고 있던 이들이 알고 보니 철학의 세계에 있던 이들이었다.내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국사교과서에 등장하던 ‘이이, 이황, 성혼, 조식, 서경덕, 박지원, 정약용...’등은 내가 오로지 국사교과서의 세계에 머물고 잇던 이들이 알고 보니 철학의 세계에 있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그 분들 중 나는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후대에까지 높이 평가되지 못하던 인물인 남명 조식 선생에 대 둘째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영호남 지역의 의병장들 대부분이 그분의 제자들로써 그 분의 사상이 어떻게 하여 그렇게 의로운 기상으로 표현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나의 지적인 호기심이라 할 수 있겠다.II. 본론 - 남명선생의 생애와 인생관, 철학관 및 주요 사상1. 남명 선생의 생애와 학문적 신념이 장에서는 남명 선생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그의 생애와 더불어 그의 학문적 신념이 어떻게 표출되어 가는 가를 알아보고자 한다.남명 선생은 1501년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5,6세까지 고향 삼가면에서 성장하다가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여 한양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의 한양 기거생활은 26세까지 계속되는데 그의 부친이 타계하고서 그는 고향으로 가서 삼년상을 치른 후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그 이유는 그가 25세 되던 해에 성리대전을 읽던 도중 공자의 제자인 안회의 행적에 대해 감복함과 더불어 그 당시의 비참한 역사적 사건(기묘사화-1519년, 그가 19세 되던 해였다.)을 경험함으로 추정된다. 즉 그는 부친 상을 당하기 1년 전부터 이미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학자 즉 처사의 길로 들어서길 원했었던 것이다.그는 명경대라는 암자에서 1년간 독서를 하면서 은거하게 되나,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인즉 그의 형편이 넉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명경대에서 1년을 지낸 후 그는 처가가 있는 김해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처가 쪽의 지원으로 산해정이라는 집을 짓고서 그가 기거하는 방을 계명실이라 이름 붙였다. 그의 집과 방 이름을 붙인 이유는 바로 그의 학문에 대한 자세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계명실의 계명의 의미는 성현이 밝혀놓은 도를 가지고서 자신의 명덕을 이어 온 세상에 비추겠다는 포부를 말하며 산해정이란 산처럼 높게 바다처럼 깊게 학문을 참구하겠다는 그의 학문 추구의 자세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그의 학문 추구 자세는 그의 호 ‘남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명이란 남쪽 어두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서의 모친마저 별세한다. 그는 고향 삼가로 돌아가 모친의 3년상을 치르고 김해로 돌아가지 않고서 그곳에 계부당이라는 집과 뇌룡정이라는 집을 짓고서 그의 학문에 정진한다. 계부당의 ‘계부’란 닭이 알을 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남명학의 중심사상 중 하나이자 성리학에서도 중시하는 사상인 존심양성의 기초가 된다. 즉 닭이 알을 품고 있듯이 정적으로 내면적인 수양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그리고 뇌룡정은 용의 신비한 조화에서 그 이름을 본따온 것이다. 계부가 정적 수양의 의지를 반영한 이름이라면 뇌룡이라는 것은 보다 정적으로 실천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역동적 실천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조식 선생의 문하에는 100여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그리고 61세가 되던 해에 조식선생은 돌연 의령 자굴산 천왕봉 아래로 은거생활에 들어간다. 100여명의 문하생을 거느린 그가 어느날 갑자기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산천재라는 이름의 집을 짓게 된다.산천재는 ‘산과 천이 합쳐져 대성괘한다는 뜻으로, 대성괘는 대축괘로 들어가 그 뜻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의미인 즉슨 ’강건하고 독실하고 휘광하여 날마다 덕을 새롭게 한다‘는 말이다.즉 이미 100여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리고, 이제는 가르칠 나이에 이른 그가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포부를 다시금 밝힌 것이다. 즉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하겠노라는 의지....그 것이 남명선생이 그 분 생을 끝마치는 순간까지도 견지했던 학문적 신념인 것이다.2. 남명의 학문 탐구관과 남명학의 핵심(1) 남명의 학문 탐구관과 학문적 기여남명의 학문 탐구관은 기본적으로 공자의 손자라 할 수 있는 자사의 지적탐구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널리 알기, 자세히묻기, 신중히 생각하가. 명확히 분변하기, 독실하 실천의 다섯 가지가 자사의 지적 탐구관인데 남명은 거기서 더 나아가 널리 알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간추려 정리할 것과 간추려 정리하면서 지식을 ‘스스로 터득하기’를 권내에 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천주의적인 그의 학문관의 영향도 그들의 의로운 행적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그리고 남명 선생의 학풍은 ‘널리 알기’ 역시 매우 중시하였는데 이는 훗날 성호사설을 저술한 이익선생이나 북학파의 선구자들 중 한명인 박제가 선생의 학문 탐구 자세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던 화담 서경덕 선생의 화담학파의 학풍과도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주자학계통의 학파인 퇴계학파나 율곡학파가 타 학문을 이단시하고 배척한 반면 ‘박학’을 중시한 남명학의 학풍은 천문, 지리, 병법, 노장학, 양명학 등 폭넓은 학문의 수용을 가능케 한 것이다.(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 역시 무인이 아니라 지역의 사대부였다. 하지만 그는 평시에 무예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병법등을 연마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남명 선생의 ‘박학’중시의 학풍의 영향이 큰 탓일 것이다.)일례로 성호 이익 선생은 남명선생과 퇴계선생을 비교하면서 남명 선생에 대해 ‘의를 숭상하고 실천에 용감하다’라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렇듯 남명 선생의 학문관은 비단 그의 후학들에게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학문적 자아 형성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이다.(2) 남명학의 핵심위에서는 남명의 학문 탐구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 장에서는 남명선생의 학문적 결정체, 남명학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남명학은 위에서 말한바 있듯 남명선생의 학문적 신념인 ‘실천’을 위주로 한다. 남명학의 핵심 개념 세가지를 꼽는다면 존양·성찰, 심기·극치, 지어지선의 세 가지라 할 수 있다.(전술한 개념들은 성리학의 일반론에서도 등장하는 개념이지만 남명 선생의 학문관으로 다시 재구성하여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한 것으로 본다.)첫째, 존양·성찰에서 존양이란 성리학에서 말하는 본연 마음의 보전과 함양으로 남명선생은 이를 공경심이라 하였다. 즉 무엇이든 두려워하려는 마음 ‘경’의 기초가 된다. 이를 통해 존심양성의 경지로 갈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성찰은 외부사물과 접촉할 때 불의에 사욕이 일어나는 기미를 살핌을 의미하며 이는 사욕의 기미가 싹틀때 이를 무찔러 마음을 보전코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셋째, 앞에서 말한 존양·성찰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심기·극치를 통해서 사욕을 타파할 때 마침내 사악학 마음과 사욕을 물리쳐 성심을 보전하는 극기복례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 경지를 바로 지어지선이라고 한다.남명학은 위에서 말한 것들 중 최초의 단계인 수양을 매우 중시한다. 물론 남명선생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본다면 그들은 실천을 통해서 그들의 학문을 완성시키려 한 경향이 크지만, 실천 이전의 제1단계인 수양의 단계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올바른 수양만이 올바른 실천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실제 남명 선생 역시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자아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그는 61세에 천왕봉 산천재에 기거하면서 그의 ‘덕’을 새롭게 하고자 수양하였다.)수양론의 핵심 요체는 경과 의라는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경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존양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즉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주체적으로 존심양성함을 경이라 하는 것이며 의는 성찰과 일맥상통하는 뜻으로써 즉 마음이 움직여 사물과 접할 때 사리·사욕에 빠지지 않도록 엄히 살핌을 의미한다.경과 의 두 개념은 곧 남명학 이해의 기초인 것이다. 실제 남명 선생은 그의 호신용(?) 단검에 ‘경의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안의 마음을 맑게하고 밖의 일을 결단한다’라는 구절을 새긴바 있다.즉 경은 자기정화를 위한 안으로의 도덕적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며, 의는 물욕·인욕을 경계함을 말한다. 기존 성리학과의 차이점이라면 남명 선생은 경과 의를 구분하면서 특히 의의 성격과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의’개념의 명확화는 그의 실천주의 학풍의 경향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데, ‘의’를 밖의 일의 결단으로 표현함으로써 철학의 세계를 관념론적 수준에서 경험적 실체적 세계로 이끌어 낸 것이다.(물론 남명 선생이 관념의 세계를 전면 부인한 것은다.
    인문/어학| 2008.06.22| 5페이지| 1,000원| 조회(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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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증진과 젊음] 참고동영상 감상문
    ‘돈을 잃은 것이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좀 더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돈과 명예를 가진다한들 건강하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뜻으로 곧 건강이야 말로 우리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사실 이런 중요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평상시부터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건강을 망치는 요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잘못된 습관에 의해서 서서히 서서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오기 때문이다.따라서 건강한 신체를 위한 각종 관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늘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평상시에 늘 대비하고 늘 조심하지 않으면 소리 없이 우리를 찾아와 우리의 몸을 병마로 물들이는 병이 있으니, 그것이 만성 질환이자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는 질병인 당뇨병인 것이다.당뇨병이라는 것은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생겨 혈당량 조절이 되지 않게 되는 신체적 장애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혈당량 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이 이 질병의 증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몸의 각종 대사를 조절하는 혈액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결국 각종 합병증을 동반하게 되어 우리의 몸을 병마에 찌들게 하여 종국적으로는 우리의 몸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아주 무서운 질병인 것이다.참고 동영상에서는 당뇨병이라는 질병은 유전성이 있다고 했는데 특히 이런 유전성이 있다는 측면은 그동안 건강관리를 안일하게 여기던 필자인 나에게 일침(?)을 가해 주었다. 사실 필자의 외가댁 어른들의 경우 당뇨병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생을 마감하셨던 분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었는데, 공교롭게도 필자의 체질 - 식습관, 병력 등등 - 은 필자의 외가쪽과 유사한데 결국 필자인 나는 유전적인 요인을 지니고 있어서 평상시에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데 당뇨병의 예방과 관련한 참고 동영상에서 보니 다소 필자의 건강에 대한 관리와 인식이 다소 안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특히 혈당을 상승시키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비만과 스트레스, 운동부족, 약물 등의 요인을 참고 동영상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필자의 경우 전공이 행정학이며, 공무원수험 등에 지난 2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느라 다소 운동부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필자의 건강한(?) 체형에 비한다면 현재는 상당히 비대(?)해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을 것부터 입에 갖다 대는 못된(?) 습관을 버리고, 한편으로는 하루에 단 한시간만이라도 할애하여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당뇨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에 의해 소리없이(?) 다가오는 만성질환이며 각종 합병증을 동반하기에 더욱 위험한 질환이다. 특히 유전적인 요인을 타고난 나의 경우 더더욱 평상시 생활습관에 있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져야 하겠다는 경각심이 본 참고동영상을 보니 새삼 깨달아지는 느낌이다.
    독후감/창작| 2009.07.14| 2페이지| 1,000원| 조회(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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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입문] 중간고사 대체 리포트 `플라톤의 생애와 사상 정리`
    * 양심선언 *본 과제물, 열린사이버대학교 2009학년도 여름계절학기 교양과목 “철학입문”의 중간고사 대체 과제물인 이 과제물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양심선언을 하는 바입니다. 본 과제물은 결코 리포트 판매 사이트 따위를 통한 타인의 글을 베끼거나 하지 아니하고 순수 과제물의 수행자 스스로 이해하고 체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할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참조로 한 문헌 및 논문 등에 대해서는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힐 것을 약속드리는 바이며 저작권 위반과 관련해서는 성적 처리 및 학사 과정, 법적 제재 등의 불이익에 대해서도 감수하겠습니다.아무쪼록 짧은 여름계절학기지만 최선을 다하여 수업에 임하며, 과제물을 작성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본 양심선언문을 끝마치고자 합니다.I. 들어가며 - 플라토닉 러브와 플라톤흔히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이는 정신적인 사랑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와전된 의미이며, 실제의 의미는 ‘지혜를 사랑하는’ 즉 철학이란 학문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필자가 우연히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의 본래의미를 깨닫고서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었다. 왜 하필이면 철학이라는 학문의 또 다른 명사인 플라토닉 러브의 주어(?)가 플라톤이 되었을까? 대관절 왜 철학이라는 학문의 대명사가 소크라테스틱 러브(?)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틱 러브(?)도 아닌 플라토닉 러브가 되었을까, 혹시 철학이라는 학문을 이해하려면 플라톤을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발상에서 본 과제물의 주제로 플라톤을 떠올리게 되었다.플라톤은 알려진 바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사실 현전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대부분, 바로 이 플라톤에 의해 기록되어 전해졌다봐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철학의 역사상 그는 시조 내지 중시조격인 철학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우선 그의 생애를 고찰하면서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가 남긴 저서들의 내용들은의 생애와 저서, 사상을 이제 본격적으로 탐구해나가보고자 한다.II. 플라톤의 생애 - 플라톤, 과연 그는 누구인가?우선 플라톤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플라톤은 기원전 427,8년 경에 출생하여 기원전 347,8년에 사망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의 집안은 아테네 내에서도 권문세가 집안이었다고 전해진다.아테네의 정치형태는 흔히 ‘민주정치’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과두정치나 참주정치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정치 형태가 나타났었을 때 으레 그의 집안 출신들은 반드시 그 과두제, 참주제의 대표자로 선출될 정도였으며, 사실 그들 집안의 시조가 고대 아테네 왕정 시대의 왕족이었으며, 외가 역시 입법가 솔론의 후예들이니 플라톤은 이러한 집안의 후광을 받으며 그의 초년기에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이렇듯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우던 플라톤의 생애의 전환점이 되어버린 인물이 바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소국 내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 아테네 시민들이 보았을 때는 그 사회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 더 나쁜 말로 한다면 사회부적응자나 다름없었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아테네 시가지를 누더기 차림에 맨발로 다니는 그의 행색부터가 그 당시 다소 허례허식을 강조하던 아테네 상류 계급들의 눈에는 상당히 걸려 보였을 것이 자명했을 것이며, 특히 사상적으로도 당시 주류 사상가들인 ‘소피스트’들의 윤리 상대주의의 관점과는 대치되는 절대적 기준을 제시하는 윤리관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플라톤 역시 그에게 가르침을 청한 인물들 중 하나였다. 소크라테스는 이후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독배를 들게 되는데 이 사건은 플라톤의 일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사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맞물려서 아테네에서도 역사적 변혁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미 아테네는 인접 강대국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된 것이다.소크라테스 사후 플라톤은 아테네를 떠나 타지를 돌며, 각 지의 학자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현재 이탈리아 근교의 피타고라스 학파들과 학제적 교류를 맺은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의 대표적인 이론, 이데아이론은 만물의 근원을 숫자로 보고 우주를 이해하는 열쇠로 이해하는 그들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풍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아테네로 돌아와서 세운 ‘아카데미아’학당의 입구에 적혀있는 글귀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라는 이 글귀의 내용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40세 이후의 플라톤은 그가 세운 학당, 아카데미아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일로 일생을 보낸 그는, 81세를 일기로 아카데미아에 묻히게 된다.이렇듯 플라톤은 그의 일생의 절반이상을 이렇듯 지혜를 사랑하는 일, 즉 철학의 연구에 매진하여 보냈다. 서문에서 밝힌 철학이라는 학문의 또 다른 이름인 ‘플라토닉 러브’가 왜 플라토닉 러브 즉 플라톤의 사랑인지 그의 일생을 간략히만 살펴보아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평생을 걸쳐서 사랑한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철학이었던 것이다.III. 플라톤의 주요 저서플라톤은 일생에 걸쳐 수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그 수많은 저서들은 공통점을 지니는 데, 우선 플라톤은 철학자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문학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저서들은 문학적 형식으로 저술되어 있는데, 비약적으로 표현한다면 철학이라는 학문이 문학이라는 예술적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저서는 다수의 철학가들이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마치 희곡을 연상케하는 형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그리고 그의 저서에 등장하는 철학자들 중 특히 스승 소크라테스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결국 이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어느 정도나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저서 중 “변명”이라바라는 국가의 전모를 담은 저서 ‘국가’를 남기게 된다. 국가라는 이 저서에서 그는 ‘철인왕’ 즉 가장 똑똑하고, 도덕, 윤리적으로 완성된 군주가 국가 전체를 통치하는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관으로 제시하는데 이러한 철인왕은 바로 ‘이데아’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그 이외에도 크리톤, 메논, 파이돈, 향연 등등 여러 저서들이 남겨져 있으며 그 수는 무려 30여권에 이른다. 그들 저서의 대부분은 위에서 말한바대로 대화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저서 대부분은 철학사적으로는 물론이며,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가치까지 인정받고 있다.IV. 플라톤의 주요 사상플라톤의 주요사상은 위에서 말한 바대로 이데아이론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상 대부분은 바로 이 이데아이론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우주를 인식하는 방법이자, 중세 신학의 영혼에 관한 인식방법에 영향을 미친 이원론, 그리고 민주주의보다는 철인왕을 바탕으로 통치되는 그의 국가관 등은 이러한 이데아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우선 그의 사상들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그의 사상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이데아 이론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가 정립한 철학사상과 철학 개념을 고찰해 나가보고자 한다.(1) 플라톤 사상의 기초 - 이데아 이론이데아론은 플라톤 철학의 대표적 키워드이다. 플라톤은 그의 사상을 설명할 때 비유의 방법을 주로 사용했었는데 그의 저서 국가에서 그는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했다. 그 내용을 본다면 동굴 내에 여러 죄수들이 있고 죄수들은 동굴의 입구를 등 뒤로 하여 오직 동굴의 벽면만을 바라보며, 그들의 등 뒤에 있는 모닥불을 통해 비춰진 그림자만 볼 수 있다. 여기서 곧 그림자는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이며, 그림자를 생기게 하는 실체, 그것이 바로 이데아인 것이다.즉 이데아라 함은 우리의 눈에 보여지지 않지만, 그 실체의 가장 진실된 모습,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실체 전반이 곧 이데아인 것이다. 이는 곧 윤리론적으로는 결국 윤리절대설을 취한 것이라고도 볼각경험으로 감지한 것은 이데아의 자취, 실재와 진리의 자취에 불과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만일 우리가 꽃이라는 사물을 보고 있을때, 꽃이라는 실체, 즉 현실에 보여지는 실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만 그 실체가 우리에게 꽃이라 각인 되어 있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이렇듯 이데아이론이라는 것은 현실 세계 너머에 있는 만고불변의 진리와 실재에 대한 갈구에서 나온 철학사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상기한 소피스트들의 윤리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윤리 절대주의를 내세운 근거가 바로 불변하는 진리와 실재의 측면인 이데아라는 개념인 것이다.(2) 이원론과 카타르시스위의 이데아론에서의 원리는 플라톤의 영혼관(?)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플라톤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비 물질의 영혼과 물질의 육체로 구분하여 생각하였다. 이를 곧 이원론이라 하는데, 이는 유럽 세계의 신학철학의 내세관에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즉 기독교에서 의미하는 영혼과 영생의 개념은 바로 이 플라톤이 주장한 이원론을 근거로 하여 정립된 개념인 것이다.즉 보이는 현실계와 보이지 않지만 현실계의 실재와 참모습인 이데아계가 있듯 인간 역시 보이는 육체가 있는 반면 그 육체 뒤에 숨겨져 있는 실체적 자아인 불멸하는 영혼이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실체는 껍데기인 육체가 아닌 바로 영혼인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영혼보다는 육체가 갈구하는 욕구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며, 실체인 영혼에서 멀어지며 진리와 실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다.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 진리와 실재의 세계로 진입하는 방법으로 바로 ‘카타르시스’라는 것을 제시한다.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흔히 비극적 경험으로 짓눌린 감정이나 심리를 푸는 것을 의미하며, 정서적 정화따위를 의미하는 말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육체적이기 보다는 정신적인 활동에서 발생하는 것이다.플라톤의 카타르시스란 물론 위와 같이 정신적인 활동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위의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이 감정의 표현의 측면에 불
    인문/어학| 2009.07.20| 6페이지| 1,000원| 조회(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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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학] 이명박 정부의 문화행정의 특징
    이명박 정부의 문화행정에 대하여...이명박 정부의 문화행정에 대하여...1. 문화 행정이란 무엇인가?문화행정, 그것은 공공행정에 있어서 문화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한편 공공행정이 문화적 요소에도 개입하게 되는 행정의 한 형태를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문화라고 함은 넓게는 한 개의 민족 혹은 한 개의 국가의 국민이 영위하는 일정한 생활양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삶의 고유한 양식을 일컫는 말이며 좁게 말한다면 예술문화 등과 같이 철학·종교·예술 등 인간이 생산한 가치나 규범적인 것의 총체를 의미하는 말이다.흔히 정부가 행하는 ‘문화행정’ 혹은 ‘문화정책’이라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문화의 의미 중에서 협의의 의미로 쓰인 그 ‘문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문화행정관리를 위해 설립한 문화행정조직의 성립목적, 활동내용 등을 봐도 알 수 있다.즉 현 정부부처 조직인 ‘문화체육관광부’의 활동내용을 봐도 주로 예술문화 등을 다루고 있는 것만봐도 알 수 있다.문화행정이라는 것은 곧 정부부처에 의한 정책적 수단을 통한 문화의 구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2. 이명박 대통령, 그는 누구인가?이 글의 주제가 이명박 정부, 이른바 실용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이번 정부의 문화행정에 대한 내용을 다루므로 일단 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제17대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물론 대통령 1인이 그 정부의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고는 확언할 수 없지만, 분명 정부조직의 구성, 정부조직 내부 인사, 정부의 주요정책사업 등은 결국 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의사가 가장 많이 반영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문화행정을 조사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즉 그 정부의 행정의 전반적 성격이나 내용 따위를 알아보려면 그 정부의 수반에 대해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1) 이명박의 초년시절이명박 현 대통령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광복 이후 그의 집안은 한국으로 건너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한국에서의 연고사진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게끔한 계기가 된 현대건설의 태국건설현장에서의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다. 노동자들이 급여문제 등으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금고를 부여잡고 얻어맞아가면서도 끝까지 지키고 있었던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분명 그의 사회초년시절은 화려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높은 학벌(고려대학교 상과대학 졸업)에,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이던 현대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출세까지(12년 만에 대표이사직 승진), 비록 6·3사건에 연루되어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그의 인생은 분명 승승장구였고, 그의 대박인생(?)은 그때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2) 국회의원 이명박35세에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분위기속에서 기업계에서 ‘신화’적 존재가 된 이명박은 1992년, 기업계에서 은퇴 후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92년, 96년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서 그의 인생 역시 이른바 대박인생으로 승승장구해나가는 듯 했다.허나 그의 정계에서의 인생역시 한차례 위기가 찾아온다. 96년 그가 재선에 성공한지 불과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터진 일대의 사건이었다. 법정선거자금 초과 사용,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그의 전비서관의 해외도피 사건이다.97년, 그는 검찰에 출두하게 되고 징역 2년형까지 선고되는 등 6·3사건 이후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결국 그는 98년 2월 의원직에서 사퇴함으로써 그의 국회의원생활은 마감되는 듯 했다. 물론 의원직 사퇴는 사실 징역 2년형에 비한다면 분명 미약한 타격에 불과하지만 이로써 정치인 이명박은 큰 타격을 받는 듯 했다. 하지만....(3) 서울특별시장 이명박 - 불거져 나오는 종교편향 문제위와 같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현 대통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됨으로써 다시금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청계천 복구사업, 대중교통 개선 등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사실 그의 서울시장 재임기간 동안 가장 눈여겨보아야 했던 것은 바로 아물론 투표율이 매우 저조한 상황에서 당선된 것이지만 2위인 정동영 후보를 매우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된 것이다.물론 BBK사건 등 각종 의혹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것마저도 모두 불식되어버린 채 그는 2008년 2월 25일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그는 당선 이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며 인수과정 중에서 특히 장관급 인사 임명 당시에도 이른바 강부자(강남땅부자), 고소영(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영남지역출신) 등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수 많은 문제점을 지적받기도 하였다.물론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직책이 정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느 나라이건 당연한 것이며, 원래 내각 수뇌부의 구성은 내각 수반의 신념 따위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제점을 지적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번 그의 인사가 지극히 편향적이며 그 정도가 매우 지나치다는데 있다. 이는 이전 정권 때 이른바 ‘코드인사’라는 말이 나온 것에 못지않을 정도이다.무엇보다도 그런 각종 비판과 의혹들의 중심에는 이번 정권의 문화행정을 관리·관장하는 문화행정조직이라 볼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인촌 장관이 서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이번 이명박 정부의 인사 임명은 문화행정 영역에 있어서도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즉 이명박 정부의 행정 전반에는 ‘심각한 편향성’으로서의 문제가 깔려 있다. 문화에 있어서 그리고 문화행정에 있어서 우수성과 평등의 대립은 영원한 딜레마라고 할 것이나, 이번 정부의 경우는 ‘평등’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수성’의 느낌을 받기도 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즉 populism은 아니지만 elitism은 더더욱 아닌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3. 이명박 정부의 문화행정적인 방향은?새 정부가 출범한지는 이제 갓 반년 남짓이 지난 상태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한미 FTA로 인하여 나라 안팎이 시끄럽기도 하였고 지난여름에는 종교편향을 문제 삼아 불교계 교단 측에서 집단 반발이 일어나는 등 문제가 많았다.이렇게 말도 많하는 정도 수준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2) 이명박 정부의 문화행정에 대한 관점이번 정부가 일단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은 정부영역 전반에 있어서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움직임 즉 실용주의의 기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정책적·행정적인 기조가 문화행정에도 적용된다는 점에 있다.즉 문화에 대한 정부의 접근이 좋게 말해서 ‘생산성’ 일변도라는 것이며 나쁘게 말한다면 문화를 단지 ‘산업’내지는 더 격하시켜 표현한다면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는 점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여기에 대해서 판단을 내린 근거로는 이번 정부의 핵심인사라고 볼 수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문화산업 관련 발언이 가장 큰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기획재정부 강만수 장관의 ‘문화’에 대한 정책적 견해는 아래와 같다.“앞으로 아시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문화, 문화 중에서도 가장 돈을 벌기 쉬운 디자인에 주력해야한다”)또한 문화행정을 구현해야할 문화행정조직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08년도 업무계획을 보면 정책목표로 제시된 네 가지 목표를 보면 ‘콘텐츠산업 전략적 육성, 체육의 생활화·산업화·세계화, 문화예술로 삶의 질 선진화, 관광사업의 경쟁력 강화’이다.네 가지 목표 중 무려 세 가지 목표에서 ‘산업’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문화정책 기조에 있어서 문화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상업성’의 논리로 접근해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문화에 있어서도 생산성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오직 생산성이 문화전반을 지배하는 핵심논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물론 기존 문화영역에 대해서 ‘생산성을 부여’한다는 식으로 정책을 추진해나간다면 좋겠지만, 오히려 역으로 생산성 있는 문화영역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정책 기조라는 점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즉 이런 상태의 편향적인 정책적·행정적 기조가 문화영역에도 적용될 경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평등하지 못한 문화 행정적 기조가 우수하지 못한 문화영역에 4개의 정책 목표 중 3개가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므로 어느 누가 봐도 현 정부의 문화 행정적 방향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이런 상업적 정책 기조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주 최근의 일인 2008년 10월 18일, 충북 청주시에서 개최된 2008년 문화의 달 기념행사에서 벌어진 시상식의 시상자 명단을 보면 극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가장 주목해서보아야 할 훈장 수상자는 화관 문화 훈장을 수상한 다음 사진의 인물이다.위의 사진의 인물들 중 오른쪽은 유인촌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리고 왼쪽은 KBS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연을 맡아 이후 이른바 한류열풍의 주역으로써 일본 팬들로부터 ‘욘사마’라는 별칭을 얻은 배우 ‘배용준’이다.물론 연예인들이 훈장을 수상하는 일은 이때까지 많았다. 분명 전례에 없는 일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허나 배용준이라는 배우가 이제껏 출연했던 작품들 중에서 순수 문화적 가치를 지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최소한 필자인 나의 기억 속에서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대중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기’의 측면에서 흥행한 작품들은 많지만 ‘작품성’의 측면에서 높게 평가되는 작품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그간 훈장을 수여받았던 연예인들의 경우 그 시대 대중문화의 트렌드(?)적인 측면을 바꾼 ‘혁명적’(?)인듯 한 움직임을 보여주어 그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은 반면 이번 배용준이라는 배우에 대한 훈장 수여는 단지 그의 상업적인 측면에 기댄 것이 많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물론 배용준이라는 배우가 한류열풍을 몰고 와서 우리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 홍보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훈장의 수여 취지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국가발전’의 차원에서는 그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 그 취지에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과연 국민문화향상의 측면이나 문화예술발전.
    사회과학| 2009.12.01| 6페이지| 1,000원| 조회(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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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학] 문화 행정을 통한 마산의 발전
    “문화 행정을 통한 마산의 발전”제출일자08. 12. 08. (수)담당교수이만우 교수님소속학번성명목 차I. 서론 - 행정과 문화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1PII. 문제의 진단 - 마산시의 역사와 현재 처한 환경..2PIII. 목표설정 - 마산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목표는?...........4PIV. 대안탐색 - 마산시의 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6PV. 대안의 구체적 활용 방안 - 좋은 소재,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8PVI. 결론 - 위대한 문화의 힘과 꿈의 항만 마산의 건설........11P-참고문헌 및 사이트.............13P2008학년도 행정과 문화 최종과제물 “문화행정을 통한 마산의 발전”I. 서론 - 행정과 문화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행정과 문화, 서로 관련이 없는 듯 하면서도 사실, 이 둘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문화의 일반적인 속성과 행정의 일반적인 속성에 대해서 파악해보면 충분히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먼저, 문화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권역, 특정한 국가 혹은 특정한 지역 내에 생활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사고관과 가치관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적인 가치, 지배적인 생활양식 등 정형화된 삶의 양식의 총체를 모두 일컫는 말로 통용될 수 있다. 즉 문화라고 하는 것은 결국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의 구성원들의 일상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복합체의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이다.)그리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연구물은 우선 마산시의 역사 및 환경 등에 대해서 조사해보면서 마산시가 현재 처한 문제에 대해 알아보면서 현재 마산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 등에 대해 조사해보면서 문화행정으로서 마산시가 세울 수 있는 목표를 세우면서 문화 행정적으로 활용 가능한 대안들을 탐색해보면서, 마지막으로 그러한 대안들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어떤 방향을 통해 세계화, 특성화를 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하며, 이 연구물의 연구 방식은 행정과 정책에 있어서 필수적 과정이라 볼 수 있는 ‘기획’의 과정을 참고로 하여 작성하고자 한다.II. 문제의 진단 - 마산시의 역사와 현재 처한 환경경상남도 마산시, 이곳은 이 연구를 행하는 필자가 태어나서 대학 입학 전까지도 자라온 곳이며 또한 현재에도 주말마다 왕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고향’인 것이다.한때 마산은 전국 10위권 내에 드는, 동부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산업도시였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그 위상은 약화되기 시작했으며 21세기 들어서서는 사실상 인근 창원시의 배후 도시로 전락하기에 이른다.이번 장에서는 마산시의 역사에 대해서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개괄적으로 알아보면서 그 역사와 함께 변천한 환경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면서 2008년 현재 마산시가 처한 환경이 어떤지, 마산시가 현재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에 대해 진단해보고자 한다.1. 근대 사회 이전의 마산시마산의 역사는 이미 고대사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신라 건국 이전 이른바 삼한 시대 당시 마산 지역에는 이른바 “골포국”이라는 소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골포국에는 신라 건국 이후 골포현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신라말기에는 최치원 선생이 한때 마산 지역에 은거한 바 있었는데 그분이 머물렀던 장소는 아직도 현재 마산시의 지명으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몽고 제국군이 한때 머물렀었으며 그 흔적으로 ‘몽고정’이라는 우물터가 남아 있다.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승전지가 마산이기기업 자본인 신세계 백화점에 흡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장들은 하나씩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즉 대한민국 건국 이후 마산시를 지탱시켜주던 기간산업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 설치되었던 마산수출자유지역 역시 외환위기 이후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또한 90년도에 설치되었던 자치구 아닌 구마저도 설치된 지 11년만인 2001년, 인구 미달로 폐지되기에 이른다. 즉 마산은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도시,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4. 최종 진단 - 마산의 어떤 점이 문제점인가?이렇게 살펴보았듯이 마산이라는 도시는 정치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투쟁을 열렬히 벌였었던 항일투쟁의 도시이며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공권력에 과감히 맞서 싸운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의 물결에 적극동참했던 산업의 도시이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은 그 위상이 점차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을 지키던 향토기업들은 문을 닫았고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인근 계획도시 창원, 수도 서울, 신흥산업도시 울산 등으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현재 마산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산시의 기간을 지탱시켜주었었던 기간산업들의 몰락, 이로 인한 생산성의 감소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도시인 스페인의 ‘빌바오’와도 유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III. 목표설정 - 마산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목표는?사실 이 연구서의 제목에서도 언급된 부분이기는 하지만 결국 이 연구서는 마산시가 현재 봉착한 위기 상황의 극복을 ‘문화행정’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즉 이전 장에서도 말한 빌바오의 경우에도 기간산업인 광산업의 몰락으로 인해 그 도시는 결국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하지만 시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의 협동으로 인해 그 도시는 다시금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그 도시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다름 아닌 ‘문화행정’이었다. 이렇듯 문화와 예술의 힘은 엄청난 것이어서 몰락 지경에 있는 도시를 이전업도시였으며, 그러한 기간 산업의 몰락으로 인해 한때 위기를 맞이했었다는 점 등은 빌바오와 마산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그런데 빌바오의 경우 ‘문화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문화행정의 힘으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내었으며 도시의 기간산업의 전환에도 성공하고 오히려 옛날의 영광(?) 이상의 엄청난 발전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누리고 있다.마산 역시도 빌바오와 마찬가지의 상황으로써 빌바오의 예를 참고로 하여 문화행정적인 방법을 통한 위기 극복을 목표로 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으로 본다. 즉 빌바오와 마찬가지로 국제화가 가능하면서도 특성화·차별화의 전략이 가능하고 또한 지속적인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면서, 문화거버넌스 구축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도 친숙하고 마산이라는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그러한 소재를 토대로 하여 아시아의 빌바오 효과 창출 도시로 다시금 일어서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IV. 대안탐색 - 마산시의 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나는 이번 마산의 발전 목표를 “아시아의 빌바오, 마산”으로 정했다. 즉 이번 장에서는 마산에서 이런 ‘빌바오 효과’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아시아의 빌바오인 마산을 건설하기 위해 세부적인 목표들은 무엇으로 해야 할 것인가를 주요 내용으로 다뤄보면서 마산의 ‘빌바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하여 간략하게 탐색해보기로 한다.1. 마산이 가지고 있는 문화 발전의 소재21세기 현재, 문화라는 것은 하나의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문화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산업발전의 중심축으로서 지식과 기술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게 되는 것이다.)물론 마산시 측에서도 문화·관광 육성의 필요성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1996년, 전국소극장축제를 마산국제연극제로 격상시켜서 개최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는 현재 사실상 폐업상태나 다름없는 돝섬해상유원지를 활용해서 마산가고파국화축제를 개최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축제로 육성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구 해양관광단지 조너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이점은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10년 이상 마산시에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로봇랜드 사업 등에 비해서는 친숙함을 이끌어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무엇보다도 ‘문신’ 선생 만큼의 인지도를 지닌 미술가가 경남 도내에서는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특성화의 측면에서도 유리하며 또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지역에서 각종 국제 조각 미술품 심포지엄 등에 출품하여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 등) 국제적으로도 그 인지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국제화’의 측면에서도 유리한 면이 있다.)즉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가지고 있는 소재 중에서 잠재력이 있는 소재를 재발견하고 유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도 좋은 방안인 것이다.V. 대안의 구체적 활용 방안 - 좋은 소재,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좋은 소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갈고 닦아서 활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문신 미술관은 미술가 문신 선생의 혼이 서려있으며 그 문화예술적 잠재력이 매우 뛰어난 소재로 마산의 문예부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을 지녔으나 지난 14년간 이 미술관에 대해서 마산시 측에서는 방관으로 일관했으며 급기야 개관 10년만인 2004년 5월, 문신 선생의 부인인 최성숙 여사는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내에 제2문신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매우 우수한 문화 콘텐츠 소재 하나를 활용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고스란히 타 지역으로 내어줘 버린 것이다.이렇듯 좋은 소재라도 반드시 이를 뒷받침하여 활용해주어야만 그 진가가 발휘되는 법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단순히 지어놓기만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고 단순방치만 해두었더라면 ‘빌바오 효과’라는 말은 애초에 이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번 장에서는 대안 탐색 과정에서 도출된 대안인 ‘문신미술관’을 마산의 문화발전, 마산시의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1. 문화 거버넌스 구축거버넌스라는 것은 21세기 행정의 전반에 대해서 것이다.
    사회과학| 2009.11.27| 14페이지| 1,500원| 조회(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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