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애니메이션이 왜 대중들에게 어필되고 그에 대한 영향은 무엇인가?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일본 애니메이션이란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인터넷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매니아에 한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 3단계 개방 이후 일본의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공식적으로 물보 터지 듯 들어왔다.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우리 사회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이나 뒷골목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거래등으로 인한 다소 편파적인 견해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의 63%를 점유하고 있는 기술적이나 작품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전체적으로 선진적인 애니메이션 문화라고 하나 급격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입은 우리 사회에 혼란을 가져다 주고 폭력과 선정적인 행위 등의 무분별한 수용을 가져왔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단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문화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는 상태에서의 일본애니메이션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일본은 1960~70년대의 고도경제성장을 겪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 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부터 매니아와 청소년 층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문화도 상업주의에 편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을 상품의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원조교제가 본격적으로 사회로 불거져 나올 때도 이때부터 이다. 또한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십대들의 친구관계 형성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른바 “오타구족”을 만들어 내었다.그럼 일본의 문화에 이어 본격적으로 일본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알아보자.일본 애니메이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1950년대 말부터이다. 1956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 도에이가 “동양의 디즈니?를 목표로 하여 회사를 설립한 후 2년만에 일본 최초의 장편인 백사편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효시로 1958년 일본과 동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1-2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정기적으로 제작 공개했다. 60년대에 들어섬에 따라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타고 각 가정에 TV가 바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TV의 보급은 애니메이션의 표현수단으로써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도라에몽 철완아톰, 내일의 조 등 훌륭한 걸작들이 만들어졌다.60년대가 애니메이션의 기본토대를 갖추는 시기였다면, 1970년대에는 그 토대를 바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한정되어 있던 소재들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창조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십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서 성인을 포함한 다양한 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장르를 창출했다. 이 시대의 주요 애니메이션으로는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미래소년 코난, 기동전사 건담 등이 있다.80년대 중반 이후 Jump 계열 애니메이션이 인기물결을 이루었다. 만화잡지로는 비교적 후발주자였던 Jump는 히트만화를 적극적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드래곤볼, 슬램덤크 등의 만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도 후지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었다. 이러한 80년대의 도약을 힘 입어 90년대 초반 Jump의 주간 판매량이 600만권을 넘어섰고 단행본 판매량이 1억권을 돌파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같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오늘날의 일본애니메이션 문화를 탄생시켰다.이러한 일본애니메이션 역사와 함께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언급할 때 빼 놓을 수 없는게 바로 오타구이다. 오타구는 팬, 매니아 그 다음 단계를 의미한다. 무언 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 것에만 열중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팬, 매니아와는 다른 그 분야의 전문성을 띄고 심지어 역사론을 펼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단절되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오타구라는 용어는 70년대부터 대두되었고 현재는 모든 사람들이 인식할 만큼 보편화 되었다. 오타구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기 보다는 가상곤강 속에서 자신만의 구역을 만들고 형성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발전 시켰으며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부정적으로만 비쳐지던 오타쿠도 일본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재평가 받기 시작하였다.그들은 자신만의 가치관 속에서 무언가에 열중하였고 조직과 사회보다는 자기자신을 즐길 줄 알았다. 오타구라는 부정적 용어가 90년대에 들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고찰 된 것도 관심있는 분야에 일인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오타구들 그 자신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오타구로는 에반게리온을 만든 감독 안노 히데야키를 예로 들 수 있다.탄탄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배경을 통해 애니메이션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문화개방
그도 평범한 삶을 원하였을까?[양들의 침묵, 한니발 라이징(양들의 침묵 시리즈 중 한니발 어린시절 담은 영화)]HANNIBAL HANNIVAL RISING사람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을까? 악하게 태어났을까?양들의 침묵을 본 후 문득 떠오른 물음이었다. 한니발 그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천재임과 동시에 아주 잔인한 살인마다. 살인을 하고 인육을 먹는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그는 몬스터라는 단어가 딱 맞는 남자이다.처음 영화 장면은 음침한 음악과 함께 FBI 실습생인 스탈링의 조깅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뛰며 가파른 산 속을 헤치며 나아간다. 이 장면은 앞으로 그녀가 겪게 될 사건들이 쉽지 않게 풀릴 것이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 하였다. 스털링이 수사를 위해 처음 독방에 갇혀 있는 정신과 의사이자 희대의 살인마인 한니발을 차음 만났을 때 그는 마치 그녀가 올 거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단정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냈다. “Good morning"이라는 그의 한마디에 나의 온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차라리 내가 예상했던 흉측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의 그였더라면 내가 느끼는 섬뜻함은 덜 했을텐데... 그의 용모와 태도는 너무도 단정했고 젠틀했다. 마치 예전에 문학시간에 배웠던 ”낯설게 하기“ 효과처럼 그의 단정하고 깔끔하면서 지적이기까지 한 첫 인상은 나에게 분명하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의 미소와 함께 비쳐진 눈빛에는 살기와 세상을 비웃는 듯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이야기는 내내 스털링과 한니발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추며 전개된다.이렇듯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인 FBI 훈련생과 잔인한 식인살인마는 버팔로빌이라는 연쇄살인범에 의해 만나게 되었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니발은 아주 조금씩... 스탈링이 지쳐있을 즈음 나지막한 힌트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 힌트로 스탈링은 버팔로빌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그는 버팔로 빌이라 불리는 잔인한 연쇄살인마의 정보와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스탈링에게 쉽게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상 그는 수사에 협조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명석한 두뇌의 스탈링에게 호감을 가져 단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길고 지루한 수용소 시간에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잠시의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게임 말이다. 이러한 극적 전개는 보고 있는 내내 영화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 사건에 점점 빠져 들게 만들었다.하지만, 버팔로빌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나는 다소 실망을 감출수 없었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버팔로빌의 철저하고 치밀한 범행 실행 장면이 영화속에서는 자세히 묘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나중에 어둠속에서 장전을 하지 않아 스탈링에게 당하는 버팔로빌의 최후의 장면은 아주 우스광스러웠다. 그렇게 주도 면밀하게 범행을 처리한 버팔로빌이 도대체 .. 왜 저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건지... “차라리 그가 아끼던 하얀 강아지를 이용한 마무리를 오히려 더 나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양들의 침묵은 전체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버팔로빌의 연쇄살인보다 스탈링과 한니발 렉터에게 초점을 맞추어 진행 되었다는게 더욱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버팔로빌이라는 존재는 단지 둘의 관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고 핵심적인 스토리는 한니발과 스탈링의 미묘한 관계에 있다고 본다. 둘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과 영화 곳곳에 상황에 맞는 음침하고 어두운 음악들로 인해 사건이 진행되어 갈수록 영화의 공포감과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스탈링은 다른 곳으로 호송되는 한니발에게 범인에 대하여 묻는다. 그리고 한니발은 대답한다. “그는 탐하는 거야. 그것이 그의 본질이야”라고..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고 끊임없이 자기가 같지 않은 것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고 살아간다. 연쇄살인범도 자기가 이룰 수 없는 가치.. 즉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을 탐함으로써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한니발이 말한 이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메아리 쳤다. 이 한마디는, 버팔로빌 뿐 아니라 한니발, 스탈링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의를 자아내는 말이기 때문이다.인간은 탐하는 존재라?..그럼 처음의 궁금증으로 돌아가 보자.사람은 과연 선할까? 악할까?한니발은 태어날 때부터 사악한 존재였을까? 양들의 침묵만으로는 그가 왜 이런 끔찍한 살인마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해답은 한니발 라이징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 단지 평범한 한 소년이었다. 아니 때 묻지 않고 순수한 꿈을 가진 어린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근데 왜 그는 양들의 침묵에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인물이 되어버렸을까? 그 해답은 그의 기억 저 편에 있는 끔찍한 그 날의 기억이다. 그 날 한니발의 여동생에게 있지 않았어야 할 차라리 존재자체를 부정할 만큼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 후 한니발은 항상 그 날을 떠올리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양들의 침묵에서 스탈링이 겪는 “양들의 울음”소리처럼.. 말이다. 어쨌든 그 후 한니발은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인 숙모 무라사키를 만난다. 그녀는 한니발라이징에서 한니발의 숙모이자 연인이자 친구이자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는 헌신적으로 한니발을 돌보았고 그의 범행마저도 그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은폐했다. 과연 그건 사랑이었을까? 나는 감히 아니라고 말하겠다. 한니발에 대한 그녀의 포옹은 분명 빗나갔고 오히려 한니발이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만드는 효시를 제공했다. 이러한 그녀의 한니발의 잘못에 대한 관대한 포옹은 그녀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녀의 부모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건으로 인해 모두 죽었다. 그녀의 이런 성장배경은 아마 자기도 모르는 그녀의 무의식속에 복수라는 단어를 깊게 심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복수의 대리만족을 위해 한니발을 대신 이용한 건 아닐까? 마치 그녀에게선 한니발은 한 마리 애완용뱀과 같았다고 본다. 그녀의 빗나간 사랑의 결과라고 할까.. 어쨌든 한니발은 동생을 한끼 식사로 먹었던 독일군들에게 복수를 성공하는데 그는 첫 번째 복수 도중 숲속에 난쟁이를 부른다. 동생이 좋아했던 노래인 “숲속에 난쟁이”를... 마치 이 복수로 동생의 원혼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그의 볼살을 구워먹는다. 복수는 다 끝냈으나.. 그는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는 이미 끔직한 연쇄 살인마가 되었고 배의 폭파와 함께 그는 숲속으로 사라진다. 그가 체포되지 않고 사라짐은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가 앞으로도 많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것과 많은 사건들을 몰고 다닐 거라는 .... 다소 위험한 상상 말이다.단연컨대 그는 결코 처음부터 악랄하고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2차대전이라는 배경속에 굶주린 독일군들... 아니 전쟁이라는 것을 만든 그 당시의 사회가 한니발이라는 살인마를 만든 것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사악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그 어느 누가 아이의 천진난만한 환한 미소를 보고 사악하다고 하겠는가? 한니발 같은 연쇄 식인 살인마는 개인의 기질문제 뿐만 아니라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불행하고 실패적인 창조물인 것이다.그 후 시간적 순서를 따라 보자면 한니발 라이징에서 양의 침묵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한니발은 계속적인 살인을 하고 보호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양의 침묵에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스탈링은 원하던 대로 일을 마무리 짓고 정직수사관이 되며 한니발은 계획했던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한니발은 스탈링에게 축하전화를 한다. 그리고 스탈링에게 묻는다. “양들이 울음은 그쳤는가? 클라리스..” 그랬다 식인살인마에 정신분석박사인 그는 그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왜 그렇게 이 사건을 풀고 싶어 하는지.. 스탈링은 어렸을 적 양들의 도살장면을 목격하고 양들을 도울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한다. 그러한 압박감은 스탈링에게 양들의 울음소리로 계속되고 있었다. 과연 캐더린의 목숨을 구한 후 밤마다 들려오는 양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침묵을 지켰는지는 스탈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음산한 음악과 한니발의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의 뒷모습은 이야기의 무한함을 제공한다. 그의 뒷모습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는 전화를 끊기 바로 직전 스탈링에게 “친구와의 저녁약속이 있다”고 하였고 이는 곧 친구의 죽음을 뜻하는 건지, 아니면 스털링에게 “유명인사와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스털링과의 앞으로 관계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건지 말이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여유가 함께 느껴졌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로 그는 느긋하게 천천히 걸으며 사라졌다. 마치 그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자신을 잡지 못 하는 것이라고 조롱이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