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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교육개론 ‘근대 영국소설에 나타난 성차와 계급의 기호로서의 중간계급 여성의 몸’의 요약문
    ‘근대 영국소설에 나타난 성차와 계급의 기호로서의 중간계급 여성의 몸’의 요약문이 글에서 필자는 근대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어떤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어떻게 남성의 몸과 다른 몸으로 태어나고, 이런 여성의 몸은 어떤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지 등의 문제를 당시 영국소설과의 연관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성차가 각인되는 여성의 몸17세기까지 여성의 몸은 남성과 근본적으로 같은 몸이지만 체열(body heat)의 부족 때문에 거대한 존재의 사슬에서 한 단계 낮게 위치한 존재로 정의되었었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적 쾌락의 주체로서 여겨졌다. 18세기 중엽이후 여성의 몸은 남성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여성의 몸은 성적욕망을 배제한 탈성화된 존재로 여겨지며 순결하고 정숙하며 연약하고 억제되고 우아한 몸으로 정의된다. 18세기, 19세기에 근대사회가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면서 여성들이 전례 없는 교육의 기회와 여가를 누리게 되고, 이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남성영역으로 여겨지던 영역으로 활동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뿐만 아니라 메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를 비롯한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천부인권론에 바탕을 둔 계몽주의 사상에 따라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여성들과 남성들 간의 전통적인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를 계속 정당화하고, 여성들을 그들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가정에 묶어놓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남성과 여성은 지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여성들의 고유한 장은 가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담론들이었다. 이런 담론은 당대의 품행지침서(conduct books)나, 소설, 의학서 등을 통해 구체화 된다. 품행지침서화 소설들은 연약하고, 감상적인 여성상을 생산해 낸다. 또한 남성들과 다른 몸으로서의 여성의 몸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들을 처방하며 이런 구체적인 지침들이 여성의 자아의 구조 속으로 병합되어 ‘여성성의 본질’로서 내면화될 수 있도록 한다.2. 계급적 지표로서의 여성의 몸복식코드, 훌륭한 악센트, 생활 스타일 등의 상징재화는 사회에 대한 “올바르고 정당한” 관점을 부과하고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적 역할을 한다. 중간계급 여성들의 가정적 여성상의 정숙함은 성적으로 방종하고 타락한 귀족계급 여성들의 몸이나 노동계급 여성의 거칠고 노동하는 몸과 대비를 이루면서 찬양될 때 중간계급의 헤게모니장악과 권력유지를 정당화 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당시 중간계급의 가정적 여성상이 구현하고 정의되는 여성의 몸은 일종이 육체자본으로서 상징재화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중산층 여성들은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근검과 절약 같은 덕목을 요구받는데 이러한 덕목의 훈련이 몸에 밴 여성은 자신의 욕구나 쾌락보다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맞추는 가정경제(domestic economy)를 잘 꾸려가는 관리인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과소비적 여성들의 이야기가 유능한 가정관리인의 여성과 대비되면서 소설에 자주 등장하여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중간계급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빅토리아조 시기의 여성의 몸은 계급을 운영하고 중간계급의 지위를 전시하는 하나의 기호가 된다. 그 예로서 중간계급의 우아함을 가장 잘 전시해 줄 수 있는 기회인 차 마시는 시간을 들 수 있다. 당시 많은 낭만주의 소설에서 차를 마시는 의식은 여성성, 우아함, 세련됨이라는 가치들과 연결되어 다 계급과 취향의 표지가 되었다. 이와 같은 문화적 무의식은 일상적인 습관과 실천에 의해 몸에 각인된 육체 자본이기 때문에 노동하는 육체로서 길들여진 하층계급이 이를 전취하고 의식적으로 흉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당시 하층계급의 몸과 구별되는 중산층 여성의 몸은 그 계급을 나타내는 기호이면서 동시에 이 계급의 권력을 유지하는 상징재화가 된다. 그야말로 말없이 이 계급의 지배의 정당성 확보를 도와주는 것이다.3. 영국 제국주의와 여성 몸의 식민지화18세기 중엽 이후 여성의 역할이 어머니로서의 역할로 부각됨에 따라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여성의 본성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며, 인구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어머니의 몸은 당대의 정부가 갖는 인구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연결된다. 당시에 인구문제가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노동력의 수급문제와 더불어 제국주의 건설에 따른 인력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자식을 생산하고 키워서 한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 할 어머니의 몸에 대한 중심적인 제유는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필수적인 어머니의 젖가슴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여러 담론들은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야 말로 여성의 본성을 따르는 어머니(a natural mother)이며, 자식에게 모유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시기에 모성은 수유하는 어머니로 정의되었고, 모유에 대한 수 없이 많은 공감과 감상적인 찬양들이 여러 담론들을 뒤덮었다. 이와 같은 담론들이 폭증함에 따라, 소설들에서도 자식에게 수유를 거부하는 어머니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 어머니로 나타난다. 또 이전에 남성의 타락한 유혹자로 여겨졌던 이브(Eve)는 낭만주의시기에 이르면 수유하는 어머니로서의 이브에게 자리를 내 준다. 이브의 이미지가 자애로운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로 바뀐 것은 식민지 건설을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영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여성의 몸의 식민화를 담지하고 있다. 모유에 과도한 감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당대의 인구문제와 제국주의와의 연결 하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15.08.26| 3페이지| 1,5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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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문화의 이해, 미국문화의 이해 : 내안의 미국 이미지 알기 (유럽문화와 상대적인 미국 문화, 이미지에 대한 레포트)
    미국, 가려진 진실을 찾아서- 을 보고나서기회의 땅이자 부와 풍요가 넘치며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나라, 미국. 미국은 그동안 시대를 앞서 나가는,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선진 국가로 내안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나는 그러한 미국을 동경하며 꿈꿔왔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그래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미국의 참모습일까? 우리가 미국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수업시간에 본 은 4권의 책을 토대로 나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소리 없이 자리 잡은 미국의 이미지와 그것과 상반되는 미국의 실체에 대하여 비교?분석한다. 나아가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대안과 우리나라의 정체성에 대하여 토론한다.내가 생각하던 미국은 노력한 만큼 그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국가였다. 내 노력에 따라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홍은택의 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와 미국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냈다. 열심히만 하면 땀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던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지만, 미국인이 가장 잘사는 국민은 아니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한, 경제적으로 매우 불평등한 나라이다.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적 세계화는 미국의 기업에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익을 남겼지만, 이는 미국 내의 중산층을 무너뜨렸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시켰다. 즉,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는 결국 미국인 자신에게 타격을 입힌 것이다. 다국적 기업에 밀려 농토를 버리고 떠나는 농민, 탈산업화로 일자리가 사라져 피폐해진 주,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저임금 노동자와 구조가 모순된 기업이 낳은 자본주의의 폐해. 부의 상징인 미국 사회의 이면에는 거대한 자본주의에 눌려 허덕이는 소외된 미국의 노동계층이 있었다.의 미국은 내가 알고 있던 미국과 너무나도 달라서 내가 미국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 저자 지아우린 시다르와 메릴 윈 데이비스는 미국에 대하여 가장 모르는 이는 미국의 자국인이라고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왜 미국을 증오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미국의 나르시시즘을 제시했다. 나르시시즘은 객관성을 잃게 하고 자신을 오만하게 만든다. 더욱이 나르시시즘과 권력이 결합했을 때는 굉장히 위험해진다. 이중 잣대를 이용해 남의 문제에는 냉정해지고 나의 문제에는 관대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원한 승자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영원한 승자는 미국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국의 나르시시즘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참여,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지지 등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문화와 영어가 가져오는 한국문화와 한국어의 파괴로 반미감정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왜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식민의식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아직까지도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치에서부터 경제?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이냐시오 라모네는 그의 책 에서 무의식적으로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우리를 경고한다.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 광고 등을 통하여 미국의 제국주의 코드와 이미지를 우리에게 심어놓았다. 그동안 무심코 보아왔던 영상매체들은 사실 미국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우리에게 내면화 시키는 도구이자 수단이었던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하는 이는 언제나 미국인이다.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고 안정을 되찾는 역할 역시 언제나 미국인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주의적 제국의 이미지를 막대한 자본과 기술로 만든 영화를 통해 세계질서의 균형자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팝송, 드라마와 같은 영상매체는 특히 젊은 층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 젊은 층이 즐기는 문화를 통해 미국은 젊은 층의 정신과 의식 또한 미국화 시키려한다. 미국이 문화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사회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 문화의 침략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가 파괴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문화는 한 나라의 정신 그리고 민족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제러미 리프킨은 을 통하여 아메리칸 드림의 대안으로 유러피언 드림을 제시한다. 물질적 부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그 한계에 다다라 더 이상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연대와 복지 응집력을,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환경보존을 위한 지속가능한 개발을 강조하는 유럽피언 드림은 국제 사회에서의 일방주의와 비윤리적인 자본주의로 비난받는 미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메리칸 드림의 부족한 점을 메우고 유럽의 장점을 가미할 때 유럽피언 드림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비전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대안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인문/어학| 2015.08.26| 2페이지| 1,500원| 조회(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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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삶을 통해 본 여성의 글쓰기(영화 실비아를 보고나서)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삶을 통해 본 여성의 글쓰기-영화 『실비아(Sylvia)』를 보고 나서미국 출신의 여성 작가 실비아 플라스는 ‘위대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야심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훌륭한 시를 쓰기위해 신선한 ‘소재’와 충분한 ‘시간’을 갈망했고,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그녀는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시를 써다. 그녀에게 ‘시’란 존재의 이유이자 그녀의 삶 전부였다. 그녀가 운명의 남자 테드 휴즈와 만나 격렬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시’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는 둘 다 시인 지망생이었으며 동반문인이었다.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 두 사람은 마침내 1956년 6월 결혼식을 치르고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의 인생의 앞날에는 오직 희망만이 가득 차 보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시점에서 남편 테드 휴즈는 외도를 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실비아 플라스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가스 흡입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살을 한다.영화 『실비아』는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의 빗나가는 사랑과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나는 영화 속 그녀의 삶을 통해 여성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이 두 사람은 시에 대한 강한 열정을 지닌 부부로 시를 쓰는데 있어서 서로 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이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달랐으며,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성차(gender difference)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화에서 실비아 플라스는 “당신은 자전거 산책을 나가도 시를 써오지만, 나는 시를 쓰려고 해도 빵밖에 구울 수 없어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토로한다. 결혼 한 후에도 그녀의 남편 테드 휴즈는 별 문제 없이 시 집필을 계속하지만, 그녀는 집안일에 시달리다 결국 시상을 떠올리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휴즈 이 두 사람은 ‘시인’이라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비아 플라스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로 인해 시작(詩作)에 모든 열정과 의지를 쏟아 부을 수 있었던 테드 휴즈의 삶과 달리, 실비아 플라스의 삶에는 ‘시’를 위한 온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날이 밝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아이들이 깨어날 시간까지 시작(詩作)을 위한 그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실비아 플라스는 시인으로서 계속해서 성공해나가는 남편과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상반된 모습에 괴로워한다. 살림과 육아, 남편과 같은 시인으로서 느끼는 열등감으로 삶에 지쳐버린 그녀는 조금씩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 실비아 플라스의 “내가 그녀를 만들어 냈어요.”라는 대사는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집요하고 집착적이었는지 말해준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남편 테드 휴즈가 아내의 지쳐버린 삶과 억눌려 있는 시작(詩作) 욕망을 그동안 얼마나 모른 척 해왔었는지 알려준다. “아이를 키우며 시 쓰기가 힘들지 않냐?” 라는 말에 “이 집에 진짜 시인은 저 사람(테드 휴즈) 뿐이 예요.” 라며 집안일과 육아로 지쳐 시적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냉소적으로 말하는 실비아 플라스를 통해 우리는 동시대임에도 남성시인(테드 휴즈)과 여성시인(실비아 플라스)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잘 알 수 있다.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실비아 플라스는 테드 휴즈와 헤어지고 그에 대한 슬픔과 배신감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고 가까운 바닷가로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곁에 있는 어린 아이들 때문에 자살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결혼 전부터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었지만, 지금은 ‘어머니’라는 이름 때문에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정신적인 불안함을 보이면서도 마치 광기와 같은 자신의 감정을 문학으로서 표출해 나간다. 이 시기에 그녀는 창작 활동에 매진하여 다작의 시와 소설을 완성한다. 그러나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실비아 플라스는 그녀의 마지막 시집 ‘Ariel'을 책상 위에 남겨둔 채 결국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하게 된다.
    독후감/창작| 2015.08.26| 2페이지| 1,000원| 조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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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의 이해-이슬람 문화에 대해
    Ⅰ. 서론오늘날 세계는 9.11테러와 오사마 빈라덴,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으로 인해 테러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있다. 테러를 일으킨 이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이슬람교’는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전 세계인의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다. 각종언론매체는 이슬람과 관련된 뉴스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뉴스의 대다수는 이슬람에 대한 사회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몰고 가기 위한 왜곡되고 이해결여된 것들로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전 세계 12억 인구가 믿고 있는 방대한 문화권인 이슬람교. 서구의 눈에서 바라본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종교의 시각에서 벗어나 이슬람교의 참된 교리와 진실에 대하여 알아보자.Ⅱ. 본론이슬람교는 서남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 북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문화권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너무나도 큰 거대한 지역과 거대한 인구를 갖고 있는 이슬람교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0여년 경 전 무함마드(Muhammad, 마호메트)가 천사 가브리엘에게 받은 계시로부터 그 장구한 역사를 시작한다.⑴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척박한 불모지에 간간히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었던 아라비아에서 아랍사람들은 가축과 살아남기 위해 유목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기본단위는 부족 집단으로 아랍사람들은 철저한 부족생활을 했다. 부족생활은 같은 부족원끼리 단결해 다른 부족의 공격과 약탈에 맞서 싸우는데 유리했다. 그러나 모든 아랍인들이 유목생활을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무함마드가 태어날 즈음 그 전성기가 이미 지나있었기는 하였지만 풍요로운 아라비아로 알려진 아라비아 남부는 그 부로 명성이 높았고 작은 도시를 이루어 장사를 하는 아랍인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는 무함마드가 태어난 ‘메카’였다.메카는 무역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카바 성전’이 위치해 있어 많은 상인들과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카바신전은 선지자 아브라함이 유일신을 예배하기 위해 지은 신전 이었지만 무함마드 시대에 카바는 360가단을 수출하는 대상들이 총 집결하는 곳이었다.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은 ‘알라’라는 신을 섬겼으나 이슬람 이전의 ‘알라’는 이슬람교의 ‘알라’와는 전혀 달랐다. 이슬람 이전의 알라는 창조신이었지만 오랜 전통 속에 발견되는 ‘오래된 신’으로 알려졌을 뿐, 아랍인들의 예배 대상은 아니었다. 이슬람교도들이 자힐리아(무지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의 비문이나 문학작품을 근거로 판단할 때, 당시 아랍인들의 삶 속에서 경건한 신앙심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⑵ 이슬람교의 선지자(창시자?), 무함마드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 경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8세가 되었을 때 조부마저 세상을 떠나 쿠라이시 부족 일파의 장로였던 삼촌 아부 탈립 밑에서 성장했다. 무함마드는 24세가 될 때까지 삼촌의 사업을 맡아 경영하면서,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의 ‘알-아민(al-Amin)’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그는 상술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고 이는 소문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당시 메카에서 대상 무역의 가장 큰 재력가로 알려진 '하디자(Khadija)' 역시 그 소문을 들었다. 서기 595년 그녀는 무함마드에게 대리무역을 위탁하였고, 제의를 수락한 그는 그녀가 만족할 정도로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하디자는 무함마드에게 곧 청혼을 했고 무함마드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디자는 무함마드보다 15살이나 많은 40세의 여인이었다. 하디자가 살아있는 동안 무함마드는 다른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서구 사회에 널리 퍼진 편견이 근거 없음을 말해준다. 서구에서는 무함마드가 후에 여러 명의 부인을 둔 사실을 들어 그가 극히 호색적인 인물로 간주했던 것이다.메카는 무역과 교육 그리고 순례자들로 부를 이루어 번영한 도시였지만 각 부족간의 갈등으로 가존의 부족 사회체제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도시의 부는 일부가 독점하고 있었고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자가 날로 늘어갔다. 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모세가 예수와 같이 개역을 외치는 예언자가 나타나 새로운 영적그는 처음으로 천사 가브리엘을 보게 된다. 그가 동굴에서 잠들어 있을 때 천사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무함마드에게 나타난 것이다. 천사는 그에게 “읽으라”고 명령하였다. 무함마드가 자신은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고 하며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천사가 답하였다.이것이 무함마드가 받은 첫 번째 계시였으며, 그가 이것이 그에게 신의 소명을 전하려는 천사에 의한 것임을 믿기까지는 약간의 시일이 필요했다. 이러한 체험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된 사람은 그의 충실한 아내인 하디자였다.서기 610년 41세 무함마드는 어느 날 갑자기 천사의 방문을 받고 신의 사도가 되라는 명령을 받았다. 차츰 그는 신이 자신을 예수나 모세처럼 예언자로 쓰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일한 신 알라를 섬겨야 한다는 진리를 세상에 알리라는 소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무함마드는 이후 계속된 계시를 기억해두고 암송하고 책으로 써내었다. 신의 성스러운 말씀이라는 뜻의 ‘코란(Quran)'이 바로 그것이다.처음에는 무함마드의 아내, 친척 등 가까운 이들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공동체 전체에 새로운 종교를 공공연히 포교하기 시작하자 특히 유력한 부족이었던 쿠라이시는 그들을 적대하고 억압하였다. 신의 유일성이라는 이슬람의 핵심 메시지는 다신교에 정면으로 위배되었으며, 무함마드와의 메시지와 행동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협하고 뒤엎으려는 것처럼 비쳤다. 이슬람교로 개종한자들은 육체적으로 시달리고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하여 죽기까지 했다. 서기 616년 추종자들이 박해받는 모습을 보다 못한 무함마드는, 그들 중 몇몇에게 그리스도교 국가인 아비시니아로 이주하라고 조언한다.메카에 남아있는 무함마드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슬람교도들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물건을 사고팔거나 결혼하지도 않았다. 서기 619년 무함마드의 아내인 하디자와 삼촌인 아부 탈립이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서기 620년 어느 날 밤 마호메트는 다시 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메카에서 박해는 계속되었고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다녔다. 고대 메카에서 북쪽으로 30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야스리브는 풍요로운 오아시스로 인해 물이 풍부하고 곡식이 잘 자라는 살기 좋은 곳이었으나 다른 부족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서기 621년 야스리브에서 메카의 카바신전으로 순례를 온 야스리브 부족 남자 6명은 무함마드의 설명에 감동받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이어 자신들의 도시 야스리브로 와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청한다. 무함마드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슬람교 집단이 예전에 살던 도시를 떠나면서 ‘히즈라(Hijra)’, 곧 메카에서의 이주가 시작되었다.무함마드가 자신들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면 나중에 경쟁부족의 지도자가 되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투라이시 부족 장로들은 무함마드가 새로운 땅에 가기 전에 처치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무함마드는 서둘러 메카를 떠난다. 히즈라가 이슬람 공동체의 진정한 출발이기 때문에 이슬람력을 히즈라력 이라고도 부른다.무함마드는 야스리브에 도착하여 최초의 이슬람사원을 지었다. 이때부터 야스리브는 예언자의 도시라는 뜻의 ‘메디나’로 부르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종교적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하나의 공동체적 사회를 만들었고 이는 혈연을 초월한 이상적인 공동체였다. 새로운 사회를 더욱 결집시키기 위해 무함마드는 여러 부족과 씨족에서 도합 11명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메카시절부터 알라신의 계시는 신도들에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상기위해서는 투쟁도 불사하는 것이었다. 메디나에서 예배방향이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바뀌는 것은 기독교 및 유대교와의 결별을 보여준다. 이로써 메카의 정복은 불가피한 과제가 된 셈이다. 이주를 한지 8년이 되던 해, 무함마드는 자신의 고향으로 개선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무함마드의 승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메카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군대를 하고 돌아온 후 얼마 있지 않아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신에 계시를 전하는 인간일 뿐 신성인이 아니다. 무함마드 자신도 자신을 신격화 하거나 숭배하는 행위를 금하며 오직 ‘알라’ 만이 숭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서구는 이슬람교를 그릇된 교리, 즉 이단으로 취급하여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역시 이단자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랍의 대언자로서 이단자가 아닌 ‘합리적인 종교’의 창시자이다.⑶ 신의 성스러운 말씀, 코란이슬람의 근본은 코란(Quran)이다. 코란은 무함마드가 받은 신의 계시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코란을 낭송하고 암송하는 것은 이슬람교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행위이다. 이슬람 교리에 의하면 코란의 문체는 모방이 불가능하고, 그 속에 담긴 힘과 아름다움은 어떠한 사람도 흉내 낼 수가 없다. 코란은 14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삭제되거나 철자하나 추가되는 등 수정되지 않고 원본 그대로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서기 610년 당시의 코란과 단 한 글자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코란은 1천 4백 년 동안 한번도 개정되지 않은 한나라의 헌법의 역할뿐만 아니라 경제, 예술, 윤리와 도덕 등 인간생활을 규제하고 있는 일생교본(一生敎本)이라 할 수 있다.⑷ 이슬람과 서구이슬람과 서구세계의 충돌의 역사는 길고도 복잡하다.-십자군 전쟁이슬람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기독교 세계에 세 가지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지 6백 년이 지난 후에 아랍인 선지자에게 새로운 계시가 내려졌다면, 도대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이슬람의 교리 안에는 기독교 신앙을 일부분 인정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슬람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째로 유럽의 경계에 이슬람의 강력한 군사력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셋째로 특히 압바스 왕조 이후, 이슬람 문명이 눈부신 학문적 업적을 이룩하면서 지적인 차원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이슬람이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유럽은 다.
    인문/어학| 2015.08.26| 5페이지| 1,5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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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미소설] Virginia Woolf (버지니아 울프) 작가 소개 및 작품 소개 레포트
    Virginia Woolf과 목 명담당교수님제 출 일제 출 자◆ 목 차 ◆Ⅰ. Virginia Woolf의 생애Ⅱ. Virginia Woolf의 연보Ⅲ. Virginia Woolf의 작품ⅰ. 작품 연보ⅱ. 작품 경향 및 특징ⅲ. 대표작① 출항 ② 댈러웨이 부인③ 등대로 ④ 올란도⑤ 자기만의 방? 참고자료Ⅰ. Virginia Woolf의 생애▲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는 철학가, 비평가, 여성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결혼 전 이름은 아들린 버지니아 스테판이며, 그녀는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아버지 레슬리 스티븐과 함께 버지니아의 부모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지식인이었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런던에서도 예술적인 재능으로 이름이 높은 패틀 가(家)의 일곱 자매 중 한명이었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저명한 학자로 《영국 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자녀 셋 딸린 변호사의 미망인이었던 줄리아 덕워스와 재혼해 자녀를 넷(언니 바네사, 오빠 토비, 버지니아, 남동생 에이드리언)이나 더 낳았는데 그 중 셋째가 바로 버지니아이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자녀들도 한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버지니아는 스텔라 덕워스와는 사이가 각별했다. 버지니아는 빅토리아조 최고의 지성(知性)들이 모인 환경 속에서 주로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서재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처음에는 읽어야 될 책을 지정받아 읽었지만 나중에는 원하는 대로 읽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가 세인트 에이브스의 별장에서 보낸 여름철 경험은 그녀를 바다와 밀접하게 만들었다. 이 별장은 나중에 《등대로》의 무대가 된다.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로, 버지니아의 부모와 형제들으며, 그 시기에 활동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논했다. 화가인 로저 프라이와 던컨 벨,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도 이 그룹의 일원이었다. 버지니아는 이렇게 주변의 사상가와 작가, 그리고 화다 등과 더불어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캐서린 맨스필드를 좋아하고 그녀의 글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레너드 울프와 함께 T. S. 엘리엇을 비롯한 저명한 작가들을 별장으로 자주 초대했고, 리튼 스트래치 같은 위대한 작가나 사상가들과 찍은 사진이 많이 남아있다.▲ 버지니아와 비타 버지니아는 1912년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다. 울프 부부는 호가스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출판했고, 가족과 친구들을 경영에 참여시켰다.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는 확고한 지적 자아를 가진 부부로, 둘 다 커다란 자유의 여지를 필요로 했다. 결혼 첫 해에는 레너드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얘깃거리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점 때문에 그가 버지니아와 어울리지 않는 짝으로 여겨졌다. 버지니아가 1915년에 여러 차례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면서 레너드는 그녀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버지니아를 ‘환자로 만들었다.’ 버지니아의 편지와 일기에서는 자식이 없다는 자괴감, 남편의 통제, 그리고 신경쇠약과 정신착란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상태에 대한 반응과 고통스런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다.버지니아의 혁신적인 소설인 《댈러웨이 부인》은 1922년부터 1924년까지 집필됐는데, 런던의 생활상, 전쟁 이후의 혼란과 아픔, 그리고 즐거움을 힘 있게 그려냈다. 1925년에는 평생 서재로 사용한 몽크스 하우스에서 《등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녀는 부모님의 삶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탐구하고 표현해내면서 정신분석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이 시기를 전후로 버지니아 울프는 비타 색빌­웨스트를 만나 차츰 사랑에 빠진다. 비타와 그녀의 남편인 해럴드 니콜슨은 모두 글을 썼고, 결혼 제도에 대한 대안적인 사고를 공공연히 밝혔다. ‘런던을 통틀어서 결혼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혼생활, 사랑보다는 우정이라고 해야 더욱 적절할 법한 특별한 결혼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남성과 결혼과 아기에 대한 겹겹의 혐오감에도 불구, 버지니아는 비교적 결혼생활을 잘 견뎠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지속 된 정신질환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레너드는 생계수단 겸 아내를 위한 소일거리를 마련해주고자 수동식 인쇄기를 구입해 출판사를 차린다. 버지니아의 작품 대부분과 T.S 엘리엇의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이곳에서 출간되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울프 부부의 삶에는 점차 암운이 덮이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침공은 유태인인 레나드에게 잠재적인 위협이었으며, 시골친척집으로 대피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시의 불편과 고통은 버지니아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했다. 다시금 자신이 미쳐가고 있음을 감지한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여보, 나는 꼭 미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무슨 말소리가 들리고 집필에 정신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생전의 나의 행복은 모두 당신의 덕이었어요. 당신은 너무나 착한 남편이에요. 나는 이렇게 살면서 당신의 여생을 손상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슬이 아직도 촉촉한 초원을 지팡이를 들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강가로 나가서 외투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갔다. 그녀의 시체는 2주 후에야 발견되었다.Ⅱ. Virginia Woolf의 연보1882년 1월 25일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 게이트에서 문학비평가인 레슬리 스티븐과 줄리아 덕워스 사이에서 태어남.1895년어머니 사망. 열세 살이었던 버지니아는 큰 충격을 받아서 이 해 여름에 첫 신경쇠약 증세를 보임. 아버지의 서재와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1899년오빠인 토비가 캠브리지에 입학하면서 리튼 스트래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등과 교우하게 됨.1904년아버지 사망. 두 번째 신경쇠약 증세가 나타나고, 『가디언』에 첫 서평 게재.1906년오빠 토비 사망.1907년블룸즈버리를 중심으로 언니 내외와 동생 에이41년《막간 Between the Acts》버지니아 울프는 주로 소설이 유명하지만 단편과 평론도 많이 썼고, 이를 통해 여성과 글쓰기,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뤘다. 초기의 작품을 살펴보면 나중에 발표되어 더 많이 알려진 소설을 보다 깊이 이해할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울프의 대표작인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는 소설의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ⅱ. 작품의 경향 및 특징◆ 급진적인 성향: 소설의 전통적인 관습에 도전하는 울프의 노력은 현재의 기준으로도 급진적이라고 할 만하다. 울프는 플롯에 얽매이기보다 사건을 따라가며 재창조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드러낸다. 여성의 인생, 그리고 성이나 계급, 또는 경제력에 좌우되는 경험의 차이를 간파한 울프의 인식은 오늘날에도 대단히 유효하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지역과 인종, 계급, 성 그리고 경제력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문제와 불평등을 보다 뚜렷이 이해할 수 있으며, 문화적인 차이와 표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일단 그 결을 느끼고 나면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의 섬세함과 정확함,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생생하다 못 해 때론 심술궂을 만큼 예리하게 읽어내는 통찰력에 매료되어 왜 이걸 그토록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의아해질 것이다.◆ 내적 독백(Interior Monologue): 내적 독백이란 머릿속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로 이것은 생각의 흐름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문장은 대개 ‘나는…….’으로 시작하며, 어떤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주석으로 볼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의 구두점 하나 없이 수천 행을 계속하는 몰리 블룸(Molly Bloom)의 독백은 가장 많이 인용 되는 내적 독백의 유명한 예이다. 그러나 울프에 있어서의 내적 독백은 조이스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조이스의 내적 독백이 주로 1인칭을 주인공으로 하여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 구성과 독창적으로 교묘히 배합한의 삶에서 ‘페미니즘’은 항상 핵심적인 화두였으며, 그녀의 이러한 여성론적 입장은 후기로 가면서 좀 더 분명해진다. 이런 경향을 가장 먼저 보여준 산문집은 바로 《자기만의 방》이라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억압을 당해왔으며 부엌의 살림살이와 육아 그리고 침실에만 갇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만큼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의 환경과 교육이 그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을 막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진 누이, 이를테면 주디스라 불리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당연히 온갖 시련과 압박 끝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셰익스피어처럼 성공하기는커녕 마녀나 광인으로 비난과 핍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요컨대 그녀는 여성들에게 동등한 교육기회와 자기발전을 위한 여가를 제공하고, 여성들을 향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였다. 좀 더 실질적으로, 이 책에서 그녀는 여성 작가들이 직면한 성적, 사회적 제약과 억압적 상황을 다루면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충분한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역설한다.Ⅳ. 대표작① 출항(1915)《출항》은 울프의 처녀작으로 후기 빅토리아 시대와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부유한 중산층의 젊은 여성, 어떻게 보면 울프와 비슷한 사람의 일상을 통찰력 있게 그려 보인다. 사실상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울프의 삶을 허구적으로 표현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어떤 행위의 중간에 시작해서 깔끔한 마무리를 하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 레이첼이라는 여성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스토리 라인으로 삼아, 내면의 감정과 상징적인 분위기의 시적 표현이 어우러진다.주인공인 레이첼 빈레이스는 젊은 여성으로, 아버지의 배를 타고 남미로 여행을 떠난다. 표면적으로는 그녀의 여행과 성장, 사랑과 성의 발견, 그리고 배를 타고 정글에 들어갔다가 열병에 걸려 죽게 되는 이야기다한다.
    인문/어학| 2014.05.04| 11페이지| 2,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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