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의 교육사상목차 생애 듀이의 교육사상의 이론적 배경 교육사상 듀이의 교육관 듀이의 교육 방법 듀이의 실험학교 (' 듀이스쿨 ') 듀이가 현대사회교육에 주는 의미Ⅰ. 생애 (John Dewey. 1859.10.20~1952.6.1 ) 1859 년 미국 버몬트주의 벌링턴에서 태어남 15 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 벌링턴 시에 있었던 버몬트 대학에 입학하여 이곳에서 그리스어 , 라틴어 , 수학 , 자연과학을 배움 졸업 후 한동안 펜실베니아의 고등학교에서 라틴어 , 대수 , 자연과학을 가르쳤으며 , 또 초등학교 교사로도 재직 1882 년에 존스 흡킨스 대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하여 모리스 , 스탠리 홀 등의 교수로부터 철학 , 심리학 등을 배움 1884 년 모리스교수와의 인연으로 미시간 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됨 1894 년 35 세의 나이에 시카고 대학의 철학 , 심리학 , 교육학과의 학과장이 됨 1885 년 시카고대학 부임 1896 년 실험학교를 설립 1899 년 학교와 사회 저술 1899~1900 년에 미국심리학회의 회장으로 당선 1902 년 파커 사망 후 , 시카고대학교 사범대학 학장으로 부임 1915 년 미국대학교수협의회의 제 1 대 회장으로 당선 1916 년 민주주의와 교육 저술 1930 년 이후에는 컬럼비아대학 명예교수가 됨 그 후 그는 20 년이 넘도록 교육학 , 미학 , 윤리학 , 심리학 , 역사학 , 정치학 , 철학의 모든 영 역에 걸쳐 저작활동을 함II. 듀이의 교육사상의 이론적 배경 실용주의 (pragmatism) 19 세기 후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 실제 결과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철학 사상 . 행동을 중시하며 ,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 - 내용보다는 방법을 강조 → 듀이의 반성적인 사고 : 방법적으로 회의하고 , 탐구하고 , 실험하고 , 시험하고 가설을 세운다 . 철학은 직접적 해결이 아닌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 그래서 듀이의 철학을 도구주의라고 한다 . 듀이에게 있어서는 과학적 방법이다 . 그것은 갈등과 혼란에 직면하여 지성의 작용이 필요한 지성적 방법이다 . 결과보다도 과정 , 동적인 성격 , 선천적이기 보다는 후천적이고 가설적이고 생성적이며 실증적이다 .II. 듀이의 교육사상의 이론적 배경 계속일원화 ‘ 이원론 ’ 을 배격하고 ‘ 계속일원화 ’ 의 원리를 주장 ‘ 이원론 ’ 의 배격을 통한 ‘ 계속일원화 ’ 의 원리는 ‘ 조화의 원리 ’ , ‘ 균형의 원리 ’ 를 수반 .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반대개념의 연속성을 강조 . 무한과 유한 , 개인과 사회 , 인간과 자연 , 이론과 실천 , 여가와 노동 , 성공과 실패와 같은 개념들은 반대되는 개념 같으나 그 관계는 분리 ․ 고정된 것이 아니고 동시적이고 연속선상에 서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 . → 궁극적 목표는 조화와 균형의 가치II. 듀이의 교육사상의 이론적 배경 변화와 성장 듀이의 철학에서 ‘ 변화 ’ 는 성장의 조건이다 . 이런 변화가 보장된 사회는 개방된 사회이며 , 권위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과거의 가치에 제한되거나 만족하지 않고 더 좋게 되려고 움직이는 성장하는 사회이다 . 이것이 대화와 협조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가지는 민주사회이다 .Ⅲ. 교육사상 실용주의 교육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 경험 ' 에 가치를 두고 18 세기 퍼스에 의해 주장되었던 ' 프래그마티즘 (Pragmatism- 활동 , 실행 , 실천 ) 을 발전시킴 ' 경험 ' 은 의식상태보다는 행동 , 기능 , 습관 , 적응을 의미하며 , 그것은 유기체와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의미 결과보다는 과정 , 동적인 성격 , 선척적이기 보다는 후천적이고 가설적이고 생성적이며 실증적임Ⅲ. 교육사상 진보주의 교육 ( 아동중심교육 ) 모든 아동 , 학생들에게 자연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 교육은 활동적이어야 하며 , 또한 아동 , 학생의 흥미와 관련되어 있어야만 한다 . 교육은 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 교육과정은 아동 , 학생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것이어야 하며 , 결코 교수하기 위하여 만든 교재를 토대로 해서는 안 된다 . 교사의 역할은 아동 , 학생을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충고하는 것이다 . 학교는 오히려 협동을 장려해야 한다 . 아동 발달이란 단지 학교 성적뿐이 아니고 , 그의 육체적 , 지적 , 도덕적 , 사회적 발달을 내포 하고 있으며 ,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기록하여 , 지도의 중점을 아동 한 사람의 인간 전체적 발달에 두어야 한다 . 아동의 육체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에 유의하여 교육의 제 1 목표를 건강 증진에 두어야 한다 . 지식에만 편중된 , 교사의 활동으로 주도되는 타율적 학습이 아닌 아동의 스스로가 학습의 동 기와 방법상의 흥미와 경험이 중심이 되는 자율적 학습이 되어야 한다 .Ⅳ. 듀이의 교육관 교육은 생활이다 교육은 생활을 준비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 교육은 생의 시초부터 생의 종말까지 계속되는 과정이며 학교 안에서 , 밖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다 . 교육은 성장이다 현재 생활의 아동이 미래 생활의 아동으로 성장할 때 위대한 교육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 이다 . 사람은 어려서부터 연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므로 그 과정이 곧 교육의 과정이다 . 교육은 계속적인 경험의 재구성이다 교육은 경험의 의미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 뒤따르는 경험을 지도하는 힘을 증가시키는 경험의 재구성 또는 재조직인 것이다 . 경험의 재구성 또는 재조직 , 경험의 성장 또는 생활의 성장을 뜻하며 , 그것은 생활체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인 동시에 교육이다 .Ⅳ. 듀이의 교육관 교육은 사회화 과정이다 교육이란 아동을 사회화하는 작용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사회에 순응하고 그 사회 향상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며 , 이러한 작용에 의하여 인간은 생물에서 사회적인 존재로 육성되고 , 사회도 영속적인 발전을 기하게 된다고 하였다 . 이러한 교육은 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한 것이어야 하는데 , 교육이 성장이고 생활이라면 그것은 곧 사회집단 안에 있어서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학교는 민주사회가 되어야 하고 그 사회 안에서 피교육자는 자연스럽게 민주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며 , 훌륭한 공민의 자격을 가지고 성인으로 성장 발달해야 한다고 보았다 .Ⅴ. 듀이의 교육 방법 암기식 교육을 버리고 능동적 탐구학습을 발전 지성이나 사고는 현실적 정서로부터 발달하는 것인데 , 종래의 교육방법은 학생 자신들이 처해 있는 정서로부터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 여기에서 Dewey 의 교육 방법은 탐구학습과 동시에 학생 자신들이 처해 있는 정서로부터 문제를 파악하여 능동적인 학습지도의 형식을 취하였다 . - 학습지도에 있어 Dewey 의 5 단계 문제해결과정 제 1 단계 : 문제에 직면한다 . 제 2 단계 : 문제를 명확하게 확인한다 . 제 3 단계 : 문제해결의 계획을 세운다 . 제 4 단계 : 자료를 수집하고 예정된 계획을 전개시킨다 . 제 5 단계 : 결과를 검증하여 확실한 해결에 도달케 하는 것이다 .Ⅴ. 듀이의 교육 방법 실험적 , 과학적 태도를 중시 인간문제는 과학적 , 객관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인간문제를 과학적 , 객관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가치로서 선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 이러한 가치는 권위에 의하여 인간에게 과하여져서는 안 되고 객관적 증거에 기초한 자유로운 논의를 거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Ⅴ. 듀이의 교육 방법 아동의 흥미가 중심이 된다 . Dewey 의 교육원리로서의 흥미는 교육의 방법을 재구성하는데 사용되어질 수 있고 , 이 원 리를 교육방법에 적용시킴으로 해서 교육을 구할 수 있게 된다 . 생활이 노역이 되지 않기 위 해서는 생활체와 환경과의 참된 의미의 흥미가 필요한 것이다 . 교육의 기초로서 네 가지 흥미 ① 회화 ( 會話 ) 와 교류의 흥미 ② 사물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흥미 ③ 물건을 제작ㆍ구성하는 흥미 ④ 예술적 표현의 흥미Ⅵ. 듀이의 실험학교 (' 듀이스쿨 ') 4 세 ~14 세까지의 어린이들을 10 개 집단으로 나누어 구성 가장 어린 집단인 4~6 세까지의 어린이들은 준 기초교육 학급으로 형성 ( 유치원이라고 불렀으며 기존 유치원의 경향과는 많이 다름 ) 프뢰벨의 기본정신을 존중했으며 , 그의 방법의 일면을 비판하였지만 기본적인 의도와 철학을 수용하여 프뢰벨이 부각시켰던 아동기에 대한 존중 , 놀이의 본질적 중요성을 인정 구체적인 방법과 환경 구성에 있어서는 보다 자유로운 아동 중심의 활동 , 생활 중심의 활동의 필요함을 지적 ‘ 듀이스쿨 ’ 에서 교사로서 유의할 사항 읽기 , 쓰기 , 셈하기를 더욱 흥미 있고 생생한 활동을 통해서 습득시킬 것을 요구함 . → 읽기 , 쓰기 , 셈하기는 아동이 다른 것을 학습하는데 기초가 된다는 필요성을 아동 스스로가 깨달았을 때 노력하게 되고 능률도 오른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 1903 년까지 계속됨 .Ⅶ. 듀이가 현대사회교육에 주는 의미 교육의 성장 = 아동의 성장 학습과 학력을 위해 아동이 존재하고 , 아동의 성장을 위해 학습이 있다는 교육적 사실을 강조하여 , 경쟁에서 낙오된 세대들이 폭력과 비행적이 행동들에 유혹을 받게 되고 , 이들이 사 회로 진출하여 사회에 끼칠 악영향을 아동교육에 큰 의의를 두었다 . 또한 학생을 한 ' 인간 ' 으로 보고 인간성을 존중하고 각 개인의 개성과 자기 가치관을 지향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 우리 나라 교육에 미친 영향 우리나라 교육이 조직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진보주의이며 ,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우리나라 새 교육 발전과 민주주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고 , 한국교육에 있어 교사의 권위주의 , 체벌주의 , 훈육주의에 도전하였다 .{nameOfApplication=Show}
영상으로 보는 동양사 감상문3월 28일 수업시간에 우리는 ‘되살아나는 천년의 기억’이라는 영상을 보았다.중국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한 달 전 한겨레21에서 관련기사를 읽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베제클리크를 약탈했던 열강의 고고학자들은 많았다. 중국인들의 반외세 감정 속에서 외국인은 ‘외국 귀자’(外國鬼子)나 ‘양귀자’(洋鬼子)로 불렸다. 이런 귀신들은 실크로드에서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였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코크, 프랑스의 폴 펠리오,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미국의 랭던 워너 그리고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까지 이들은 한결같이 유물을 빼갔다. 간쑤성 둔황석굴에선 엄청난 고문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서역 북도의 고창고성·교하고성·아스타나 고분군·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등에서도 유물이 발견됐다. 서역 중도와 남도에서는 누란·니야·단단위리크 등 사막 속에 묻힌 오아시스 도시들이 발견됐다.스웨덴의 스벤 헤딘은 보물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이었다. 1899년 그가 타클라마칸 동쪽 로프노르(뤄부포) 사막을 건너다 마주친 곳은 러우란(누란)이었다.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독립을 유지하다가 4세기쯤 갑자기 역사 속에서 사라진 러우란 왕국의 폐허를 발견한 것이다. 목간(나무로 된 편지) 120편과 융단 조각 등을 챙겨 돌아간 스벤 헤딘은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1500년보다 훨씬 전에 이 고대도시의 마지막 거주자가 집을 떠나던 때 모습 그대로였다.”1500년의 침묵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실크로드에 나타난 두 번째 귀신은 영국의 고고학자 마크 아우렐 스타인이었다. 스타인은 단단위리크, 니야와 러우란을 돌며 유물을 수집했다. 그는 열사의 사막에서도 ‘영국 신사’다운 풍모를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항상 애견을 데리고 다녔으며, 대원들을 거느리고 큰 도시에 입성할 때는 미리 통지해서 도시 입구에 사절이 나오도록 했다.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코크는 1904년 고창고성에서 한탕 유물 잔치를 했다. 한 농부의 손에 이끌려간 르코크는 그동안 발견된 적이 없는 마니교 벽화를 목격했다. 그는 여기저기 훼손된 다른 유적들을 보며 자신이 좀더 일찍 왔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떤 벽화는 부서져 있었다. 농부들이 벽화에 덧칠한 안료를 거름으로 쓰기 위해 떼어갔기 때문이다. 건물 골재로 쓰였던 나무들은 땔감으로 뽑아가 없어진 상태였다. 그는 벽화를 떼어 독일로 가져가기로 결심했고, 그가 비난했던 농부들 못지않게 야만적인 문화재 파괴자가 되어 있었다.르코크는 나중에 출판한 책에서 벽화 제거 과정을 생생히 묘사했다. 먼저 그는 예리한 칼로 벽화 주변을 깊게 긁었다. 그리고 벽화 둘레에 파인 홈에 망치와 끌을 써서 벽화와 평행하게 구멍을 낸 다음, 그 구멍에 톱을 대고 썰기 시작했다. “회벽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톱질해서 들어내야 할 그림에 종종 펠트를 덮은 널빤지를 대고 눌러야 했다. …이 작업에 들인 육체적 노고는 말할 수 없이 컸다.”1907년 3월 영국의 스타인은 둔황에 도착한다. 둔황석굴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왕위안루(왕원록) 도사가 한 동굴 벽 뒤에서 엄청난 분량의 고문서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스타인은 중국의 고승 현장법사를 존경하는 제자로 위장해 환심을 샀다. 왕 도사는 여느 외국인과 다른 그의 공손한 태도에 감복했고 며칠 뒤 스타인에게 유물 관찰을 허락했다. 스타인은 왕 도사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자신의 텐트로 유물을 가져와 관찰하다가 결국은 손상되지 않은 7천여 종의 문서와 일부만 남아 있는 5천여 종의 문서를 싸서 둔황을 탈출했다. 나중에 목록을 만드는 데만 반세기가 걸린 방대한 분량이었다. 하지만 스타인이 둔황석굴 복원 기금조로 왕 도사에게 쥐어준 돈은 130파운드였다.다음 차례는 프랑스인 폴 펠리오였다. 그는 스타인이 대박을 터뜨리지 1년 만에 이 동양의 왜소한 승려 앞에 나타나 6천여 종의 문서를 챙겼다. 왕 도사에게 준 돈은 90파운드. 펠리오에 이어 들어온 이들은 일본 오타니 탐험대였다. 그들은 600가지 문헌을 받아갔다. 이어서 러시아인 세르게이 올덴부르크와 미국인 랭던 워너가 차례로 찾아왔다. 중동 쿰란동굴의 사해문서(구약성경) 발견과 비견되는 둔황석굴 17호는 이런 식으로 바닥을 드러냈고, 석굴은 ‘뺑소니 사고현장’으로 전락했다.둔황석굴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해 위구르인들은 100년 내내 부끄러워하며 서양의 귀신들에게 분노했다. 하지만 당시 탐험대는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본국에 돌아가 영웅 대접을 받고, 생사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출판했다.지금이라고 해서 이런 태도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실크로드에서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 ‘고고학 경쟁’을 그린 책들은 탐험대의 문화재 약탈을 지적하면서도, 약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읊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문화유산이 세계에 알려졌다는 것, 만약 그대로 놔두었다면 현지인들에게 도굴됐거나 파괴됐을 것이라는 가정법으로 이어진다. 자주 읽히는 실크로드 책들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짙다.
Ⅰ. 서론Ⅱ. 본론1.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기본관점2.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 교육의 목적과 내용3.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주요특징4.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장단점Ⅲ. 결론Ⅰ. 서론고등학교 시절 가장 권위가 있던 모의고사는 바로 ‘교과평 모의고사’였다. ‘교과평 모의고사’는 수능을 출제하는 교육과정 평가원에서 6월과 9월에 각각 고3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모의고사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또한 우리는 중학교 시절부터 ‘7차 교육과정 세대’라는 말을 들어 왔으며, 대학에 들어와서도 매학기 ‘Course Catalog’라는 책을 뒤적거리며 수강신청을 한다. 이렇듯 교육과정은 교육을 받는 단계에 있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용어이다.그러나 지금의 ‘교육과정 및 교육평가’라는 강의를 듣기 전까지 이 용어의 의미를 그저 ‘배우는 과목’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교육과정은 넓은 의미로 가르침과 배움의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험의 총체이다. 그 때문에 이 용어의 의미 그대로 가르침과 배움의 상황인 교육에서는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빠질 수 없던 것이었다. 이런 교육과정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따라 교과중심 교육과정, 학문중심 교육과정, 경험주의 교육과정, 인간중심 교육과정 등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그 중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경험의 체계를 존중하는 것으로 학교의 지도하에 학습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일체의 경험과 활동을 말한다. 또한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학생의 흥미, 요구,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자발적 활동에서 생기는 경험의 체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교과보다는 생활을, 지식보다는 행동을, 분과보다는 통합을, 미래생활 준비보다는 현재 생활의 적응을, 교사의 교수보다는 학습자의 학습을 중시한다는 점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교과목 중심으로 인류생활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존 방식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교육에서는 학생의 경험과 유리된 교과를 가르치는 대신에 학생의 경험의 성장을 위하여 학생의 흥미와 관심에 기초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참된 교육은 따라서 교육과정은 학교나 학교 외부에서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계획할 것인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이 부딪치는 새로운 상황에서 제기되는 예기치 못한 모든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가정을 토대로 한다. 어떤 상황에서의 결과는 형식적인 의미의 학습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개인들이 특정상황에서 일으킨 행동경향, 감정, 사고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각 개인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에, 어느 두 개인도 같은 상황을 같은 방식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경험주의적 교육관은 실제적인 교육과정 의사결정을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교육과정은 바로 생활 과정과 같은 것이며 어느 두 개인도 정확히 같은 생활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20세기의 경험중심 교육의 발달은 첫째, 교육과정이 어떻게 하면 아동의 경험세계를 반영하고 그것을 넓혀 줄 수 있을까하는 배려와, 둘째, 그러한 교육과정에 관한 실제적인 의사결정을 이끌어갈 분명하고, 실행 가능한 원칙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경험중심 교육의 역사적 근원은 17세기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홉스와 데카르트같은 철학자들은 정신과 감각인상 양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현대 심리학의 발달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였고, 현대교육에서 이성과 경험 모두를 강조하게 하였다. 로크는 학습은 경험으로부터 직접 일어나며, 그것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인상이 백지와 같은 마음에 기록되는 방식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루소는 그러한 아이디어에 개인의 중요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는 개인은 사회의 영향을 받아 부패하기까지는 본질적으로 순수하며, 어린이들의 자연스런 발달과 경험을 보호하는 교육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19세기 페스탈로찌와 프뢰벨과 같은 유럽의 교육선구자들에 의하여 발전되었고, 아동의 경험, 흥미, 욕구를 더 한층 강조하는 아동중심 교육이 유럽을 점차 지배하게 되었으며, 유럽의 영향을 받은 미국은 교육과정 선택의 최상의 준거로서 정신의 훈련(이성)이나 감각의 훈련(경험주의) 중 어느 하나를 강조하였다. 어느 준거든 하나의 준거만으로는 교육과정이 직업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이 되어버려 올바르고 균형된 개인의 발달을 강조할 수가 없다고 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듀이는 실재가 개인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 내부에서 발견되며, 그것은 사고와 감정과 같은 개인의 내적 반응과 행동과 같은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대한 외적 반응 양자가 혼합된 것이라고 믿었다. 실재 자체는 개인과 세계 모두가 항상 변하고 있으므로 항상 유동적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신념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 속에서 그것을 검증한 경과의 경중을 가려 보는 것이다. 진실한 신념이란 더 나은 개인의 경험발달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학생의 필요한 흥미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각 아동들의 보다 나은 경험의 발달이라는 가능한 최상의 발달을 낳게 하기 위하여 항상 변화하고, 재조직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듀이의 사상과 일치하는 어떤 형태의 경험중심 교육이든 교육과정 선정의 근거로서 추리의 과정도 거부하지 않고, 경험주의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들을 결합하게 된다. 미국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선정을 위한 두 가지 오래된 준거에서 이성의 개발은 정신의 훈련에 유용하다고 믿고 있던 학문적 교과와 관련지우고, 경험주의의 발전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에 이르도록 한다고 믿고 있는 실제적 교과와 관련지었다, 거기에다 듀이는 하나의 새로운 준거 - 개인 경험의 계속적 발달 혹은 건강한 성장 - 를 추가하였다. 이와 같은 세 번째 준거의 추가는 앞의 두 가지 준거를 균형있게 만들어 주었다.사회적 개인의 경험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교육과정을 학문적이고 지적인 것만이거나 직업적이고 사회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개 학생들을 위해 선택하거나 권장한 어떤 교과나 활동은 그들의 지적인 발달과 사회적인 발달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적 기능 개발, 개인 경험의 성장)에 대한 합리적인 균형을 취하지 못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개인을 지배적인 사회구조에 능숙하게 적응하도록 하는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하여 개인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어린이들의 자유롭고, 자연스런 발전을 보호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강조하였고, 또 다른 학자들은 여전히 사회 자체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의도를 가진 교육과정을 강조하였다. 비록 1920년대와 1930년대 동안 미국의 학교들이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강조사항들을 점차 통합시켰다 하더라도, 진정한 경험주의 교육에 대한 실제적인 실험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실험은 소규모적이었고 단기간에 이루어졌었다. 예외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학교에서 실행했던 것 중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실험이었던 8년 연구(1934~1941)였다.8년 연구는 30개의 진보주의 실험 중등학교에 다니는 1,475명의 학생들을 똑같은 수의 전통적인 학교의 학교들과 비교를 하였다. 이들 학생들의 학업과 생활 전반을 고등학교에서 3년과 대학에서 5년에 걸쳐 비교를 하였다. 실험연구에 참여한 어떤 학교도 똑같은 조건에 놓이지 않았으며 그 결과 각 학교들이 만들어 낸 교육과정은 독특하였다. 각 학교는 그 자체의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개발하였다. 그러나 모든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 자신들이 지각한 필요에 따라 그들 자신이 직접 협동적으로 개발하였다. 게다가 실험학교의 학생들과 전통적인 학교의 학생들 간의 비교는 학문적,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인 고려사항들을 포함한 개인적인 경험의 발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연구는 일반적으로 듀이의 교육사상과 기본원리에 일치해서 개발된 진보주의 교육과정의 성공 여부를 측정하기 위해 설계된 실험이었다. 비교결과, 경험교육을 강조한 실험학교 출신의 학생들이 전통적인 학교출신의 학생들보다 대학 학업성적은 약간 더 앞섰고, 사고활동이나 자기자신의 생활을 주도하거나 사회적 적응과 같은 전반적인 측면의 총체적인 발달에어떻게 조직하고, 그것이 학문적인 것이냐, 직업적인 것이냐, 혹은 사회적인 것이냐의 여부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2.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 교육의 목적과 내용경험주의적 관점을 따르면, 교육의 기본 목적은 아동의 발달이다(Hamilton, 1980). 어떠한 구체적인 발달도, 개인의 계속적이고 일반적인 발달에 이르도록 하는 방향으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Dewey, 1938). 싸이저(Sizer, 1973)는 이런 발달영역을 변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주체적 힘이라고 하였다. 주체적 힘은 “개인이 사회적으로 승인받고 개인적으로 유의미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개인적 스타일, 확신, 자기통제이다”(Sizer, 1973). 따라서 경험주의적 교육은 “계획하고, 발견하며, 적절한 자료를 활용하기; 과업을 지속하기; 새로운 아이디어, 상충되는 의견, 상이한 사람들에 대처하기; 타인의 복지에 책임 갖기; 타인에 대한 약속 이행하기 등과 같은 영역에서 젊은이들의 능력 증진에 목표를 두고 있다”(Hamilton, 1980). 이러한 주체적인 능력들은 젊은이와 성인들의 행복과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 어떤 교과도 학생의 필요와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내재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다(Dewey, 1938).경험주의 교육자들은 교과는 일상생활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된다고 한다. 듀이에게서 교육은 아동이 이미 가졌던 경험으로부터 나온 교과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를 이전 경험과 관련시키는 것은 단지 첫 번째 단계일 뿐이고, 그 다음 단계가 훨씬 중요하다. 그것은 “기존의 경험범위 내에서 새로운 관찰과 판단방법을 자극함으로써, 더 나은 경험의 영역을 확장시킬 새로운 문제를 제시할 가능성과 전망을 가진 대상들을 교육자들이 선택해야 한다”(Dewey, 1938). 경험이 확장됨에 따라, 경험은 점점 더 많이 조직되어, 궁극적으로는 교과가 숙련되고 성숙한 사람에게 제시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조직으로 된다. 예를 들면 경험있는 교육자들에게 역사는 우리의 문화없다.
‘혜능과 셰익스피어’, ‘김용옥 선생 그건 아니올시다’두 책에 나오는 ‘선’한국의 유명한 동양철학자 김용옥 선생, TV에서 강의 하는 모습도 많이 보아왔고, 고등학교 은사님의 추천으로 그 분이 쓴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의 철학강의’라는 책도 잠시 읽어보았기 때문에 왠지 익숙한 분이었다.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 6조 혜능과 셰익스피어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그리하여 읽어보니 책 내용 중에 셰익스피어의 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나 `이제 남은 것은 침묵뿐이다`라는 귀절을 하나의 화두로 해석해 불교 사상과의 연관성을 고찰시킨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의 주요부분을 원문과 함께 싣고 선과 관련해 재해석하고 있었다. 햄릿의 고뇌를 통해 본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아나 연기, 자연적 순환론인 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추구한 것이 구원이 아닌 해탈임을 말한다. 그래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햄릿은 공안이고 셰익스피어도 하나의 공안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불교적 세계관을 분석한 것이다.6조 혜능과 셰익스피어를 화두로 내세운 이색적인 이 책은 김용옥 선생의 저서답게 다양하고 전방위적인 주제를 다룬다. 우선 이 책은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인 공안집인 벽암록 해설서다. 각종 화두에 대한 난해한 해설집인 `벽암론`을 저자가 강연한 것을 담았다. 또 달마?혜능?남전?조주 등 중국 선종 선사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깨달음을 놓고 펼치는 각 선사들의 독특한 성격과 삶이 다뤄진다. 김용옥 선생은 화두란 깨달음을 전하기 위한 뗏목에 다름 아니란 사실을 밝힌다.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한 교육적 기획이 화두란 것이다.그러나 또 다른 책인 ‘김용옥 선생 그건 아니올시다’를 쓴 저자 변상섭씨는 그런 도올 김용옥 선생의 불교관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였다. 글쓴이 변상섭씨는 대학 졸업 후 3년간의 수좌 생활, 그리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선학을 전공하며 아함·유식·중관학의 논서들을 공부하고 동국대 역경원에서 을 완역한 소장 불교학자이다.변씨가 김씨의 불교관을 보여주는 와 를 비판하면서 이 두 권의 책을 낸 김씨에게 “어째서 이러한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바로 “애초부터 선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도올의 불교사상 비판을 시작한다. 이밖에 변씨는 방과 할이 선사들의 유치하고 치사한 짓이라고 매도하거나, 열반이 죽음이다, 선은 반불교다 등의 언사는 불교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그에 대한 논지적인 비판과 분석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도올 비판은 크게 불교와 선에 대한 무지, 잘못된 번역 두 가지이다.가장 먼저 비판의 초점을 맞춘 대목은 화두 해설이다. 변씨는 대표적 저서인 라는 책을 도대체 왜 썼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화두의 본질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화두란 의심을 일으켜 모든 번뇌와 망상을 끊고 큰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어서 선가에서는 해설을 금기시해 왔다”며 “김용옥씨가 을 해설하고 있는 것은 선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즉 화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예로 을 설한 원오 극근 선사의 제자 대혜 종고 선사는 스승의 역작을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이는 공연히 말꼬리에 붙들려 헤매는 후학들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씨가 최초로 을 해설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경축, 선종사상 최초의 어리석은 바보 출현’이라고 광고하면서 스스로 기뻐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도올은 1998년 '벽암록'에 실린 화두를 해설한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를 출간했다. 이에 대해 변씨는 "화두란 도저히 따져서는 안되는 것으로 자잘한 생각들을 틀어막기 위한 것인데 이를 자신의 생각대로 해설해 버리면 화두의 근본취지를 어기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불교계에서는 화두 해설을 붙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 이라며 "도올이 벽암록을 해설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선(禪)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고 묻고 있다.비판의 또 다른 초점은 번역의 문제이다. 변씨는 김씨가 에서도 웃지 못할 엉터리 번역을 쏟아 놓았다고 지적했다. 김씨의 번역은 불교와 선에 대한 무지와 실수가 합쳐진 걸작이라는 것이다. 경전을 성경처럼 장과 절로 나누어 번역했기 때문에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뒤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는 불교의 대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덕충부’의 인물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얼짱’, ‘몸짱’의 광풍이 쉽사리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외모지상주의 시대가 우리 사회에도 도래하고 만 것이다. 이는 곧 외모가 연애나 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까지도 좌우하게 된다는 사회풍조가 만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성형수술은 유행하고 있으며 헬스장은 만원이다. 문제는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결정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품성을 드러내기보다 외모를 포장하는 데만 급급한 현대인들은 외모에 쉽게 절망하고 분노하며 자존감마저 잃어가고 있다. 때로는 성형중독 등의 극단적인 방법들로 외모를 위해 내면까지 파괴하고 마는 경우도 있는데 『장자』의 「덕충부」를 보면 이런 모든 노력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먼저 “흐르는 물에는 자기 모습을 비춰볼 수 없으며, 다만 고요한 물에서만 자기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거울이 깨끗하면 먼지가 끼지 않으며, 먼지가 붙으면 거울은 밝게 비칠 수 없다.”라는『장자』의 「덕충부」에 나오는 두 구절을 통해보자. 두 구절과 관련된 고사에는 형벌로 발 하나가 잘린 왕태와 신도가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백성들은 불구자가 된 그들을 백성들은 혐오한다. 우리 역시 장애인이나 외모가 못난 사람들을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보니 외모로 상처받고 있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흉하다고 쉽사리 믿는 현대인들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으로 외모의 개선에 오히려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이 외모의 가치만 맹신하게 됨에 따라 하늘에서 부여된 자신의 고유한 품성을 불신하게 되고 진정한 자기 가치마저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흐르는 물’과 ‘더러운 거울’이라는 왜곡된 기준에 자신을 비추어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반면 앞서 언급한 왕태와 신도가의 경우, 본성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외형의 미혹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의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실한 자아 탐구를 거듭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즉 자기 성찰과 본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외모에 집착하여 ‘흐르는 물’과 ‘먼지 낀 거울’의 오류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고요한 물’과 ‘깨끗한 거울’의 상태에서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외모지상주의시대에서 진정한 자아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덕이 커지면 몸에 대해서는 잊는다.”라는 구절을 통해 더 구체화된 장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구절과 관련된 고사에는 절름발이에 꼽추, 입술이 없는 언청이와 큰 항아리만한 혹이 붙은 혹부리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추한 외모에도 개의치 않고 당당히 나라에 충언을 함으로써 임금의 사랑을 받았으며 백성들도 이를 본받아 타인의 못난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추한 외모’임에도 임금 앞에 감히 나선 그들의 ‘자신감’에 주목해야만 한다. 내면을 참됨과 진실함으로 충실하게 가꾼 그들은 외모의 장애를 어느새 잊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처럼 내면의 ‘덕성’을 잘 키워나간다면 우리도 외모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간혹 타인이 자신의 외모를 비난하거나 외모에 대한 자괴감에 빠질 때 더 이상 자신의 외모에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다. 대신 자기 내면에 대한 부단한 수양을 바탕으로 외모의 가식을 잊을 수 있는 큰 그릇을 마음에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덕으로 가득 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자신감이 확립될 때 비로소 외모에 대한 스스로의 모욕감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