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렘브란트Ⅰ. 렘브란트 회화의 시대적 배경1.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사회적 배경17세기 초,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통치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민족의 용기와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민국가로 자유를 찾고 성장한다. 이 무렵 막강한 해외무역국가로 발전하여 이러한 경제적 풍요로움은 시민의 취미에 호응 할 예술의 수요를 높이는 원인이 된다.종교개혁으로 인해 훌륭하고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칼빈주의를 신봉하게 되면서 카톨릭과는 단절된다. 이런 상황은 당시 각 분야별로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중세시대에는 화가에게 모든 임무와 주제들을 제공하는 곳은 교회였다. 그들은 종교적인 내용을 그렸고, 스테인드글라스, 융단 장식 등에 성서의 내용을 새겼다. 네덜란드에서 카톨릭 교회를 거부하고 칼빈주의를 승인함은 화가들에게 종교적인 내용의 그림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17세기 예술은 미술 분야에서나, 문학 분야에서나 고전의 표현과 분위기를 즐려 사용했던 것이다. 이 시기 유럽 전역에서는 바로크의 부르주아적 궁정풍 문화가 유행했으나 네덜란드에서만은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르게 시민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미술이 전개되었다.도시국가 연합을 형성하고 있던 홀란드 북부의 자유도시국가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국가의 부는 국가나 왕정에게 돌아가지 않고 시민계급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병화는 시민들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고, 부유한 중산층을 형성시키게 되었다. 교회의 구속에서 벗어난 네덜란드에서는 그 주제에 있어서 성화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소재들의 사실주의적인 묘사, 풍속화, 초상화, 풍경화, 실내화, 건축화 등이 각광받았다. 그리고 그 스케일 역시 궁정이나 교회가 아닌 개인의 일상생활의 용도에 맞는 조그만 규모였다. 따라서 조형예술 중에서도 가장 겸손한 예술인 회화, 또 그중에서도 가장 소박한 형식인 내실 장식용의 소형그림이 지배적인 장르가 되었다.하지만 네덜란드 미술이 네덜란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15세기 이탈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인 사실적 표현능력과 새로운 정서가 나타났고 또 성서의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다가갔던 인문주의자들과는 달리 직접적이고 순수하게 파악하였다. 이렇게 렘브란트의 화가로서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간 성서이야기의 종교화는 미학적이면서 논리적인 접근인 렘브란트만의 신앙적 고백 인 듯한 독특한 느낌이 있다.그는 부뤼겔의 작품을 직접 대면한 것 외에는 그 당시 누구나 선망하였던 이탈리아 여행도 하지 않았고 어느 대가의 절대적인 기법이나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북유럽 전통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며 여기서 우리는 그의 민족주의적 예술관까지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국적인 예술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국의 예술을 흡수, 소화하고 있던 것이다.1624년 고향이 라이덴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공방을 열었다. 1632년까지 완전한 독학으로 친척, 이웃노인, 성서에서 소재를 얻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열매를 맺어 1632년 암스텔담 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호평을 계기로 명성과 함께 부를 얻어 암스텔담에 정착하게 된다.1634년에 명문가의 딸 사스키아와 혼인하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약 10여년간은 생활이나 명성에 있어서 가장 혜택 받은 시기이면서 행복했건 시기였다. 당시의 세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암스텔담에서 첫째가는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얻어 많은 부와 제자들 까지 모았다. 그러나 그의 회화가 성숙함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 기호였던 평면적인 초상화 등에 만족할 수 없게 되어 외면적인 유사성 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것, 인간성의 깊이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종교적 소재나 자화상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명작 ‘야경’의 제작을 고비로 갑자기 세속적 명성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렘브란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작품은 암스텔담 사수협회의 주문에 의한 단체초상화인데 렘브란트는 당시 유행하던 기념 촬영적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현존하는 렘브란트의 작품은 유화, 에칭, 소묘로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 등 모든 종류에 걸쳐 있으며, 중년 이후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졌으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더구나 그의 예술은 시대를 훨씬 초월하고 있으며 그는 그 나름의 깊은 빛과 그늘을 창조하였다. 즉, 그의 작품에 있어서 색이나 모양이 모두 빛 그 자체이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의 흐름이었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그의 예술은 서양미술사에 하나의 장을 열었다.Ⅱ. 렘브란트 회화에 나타난 빛의 표현과 효과1. 렘브란트 회화에 나타난 빛의 주요 특성렘브란트의 그림 대부분이 죽음, 죄, 속죄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으며 영혼에 대하여 빛과 사물이 만남으로 생기는 그림자와 어둠의 대비로 그의 종교적 감정과 영혼을 감성적으로 표현하였다.빛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심리적인 만족감을 줄 뿐 아니라 공간에 다양한 표정을 준다. 빛을 공간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빛의 흐름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빛의 생성과 소멸로 어둠과 밝음이 나타나고 이것을 이용해 회화공간에서 표현한 화가가 렘브란트이다. 그는 화면속에서 빛을 자기 의도대로 조절해 인위적인 광원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렘브란트 조명은 영화에서 쓰이는 로맨틱한 후면 조명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이고 있다.17세기 화가 렘브란트가 평생 매달렸던 창작상의 관심사는 사람과 사물의 표정이었다. 진실은 항상 이면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찰나의 표정을 통해서만 그 본질이 잠시 드러난다고 그는 보았다. 찰나의 표정을 찰나의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포착한다는 것이 렘브란트의 생각이었다. 초상화를 그릴 때 그가 사용한 은은한 후면, 측면의 빛은 그림자와 대조를 이루면서 인물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준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진실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이다. 영화의 후면 조명이 렘브란트 회화에서의 빛과 마찬가지로 이미지만들기 효과를 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렘브다. 그의 표정은 묘하게 깊은 감사를 느끼게 한다.전에는 움직임을 통해 극적효과를 얻으려 했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색채가 빚어내는 긴장으로 인해 훨씬 더 강력한 인상을 준다. 오른쪽의 구경꾼들은 회화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거의 영향력이 없어 보인다. 그의 이러한 강렬한 힘과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 종교적 권능을 감지하게 하는 탁월한 빛의 처리기법은 미술사의 영원한 신비로 남아있다.2. 렘브란트 회화에서의 빛의 상징적 의미렘브란트는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빛의 도움으로만 색을 칠하는 것과 빛을 통해서만 드로잉 하려는 것이다. 그가 빛에만 중요성을 부여했던 것은 필연적인 것이였을까, 아니였을까? 또는 그림은 그것을 요구하고 허용했을까, 아니면 거부했을까? 만약 첫 번째라면 작품은 작품이 지닌 정신의 결과이다.초기의 렘브란트 작품은 가라밧지오의 스포트라이트 빛 처럼 극적인 순간의 표현을 상기시키는 심한 명암의 대비를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명암법을 보다 주관함으로써 극적인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절대자의 상징으로서의 경외심, 인간의 신뢰, 사람, 고독, 허무, 생명의 신비를 표현한 깊은 사고와 통찰력을 느끼게 한다. 그에게 있어 빛은 표현의 외부에서의 빛이 아니라 형태의 끈질긴 추구와 공간을 나타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빛의 흐름으로 부드러운 음영을 표현하여 적막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상징적인 의미의 빛은 주로 종교화에서 많이 나타나고 서정적인 빛은 풍경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5세기 초 몇몇 화가들이 종교적 의미를 상징하고 있는 빛을 많이 그렸다. 시적이면서 작가만의 특수한 감수성을 화가들은 풍경화속의 빛을 이용해 표현한다. 중세의 빛은 작가의 주관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의미에서 제작되어졌지만 렘브란트의 빛은 주관적이며 자신의 생활 속의 빛을 느끼고 이해해 표현했다.위에서 아래로 비추는 빛은 강한 빛줄기가 세상의 사물은 비추어 영원하고 승화되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다 진실을 표출시키려는 심리를 통해서 자기 표백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빛과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림을 넘어선 선함과 영혼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렘브란트의 초상화, 자화상 등 그의 예술은 정신적인 빛이 변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이러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자아성찰을 통해 렘브란트 자신의 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화상을 분석한 결과, 첫번째로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 출발하여 사회적 명성과 부유함을 누렸으나 1640년대 부르주아적 생활에 대한 회의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예술적 표현이 내면화된 세계로 변화하게 되었고, 두 번째로 그의 자화상은 생의 위기의식이 느껴질 때 집중적으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자기 성찰을 통한 내면적 자아를 표현하고자 한것이다. 세 번째로 그는 100여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작하였는데, 이러한 자화상 작품은 자신의 삶 속에 융합되는 것으로 생의 흐르는 순간을 연속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네 번째, 렘브란트는 예술세계가 원숙해 질수록 신비하고 암시적인 기법과 단순화된 배경을 통해서 차원 높은 심리적인 통찰을 증대시켜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섯째, 그는 자화상을 통해 초기에는 학습단계에서 인물표현을 다양하게 탐색하였고, 사회적인 명성을 얻은 시기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욕구 충족의 매개체로 내적 표현으로 성숙된 전환을 하였고, 원숙기에는 자기표백의 형식으로서 다양한 인간의 본질과 특징을 자화상으로 구현하였다.결국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의 생 본연의 모습이 빛으로 환원된 영혼의 세계이며, 빛과 그림자에 의해서 생기는 형태와 색채, 명암의 표현은 렘브란트만의 독창적인 예술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렘브란트만의 특유한 명암법은 그의 마음속에 담긴 인간애와 높은 종교적 정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2. 툴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이 작품은 툴프박사가 시체의 발 아래에 세워놓은 베살리우스의 저명한 해부학 저서를 참고로 있다.
과목명 :교수명 :학 과학 번 :성 명 :제출일 :Ⅰ. 불멸의 화가 반 고흐를 만나다“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반 고흐가 죽기 전에 그의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에서 보듯 반 고흐라는 사람의 생애는 정말 순탄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시절 그의 그림은 단 한점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그림은 세계의 명화 중의 명화로 꼽힌다.이러한 반 고흐의 그림들이 이번에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1월 24일 개막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은 한국 미술전시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전시다. 전 세계가 가장 편애하는 화가인 반 고흐의 유화 45점과 드로잉 및 판화 작품 22점 등 총 67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반 고흐 회고전이다.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반 고흐 미술관과 네덜란드 오텔로의 크롤러뮐러 미술관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고흐는 화가로 살았던 10년 동안 879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절반이 이 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세계 각지에 몇 점씩 뿔뿔이 흩어져 있다.전시는 반 고흐의 삶의 궤적을 따라 연대기순으로 구성된다. 가난한 농민사회의 처참한 생활상을 어두운 화폭에 담은 초기 네덜란드 시기(1880-1885), 인상파의 빛을 발견하면서 초기의 어두운 색채에서 벗어나 밝은 색채를 도입하기 시작하는 파리 시기(1886-1888), 프랑스 남부의 강렬한 채광을 통해 색채의 신비를 마음껏 구사한 아를 시기(1889), 정신병원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며 자연을 묘파한 생레미 시기(1889-1890), 자살하기까지 생의 마지막 79일을 보내며 80점의 풍경화를 그린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1890) 등 5개 영역으로 나뉘었다.분명 반 고흐의 그림은 수도 없이 많이 봐왔으나 그 강렬한 색채와 생동감 넘치는 붓터치에 이번에도 또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막하는 11월 24일에 바로 만나보러 갔다.Ⅱ. 빈센트 반 고흐 ; 그는 누구인가?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화가가 되기 전 상업화랑의 직원, 교회의 보조교사, 책방 점원, 전도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1880년 스물일곱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브뤼셀, 헤이그, 에텐, 드레덴 등지를 전전하며 화가 수련을 쌓아나갔다.반 고흐가 가장 흠모한 화가는 밀레였다. 1883년 12월 경제적 어려움으로 목사인 아버지의 새 부임지 누에넨으로 돌아온 그는 밀레를 본받아 농민화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 땅에서 땀 흘리며 노동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던 그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고, 1885년 로 그것을 증명했다.1 886년 2월, 반 고흐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 오기 전, 네덜란드 그림과 프랑스 사실주의 회화 정도만을 알았던 그는 파리에서 인상파의 밝은 그림들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파리에 도착한 즉시 자신의 갈색조 팔레트가 얼마나 구식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인상파 미술을 접하면서 그의 팔레트는 점점 밝아졌으며, 붓터치는 강렬한 색채로 진동했다. 이곳에서 반 고흐는 인상파의 빛과 색을 다루는 방법과 신인상파의 점묘기법을 이용해 도시의 카페, 거리, 세느강 주변 풍경 등을 자유롭게 그려나갔다. 파리 시대는 그만의 독자적인 미술을 만들기 위한 예술적 실험기였다. 반 고흐에게 파리는 인상파라는 새로운 미술의 세계에 눈뜨게 해주었지만 추운 겨울과 과로, 퇴폐적인 생활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는 그로 하여금 다시 파리를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인상파 미술의 극복과 자기만의 새로운 미술의 완성, 평생의 목표였던 농민미술의 추구, 자연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그는 1882년 2월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향했다. 아를에 도착한 그는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의 주제를 찾았고 아무데서나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밤에도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 식사를 주문하는 일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동생 테오와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아를에서 반 고흐는 밝고 강렬한 색채, 명료하고 간결한 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해나갔다.아를은 반 고흐가 가난으로 고통받는 동료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화가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려던 장소이다. 이 꿈을 위해 그는 고갱, 베르나르 등에게 편지를 보냈다. 1888년 10월 어렵게 반 고흐의 요청을 수락한 고갱이 아를에 도착했다. 세계미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만남의 순간이었다. 이 빛나는 두 거장은 아를의 노란 집에서 두 달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함께 그림을 그렸고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강렬한 개성을 지닌 두 대가는 서로 다른 예술관과 생활태도의 차이로 갈등을 겪다가 급기야 1888년 12월 23일 고흐가 면도날로 고갱을 위협하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귀를 자른 사건은 단순히 그를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것에서 끝난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향후 그의 일생을 결정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후 고흐는 아를 시민에게서 미치광이로 낙인찍혀 독방에 갇히고, 1889년 5월 생레미의 생폴 드 무솔 요양소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자연을 화폭에 담아냈다.생의 말기, 심각한 정신병 증세를 겪던 고흐는 치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1890년 5월 가셰 박사가 있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한다. 오베르의 자연에 만족한 고흐는 정신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집중력을 지니고 작업하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감동적인 그림들을 제작했다. 1890년 고흐가 파리의 앙데팡당 전에 와 를 전시했을 때, 인상파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흐의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나 고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자신의 성공을 보지 못한 채 1890년 7월 29일 오베르 쉬르 우와즈의 밀밭에서 자신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세상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Ⅲ. 연대별 작품들네덜란드 시기 파리 시기 아를르시기 생레미 시기
각국의 생활문화와 매너 및 사례조사테이블 매너 [Table Manner]Ⅰ. 테이블 매너란 무엇인가?테이블 매너란 식사를 품위 있고 맛있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이며 매너 있는 식사 예절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테이블 매너는 요리를 즐기면서 분위기에 걸맞게 행동함으로써 함께하는 일행은 물론 주의의 다른 고객들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식탁에서의 기본적인 예절을 말한다.Ⅱ. 테이블 매너를 알아야 하는 이유1. 요리를 맛있게 먹기 위하여모든 식품에는 독특한 향과 맛이 함유되어 있다. 조리시에는 자연스러운 향과 맛을 살리고 인공 조미료와 감미료를 적당히 첨가하여 그 맛을 더하게 한다. 요리의 재료와 조리방법 그리고 요리와 함께 마시는 음료(술) 등을 잘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다.2. 영양분 섭취와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하여각종 식품에 함유된 영양소를 골고루 균형있게 섭취하여 소화 흡수 시켜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편식이라는 습관과 무지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가 있다.3. 식사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식품의 조리는 영양소 파괴를 최대한 줄이고 자연의 맛을 최대한 살려 먹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 필요한 적정 시간을 알고 요리를 주문하면 식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4. 정중한 서비스를 받기 위하여레스토랑 등 접객업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품위있는 고객에게 정중한 서비스를 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반대로 품위가 없고 천박한 행동을 하는 고객은 경우에 따라 정중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는 경우가 있다.5. 본인의 인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몸에 밴 습관은 곧 본인의 인격과 직결된다.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몸에 밴 바른 식사 예절은 언제 어디서나 본인의 고매한 인격을 타인들에게 행동으로 보이게 된다.6. 경제적인 식사를 하기 위하여메뉴의 구성 내용을 잘 알고 필요한 것만 주문하면 남겨서 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그렇지 못는 서비스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 매너로는 레이디 퍼스트가 기본규칙이므로 여성이 먼저 자리에 착석한다.⑤ 착석한 자세도 테이블 매너의 기본이 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테이블과 가슴과의 거리는 주먹 2개가 들어갈 정도로 떨어져야 하므로 의자를 잡아당겨 바싹 앉고 가슴을 편다. 다리를 꼬지 않으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지 않는다.⑥ 냅킨은 전원이 착석한 후 펴서 무릎 위에 놓는데, 식사중에 마루에 떨어지지 않도록 한쪽 끝을 옷 사이에 살짝 끼워 놓는다.⑦ 아페리티프(식전주)는 자기의 기호에 따라 분명하게 주문하고, 무리하여 익숙하지 않은 것이나 알코올분이 강한 것을 마시는 일은 삼간다.⑧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양 옆에 앉은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여 식사중의 환담에 도움이 되게 한다.2. 식사 중 매너① 식사의 순서에 따라 사용하는 나이프 ·포크 ·스푼 등은 차려 놓은 상태에서 바깥쪽으로부터 차례로 사용한다.② 식사를 시작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여 보조를 맞춘다.③ 식사하는 시간도 회장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혼자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도록 한다.④ 수프는 소리나지 않게 떠먹는다.⑤ 빵은 한번에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떼어 버터를 발라 먹도록 한다. 큰 덩어리째로 버터를 바르지 않도록 한다.⑥ 버터는 적당한 양을 자기 접시에 덜어다 놓은 후 빵에 바른다.⑦ 빵은 나이프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떼어 먹는다.⑧ 생선이나 육류요리를 서비스받을 때는 무리하여 자기가 덜어 오지 말고 서비스하는 사람이 덜어 주는 대로 받도록 한다.⑨ 고기 요리에 곁들이는 채소와 소스가 다 들어온 뒤에 먹기 시작한다.⑩ 식사중에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옆 사람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어야 한다. 묵묵히 식사만 하면 실례가 된다.⑪ 때에 따라 식전 또는 식사 후 디저트를 들 때 테이블 스피치를 할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사회자가 지명하여 스피치를 하게 되며, 결혼 축하연 ·각종 축하연 ·기념회 ·송별회 등에서는포크를 가지런히 접시 위에 놓고, 끝나지 않았을 때는 접시 양쪽에 걸쳐 놓는다. 자기에게 배분된 음식은 되도록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는다. 음료는 자기 오른쪽에 있는 것을 마시고, 빵과 샐러드는 왼쪽에 있는 것을 먹는다. 술 또는 커피 같은 음료를 원하지 않을 때는 분명하게 거절하도록 한다. 마시다 남기면 실례이다. 생선은 접시 위에서 뒤집지 않는다. 로스트 치킨과 통째 내놓은 옥수수와 빵은 손으로 먹어도 좋으나, 그 외의 음식은 손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샐러드는 육류요리와 번갈아 먹어도 좋다. 스파게티는 포크에 감아서 먹는다. 아이스크림에 붙어 있는 웨이퍼는 아이스크림의 찬 느낌을 덜기 위한 것이므로 아이스크림과 번갈아 먹는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스푼은 컵 속에 담아 놓지 말고 접시 위에 놓는다. 핑거 볼에는 양쪽 손을 함께 넣고 씻지 말고 한 손씩 씻는다.3. 식사 후 매너① 냅킨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보기좋게 적당히 접어 테이블 위에 놓는다.② 퇴석할 때는 옆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다.③ 퇴장할 때는 주최자에게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한다.Ⅳ. 각국의 테이블 매너와 사례조사1. 한국- 출입문에서 떨어진 안쪽 중앙이 상석이다.- 식탁에 몸을 숙이지 말고 단정한 자세로 앉는다.- 손윗사람이 먼저 수저를 든 뒤 아랫사람이 수저를 든다.- 국물 마시는 소리, 음식 씹는 소리, 수저 부딪히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수저를 빨지 않도록 하고 수저와 젓가락을 한꺼번에 쥐지 않는다.- 덜어 먹는 접시가 있으면 적당하게 덜어 먹는다.- 밥은 한쪽부터 먹어 들어가고 국물은 그릇째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한다.- 돌이나 나쁜 음식을 씹었을 때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한다.- 식사 도중 자리를 뜨지 않는다.- 식사는 같이 끝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고, 만약 먼저 끝나면 수저를 상 위에 놓지 말고 밥그릇이나 국그릇 위에 놓았다가 상대방이 끝나면 내려 놓는다.- 윗사람이 일어난 뒤 뒤따라 일어선다.2. 태국음식을 반상 또는 대나무나 원목으로 만든 마룻바닥에 모두 하는 사람들도 많다. 포크는 접시의 음식을 스푼으로 뜰 때 보조 역할을 하거나 스푼에 붙은 음식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다. 식사 때 스푼과 포크의 부딪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특별한 격식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예절은 지키도록 한다.- 음식을 빨리 먹지 않는다.-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입술을 오므리고 음식을 씹는다.-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 말을 하지 않는다.- 국물이 있는 음식은 들이마시지 말고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3. 인도-식사 때 낮은 걸상을 사용하거나 바닥에 앉는다.-좌석배치에 규칙이 있다. 오른쪽에 주인, 왼쪽으로 가면서 연령 순서로 앉는다. 노인과 소년, 소녀는 조금 떨어져 앉는다.-식사 전에 반드시 물로 양손을 씻는다. 보통 손가락으로 집어먹지만, 음식이 뜨거운 경우에는 나무 스푼을 사용하기 도 한다.-반드시 오른 손으로 식사를 한다.-물을 마실 때 컵을 입에 대지 않고 물을 입안에 부어 넣는다.-식사 후 물로 양치한 후 물을 뱉어 버린다.-식사 중에 이야기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여기므로 식사가 끝나면 손을 씻고 양치한 후에 이야기를 시작한다.4. 중국중국 음식은 한 식탁에 둘러앉아서 큰 접시에 나온 음식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방식이므로, 동석한 사람들이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좌석은 주빈이 되는 손님이 가장 안쪽인 상좌(上座)에 앉도록 배치하고, 주인은 시중을 드는 사람이 드나드는 문 쪽의 하좌(下座)에 앉는다. 주빈의 좌우에는 주빈 다음으로 중요한 손님을 앉게 하고, 주인의 좌우에는 가까운 친지나 친구들을 앉게 한다. 음식이 나오면 주빈 앞에 놓아 먼저 먹도록 배려하고, 마실 술의 종류도 주빈에게 물어서 정하도록 한다.중국 식탁에서 스푼은 탕을 먹을 때만 사용하고, 다른 음식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밥이나 국수는 젓가락을 사용한다. 양손으로 먹을 때는 왼손에 스푼을 들고 음식을 덜어 담은 다음 오른손에 쥔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는다. 밥이나 탕이 담긴 그릇은 손에 들고 입 가까이 대고 먹는다요할 때는 본인이 직접 가서 가져다 먹는 것이 예의있는 행동이다. 옆 사람에게 달라고 하지 않는다.- 샐러드는 반드시 각자의 접시에 덜어서 소스를 첨가하여 먹는다. 각자의 소스에 대한 취향을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소스가 따로 안나오는 경우에는 식탁위에 놓여있는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 등을 자기 입맛에 맞게 넣어 먹는다.- 식탁이나 식탁을 떠나서도 트림을 하는 것은 예의에 크게 어긋난다.6. 프랑스◎식사전 예절- 손님들이 모이면 주인은 아뻬리티프를 권한다. 준비된 술의 종류를 주인이 말해 주므로 원하는 술을 골라 받아 마신다. 두 번 째 잔은 다른 것으로 마셔도 되지만 더 이상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안주도 주인이 권하면 들도록 한다.- 프랑스인들의 식사는 매우 길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며 먹기 때문에 다른 집에 초대되었을 때는 이야기에 동참하여 분위기를 맞추어 주어야한다. 그러나 입에 음식을 넣고 이야기하지는 않도록 한다.◎식사시 예절- 아뻬리티프를 마셨으면 주인은 식탁에 앉기를 권한다. 주인이 개인의 취향, 화술 등을 고려하여 전체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자리 배치를 한다. 사람이 많을 경우 이름표가 미리 놓여져 있기도 한다. 자리 배치는 상석인 남자 주인의 오른편에 주빈이나 최연장자를 앉고, 남녀가 번갈아 앉으며, 한 가족이 연이어 나란히 앉지 않는다. 자리 배치를 받으면, 곧바로 앉지 말고, 주인과 주빈이 앉은 후에 앉도록 한다. 앉을 때는 식탁을 향해서 섰을 때 의자의 왼쪽에서 앉고 식탁과 너무 멀리 떨어 지지 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기 전에는 손은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놓거나 무릎 위에 올려 놓는다.- 냅킨은 요리가 나오기 시작 할 때 펴는데, 이등분해서 접은 후 접힌 끝단이 밖을 향하게 놓고 입을 닦을 때는 냅킨의 안쪽을 사용한다. 냅킨은 식사 후 커피를 마실 때까지 무릎에 두며, 다 사용한 후에는 접시 왼쪽에 가볍게 접어둔다.- 안주인이 식사를 시작하면 손님이 시작하고 모든 사람이 끝날 때까.
각국의 생활문화와 매너< 인사예절 >Ⅰ. 인사란 무엇인가?인사란 말 그대로, '사람 인(人)', 과 '일 또는 섬길 사(事)'가 합쳐진 말로써, 사람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요, 사람을 섬기는 일을 뜻한다. 즉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 또는 의례적인 상호행위이다. 인사는 민족·시대·계절·시간·조건·계급·신분·종교·직업·연령·성별 등에 따라 각기 구분이 있어 행동양식을 달리한다. 따라서 인사란 '사람의 일의 시작이며 끝'이요, 모든 사람의 일 중에 으뜸이다. 또한 스스로를 낮추며 남을 높이는 인사를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사람은 누구든지 사람을 처음 만나면 인사로 서로의 관계를 시작한다. 우리가 인사를 하는 것은 예절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수단이며 방법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하여 우러나는 존경심과 반가움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인사는 마음의 표시이므로 인사말과 자세가 바르게 표현되어야 한다.Ⅱ. 인사와 악수1. 동양의 인사, 서양의 인사동양식 인사은 기본은 절이다. 허리를 숙이는 각도에 따라 목례(15도), 보통례(30도), 경례(45도) 등으로 나뉜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 예의다.서양에서의 인사는 보통 악수를 뜻한다. 동양의 절이 존경의 뜻을 담아 상하 구별을 하는 데 의미를 둔다면 서양식 인사는 친근감과 평등의식 공유가 목적이다.물론 Bow라고 하는 일종의 목례가 있지만 그저 고개를 까닥이는 수준이다. 따라서 바른 악수법을 익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2. 인사(1) 인사의 종류1) 목례(눈인사)목례란 눈으로 예의를 표시하며 상체를 굽히지 않고 가볍게 머리만 숙이는 인사를 말한다.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 또는 걸어갈 때, 길 또는 실내나 복도에서 사람을 자주 대할 때, 공동화장실, 목욕탕, 사우나실 등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바쁘게 일을 하는 중에 손님을 맞이할 때, 자신과는 직접관계가 없는 고객이 돌아가려고 할 때 등의 경우 사용된다.2) 약례(약식 인사)약례란 허리를 15도 정도로 굽혀서 하는 인사이다. 3미터 전방에 시선을 두고 상황에 맞는 인사말을 한다. 상체를 허리 부터 숙인후 천천히 허리를 편다.직장의 복도를 지나면서 상사나 동료를 만날 때(대상이 상사일 경우는 잠시 멈추어 서서 인사), 직장복도에서 모르는 손님이 지나갈 때, 좁은 공간에서(복도, 계단, 엘리베이터), 양해를 구할 때, 질문이나 부탁을 할 경우, 길을 물어볼 때, 이웃사람들을 만날 때, 앉아 있을 때 등에 사용된다.3) 평경례(보통인사)평경례란 상체를 30도 정도 구부려 하는 인사를 말한다. 이때 2 내지 5미터 전방에서 남자는 두 팔과 손을 양옆에 붙여서 하고 여자는 앞으로 두 손을 모으면서 몸을 굽힌다. 인사말은 똑똑히 하되 너무 큰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행하는 인사이다. 상체를 허리부터 숙인후 잠시 멈추고 천천히 허리를 편다.상대에 대한 정식인사, 손님맞이 할 때, 같은 나이 또래와 처음 만났을 때, 사회활동에서 보편적으로 처음 인사를 나눌 때,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학교 혹은 사회선배를 만났을 때 등의 경우에 사용된다.4)큰 경례(정중인사)경례란 바로 선 자세로 발꿈치를 모으고 허리를 약 45도 이상으로 굽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서서 하는 인사로서는 가장 정중한 인사예법이다. 상체를 허리부터 숙인후 잠시 멈추고 천천히 허리를 편다.고객을 배웅할 때, 감사 또는 사과(사죄)를 표시할 때, 고객을 방문했을 때 등의 경우 사용된다.5) 거수 경례제복을 입고 정모를 착용한 상태에서 오른손을 올려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거수경례를 받았을 경우 고객이라 할지라도 거수 경례로 답한다. 아랫사람이 먼저 오른손을 올려 윗사람에게 경례를 하고 윗사람이 인사를 받고 손을 내린 후에 손을 내린다.(2) 바른 인사법인사를 할 때에는 자세를 바로 하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띠는 것이 기본이다. 발 뒤꿈치를 붙인 뒤 상황에 따라 윗몸을 75∼45도 숙인다. 고개만 까닥이지 말고 허리부터 굽히는 것이 예의에 맞다.양손은 둥글게 쥔 상태로 바지 옆 재봉선 부근에 자연스레 놓는다. 절은 3박자에 맞춰 한다. 첫박자에는 사선이 되게 허리를 구부리고, 둘째 박자에서 약 1초간 정지한 상태로 '안녕하십니까' 등의 인사말을 한 뒤, 셋째 박자에 몸을 일으킨다.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인사말을 곁들이는 것도 필수다. 허리를 펴는 시간은 3초 정도가 적당하다. 아랫사람의 인사를 받은 윗사람은 반드시 목례를 한다.(3) 상황에 맞는 인사법◎ 출근할 때아침 인사는 상대보다 먼저 하는 것이 좋다. 명랑하고 힘찬 목소리로 "좋은 아침입니다" 등의 적당한 인사말을 구사한다. 상사나 선배에게는 보통례를, 동료에게는 목례를 한다.◎ 퇴근할 때"저 퇴근하겠습니다" "실례합니다" "수고하십시오" 등적절한 인사말을 한다. 자리 뒷정리를 끝낸 뒤상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을 땐 가까이 가 절하고 동료들에게도 친절한 말을 잊지 않는다.◎ 일과중"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등 그때그때 해야 할 인사는 바빠도 빠뜨리지 않는다. 출장이나 외출을 할 때엔 상사나 동료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등 거취를 설명하는 인사를 한다. 지시 또는 보고 후에도 30도 각도의 인사를 한다.◎ 몸이 불편할 때병 때문에 외출, 지각을 한 경우 상세한 내용을 보고하고 감사 또는 사죄의 인사를 한다. 결근을 한 다음날도 출근 즉시 상사에게 사유를 설명하는 인사부터 해야 한다.◎ 상사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복도 코너나 출입구에서 갑자기 상사와 마주쳤을 땐 놀라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상사 혼자일 때는 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으며 옆으로 비켜 가볍게 인사한다. 상사가 사외 인사와 함께인 경우에는 멈춰 서서 정중하게 인사한다. ☞ 부부를 만나면 남자와 먼저 악수하는 것이 관습에 맞지만, 상대편 여자가 먼저 요청해 올 경우 그 쪽부터 응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예의다.◎ 식당에서식당에서 상사나 동료와 마주쳤을 때엔 일단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식사 후에는 의자를 밀어넣는 등 자리를 간단히 정리하고 "맛있게 드십시오" "저 실례합니다" 등의 인사말을 한다. 큰소리로 떠드는 것은 삼간다.◎ 세면장에서세면장, 또는 화장실에서 용무중일 때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용무를 마친 다음일 땐 목례를 한다.◎ 복도에서남의 앞을 지날 때는 한쪽으로 조심스레 피해 간다. 상사나 고객과 마주쳤다면 길을 비켜 서며 목례를 한다.(4) 잘못된 인사 유형◎ 눈을 보지 않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경우인사를 하기 전과 후에는 반드시 상대방의 눈을 보아야 한다. 몸만 움직이고 인사말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결례다. 고개만 까닥이거나 턱을 높이 쳐든 자세, 고개를 옆으로 숙이는 것, 공손이 지나쳐 비굴해보이는 인사도 좋지 않다.◎ 잘못된 용어 선택흔히 "수고하셨습니다"란 인사를 자주 하는데 이는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웃어른에게 사용하면 큰 실례가 되니 주의한다.◎ 계단 위쪽에서 손윗사람에게 하는 인사손윗사람이나 고객이 계단 밑에서 올라오고 있을 땐 벽쪽으로 비켜선 다음 같은 오른손에 물건을 계단에 도착한 시점에 절해야 한다. 위쪽 계단에서 인사를 하면 들고 있을 때는 빨리 올라오는 사람이 당황하게 된다.◎ 오른손에 물건을 들고 있을 때는 빨리 왼손으로 옮기거나 땅에 내려놓은 뒤 악수를 주고 받는다. 오른손에 물건이 있다 해서 왼손을 내미는 것을 대단히 큰 실례다.3. 악수(1) 올바른 악수 방법악수는 앵글로색슨계 민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인사 방식이다. 옛날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우선 적이라고 의심해 몸에 지니고 있던 칼에 손을 댔다. 그러면서 서로를 경계하며 얼굴을 마주 본 채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선다. 그러다가 서로 싸울 뜻이 없음을 알게 되면 칼을 거두고, 무기를 쓰는 오른손을 내밀어 적의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였다. 즉 이렇게 남자들이 우호적 관계를 맺고 싶을 때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오른손을 내민 것이 유래. 오른손이 곧 무기를 쥐는 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도 악수는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반드시 오른손으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손 쥐는 법 : 악수는 우정의 표시인 만큼 너무 느슨하게 쥐면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손가락 끝을 잡거나 스치듯 가볍게 쥐는 것도 실례다. 남자들끼리의 악수일 땐 오히려 적당히 힘을 주는 편이 낫다. 여성일 때는 힘을 약간 뺀다. 손을 너무 오랫동안 쥐고 있지 않도록 주의한다.◎ 손 흔드는 법 : 상하로 가볍게 흔들되 자신의 어깨보다 높이 올려서는 안 된다. 여자와 악수할 때는 살짝만 움직인다.◎ 시선 처리 : 눈을 똑바로 본다. 특히 서양인과 악수할 때 시선을 돌리면 비굴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앉고 서기 : 상대가 악수를 청할 때 남성은 반드시 일어서야 한다, 여성은 앉은 채로 악수를 받아도 상관없다.
Ⅰ. 序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바고 기모노 아닐까 싶다. 새하얀 화장에 화려한 머리장식, 그리고 약간은 불편해 보이는 높은 게다를 신고 촘촘히 걸어가는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성들, 그 화려한 전통을 뒤로하고 오늘날에는 왕실의 결혼식, 혹은 게이샤나 가부키 등에서만 그 전통적 명맥이 유지되고 있고, 일반인들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 등에 간소화 된 기모노를 입고 나가는 정도이다.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본 전통 문물 가운데 기모노 만큼 많은 오해를 받은 것도 드물다. 기모노라면 으레 여성용 전통의상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여성의 기모노 차림을 성적인 관심에서 해석, 헤픈 성문화 의 상징으로 치기까지 한다. 이러한 말도 많이 많으면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중 하나인 여성의 기모노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Ⅱ. 기모노의 역사일본의 민족의상인 기모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즐문토기 시대에는 통형의 옷감에 구멍을 뚫었을 뿐인 관두의 라고 불리는, 헐렁한 드레스와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이 시대 후기에는 상의와 하의의 둘로 분리되어 남성은 바지형태, 여성은 롱스커트 같은 것을 입게 되었는데 이때까지는 양복과 같은 이미지였다. 야마토 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의복도 대륙풍이 되어가다가 나라시대의 후기에 들어 일본의 독자적인 풍토에 맞는 실루엣이 탄생한다. 여성은 긴소매와 옷자락을 갖추고 있으며 이것이 지금의 기모노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헤에안 시대에는 보다 현대에 가까운 형태의 기모노가 태어난다. 귀족 여자는 많은 옷깃을 겹친 12단을 착용, 서민은 검소한 기모노에 가는 띠를 두른 모습으로 생활하였다. 그리고 헤에안의 귀족사회로부터 무가 사회로 옮기면서 의복은 활동하기 편함이 중시되고 심플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매 길이가 짧은 코소데 가 중심이었고 띠도 홀쭉한 것을 앞에서 여미는 형태였다.에도 시대에 들어서 서민들에게도 경제력이 생기면서, 기모노와 띠의 소재나 모양, 뿐만 아니고 띠를 묶는 방법, 머리모양, 소품의 세공 등에 혁신적인 변화가 생겼다. 염색의 유우젠조메 나 기모노직물의 니시징오리 가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것이 에도 시대의 기나긴 쇄국에 의해, 한층 더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로서 발전되며 일본 전통의상의 기반이 완성된다. 에도 시대가 끝나고 메에지가 되어 양장이 도입되면서 차츰 서양 스타일의 생활습관도 도입되어 정착된다. 1910년대 중반에는 서양식의복 생활이 자리잡는다. 따라서 기모노는 중요한 관혼상제의 의식이나 사치를 즐기는 의복의 상징으로 변화해 왔다. 이처럼 기모노는 일본의 역사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모양 및 양식문화가 바뀌어 왔으며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옷으로 정착하게 되었다.Ⅲ. 기모노의 의미와 형태1. 기모노의 의미기모노란 입다 를 의미하는 기루 와 모노 가 합성되어 생긴 말이다. 즉 기모노하면 광의로는 한자로 알수 있듯이 일본인들이 입는 모든 옷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기모노는 무늬·색상·소재·직물·염색 등 미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 장인적 요소가 집약되어 나타나는 일본적인 미의 총체이다. 따라서 기모노의 변천사는 일본사의 변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모노는 서양식 양복과는 달리 남방의 개방적 요소를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 고온다습한 여름과 추운 겨울을 동시에 어우를 수 있는 포용성과 작은 키를 커버해 줄 수 있는 기능성을 가미해서 진화시켜온 의복체계이다.2. 기모노의 기본형태일본의상의 최초의 형태는 관두의 로 목부분에 구멍이 있어 머리를 넣는 기모노였다. 후에 불편하다 하여 앞을 가로로 가르고 앞쪽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그리고 옆선의 트인 부분은 맞물려 박고 소매를 붙이게 되었다. 현대 기모노의 기본형태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길이에 소매는 길고 넓으며 목부분이 V자로 패여있고 단추나 끈이 없이 왼쪽의 옷자락으로 오른쪽 옷자락을 덮어 허리에 오비를 둘러 묶는다. 목적에 따라 옷감의 종류, 모양, 색깔, 입는 법 등이 다르고 기혼여성과 미혼여성, 또 정식방문인지 가벼운 외출인지에 따라서도 옷 모양이 다르다.Ⅳ. 기모노의 종류1. 후리소데기모노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이 후리소데이며 미혼여성의 제1예복으로 정해져 있다. 성인식, 사은회, 결혼식 등에 입는다. 소매의 길이에 따라서 대,중,소 후리소데로 다양하다. 무늬는 에바하오리 (큼직한 그림 무늬가 있는 여자용 덧옷)모양이며 무늬가 바느질 자리를 따라 연결되어 기모노 전체가 한 장의 그림처럼 되어있다. 예전에는 후리소데에 다섯가지 문양만을 달게 했지만 지금의 후리소데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무늬도 특별하게 정하고 있지는 않다.2. 토메소데기혼여성의 제1예복이며 격조가 높은 기모노로 토메소데에는 쿠로토메소데와 이로토메소데가 있다.먼저 쿠로토메소데는 무늬는 상반신에는 달지 않고 옷단에서 옷깃까지는 에바하오리 모양으로 이루어져있다. 상반신은 반드시 소메누끼 (무늬만 바탕빛깔로 남기고 다른 부분을 염색하는 것) 다섯문장을 넣는다. 예전에는 토메소데는 흰 속기모노를 겹쳐서 착용했지만 현재에는 옷이 두 겹으로 된 것같이 보이기 위하여 깃, 소매, 옷단 따위만을 이중으로 하는 것으로 해서 간소화하고 있다. 결혼식이나 피로연에서 친구들이 입고 신랑신부의 양친, 친족중 기혼부인들이 착용한다.같은 바느질로 바탕이 칼라인 것을 이로토메소데라 하는데 문양수에 따라 착용범위가 넓어진다. 다섯문양이라면 쿠로토메소데와 같은 격으로 입을 수 있다. 기혼, 미혼에 관계없이 여성예복으로 격조 높은 복장이다. 공식적인 축하의례자리에서도 착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바탕색과 격조를 살려서 사교용으로도 입을 수 있다. 결혼식, 피로연 공적인 파티 등에서 입을수 있으며 요즘에는 주빈이나 초대손님이 이로토메소데를 입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3. 호우몬기호우몬기는 이로토메소데나 후리소데 다음격의 약식 예복으로 기혼, 미혼여성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고, 또한 모양도 에바하오리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사교용으로도 많이 입게 되었다 현재에는 사교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호우몬기는 흰색감을 한번 가봉하고 나서 밑그림을 그리고 다시 솔기를 뜯어 밑그림을 따라 염색한다고 한다 그림 전체, 또는 바느질선을 따라서 전체적으로 무늬가 연결되어 있다.4. 이로무지이로무지는 찌리멘 (오글쪼글한 비단) 또는 무늬가 들어간 감에 색을 들인 글자 그대로 전체적으로 문양이 없는 기모노이다.검은 색은 상복이 되지만 화려한 색의 바탕무늬에 광택이 들어가 두드러지는 기모노는 축하석에 어울리며 수수한 색으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상복으로 입을 수 있다 문양이 들어가면 약식예복이 된다.5. 쯔케사게호우몬기 다음가는 약식예복으로 전후 기모노 제작의 간략화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과 전시중 화려한 기모노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고안된 것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는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기모노이다.한번 봐서는 호우몬기와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다른점은 무늬의 배치법이다. 호우몬기나 후리소데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에바하오리 식인 것에 비해 쯔케사게는 어깨, 소매, 깃에 독립된 문양이 놓이게 된다. 만들 때 상하가 바뀌지 않도록 그림을 그리는 것이 포인트이다. 호우몬기가 기모노를 한번 가봉하고 나서 문양을 그리는 것이라면 쯔케사게는 가봉한 그 상태에서 문양을 넣는 것이다. 옷가게에서도 쯔케사게와 코몬은 가봉 그 형태로 입을 수 있다.6. 코몬기모노 가운데 가장 캐주얼한 기모노이다.염색한 기모노인 경우는 카따소메 라고 해서 형지 를 사용해 같은 문양이 전체에 연속해서 놓이는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는 사교용 기모노이지만 격식있는 문양이나 에도코몬과 같이 멀리서 보면 이로무지처럼 보이는 섬세한 무늬의 기모노는 격상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입을 수 가 있다.Ⅴ. 오비와 그 종류일종의 허리띠로 작달막한 일본인의 체구를 눈가림하여 보다 예쁘게 보이기 하기 위한 미적 욕구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이다. 원래의 기모노는 좁다란 띠를 둘러서 앞에서 묶었으나 임진왜란 무렵 일본인들이 한복의 넓은 옷고름과 선교사들의 사제복 허리에 새끼를 꼰 듯한 띠를 두르고 오른쪽 허리춤에 예쁘장하게 매듭지어 늘어뜨린 모양을 접목시켜 오비가 퍼지게 되었다.기모노의 진짜 특징은 허리에 칭칭 감는 오비에 있다. 오비는 모든 외래 문화를 종합하여 일본인의 체형과 풍토, 습속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즉, 허리띠를 몇겹씩 감아 뒤쪽으로 매듭을 지은 복식은 일본이 유일하며 오비를 뒤쪽에 감아 배면미를 연출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감상할 때 앞쪽보다는 옆이나 뒤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깊은 계산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오비의 위치를 허리위로 올림으로써 상반신에 비해 아랫도리가 길게 보여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즉, 오비는 작달만한 일본인의 체구를 둘로 나누어 조금이라고 예쁘게 보이기 위한 눈가림의 미학이다. 또한 넓은띠로 몸을 감싸므로 위하수가 줄고 혈압상승을 막는 효과를 준다. 대표적인 오비의 종류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