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 실크로드 이야기 (Life along the silk road)저자 : 수잔 휫필드 (Whitfield, Susan) 지음 / 김석희 옮김발행 : 2001년 7월 27일ISBN : 8987608204들어가기아무리 철저하게 사료에 바탕을 두어 사실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해도, 역사소설처럼 씌어진, 또는 그런 분위기를 내는 책에는 '역사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주저된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인 를 보면서 이걸 고증이 완벽한 역사드라마라고, 그 대본이 철저히 역사성을 강조한 대본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이번에 내가 읽고 소개하려는 는 역사서가 주는 중압감을 떼어내게 하고, 남의 나라, 다른 세상 이야기로 치부되기 십상인 역사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는 멋진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당대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내가 상상할 수 있고 가까이 느껴보았다는 것이 커다란 보람이었다. 근대와 현대를 다룬 책이 아닌 이상에야 모든 게 괴리감을 느낄 만큼 먼 과거 이야기이다. 그만큼 독자를 책으로 흡입시키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 우리와 가까운 나라 사람인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평설 가 왜 대작인가 하는 사실은 말보다는 읽어봄과 동시에 쉽게 깨달을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내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책을 한 장, 두 장 넘겨가며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치 전설이나 설화로 치부할 만큼 오래된 이야기, 개개의 사실들을 치밀하게 엮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그 과정에서 역사를 재미있는 오락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데에 한 몫 하는, 뜻하지 않는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을 텐데, 이 책은 최대한 그런 점을 배제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분명히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고 당대인의 삶을 엿보기에 충분한 책임에도 무게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이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우리나라가 동아시아문화권에 소속되었고 과거나 지금이나 중국과 일본과 어울리며 발전해나가는 터라 그간 자주 접하는 외국의 역사도 대개는 중국과 일본의 그것이었다. 마냥 내겐 낯선 ‘실크로드, 그저 비단길, 동서 교역의 통로’ 정도의 지식의 확장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티베트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사진과 자료를 찾아본 적도 있었고, 푸치니의 오페라 속에 엿보이는 페르시아의 왕자가 중국에 올 수 있었던 이유,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의 모든 것이었다.사실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은 관점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중국식으로 보면 현장이 쓴 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살기엔 매우 척박한 사막과 고원이 존재하는 저 너머의 땅 ‘서역’이다. 현재는 '중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자주 접할 수 있고 '유목민족 제국'이라 하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다.이 중 가장 무미건조하지만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인 '중앙아시아'로 쓰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내가 이 책을 읽고 있던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른 책을 찾아보았는데 Luc Kwanten의 란 역사서가 있었다. 실크로드 이야기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을 만큼 철저히 역사서술을 한 이 책에 비하면 는 보조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역에 관한 제대로 된 역사책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한국의 번역 풍토 탓만은 아니다. 연구자원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Luc Kwanten의 책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본격적인 역사시기부터 원대 멸망이후 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심은 몽고제국의 역사인 반면에 는 750년부터 1000년의 250년간, 흔히 실크로드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책읽기는 로써 즐거움과 흥미를 불러일으킨 다음에 더 관심이 생긴다면 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요 변수는 서북의 위구르, 남의 티베트, 동의 중국이다. 가끔 투르크(돌궐)가 끼어들기는 하나 이들은 위구르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연대를 잠시 살펴보면, 중앙아시아의 600-800년은 투르크 제국, 800-1200년은 위구르 제국들, 1200-1400년은 몽고제국으로 대변되고, 이에 대응하는 중국사 연대는18-907년은 당, 960-1279년은 송이 된다. 이 모든 시기에 걸쳐 남쪽은 티베트가 장악하고 있고, 티베트와 중국은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국에 복속된 티베트와 중국의 불화는 오랜 연원을 가진 것임을 곧바로 알 수 있다.전성기라 알려져 있는 750년 경의 중앙아시아는 서쪽 끝에 비잔틴 제국이 있고 탈라스 강을 경계로 당이 진출해 있었다. 북쪽으로는 동투르크가 그리고 남쪽으로 티베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사이에 깐쑤회랑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는데 당이 명목상으로는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기는 하나 상시적 주인은 없는 쟁패의 지역이었다. 다시 말해서 당이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위구르의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기 때문에 당은 이들과 화친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당나라 목종의 누이인 태화공주가 위구르로 시집가는 것은 이런 화친정책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바로 이 당시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지은이 수잔 휫필드는 이 실크로드 지역의 최대 번영기 250년간의 이야기를 10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주고 있다. 자칫 지루한 이야기가 돼버릴 수도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 전개로 생동감을 주며 사실성과 객관성에 근거한 서술을 통해 역사서를 읽고 있음에도 100%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실크로드 주변지도와 함께 프롤로그를 지나 펼쳐지는 열 가지 테마의 이야기책은 몇몇 실크로드 역사속의 평범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실크로드 300년사를 보여준다. '주인공'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 보다는 당시 각 직업군에서 뽑힌 사람들로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1. 상인이야기 : 나나이반다이크 (730-751)소그디아나 지방 판지켄트 출신의 상인 나나이반다크가 장안에서 여러나라 사람들 어울리는 장면은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장안의 모습을 통해 실크로드의 국제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마르칸트 사막을 지나 당의 수도 장안까지,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하는 모습은 마치 상인들의 전쟁터이자 아이러니하게도 상인들에겐 천국과 같은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이동해야하는 험한 지형들은 예외일 것이다. 웃음.2. 병사이야기 : 세그 라톤 (747-790)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이 들려주는 당과 티베트의 치열했던 싸움 이야기를 보며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듯 싶다. 왜냐하면, 바로 유명한 고선지장군의 일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병사 세그 라톤은 적장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고선지 장군을 존경해 그의 무용담을 후배 병사들에게 전했다는 티베트 병사의 이야기는 중앙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의 고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3. 목부이야기 : 쿰투그 (790-792)위구르인 쿰투그의 이야기는 깐수회랑을 둘러싼 당과 티베트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목부란 조랑말을 이끌어다 파는 이를 가리키는 말인데 위구르인 쿰투그는 당과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죽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유목민의 생활상과 위구르와 몽고의 연합전선도 살펴 볼 수 있다.4. 공주이야기 : 태화 공주 (821-843)당 목종의 누이 태화공주는 화친정책의 제물이 되어 돌궐의 카간에게 시집가게 된다. 중국의 통치권이 먼 서역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대변하며 화친정책으로 정략결혼을 택하였던 중국의 당시 화이사상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5. 승려이야기 : 춧다 : (855-870)카슈미르의 승려 춧다가 중국의 우타이산으로 순례를 떠나 고생 끝에 귀국한 이야기를 통해 당시 불교의 모습과 토속신앙을 통해 당대인의 종교생활을 엿볼 수 있다.6. 기생이야기 : 라리슈카 (839-890)쿠차 출신의 기생 라리슈카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처럼 전쟁과 교역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던 이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군대를 따라 장안까지 오게 된 기생 라리슈카가 황소의 난 때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살아남은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기생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당이 망하면서 실크로드에는 위력적 지배자가 없어졌고, 그 자체로 독립적인 문화를 이룩해 나갔다. 실크로드하면 떠오르는 둔황 역시 형식적으로는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그것은 허명일 뿐이었다. 둔황의 비구니, 둔황의 과부, 둔황의 관리 ,둔황의 화가 등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마지막 네 명인데 이들이 살았던 시기가 바로 둔황의 전성기었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직접 촬영 >7. 비구니이야기 : 먀오푸 (880-961)어린 나이로 불가에 귀의한 둔황의 비구니 먀오푸를 통해 혼란했던 시기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의 난립, 그 속에서 불교적인 삶의 모습을 쓸쓸하게 그려내고 있다.8. 과부이야기 : 아룽 (888-947)과부라는 것을 통해 당시 이혼제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날 주는 시사점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상류층에 속해 있던 아룽이 신분 상승이 아닌 그 반대의 하강을 겪으며 불심에 의존했던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시사하는 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