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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빈슨크루소에 나타난 서구인의 제국주의
    주제 :『로빈슨 크루소』에 나타난 서구인의 제국주의서론본론1. 로빈슨 크루소의 소유욕2. 로빈슨 크루소의 지배의식3. 로빈슨 크루소의 우월의식결론서론인간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 지배하는 자인가, 지배당하는 자인가, 인간이 언제부터 타인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며 지배해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지배와 피지배 구조는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언제부터인가 지배계급들은 국가를 초월하여 피지배계급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의 역사는 제국주의에 의해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사전에서 ‘제국주의’ 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두 가지의 의미로 나타나있다. 첫 번째 뜻은 '넓은 뜻으로는 영토를 넓히고 권력을 널리 펴기를 목적으로 하는 주의' 이고, 두 번째는 '좁은 뜻으로는 1900년경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최후의 침략주의적 단계' 이다. 18세기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지배하려는 본성은 더욱 심화 되었고 경제적 강자는 더 많은 지배대상을 원했다. 당시의 서구유럽의 나라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세력을 뻗쳐 원주민들을 물질적 기반과 군사력에 필요한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 듯『로빈슨 크루소』는 영국의 식민지 개척을 향한 지배욕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중산층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지배 본성을 일깨워주며 영국의 제국주의를 지지하고 동참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크루소는 영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물질적으로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크루소는 이런 안정적인 틀을 과감히 버리고 해외로의 모험을 떠난다. 이러한 해외 진출이 내재되어있던 제국주의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크루소의 모험을 통해 당시 서구인의 제국주의를 분석하고자 한다.본론1. 로빈슨 크루소의 소유욕크루소는 배가 난파되어 외딴 섬에 도착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기 때문에 처음에 그는 부모님 곁을 떠나온 것에 대해 후회하며 절망한다. 하지만 크루소는 합리적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점점 무인도에 적응해간다. 처음에는 비참한 장소로 여겼지만 어느새 애정의 장소로 변해갔다. 크루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섬 생활에 만족해하고 이 섬을 구원해야할 섬이자 개척해야 할 섬으로 인식하게 된다. 더욱이 스스로를 섬에 사는 모든 생물체 중 가장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며 더 나아가 섬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크루소는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혜택을 보았던 중산층이다. 토지를 소유하며 경제권을 확보하고 권력 행사도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의 것이라는 소유의 개념에 대해 분명했다. 토착민들을 물리쳐 이 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지배하면서 자신을 최고 권력의 소유자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크루소 역시 보통의 인간들처럼 지배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고 그 욕망을 이 섬에서 실현시키고자 했다. 그 욕망을 영국에서는 실현 할 수 없다는 것을 크루소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그의 지위와 권력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곳 섬에서는 그는 왕이 될 수 있고 절대 권력을 행사 할 수 있고 그의 명령은 무조건 따르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대항할 어떤 상대도 없다. 크루소는 자신을 섬 전체의 왕이자 주인이라 칭하고, 모든 종속적인 생명은 그의 절대적인 명령에 달려있다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제 충분한 식량과 재물을 바탕으로 하여 섬의 완전한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2. 로빈슨 크루소의 지배의식홀로 섬에서 생활하던 크루소에게 어느 날 우연히 식인종이 나타난다. 크루소는 식인종을 살려주게 되면서 그 식인종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식인종은 크루소가 가지고 있던 총 때문에 그의 동료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상황에서 식인종이 크루소에게 복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살기 위한 방법으로 총을 가지고 있었던 크루소에게 복종을 약속해야만 했던 것이다. 시각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크루소는 오히려 식인종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복종을 자청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식인종은 크루소를 죽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낯선 총이 겁이나 식인종은 크루소에게 완전히 항복하고 노예가 될 것을 자진 서약하게 된다.크루소는 식인종에게도 이름이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고 만난 날이 금요일이어서 ‘프라이데이’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에서 동등한 인간임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그에 대한 지배를 하겠다는 크루소의 의사로 보여 진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자신의 노예로 인식시키기 위해 주인님이라는 호칭도 가르쳐 주었다. 또한 복종을 가르치면서 “예, 아니오,” 등 복종을 위한 대답도 가르쳤다.제국주의자들이 흑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문명화’를 내세워 그들의 논리를 충족시켰듯이, 크루소도 주종관계를 확립한 후 프라이데이에게 서구의 문화를 전파한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개종시키고 기술을 가르쳐준다. 그 과정에서 크루소는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이교도들도 신앙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비록 야만인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와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빠져있는 크루소는 이러한 상대방의 종교제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다. 크루소는 서양인이 지닌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종교관에 젖어 있기 때문에, 프라이데이가 지닌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척하고 개조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즉, 타인을 대하는 크루소의 태도에는 사물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이기주의적인 태도이며, 타인을 자기 문명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개발함으로써, 자기 문명화하려는 서구문명의 제국주의적 심리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더욱이 크루소는 더 많은 식민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명령과 뜻에 순종할 수많은 백성들을 필요로 했다. 늘어나는 사람들의 수는 자신의 권력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사람들을 완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절대적 군주의 입지에 서게 된다. 그는 식민지 조건들을 제시하고 자신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할 것을 강요하여, 군대의 총사령관이며 전제군주로서의 권한을 갖게 된다. 이는 오랫동안의 기다림과 소외된 생활에서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이다. 원래 그의 목표는 프라이데이라는 노예를 소유하고 섬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를 기점으로 하여 정치적인 지배를 원했던 것이다.3. 로빈슨 크루소의 우월의식프라이데이에게 크루소는 그가 스스로 열등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해변 가에서 사람의 뼈를 발견했을 때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야만적인 행동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비하하면서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는 그들의 문화보다 우월하고 우월한 인간임을 내세우며 강조한다. 이는 크루소가 완전한 지배를 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야만족이란 사실은 유럽의 문명과 원시부족이 가진 문화 간의 대비를 통해 열등의식을 그들에게 심어주게 되며, 원주민들을 정복하는 적절한 구실로 이용되는 것이다. 이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 크루소의 일방적인 판단이 기준이 되어, 원시부족의 것은 모두 제거되어야할 잔인하고 더러운 열등문화로 표현되고, 영국적인 것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고귀한 것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사용한 비서구인에 대한 묘사와 유럽인들에 대한 묘사가 근본적으로 차별적이라는 것을 알 게 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이 원주민에 대한 묘사와 난파선에서 떠내려 온 유럽인 묘사의 비교 차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타인의 이미지가 제국주의적 시각에 의해 비쳐지는 양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유럽인들에 대한 묘사는 난파선에서 익사한 소년의 모습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데, 난파선에서 떠내려 온 조끼와 반바지 푸른 린넨 셔츠와 같은 옷가지들로 서구인을 표현한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유럽인들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독후감/창작| 2010.02.27| 4페이지| 1,5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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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라이어 독후감 평가A좋아요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아웃라이어목차프롤로그 로제토의 수수께끼1부 기회1장 마태복음 효과2장 1만 시간이 법칙3장 위기에 빠진 천재들4장 랭건과 오펜하이머의 결정적 차이5장 조셉플롬에게 배우는 세 가지 교훈2부 유산6장 켄터키 주 할란의 미스터리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8장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9장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에필로그 자마이카에서 온 이야기프롤로그 로제토의 수수께끼“그들은 제 수명을 다하고 늙어서 죽었다. 그게 전부이다.”-일반적인 규칙을 넘어서는 그 무엇, 아웃라이어로마에서 동남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이탈리아 포자지방의 아펜니노산맥 기슭에는 로제토 발포르토레라는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의 로케토는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나름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당시 오클라호마 대학 의대에서 강의를 하는 의사였던 울프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5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 여름을 보내러 갔다가 지역의료사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게 되었죠. 강연이 끝나고 그 지역의 의사 한 분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저는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의사가 ‘저는 이곳에서 17년간 일해 왔어요. 그동안 숱한 환자를 돌봐왔는데 이상하게도 로제토 지역에 사는 65세 미만 사람들 중에 심장마비 환자가 거의 없었습니다.’라고 하더군요.”로제토에서 55세 이하는 누구도 심장마비로 죽지 않았을 뿐더러 심장질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65세 이상의 경우에도 로제토의 심장마비 사망률은 미국 전역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1950년대라면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심장병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이었으므로 놀라운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미국에서는 심장마비가 65세 미만 남성의 사망원인 중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의사가 특정 지역에서 심장마비 환자를 만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제토는 미국인의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서입학해 펀치 카드 대신 공유시스템을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미시건 대학의 컴퓨터시스템에 버그가 발생해 원하는 만큼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학교 측에서 24시간 컴퓨터 센터를 열어두겠다는 결정을 내린 덕분에 그는 밤새도록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엄청난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조이는 유닉스 코드를 다시 쓰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것을 맡을 수 있었다. 물론 조이는 명석했고 무엇보다 배우고 싶어 했다. 이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가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미시건에서 하루에 8~10시간이나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버클리에 있을 때는 밤낮으로 프로그래밍을 했죠. 다 합하면 5년쯤 되네요. 그러면 얼추 1만 시간은 되는 것 같네요.”-두 번째 증거: 비틀스, 차별화된 밴드의 비밀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는 미국에 오기 7년 전인 1957년부터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거쳐 온 오랜 준비기간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키선수와 빌 조이. 세계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뭔가가 발견된다. 1960년, 비틀스가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고등학교 록 밴드에 불과할 때 그들은 독일의 함부르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함부르크에서는 과연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 급료가 제대로 나온 것도 아니고 음향이 훌륭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귀를 기울여 들어주었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특별한 것은 단지 그들이 엄청난 시간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우리는 일주일에 7일 밤을 연주했습니다. 우리의 연주 실력은 점점 좋아졌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밤새도록 연주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우리는 그곳에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고 노래에 마음과 영혼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여덟 시간씩 연주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곡들과 새로운 연주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력이 점점 좋아졌죠.”비틀스는 1년 반 넘는 기간에 270일 밤을 연주했다. 그들이 처음으문이군요. 확실히 하버드의 정교수직이라면 수락할 겁니다.”그는 정말로 외롭게 살아왔다. 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삶을 지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온 것이다.“하버드는 기본적으로 권위적인 집단이고 이윤 동기에 따라 움직이죠. 그래서 경직되어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지 아니면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계속 돈을 받는 것을 택할지를 놓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들은 저에게 선을 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받아내려 할겁니다.”-재능을 알리는 능력, 그리고 통찰력크리스 랭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이상하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는 재정 지원 서류 작성에 신경 쓰지 않아 기회를 놓쳤고 그는 학위를 따지 못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이 늘 하는 것처럼 수업을 오후로 옮기려다 뜻대로 하지 못하고 거기서 뚝 멈춰버렸다.또한 리드 대학과 몬태나 주립대학의 교수들은 랭건의 고난에 왜 그토록 무관심했을까? 일반적으로 교수는 그처럼 영민한 학생을 보면 무척 기뻐한다. 특히, 리드 대학처럼 작은 교양학부 대학은 관료주의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 학생을 돕기 위해 장학금을 마련해주는 것은 교수들이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이다.하버드에 대한 이야기를 보더라도 랭건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기관의 성격과 문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지 아니면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계속 돈을 받는 것을 택할지를 놓고 갈등하게 된다고? 대학교수가 민간기업 대신 대학에 들어가 비교적 낮은 급료를 받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대학이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도록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랭건은 하버드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오펜하이머가 어린 시절에 보여준 능력은 모든 면에서 크리스 랭건과 비슷했다.송은 모두 옆으로 밀려났다. 연방정부의 규제완화로 돈을 빌리는 것이 쉬워지고 시장이 국제화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던 것이다. 이때를 틈타 투자자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갔고 더불어 기업의 인수합병 건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얀 신발 로펌들이 결코 하고 싶어 하지 않던 적대적 인수합병 분야가 확 떠오르면서 법조계에 갑자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그러면 플롬의 사례가 빌 게이츠나 빌 조이의 이야기와 얼마나 유사한지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겠다는 희망 따위도 없이 앞날이 뚜렷하지 않은 분야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분야에서 그야말로 붐이 일어났고, 그들은 이미 1만 시간의 훈련을 치른 다음이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플롬 역시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그는 결코 역경과 맞서 싸워 이겨낸 것이 아니다. 대신 역경 속에서 출발했고 결국 그것이 기회가 되어주었다.※두 번째 교훈 : 통계학적 해운-유태인이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기 가장 좋은 시대1919년 브루클린 로스쿨에 입학한 모리스 잰클로우는 루마니아 출신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모리스에게 모트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변호사가 된 그는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가 실패한 일에서 아들은 어떻게 성공을 거뒀을까? 유태인이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대는 언제였을까? 바로 여기에 모트 잰클로우의 성공을 설명해주는 요소가 들어 있다. 나아가 그것은 조셉 플롬의 성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두 번째 열쇠이다.-대공황의 통계학크리스 랭건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루이스 터먼의 연구는 1903~1917년에 태어난 IQ가 아주 높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연구결과 아이들은 진짜 성공한 그룹과 진짜 실패한 그룹으로 나뉘었으며 그 그룹은 가정환경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터먼의 연구는 부모의 직업과 부모가 속한 사회적 계급이 중요하다는 아네트 라루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하지만 터먼의 연구결과를 부정할 수 있는 의 차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정서적 안정, 지적 수준, 신체적 요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독자 여러분도 이미 예상했을 테지만 관건은 그들이 어디 출신이냐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북부 출신 학생들은 그 일을 대체로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웃어넘겼다. 그렇다면 남부 출신은 어땠을까? 세상에, 그들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소멸 이후에도 살아남는 문화적 유산의 힘참으로 놀라운 연구결과가 아닌가? 우선 선조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선조들과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결론이 놀랍다. 그러나 이 실험에 참가한 남부 출신 학생들은 그들의 선조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영국계 선조의 자손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남부에서 자랐을 뿐이다.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며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오래도록 지속된다. 또한 문화적 유산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탄생시킨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소멸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나아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오늘,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그해 여름, 괌에서 생긴 일오전 1시 42분 26초, 대한항공 801편은 공항의 남서쪽 4.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야산 니미츠 힐의 언덕을 들이받았고, 6,000만 달러에 달하는 21만 2,000킬로그램짜리 강철은 시속 160킬로미터의 속도로 암석지대에 처박혔다. 구조대원들이 추락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254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다.-아비앙카 52편 추락의 비밀아비앙카 사고는 현대적인 비행기 추락의 대표적 사례로, 비행학교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사실 아비앙카 52편에서 벌어진 일은 훗날 괌에서 발생한 사건과 흡사하기 때문에 대한 항공 비행기의 추락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이 사건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날 저녁,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비앙카 52편은 롱아일랜드 위로 큰 원을 그리며 케네디 공항으로 재접근했다. 갑자기 기체의 엔진 중 하나가.
    독후감/창작| 2010.02.27| 30페이지| 2,000원| 조회(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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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디푸스왕
    운명과 맞선 인간 오이디푸스-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범우사,1998)을 읽고오이디푸스 왕은 그리스 비극으로 BC430-425년경에 쓰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소포클레스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비극의 중심을 신이 아닌 인간으로 그려냈다. 소포클레스에게 신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운명은 당혹스러운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그 운명 안에서 인간은 결연한 의지로 난국을 돌파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운명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아마 운명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작품일 수 있겠다.2500년이 지난 지금도 오이디푸스 왕이 최고의 비극 작품으로 극찬 받는 이유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인간의 의지와 신이 내린 운명의 대립이라는 주제로 인간 본연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신들이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운명이 더 없이 가혹하여 그런 운명과 싸운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망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오이디푸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과 대결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인다.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외면한다면 파국을 면할 수 있었지만 생존보다는 명예를, 외면적 가치보다는 내면적 가치를, 정신적 죽음이 아닌 육체적 죽음을 선택한다. 절대의지, 비타협성, 운명애가 오이디푸스를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불완전한 인간이 고통스럽게 깨달음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이디푸스 왕은 극의 절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평화롭던 테베에 갑자기 전염병이 들자 테베의 장로들이 오이디푸스 왕에게 마을을 구해 줄 것을 탄원한다. 오이디푸스가 사자를 보내 아폴론 신을 찾아 전염병의 원인을 알아보게 한 결과, 선왕인 라이오스 살해의 범인을 찾아낼 때까지 병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범인을 찾으리라 결심한다. 왕의 부름을 받고 나타난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꿰뚫어 알고 있지만, 오이디푸스 왕의 파멸이 두려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이 때, 왕비 이오카스테가 선왕 라이오스가 살해될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이디푸스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일찍이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것이며, 그 사이에서 불륜의 자식을 낳을 것이다.”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고 이것을 두려워해 방랑의 길을 떠나 테베 가까이 왔을 때 노상에서 말다툼 끝에 노인을 죽인 사실이 떠오르자, 오이디푸스는 유일한 목격자인 양치기를 불러 진상을 알아본다. 양치기의 말에서, 오이디푸스가 부왕 라이오스에게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것, 그가 길거리에서 죽인 노인이 아버지였고, 친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왕비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왕비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난다.이 작품이 신을 무조건 추종하던 그리스 시대의 것 이여서 그런지 미약한 인간이 신의 뜻을 거스르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은 후에 신탁의 위력이라는 것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소포클레스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가혹한 운명의 엄청난 힘과 그 앞에서의 체념이었을까? 하지만 오이디푸스를 단순히 운명에 대한 불거역성을 드러내기 위한 인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 개인의 사상이 반영된 엄청난 힘을 가진 운명에 대해서조차 정면으로 맞서려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인물이다. 또한 오이디푸스는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파멸하며 신에 의해 심판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눈을 찔러 자기 자신을 처벌한다. 신 앞에서 무능한 인간의 모습만을 보여주기 보다는 진정한 인간으로써 탐구로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과 신에 의해 농락당한 자가 아니라 비록 몰락했을지언정 자각적 인간으로써 자기 인생을 자기가 주도하며 살았다.
    독후감/창작| 2010.02.27| 2페이지| 1,000원| 조회(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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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놉티콘 서평
    감시와 보호의 경계 ?파놉티콘 정보사회-정보감옥 책세상, 2002? 을 읽고요즘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은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에는 엿보기 심리가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 볼 생각만 하고 있고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사생활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불이익은 항상 간접적이고 미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책은 파놉티콘의 역사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벤담은 죄수를 교화할 목적으로 파놉티콘 이라는 원형 감옥을 설계했다. 이 감옥은 중앙의 감시공간을 어둡게 처리하여 죄수로 하여금 스스로 규율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점차 규율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감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파놉티콘은 단순한 감옥 체계를 넘어서 수많은 후세대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푸코이다.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이 감옥의 세계를 넘어서 일상으로 확장된다는 논의를 펴고 있다. 한편 셈플, 힘멜파브와 같은 학자들의 파놉티콘에 대한 주장도 비교하여 또 다른 해석을 담고 있다.벤담의 파놉티콘은 푸코에 의해 현대사회의 규율 매커니즘으로 탈바꿈했고, 푸코의 파놉티콘은 정보 파놉티콘과 전자 파놉티콘, 수퍼파놉티콘으로 이어졌다. 감옥과 교도소뿐만 아니라 일상 공간에 만연해 있는 폐쇄회로TV나 몰래카메라, 사이버공간에서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정보화 사회의 큰 미덕인 편리성이 때로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감시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감시가 범사회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라 해도 역파놉티콘 이라는 단어를 통해 개개인들의 감시가 오히려 권력에 대한 감시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감시체계를 오히려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역파놉티콘은 가능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민운동과 같은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 또한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9.06.22| 1페이지| 1,000원| 조회(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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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문화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 스크린쿼터
    제목 : 우리문화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 스크린쿼터1. 서론스크린쿼터 의미와 논란의 배경2. 스크린쿼터 폐지에 관한 쟁점 사항가. 스크린쿼터의 의미 상실나. 스크린쿼터의 경제 논리다. 스크린쿼터의 적절성3. 결론우리문화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 스크린쿼터1. 서 론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는 1966년 제2차 영화법 개정을 통해서 도입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국산영화 보호정책이다. 스크린쿼터 제도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대해 특정 영화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장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외국영화의 무차별 시장 잠식을 견제하며 자국 영화의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연간 상영일수의 일정 기준 이상을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크린쿼터의 시행으로 경쟁력이 낮았던 한국영화는 거대한 자본으로 만들어진 타국영화에 맞설 수 있도록 조그마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하지만 1998년 한미투자협정(BIT))과정에서 미국이 스크린쿼터의 단계적 폐지를 협정체결의 조건으로 내걸면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스크린쿼터가 한미투자협정(BIT)과 관련해 “자국 생산물의 사용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에 위배 된다며 현행 146일이 보장된 한국영화 상영일수를 73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영화계는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국내영화산업을 몰락하는 위협상황을 몰고 올 수도 있으며 문화정체성을 훼손시키는 처사라며 축소 자체를 격렬히 반대해왔다. 지속적인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지난 2006년 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체결을 위해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면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기로 합의하였다. 결국, 상영일수를 반으로 줄인 새 스크린쿼터 제도가 2006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쳤던 영화인들의 대규모 집회로 스크린쿼터 문제가 더 이상 영화인들만의 것이 아니었으며, 우리 영화의 볼 권리를 갖고 있는 우리 국민의 문제로 인식하게 했다. 그리하여 스크린쿼터 유지 여부는 영화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스크린쿼터 폐지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부분을 다루어 보고, 스크린쿼터 폐지를 찬성하고 있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며, 왜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2. 본 론(1) 스크린쿼터의 의미 상실스크린쿼터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첫 번째 근거는 최근 한국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흥행 성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2001년 이후부터 보여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스크린쿼터 제도가 없어도 무방한 수치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우리 영화 점유율이 스크린쿼터의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40%를 넘어선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10여 년 전인 1993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15.9%에 불과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여 그 가변성이 큰 영화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스크린쿼터의 존폐를 논하는데 있어 그 근거로 최근 몇 년간 성적을 기준으로 잡는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소수의 빅 히트작들에 의해 주로 견인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논리의 위험성을 더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오히려 최근 10년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에 관한 통계자료는 스크린쿼터 제도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크린쿼터가 실제적으로 집행되기 시작한 것은 스크린쿼터 감시단이 조직된 1993년부터였다. 스크린쿼터 감시단은 자체적으로 전국의 극장들을 조사해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지 않는 극장을 행정당국에 고발했고,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스크린쿼터 제도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한국영화 제작의 안정적인 기반으로 자리 잡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을 94년 20%대로, 99년에는 30%대로 진입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또한 우리는 스크린쿼터 제도를 섣불리 폐지했다가 영화시장이 황폐화 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만과 멕시코이다. 대만은 80년대 후반까지 쿼터제를 실시했지만, WTO 가입이라는 명목을 들어 쿼터를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 35%였던 대만영화의 자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94년에는 23%, 95년에는 15%, 96년에는 4.6%로 곤두박질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멕시코 역시 미국과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서 30%였던 스크린쿼터를 단계적으로 줄여가다가 98년에는 이를 완전히 폐지했다. 그 결과 88년에 107편에 이르렀던 제작 편수가 2002년에는 14편으로 급감하였으며, 최근에는 이와 같이 몰락해가는 멕시코 영화를 살리기 위해 야당을 중심으로 스크린쿼터를 되살리는 법안을 만들었으나, 이미 영화시장이 할리우드 영화 중심으로 재편되어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가 자유롭게 수입되는 전 세계의 나라들 중에서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30%를 넘어서는 나라는 한국, 프랑스, 일본 단 세 나라 밖에 없다. 한국은 스크린쿼터로, 프랑스는 방송쿼터로, 일본은 배급쿼터로 자국의 시장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영화시장에서 스크린쿼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2) 스크린쿼터의 경제논리스크린쿼터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두 번째로 내세우는 논리는 영화산업도 자유무역이 되는 일반상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영화산업에는 분명 문화적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영화의 상업적 측면을 보호하는 것이지 문화적 측면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영화제작자가 만든 영화를 보호하는 것이지 한국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 자체가 다국적이 되어있기 때문에 국가적 정체성의 개념에 매달리는 문화적 보호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한다.하지만 영화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화상품이다. 문화상품으로서의 영화의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는 핵심적 모토가 된 지 오래다.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국제네트워크(INCD))는 “문화상품은 일반상품과 다르므로 국제무역 논리에 지배돼서는 안된다”라고 천명한바 있다.) 이는 대다수의 국가가 미국의 독과점을 막고 자국의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는 산업이기 전에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와 삶이 표현된 영화는 우리 한국영화 밖에 없다. 이런 한국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며 문화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스크린쿼터는 국내의 문화적 순수성을 유지하고 외국으로부터의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의 영향을 필터링 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자국의 문화를 지키고,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의 영향을 막는 역할을 스크린쿼터가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킬 권리와 의무만으로도 스크린쿼터는 정당하다.(3) 스크린쿼터의 적절성스크린쿼터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세 번째로 내세우는 논리는 과연 스크린쿼터만이 한국영화의 정체성과 존립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냐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국산영화를 무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스크린쿼터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정책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스크린쿼터보다는 직접적인 세제혜택이나, 보조금을 지급하고 전용관을 건립하는 등 제작이나 상영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직접적인 세제혜택, 보조금 지급, 전용관의 건립 등의 방안은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좋은 의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스크린쿼터 제도와 더불어 부가적으로 실시되어야 할 의견들이지, 스크린쿼터를 폐지하고 그 대체 수단으로 거론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예술임과 동시에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상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 배급 등 모든 것들이 돈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규모는 채 1조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시장의 규모는 우리나라 1년 총 예산의 5배가 넘는 600조원 규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더라도 이는 분명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즉, 스크린쿼터와 같은 강력한 보호 정책이 아니라면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의 물량공세를 견뎌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만이나 멕시코의 경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사회과학| 2009.06.22| 5페이지| 1,500원| 조회(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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