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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이야기-역사인식구분법
    역사 인식을 위한 구분법< 목 차 >Ⅰ. 공간적(지리적) 구분Ⅱ. 시간적 구분1. 시대구분의 필요성2. 시대구분의 흐름3. 시대구분의 실제4. 시대구분의 한계와 효용성Ⅲ. 주제에 의한 구분Ⅳ. 비평Ⅰ. 공간적(지리적) 구분역사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를 먼저 공간적으로 구분한다. 역사는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전개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 공간적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통상적 방법이다. 이 때 세계 어느 나라건 자기나라의 역사를 우선적으로 하나의 단위로 구분한다. 미국은 미국사를, 한국은 한국사를 독립된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는 다시 서양사와 동양사로, 서양사는 유럽사와 아메리카사 등으로 엄청나게 세분해 들어갈 수 있다. 이 하나하나의 역사들이 합쳐져서 세계사가 되는 것이다.이처럼 역사적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간적으로 구분된 역사를 전공하다 보면 다른 지역의 역사에 대해 연구할 시간적 여유와 동기를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사와 동 ? 서양사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통합적으로 이해하거나,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자기가 연구하는 공간의 역사적 특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여타 지역 공간의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Ⅱ. 시간적 구분1. 시대구분의 필요성역사는 본질적으로 시간적 변화에 따른 지식이며,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의 일에 적합한 학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이해하는데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 역사를 몇 단계의 시기로 구분하여 인식하는 방법을 시대 구분이라고 한다. 역사적 성격이 비슷한 일정 시기를 하나로 묶고, 역사적 성격이 크게 다른 일정시기와 구분하는 방법이다. 그 목적은 역사를 일정 단계로 구분함으로써, 변화의 모습을 단계적?계기적으로 인식하려는 것이다. 또한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어떤 사건의 성격도 그것이 일어난 시대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2. 시대구분의 흐름① 초보적 시대구분과거의 역사서술에는 시대를 구분하려는 시도가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그해 그해의 중요한 일을 충실히 기록한 역사서술인 편년체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인 『춘추』는 과거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계절별로 충실하게 기록하였는데 이는 그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시대의 큰 변화를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다.『사기』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후한 시대의 반고는 하나의 왕조에 충실한 역사서를 저술했다. 그것을 ‘단대사’라고 한다.② 3분법과 4분법시대구분이 유용한 역사인식의 방법이라면, 시대를 몇 개 단위로 나눌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보통 3개 단위, 4개 단위로 나누는 데 3시기 구분법, 4시기 구분법이라 한다. 3분법을 정착시키는 데는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의 역할이 컸다. 서기 순으로 가장 멀리 존재한 시기는 고대, 자신들의 시대는 근대, 그 중간의 시대를 중세라고 불렀다. 이렇게 성립된 고대­중세­근대 시대개념은 역사적 연속성보다 그 단절성을 강조한다. 중세는 고대의부정과 극복이고, 근대는 중세의 부정과 극복이라는 것이다.③ 시대 구분의 기준역사 인식을 위해, 시기를 구분할 때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당연히 중요한 기준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는 국가의 발생, 통일과 분열, 봉건제의 성립, 중앙집권체제와 절대왕정의 확립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노예제와 농노제의 발생과 폐지, 자유계약 노동자의 출현, 골품제의 확립과 폐지, 여성의 정치 참여, 경제적으로는 농경과 목축의 발생, 우경의 사용, 화폐 시장 확대 등등 인간 삶의 여러 측면에 있어서 역사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질적 전환이 있다. 시대를 구분 할 때에는 이러한 질적 전환을 가능한 많이 고려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④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이들은 그 어떤 질적 전환보다도, ‘사회적 존재의 변화'를 질적 전환의 최고 자리에 앉혔다. 그들은 이러한 신조에서 인류의 역사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하였다. 이들의 시대 구분은 노예제 사회―농노제 사회―자본주의 사회의 3단계설이 된다. 각 단계는 시대 순으로 각각 고대, 중세, 근대가 된다. 뚜렷한 기준에 의해 역사를 구분한 예는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 외에도 더 있다. 헤겔은 ’자유‘라는 기준으로 인류의 역사를 동방사회―그리스 사회―로마 사회―게르만 사회의 4단계로 구분하였다.3. 시대구분의 실제① 3분법의 실제3분법은 고대―중세―근대 로 나누는 역사 구분법이다. 스위스의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의 사회와 문화의 독특함을 강조하고, 르네상스의 문화가 근대사회의 출발점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연속성보다 단절성을 중시한 것으로, 호이징가는 르네상스를 새로운 문화내용을 가진 시기이거나, 중세로부터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중세의 가을’이라고 보았다. 서양사의 경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시대를 근대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신대륙 발견이나 종교개혁, 과학혁명이나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경험하면서 르네상스를 과연 근대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고 따라서 오늘날에는 종교 개혁이나 시민 혁명, 산업혁명 등을 근대의 시작으로 설정한다.② 4분법의 실제역사를 구분하는데 3분법은 상당한 무리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무리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4분법이다. 4분법은 고대―중세―근세―최근세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분법 체제에서는 한 시대의 종말과 시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서양의 경우 르네상스의 새로운 시대로서의 의미를 살리되 오늘날의 직접적 기원으로서의 의미를 줄여, 르네상스를 경계로 중세의 종말과 근세의 시작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 근세의 종말과 최근세의 시작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보고 있다. 한국사의 경우, 고려와 조선의 단절성에 무게를 두어 고려의 멸망으로 중세가 종말을 고하고 최근세는 개항으로 보기도 하지만, 혹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서 시작점을 찾기도 한다.③ 현대현대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말하는데 현대의 기점에 대해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1차 세계대전을 그 기점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보통 1945년 광복을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현대의 기점으로 삼는다.4. 시대구분의 한계와 효용성시대 구분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효용성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 시간이 아무런 질적 변화나 굴곡이 없는 균질적인 것이지만, 역사적 시간은 그와 다르다. 시대구분에 의해 역사가는 잡다한 사실들에 대해 체계와 논리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역사가가 시간을 구분하고 무수한 사실들을 동류로 나누어 독자에게 보여줄 때, 좀 더 쉽고 체계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12.05.15| 4페이지| 1,500원| 조회(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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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이야기-역사와사실
    역사와 사실< 목 차 >Ⅰ. 역사와 사실Ⅱ. 사실이 아닌 사실들Ⅲ. 역사적 사실Ⅳ. 비평Ⅰ. 역사와 사실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특성은 ‘사실’에 기초한다. 역사에서 ‘사실’을 제외하면, 역사가 아니라 문학이나 철학이 될 만큼 그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책에 적힌 사실들이 모두 다 사실일까? 역사책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결국 역사가의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역사가의 주관성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금방 일어난다.그렇다면 역사에서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사실이 아닌 사실들앞서 얘기 했 듯이 역사에서 기록된 모든 것을 다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면 조작된 역사가 있을 수도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일본의 예를 들어 볼 수 있다. 일본의 천황이 기원전 660년부터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만세일계, 즉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계통으로 이어져 왔다는 설이다. 이것은 각 종 사료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 되었다.그리고 다른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는 300년에서 500년대까지 약 2,3백년간 우리나라 남부 임나에 일본 관인을 주재시켜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백제를 조공국으로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 설이다. 이것도 구체적인 증거는 없고 일제시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시키려는 식민사관의 한 이야기 뿐이다.이처럼 역사에는 진짜 사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사실이나 가짜 사실들,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된 사실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서술되어, 이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것 때문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특성인 ‘사실’이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궁금해 할 것이다. 사실은 실제 있었던 일을 뜻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더 알아보자.Ⅲ. 역사적 사실역사적 측면에는 크게 5가지가 있다. 제 1측면부터 제 5측면까지가 그 것이다.우선 제 1측면에 대해서 알아보면, ‘역사적 사실’이라는 말의 정의부터 내리는 일이 필요하다.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실은 역사적 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정한 법칙성을 나타내 주는 어떤 과정은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제도와 그것들이 인간생활에서 수행하는 역할도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파생된 구체적인 산물들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유형문화재와 역사를 단지 과거에 일어났던 일, 곧 물 자체로 바라 볼 경우,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다양한 요소들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 이라는 용어가 가르키는 범위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원칙적으로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과 현상들은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역사학의 관심대상이 되거나 혹은 될 수 있기에 사실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제 2측면은 역사적 사실과 단순한 시실이 어떻게 구별되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해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에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실들을 어떻게 구별해 내는가이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하면 그것은 카이사르가 역사적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매우 중요한 전후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이 다른 중요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라는 측면에서 이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건의 선택의 기준은 역사가의 손에 달려 있다. 역사는 대개 기록에 남겨진 것을 후대가 보기 때문에 역사가가 어떻게 평가를 하느냐에 따라서 즉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그 인물, 사건에 대한 것은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제 3측면을 살펴보면 사실의 구조에 관한 것인데, 즉 역사적 사실이 단순한 것인가, 복잡한 것인가 하는것과 부분적인 것인가, 완전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카이사르의 1개 군단도 카이사르와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한 작은 사실들을 단순화 하고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단순하게 기술되거나 단순하게 인식된 역사적 사실이라도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모든 역사적 사실은 매우 복잡한 것이다. 그러면 단순화된 역사적 사실은 부분적인 것인가, 완전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결론적으로 모든 역사적 사실이 단순화 된 것인 한 ‘완전한’ 것일 수 없고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제 4측면을 살펴보면,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역사 속의 한 사건’을 의미하는가, ‘그 사건에 대한 서술’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일어났던 객관적인 사건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사실에 대한 서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은 객관적인 역사 현실의 일부임과 동시에 일반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들의 서술에서 역사적 사실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역사의 한 부분이다. 즉 양면성과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마지막으로 5번째 측면을 살펴보면,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역사가의 주관적 요소가 전연 개입되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것인가, 아니면 역사가의 행위의 결과 또는 역사가가 적용하는 일정한 사관의 산물인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사실에서 ‘본래 그대로의 사실’은 있을 수 없다. 역사학에서 다루는 사실은 항상 주체에 의해 반영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2012.05.15| 3페이지| 1,500원| 조회(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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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배계층을 통해 알아보는 한국 사회의 발전
    『 지배계층을 통해 알아보는 한국사회의 발전 』< 목차 >Ⅰ. 과거사회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Ⅱ. 시대별 지배계층과 사회발전1. 삼국시대2. 고려시대3. 조선전기4. 조선후기Ⅲ. 사회발전을 이끄는 힘Ⅰ. 과거사회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한국사는 끊임없이 변동, 발전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 그 끊임없는 변동과 발전의 역사를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리고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 당시 사회를 설명하는 견해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대한 견해를 들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 자체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내재적 발전론과, 일제시대가 우리를 근대화로 이끌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립을 보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옳고 그름이 분명한 대립이 존재하는 한편,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연구의 부족과 자료의 부족으로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당시 사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이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부터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의 지배계층을 살펴보고, 그를 통해 당시 사회의 변동과 발전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시대별 지배계층과 사회발전1. 삼국시대전근대 신분제사회의 가장 유력한 특권적인 세력을 귀족이라 하며 그들이 주도한 사회를 귀족사회라 한다.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에 그러한 귀족이 출현하여 이후 고려와 조선왕조를 거치면서도 존속하였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귀족이 가진 정치적·사회경제적인 기반이 달랐기 때문에 동일한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 성격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삼국시대의 귀족만이 갖는 특성은 무엇인지 신라를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자.삼국은 국가형성과정에서 지배세력을 한 곳에 결집시켰으니 이것이 곧 부(部)였다. 부에 결집된 지배세력이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구조 속으로 재편되면서 출현하는 새로운 지배세력이 바로 귀족이었다. 부에 예속되어 전통적 권위에 의해 그 지배권을 보장받는 세력을 족장이라고 한다면 신분제에 편제되어 법제적인 보장을 받는 세력이 곧 귀족이었다. 신라사에서 귀족의 출현은 골품제와 관등제가 성립되는 6세기 초로 잡을 수 있으며 이때부터를 귀족사회라 부른다.신라에서는 3성이 교대로 왕위에 올랐고, 금석문의 분석을 통해 부가 원래 3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3부가 5세기 중반 이후 부의 성장과 왕실집단의 분지화가 결합하여 6부로 분화된다. 이에 따라 기존의 부가 가졌던 독자성은 상당히 약화되고 국가에의 예속도가 강화되었다. 이후 6세기 초 국왕 중심의 지배체제가 확립되면서 부의 독자성은 거의 소멸되었다. 이로써 신분과 관등이 중시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였는데, 이 변화된 시기에 어울리는 지배세력이 바로 귀족이었다. 귀족은 신분층의 제일 상층부를 구성하였으나 어느 층 까지를 귀족이라고 해야 할지 뚜렷한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그 구체적 기준을 귀족회의의 참가자격으로 볼 때, 신라 골품제는 8계층 중 진골과 6두품을 귀족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본다. 신분제 편성 초기에는 양자의 차별이 크지 않았으나 국왕중심의 지배체제가 확립되면서 양자의 신분적인 간극은 점차 확대되었다.끝으로 귀족사회의 권력구조를 통하여 귀족의 존재양상에 대한 대략을 이해해 보자면, 상대등이 설치되기 이전 국왕권을 견제하는 세력의 대표자는 갈문왕으로서 그 지위를 세습하였다. 그러다 법흥왕 15년 국왕권이 승리하면서 국왕이 맡고 있던 귀족회의의 의장이 새로이 설치한 상대등에게 주어졌다. 상대등에는 국왕의 의중인물이 임명되었으며 국왕과 귀족세력의 조화 속에 국왕권의 기반은 강화되어 갔다. 지배체제가 안정적일 때에는 국왕과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의 관계가 조화를 유지하였으나 지배체제가 동요되면서 오히려 상대등은 왕권에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하였다. 그것은 선덕왕대에 이르러 일어난 비담의 난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비담의 난을 진압한 뒤 새로이 집권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상대등에 대체되는 새로운 관부를 모색하였으니 그것이 곧 집사부와 그 장(長)인 중시였다.2. 고려시대초기 고려 왕조의 건국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신라계 구귀족이 점차 득세하여 갔으며, 이들과 신진호족간의 대립이 표출된 것이 바로 혜종대의 왕위 계승란이었다고 파악한다. 이 왕위계승란의 결과 신라 말기에 새로이 대두한 신진호족 세력이 신라계 귀족에게 정치적으로 패배하였으며, 그 결과 신라계 귀족들이 새 왕조의 지배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위치를 고수하게 되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게 되면 신라시대의 지배세력들이, 전시대에 이어 계속하여 고려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려 귀족의 기원도 결국 신라의 지배귀족으로부터 비롯하였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재검토의 여지가 다분히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또 다른 주장으로 고려 초기에 활약하던 인물들을 대신하여 특히 성종대의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수도 개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근기지방 출신들의 정치적 진출이 활발해지고, 이들이 이후 고려의 지배계층으로 성장해 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근기지방이라는 지역의 설정은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고려초기와 광종대의 격동기를 지나 성종대에 이르러 고려 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려초기의 역사는 중앙집권적인 귀족사회 수립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고 성종대에 이르러 그러한 사회의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고려를 귀족사회로 파악하려는 견해에 반대하여 고려가 관료제사회였다는 주장이 한편으로 제기되어 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 주장은 개인의 능력이 가문의 배경보다 더 중시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의 시행과정에서 비록 개인의 학문적 능력이 중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일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실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겨진다.고려의 통치구조가 운영되는 구체적인 모습이나, 이 구조 속에서 활동하는 집단들에 대한 검토가 보다 실증적으로 이루어질 때, 지배신분으로서의 고려의 귀족의 실체도 좀 더 뚜렷이 부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3. 조선전기조선왕조는 500여년의 장수를 누렸을 뿐 아니라, 왕조의 몰락 그 자체가 일제의 침략과 식민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늘 부정적으로 해석되어 왔다. 해방이후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조선시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왔다. 조선왕조의 초기는 신왕조의 질서가 새롭게 편성되던 시대였다. 조선왕조의 지배층을 흔히 양반이라고 하지만, 이 양반사회의 모습이 왕조의 전시대에 걸쳐 항상 동일하였던 것은 아니었다.우선 고려후기의 신흥사대부 성장론에 따라 고려후기를 살펴보면, 무인집권 시대에 향리층의 성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고려후기 지방향리 출신의 새로운 관인들이 곧 신왕조인 조선의 지배층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나라와의 특수한 관계가 시작된 이후의 고려후기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층은 권문세족이며, 이들과는 별도로 지방향리 출신의 사대부계층이 과거를 통하여 중앙에 진출하였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이 구 세력은 대립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려후기 권문세족 중심의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는 사대부 계층에 의하여 조선왕조는 건국하게 되었다는 일반론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충렬왕은 고려 국내에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천계출신을 등용하였으며, 이들은 문벌 출신보다도 더욱 왕에게 의존하는 바가 클 것이라는 것이다.다음으로 사림파의 성장과 그 사회적 성격론을 살펴보면, 16세기 이후 조선사회는 훈구파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사림파가 지배하는 사회로 질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그런데 권문세족과 사대부는 그 기원이 엄연히 다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훈구파와 사림파는 그 뿌리가 같으며 단지 정치적인 권력의 유무만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면, 이 양자 간의 대립은 같은 양반 사이의 정치적인 대립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이 양자는 전혀 다른 사회계층이라는 뜻인지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사림세력인 중소지주층은 적극적으로 성리학을 수용하였으며, 이러한 이념에 맞도록 향촌사회의 질서를 재편성하여 갔다. 이렇듯 16세기 이래의 사림파의 대두는 단순한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중앙의 훈구파와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사회계층의 대두를 의미한다고 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16세기 이후의 사회적 변화이다.4. 조선후기양안과 호적 등을 통해 사회변동의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보면, 양반호가 증가하는 한편, 노비호는 격감하고, 평민호도 19세기에 와서는 양반호의 격증으로 격감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문란이 아니라 중세적 신분질서의 붕괴과정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력 증진에 따라 늘어난 ‘경제적인 실력자’들의 상급신분으로의 신분상승욕구를 국가가 ‘봉건체제’ 유지를 위해 그것을 어느 저도 수용하는 가운데 진행된 것이다.
    인문/어학| 2011.06.13| 5페이지| 1,500원| 조회(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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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타인의 삶 감상문
    『 삶의 주체에 대한 고민 』- 착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 영화 -< 목차 >Ⅰ. 우리와 친숙한 유럽영화Ⅱ. 영화 Ⅲ. 과연 누구의 삶인가※ 참고자료Ⅰ. 우리와 친숙한 유럽영화오늘날까지 영화 시장은 많은 발전을 이루어 온 끝에, 우리 생활과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 등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영화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될 만큼 우리와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보는 영화는 한국 영화 아니면 헐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 극장가의 현실 상 그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럽영화도 적지 않다. 또한 명화라고 극찬 받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유럽영화가 굉장히 많고, 본적은 없지만 제목은 익히 들어왔던 유럽영화도 많다. '시네마 천국'이나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미 많이 유명한 영화이고, 작년 꽤 인기를 끌었던 '사랑해 파리'라는 유럽영화도 있다. 유럽영화에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나는, 유럽영화에 대한 관심이 적은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감명 깊게 본 유럽영화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영화 이 바로 그것이다.Ⅱ. 영화 영화 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06년 개봉된 독일영화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평론가들과 관객, 네티즌 사이에서 좋은 평점을 받았다. 수상경력 또한 화려한데,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받았으며, 비즐러 역의 울리쉬 뮤흐는 출연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니 영화의 뛰어난 완성도를 알만하다.영화는 시작부터 위압감이 느껴지는 심문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직 베를린 장벽이 굳건하게 서있던 당시의 동독, 머릿속엔 나라생각과 자신의 신념만으로 가득 차 있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우익 작가 드라이만과 인기 여배우인 그의 연인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자신의 신념을 믿었으며, 투철한 애국심으로 늘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 임무로 도청을 통해 주시하게 된 두 연인으로 인해 변화하게 된다. 늘 무감각하고 냉철하기만 했던 그가 점점 그들의 진실 된 삶과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하고 연민, 애정 등 '감정'을 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본 동독의 진실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한 몫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예르스카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드라이만은 동독의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게 되고, 비즐러는 이 사실을 묻어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비즐러는 그들의 행동을 묻어줄 뿐만 아니라, 결국 도와주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허나 이것 때문에 크리스타는 죽게 되고, 비즐러는 결국 우편배달을 담당하는 역할로 전락한다.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자신이 도청 당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 드라이만은 자신의 감시기록을 찾아간다. 자신에 대한 도청기록을 읽던 중, 사라진 타자기를 뜻하는 붉은 잉크를 발견한 드라이만은 비즐러를 찾아간다. 그러나 드라이만은 비즐러의 초라한 모습을 멀리서 보고 발길을 돌린다. 그 뒤, 드라이만은 "착한 사람의 소나타"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착한 사람의 소나타"는 드라이만의 생일날 예르스카가 선물한 악보였다. 그리고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것을 도청을 통해 듣고 비즐러가 눈물을 흘린 곡이기도 하다. 서점에 걸린 책의 광고를 보고 그 책을 펼쳐 든 비즐러의 눈에 책의 첫 장에 쓰인 글이 들어온다. "HGW XX/7에게 이 책을 헌정합니다." HGW XX/7은 비즐러의 코드명이었다. 영화는 비즐러가 그 책을 구입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선물 할 거냐는 점원의 물음에 비즐러는 답한다. "아니오, 나를 위한 겁니다. (No, It's for me)"Ⅲ. 과연 누구의 삶인가영화를 보는 내내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자세한 감정표현과 심리 묘사였다. 또한 비즐러 역을 맡은 배우 울리쉬 뮤흐의 표정연기 또한 대단했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정신없이 영화에 빠져들었던 나는,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을 보면서 왠지 모를 따뜻함이 가슴속에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의 그들은, 과연 누구의 삶을 살았는가.충실한 임무 수행을 위해 감정을 죽이고 살아왔던 비즐러 자신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도 있고, 그가 감시해온 두 연인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도 있으며, 두 연인에게는 자신들을 감시하고, 결국은 도와준 비즐러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 있겠으며, 무대 위에서 연기해온 크리스타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도, 억압된 자유 아래 살았던 드라이만과 그의 동료들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이들의 삶은 "타인의 삶"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일 수도 있다. 나는 드라이만이 타자기를 숨기는 것을 크리스타에게 들키던 장면에서, 그것을 모른 척 재빨리 자리를 피하던 크리스타를 보며 사랑하는 연인사이지만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도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그러나 "타인의 삶"이라고 해서 나와 관계없는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의 삶"으로 인해 변화하는 "자신의 삶"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타인의 삶"에 관계하고, 관계되면서만 존재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많은 타인들의 삶에 연루하게 되고, '나'의 삶에도 수많은 타인들이 연루된다. 우리 모두의 삶은 결국 수많은 "타인의 삶"이다.또 하나의 중심 내용은 "착한 사람의 소나타"가 등장하면서 드러난다. 드라이만이 출판한 책 "착한 사람의 소나타"는 예르스카가 선물한 악보와 동일한 제목으로, 비즐러는 도청을 통해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이 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비즐러 자기 자신 속의 '착한 사람'을 인식하는 것이라 느껴졌다. 강압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자신 속의 '착한 사람'을 봉인하며 살아왔던 비즐러가 비로소 내면의 '착한 사람'을 느낀 것이다. 확실히 내가 그렇게 느끼게 된 장면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소년이 국가 안보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습관적으로 이름을 묻던 비즐러가 멈칫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소년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마음속의 '착한 사람'이 비로소 봉인해제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서점에서 "착한 사람의 소나타"라는 책을 구입한다. '착한 사람'인 '나' 즉,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독후감/창작| 2011.06.13| 4페이지| 1,500원| 조회(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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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모던타임즈 감상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통한 현실비판』- 영화 를 보고나서 -그런 장면을 본 적 있다. 어떤 사람이 커다란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이동하던 장면.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누구든 이 장면의 정확한 출처는 모르더라도 사진이나 영상, 패러디 등으로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이 유명한 장면이 바로 찰리 채플린 감독, 주연의 영화 의 대표적인 장면이다.찰리 채플린은 하루 종일 공장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일을 한다. 그가 일하는 공장은 여유롭게 담배 한 대를 필 시간조차 없도록 그를 채찍질한다. 심지어 '자동 급식기'라고 하는 기계까지 도입을 시도해서 밥 먹는 시간을 단축하여 일을 더 빠르고, 많이 할 수 있도록 만들려 한다. 결국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서 나사못 조이는 일만 한 결과, 찰리는 단추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 버리려고 하는 일종의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다. 그 결과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 퇴원했지만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던 무리에 무심코 합류하게 되어 주동자로 오인 받고, 연행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다 감옥 안에서 탈옥을 시도하는 무리를 저지하게 되고, 그 공을 인정받아 찰리는 곧 풀려난다. 그러나 그는 새로 취업한 일터에서 실수만 연발하고, 결국 감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한편,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녀는 빵을 훔쳐 달아나다가 찰리의 도움을 받는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갖기로 결심하고 찰리는 백화점 야간 경비직을 얻는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찰리는 도둑으로 오해 받아 다시 감옥으로 가고 소녀는 도망친다. 얼마 뒤 풀려난 찰리는 소녀와 재회하고, 소녀는 집을 마련했다며 허름한 집으로 그를 이끈다. 그곳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공장이 다시 문을 연다는 신문 기사를 본 찰리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러 갔으나 공장은 다시 파업을 하고 만다. 그 뒤 찰리는 소녀와 함께 카페에서 일하게 된다. 춤과 노래로 카페에서 성공하게 되지만 가출청소년으로 수배령이 내려진 소녀는 경찰에 체포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고, 찰리와 소녀는 극적으로 도주하게 된다.이 영화는 흑백 영화이면서 무성 영화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무성 영화 이면서 일부분 소리가 도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찰리 역시 부분적으로 소리를 영화에 도입한 것이다. 그래서 표정과 몸짓으로만 표현되는 장면과, 자막이 들어가는 장면, 소리가 들어가는 장면 등 그 상황의 특징에 알맞게 적절한 방법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생생한 컬러화면과 좋은 음질의 소리를 통해 영화를 보아왔던 나로서는 영화 가 실로 흥미로웠다. 우선 흑백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직접적인 대화 없이 몸짓과 표정, 상황 설정만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자체도 흥미로웠다. 또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도 가볍지 않은 것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이 무척 빨리 간다고 느껴질 정도로 깊게 빠져들어 영화를 감상 할 수 있었다.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빠르게', '반복', '쉴 틈 없이'같은 것들이었다. 공장에서 빠르게 반복해서 쉴 틈 없이 나사못을 조이는 일을 하던 찰리와 노동자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감옥 안에서 조차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찰리와 수감자들 모두 다 똑같은 행동을 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들의 현실을 지극히 사실적이고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찰리가 백화점 경비로 일하던 때에 도둑질을 하러 온 옛 동료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도둑이 아니야, 배고픔을 못 견뎠을 뿐." 이 한마디가 왜 그리 가슴에 와 닿았을까. 이 한마디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이 짐작이 된다.
    독후감/창작| 2011.06.13| 2페이지| 1,5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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