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사상. 생활. 의례.전파와 형상R E P O R T교수님나 성숙 교수님학과명시각지다인과학번129362101이름김 진은차 례힌두교01 사상 0302 생활 0403 의례 0404 인도 전통 의상 0505 빠띠올라 0506 빈디 0507 까르바 쵸트 06힌두교 - 사상. 생활. 의례. 전파와 형상● 사상‘힌두교의 사상’힌두교는 교의를 가지지 않는다고 하기도 한다. 이는 타당하기는 하지만, 힌두교가 전혀 교의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실제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상호모순된 사상 ? 교의도 주장되었는데 그 어느 것인가가 힌두교의 교의이며, 그중의 어느 하나 또는 약간을 추출해서 힌두교의 교의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상호 논쟁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양한 교의가 동시에 병존할 수 있으며, 다른 종교에 종종 보이는 정통과 이단을 둘러싼 엄격한 대립 ? 항쟁과는 무관계하다는 의미에서 힌두교는 교의를 가지지 않는다. 힌두교의 이런 성격은 그 교의를 총괄적으로 개관하는 것을 곤란하게 하는데, 힌두교에서 중심적이며 가능한 한 널리 용인되고 있다는 사상에만 초점을 두고 싶다.① 우주관 : 우주의 창조에는 각종 설이 있다. 절대자 브라만이 유극을 위해서 우주의 창조를 행하였다거나, 이 현상세계는 브라만의 환력에 의해서 현출된 것으로 본래는 환영처럼 실재하지 않고 브라만만이 실재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되기도 하였다. 또한 범천의 알 속에서 브라마(범천)가 활발해져서 우주를 창조하고, 이어서 동물, 신, 인간 등을 창조했다고도 설명된다.② 업과 윤회 : 인간은 죽어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업으로 인해서 내세에서 다시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 이처럼 생사를 무한적으로 반복하는데 이것이 윤회이다. 현재의 고통에 찬 인생도 무한의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에 걸쳐서 계속하는 생존의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데 업이라는 것은 산스크리트어의 카르만 (karman)의 역어이다. 이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업의 설에 의하면 모든 행위는 그것이 신동에 의한 행위이든, 반드시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업은 행위자가 그 결과를 경험하지 않는 한 소실되지 않는다. 각자는 과거세계에서 행한 업의 결과로서 현재의 인간으로서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육체를 낳은 업의 결과를 경험했을 때 죽음과 함께 육체는 소멸한다. 그러나 현세에 살아있는 동안에 행하여서 축적한 업은 소멸되지 않는데 각자 안에 있는 영혼은 불멸하며, 죽음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신체를 얻고, 각자의 업을 수반해서 다음의 생존으로 가는 것이다. 그 업이 선업인지 악업인지에 의해서 영혼이 내세에서 얻을 수 있는 신체가 신인지 인간인지 동물인지 지옥의 존재인지가 결정된다. 현재의 각자의 성격이나 계급, 행 ? 불행의 모든 것은 과거에 행한 업의 과보이다. 업 ? 윤회 사상은 우파니샤드중에서 처음으로 명확한 형태를 취하며, 힌두교의 중핵적 교의가 되었는데, 본래 운명론이나 결정론과는 본질을 달리하고 있다.③ 법(다르마) : 간단하게 말하면 이다. 힌두교에는 이런 다르마를 정리한 법전군이 있으며, 인간 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규정되어 있는데, 그 중심적 과제는 과 이다. 종성법은 브라만, 왕족, 서민, 예민의 4계급(바르나) 각각에 부과된 법이다. 생활기법은 학생기, 가주기, 임서기, 유행기라는 인생의 4시기의 각각에 대해서 규정 되어 있는 규범이다. 힌두교도는 각자가 출생한 족성과 이미 속한 생활기에 대해서 규정된 법을 실행해야 한다. 또한 각자에 과해진 법을 일의 성부나 이해를 고려하지 않고 이기심을 떠나서 실천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생활기의 제도는 거의 실행되지 않지만, 현재도 힌두교 인생의 이상으로 고려되고 있다.④ 해탈 : 법, 실리, 애욕은 가령 실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얻어진 결과는 겨우 천계에 태어나는 것이 최고의 과보이며, 결국 윤회 중에 머무는데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서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업 ?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을 추구하게 되어서, 해탈이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 되었다. 그것을 실현하는 방의 도라는 세 가지 도가 주장되었으며, 특히 신애의 도는 만인에게 실천가능하여, 7~8세기경부터 큰 종교운동으로 전개되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파니샤드에 입각한 베단타는 인도사상의 주류를 형성하고, 현대 인도의 지식인의 대표적인 철학이 되어 있다.● 생활● 의례● 전파와 형성● 인도 전통 의상● 빠띠올라● 빈디● 까르바 쵸트‘힌두교의 생활’힌두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종성제도, 카스트제도인데, 그 외에 고트라의 제도가 있다. 모든 브라만은 성선(聖仙)의 자손이라고 하며, 고트라는 그 성선에서 따서 명명되고 있다. 동일한 성선의 자손은 동일한 씨족에 속한다고 하며, 동일 씨족끼리의 혼인이 금지되어 있다. 이는 본래 브라만 제도인데, 왕족, 서민에게도 수용되어서 동일 고트라에 속하는 자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한편 카스트제도는 족내혼을 규정하고 있는데, 사핀다, 즉 아버지의 가계로 7대, 어머니의 가계로 5대 이내의 친족 사이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다. 한편 개인의 일생은 생활기의 제도에 의해서 이상적으로는 학생기, 가주기, 임서기, 유행기의 4시기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힌두교도의 인사는 일반적으로 시간에 관계없이 서로 합장해서 (는 뜻)라고 하는데 남자 힌두 교도는 전통적인 사람은 오늘날에도 머리 꼭대기에 조금 머리카락을 남기고 있다. 이 머리카락을 상투처럼 묶은 것을 시카(또는 츄다)라고 하며 여성은 쿤쿰이라는 도장을 이마에 찍는데 이 또한 사원에 참배할 때 브라만승이 축복의 도장으로서 쿤쿰을 찍어주기도 한다. 또한 남성은 뱌크단 또는 사프랑의 분말을 기름으로 반죽해서 숯을 섞어서 흑색으로 한 티라크라고 하는 도장을 이마에 찍기도 하였다.전통적으로 특히 브라만의 고승을 만날 때는 남자는 도티라는 인도복장을, 여자는 1장의 이음새 없는 천으로 만든 사리를 착용하였으며 브라만은 비폭력의 정신에서 채식주의를 지키고, 특히 소의 숭배에서 쇠고기를 기피하였다. 한편 힌두교력은 태음력으로 오늘날 종교적 목적에 사용되고 있다. 샤카 기원(78), 굽타 기원(320), 하르샤 기원(606) 등이 있는데, 북인도에서는 비크라마 기원이 가장 잘 사용되었다.‘의례’힌두교 - 사상. 생활. 의례. 전파와 형상힌두 교도에서는 우상숭배가 성행해서 매일 아침, 강이나 저수지 등에서 목욕하고 시바신 등의 신상을 예배한 후에 식사를 하는데 베다 의식은 야쥬냐 라고 한다. 한편 힌두교의 의식은 푸쟈(공양)로 마치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신상의 좌위를 물로 씻고 발을 닦고, 꽃이나 베터의 잎을 바쳤는데 아침에 음악, 벨의 소리, 고둥의 소리로 신상을 눈뜨게 하고, 씻은 후에 옷을 입히고 꽃, 화환, 향, 등불로 경의를 표하였으며 음식물을 바치고, 밤에는 신비가 있는 침실로 옮기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신상 앞에서 산양 등의 희생물이 바쳐지기도 하였으며 의례에는 염주를 이용하고, 만트라(신가)가 노래되며, 어영가와 유사한 바쟌이 열광적으로 노래되기도 하였다. 또한 얀트라라는 상징적 신비적 도형이 이용되며, 만(卍)이 스와스티카(행복의 인)로서 사용되었고,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만다라라는 일정한 원형의 장소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다.의례 중에서도 개인의 일생을 통해서 행하여야 할 약 40가지에 이르는 산스카라라는 통과의례, 특히 탄생제, 남자가 정식으로 힌두교 사회의 일원이 되는 입문식, 결혼식, 제식은 중요하다. 가정내의 의례로서는 가지기(家住期)를 매일 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우주의 근본원리 브라만을 위해서 만드라(진언)를 제창하는 브라만제, 일체의 신들의 공양을 행하는 바이슈바데바제, 일체의 생물에 공물을 바치는 바리 공양, 조령을 공양하는 조령제, 객인을 공양하는 아티티제라는 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전파와 형상’힌두교는 민족종교적 성격이 농후한데, 인도의 상인이나 이민과 함께 인도를 넘어서 전파되었다. 인도의 상인 등이 향료를 구해서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자바 등의 섬으로 간 것은 서력 기원의 초기라고 하는데, 오늘날 자바제도에 남아 있는 보로 부두르 등 다수의 유적은 힌두교나 불교가 혼교한 당시에서는 오늘날에도 힌두교가 신봉되어 수백만의 신도가 있다고 한다. 아마 4세기경부터 네팔의 카트만두 계곡에 힌두교와 불교의 혼교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현재의 네팔왕국은 힌두교를 국교로 하고 있으며 스리랑카에는 총인구의 18%를 차지하는 힌두 교도가 있는데, 그 대부분은 남인도, 타밀 나두주에서 온 이민이라고 한다.‘인도의 전통 의상’인도의 전통의상은 여성들이 착용하는 '사리(Sari)'와 남성들이 입는 '도띠(Dhoti)'로 나뉜다. 사리는 오늘날에도 인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데 바느질이 안 된 긴 천의 형태이며, 입는 방법이나 형태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사리 끝을 앞에서 뒤로 넘기는 것은 남부식이고, 뒤에서 앞으로 넘기는 방법은 북부식이다. 또 외출시에는 사리의 남는 부분을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한다. 도띠는 사리처럼 한 장의 천으로 되어 있지만 길이가 짧고 흰색이 대부분이다. 입는 방법은 한쪽 끝에서 시작해 입는 사리와 달리 가운데부터 시작해 입는다. 인도인들은 일종의 '순수성'이라 할 수 있는 카스트에 의해 '정'과 '부정'을 나누는 기준이 있는데 '정'은 말 그대로 깨끗한 것이요, '부정'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 카스트에 의해 깨끗하다고 여겨진 계급은 깨끗하지 못 하다 라고 여겨진 계급과 접촉하면 부정을 탄다고 여기는데 이 규율은 오늘날에도 엄격한 것이어서 계급, 직업은 물론 심지어 의복에서까지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의복에 있어서 인도인들이 여기는 부정한(깨끗하지 않은) 옷은 무엇일까? 바로 '바느질'한 옷이다. 의상에 흠집을 내는 바느질은 옷의 영혼을 손상시키기에 바느질을 한 옷은 부정하고 천한 옷이라는 것이다.그렇기에 사리는 사실 옷이 아니라 너비 1미터에 길이 5~6미터의 한장짜리 천(1970년대 인도를 다녀온 일본인 여행가 세노 갓파의 여행기에 따르면 원래는 규격에도 엄격한 규율이 있어 너비 1.1미터에 길이 5.25미터란다)이다. 이 천을 몸에 둘둘 말아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셈이다. 그리고 계급에 따라 옷감의 질도.
●한국 전통건축과동양사상R E P O R T교수님나 성숙 교수님학과명시각지다인과학번129362101이름김 진은차 례한국 전통건축과 동양사상- 03장 어울림과 형식미01 어울림 개요 0502 형식미 0703 일체성 08한국 전통사상과 동양사상 - 3장 어울림과 형식미● 어울림 개요‘어울림 개요’어울림과 형식미는 주로 유교 사상에 나타난 건축적 개념이다. 어울림은 계급의 의미로서의 위계성, 위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로서의 개체성, 개체를 포괄하는 전체의 의미로서의 집단성, 집단을 유지하는 규율과 자유 사이의 조화, 인과 선의 의미로서의 도덕적 가치 기준 등을 내포한다. 요약하면 위계, 개체, 집단, 조화, 도덕을 개본 개념으로 갖는다.형식은 이런 가치 체계를 형성하고 표현하는 구체적 방식들 및 그 결과로 나타난 법칙이다.형식이라는 말 자체는 매우 보편적인 개념이지만 이것이 한국 전통 건축에서 좁은 의미로 쓰일 경우 유교의 어울림과 관계된 건축적 개념이 된다. 형식미는 형식이 작동하여 얻어지는 조형적 아름다움이다. 형식이 심미적 목적으로 작동하여 만들어놓은 조형적 결과라는 의미이다. 어울림과 형식미는 유교 사상의 인위성과 인공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개념이다. 이것은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자연과 하나 된 상태를 자유라 정의했던 불교나 도가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이다.유교 사상의 기본 개념은 어울림과 형식미라는 조형 방식으로 건축에 반영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건물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공간 단위, 혹은 기능 단위들로 구성되는 특징으로 나타났다. 여러 단위들이 어울림의 형식을 통해 유교 사상과 유교적 가치를 건축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특징은 한옥에 특히 잘 나타났다. 한옥은 짜임새 있는 공간 구성을 통해 어울림의 가치를 아름답고 은유적인 조형 형식으로 표현해냈다. 한옥과 함께 유교 공간을 대표하는 서원과 향교는 보다 직설적인 조형 형식으로 어울림의 집단적 위계성을 표현했다.어울림의 형식미가 한국 전통 건축에서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들 사이의 어울림을 비정상적으교가 굳은살처럼 사회를 덮어 고착되었다.소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지리적 스케일이 잘게 나뉜 한국의 자연 상황이 중요한 이유였다.유교는 이런 자연 상황과 잘 맞는 측면이 있었다. 지리적 스케일에 따라 문중 단위의 마을이 공동체의 기본 골격을 이루었는데 이런 상황은 규모와 구조면에서 유교와 잘 맞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유교가 한국 사회에 특히 고정적으로 뿌리를 내린 중요한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유교만의 특징이 형성되었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나라 단위의 운영 전략이었던 유교가 문중 단위의 강제 규범으로 바뀐 것이다.한국의 자연 상황은 양면성을 갖는다. 잔정이 많고 공동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사회가 폐쇄적으로 되면서 개인에게 허용되는 공간이 줄어드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유교 시대의 한국 사회에는 이런 양면성이 잘 드러났다. 유교는 집단성을 주도하는 폐쇄적 규범으로 작동한 반면, 개체들은 정을 기초로 한 사적인 연대를 만들어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이익이 개입하기 이전에 순수한 정을 나누며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사적 연대는 유교의 폐쇄적 집단성을 중화시키는 순기능을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유교 사상과 유교 건축은 유교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 이런 양면성에 대응될 수 있다. 유교 사상이 권력이 되고 종교가 되면서 사회의 자정 능력을 죽인 것과 달리 유교 건축은 이런 극단을 피하고 알맞은 선에서 멈추었다. 유교 건축에서는 어울림이 사회를 옭아매는 절대적 권력 규범으로까지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정과 나눔의 공동 문화를 반영하는 적정한 선에서 멈춤으로써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냈다.이런 차이는 어울림에 내포된 위계, 개체, 집단, 도덕, 조화의 다섯 개념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개인은 계급이라는 위계를 통해 철저히 집단에 종속되었다.그러나 건축은 다행히 이런 폐해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 매체였다.건축에서는 어울림의 다섯 개념이 골고루 반영되었다. 개체의 존재가 충분히 인정되는 위에 개체들 사이, 개체와 우는 측은함을 주고받는 관계가 법칙화될 수 있다. 친자간, 내외간, 군신간, 사제간 등 가족과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법칙화된 측은함이 ‘인’이다. 법칙 속에는 위계, 개체, 집단, 도덕, 조화의 개념들이 들어 있다. 친자간의 정은 이것의 가장 기초가 된다. 이런 마음의 본성적 우러남을 인간의 규범으로 형식화한 것, 혹은 본성적 우러남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규범이 예이다. 예의 본래 의미는 인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예는 딱딱하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인의 다정한 정감을 바탕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위계적 질서에 치중한 정감의 관계 혹은 반대로 정감이 가미된 위계적 관계이다. 인은 마음의 본성적 우러남이고 예는 이런 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예 또한 인간의 본성과 직결된다. 예란 친자간의 정에 기초하여 존경과 사랑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이것은 자연이 생명체를 유지하는 섭리이기도 하다.친자간의 정은 인과 예의 기초이자 출발점을 이룬다. 예라는 규범이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위 위계 쪽에서 하위 위계에 대해 친자간의 정과 같은 사랑과 보살핌을 베풀어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예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예란 이상적 사회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보편적 본성인 어미의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전제가 성립됨으로ㅆ 비로소 예에 내재된 집단성과 위계성이 타당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 예는 인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친자간의 사랑으로부터 시작하여 이것을 혈연과 씨족의 관계, 나아가 사회의 규범으로 집단화된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여러 위계질서 - 상하 등급, 계급, 존비 등의 정치적 권력적 위계나 노유, 부자, 내외 등의 가족적 사회적 질서 - 는 인이 예의 형식을 빌려 집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이다.유교에서 계급은 이처럼 친자의 정이라는 본성을 근거로 한다.인이라는 측은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대립성이 어울림으로 승화되는 방식으로 건축에 나타났다. 전통 유교 건축에서는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도 개개의 완결성과 독립성이 보장된다. 이것들이 모여 전체 구성을 이룬다. 이런 전제 위에 개체는 전체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개체와 전체라는 쌍개념적 요소의 어울림이다.개체 요소의 완결성과 독립성은 불교 건축에서도 중요한 특징으로 관찰된다. 사찰에는 한 칸도 안 되는 산신각이 자주 있다. 산신각은 아무리 작아도 기본 형식을 갖추고 있다. 크기와 상관없는 건축적 당당함이 배어있다. 사상적 뒷받침이 없이는 힘든 당당함이다. 전각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모든 부처가 하나라는 상즉상입의 가르침이다. 혹은 모든 개개 생명체가 불성을 지닌 여래의 씨앗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렇듯 불교와 유교는 모두 전체성의 횡포를 걱정하며 개체의 독립성을 가르치는 사상을 폈다. 한옥과 서원에서도 개체 공간 단위의 완결성은 어울림을 구현하는 출발점이었다.한옥은 어울림의 개념을 본뜻에 가장 합당하게 표현한다. 그 결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구성을 이루어낸다. 어울림을 표현하는 적절한 조형 형식을 획득했다는 의미이다. 한옥은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한옥은 분명 크고 화려하다. 처마 안쪽에 드러난 서까래는 양반의 갓처럼 계급의 권위를 과시한다. 당시 평민들의 초가와 비교하면 한옥의 위엄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옥에는 일정한 절제와 어울림의 형식미가 있다. 권위와 위엄은 단순히 흉악한 횡포가 아니라 그 속에 따뜻한 정감을 담고 있다. 이것의 배경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째, 절제와 금욕을 미덕으로 여기는 선비 정신이 바탕에 깔려있다.둘째, 국가적 차원에서 양반들의 상류 주택을 제한했다.셋째, 사회적 계급과는 별도로 집안의 화목을 유난히 중요시했던 민족 정서가 있었다.넷째, 집을 짓는 장인들의 조형의식이다. 도가의 무위와 무상 개념은 탄압과 계급 차별의 설움을 달래주는 진통제 같은 것이었다. 장인 계층의 이런 조형 의식은 주인의 탐욕을 한번 걸러내는 완충 장치는 형식미였다.한옥과 함께 유교 공간을 대표하는 서원이나 향고에서는 위계적 어울림이 좀 더 직설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교육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옥에서는 유교의 가치 가운데 위계, 규범보다는 조화의 가치가 우선했다. 반면 서원과 향교는 교육 공간이었다. 유교 문화에서 교육 공간은 목적에 맞게 형식과 위엄과 효율을 가장 중히 여겼다. 이상의 두 차이는 사회 형식에 따른 차이로 이해된다.공리론은 앞에서 살펴본 유교 건축의 특징에 대한 사회적 배경을 제공한다. 공리론은 유교 건축의 복합성에 나타난다. 유교 건축은 단일 건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채로 구성되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복합성을 주요 특징으로 갖는다. 복합성의 일차적 근거는 채들 사이의 건축적 관계를 통해 사회적 위계를 유추적으로 표현하려는 공리성이다. 유추적 표현은 사회적 위계를 스케일과 물리성이 가장 큰 건축 매체로 구체화하자는 것이다.유교 사상 가운데 인의에 치중한 초기 노예주 시기의 사상은 한옥에서 어울림이라는 형식미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반면 후기 노예주 시기의 공리론은 서원, 향교, 궁궐, 관아, 왕릉 등에서 위계성이라는 형식미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이런 건물들은 모두 공공 제도를 담당하던 기능 유형들이었다.유교 문화에서 공공건물은 계급을 통해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위압적 건물은 백성을 짓눌러 자발적 복종을 일으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예술 매체였다. 건물의 과시성은 주인의 사회적 등급에 비례해서 커져갔다. 과시성은 어울림을 중시했던 한옥에서도 일정 부분 나타났다. 행랑채의 수평선을 뚫고 치솟은 솟을대문의 수직선이나 큰 막을 펼치듯 마당을 감싸는 사랑채의 지붕 등은 그 좋은 예이다. 이런 과시적 품위는 한옥이 거느리던 피지배 계층의 노동력을 극대화하는 공리적 효과를 갖는다. 공리론에 의하면 한옥의 이런 효과는 이를테면 노래가 노동의 효과를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공리론에서는 예술이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절제와 과시를 통해 표현되는 건축적 위계는 계급 된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세계Jell:129362101 김진은5. 성스러운 원천 : 영구불변의 동양철학먼저 두 개의 단순한 관념을 소개하고 싶다. 첫번째 관념은 독일의 문화인류학자 아돌프 바스티안의 생각이다. 바스티안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같은 이미지와 같은 주제가 되풀이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그것을 "원소적 관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또 그것들은 발생할 때마다 환경에의 적응이나 해석에 차이가 있으며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런 지역적인 차이를 "민속적 관념" 또는 "민족적 관념"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우리의 주제를 두 개의 전혀 다른 부문으로 나눈다. 한편, 원소적 관념의 문제도 제기된다. 왜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가? 이것은 심리학적인 문제이며, 신화나 철학을 비교연구하는 우리와 차이를 조사하는 다른 모든 연구자를 구별하는 점이다.동양의 체계를 이야기할 경우, 원소적 관념에 중점을 두고 싶다.두번째 관념이란 다음과 같다. 기원전 9~8세기 무렵에 특히 동양에서 강조점의 변화가 나타났다. 단지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화를 상징하는 상과 신화를 생활에 받아들게 해주는 제의를 통해서 신화의 형식에서 선명하고도 생생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동양철학은 실제로 원소적 관념을 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그러나 서양사상의 밑바닥에도 한결같은 흐름이 있다. 그것은 영지주의. 연금술 그리고 영구불변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품어온 다양한 이단적 사상과 관련이 있다. 신화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계속성은 철학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영구불변의 철학이다.신화는 꿈과 같은 영역에 속한다. 그 영역을 지혜의 몸이라고 부르겠다. 머리에 뿌리를 두고 의식의 모든 양태가 생기는데 지혜는 몸의 지식과는 다르다. 습득하지 않은 본성. 이것이 지혜의 몸의 활동이다. 우리는 그런 에너지의 받아들인다. 신 관념은 하나의 상징이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 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 상징이다.이런 상징은 본래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투명해질 필요가 있으며,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민족적인 것은 원소적인 것에 대해서 열려 있다. 우리 서양인이 이런 것을 해석할 때 생기는 문제점에는 두 가지 큰 원인이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성적 사고에 치우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적 상징에 나타나는 민족적 요소를 성서의 틀에 끼워맞추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를 사실과 이성적 인식의 세계에 묶어둔다. 그러나 동양적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초월되어야 한다. 상징은 투명한 것이어야 한다.진정한 순례는 글자 그대로의 순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를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꾸는 것이다. 순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례하는 동안 계속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명상하고, 참된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임을 자각하기만 한다면.그러므로 우리는 자연계와 조화를 이주리 않으면 안 된다. 위대한 우주질서가 발견되었을 때 고도의 종교체계를 그것과 조화를 이룬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라는 기도에는 그것이 반영되어 있다. 하늘의 표상은 위대한 영적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는 표상이 되었다. 물론 현재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우주에 로켓을 쏘아보내고 있고, 인간은 이미 최초의 영적인 빛이었던 달의 표면을 걸었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영혼과 대지의 분리는 극복되어왔으며, 어떤 점에서 영혼과 대지는 우리가 계승해온 이원론 철학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하나라는 사실이다.베다는 아리안족의 전통으로부터 생겼다. 베다는 여러 세기 동안 문서화되지 않고 입으로 알려지고 입으로 전해졌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이룬 것은 기원전 1000년 무렵이다. 그것이 첫 번째 단계, 곧 신화와 제의의 단계이다.그뒤에 브라만의 책,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희생을 통해서 신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희생은 신들보다 강하다. 그렇지만 그 희생을 주재하는 것은 누구인가? 브라만(1:장음 a)이다. 따라서 브라만은 신들보다 강하다. 따라서 신의 계시를 받은 인간은 어떤 신보다도 강하다. 이것이 우주의 위대한 점이며, 브라만은 그런 위대한 존재이다. 이것이 한 가지 핵심이다.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는 것은 제물을 불 속에 던지는 것이다. 힌두교도가 말하는 것처럼, 체열이 음식을 요리해준다. 소화기관이 음식을 요리해서 온 몸으로 보내준다. 우리가 제물을 불 속에 던질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세계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이며, 그 속으로 무진장한 제물이 던져진다. 그것이 생명의 본성이다. 우리는 모두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지는 제물이다. 부처가 최초로 한 설교, 곧 베나레스의 정원에서 한 설교는 ‘불의 가르침’이라고 부른다.감각의 욕망은 타오르는 불이다. 귀로 듣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 그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다른 전통의 관념은 그 불을 더욱더 지피라고 말한다. 생명이라는 신비에 대해서는 이처럼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있다. 생명은 생명에 의존한다. 새들을 보라. 풀을 뜯는 동물들을 보라. 그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먹는 일뿐이다. 온갖 것들을 죽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스를 섭취한다. 그렇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방도가 없다. 생명이란 끊임없이 타고 있는 불이다. 그 불을 더욱더 지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희생에 대한 일종의 열망이 생긴다.왜 브라만 에게 가는가? 당신은 자기 안에 그것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안으로 향하라. 당신이 공공 장소에서 희생을 바치고 절하지를 바라는 신들은 당신 자신의 에너지의 불이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찬도기아 우파니샤드”에는 이런 훌륭한 구절이 있다. “이 신을 숭배하라, 저 신을 숭배하라, 차례차례로. 그것은 이 법을 따르는 사람과는 관계없는 이야기 이다. 신들의 근원은 당신 마음속에 있다. 발서 매우 심오한 분석이 이루어졌는데, 그 덕분에 매우 복잡하면서도 고도로 세련된 ‘상키아 학파’가 생겼다. ‘상키아 학파’는 내적 존재의 심리를 분석한다. 그 다음에는 신봉자 집단을 거느린 한 무리의 스승들이 나타난다. 힌두교의 구루는 제자를 상대로 가르치고, 가르치고, 가르친다. 당연한 것이지만, 구루는 자신과 그 불이 하나임을 발견하고 자각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구루는 불의 소리로 말한다. 그로부터 500~600년 뒤에 예수도 같은 말을 한다. 그는 자신이 그 ‘불’과 동일함을 자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나사렛 예수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의 참된 생명인 영적 생명을 자각하고 다시 태어난, 새롭게 처녀 수태한 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구루가 나타난다.그런데 이 시대는 매우 흥미로운 시대이다. 거대한 변혁의 시대인 것이다. 그 무렵에 페르시아에는 ‘조로아스터’ 또는 ‘자라투스트라 ’라고 부르는 위대한 스승이 나타난다. 조로아스터의 성가는 산스크리트와 매우 비슷하다. 이로 미루어 그것이 쓰인 시기는 페르시아인과 인도의 아리안족이 갈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양쪽의 말이 매우 비슷하다. 조로아스터가 살았던 시대는 얼추 우파니샤드 시대와 같다. 모든 서양적 전통은 부처가 아니라, 조로아스터에게서 나온다요컨대 서양에는 서양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자연과 화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본디 모습을 되찾으라”는 사상이다.다음에는 불교 쪽으로 가보자. 부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모든 인생은 비참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인생의 본디 모습이다. 선과 악. 사람이 사물에 붙이는 모든 이름, 곧 ‘선’과 ‘악’은 모두 뒤섞여 있다.”열반이란 괴로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심리적인 태도를 말한다. 당신의 인생을 괴로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과 불안이다. 이 욕망과 불안이 진정되었을 때 당신은 ‘마하수카’, 곧 큰 기쁨의 경지에 도달하고 법열을 경험하게 것이었다. 이는 곧 순수하게 물질적이고 동물적인 한 존재가 죽고, 영적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기독교 용어에서 이것은 옛 아담이 새 아담으로 바뀌었다는 말로 상징된다. 그래서 ‘오, 행복한 잘못(원죄)’ 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인간이 에덴 동산의 영원한 기쁨으로부터 시간의 영역으로 타락한 뒤에 승화를 나타내는 구세주가 찾아왔다. 즉 타락이 없었다면 구세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생겼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실제로 그리스 신비주의자들이 신비적 언어로 말해왔던 것들이다.생명은 심연 속의 어둠, 곧 지하세계로부터 나온다는 관념은 신화의 중요한 모티프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이교는 죽음, 지하로의 하강, 그 뒤의 재탄생의 주기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루어보건대, 이것은 수확에 따른 죽음, 파종 그리고 식물이 다시 생명을 얻는 농업주기로 상징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정신적인 뜻을 표현하려고 농업의 이미지를 빌려왔던 것이다.명상이란 우리는 신성한 실체를 먹고 있으며 우리를 길러주는 것은 그 신성한 실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다. 모든 생명은 어떤 초월적인 힘이 주어지거나 산출됨으로써 유지된다. 이 것이 명상의 핵심이다.가끔 이런 질물은 받는다. “우리는 어떤 제의를 행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미 제의를 행하고 있다. 단지 그것에 대해서 명상하지 않을 뿐이다. 밥 먹는 일도 제의이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라. 벗들과 의논하는 일도 제의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라.어릴 적에 당신에게 불어넣어진 종교적 전통은 지금도 그곳에 존재한다. 현대 과학으로 그것들을 해석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하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천국에 오르는 것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천국의 존재를 가정할 수도 없다. 천국 따위는 없는 것이다. 설령 주검이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아직 은하계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식의 가정과 상승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배웠다.
●서론 : 시각의사회학을 향하여R E P O R T교수님나 성숙 교수님학과명시각지다인과학번129362101이름김 진은차 례서론 : 시각의 사회학을 향하여01 ‘본다’는 것의 문제 03-051) 현대성의 ‘보는 방식’과 원근법 042) 주체의 시각적 구성과 라캉의 정신 분석학0502 ‘현대성’과 ‘시각’ 06-071) 시각과 현대의 문화적 조건 062) 시각적 전회? 063) 사회학과 시각의 문제 0703 원근법과 현대성 0804 보론 : 원근법과 조선 후기 회화 09시각과 현대성 - 서론 : 시각의 사회학을 향하여● ‘본다’는 것의 문제‘본다는 것의 문제’본다는 것과 관련하여 첫 번째로, 시각은 자연스럽고 생리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보는 행위는 신체 기관으로서의 눈이 수행하는 시지각 이상의 것으로서,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내용들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회는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일정한 ‘보는 방식’을 규정한다.따라서, 시각 또는 보는 방식이란 항상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학습되는 것이란 측면도 가지고 있다.‘시각 세계’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리의 두 눈과 머리의 운동에 따르는 시지각의 세계인데, 여기서 우리는 익숙한 대상들의 형태와 위치를 3차원적으로 지각한다. 반면에 ‘시각장’은 고정된 하나의 눈만으로 대상 세계를 볼 때 전개되는데, 이 경우 대상들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익숙한 모습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일상적인 ‘시각 세계’에서 시지각이 다른 감각들과 결합되어 ‘깊이 있는 형상들’을 창출하는 데 비해 ‘시각장’에서 시지각은 깊이를 결여한 ‘투사된 형상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시각은 다른 감각들과 더불어 함께 작용하는 공감각적인 것이며, 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을 익숙한 그대로 지각할 수 있게 해 주는, 대상세계에 대한 사회적으로 학습된 관념이 개입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의 시각은 주조된다는 것은 특정한 시점이 개인에게 할당되고 이 시점에서 가시적 대상들과 관계 맺음으로ㅆ 개인이 ‘보는 주체’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는 행위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며 가시적인 세계 속에서 ‘보는 주체’를 구성한다면, 우리는 시각의 정치학까지도 제기할 수 있다.따라서 한 사회에서 당연시 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제시되는 보는 방식은 곧 권력 관계, 지배 관계와 결부된 것이기도 하다.또, ‘보는 방식’의 해명은 다른 한편으로 문화 연구를 풍부하게 해 줄 수 있다. 문화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갈수록 강조되듯이 문화를 기호와 상징을 가지고 의미를 생산하는 실천, 즉 ‘의미화 실천’으로 정의한다면, ‘보는 방식’은 시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미화 실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의미화 실천에 의한 주체 구성 문제는 시각적 차원에서도 일찍이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주목됨으로써 텍스트의 의미 구성뿐만 아니라 수용자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 경향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지 해독의 차원뿐 아니라 ‘보는 방식’ 자체를 부각시키는 것은 시각 텍스트와 수용자의 관계를 해명하는 이러한 연구들에도 일조하게 될 것이다.● -1 현대성의 ‘보는 방식’과 원근법‘현대성의 보는 방식과 원근법’본다는 것이 사회 문화적으로 규정되며, 한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통용되는 보는 방식이 형성되고 제공된다는 점, 이 사회적인 보는 방식이 일정하게 주체를 구성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 여기서는 ‘시각 체제’라는 개념을 상정한다. 이 개념은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가 영화관이라는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배치에 의해 구조화되며 관람자를 주체로 구성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시각의 장이 개인 바깥의 힘과 배치에 의해 구조화됨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시각 체제’ 개념은 전체 사회로 확장되어 시각의 사회적 성격과 주체 구성 기능을 포착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특정한 시각 체제를 구성하는 ‘보는 방식’ 역시 사회적인 것이란 점에서 ‘시각 양식’이란 말근법은 하나의 시점을 설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시각 공간을 합리화함으로써 보는 방식 자체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가시적 세계의 중심이 되는 주체를 정의한다.따라서, 현대성을 합리성과 주체성의 원리로 압축하여 정의한다면 우리는 이 현대성의 원리는 시각의 영역에서도 관철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원근법이라는 시각 양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성의 시각 체제는 원근법이라는 합리화된 시각 양식이 지배하는 시각장이며, 이 시각 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주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마찬가지로 시각의 장에서 자기 의지적이며 대상 세계와 거리를 둔 채 통제력을 행사하는 세계의 중심이고 초월적인 주체이다.● -2 주체의 시각적 구성과 라캉의 정신 분석학‘주체의 시각적 구성과 라캉의 정신 분석학’시각은 사회 문화적으로 매개되면서 주체를 구성하는 과정임을 조명하고,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현대성의 시각 체제가 갖추고 있는 성격을 해명하기 위하여 글 이론적 자원을 일차적으로 라캉의 정신 분석학에서 구하고자 한다.시지각의 주체 자신이 외부의 구조적 힘에 의해 구성되는 차원은 분석의 수준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라캉의 시각 이론은 바로 이 차원에서 시각의 문제를 검토할 수 있게 해 준다. 라캉에 있어서 주체는 언어의 질서 속에서 구성된다. 인간은 라캉이 상징계라고 부르는 이 기표들의 사슬 속으로 들어감으로ㅆ, 의미화 되지 못하는 영역인 실재계로 떨어지는 자신의 진정한 존재로부터 소외되는 동시에 주체로 구성된다. 라캉의 이론에서는 이미지 및 시각 역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주체가 최초로 자신의 통일된 총체적 존재감을 획득하는 에고의 형성 과정에서 이미지와 시각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에고가 형성되는 이미지와의 동일시 과정은 인간 존재가 상징계로 진입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 된다는 점에서 이미지와 시각의 역할은 주체의 전체 개인사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프로이트에 따르면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이 정신적 장치는 “망원경 속의연결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눈과 응시의 분열’에 관한 라캉의 세미나에서는 거울 단계론에서 보다 시각적 차원에서 주체가 형성되는 무의식적 과정의 사회적 성격이 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다. 주체의 시각적 구성 과정은 이제 기표들의 그물망이라는 상징적 질서의 지배 하에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제 시각장을 규정하는 것은 이미지의 상상적 작용보다는 차라리 기표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눈과 응시의 분영ㄹ 세미나는 주체가 상징계로 들어간 이후에도 상상계가 그것이 수반하는 모든 문제점들과 함께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거울 단계론에서 상상계와 상징계의 상호 얽힘을 통해서 암시되던 시각과 주체 구성의 사회적 성격이 이 세미나에서 더 명시화 되고 확장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각장의 역사적 가변성과 권력 관계와의 연루를 조명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을 마련하는 것은 시각 체제 개념을 다듬어 내는 작업을 통해 시도될 것이다.● ‘현대성’과 시각‘-1 시각과 현대의 문화적 조건● -2 시각적 전회?‘시각과 현대의 문화적 조건’탈현대주의 문제가 사회학에서 중요성을 가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문화의 영역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음을 제기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이제 문화는 일상성과 개인의 경험 구조를 조건 짓는 일차적인 요인이며, 현대 사회에서의 그것은 갈수록 영상 문화가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담론에 기초한 의미 작용의 체제에서 형상에 기초한 의미 작용 체제로의 변화에 근거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시각 매체의 발달과 영상 문화의 폭발적인 성장, 그리고 그 사회적 의미는 이미 1950~60년대부터 주목받아 왔다. 서구의 많은 사회학자들이 고도 소비 사회의 외양 중심의 문화 경험과 그로 인한 인성 구조의 형성에는 미디어, 특히 시각 매체의 영향이 절대적임을 거론한 바 있다. 이러한 영상 문화의 지배적 경향은 포드주의의 확립과 대도시의 발전에 기초하여 노동자 계급까지도 포괄한 본격 대중문층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철학사를 새로운 문제들이 출현하고 ㄴ락은 것들이 사라지는 일련의 ‘전회’들로 특정 짓는다. 그에 따르면, 고대와 중세 철학이 사물에 관심을 가졌고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철학은 관념의 문제에 전념한 데 비해 현 시대의 철학적 장면은 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마지막 현 단계가 로티가 말하는 ‘언어학적 전회’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것은 현재의 여타 인문 과학 및 문화 연구에 지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은유에 의지하여 미첼은 ‘그림적 전회’를 제기한다. 그는 로티가 말하는 ‘언어학적 전회’에 비견할 만한 변화가 철학과 인문 과학 및 문화의 영역에서 복잡한 변형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시각적 경험 및 보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매혹은 시각과 이미지 및 형상적인 것에 대하여 언어학적 모델로 환원되지 않는 독자적인 분석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며, 이에 따라 ‘텍스트 독해’의 모델이 ‘관객성’과 ‘시각성’의 모델로 대체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전회는 텍스트성의 타자로서의 시각적 무의식을 복귀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경향들은 그 자체가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언어학적 전회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데, 이 ‘그림적 전회’는 시각성의 ‘구성된’ 특질에 주목하고 그것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해석의 다양한 시도들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의 사회성과 역사성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이 정신 분석학에 이론적으로 많이 의지한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라캉의 ‘눈과 응시의 분열’ 이론인데, 이것은 라캉이 비교적 초기에 제시한 ‘거울 단계’론보다 그것이 시각의 사회적 성격을 조명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사회학과 시각의 문제‘사회학과 시각의 문제’현대성의 기획이 시각적인 것을 일차적 소통 매체로 격상시키고 시각의 헤게모니를 보편화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대성의 담론인 사회학은 시각에 대하여 소홀해 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역사적으준다.
Ⅰ토기의 발달129362101 김진은토기는 시대와 문화의 변천에 따라 다음과 같은 토기로 구분할 수 있다.신석기시대빗살무늬토기청동기시대민무늬토기철기시대와 삼국 초기와질토기, 연질토기, 경질토기삼국시대 중기 이후통일신라시대1. 빗살무늬토기와 덧무늬 토기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덧무늬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표면에 빗살무늬가 그려진 토기이고, 덧무늬토기는 흙으로 된 띠를 붙인 장식이 있는 바닥이 납작한 토기이다. (101p 빗살무늬토기와 덧무늬토기 사진)완성된 토기가 나오기까지는 4~5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첫 단계는 원료인 점토를 채취하고 태토에 첨가할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재료를 이용해 모양을 만든 후 표면을 정리하고 문양을 새기는 장식 단계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에서 만들어진 토기를 건조시키고, 이를 구워낸다. 토기는 600~800℃의 낮은 온도에서 굽기 때문에 산화철의 작용으로 대체로 적갈색을 띤다.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는 토기를 만드는 데 물레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손 빚음법, 테쌓기, 서리기 등으로 토기를 제작하였다.손 빚은법태토를 손으로 모양내는 기본 기법형태 불 일정, 작은 그릇을 주로 만듦서리기법태토를 손으로 비벼 일정한 흙 띠를 만든 다음 흙 띠를 감아올려 그릇의 형태로 만드는 기법우리나라 신석기시대 토기는 이 방법으로 만든 것이 많음2. 민무늬토기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 토기는 대체로 표면에 문양장식이 사라지게 되는데 흔히 민무늬토기라고 부르는데 문양이 없고 평평한 바닥을 기본으로 하는 그릇 형태로서 굵은 모래알이 섞인 태토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또한 무늬를 넣는 과정이 생략된 대신 조형에 많은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102p 그림에서 보듯이 무늬는 없지만 형태가 구체화 됐다.)이 시기에는 빗살무늬토기와 같이 손으로 빚어 야외요(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에서 구워내는 가마)에서 700~900℃의 낮은 온도로 구워내는 방법으로 여러 종류의 토기를 만들었다. 민무늬토기는 야외요에서 구워 대체로 질이 무르고 흡수성이 강하다.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보다 다양한 모양의 그릇이 나타나고 지역적으로 다양한 토기 문화가 발전하게 된다.대체로 민무늬토기의 용도는 일상용(취사, 저장)과 의식용(제사를 지내거나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용)으로 구분된다.일상용민무늬토기취사, 저장 용. 모래가 섞여 단단하고 실용적. 당시 널리 사용의식용흑도, 홍도불순물을 제거한 고운 진흙, 제사용으로 사용. 와질토기로 발전3. 와질토기와질토기란 민무늬토기보다 약간 높은 온도에서 구운 회색, 회흑색, 흑색, 적갈색의 토기로 질감과 굳기가 기와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와질토기의 공통점은 태토정선, 물레 내지는 회전판에 의한 성형, 내박자의 사용, 높은 온도에서 견댈 수 있는 가마를 사용한 점 등이다.태토정선이란 태토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물레 또는 회전판이 사용되었음은 좌우균형이 잡혀있는 것으로 알 수 있으며, 몸통 부분에 둘러진 평행선이나 나선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내박자는 토기 표면을 두드릴 때 두드리는 힘이 토기 벽에 전달되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내면에 대는 것을 말한다. 내박자는 흙을 구워서 만든 것과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것 등이 있다.가마를 만들지 않고 노천에서 토기를 굽게 되면 흙속에 있는 철분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붉은색을 띠게 되고, 그릇도 쇳가루의 함량에 따라 황색에서 다갈색, 적갈색이 된다. 빗살무늬토기나 무문토기는 야외의 평지나 웅덩이 같은 곳에서 구워졌기 때문에 적, 황, 갈색 계통의 색을 띤다. 그러나 가마에 공기의 유입이 차단되게 만들어 불을 떼면 흙 속에 있는 쇳가루의 녹이 벗겨져 그릇의 색이 청색을 머금은 회색, 회흑색이 된다. 이렇게 산소의 공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그릇을 구워내는 것은 노천의 가마에서는 불가능하며 높은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가마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와질토기는 주로 무덤유적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와질토기 자체가 청동기시대의 홍도, 채문토기, 흑도 등과 마찬가지로 무덤에서 부장하기 위한 특수한 목적의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4. 연질토기와 경질토기연질토기연질토기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바닥이 넓고 평평하며 몸통에 문살무늬, 삿무늬 등의 두드림무늬가 있거나, 빗질이 되어있는 토기를 의미한다. 그릇의 모양에는 둥근바닥 항아리, 목이 바라진 항아리, 계란 모양의 토기, 쇠뿔손잡이 항아리, 굽다리 접시, 시루, 쟁반 등이 있다. 와질토기처럼 회색을 띠는 것도 있으나 민무늬토기처럼 모래가 섞인 태토로 노천에서 구워 적갈색을 띠는 것이 많다. 또한 연질토기는 일상생활용 토기로 주로 사용되었다. (106p 연질토기)경질토기기원 후 3세기 후반이 되면 땅속에서 그릇을 굽는 굴가마가 개발되어 1,000℃ 이상의 고온에서 산소 공급이 차단된 상태로 토기를 굽는 것이 가능해져 회청색의 단단한 경질토기가 만들어진다. 초기에는 비교적 단순한 종류의 토기가 제작되다가 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여러 종류의 경질토기가 제작되면서 대신 민무늬토기가 소멸한다. 또한 연질토기의 제작도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Ⅱ삼국 및 통일신라의 토기1. 고구려의 토기고구려의 토기는 발견된 유물이 매우 적어 정확한 양식을 판정하기 어려우나 지역적으로 중국과 인접하여 한 대의 토기양식과 연관지어볼 수 있고, 신라의 토기에 영향을 미쳤다.대부분 납작밑이며, 손잡이가 네 개 달린 항아리, 배 부른 단지, 깊은 바리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초기 3세기 이전에는 모래 섞인 태토로 빚은 엷은 갈색 계통의 토기와 검은색 토기 등이 만들어졌고, 단지, 잔, 항아리 등이 발견된다.중기인 4~~5세기에 접어들면 종류도 다양해지고 고운 점토질의 태토로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구운 회색, 황갈색의 토기가 나타나는데, 어깨나 몸통 부분에 간단한 줄무늬를 넣은 것도 있다.중국의 영향으로 황갈색의 유약을 바른 토기가 제작되었고, 6세기 이후에는 토기의 종류가 다양해져 생활용구인 벼루, 베개, 거울 등이 출토되고 있다.2. 백제의 토기백제는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나 초기 삼국시대의 회색 토기 등을 만드는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바탕으로 낙락의 토기 제작기술을 새로이 받아들여 독자적인 토기문화를 이룩하였다. 백제의 토기는 고구려나 신라의 토기에 비해 장식성은 약한 대신 실용성이 강조되었으며, 타날문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5세기부터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보인다.백제 초기에는 연질토기, 회(흑)색민무늬토기 등이 주로 발견되고, 3세기 중엽이 되면 검은간토기를 비롯해 긴계란모양항아리, 어깨 있는 항아리 등과 함께 높은 온도에서 환원소성된 토기들이 만들어졌다.한성시대에는 중국의 육조와 긴밀한 교류를 가지면서 백제 초기단계부터 발견되는 전형적인 토기인 짧은목 항아리나 세발토기에도 중국적인 요소가 많이 섞이게 된다.웅진과 사비시대에는 한성시대의 토기 전통이 이어지면서 그릇받침의 경우 장식성이 더욱 높아지고, 곧은목단지의 어깨문양대가 사라지며 몸체가 둥글어지는 등 몇 가지 새로운 기종이 추가되고 기형도 변화한다. 그리고 사비시대에도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아 네 귀 달린 긴목항아리나 토기 표면에 녹유를 입힌 연유도기가 만들어진다. (110p 백제토기)3. 신라의 토기신라의 토기는 물레를 이용하여 토기를 빚고 굴가마 속에서 1,000℃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냈으나, 유약은 바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온에 의해 태토 속의 규산이 녹아 그릇 표면에 스며나와 녹으면서 담녹색의 자연유약을 입힌 것처럼 색깔이 나타나는 것이 있다. 종류로는 그릇받침, 잔, 항아리, 목항아리, 굽다리, 단지, 독 등의 생활용기와 인물형·동물형의 배, 수레, 등잔 등의 상형 토기가 있다.처음에는 가야 토기와 동일한 형태로 제작되었으나, 5세기가 되면서 신라 토기의 특징이 나타나 토기의 색깔이 회색으로 되고 굽구멍이 서로 엇갈려 뚫려 있는 것도 많다. 목항아리나 굽다리접시의 뚜껑에 동물이나 인물을 작게 만든 토우가 붙어 있는 것도 신라 토기의 특징이다. 토우의 종류에는 일상생활의 소재와 동물 등이 표현된 것들이 있다.후기가 되면 토기들이 전반적으로 굽다리가 높아지고 기형도 단순해져 통일신라 토기로의 이행이 일어난다.4. 가야의 토기가야의 토기는 신라 토기와 마찬가지로 회청색 경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가 있으며 그 종류도 항아리, 목항아리, 단지, 그릇받침, 시루, 굽다리접시 등이 있다. 토기의 형태는 신라의 것과 비슷하나 보다 날렵하고 세련되었으며, 신라 것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동물, 집, 수레 등의 상형토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이형토기(특이한 형태의 토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형토기들은 모두 내공(속이 비어있음)이고 그릇 중심에 잔 모양의 구멍이 뚫리고 말 모양이나 물새 모양일 때에는 입에도 구멍이 나 있어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의식적인 면이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