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사회과학적으로 생각하기주차 Alfred Hitchcock (1960)인간의 솔직한 본성을 일깨운 사이코욕망은 반복되고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신기루를 쫓으며 욕망이 충족될 것이라 믿는다. 때로는 이 신기루를 갈망하기 때문에 이유 없는 행동을 마다한다. 인간의 비합리성은 바로 이곳에서 기인한다. 즉 비합리성은 인간의 본성이고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인간에게 끝없는 합리성을 요구한다. 분석과 근거를 요구하고 영원히 충족되지 못하는 규범적 합리성을 쫓으라고 요구한다. 행여 비합리적 본성이 튀어나올 때면 짐승의 본능으로 비하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교육받은 방식이다.사회의 요구대로 인간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그들의 본성을 억제하고 자제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진화하고 발전해야할 이유가 없다. 욕망이 영원히 충족될 수 없지만 충족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일부해소는 발전적으로 필요하다. 라캉에 따르면 욕망이 대상을 향하는 단계가 상상계이고, 그 대상을 차지했을 때 어긋나버리는 단계가 상징계, 그래서 이 두 가지 사이에 발생하는 쾌락, 즉 욕망의 일부해소는 다시 욕망이 지속되게 하는 실재계로 나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환상적 욕망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상상계 속에 갇혀 욕망을 충족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즉 사이코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이코는 상상계에 머물면서 자신이 ‘응시’하는 행동에만 집중하고 대상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 ‘시선’에는 관심이 없다. 사이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의 혼에 빙의한 노먼이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이는 상상계에 갇혀버린 노먼의 한계를 나타낸다. 이 응시는 포르노처럼 주체가 대상에게 느끼는 욕망을 적극적으로 대상이 충족시켜주는데, 다시 말해서 상징계로의 발전 없이 상상계에서 모든 욕망이 충족되어버리는 응시를 뜻한다. 노먼은 감히 우리가 그를 바라보는 진짜 시선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응시 또는 욕망을 우리의 관점과 임의적으로 일치시켜버린 것이다.사회는 갈수록 이러한 인간의 상상계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억제시키려고 하고 동시에 인간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을 불안정하게 상상계속에서 충족시키려 노력한다. 노먼의 응시(상상계적 착각)처럼 현대는 포르노와 각종 엽기행각이 늘어나고 사회는 근본적 문제를 망각한 채 오히려 더더욱 인간을 욕망으로부터 통제한다. 히치콕의 사이코 영화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그 시작점에 있는 영화이다. 서스펜스의 캐릭터에 나를 일치시킴으로서 평소 해소되지 못한 상징계로 나아가는데 발생하는 쾌락을 대리경험한다. 인간은 이러한 장르영화를 통해 상상계에 갇힐 수 있던 욕망을 일부해소하고 상징계로 나아가는 발돋움을 한다.
스타-이미지화 기호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스타사회적 현상으로서 스타를 바라볼 때 우리가 이 사안에 쟁점을 두어야 하는 점은 스타덤의 현상과 이와 더불어 스타들을 형성함에 있어서 생산과 소비의 역할, 스타현상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이다.프란체스코 알베로니와 배리 킹은 서로 상반된 스타덤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알베로니의 경우 스타덤을 전반적인 사회 현상에 입각하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스타는 중요한 의사 결정자가 될 수 없고 실제 정치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갖고 있지 않은 엘리트, 특권화된 집단이라 주장한다. 반면 킹은 스타가 한 사회 내에서 사람들의 표상에 대한 주요한 통제력을 지닌다고 한다. 즉 현실정치만이 사회의 각 제도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 결정인가 또는 암시적으로 스타들의 영향력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고찰하게 한다.하지만 이 두 사람 모두 왜 스타가 나타나는가 하는 점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는 에드가 모랭의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생산 - 소비의 변증법’이란 관점에서 접근 할 수 있다. 즉 스타 형성 배경을 생산에 둘 것인가, 소비에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생산 현상으로서의 스타는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간주하여 경제학적 가치에 입각한다. 영화 제작을 다른 사업들과 똑같은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실무 간부들을 재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도 기여하며, 줄거리나 연기의 질과 같은 무형적인 것들에 지나친 주의를 쏟는 것을 예방하는 기능도 있다. 즉 표준화된 생산품으로 스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반면 소비로서의 스타를 바라보는 관점의 핵심은 관객, 즉 소비자들이 스타의 창출에 있어 보다 결정적인 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스타를 다양하게 개념화된 대중의 내적인 소망들을 표현해주는 것으로 인식한 이 관점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꿈, 집합적 무의식에 근거한다.이러한 생산과 소비는 모두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데올로기 안에서 매개되는데 스타 현상을 어떤 특정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작업을 하고 있거나 하려고 노력하는가, 즉 ‘이데올로기적 효과’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것으로 본다. 스타의 배역과 혹은 연기가 스타의 인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또는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스타 현상은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합주해 낸다. 또 사운드의 도래로 스타의 탈신격화 또는 리얼리즘으로 발전되고 지나친 낙관주의적 구조는 현실 도피 또는 해피 엔딩의 도그마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순응주의를 부르고 우리가 세상을 건강한 비판적 사고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이렇듯 스타현상을 사회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크게 우려될 수 있는 문제는 우리가 지나친 순응주의와 낙관주의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타 문화콘텐츠의 건강한 소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현 상태(the status quo)를 깨고 지속적인 ‘부정’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것은 우리 인간이 현 상태를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지나친 순응주의와 낙관주의는 문화소비자로 하여금 현실을 도피하게 만들고 우리가 갈망하는 상상과 환상을 그저 상상계 속에서만 실현시켜 결국 예술과 퇴폐물(또는 저급문화, 제3의 문화)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문화소비자를 넘어서 매슬로우가 얘기한 인간으로서 본연의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가장 위험한 방해물이 될 수 있다. 현 시대에서 우리가 지녀야할 비판적 사고는 이데올로기적 사고로서 현재의 스타덤이 발아하는 배경과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분석해야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스스로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강압적, 일방적 태도에서 해방하여 진정으로 건강한 문화소비자로서의 스타 현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또 건강한 문화로서의 다양한 스타 현상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감상문사회과학적으로 생각하기워쇼스키 남매 (1999)백신과 바이러스밀레니엄 직전 영화계나 방송계, 나아가 IT산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줄 영화가 한편 탄생했다.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1999)는 1990년대 산업사회를 마무리하고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그 기점에서,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여러 가지 사상과 종교적 신화를 담으며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를 담는 영화다. 또한 영화사적으로 매트릭스의 컴퓨터그래픽 기술과 대표적 촬영 기법인 "Flow-motion"촬영기법은 2000년대 우리나라 방송계에서도 널리 쓰일 만큼 혁신적 기술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심오하면서도 의미가 있다. 매트릭스의 개봉으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지금, 매트릭스 영화에서 담고 있던 당시의 사회가 15년 미래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영화는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입에서 컴퓨터와 프로그램 등 IT세계에 사회 및 경제적 사상과 철학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워쇼스키 감독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에 관한 서적을 배우와 스텝들에게 접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듯이 영화가 갖는 기본적 철학적 바탕이 대중매체와 미디어에 근거한 다양한 사상과 철학의 융합점을 보여준다. 인류에게 대중매체와 미디어라는 일종의 가상의 세계가 주어지고 여기에 첨단기술과 정보기술이 더해지면서 인류가 살아가는 세계는 더더욱 복잡해지고 세분화된다. 영화는 ‘매트릭스(Matrix)'라는 하나의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사실 영화에서도 밝히듯이 매트릭스 가상세계 또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하고 또 아직까지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바로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다양화, 세분화되는 현대사회의 한 편을 표상하는 것과 다름없다.사회는 질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가 다양화되고 세분화 되면 질서 역시 그 특징을 맞춰가야 하는데 사실상 그것이 쉽지가 않다. 때문에 나타난 변이가 바로 ’네오(키아누리브스 분)‘, 즉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한 사회의 역사가 짧을수록 단순하지만 다양하고 통제되지 않는다. ’백신‘은 바이러스의 탄생 후에 나타나며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이러한 순서가 몇 차례 반복이 되면 바이러스는 통제되지만 반대로 아주 치명적이다. 바로 고도화되고 다양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제일의 숙제는 이렇게 진화하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이다. 영화의 후속편에는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마저 변이되고 또 다른 치명적 바이러스로 변모하는 모습도 시사하고 있다.
영화 감상문사회과학적으로 생각하기주차 봉준호 (2009)남자로 인정받고 싶었던 도준한국 연예계 가장 잘생긴 미남에 항상 거론되는 원빈이 더벅머리에, 때 묻은 옷을 입고 동네사람들에게 바보소리나 듣는 ‘도준’을 연기하였다. 군 전역 후, 첫 영화 선정에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그가 선택한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2009)였고 그가 연기하는 역할은 (2004), (2004)에서 잘생기고 친근감 있는 동생과는 정반대의 지적장애를 갖고 동네 여기저기서 놀림을 받는 28살의 ‘도준’을 연기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이렇게 ‘도준’ 역에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대한민국 최고 미남을 두어 우리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1997년 IMF 이전 우리나라는 일대의 경제호황기를 맞는다. 국민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여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곳곳에는 낭만과 희망이 자랐다. 이 때 경제를 이끌던 주요층은 남성으로, 남성적 권위 역시 하늘을 치솟던 때이다. 가부장적 사회가 이어지며 동시에 여성들의 인권 신장에 관한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던 때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에 이 모든 희망과 낭만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요 사회경제층이었던 남성들의 치솟던 자신감은 그들의 어깨처럼 축 쳐져버렸고, 따라서 가정이 몰락하고 파탄하자, 그들은 갈 길을 잃었다. 아직까지 일부는 그 좌절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다시 금세 원기를 찾았지만 그 날의 쇼크는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각 문화계에서도 이를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가 나왔는데,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추된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조폭영화가 기승을 부렸고, 복잡한 문제를 기피하다보니 가볍고 신선한 소재의 코믹 영화 역시 기승을 부렸다.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는 실추된 남성성의 회복을 갈구한 영화라 할 수 있다. 28살이 되어서도 엄마 곁에서 팬티바람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잠드는 도준(원빈 님)과 그런 아들의 남성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영원히 보호해야할 어린아이로 인식하는 그의 엄마(김혜자 님), 때문에 아들의 절제되고 해소되지 못한 성욕은 결국 여고생 살인사건을 낳는다. 사실 영화에서 도준은 관객들이 바라보는 것만큼 대단한 바보는 아니다. 결국 그 역시 남자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또 그 남성성을 세우기 위해 행동한다. 이 시대의 다른 남자와 별반 다를 것 없다. 나름의 치밀한 계획으로 엄마를 통해 자신을 끝까지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사회에 복수하여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였고, 자신을 남성으로 인지하지 않는 엄마에게도 침통을 건네며 결국 아들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자신도 하나의 남성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온 동네가 잘 볼 수 있도록 옥상에 여고생 시체를 올려놓은 것, 엄마를 통해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고물상 아저씨를 살해한 것, 살해된 현장에서 의미있는 증거가 될 수 있었던 엄마의 침통은 도준이 세상과 자신의 보호자에게 던지는 남성성 회복의 갈망이다.
영화 감상문사회과학적으로 생각하기주차 스탠리큐브릭 (2009)21세기 닥터스트레인지러브영화 (1964)는 철저히 허구를 바탕으로 한 픽션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들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냉전시대와 영화제작 당시 이슈였던 쿠바미사일사건 등의 산물인 것은 논픽션이다. 너무나 쉽게 발사되어버린 핵미사일을 두고 미국과 소련이 비상대책회의 과정 속 해괴한 행동들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각자의 이기를 실현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무겁고 진지했던 냉전을 가볍고 무의미했던 당시로 풍자하고 있다. 또 제작당시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을 두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상황에서 제3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영화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려졌듯이 제3차대전의 위기 역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 결단이 아닌 다소 비합리적 상황으로부터 극복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핵이 개발된 이래로 전쟁은 더 이상 어느 한 나라의 승리와 다른 한 나라의 패배를 나눌 수 없게 되었다. 즉 진정한 승자도, 진정한 패자도 없는 상호확증파괴의 모순이 생겨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전쟁 당국을 넘어서 제3국까지 피해가 확장되면서 전쟁은 더 이상 해당국의 문제로 보기 어려워졌다. 쿠바 미사일 이후 핵은 인류가 멸망하게 될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1위에 올랐다. 핵을 보유한 국가는 늘어나고 전쟁의 위기는 잠식할 줄 모른다. 21세기의 이러한 상황에서 닥터스트레인지러브의 탄생은 절대적으로 반갑지 않다. 냉전 이후 당시와 현대까지 이어지는 위기에 대한 사회의 한심한 온상을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다.이처럼 영화는 영화가 그리는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제작당시의 상황을 다양한 관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 수단 중 하나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세분화되어가는 현대는 그러한 의미에서 더더욱 영화가 갖는 의미가 중요해진다. 역사는 절대적이지 않다. 같은 역사도 어제 바라본 역사와 오늘 바라본 역사의 의의가 다르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의 한계에서 당시 그 역사를 바라보았던 대중의 관점을 대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