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비유와 상징 교육- 이론과 실제[2009 개정 고등 교과서를 중심으로]목 차Ⅰ. 들어가며Ⅱ. 비유1. 비유의 개념2. 비유의 종류Ⅲ. 상징1. 상징의 정의2. 상징의 특성3. 상징의 유형Ⅳ. 2009개정 교과서 분석Ⅴ. 마치며Ⅰ. 들어가며: 비유와 상징은 소설이나 극 같은 다른 문학 작품에도 많이 사용되는 표현 기법이지만 내용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시에서 특히 자주 사용된다. 시에서 사용되는 비유와 상징의 관한 내용을 면밀히 알아보고 실제로 적용할 만한 시를 예로 들어 개념과 유형을 서술하였다. 이 글에서는 현대시론에서 비유와 상징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파악해보고 2009 개정 국어 교과서에 그 내용들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Ⅱ. 비유1. 비유의 개념비유는 다른 사물을 빌려서 어떠한 사물을 표현하는 수사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관념을 그것과 유사한 다른 사물이나 관념에 빗대어서 보다 생동감 있고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표현법을 말한다.시인은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의 범주 안에서 활용하되 무엇인가 새로운 의미를 담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체험 혹은 심상을 담을 수 있는 방법으로 동원되는 것이 비유다. 시인은 표현하려는 사상과 감정을 직접적인 설명만으로 표현하지 않으며, 자신이 표현하려는 바를 다른 사물이나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비유는 이질적인 요소를 서로 결합시키는 표현법으로, 원래 나타내려는 원관념(의미재)을 보조관념(재료재)을 통해 표현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점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며, 대상의 인상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전달하고, 일반적인 서술로는 나타내기 어려운 깊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는 두 사물을 유사성 혹은 연관성에 의해 이어놓은 비교의 관계인 것이다.2. 비유의 종류- 비유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직유, 은유, 의인, 제유, 환유 등이 있다.(1) 가치가 있다. 이렇듯 두 시어 간의 유사점을 바탕으로 은유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방법을 치환은유라고 한다.② 병치은유- 병치 은유는 이질적인 두 요소가 병치될 때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는 은유의 한 형식이다. 여기서 새로운 의미란 둘 사이의 유사점이 배제된 상태의 의미를 말한다. 즉 병치 은유란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으로 종합될 때 필연적으로 새로운 의미론적 전이가 발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군중 속에 있는 얼굴들의 환영젖은 검은 나무가지 위의 꽃잎들에즈라 파운드, 이 시에서는 두 개의 사물이 등장하고 있다. ‘얼굴들의 환영’과 ‘젖은 꽃잎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사물은 유사성, 즉 모방적 인자를 갖는 것이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치환은유의 개념에 의하면 그 두 가지 사물은 은유를 이루지 못한 채 각각 독립된 상태로 그냥 나란히 놓여 있을(병치는 나란히 놓여 있음이다)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휠라이트는 이 시의 모방적 인자를 갖지 않는 이 두 개의 사물도 병치라는 형태의 결합을 통해 의미의 전환을 발생케 하는 은유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병치은유의 이질적 사물들은 병치를 통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휠라이트의 논리이다. 우리는 그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의미의 암시’가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병치은유는 시에 신선한 긴장을 일으켜서 사상과 정서의 깊이를 획득한다.(3) 대유(제유, 환유)- 사물의 명칭을 직접 쓰지 않고 사물의 일부나 특징을 들어서 그 자체나 전체를 나타내는 비유법으로, 환유법(換喩法)과 제유법(提喩法)이 있다.의 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한용운, 中위의 시에서 ‘칼날’은 ‘자기희생’이라든지 ‘고통’과 같은 관념을 대치한 말이다. 이처럼 하나의 관념이 그것과 연결되는 다른 관념을 대치하는 것을 환유라고 한다. 환유는 어떤 사물 또는 관념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사물 또는 관념을 빌려서 표현하는 것이 특다만 사람들끼리의 약속일뿐이다. 이처럼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恣意的)이라고 할 수 있다.벼는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햇살 따가워질수록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벼는 가을 하늘에도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바람 한 점에도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벼가 떠나가며 바치는이 넓디널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이 피 묻는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위 시에서 ‘벼’는 기호로 나타난 본래의 개념 이외에 또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벼’를 단순히 식물의 한 종류가 아니라 ‘서로 어우러져’,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등의 다양한 특성들을 통해 민중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기호는 개념전달에 의의가 있지만 상징은 그 자체가 중시된다. 그리하여 상징은 그 문맥 속에서, 어떤 관념을 결코 개념적이 아닌 하나의 살아있는 의미로 재현한다.(2) 은유와 상징상징은 어떤 심상의 배후에 다른 어떤 관념(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유와 같다.) 그러나 은유는 ‘-는 -다’ 라고 형식의 틀이 있는 반면, 상징은 원관념이 생략된 표현이다. 또한 은유는 비교와 유추에서 표현되지만 상징은 독자성을 가져 그 자체로 표현한다. 따라서 은유는 대상의 상호관계에 의해 의미의 제한을 받지만, 상징은 의미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문맥에 의해서만 함축의 폭이 넓혀지거나 제한을 받을 뿐이다.납작하게 짓눌리고 바짝 말리운 오징어를 위해서오늘 우리는술잔을 들자억눌린 가슴에, 그 멀쩡한 청춘이 우울하게지나간우리들의 가슴 위로 몇몇 잔의 술을 부어넣으며하찮은 눈물은 보이지 말아야지.연탄불에 굽히고 막 찢겨지거나가위질을 당한 이 오징어의지나간 삶과 마지막 죽음의 뒷다리 한 쪽을 집어들고차라리 옛날의 노래라도 불러‘문명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상징화한 것이다. 또 다르게 보면 ‘새’는 맑고 깨끗한 순수의 표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교태나 가식이 없는 순수성은 화자가 동경하는 직접적 대상이다. 그러나 ‘포수’로 인하여 새의 본질인 순수성은 위협을 받게 되고 결국 포수가 겨냥한 새의 순수성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불과한 비순수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새의 이미지는 하늘의 이미지에서 땅의 이미지로 즉 상승의 이미지에서 하강의 이미지로 변화되고 새의 천상을 향한 비약은 좌절되고 마는 것이다.이렇게 같은 기표를 가진 상징이어도 그 해석은 다양하게 될 수 있으며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3-2) 알레고리 (상징과 다르므로 구별해야 한다.)알레고리는 구체적 심상으로 제시되는 표면구조와 그것에 대응되는 추상적인 의미의 층이 그 이면에 명백히 의식되도록 짜여진 비유다. 하나의 기표에 그것이 지시하는 하나의 기의 이외에 또 다른 기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알레고리에 의한 심상도 하나의 상징이지만, 상징은 하나의 매체어가 지시하는 의미세계가 매우 암시적이고 다의적이며, 애매하기까지 한 데 비해서, 알레고리적 상징에 있어서는 하나의 매체어가 하나의 취의를 명백히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상징과는 확실히 구별된다.한국의 현대시, 특히 식민지 시대의 현대시에서 우리는 시의 이미지를 흔히 알레고리로 수용한다. 시인이 당대의 자기 시대를 어떻게 살았으며, 작품이 어떤 세계를 재현했으며, 그것은 또 어떤 삶의 가치를 가지는가하는 선시(先時)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문제는 이런 알레고리적 반응이 경직성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식민지 시대의 작품을 해석 ? 평가할 때 치명적인 결함으로 드러난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육사의 를 보면서, 이육사가 식민지시대의 저항시인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다면 청포도라는 시는 광복을 기다리는 마음을 나타낸 시로 해석하는 알레고리적 반응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들은 하나의 해석학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런 의미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습니다.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서정주, 中누군가 다 닳은 신발을 끌고세계의 끝을 걸어가고 있다.발바닥에 밟히는모래 소리 들린다.세계의 끝에서 죽지 아니하고또 걸어가면서뻐꾸기 따라 울어보라 등 빛칡꽃이 피고나도 걷기 시작한다.세계의 끝으로어쩔 수 없이.......서정주, 위에 예시한 두 편의 시는 모두 '신발' 을 중요 소재로 삼고 있으며, 이 신발은 서정주의 개인적 상징으로 나타나있다. 서정주는 신발을 신고 "세계의 끝을 걸어" 간다. 여기서의 신발은 노역과 고행으로 얽힌 현실 생활의 상징이다.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신발도 역시 이 시인이 장차 짊어지고 살아갈 현실적 삶의 부채라고 할 수 있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나서 아버지는 다시 다른 신발을 사다 주셨지만, 시인은 그것을 마치 잃어버린 신발을 찾을 때까지의 대용품인 양 생각한다. 잃어버린 신발은 그 '잃어버렸음' 으로 하여 평생을 추구하며 성취해야 할 '꿈' 이 되었으며 고통스러운 현실은 그 잃어버린 신발을 찾을 때까지의 '대용품' 으로 신고 있는 신발인 것이다.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드릴 걸서정주, 中다시 오지 못하는 서역 삼만리로 떠나는 사람에게 은장도로 머리털을 베어서 "신이나 삼아줄 걸" 하며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애통해한다. 신발은 이 지상의 대표라고 상징한다. 현실을 이끌고 아픈 목숨을 옮겨가는 물건이다. 때로는 무겁고 귀찮아도 쉽사리 벗어던질 수 없는 신발, 신발은 육신과 지상을 연결하는 방법인 것이다.위의 시들에서 '신발' 은 서정주가 발견한 개인적 상징으로 돌연히 나타났는데도 독자들은 익숙한 노래를 듣는 것처럼, 그리고 참신한 탄력과 충격을 느끼면서 감상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상징의 우수성에서 연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