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The Berlin File, 2012)-순간에 대한 확대, 그리고 세부적인 묘사. 그 안의 오감만족에 집중한다-요사이 영화를 보다보면, 친절하게 처음부터 설명해주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가전개되는 중간에 관객이 텅하니 던져지는 경우가 많다.이 경우 관객은 이야기의 전개를 농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데,초반부에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엔 이러한 방법이 제격이다.영화 베를린에서 그러한 예를 보자면,초반부 무기거래상과의 장면이 바로 등장하고, 곧이어 총격전이 진행되는 식이다.(인물에 대한 기초배경 및 사전설명은 전혀 없다.)사실 필자는 이러한 경향과 기술발전에 주목해 향후 한국영화나 세계 콘텐츠 제작방향이이러한 형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수년전 예상했다.예를들어, 3D가 그 대표적 예다.최근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이 콘텐츠를 보자면, 사실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 아주 단순하게,어떠한 이유로 이민을 가게됐고,그러다 배가 난파되어 벌어지는 그 과정.그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어떻게 그 이야기가 관객에게 몰입감있게 전달되고, 또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게 가장 공들인 부분이 아니였을까?라이프 오브 파이를 2D 관람한 관객 대다수가, 3D로 볼걸하고 후회하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한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아마도 전세계적인 현상일 것이다.이유는 자명하다. 애초에 관객에게 어필할 오감만족의 영상을 전제로 만든 스토리이자, 영화이기 때문이다.라이브 오브 파이가 수년전 필자가 예상한 그러한 경향의 선봉 그리고 그 시작점에 있다면 영화 베를린은 그 시작점을 향한 한국 영화의 출발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단순히 장르로만 봐서는 액션스릴러, 한국형 본 아이덴티티로 평가할법도 한데,콘텐츠 산업전반으로 봐서는 그러한 경향의 한국형 시발점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영화 ‘베를린’ 이 영화 본 관객들이 평이 엇갈리는 것은,아마도 이러한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몰입도는 최고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과 액션 또한 볼만하다.하지만 영화가 마무리 될즈음 느끼는 그 무엇은 타이타닉의 여운과는 달리 ‘아아!’ 하는 순간 끝나버린 느낌이다.
오만과 편견-그 때. 그리고 지금..-Prologue그 때,Pride&Prejudice, 2006년 3월경, 회사에선 이 영화를 홍보하고 있었고, 나는 학과생 서른여명 가량을 이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했던 기억이 있다.당시의 어느날, 나는 다수의 선배들에게 전화를 했고 어느 한날은 선배 열댓여명이 같은날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초대치 않았던, 한 얼굴을 보았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 인사하는 그녀가, 당최 알 수가 없었다.나도 못봤던 영화라 영화관에 들어섰을 땐, 그녀의 옆자리가 비어져 있었고, 그 옆의 선배의 설명이 무색하게, 그녀의 얼굴은 차갑게, 그러나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초대하지 않았다고,스무세살 어느날,1. 고전2주전, 변명이 무색하게 나는 발표를 하지 못했다. 사실 이 소설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또 어떻게 글을 써 무엇을 발표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찰나에 전날 많은 무리를 했고, 급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뒤늦게 수업에 왔을 땐,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당시, 기억에 남았던건 어떤 학우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고전에 대한 가치로서의 언급이였다.당시 그의 말이 정확히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너무도 일상적이라 고전으로서 합당한지 의문이라는것이 그 요지였다.사실, 세계문학특강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내가 마주했던 첫째의 질문은, ‘고전은 무엇인가?’라는 자기고민이였다. 한국에서 고전이고, 명작이라하면 과거 격동기를 배경으로한 작품이거나,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시조 혹은 구운몽 같은, 그나마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부류였다.헌데, 이번 수업을 들으며 느낀건 세계사적 고전이라하는 명작들을 보면, 그 시기에 있어서 차이에 기인하는지 몰라도, 현대와 과거에 있어 심리적 공감대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이를테면, ‘오만과 편견’이나 ‘폭풍의 언덕’ 특히, 내경우에는 노처녀적 히스테리의 집합체로 보이는 그 ‘폭풍의 언덕’이, 세계사적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편견적 잣대이거너무도 일상적이고 탁월한 심리와 연계된 주변묘사에 현재의 지구 어딘가 존재하는 어느 마을의 이야기가 아닐까, 느낌도 들었다.이 대비되는 두 소설(감성과 이성)을 읽고,고전으로서의 가치, 그것은 변하는 가치속에 인간 본연으로서의 속성을 꽤뚫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낸, 그것에 있지 않을까? 나름의 정리를 해봤다. 그래서, 이 소설이 오늘날의 여성에게도 어필하는 하나의 문학사적 작품이자, 변하지 않는 로망은 아닐까..2. 시대 그리고1796년, 지금으로부터 214년전, 이 소설은 쓰여졌다. 한 인간이 살 수 있는 나이가 80세라 가정한다면, 세번째 삶의 말기에 이르렀을 즈음이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볼때 , 이 소설의 당시 사회적 배경과 현대의 배경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소설에 담긴 남성과 여성의 생각과 행동은 얼마나 진화했을까?혹시, 진화가 멈춰버린것은 아닐까? 앞서 보여드린 영상을 보면 이 시대와 당시의 남녀간의 말다툼은 그다지 진일보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현대여성의 상대적 권익신장과, 사회적 통념의 변화에도 대다수의 여성은 수동적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차리라 현대 여성에서도 꽤 자기표현에 능숙한편이라고..‘네, 그전에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저하고 무슨 상관예요? 제가 부인의 조카와 결혼하는 데 이의가 없다면, 다르시 씨의 어머니와 이모님이 드 버그 양과 결혼시키고 했다고 해서 제가 물러날 까닭은 조금도 없지요. 두분께서 결혼 계획을 세우신 것까지는 좋아요. 그러나 하고 안하고는 당사자에게 달렸죠. 다르시 씨가 명예라든지 애정에 의해서 드 버그 양에게 구속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다른 여자를 선택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제가 바로 그 상대자라면 그분을 받아들여선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214년 전의 여성이런걸 보면, 요새 나오는 드라마의 여자들은 오히려 여권신장과 더불어 퇴보한 느낌마저든다. 다만, 현대여성을 비호하자면 작가가 살았던 작가와 시대 역시, 대놓고 드러내기엔 힘든시절이지 않다.)‘그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 때문일 리가 없어, 그의 행동이 저렇게 부드러워진 것이 나를 위해서일 리는 없어. 헌스퍼드에서 내가 질책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변할 수야 없지. 그가 아직도 나를 사랑할 리는 없어.’(속으로 항상 생각)214년 후의 여성을 위한 변명,그 때 역시도 그랬다.새벽2시-After prologue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슨 얘기를 할지, 또 내가 어떤 부분을 과거에 경험했었고, 이 소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는지, 혹은 그 나이대는 언제였을지, 생각해보았다. 담배 한대 피면서,,3. 나이그리고결혼이 소설속 인물들의 나이는 과연 몇살들일까?리디아 15세키티 16세메리 17~19엘리자베스 20살조지아나 16살남짓다아시 26살제인 21살(추정)빙리 21살샬롯 27살베넷 44살(추정),21살에 결혼역시나 굉장히 젊다. 다만 좀 의외인것은, 제인과 다아시 정도인데, 둘다 소설속 배경을 보자면 이해가는 측면이 없잖아 있다. 소설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해보면,제인은 여동생을 네명이나 두고 있으며, 다아시는 2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0살 아래인 동생(당시10살)을 홀로 키웠다. 이런 점은 두 캐릭터가 소설 속에서 다른 캐릭터와 구분되는 어른스러움을 지닌 이유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다아시는 아마,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을 키워야 했던 상황 그리고 동생과 잘 어울릴수 있는 그러한 배우자를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반년후, 위컴이 목사직을 단념하고, 3년간 소식이 끊긴 후(다아시가 25살,조지아나가 15살), 위컴의 흉계에 휘말려 동생을 잃을뻔 하기도 했다.이런 상황은 다아시로 하여금 사람을 경계케 하고, 자칫 오만해 보일 수 있는 그의 성품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다아시의 행동변화가 일어난후 재미있게도 자신의 아버지의 교육탓에 자기가 오만해졌다고 서술되어있다.)'부모님들이 버릇없게 기르셨어요. 부모님들은 퍽 선하셨지만, 특히 아버지는 인정이 많으시고 친절하셨죠. 저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행동을 나무라행동의 근본적 변화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만 강요되고 궁극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이다. (제인은 보다 적극적이나, 궁극적으로 그녀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으며,결국은 빙리의 행동변화와 다아시의 도움으로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또한, 엘리자베스 역시 시대를 앞선 여성상이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다.)이 소설이 쓰여진 1796년, 제인 오스틴은 한국나이 스물둘, 개작을 하고 다시 출간했을 때 나이는 서른아홉이다. 이 책의 제목이 에서 으로 바뀌게 된것은, 세월의 힘이 아닐까..소설이 처음 쓰여졌던 당시의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그로부터 5년뒤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보면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용의 변화는 과연 없었을까..영화 은 제인 오스틴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과 실화를 토대로 해보면, 그녀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의 집안은, 그 둘의 결혼을 반대했고, 결국은 결혼에 실패 평생을 독신으로 보낸 그녀다.‘지금의 저에게는 아무런 호소력도 발휘할 수 없어요. 다르시 씨와 결혼한다고 해서 의무니 뭐니 하는 것의 원칙이 유린당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분 가족의 원한이니 사회의 분개이니 하는 것에도 구애받지 않겠어요. 만일 그분이 저와 결혼한다고 해서 가족들이 원한을 품는다 해도 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분별력이 있으니까 저를 욕하지는 않을거에요. “이 말은, 정작 그녀가 평생을 두고 품어온 恨에 대한 분풀이 아니였을까? , 아마 그녀가 다아시를 그렇게 묘사하고, 다아시의 고백에서 묻어나듯이 신분에 대한 고뇌속에 빙리에게는 결혼을 만류하고, 정작 자신은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 잘은 몰라도 제인 오스틴은 그 남자를 정말 좋아했나보다. 그리고 그 남자 역시도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그 남자를 결국 붙잡진 못했다.‘다르시씨가 위컴 씨와 인척이 되는 것을 몹시 싫어했을 만큼 당연한 그 염오감마저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과거에 이미 그를 거절한 적이 있었던베스가 아무리 허영심이 많은 여자라 하더라도 이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녀는 곧 느낀 것이다. 위컴 씨와 동서지간이 된다고! 그의 모든 자존심이 여기에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확실히 큰일을 했다. 그 크기를 생각하면 엘리자베스는 낯이 뜨거워질 정도였다.'젠틀리 계급의 삶을 다룬 이 소설과 달리, 영화 을 참고하면,제인 오스틴의 가정은 가난한 성직자 집안이였으며 어머니는 가정부, 오빠는 바람둥이 군인, 장애인인 작은오빠,언니는 미망인이였다. 그리고 다아시로 대변되는 연인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였다. 후견인인 삼촌은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고(캐서린 영부인에 대입)이 사실을 소설에 대입해보면, 리디아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샬롯 모두가 작가의 과거이고 현재의 소회이자, 현실과의 타협적 상상으로 귀결된다.‘내 행동은 얼마나 비열했나! 안식과 재능을 뽐내고 언니의 관대한 담백성을 멸시하고 공연히 아니꼬운 불신의 허영에 만족하지 않았던가? 얼마나 창피한 일이냐? 그러나 마땅하지! 내가 사랑에 빠졌더라도 그 이상 우매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 허영이 내 과오였다.’이 소설이 그녀의 나이 스물한살에 쓰여진 것을 생각하면, 시대가 지나고 배우는것이 많아져도 실상 삶에 대한 경험과 깊이는 반드시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초중고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이제는 대학 4학년이란 시간이 되었지만, 정작 이제야 사회에 나갈채비를 하고, 그리고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 결혼을 생각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제인 오스틴의 스물두살은 우리에겐 서른정도가 될듯하다. 제인 오스틴이, 당시 나이에 쓴 작품이(개작을 하긴 했지만) 세계명작 반열에 든걸 생각하면, 예술학도들은 학교에서의 공부보다 결혼에 실패하는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우스개 소리를 해본다..지금의 우리 나이, 그리고 우리의 감성이 시대가 아무리 변화했다고 하지만, 옛날과 다를바 없고, 시대가 변해 여권이 신장되 길빵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도, 결혼 적령기는 점차 뒤로 늦춰지며, 우리의 .
-울산반구대 암각화-초등학교부터 사실 우리는 미술에 대한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어렸을적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미술을 싫어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림 그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컴플렉스마저 갖게 되었다. 그 때가 아마 중학교 때였던것 같다.그렇게 오랜시간 미술에 대한교육을 받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술에 대한 상식과 또 그것을 즐길 마음의 여유나 호기심은 어디로 갔는지 당최 알길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대학에 가면 달라지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저번학기 때 우연히 서양미술의 이해 강좌를 듣고, 이번에 또 한국미술의 이해 수업을 수강하게 된 것이다.다행히도, 이 두 수업에 걸쳐 나에 미술에 대한 느낌 그리고 생각도 인문학과 문화사적인 측면이 결부되어 점점 다른 방향으로 접근되어짐을 느끼고 있다.울산 반구대 암각화만 해도 그렇다. 사실 교과서적인 부분을 빌리자면, 미술책이 아닌 국사책에서 언급되었던 부분이고 그것도 단 한줄로 스쳐가듯 언급된 부분이다. 게다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 봤던 미술책엔 삼원색부터 나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보다 자칫 잘못하면 미술적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고 여겨질 지경이다.이번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동영상 자료는 미술이라는게 단순히 저멀리 있는것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우리 가까이 있고, 그것이 삶의 한 조각으로 드러나는 이 시간 그리고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반증이라는 것이 이 동영상 관람의 느낌이였다. 사실 미술사조나 지나간 역사를 얘기할 때, 앞부분은 금방 넘어가고 조각이나 그림 등이 중점적으로 보통 비춰지는데, 교수님께서 사실 쉽게 지나갈 수도 있는 부분을 이렇게 동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니, 좀 사실 다른 느낌이다. 한국에 이런 유적이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그렇게나 많은 고래가 뛰놀던 장소가 울산이라니..그리고 그들의 관찰력과 표현의 세밀함에 놀랬다.미술의 역사가 피카소나 유명작가서부터가 아닌, 이런 고래 묘사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지나간 선조에 대한 느낌도 다르고 미술자체가 좀 경원시된 부분이 내게 없잖아 있는데, 삶의 발자취로서의 미술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고구려 고분벽화-근래 미술수업을 듣다보면, 국사수업을 듣는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이 또한, 미술이란 개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인듯 싶지만 말이다.사실 지난 얘기지만, 이 동영상에 등장한 그림들은 언뜻 사진으로 스쳐가며 본적은 있지만 그 때마다 그림과 시대만을 외웠지, 그림에 대한 묘사나 설명은 들은적은 이번이 처음이다.예를들어, 안악3호분 묘주도만 해도 문제집이나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 그림을 보며 중국사람 비슷하단 생각만 했지 왜 벽에 이렇게 그림을 크게 그렸는지 사람의 크기는 왜 각각 다른지, 행렬의 규모는 어떠한 사실을 보여주는지 등에 관심을 갖진 못했었다.미술이란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회의 반영적 기능을 느끼게 해주는 요즘이다. 당시 고구려의 미술적 흐름이, 3세기에서 7세기 전반에 걸쳐 크게 세번의 변화를 겪었다 교수님께 배웠는데, 그렇게 듣게 보니 그림의 내용도 그렇도, 그림의 등장인물들의 변화도 눈에 들어옴이 느껴졌다.특히 인상적이였던 부분은 서양미술사에서 프레스코 기법이 모자이크 양식으로 변화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고구려 벽화의 변화가 프레스코에서 세스코로 변화했단 사실이였다. 당시 유럽쪽에서 중세에 프레스코 기법이 유행한것을 생각하면 시기적으로 봤을 때, SECCO 기법이 발견된것이 서양미술사의 기술적 수준보다 우월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단, 외국것이라고 해서 뭔가 있는듯이 봐왔던 내 생각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모를일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런것이, 서양미술사에서 프레스코 기법이나 모자이크 기법등을 썼다는 얘기는 어린시절에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프레스코 기법을 썼다는 얘기는 왜 들은적이 없는지, 아주 심각한 아이러니인듯 싶다.그리고 시기적인 변화에 따라, 그림에 담긴 사상이 신선중심에서 불교로, 또 다시 도교적 세계관을 띄는것이 인상적이였다. 그리고 무덤의 구조와 벽화담긴 그림 자체가 고구려인의 집의 구조와 유사하게 설계되어, 그 현실적 삶을 자세히 조망할 수 있단 사실은 꽤나 놀라웠다.창고의 경우 바닥과 떨어져 있어, 통풍이 쉬웠으며, 고구려인의 일상복에 도트무늬가 유행했단 사실은 꽤나 센세이셔널했다. 또 무용총에서 춤추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의 힙팝문화를 떠올리게 했으니, 참 옛삶과 지금의 삶은 떨어져있음에도 붙어있는것 같고,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인과’ 라는 인연인듯 싶다.각저총의 씨름도를 보면, 김홍도의 씨름도가 생각나니, 사실 김홍도가 패러디 했을 수도 있단 생각도 들고, 씨름의 유래가 참 오래됐구나, 혹시 스모가 씨름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미술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진 않을까? 의문도 들고, 참 미술이란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피상적인듯하면서 알게 모르게 정말 디테일한 학문이구나 싶다.
[한국미술의 이해]고려 불화의 향기, 수월관음도솔직히, 불화는 뻔하다고 생각했다. 전공자들에게 실례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보통 불교미술과 전시를 가보거나, 혹은 절에 가서 절의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자면, 그 내용이나 형식이 비슷비슷하여 뭐랄까 창조성이 결여된 형식미를 강조한 느낌만이 와닿았다. 특히나, 여러명의 부처나 보살들이 등장한 불화의 경우, 부처나 보살의 숫자가 많을수록 공력이 많이 소비됐다는 사실을 느낄순 있지만, 그 숫자에 비례해 감동이 와닿진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사실 중앙 박물관에 갔을 때도, 불화만 건너 뛰었었다.(다시 한번 가보려 계획중이나, 요사이 사정이 너무 여의치 않다.)그런데, 수월관음도가 내게 등장했다. 사실, 수업전 교재를 통해 불화에 대한 이미지가 좀 더 개선된 측면이 있었는데, 인간이란 참 단순한지 그 규모를 보고 다른 느낌이 전달됐다. 한국적이지 않은 느낌이랄까.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첫해외여행이자, 지금까지로는 마지막 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보도부드르와 프람바난 사원을 관람중이였는데, 한 외국인을 만났다. 그런데, 그가 한국을 여행한적이 있다고 얘기를 몇마디 주고 받았는데, 의외로 한국에 관해 좋은 얘기를 해주던 것이였다.당시, 어떤 거대한 탑에 들어가 그 안에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고 있었는데 자신이 살면서 세계를 다 돌았는데, 가장 아름다웠던 불상을 한국에서 봤다고 했다. 그래서 그 불상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쿙주’라고 했다. 하하, 좀 더 얘기를 나눠보니 경주 석굴암의 불상을 말하는 것이였다.사실, 해외를 나가보니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많이 자부심을 가지라 하지만, 그네들의 규모와 비교가 되질 않았다. 예를들면, 보도부드르 같은 경우만 해도 피라미드를 쌓고, 동서남북 사면에 불상으로 도배를 해놓았고, 프람바난 사원은 건물 몇층 높이 되는 탑이 몇개가 있으며, 그 주위로 아직 수리가 되지 않은 수십개의 탑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처럼 매끄럽지 않고, 또 섬세하지도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번, 불화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이 왔다. 사실, 모나리자에 비견하는 것을 보고 다소 좀 놀랍기도 했지만, 그 그림 자체를 정면에서 혹은 모나리자처럼 여러번 보고 듣지도 못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함이 그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러함에도, 그 거대한 그림을 사람과 대비되서 영상물로 확~하고 비춰주니, 정말 놀라웠던건 한국에 저런 거대한 스케일의 그림이 있었다는 사실이였다.다른 어떤 나라에 가도, 그러한 그림은 정말 보기 힘들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미술역사에서도 그 같은 그림을 아직 나는 보진 못했다.(벽화제외)다만 안타까운것은, 그러한 수월관음도가 일본에 있는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일본에 소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중앙박물관내에 고려불화가 그래도 어느정도 소장됐던것 같은데, 시간을 내서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리움에도 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