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디포와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는 영국문학사에 있어서 “로빈슨 크루소”라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18세기 영국소설의 선구자이다. 정치, 종교, 사회 등에 있어서도 많은 참여를 했으며, 이와 관련된 논설을 모아 팜플렛을 만들어 당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푸주간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훗날 하버드 대학의 부총장이 된 찰스 모턴의 밑에서 영국 대학에서 보다 더욱 폭넓고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원래 청교도 목사가 되고자 했으나 결심을 바꾸어 상인이 되었다. 초기에 사업이 크게 성공했지만, 성공과 실패를 여러번 반복한 끝에 큰 손해를 보고, 그 후로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장사에 대한 디포의 관심은 정치로 이어졌는데, 그것은 다시 글로 이어져서 이 시기에 정치적 팜플렛이 많이 나오게 된다. 토리당, 휘그당 편을 번갈라 들었던 점과 사업으로 인한 많은 빚 때문에 디포는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많은 풍자,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확고한 중용주의자라고 했던 면에서 본다면 당시의 격렬한 파벌주의 속에서 심한 당파와 종교 분쟁을 완화시키려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많은 훌륭한 팜플렛들 보다도 그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디포가 60세 무렵에 지은 “로빈스 크루소”라는 소설 덕분이였다. 알렉산더 셀커크 등의 여행객이나 부랑아의 회고담을 부분적으로 취재하여 쓰여진 이 책은 번역, 모방, 번안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의 한 비평가에게서 “세계적인 책”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로빈슨 크루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1부와 무인도에서 탈출한 후의 이야기를 다룬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 어린 크루소는 항상 강너머, 바다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모험에 대한 꿈을 키운다. 배가 난파하여 무인도의 갇히기 전에도, 크루소는 난폭한 기후를 만나 침몰될 뻔하거나, 해적을 만나는 등 여러 번 죽음 가까이에 다가섰다가 돌아오곤 하는데, 결국 모험에 대한 욕망을 잊지 못하고 또 배를 탔다가, 배가 파선하여 무인도에 떠내려오게 되었다. 섬 가까이 내려온 배에서 식료품과 옷, 무기 외에 고양이 개를 실어 날랐다. 산 중턱에 천막을 치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던 크루소는 점점 섬에 적응 하면서 밭을 일구고, 산양도 길들였으며, 곡식을 보관할 도가니까지 구웠다. 가끔 불안에 휩싸였지만, 노동과 성경 읽는 일로 달랬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식인종의 흔적이 발견되고, 식인종에게 잡아먹힐 뻔한 한 흑인을 크루소가 구해준다. 그 날이 금요일 날이라서 그 흑인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고 짓고, 말하는 법, 총 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 후에 또 에스파냐인 포로와 프라이데이의 아버지를 구해준다. 27년 째 되던 해에 영국 배가 나타나게 되는데, 크루소는 선장을 도와 선원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 선원들을 무인도에 남겨 둔 채 섬을 떠나게 된다. 세월이 많이 흐른 고국은 크루소에게 낯설게 느껴졌지만, 브라질 농원에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이어지는 2부는 그 후의 중국, 러시아 여행에 대해서 말한다. 1부에서 주인공이 한 섬에 갇혀 내면적인 탐구에 열중하는 개인 이였다면, 2부에서는 상업적, 종교적 꿈을 지니고 전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서구인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여기에서 크루소는 당시 서구인으로서 지니기 힘든 통찰력, 비판력을 가지고 자신의 문명에 대한 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재미있는 모험소설로서 아이들에게도 많이 읽혀지는 로빈슨 크루소가 중요한 의미를 지지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해서 알아볼 수 있다. 우선 그 당시인 18세기 영국인들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 하나와,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근대 소설의 시작이라는 점이다.소설 속에서 크루소는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곡식을 재배하고 저장하고, 가축을 길들이고, 집을 짓고 하는 일들로 점점 자신의 재산을 늘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18세기 영국인들의 늠름한 생활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당시 영국인들은 어떤 일이든 힘써 추진하고 재산을 늘리는 일에 몰두 했으며, 다니엘 디포 자신도 초기에 사업을 하면서 장사는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당시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였던 중산층의 성장, 자본주의를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느 날 그가 구해주게 된 흑인 “프라이데이”에게 크루소가 총 쏘는 방법, 말하는 것, 종교 등에 대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면서, 그를 문명화시키려고 했던 점에서, 제국주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디포가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는지 그 반대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영국인들이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 식민지를 개척하는 일에 빠져있었다는 것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베어울프와 일리아드에 남겨진 영국문학사-베어울프&일리아드의 공통점 차이점 비교-고대 영웅서사시의 대표작품인 베어울프와 일리아드는 그 비슷하게 지어진 시기와, 영웅을 제재로 한다는 것으로부터 많은 공통적인 부분을 가지지만, 캐릭터의 성격적인 부분이나 세계관등에 있어서 차이점 역시 가지고 있다.우선 공통점부터 살펴 보자면, 그리스와 영국 영웅서사시의 대표로서 베어울프와 일리아드는 모두 영웅서사시적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데, 첫째로, 입으로 구전되어오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는 점이다. 베어울프는 작자가 미상이고, 일리아드는 전통적으로 호메로스가 작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호메로스 역시 그가 전적으로 일리아드를 창작했다기보다는 이전에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집대성하여 기록하였을 것이라 본다. 두 번째로 영웅서사시의 특징인 웅대한 규모, 지리적, 시대적 제약을 초월하는 주인공이 두 작품에서 모두 나타난다. 베어울프에서는 베어울프가 궁전 안의 화려한 홀에서 불을뿜어대는 용 그랜달을 무기도 없이 해치우며, 일리아드에서는 10여년에 이르는 긴 전쟁 속에서, 주인공 아킬레스가 그 속에서 돋보이는 영웅으로써 전쟁에 임하다가 용감하게 전사한다. 두 작품 모두 영화로 치자면, 블로버스터 급의 HERO 영화인 셈이다.두 번째로 시기적으로 고대에 지어진 이 두 작품은 기독교가 널리 퍼지기 전부터 전해져 내려와 이교도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고대문학에서 종종 정의와 복수가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두 작품에서도 “복수”라는 소재가 많이 사용된다. 베어울프에서 왕이 가장 신임했던 신하를 그랜달의 엄마가 죽이자, 상심해 있는 왕에게 베어울프가 복수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랜달의 엄마 역시 자기 자식의 복수를 위해 베어울프를 공격하려 했다. 일리아드에서도 모욕을 당한 후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던 아킬레스가 동지의 전사로 복수를 다짐하며 전쟁에 참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복수”는 기독교의 “용서”라는 개념에 반대 되는 것으로 반기독교적인 모습이다. 또한 일리아드에 나오는 많은 신화적인 신들의 모습에서도 이교도적인 측면을 찾아 볼 수 있다.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일리아드와 베어울프가 종종 비교되는 이유는 특징적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일리아드에는 제우스, 헤라 등의 그리스 신들이 등장하며 이교도적 특징만 부각되지만, 베어울프는 이교도 성전에서의 제사, 지상 영화에 대한 찬미, 혈족 복수 등의 이교도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신의 창조에 대한 찬미, 평화를 지향하는 마음등 기독교화 하려는 노력 또한 발견된다.두 번째로 베어울프에서 주인공은 영국 영웅서사시의 특징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 정형화 되어있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음에도, 배려심이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있었다.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전통적인 영웅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리아드의 주인공 아킬레스는, 자신이 모욕을 당하자 화를 내면서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고, 후에 그의 친구가 죽고 나서 복수를 다짐하고 전쟁에 참가하는 등 좀 더 개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THE CANTERBURY'S TALESThe pardoner's tale(면죄부를 파는 사람의 이야기)옛날 플랑드르에 매일 낮과 밤으로 모여 술 마시고, 여자들과 노닥거리기를 좋아하고, 사기치고 도박하기 좋아하는 불량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어느 날, 역시 주막집에서 이 불량한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장례식 종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것인지 알아보았더니, 자신들의 친구가 장례식 종소리를 주인이였다. 그는 지난 밤에 술에 엄청나게 취해서, 의자에 앉아 전염병으로 죽은 것이라 했다. 그 주막집의 주인은 그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준 무서운 병이라면서, 누구든 죽음을 만나기 전에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술 취한 젊은이 한 명이 그 죽음이란 놈을 찾아봐야겠다고 제안하면서, 모두들 흥분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맹세하고는 주막집 주인에게 물어그 마을을 찾아갔다.가는 길에 세 불한당들은 늙은 노인을 만나게 된다. 늙은 노인이 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했지만, 제일 거만한 젊은이가 재수가 없다면서, 노인에게 심한 말들을 퍼부었다. 노인은 침착하게, 앞으로 당신들이 늙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박받지 않기를 원한다면, 지금 노인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도 덧붙였다. 젊은이 들은 콧방귀를 끼며, 노인에게 죽음이란 놈이 어디 있는지 바른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노인은 정말로 죽음을 만나고 싶다면, 이 꼬부랑길이 따라서 올라가라고 말하고, 참나무 밑에 죽음의 귀신이 있다고 일러주었다.노인의 말을 듣고, 꼬부랑길을 따라 올라간 불한당들은 참나무를 발견했는데, 그 밑에는 금덩이가 쌓여있었다. 어느새 세 불한당들은 죽음의 귀신을 찾으러 왔다는 것조차 잊어버린채, 금덩이를 옮기는 데에만 정신이 팔리게 되었다. 금덩이를 옮기는 데는 어두운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데, 밤이 되니 세 불한당은 배가 고파졌다. 그리하여 제비 뽑기를 통해서 시내에 가서 음식을 가져올 사람을 뽑았다. 제일 어린 젊은이가 음식을 가지러 가게 되었다. 한 명이 떠나자, 욕심이 생긴 남은 두 불한당은 음식을 가지러간 젊은이를 죽이고, 금덩이를 두 명이서 나누어 가지기로 정했다. 하지만, 나이 어린 젊은이도 그 나머지 두 명을 죽이고 혼자서 금덩이를 차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시내에 나가 음식을 구한 젊은이는 약방에 들러서 맹독이 든 쥐약을 구입하여, 표시해 놓은 자신의 술병을 제외한 나머지 술병에 그 독이 든 쥐약을 넣었다.
The Girl, 신·구여성의 사이에서hills like white elephants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단편으로 그가 ‘시대의 대변자’라고 불리는 감안할 때, 그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 인물이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the girl'의 혼란한 상태를 그 당시 시대적 특징과 연관 시켜서 해석해 보고자 했다.전통적으로 “여성은 도덕성의 수호자여야 한다”라는 등의 인식이 강했고, 그들 스스로도 그런 율법 같은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억압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 세계 1차 대전 직후, 여성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들은 지금까지의 전통적 인식을 거부하며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활발한 페미니스트 운동으로 결국 참정권을 획득했으며, 이런 과정에서 전통적 여성과 대비되는 '신여성'이 등장했다. 신여성들은 전통적 여성의 모습을 강력히 거부하고 남성들만의 세계라고 여겨졌던 음주, 흡연 문화를 즐기면서 성적해방을 추구했다. 이런 모습이 소설의 'the girl'에게 명확하게 드러난다.일단, 눈에 확실히 띄는 점은 이야기의 초반부터 끝까지 주인공들은 기차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계속해서 "could we have another drink?"(p.173, p.174, p.175,) 라고 말하면서 마시기를 제안하는 쪽은 'the girl' 이라는 것이다. 또한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임신한 것을 암시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 끝부분에 등장하는 "there were labels on them from all the hotels where they had spent nights"에서는'the girl'이 성적으로 보수적인 전통적 여성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술을 하자고 설득하는 남성에 대해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했던 초반의 태도와 달리 “And once they take it away, you never get it back"(p.175) 라고 확실히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힌 것은 “신여성” 으로서의 주체성을 가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당시 ‘신여성’에게는 한계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적인 자유를 갈망하며 전통적 여성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여성이 되려고 했으나 경제적 한계점과 가정적 문제가 있었다. ”(이현경,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나타난 여성인물 연구, 2007 p.10에서 재인용) 그런 한계점으로 인해 완전히 독립적인 ‘신여성’이 되지 못하고, 과거의 전통적 모습에 발목이 잡혀있는 과도기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다.성적이나, 음주등 문화적으로는 개방적이고 신여성적인 ‘the gir’l이 잠깐 자신의 주장을 비치면서, 스스로의 독립성을 지키는 듯 했으나 결국 “There's nothing wrong with me. I feel fine"(p.176) 이라고 말하는 등, 남성과의 대화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the girl은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실질적,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남성에게 의존하는 전통여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