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감상문기말고사 레포트를 위해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서인지 내용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주제파악은 커녕 작품의 대강 분위기만 파악할 정도니 얼마나 평소에 문학작품을 내가 접하지 않았으면 이랬을까 하고 조금 자괴감도 느끼고 반성도 해 보았다. 때문에 책을 뒤적거리면서 몇 번 읽어보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신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과 같은 이론적인 부분도 적용해보면서 읽다보니 그냥 마구잡이라고 소설을 생각없이 읽던 것 보다는 더 많은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짧고 간결하면서도, 그에 반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단편소설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도 수업시간에 언급하셨던 ‘벽’ 이라는 소설이었는데, 교수님에게 대강의 스토리를 읽어보니 생각외로 많은것을 내게 느끼게 해 주었다. 소설이 짧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비교적 쉽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레포트 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 하고 걱정도 해보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 ‘벽’을 가지고 레포트를 쓰기로 하였다.대략적인 줄거리는, 성탄절에 한 의사가 다른 한 남자에게 성탄절에 어울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얘기의 주인공은 어느날 아침 싸늘하게 시체로 발견된 어떤 남자이다. 의사는 그 남자에 대해서 아무런 면식도 없었지만, 그가 남긴 유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읽어보게 된다. 그 유서에는 자신이 자살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죽은 남자는 가족, 친구도 없이 항상 외로워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에 남자는 가끔 층계에서 마주치는, 옆방에 사는 어떤 천사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고독으로만 채워진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짝사랑하는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남자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새해에 대한 기대로 가득찬 어느 섣달 그믐날 밤, 역시 고독에 휩쌓여 있던 남자는 자신의 옆방에서 신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여자가 남자에 품에 안겨 내지르는 쾌락의 신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한 시간이나 지속되었고, 남자는 그 1시간동안 언제나 자신에게 눈길한번 주지않고 정숙해보이기만 하던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그보다 더 큰 분노와 절망을 세상에게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유서에 적어 놓았고, 남자는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방의 커튼을 뜯어 목을 매달고 자살하게 되었다. 의사는 그 유서를 읽고 나가면서 그 천사와 같은 여자가 궁금해졌지만, 대답이 없어 그냥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주인여자가 방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여자도 죽어있는 상태였다. 음독자살을 하였는데, 간밤에 남자가 들었던 그 신음소리는 쾌락의 신음소리가 아닌 여자가 죽어가는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여자도 유서를 써 놓았는데, 그것은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고독이었다.가장 먼저 소설을 읽고 느꼈던 점은 두 남녀 주인공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었다. 두 사람 다 절망적으로 세상을 미워하면서 죽어갔을 정도로 정말 고독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이 정말 우연히 라도 대화라도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서로의 고독을 눈치챘더라면, 이 소설의 결말은 행복하게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가 비소를 입에 털어놓고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을때, 작은 벽을 사이에 두고있던 두 사람의 감정은 어땠을까. 왠지 그들의 슬픈 감정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가슴이 조금은 답답하다.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고 또 세상에 싫증이 났으면 최후의 수단인 자살을 택했을까? 어쩌면 여자는 평소의 남자보다 훨씬 더 고독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래도 여자의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생각해볼수록 더 슬프고 끔찍한 것은 그 여자의 신음소리가 지속되던 1시간 동안이다. 남자는 자신이 오해한대로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내는 신음소리를 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 의사가 그의 유서를 읽었을때 느꼈던 처절한 감정,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마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감정적이어서 그 감정을 모두 글로서 표현하는건 무리라고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여자의 신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써내려가며 자살을 택한.. 아마 그는 너무나 화가 나있어서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반면 여자는 어땠을까?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갔지만, 이미 세상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져버린 채 죽음을 택했기 때문에 차갑게 죽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옆방에 살고있는 ‘사랑하는 여자’로 인해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여자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할 아무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 조금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벽으로 가로막힌 옆방에 자신을 정말 사랑해줄 사람이 있었는데. 자신을 고독의 나락에서 구해줄 누군가가 있었는데.. 아마 여자는 자신에게 말을 붙이지 못하는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죽은 이유는 조금은 달랐지만, 아마 죽어가면서 느낀 감정은 뜨거움과 차가움, 분노와 실망(혹은 싫증)으로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어느쪽이던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죽어간 건 같지만, 이런 점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아마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벽’일 것이다. 얇은 벽을 두고 들려오는 소리에 오해를 한체 죽어가는 남자. 또, 사실은 그 누구보다 마음속으로 누군가에게 도움과 사랑을 바라는 여자. 만약 그 벽 너머로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내가 소설을 읽고 많이 안타까워한 해피엔딩에 관한 바램이 꼭 반드시 이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스쳐 지날 때마다 간단한 인사라도 할 수 있었다면.. 남자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자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여 조금은 더 행복해졌을 것이며 여자는 밑도 끝도 없었던 고독에서 조금은 희망을 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이 소설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약간 반어법적인, 혹은 역설적인 부분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먼저 벽의 부제목인 ‘성탄절을 위한 콩트’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본래 콩트 라는 것은 즐거움을 주기 위한 간략한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소설의 내용은 슬프게 죽어간 두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또 성탄절이란 원래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세상이 모두 즐거움으로 채워져야 할 때인데.. 제목뿐만이 아니라 소설의 개입부분에서도 서술자 ‘나’가 의사 ‘레이 박사’에게 성탄절에 할만한 얘기를 청하지 않았는가? 이 부분에서는 조금 의문점도 생겼고 머리도 갸웃인게 사실이다. 즐거운 성탄절에 해야할 이야기가 사실은 얇은 벽을 두고 오해 때문에 죽어간 두 사람의 이야기라니.. 참 역설적인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오히려 그 덕분에 두 남녀의 죽음이 더욱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레이박사는 이 이야기가 정말 ‘우스운’이야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고작 작은 벽 하나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간 두 사람은 어떻게 보면 정말 처절하도록 슬픈 코디디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성탄절에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왠지 즐거운 분위기가 되진 않을 것 같다.소설을 읽은 후 내 주위에도 어떤 벽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면 물리적은 벽도 우리를 서로서로 갈라놓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어쩌면 높은 울타리로 가려져 있는 우리는 몸이 멀어지면서 마음 또한 점점 더 멀어진 것 같다. 옛날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서로의 담장이 많이 낮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서로의 주거공간을 아예 차단하는, 그것에 관련된 법조항까지 있는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옛날과 지금은 비교해보면.. 담이 낮았던 그때는 이웃간에 정말 가족처럼, 서로의 일을 도와주고 기쁜일은 서로 같이 기뻐해주고, 슬픈일은 같이 슬퍼해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울타리를 높이면서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 높은 울타리로 인해 우리 서로의 이해나 정 같은 것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