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
검색어 입력폼
  • [일본요리]당고, 만쥬, 모치에 대해서
    일본 대중문화 기행 -“당고, 만쥬, 모치” 에 대하여-일본 대중문화 기행 -일본 음식 중 후식(당고, 화과자, 만쥬)에 관해-‘일본’하면 생각나는 것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달콤하고 눈이 즐거운 디저트일 것입니다.한국인들은 ‘후식’ 하면 커피나 과일을 생각 하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이라고 했던가요? 일본인들은 모치 하나에 뜨거운 오차 한잔, 달콤한 케이크와 에스프레소 등의 후식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오차의 문화는 디저트발달에 크게 이바지 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 조는 광범위한 범위 중에 크게 전통과자인 와가시(和菓子=화과자) 중 대중적인 나마가시 위주로 조사하였습니다.손으로 정교하게 빛은 전통과자 와가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디저트입니다. 초기의 화과자(和菓子)는 일본식 과자입니다. '일본식(풍)의' 라는 뜻을 갖는 접두어 '和'가 붙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과자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와가시는 과거 궁중의 제례 때 보관이 어려운 과실을 표현하기 위해 곡식(쌀)을 갈아 과실모양으로 만들기 어 신에게 바친 디저트였습니다. 왕족과 일부 귀족만 맛볼 수 있었고, “첫맛은 눈으로 끝 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양이 매우 화려합니다. 와가시는 다도에서 차를 마실 때 함께 곁들어 먹기 때문에 단 것이 많고 기름은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술 작품처럼 식물을 이용하여 계절감을 표현하거나,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공예과자분야도 있습니다.역사를 살펴보면, “나라 헤이안” 시대(710~784년)에 당나라에서 불교와 함께 당과자가 일본에 들어왔는데 이것이 고유한 일본과자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설탕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자의 재료로는 꿀과 엿을 사용하였습니다. “무로마치 시대”(14세기 초~16세기 중엽)말기에는 규슈지방에서 일부의 설탕을 자체 생산하였으나 설탕량은 풍부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에도”시대까지 유럽과 교류가 한창 이루어지면서 들여온 남만과자가 일본식으로 동화되어 지금의 만주(饅頭:만두), 센베(煎餠볼 수 있습니다.화과자의 생명은 앙금인데 즉 앙금의 상태에 따라 화과자의 맛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백앙금과 적앙금에 설탕을 더하고 여기에 다른 여러 재료를 첨가하여 색다른 앙금을 만듭니다.와가시는 크게 수분함량이 많은 나마가시[生菓子], 반생과자 한나마가시[半生菓子], 건조시켜 만든 히가시[干菓子] 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수분함량보존기간예나마가시많음짧음만주, 모치, 양갱, 단고한나마가시중간중간모나카, 캇텔라히가시거의없음오래보관가능센베, 오코시각각의 특징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이중 저희 리포트에서 중점으로 다룰 것 은 나마가시 류 (당고, 만쥬, 모치) 입니다.나마가시는 찹쌀, 팥, 설탕, 한천, 밀가루, 우무와 앙(콩+설탕) 을 주원료로 만든 달콤한 맛의 생과자로 우리나라의 떡과 같은 형태입니다. 나마(生)라는 말 그대로 오래 보관할 수는 없지만 맛과 모양을 계절에 어울리도록 세심하게 만든 음식으로 오차와 함께 먹습니다. 이중 네리키리(練りきり)는 계절을 나타내는 꽃, 새, 과일을 본떠 만들어 의식이나기념일 행사에 내놓기도 합니다.↑네리키리*당고란당고는. 주된 원료는 쌀이고 찹쌀이나 차수수의 가루를 따뜻한 물로 반죽하여 밤톨만큼씩 동글동글하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내어 고물을 묻힌 떡의 일종입니다. 겉에 무었을 끼얹느냐에 따라 종류가 여러 가지로 달라지고 먹기에도 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단과 유사해 보이지만, 경단이 계피 팥이나 녹두 고물소를 넣고나 경단의 겉면에 꿀을 살짝 바르고 대추채, 밤채, 흑임자 등의 고물을 뭍여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즐긴다면 당고는 소를 넣지 않고 단맛이 나는 소스를 뿌려 먹는 차이가 있고 경단에 비해 다소 맛이 강합니다.*당고의 종류쿠사당고쑥을 넣어 반죽한 당고로 색이 녹색이다.시라타마 당고찹쌀가루로만 만든 당고, 단팥죽 같은 것에 넣어 먹는다미타라시당고당고를 살짝 불에 그을린 다음 그 위에 설탕을 가미한 간장을 끼얹은것키비당고수수로 만든 당고, 일본 예날 이야기 ‘모모타로’에도 등장한다이키나리당고구마모토의 놀이할 때 먹는 삼색 (초록, 분홍, 흰색) 당고츠키미 당고가을 밤 달구경 할 때 먹는 당고, 피라미드 모양으로 높게 쌓아 올려서 내놓는 경우가 많다.봇찬 당고명치시대의 태평성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소박한 맛과 모양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가 즐기던 다식이라고 해서 그의 소설 봇찬을 인용해 이름이 붙여졌다.위에서 언급 했듯이, 겉에 무었을 끼얹느냐에 따라 종류가 상황,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지는 지는데요, 아래 표는 당고의 종류 중 일부 이며,특히, 하나미 때 먹는 대표적인 먹거리로 빠지지 않는 하나미당고(花見?子)는 벚꽃 색(분홍)과 흰색, 녹색 등의 빛깔로 만들어지는데 이 세가지 색의 각각의 의미가 있습니다. 분홍은 벚꽃과 봄의 숨길을, 흰색은 겨울의 남은 흔적인 눈을 의미하며, 녹색은 쑥을 의미하며 여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속담이자, 드라마, 만화, 영화의 제목인 '꽃보다 경단'(花より?子 하나요리 당고)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로, 꽃 구경이라는 추상적인 행위보다는, 경단이라는 실제를 얻는 행위를 두고 말하는 말입니다.*당고 삼형제 (だんご3兄弟)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호빵맨 처럼 음식을 주제로 한 노래, 만화가 인기를 끈 일이 많습니다. 특히 경단을 꼬치에 끼워먹는 일본음식 당고를 의인화하여 사이좋은 3형제로 묘사한 '당고3형제(だんご3兄弟)'는 역대 일본 싱글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노래입니다. 꼬치에 끼워진 형제가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금방 화해하고, 다음에는 팥고물 잔뜩 묻은 팥 당고가 되고 싶다고 하는 등 당고의 특징도 재미있게 살리고 있답니다. 원래 경단은 3~5개가 기본인데 이 곡이 뜨는 바람에 경단은 3개라는 인식이 퍼져 경단을 4개로 팔고 있던 모 경단 체인에서 [원조 경단 4형제]라는 곡을 발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이처럼, 일본의 유명하고 대중적 간식인 당고는 이제는 한국에도 전파되어 이미 홍대, 합정 등에는 당고를 파는 가게도 있다고 합니다.*만쥬란이 소로써 사용되며, 이를 넣고 찌거나 구운 과자입니다.육류를 사용하여 속을 채워 넣어서 만든 중국의 만두(饅頭)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만두라고 불리게 되었고 일본으로 넘어가서 콩, 팥으로 만든 앙금을 채운 만쥬로 정책했습니다.일본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피했기 때문에 육식 대신에 콩, 팥을 사용하였습니다.*각 지방의 만쥬가쿠니 만쥬히요꼬 만쥬모미지 만쥬각 지방마다 지역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는 특이한 대표 만주들이 있는데, 그 중 세가 지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1) 가쿠니 만쥬규슈지방 나가사키의 명물인 만쥬입니다. ‘가쿠니’란 돼지고기를 덩어리 채로 오랜 시간 끓이고 졸여서 만든 것인데. 가쿠니 만쥬는 이 돼지고기를 넣어서 만든 만쥬입니다.(2) 히요꼬 만쥬후쿠오까의 명물인 히요꼬 만쥬는, 일명 병아리 만쥬로 불립니다. 속은 앙금으로 꽉 차있고, 앙금은 흰 팥소에 설탕과 노른자를 더해서 노란 팥소로 만들어집니다.(3) 모미지 만쥬모미지 만쥬는 히로시마 중에서도 특히 일본내에서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야자키의 특산물로 약 5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미지는 일본말로 단풍을 의미합니다.속의 앙금으로는 팥, 슈크림, 완두콩 등으로 다양하고, 단백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입니다.*만쥬의 다양함만쥬는 밤을 올려서 밤만쥬 고구마 앙금을 싼 고구마 만쥬 등 만쥬의 내용물과 껍질에 따라 종류와 모양이 다양합니다. 팥소를 소포 증기를 사용해 찐 증만쥬. 곁 가루를 이용한 곁만쥬, 국으로 발효팽창시키는 술만쥬, 튀김 만쥬인 아게만쥬 또 안의 팥소는 빨간콩 고사팥소, 부수어 팥소, 팥알 섞은 팥소, 뻐꾸기팥소, 흰 소, 절의 부엌팥소, 참깨팥소, 가루차팥소, 흰 팥소에 된장을 섞은 것, 호박팥소, 매화 등 열매 그 자체를 사용하는 것, 매실, 마차를 이용하는것 등 매우 다양합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델리 만쥬처럼 안에 카스터드 크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또한 특이하게도 일본에는 인물의 이름을 딴 만쥬 등도 있습니다. 일본 전 코이즈미 총리의 이름을 딴 쥰만 3개월만에 무려 2만 상자나 팔렸다고 합니다.*모치란모치[餠]는 찹쌀을 쪄서 손이나 기계로 만든 떡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모치에는 설날에 먹는 가가미모치[鏡餠]와 설날 떡국에 사용하는 조니모치[雜煮餠], 찰떡을 썰어 놓은 가키모치[かきもさ]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 조니모치는 관동지방에서는 잘라서 굽지만 관서지방에서는 굽지 않고 먹기도 합니다.찹쌀을 하룻밤 물에 담가 두고 소쿠리에 담아 충분히 증기가 오를 때까지 강한불로 쪄서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어서 만듭니다.*장식하는 모치! 가가미 모치! [鏡餠]우리나라에서 새해 떡국을 먹고, 추석에 송편을 찌듯이 일본에서 새해를 맞는 가장 중요한 집안 행사 중의 하나는 찹쌀로 빚는 '모치 만들기'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치'는 안에 단팥이 들어있고 겉에 허연 가루가 묻혀져 있는 찹쌀떡이지만, 원래 모치는 일본어로 떡을 총칭하는 말입니다.새해에 먹는 모치는 찹쌀가루를 쪄서 둥글둥글하게 마치 우리 나라의 찐빵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듭니다. 이런, 설날에 쓰는 모찌를 '가가미 모치'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거울 떡'이 됩니다. 거울떡의 거울은 「칸가미루(鑑みる)」라는 의미. 즉, 좋은 표준이나 규범에 비추고 생각한다는 의미의 말을「칸가미모치(かんがみもち)」라고 부르는 소리가 차츰 변화해서 지금이 카가미모치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떡 모양이 마치 옛날의 구리 거울처럼 둥글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가가미 모치는 새해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신이 머무는 가장 신성한 공간에 놓아두는데, 아직까지 이런 풍습은 보통 가정에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제기 위에 흰종이를 깔고 각기 크기가 다른 두세개의 가가미 모치를 포개어 얹고 그 사이나 맨 위에 곶감, 다시마, 밀감 등으로 주로 장식합니다. 카가미모치의 둥근 형태는 가정의 원만함을 나타내고 거듭해서 쌓아올린 모습에는 1년을 경사스럽게 거듭한다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가가미 모치를 나중에 먹는데, 그럼으로써 신과 일체감을 느.
    생활/환경| 2010.12.14| 8페이지| 1,000원| 조회(874)
    미리보기
  • 피사의 사탑과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서
    -‘피사의 사탑’과‘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서-이태리어를 배우기전에 ‘이태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피자, 스파게티 등의 음식거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태리어를 배우면서 이태리에 대해서, 또 그곳의 여러 위인들과 유명 건축물 및 문화생활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정보들이 있었지만, 가장 저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피사의 사탑과 그곳에서 실험을 했다고 알려진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였습니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서부터 세계 7대 불가사리 중 하나로 익히 들어온 피사의 사탑과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 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많지만 사실 어디에 있는지, 혹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이번 조사를 통해 알아보고자 주제를 -피사의 사탑(특징과 역사)과 갈릴레오 갈릴레이(역사)- 로 정했습니다.피사의 사탑 (Torre Pendente)은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사시의 피사 대성당에 있는 종탑으로 피사 대성당 동쪽에 있습니다. 과거에 피사시에 있는 웅장한 대성당은 종탑이 없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피사 시민들이 1174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멋진 탑을 세우기로 해서 만들어 진 것이 바로 피사의 사탑입니다. 피사의 사탑은 흰 대리석으로 된 둥근 원통형 8층 탑으로 최대 높이는 58.36m이며 294개의 나선형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연결됩니다. 또 종루에는 총 7개의 종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모두 다른 음을 낸다고 합니다. 사탑의 무게는 1만 4453톤으로 추정되고, 2008년 기준 기울기의 각도는 중심축으로부터 약 5.5˚ 였습니다. 피사의 사탑은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전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예술적 가치가 더 높은 작품이 수두룩하지만, 유독 이 탑이 유명한 이유는 금방 쓰러질 듯 삐딱하게 서있어 동정심과 호기심을 계속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뒤에 설명이 있지만 이 탑에서 갈릴레오가 물체의 자유낙하 실험을 한 곳이라는 일화도 있습니다.피사의 사탑은 완공 후 800년 동안 조금씩 들이 피사에 "기적의 광장"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그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종탑(Bell Tower)이었습니다. 유명한 건축가인 피사노와 석공들에 의해 건설공사가 시작되었으나 1층이 완성되자마자 탑은 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원초적인 문제의 발단은 점토와 모래로 형성된 연약한 충적토 위에 종탑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였습니다. 탑이 기우는 것은 지반약화로 인한 부등침하 현상이 나타나며 북쪽으로 기운 것인데, 건축가들은 북쪽 기둥과 아치를 남쪽보다 조금 높게 세워 똑바로 보이도록 잔머리를 썼습니다. 사실, 그 당시 탑을 즉각 해체하고 지반을 충분히 다진 후 재공사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위치로 옮겨 세웠어야 했으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건축가들이 얕은 수와 임시 편법으로만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만약 공사를 다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피사의 사탐은 없었을 것입니다.1178년 4층을 올리기 전에 피렌체 전쟁으로 탑 쌓기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약 100년이 흐른 뒤인 1272년 재개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심사숙고 끝에 우선 탑 밑의 지반을 다지는 공사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탑이 반대편 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반 구조는 남쪽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웠던 겁니다. 그러자 건축가들은 4층부터는 남쪽의 기둥과 아치를 더 높게 세웠습니다. 결국 문제점을 안고도 밀어붙여 1278년 7층까지 쌓아올렸으나 당시 탑은 이미 1도나 기울었고 중심에서 0.8m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전쟁으로 공사가 80여 년 동안 중단되었고 1360년경, 새로운 건축가들이 나서서 8층에 마지막 종루를 쌓을 때도 탑은 계속 남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이 때의 건축가들도 기울기를 바로 잡는다고 원천적인 문제 해결을 하기 보다는 남쪽에 계단을 6단 추가하는 임기응변을 또 부렸습니다. 1370년 경, 결국 중심에서 1.4m가 기운 삐딱한 탑을 준공했습니다. 그 당시, 1.6도의 기울기는 무시할 수 있고 눈에도 잘 띄지 않았져 버렸고, 그 이후 감히 손 델 엄두를 못 내고 방치하게 되었습니다.거의 100년이 지난 1934년 무소리니 시대에 새로운 기술자들이 나섰습니다. 지반을 강화해 더 기우는 것을 막는답시고 지하 기초에 361개의 구멍을 뚫고 콘크리트 80톤을 쏟아 부었으나 결국 남쪽으로 더 기울게 하고 말았습니다. 1990년 정밀측정에서 북쪽은 21cm 가라앉은 반면 남쪽은 두 배가 넘는 43cm나 내려앉은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즉 5.5도나 기운 것입니다. 결국 다급해진 이탈리아는 즉시 관광객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전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전 세계에서 14명의 내노라는 전문가를 초빙하고, 이탈리아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어 본격 복구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 탑은 이미 무너졌어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1989년 피사 근처 파비오에 있는 800년 된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돌발사고도 있었었다고 합니다.복구공사의 목표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정도만 세운다" 즉, 0.5도만 세워 300년 전 기울기로 한다는 것 이였습니다. 이는 사실 공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거래로 사탑의 명목을 지키고 관광객의 호기심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삐딱한 채로 마무리한다는 협상을 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측은 건축할 당시부터 기울었던 탑을 똑바로 세운다는 것은 문화재 훼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피사의 사탑은 기운 상태로 있어야만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있다 주장하며 전문가들과 합의를 보았습니다.새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서 고심 끝에 제시한 복구 대책은 참으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사탑 중간에 강철선을 붙들어 멀리 고정시켜 더 쓰러지지 않게 해놓고는, 북쪽에 납덩어리를 쌓아 지반을 내리 누른다는 방안이었습니다. 3년이 지난 1993년에야 660톤의 납덩어리를 올려놓았고 다행히 사탑은 북쪽으로 조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탑 허리춤에 강철선을 두르고 흉하게 납덩어리를습니다. 과거 무소리니 시절에 설치된 기초 콘크리트와 여기에 연결된 쇠파이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습니다.1.5mm는 일 년에 걸쳐 기울 수치인데 하루 새에 기울어져 버렸기에 기술자들은 부랴부랴 300톤의 납덩어리를 북쪽에 더 얹었으나 결국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버렸습니다.다시 찾은 세번째 방안은 상대적으로 올라간 북쪽 지반의 흙을 긁어내 가라앉히자는 것이었습니다. 납덩어리로 내리누르던 것을 흙 파내기로 전환한 것입니다. 사탑을 붙들어 맨 강철선은 그대로 둔 채, 직경 20cm로 12개의 구멍을 비스듬히 뚫어 북쪽의 흙을 파내기로 한 것입니다.1999년 2월에 시작한 굴착작업은 기술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기초를 건드리는 작업이였기에 잘못하다가는 탑이 폭삭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강행한 공사였습니다. 굴착공사 초반에 사탑이 또 기울고 있다는 긴급 팩스를 받고 책임자는 사표를 쓸 작정이었다고 하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원인은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의해 기온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사탑이 남쪽으로 기운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바람이 멈추고 기온이 올라가자 탑은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갔습니다.다행히 흙 파내기 작전은 효과를 보며 2001년 6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탑의 기울기를 19세기 초 수준(4.1m)으로 되돌려 놓은 상태에서 흙 파내기는 중지됐고, 이는 11년 만에 거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를 위해 3500만 달러(약 455억원)가 넘는 돈이 투입했고, 수많은 기술 인력과 10여 년의 세월이 소비되었습니다.납덩이와 강철선도 제거되었고, 2001년 6월에 다시 사탑은 관광객들에게 개방 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피사의 사탑을 찾고 있습니다.근대과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2.15~1642.1.8) 그는 피사에서 태어났으며. 피렌체의 시민계급 출신입니다. 장남에게는 성을 겹쳐 쓰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습 때문에 그의 성과 이름은 비슷합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같은 속도로 낙하" 한다는 사실을 밝혀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 는 이론을 깨고, 근대적 역학법칙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 갈릴레이는 위에서도 언급한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 두 공의 낙하를 실제로 실험하여, 이 사실을 증명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과학사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이가 생존했던 시대에도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니, 물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두 개의 납공을 떨어뜨려서 (그것도 피사의 사탑이 아닌, 자신의 집 2층 창문에서) 실험한 인물은 시몬 스테판이라는 네덜란드인인데 갈릴레이의 제자가 쓴 에서, 저자가 스승의 업적을 찬양하려는 나머지, 그만 다른 사람의 업적까지 혼동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둘째로, 진자의 등시성이 있습니다.신앙심이 깊은 갈릴레오는 성당에 나갔다고하는데, 이 때 성당에서 흔들리는 등잔을 보면서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하여 추시계를 만드는데 밑거름을 하였으며 이는 현대의 시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발견했을 때가 그의 나이 20살 때라고 합니다.세 번째 업적으로는 갈릴레오 망원경이 있습니다.인간이 망원경으로 행성을 처음 관측한 것은 1609년에서 1610년경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1608년에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만 듣고 스스로 고성능 망원경을 제작하여 천문관측에 이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최초 발명자가 아니라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최초의 천문학자인 셈입니다. 1609년에 갈릴레오가 처음 제작한 망원경을 그의 이름을 따서 갈릴레오 망원경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갈릴레오는 목성의 커다란 4개의 위성, 태양의 흑점, 금성의 상(相), 달 표면의 언덕과 계곡 등을 발견했습니다. 갈릴레오 망원경은 대물렌즈(상을 형성하는 렌즈)의 역할을 하는 볼록 렌즈와 초점 앞에 놓이는 접안 렌즈를 대신 하는 오목 렌즈니다.
    인문/어학| 2010.12.14| 8페이지| 1,000원| 조회(665)
    미리보기
  • 마지막강의 중요내용 발표
    마지막 강의랜디 포시는 … - 시간을 낭비하지 않음 - 꿈을 잃지 않는 피터팬 - 다른 사람의 꿈을 돕는 사람 - 암에도 낙관적인 자세 “ 나는 이길 수 없는 시나리오는 믿지 않아요 ”어릴 적 꿈 진짜로 이루기 * 장벽 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 장벽은 , 자신이 아니라 ' 다른 '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p.108) - 끈임 없이 노력하기 . - 항상 꿈을 포기하지 않기 . - 조그만 기회도 발판으로 삼기 .시간관리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 152.p- - 중요한 일을 할 시간 찾기 X 만들기 O - 창조적이고 사색적인 시간 사수 - 옳고 좋은 일에 시간을 쓰자 - 시간도 돈처럼 관리 하기인생을 사는 법 불평하지 않기 첫 번째 펭귄 되기 = 적이 있을지도 모르는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희생양 = 도전한 목표엔 실패 BUT 새로운 idea 를 시도하는 것 사람들을 집중시키기 성실하기 모르면 묻기 !그가 부탁하는 소중한 가치들 ★ 감사하기 ★ 준비하기 ★ 찾아내기 ★ 사과하기 ★ 좋은 면 발견하기 ★ 사람들의 말 소중히 여기기 ★ 순간을 즐기기{nameOfApplication=Show}
    독후감/창작| 2010.12.14| 6페이지| 1,000원| 조회(138)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0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