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문화 학습 전략우리가 타문화를 학습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잘 파악함으로써 자신에게 이로움을 가져와야겠다는 차원보다는 다양성을 가진 인유 문명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꾀하고, 서로 경쟁적인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기보다는 인류 공동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함께 협력해가야 하는 동반자로서 지구촌의 이웃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학습이 필요하다.1. 문화학습의 내용문화란 말의 개념은 이를 쓰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삶의 양식이라는 점에서는 사회적인 관점이 강조되지만 경제적인 관점이 강조될 때는 소위 캐릭터라는 개념이 부각되기도 한다. 다른 문화를 배우고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사용되는 문화의 개념이란, 고급 문화나 예술 등의 한정된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사고 체계를 의미한다.문화를 배운다는 것 중에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게 그 문화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배우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문화의 본질에는 언어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으며 언어의 습득을 통한 문화적 지식의 획득은 문화 학습의 첫 단계이다.2. 문화 학습의 성과타문화 학습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우리 자신의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우리의 주관적 태도(가치 중립적인 의미에서의 편견)를 먼저 잘 이해하고, 이것이 타문화를 이해하는데 끼치는 영향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그 첫 단계이다.3. 문화 학습의 목표와 전략다문화주의적 교육에 많은 연구를 한 베넷의 문화를 학습 하는 여섯 가지목표-다양한 역사관의 개발-문화적 의식의 강화-문화간 의사소통 능력의 강화-인종주의, 편견, 차별의 퇴치-지구상태와 지구촌적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제고-사회적 책임 수행에 필요한 기술의 배양4. 세계와 더불어 사는 길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국가간의 경계나 문화간의 차이를 넘어서 점점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고, 이러한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협력하여 인류공동으 서로 다르다.바. 영국의 생활문화1)패스트푸드와 르스트비프2)할로윈데이-10월31일3)홍차를 즐겨마시는 영국인4)결혼문화영국남녀의 약혼은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로부터 결혼식을 정식으로 허락 받고 신부에게 줄 지참금의 약수를 결정하는 것이었던 관계로 약혼기간은 그 지참금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의미가 있었고 결혼식장도 보통 1년 전에 예약을 하게된다.5)각종 스포츠의 발원지6)윔블던 테니스대회7)예절와 취미의 나라8)하나의 국가와 네 개의 팀사. 영국의 갈등 : 북 아일랜드의 종교문제와 지역갈등북 아일랜드에 분쟁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다. 영국정부의 장려 정책에 따라 많은 잉글랜드인들이 아일랜드 북부지방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주민투표 당시 아일랜드 북부 지방은 원주민인 아일랜드인들보다 이주해온 영국인들이 더 많았으며 투표 결과 영국 잔류를 원하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할 줄 알았던 북부 아일랜드인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이 자신들의 처지가 qkRNls 것에 반발하게 되었고 이것이 무장투쟁의 시초가 되어 대표적인 무장그룹인 아일랜드 공화군의 테러와 영국의 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유혈극이 벌어지고 있다.아. 영국과 한국의 관계한국과 영국과의 공식관계는 19세기말 한국. 영국조약의 조인이래 120년 정도에 이르나 경제적 통상관계는 해방 후부터 시작되었다.4. 미국과 영국의 문화유적 및 관광명소가. 미국의 주요 문화유적과 관광명소1)워싱턴D.C2)뉴욕3)필라델피아4)애트란타5)라스베이거스6)로스앤젤레스7)샌프란시스코8)호놀룰루/하와이주9)그랜드캐년10)나이아가라 폭포11)옐로우스톤12)요세미티 국립공원13)아미쉬마을14)미시시피강나. 영국의 문화유적과 관광명소1)런던-국회의사당, 웨스트스터사원, 트라팔가광장, 대영박물관, 버킹검궁전, 타워브리지, 밀레니엄 돔, 그리니치 천문대2)리버풀3)글래스고4)에든버러제6장 라인강과 알프스 산맥 - 독일과 그 주변국을 중심으로1. 독일의 분단과 통일 : 한국는 사회간접시설. 주택. 운송. 관광부이다.프랑스정부는 관광적책은 고용확대와 고용안정을 위해 관광사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나. 이탈리아의 문화유적과 관광 정책1)이탈리아의 주요문화유적가)토리노 - 1862년 사르데냐 왕국주도하에 실현되었던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나)피사 - 피사의 사탑이 유명함다)로마 - 로마는 테베레 강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오늘의 유럽문화권을 구분지은 고대 로마 제국이 명성을 떨치던 곳이다.-트레비분수, 진실의 입, 대전차 경기장, 황제의 개선문, 도미네쿠오바디스 성당, 콜롯세움라)밀라노 -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서부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롬바르디아 평원 중앙부의 오로나강과 람브로강 연안에 자리잡고 있다.-스칼라 극장, 두오모관장, 두오모 대성당, 스포르체스코 성마)베네치아바)시칠리아사)피렌체아)폼페이2)이탈리아 관광 정책이탈리아의 20여개 지방은 확대된 자치권을 기반으로 전반적인 관광정책과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4. 이탈리아 안의 세계적인 작은 나라 : 바티칸초기 7왕국 시대 (BC.753 - BC.509)-BC.8C경부터 라틴과 사비나 도시국가를 병합하여 에투르스키 왕조를 포함한 7 왕국시대를 이룸.-로마 공화정 시대 (BC.509 - BC.27)* 귀족을 중심으로 원로원을 구성하였으며 원로원이 매년 선출하는 2명의 집정관(consul)이 통치* BC.3C경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 BC.146년까지의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병합 과정에서 집정관의 장기 독재화 현상이 대두하였으며 제1차 삼두정치(시이저, 폼페이우스, 크락수스)를 계기로 공화정 퇴조-로마 제정 시대 (BC.27 - AD.476)* 제2차 삼두정치(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하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 피우스가 BC27년 원로원으로 부터 아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황제로 추대되면서 제정시대 개막* BC27-AD180년간 5현제 (네르바, 트라야누스, 아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아우렐리우스) 등의 업적으로 로마제국역사의 한 자락에서 한족과 옷깃만 스쳐도 그건 한족주류의 역사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관점은 곧 중화주의 또는 한족중심의 관점이며, 이는 곧 힘의 위계관계가 성립되는 일방적 민족관이다.만일 조선족이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이며 중화의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북조선 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의 같은 핏줄들 역시 중화민족의 한 일부 즉 소수 민족이 되어야한다는 논리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까지 다 중국의 소수민족관으로 바라보게 되면 말 그대로 동양의 역사는 언젠가 중화와 한족의 역사로 도배될 것이다.한국의 사학계 일각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해 고대사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환으로 ‘쥬신족’이라는 고대 거대 민족사를 연구하고 있다. 쥬신족은 한족의 전신인 지나 한족과 늘 역사의 투쟁관계에 있었던 민족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만주를 중심으로 있던 동북기마민족과 한반도의 쥬신족과 열도의 쥬신족등으로 그 분포가 다양하다.하지만 지금 하나의 민족으로 지속되고 점점 강화하고 있는 지나 한족의 위상에 반해 쥬신족의 위치는 대부분이‘소수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대륙사 전체에서 살펴보면 오히려 쥬신족의 지배사가 강대한 중국대륙의 역사를 서술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국력강화는 이전의 모든 중국역사를 한족의 역사로 장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북공정의 전개, 서부대개발등 이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아래 깔린 한족의 위대한 군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 것인가?맺으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은 자국의 결집력이나 국력강화의 차원에서 보면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민족정책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확대와 자만에 있다. 선을 넘어서는 역사관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언젠가 머잖아 백제공정이나 신라공정의 이름을 가지고 다시 우리의 고대사에 시비를 걸지 모른다. 배달겨레라는 자부심이 중화민족의 그늘아래 생존해온 보잘것없는 소수민족의 생명력정도로 이해되게 모토[源] 일족의 두 무가(武家)가 각축하다가 미나모토가 정권을 획득하여 가마쿠라[鎌倉]에 바쿠후[幕府]를 개설하였다. 교토 천도 이후부터 가마쿠라 바쿠후가 개설되기까지의 기간을 헤이안시대[平安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승려 사이초[最澄]에 의해 천태종(天台宗)이, 구카이[空海]에 의해 진언종(眞言宗)이 크게 보급되었고, 사찰은 광대한 사령(寺領)을 소유하면서 권세를 부렸다. 또 귀족들 사이에 국풍문화(國風文化)가 일어나서 가나 문자[假名文字]가 보급되었다.3) 중세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는 1192년 가마쿠라에 바쿠후를 열고, 각국(各國:國은 고대 이래의 일본의 지방행정단위)에 슈고[守護:군사 및 반란 진압 등을 맡은 관리]·지토[地頭:토지관리·年貢 징수 등을 맡은 관리]를 두어 세습적인 무가(武家)정권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종래의 귀족세력도 쇠퇴하지 않아 귀족과 사사(社寺:神社와 寺刹) 등 장원 영주적 지배와 무사 영주적 지배의 2원 지배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바쿠후의 실권은 쇼군[將軍 :막부의 세습적인 국가통치권자] 밑에서 정치를 통괄하는 싯켄[執權]의 직을 맡은 호조[北條] 일족에게 넘어가고, 1221년에는 조정의 권력회복을 꾀하여 고토바[後鳥羽]왕이 난을 일으켰다.바쿠후는 난을 진압하여 지배권을 확립했으나, 2회에 걸친 원(元)의 침공을 받아 쇠퇴해갔다. 바쿠후의 지배체제의 쇠퇴와 더불어 각지에서 바쿠후 반대의 기운이 고조되고, 그 세력을 규합한 고다이고[後醍]에 의해 1333년 바쿠후는 붕괴되었다. 미나모토에 의한 바쿠후가 가마쿠라에 존속한 기간을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신흥 무사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정토종(淨土宗)을 비롯한 많은 신흥종파가 일어났다.문화는 계층적으로는 귀족에서 무사로, 지역적으로는 교토에서 각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가마쿠라 바쿠후가 무너진 뒤 고다이고왕은 왕 독재에 의한 관료국가의 수립을 기도하였으나 무사계급의 반대에 부닥쳤다. 무사 출신의 아시카가다카우지[足利尊氏]가 새로운 왕을 옹립하여 북조(北되었다.
태평천하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류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윤직은 영감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인 윤창식과 손자인 윤종수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의 몰지각한 지주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 당시 지주들의 타락적인 모습과 이기적 모습을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다. 우선 이들 중에서, 이 소설을 전개해 가는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윤직원에 대해 알아보면, 윤직은 영감은 첩이 끊일 새가 없도록 여성편력이 심하였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어린 여자와 관계하려고 기를 쓰는 모습에서 그 시대 때에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한 지주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로 요약되는 그의 의식에서 전통적인 지주 계급의 이기적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윤직원은 자신의 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수형 거래와 효과적인 소작관리를 통해 더욱 증식시켜 만석꾼의 거부로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를 이룩하게 해 준 식민지 치하라는 현실을 태평천하로 인식하는데 여기에서도 지주 계급의 이기주의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생각으론 이 사람들은 욕 할 수도 없다. 왜냐면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윤직원이 지닌 시대 파악이나 이기주의는 위와 같은 그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윤직원이 어린 춘 심이와의 관계를 위하여 반지를 사주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을 볼 때, 윤직원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성 편력이 심한 인물이다. 이처럼 윤직 원과 여자들과의 관계는 철저히 돈을 매개로 하여 성립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깔려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소작인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지주들은 그런 소작인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그들의 쾌락을 즐기고 있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윤직원이 여자들을 사고 향락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돈이 있기 때문인데, 결국 그러한 돈은 그가 부리고 있는 소작인들의 고통의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윤직원은 자신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일제에 아부하며, 그의 가문의 명예를 위하여 족보를 만들고 양반으로 행사하는데, 이 모든 것이 윤직원이 정신적인 측면에서 그 시대의 나쁜 점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결국 작가는 서민층에서 부를 이룩한 사람이 돈을 매개로 하여 양반이라는 계급을 사서 지주가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지주들의 도덕적 타락을 윤직원이라는 한 인물의 설정을 통하여 비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직은 영감의 아들인 윤창식과 손자인 윤종수 역시 식민지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인장, 할아버지의 인장을 위조해서 술값을 치르고 노름을 하는 등, 그들의 방탕한 모습은 신흥지주층으로 대표되는 윤직은 일가가 돈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은 몰락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두 번째 부류는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는 윤종 학의 경우로, 그는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종학은 소설의 표면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경손 이가 그를 존경한다는 점에서나 다른 사람들과 반대의 경향을 가지고 사회주의에 투신한다는 점에서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 되고 있다. 종학은 말하자면 지주들의 타락이나 소작농의 고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태평천하는 1930년대의 지주들의 소작농에 대한 착취, 지주들의 도덕 윤리적으로 타락한 일, 돈을 통한 인간관계, 그리고 지주들의 몰락상과 같은 부정적 요인들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