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독교교육학이란 무엇인가?1)교육의 개념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이는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되는 인간의 특별한 위치를 말하는 것으로 영적 존재로, 이성과, 언어능력, 행위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였다.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가죽옷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교육활동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을 일차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교육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삶의 원형식으로 인간이 인간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인류의 역사는 기성세대가 성장세대에게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좌우되었다. 그래서 쉴라이어마허는 교육과 정치가 가장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교육학을 정치와 병렬하고 있는, 윤리학과 연관되어 있으며, 윤리학에서 연역되어 나온 응용과학으로 파악하였다. 교육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서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실천되어 왔다. 이러한 교육의 다양성 안에서 교육에 대한 전형적인 모델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첫째는 교육에 대한 경험적 이해와 수공업적 모델이다. 이 모델은 어린 세대를 그 사회에 가치관에 따라 교육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기성세대가 미리 정해놓은 이념과 목표에 따라서 교육하는 것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교육에 대한 두 번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교육은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지식과 기술이다.둘째는 교육의 대한 역사적 이해와 유기체적 모델이다. 유기체로서 인간은 교유한 내적 성장질서(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엔틸레히’로 표현)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여기서 교육의 세 번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교육은 어린 인간을 내적 성장질서에 따라서 조화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활동이다.셋째는 교육에 대한 관념적 이해와 종교적 모델이다. 세속적인 눈으로는 성숙한 사람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특성이 실현되지 않은 인간은 기독교적인 눈으로 보면, 회개하고 다시 태어실천적 인간화 촉진, 건정한 변형 지향.8)한국의 기독교교육사1884년 개신교가 전래된 이래 도전과 응전의 ‘전 학문 여명기’, 겨레와 자유를 위한 ‘대결기’, 세속성 대 복음성의 ‘타협기’, 자기확립의 ‘정체성 추구 발전기’등의 형태로 흘러왔음. 현재는 기독교교육이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대부분의 신학교에 독립학과로 존재하고 있으며, 연구와 교수기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음.3. 무엇 위에 서 있는가?1) 교육신학이란?기독교공동체를 교육의 장으로 삼고 교육의 구조와 과정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신학적, 교육학적으로 성찰하며 인간을 발달시키는 지적 활동을 말한다.2)기독교교육의 신학적 근거기독교 교육-신학의 역할은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중요한 쟁점과 긴장에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밀러기독교교육의 이론적 배경에 중요한 근거를 신학에 둠.하나님과 인간의 두 관계에 초점을 두고 관계 속에서 기독교적 양육을 시행하는 것을중요시 함. 밀러는 과정과 관계의 신학자로서 활동을 했고, 모범자적인 기독교교육자이다.3)과정신학과 기독교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종교다원주의, 과학기술문명, 생태학적 위기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알맞은 신학적 응답으로서 과정신학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과정신학은 기독교교육을 과정사상에 근간을 형성하도록 과감하게 대화하고,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형을 모색해 가고 있다. 과정사고의 교육적 적용은 경험이다. 모든 경험의 세계를 보고 해석하면서 실재의 과정에 대하여 인식하게 한다. 과정사상은 모든 사실 존재들이 상호 관계성과 상호 의존성의 관계로 있어야 함을 말한다. 이런 접근으로 자연을 볼때 자연자원을 파괴할 권리가 있지 않은을 알게 한다. 과정적 사고의 조명에서 새 시대의 눈으로 각각의 역할이 논의되고 교육목적 설정에도 사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4)기독교교육의 모형과 과제현대의 새로운 흐름인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 물리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포스트모던의 이론과 원리들이 기독교교육이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과학 이론들을 활용하는 사회과학 이론적 접근방법이 있다.②기독교교육의 영역기초이론과 내용영역: 기독교교육철학, 교육신학, 교육사, 교육목적, 교육 내용 등이 있다.컨텍스트와 연관된 영역: 인간발달이론, 가이던스와 상담, 연령별 교육 등이다.교사와 연관된 분야: 기독교교육 지도자론(교회교육사론), 교수-학습이론, 교육목회, 기독교교육평가영역들이 있다.교육환경론 분야: 가정, 학교, 교육, 사회 등이 있다.③새로운 연구영역: 노인교육(노인인구 증가)의 대한 영역, 사이버 공간에서의 교육 영역, 가정(가정의 교육적기능 상실과 가정황폐화))교육 영역, 주말교육(주 5일제영향)등이 새로이 연구되어야 한다.5. 왜 교육하는가?목표는 성취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실현가능성을 이념과 목표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곧 실현 불가능한 것은 이념으로, 실현 가능한 것은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기독교교육의 목표는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화되었다. 서로 다른 신학적 배경은 그 신학적 차이를 볼수 있게 해준다.- 진보주의 신학적 입장의 기독교교육의 목표 : 현재의사회적 이슈들에 근거하여 실천하는것, 발달과정에서 신앙을 제시하고, 인간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 내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영적 힘을 통하여 현재의 사회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제시함.- 복음주의 신학적 입장의 기독교교육의 목표 : 신학에 기초, 하나님의 초월성과 절대주권, 성경의 영감과 절대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다. 결론적으로 성경을 알게 하는 것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적 입장의 기독교교육의 목표 : 교회생활, 좀더 구체적으로는 신앙공동체의 생활에 초점을 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개입하신 결과로서 주어진 교회에 대한 명확한 이해그 뒤로는 한국 각 교단별 기독교교육의 목표와 21세기를 위한 기독교교육의 목표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읽오 내가 느낀 점에 대해 짧게 적었다.나는 교단에 관심이 많다. 한국교회 교 자기 스스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관계 변화적 위기극복 : 청소년에게도 관계 변화는 수없이 많이 발생하고 이에 또한 많은 영향을 받고 미치게 된다. 이 변화 중에 특징적인 것은 횡적 변화, 즉 또래 집단과의 관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심리적이나 정신적으로 독립을 추구하는 증상이 나타난다.*내면적 절규 ①자기협오의 절규(심적 상태에서 강한 자신에 대한 외침, 자신의 무가치성, 자신에 대한 강한 비판 및 열등의식에서 비롯되어진 심적 현상) ②심리적 고아의식의 절규(심리적 고아의식의 발상을 표현한 것으로 인격,보호,사랑,대화,관심의 단절에 의해 발생)③사회에 대한 항거적 절규(사회의 잘못된 부조리, 부패제도 및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고발적 성격, 사회참여 기회가 단절된 사회적 구조에서 발생 가능한 현상) ④편견에 대한 폐쇄적 절규(잘못 형성된 가치관이나 주위에 잘못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청소년의 심리적 특성과 함께 표출된 현상) ⑤기쁨의 절규(청소년의 가장 바람직한 상태로서 영적인 내적 상태가 정서적으로 표현된 현상)3)성인의 대한 이해①성인초기 :20중반-30대 후반까지 성인으로 미래의 성인세계에서의 역할과 성취를 위한 준비와 훈련의 시기, 신체적으로는 완전히 성숙하여 최고로 건강한 상태, 정신건강도 생애 가장 활발한 시기,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력, 현실적인 성격이 강하고 분별력과 이해력 및 문제해결이 능숙해지는 시기.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사회활동이 증진, 정서적으로 안정적 상태, 영적으로는 보다 의미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하는 시기이다.②성인중기 :신체적으로는 건강한 균형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나 개인에 따라 점진적으로 감소현상이 발생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는 경험과 이성에 근거한 강한 정신력과 사회적으로는 지도자와 책임자로서 위치와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에 보다 성숙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나 사회적으로 위기와 불안감이 때때로 조성되기도 한다. 삶과 신앙의 조화로움을 이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③성인후기 :으로 용납하는 일이다. 교육적인 사랑은 도구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격적인 사랑이다.생각과 꿈과 소원과 열망, 그리고 고뇌를 가지고 있는 한 인격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⑥구원에 이르게 하는 전인적인 사랑 - 아무리 그런 사랑이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앞의 다섯 가지 교육적 사랑을 형태적으로 완벽하게 갖춘 교육이라고 할지라도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도외시한 사랑이라면, 그것은 아직도 불완전하며, 찌그러진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육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이다. 뿌린 씨는 결국 열매 맺어진다는 것을 아는 농부는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것이다.8.무서을 교육하는 가?1. 기독교교육과정의 구성 및 절차1) 기독교교육을 이해하고 진행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연결되는 영역으로 성서학, 신학, 철학, 역사학등이 있겠으며 교육과 연결되는 학문으로는 사회학, 심리학, 교육할 등이 있다.기독교 신앙에 이TDj서 복음이라는 초문화적이고 우주적인 보편성과 불변성을 개인이 살고 있는 현실과 문화 그리고 개인적인 환경과 능력에 적응시키는 방법, 과정, 매체와 범위를 기독교교육 사역자들은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수하면서 해답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2)기독교교육의 과정의 절차교육과정이란 학습자의 인지적,정의적,신체적, 사회적, 영적 영역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교육을 주도하는 기관이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교수 학습경험의 계획을 의미한다.①교육목표의 설정 : 기독교교육과정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절차는 역시 교육의목적과 목표를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②교육내용의 설정과 조직 : 학습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을 때 비로소 그들에게 걸맞는 교수 목표, 내용, 방법 등을 설정할 수 있다. 계열성의 문제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어째서 무슨 기준으로 그러한 순서를 결정하는가가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게 된다. 통합성은 교육내용의 수평적 조직, 즉 한 것이다
현대인과 정신건강 강의 5주 2004/10/053. 자기 개념과 그 영향{목 차1. 자기 개념2. 자기-지각의 기본 원리들3. 자기 효능감4. 자기-제시5. 자기존중감1. 자기 개념1)자기 복잡성2)자기 불일치3)자기 개념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2.자기-지각의 기본 원리들1)자기-귀인2)귀인 양식3)자기 개념의 유지에 대한 욕구4)자기-고양에 대한 욕구와 인지적 전략들3. 자기 효능감1)자기-효능감의 영향2)자기-효능감의 개발4. 자기-제시1)인상관리2)자기-감찰5. 자기 존중감1)자기 존중감의 중요성2)자기 존중감의 결정요인들3)자기 존중감의 결여로 나타나는 행동들4)자기 존중감의 증진방법1. 자기 개념.자기개념(Self-Concept)이란?-개인의 기본적인 본성, 독특한 속성들 및 전형적인 행동에 대한 신념의 집합체예)키가 작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쉽게 긴장한다/ 머리가 좋다 등.자기 개념의 범주(Don Hamachek, 1992)-신체적 자기(키가 크다, 날씬하다. 잘생겼다 등)-사회적 자기(친구를 잘 사귄다, 수줍어 한다. 인기가 있다 등)-정서적 자기(쉽게 긴장한다. 화를 잘 낸다. 우울하다. 겁이 많다 등)-지적인 자기(수학을 잘 한다. 기억력이 좋다. 창의성이 있다 등).작동하고 있는 자기 개념(Working Self-concept)-특정 상황에서는 종합적인 자기 개념 중 일부만이 작동하는데,현재 작동하고 있는 자기 개념을 일컫는 말-이로 인해 그때 수반되는 생각과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예)공부할 때: 지적 자기 개념 < 신체적 자기 개념, 사회적 자기 개념데이트 할 때: 사회적 자기 개념 < 지적 자기 개념.가능한 자기-미래에 되어 있을 모습에 대한 자기 스스로 가지는 개념-과거 경험, 현재 행동, 미래의 기대에서 발달-사람들이 목표와 관련된 정보 및 역할 모델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목표와 관련된 기술을 실행하기 위한 욕구에 더 집중하게 함-회피하고자 하는 상으로 기능하기도 함:두려워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변화될 수 있음2자기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관점과 감정, 및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침예)매력적인 이성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자기 개념에 의해 좌우됨!1)자기 복잡성.자기 복잡성이란?-개인의 자기 개념이 얼마나 단순한가 혹은 복잡한가를 의미-자기 복잡성 정도가 큰 사람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자기 개념을 갖고 있으며,각각의 구성요소는 전체적인 자기 개념의 작은 부분을 구성-부정적인 사건을 겪더라도 다른 자기 구성요소에 영향을 주는긍정적인 사건을 새롭게 만들기 때문에 그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다!자기 복잡성은 정서와 자기 존중감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킴(Linvile, 1987)!2)자기 불일치.자기 지각의 3가지 유형(Higgins, 1980)-실제적 자기(actual self)/ 이상적 자기(ideal self)/ 당위적 자기(ought self)자기를 지각함에 있어서의 불일치(1)자기 불일치와 그 영향.자기 불일치에 따른 정서적 영향과 자아 존중감에 미치는 영향1실제적 자기(비만상태)와 이상적 자기(매우 날씬한 상태) 간의 불일치가 크면,현재 상태에 불만족 비애 및 우울 섭식장애2실제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효도) 간의 불일치가 크면,정서상태(긴장, 불안, 죄책감) 심하면 심리장애(불안 관련 장애).모든 사람이 어느정도 불일치를 경험자신에 대한 긍정적으로 지각!why?1경험된 불일치 정도 불일치를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은 정서적 문제를 더 많이 겪음2불일치의 인식 정도 더 많이 자각할수록 부정적 감정에 빠질 가능성이 많음(2)자기 불일치에 대한 대처.자기 불일치와 관련된 부정적 감정을 완화시키고, 자기 존중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1이상적 자기나 당위적 자기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예)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효과적인 공부방법을 찾는 것2자기 인식을 둔감시키는 것!예)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거나 술을 마시는 것!3)자기 개념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1자기 행동에 대한 관찰 2타인과의 비교 4타인의 피드백 4문화적 지침들(1)자기의2행동이 취소되거나 변경할 수 없다면 자신의 태도를 행동에 일치시킴(2)타인과의 비교.사회비교이론(Festinger, 1954)-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평하가위해-자기 상을 유지하고 자기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타인과 비교-준거 집단 선택!-p125의 그림.자기 평가의 왜곡-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왜곡하는 경향(과대평가)-부정적인 방향으로도 왜곡(과소평가)(3)타인의 피드백-부모/ 교사 및 친척/ 친구들의 피드백(4)문화적 지침들-문화적 기대와 합치할 때 자기 자신을 좋게 느끼고 자존감이 높아짐!-개인주의 vs 집단주의2.자기-지각의 기본 원리들1)자기-귀인.자기-귀인(self-attribution)이란?-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이끌어내는 추론예) 프로포즈에 거절당함 → 왜 거절? 못생겨서/ 상대방 기분이 나뻐서-3가지 차웨: 내적 vs 외적/ 안정적 vs 불안정적/ 통제가능 vs 통제불가능→장래에 대한 기대(성공이나 실패)/ 정서(자존감, 절망감, 죄책감)에 영향을 미침(1)내적 또는 외적 차원.내적 귀인(internal attribution)-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기질, 특성, 능력, 감정으로 돌리는 것예)심리학에서 F'학점을 받음: 준비를 못함/ 시험불안.외적 귀인(external attribution)-행동의 원인을 상황적, 환경적 조건 등 외부적 요인에 돌리는 것예)심리학에서 F'학점을 받음: 문제가 너무 어려웠음/ 그날의 운(2)안정적 또는 불안정적 차원예)데이트 신청에 거절당한 이유?.안정적 귀인(stable attribution)-시간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귀인-안정적/내적 귀인: 지능, 성격, 키, 체구 등-안정적/외적 귀인: 사주팔자, 상대의 취향 등.불안정한 귀인(unstable attribution)-변화가 가능한 어떤 것에 귀인하는 것-불안정/내적 귀인: 그 당시 복장, 기분, 동기 등-불안정/외적 귀인: 상대의 기분, 그날의 날씨 등(3)통제가능성 또는 통제불가능성 차원.통제 가능성(controllability):관적 설명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실패를 외적/ 불안정적/ 특정적 요인에 귀인(그 시험 운이 없었음).비관적 설명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내적/ 안정적/ 전반적 요인 귀인 → 학습된 무기력/ 우울증에 취약하게 함.개인화-내적(자기탓→비관적) vs 외적(상황이나 외부요인 탓→낙관적).안정성이란?-시간적 개념(p135의 예)-일시적(낙관적 사람) vs 지속적(비관적 사람).전반성이란?-공간적 개념-부분적(그 상황에만 적용→낙관적) vs 전반적(모든 사람으로 일반화→비관적)3)자기 개념의 유지에 대한 욕구.자기 일관성(self-consistency)를 유지하는 방법1현재의 자기 개념에 맞추어 과거의 개인적 역사를 재구성하는 경향2현존하는 자기 개념과 일치하는 피드백이나 상황을 찾아냄→자기-검증이론(self-vertification)4)자기-고양에 대한 욕구와 인지적 전략들(1)하향비교: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 예) 인간 승리 시청(2)자기-본위적 편파(self-serving bias) 잘하면 내탓, 못되면 조상 탓-성공의 이유를 자기 탓으로,-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음으로 영예를 차지하고 책임을 모면하는 것(3)자기-중심적 편파(self-centered bias) 네가 한 것이 뭐 있어?-공동의 활동에 대한 자신 자신의 공헌을 과장하는 경향-개인의 자존감을 증진시킬 수 있고/ 자기 자신의 기여는 인식하기 쉽기에(4)통제감의 착각 난 행복할꺼야 p.141의 표와 그림-실제론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일도 마치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믿는 것3. 자기 효능감{넌 할 수 있어 - 강산애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후회하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간직해언젠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너를 둘러싼 그 모든 이유가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다해도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가 있어그게 바로 너야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있으니어려워마 두려워마아무 것도 아니야 천천히 눈을 감고다시 생각해 보는거야세상이 너를 무릎 꿇게 하여도당당히 보석 같은 마음있으표.자기효능감(self-efficacy)-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 과정을 조직화하고 실행할 수 있는자기의 능력에 대한 신념( 너라면 할 수 있을꺼야 )-목표 달성 정도는 기술 자체보다는 자기 효능감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됨1)자기-효능감의 영향.자기효능감은-개인의 목표에 대한 개입 및 과제 수행-장애에 직면했을 때 끈기 또는 인내심-미래 결과에 대한 성공 예상-부정적 사고에 대한 전환→심리적 적응에 중요-시험불안/성폭행공포/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약물중독 치료에 효과적2)자기-효능감의 개발(1)통달 경험(Mastery Experience)-탄력성있는 효능감을 지니기 위해서는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어야!(2)대리 경험(Vicarious Experience)-기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타인을 관찰하는 것-선택 모델이 그 과제에 유능해야 하며, 당신과 유사하면 더 도움이 됨!(3)설득과 격려-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격려 역시 수행에 도움이 됨!-그러나, 항상 효과적이지는 않다(효과 없는 방법 시도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구체적인 방법이나 제안을 포함해야 성공적!(4)정서적 흥분의 해석-정서적 흥분과 심리적 반응에 대한 해석예)시험시간에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림→두려움(시험을 망칠 가능성) vs 자연스러운 경험4. 자기-제시.공적 자기(public self)-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봐주기를 원하는지와 관련됨-전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바람직한 모습에 따라 어느 정도 꾸며진 행동을 보게됨-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른 공적 자기를 가질 수 있음1)인상관리.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시도하는 의식적인 노력-이유? 주의 깊은 자기-제시를 할 필요성!(1)환심사기.전략들: 칭찬, 호의베풀기, 동조, 호의적인 자기상 제기 등cf. 효과적인 칭찬 방법 (p.150)(2)대리적 영광.반사e)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신14:27-29)위와 같은 사회적 약자와 불쌍한 이웃을 되돌아보는 중요성을 나타내는 디아코니아적인 말씀은 구약과 신약 어느 성경에서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디아코니학을 공부하고, 현직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 재직하는 홍주민교수의 책 『디아코니아 신학과 실천』을 보며 이를 더욱 살펴보고자 한다.현대 디아코니아의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던 것은 요한 힌리히 비헤른이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1848년 9월 22일 비헤른은 비텐베르크 교회의 날 즉흥연설에서 교회가 곤경 속에 빠져있는 이웃들을 구체적으로 돕기 위해 각성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독일은 산업혁명의 결과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많은 이들이 곤경 속에 빠져 있었다. 장시간에 걸친 어린아이들의 노동은 하루 16시간이나 할애를 하였고, 참혹한 주거환경, 부족한 의료시설, 노인들의 문제와 굶주림과 곤경 등 사회는 불안정한 삶의 양태로 도처에 문제를 안고 있었다. 비헤른의 연설은 급속도로 큰 영향력을 가져왔으며 ‘내적 선교를 위한 중앙위원회’가 구성되게 되었다. 비헤른은 루터처럼, 오직 철저한 개혁만이 교회를 새롭게 하며 교회의 과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비헤른은 다음의 사실을 확신 하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안에서 계시된 것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행동 속에서도 설교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의 가장 높고 순수하고 교회적인 것은 사랑이다”. 비헤른은 사적(자율적), 교회적 그리고 국가적(시민적) 빈자구호의 상호영향을 중시했고 “삼중적 디아코니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구 하였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은 개별적으로, 가 설정과 유지, 즉 공공병원이나 구빈원 그리고 학교에서의 빈자구호가 의무 지워진다.” 이러한 비헤른의 사고 안에서 개혁되고 혁신된 디아코니아는 지금 현재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세상을 위한 하나님 사랑을 모든 이에게 증언해야하는 임무를 가진다. 디아코니아는 이러한 증언을 형상화한 것으로 특히 육체적 곤경과 영적 고난 그리고 사회적 불의한 상태에 있는 이들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이제는 디아코니아의 참여와 사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실업의 위기를 당한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상담과 도움을 제공하고, 자활 그룹을 만들어 그들을 돕는다. 교회와 디아코니아 기관은 사회보험의 의무가 있는 노동관계의 틀 안에서 노동을 할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디아코니아는 실업자들과 연대하고 그 이상의 일을 한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정치, 경제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실직자들의 상황개선을 위해 노동부, 의회, 회사, 노조, 사회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연계하고 협력하고 대화한다. 두 번째로, 가난한 이들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돕는다. 교회는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사회 안에서 가난을 문제화하고 실제로 빈자들을 돕는 일을 한다. 그래서 삶의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프부억(Suppenkuche), 잔치상(Tafeln), 밥상공동체교회(Vesperkirche), 옷가게 등 교회와 디아코니아 기관 안에 수많은 이니시어티브가 생겨났다. 이러한 도움들은 무엇보다도 극한의 상황에 처한 노숙자들과 곤경을 당한 이들에게 제공된다. 셋째로 이주자들을 위하 봉사한다. 낯선 출신들에 대한 격리의식과 외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는 일에 기여한다. 사회적 상담, 법적 소송상담 그리고 이주 상담 외에 난민을 위한 임상적 제공, 가족 상봉을 위한 도움 등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넷째로는 아동, 청소년 그리고 가족들을 촉진 시킨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욕구에 상응하는 탁아시설을 제공하고, 현대사회의 소외와 핵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죄청소년의 재판을 도와주며 청소년 실업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삶의 기회를 넓힌다. 디아코니아 사업단안의 장애인 복지사업은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들의 삶의 처지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조기촉진을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상담, 보조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동의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입학 전에 제공된다.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양육, 교육, 지식습득 그리고 사회성 교육이 행해진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장애인들은 직업교육소안의 포괄적인 촉진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격증을 취득할수 있는 직업교육을 지원한다. 장애 때문에 자선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하는 이는 사회에서 자신의 존엄성의 상처를 많이 입게 되는데, 이에 대해 개신교 디아코니아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권리 향상을 위해 기여해 왔다. 여섯 번째로, 노인들을 보조 한다. 노인들과 함께 하면서 돕는 일은 교회 공동체의 노인복지사업의 중요한 부분이다. 노인그룹과 함께 하는 삶은 지역사회의 노인들, 자가 도움, 그리고 자활복지를 촉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게다가 많은 경우, 치매 등 다른 병에 걸린 노인들은 근접한 지역사회로부터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오늘날 교회와 디아코니아 기관은 노인복지 사업에 있어서 단순한 ‘부양’아 아니라 그들의 자립과 독립을 최대한 가능하도록 촉진시키고 보조하는 근본의도에 충실히 하고 있다. 일곱 번째로, 병자들을 돕는다. 수발, 영혼을 돌봄 그리고 치유적 행위는 이웃간 그리고 지역 사회내의 병자수발, 더 나아가 교회에 속한 병원에서 이뤄진다. 현재 독일의 모든 병원의 3분의 1은 교회에 관련된 운영기관에 속해 있다. 한편 디아코니아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4분의 1이 개신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병자부양시설의 버팀목은 자원봉사자들의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치료에 그치지 않고 디아코니아는 재화시설과 요양 클리닉에서 그들에 대해 돕고 있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직면한 이들을 돕는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이라는 어려운 순간을 잘 견텨내게 하고 가능게 한다. 병원과 호스피츠 사역을 함에, 의학적 전문요원들을 통한 숙련된 고통저하 치료, 죽음에 직면한 이들과의 목회적 동반, 슬픔에 빠져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위로 그리고 삶과 죽음의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통해 직접적으로 위로와 도움을 주는 가치있는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이제는 이러한 많은 사역을 담당하는 디아코니아의 성격과 그 방향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디아코니아적 섬김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자유, 성숙 그리고 자립과 공동체적 삶의 참여를 중요시 한다. 타자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경홀히 판단하지 않는 것은 디아코니아의 근본자세이다. 디아코니아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귀하게 살수 있는 구조를 위해 공동의 책임을 진다. 두 번째, 국가와 사회 안에서 사회 정치적 공동책임을 인식한다. 디아코니아는 연대적이고 정의로운 공동 사회를 책임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참여한다. 다른 이들과 함께 공동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형성해 가며, 기회를 올바로 공유하는 사회와 공공복리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사회의 잘못된 발전방향과 겹필된 부분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위험성을 지적하며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어 경고자의 역할을 한다. 셋째로 혁신을 감행하여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새로운 방법에 의한 서업으로 인해 사회복지국가의 퇴보로 이끌수도 있지만, 그들은 사회복지사업을 통하여 곤경에 처한 이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활동한다. 이러한 사회복지사업의 다양한 혁신적인 모델들은 지역에서 새로운 삶의 패턴을 일깨우고 교회와 제도적 디아코니아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미래의 혁신적인 방향과 모델들은 몇가지 요소들에 기여한다. 곤경속에 빠진 이들과의 직접적인 접촉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좀더 나은 생활향상에 기여하고, 복지의식의 장려과 협력과 통합력을 발휘한다. 넷째로는 디아코니아는 다른 단체와 경쟁 속에 있고, 그러한 특성으로 경쟁을 한다. 이러한 입 번째로는 디아코니아 사업은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사회적 문화를 강화한다. 디아코니아는 다른이들과 함께 책임적인 삶을 살기 위한 동기를 부여해 주고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적인 봉사차원의 자원봉사는 주로 여성들로부터 행해지고 가정과 가족과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데 여성복지를 위해 65000명의 여성이 참여한다고 한다. 여섯 번째로는 동역자들에게 동기를 유발시킨다. 디아코니아적 섬김은, 섬기 그 자체에서 얻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함께 형성하여 가는 것이다. 비록 디아코니아 사업이 성공할지라도 동기, 협력 그리고 전문적인 능력은 지속적으로 촉진되어야 한다. 섬긴 공동체를 통하여 신앙과 소명을 연결짓고, 서로가 서로는 보조하고, 상호간의 신뢰와 친밀함을 통해 이루어 진다. 독일의 디아코니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40만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는 디아코니아 사업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가치 있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곱 번째는 디아코니아적 교육을 추동(推動)시키며 교육적 과제를 인식한다. 디아코니아 교육의 필요성은, 연대를 이뤄가는 복지가정이 사라지고 핵가족, 불안정한 가정에서 일상의 직접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이 상실되어가는 것과 현대사회는 노동이 분화되면서 교육을 담당해야 할 대형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아코니아는 디아코니아적 배움을 위해 기여를 한다. 여덟 번째로 유럽과 세계적 차원에서 디아코니아를 인식한다.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업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즉 교회의 에큐메니칼 공동체에서 행하는 전 세계적인 디아코니아에 연대하고 유럽과 전 세계적 원조 프로그램에 함께한다. 예를 들면, 스톡홀름에서 첫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회의, 내적선교와 디아코니아를 위한 국제 연맹, 1992년 서유럽 연맹, 1997년 유로디아코니아, 전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프로젝트로 ‘세계를 위한 빵’ 운동이 있다. 아홉 번째로 디아코니아적 교회로 혁신된다. 수많은 교회가 디아코니아적 교회가 있다.
제목 : 초대기독교의 이단논쟁들을 찾아서(주제 : 이단논쟁들)0. 수업명 : 서양교회사2. 학 과 : 신 학 과1. 서론2. 본론2.1 아리우스 논쟁2.1.1 아리우스 논쟁의 발단2.1.2 니케아 종교회의2.2 도나투스2.2.1 도나투스주의 발생시대의 시대적 상황2.2.2 도나티스트의 주장2.2.3 도나티스트의 소멸2.3 펠라기우스2.3.1 펠라기우스의 등장2.3.2 펠라기우스 주장과 논쟁의 전개2.3.3 반(半)펠라기우스 논쟁2.4 네스토리우스2.4.1 네스토리우스 논쟁의 전개2.4.2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과 공의회 논의2.5 시대적 이해를 위해 : 줄리앙3. 결론4. 참고문헌1.서론예수의 부활 이후의 빠른 속도로 전파 되어진 기독교는 박해의 시대를 지나 콘스탄틴의 밀란 칙령 이후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리고 콘스탄틴의 기독교공인으로 인해 기독교의 변화가 찾아 온다. 그리고 이후로 발생되는 이교들의 논쟁과 흐름에 대하여 탐구하고자 한다. 그들의 사상과 시대적 배경을 탐구함으로써 그 시대의 기독교 역사에 대하여 더욱더 접근하고 습득해 나가는 것이 목표이다.2. 본론2.1 아리우스 논쟁2.1.1 아리우스 논쟁의 발단초대 기독교 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어서 당시 무지한 무신론자들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지혜자로 추앙을 받고 있던 고전적 철학자들의 권위에 호소하게 되었다. 이처럼 존경 받던 권위들에 호소하여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철학자들이 소개한 지존의 존재를 신앙하고 있으며, 그 지존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지식층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해 갔다. 이 이론은 자기들의 신앙과 고전적 철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을 밝히기 위해 플라톤, 프로티누스, 기타 철학자들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에 관해 접근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생각하던 완전의 개념을 불편이요 고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의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지었다.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관념은 불변의 존독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가아사랴의 유세비우스가 아리우스의 이론의 동의를 밝힘으로써 수많은 감독들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화해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이들은 아리우스주의를 배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회의 신앙을 표현할 신경을 작성하게 된다. 그리하여 서방교회 , 동방교회, 뿐만 아니라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에서도 인정하는 니케아 신경이 만들어 지게 된다. 이 신경에는 호모우시오스 라는 동일 본질이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다. 즉, 말씀은 성부보다 떨어진다는 것과 성자와 말씀이 피조물이라는 개념을 배격한다. 또한 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회의에서 아리안주의자들은 이단으로 규정되어 직분을 박탈 당하고 자신의 도시에서 축출된다.(세속적 처벌)그러나 니케아 종교회의로 이 문제는 종식되지 않았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을 찾아가 자신의 조처에 대해 호소하였다. 콘스탄틴은 유세비우스를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찬에 참여시키게 했고, 아리우스도 귀양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자기의 직에 취임하기 전에 336년에 죽어 버린다. 이후 콘스탄틴의 아들들은 모든 당파의 유배자들을 되돌아 오게 했고, 콘스탄티우스는 반니케아 공의회적 정책을 시작한다. 유세비우스는 영향력이 큰 주교좌들을 차지했고, 마르셀, 아타나시우스, 전통주의자들은 몰락한다. 이에 그들은 서방으로 도망을 갔고, 이 논쟁에 서방이 휘말리게 된다. 340년 로마의 총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와 마르셀을 정통으로 선언하고 동방의 다수는 안디온 총회의 입장을 강력히 견지한다. 이러한 교회의 분열 속에서 황제들은 342년 사르디카에 총회를 소집한다. 그러나 이 총회는 사태를 더욱 악화 시켰고, 서방과 동방 모두 자기 고집을 꺽지 않았으며 서로를 파문했다. 이 후 정치적 주도권을 잡은 콘스탄티우스는 서방에 아타나시우스를 정죄 할 것은 강요하고, 동일본질론을 제거하도록 하였다. 이에 아타나시우스는 광야로 도망친다. 여기까지가 325-361년까지 두 번째 단계이며, 역시 교회의 통일성은 회 2명의 감독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이들 안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후 70명의 누미디안의 주교들이 참석한 카르타고 총회에서 마조리누스가 주교로 승인 한다. 그러나 로마와 북아프리카 밖의 교회들은 카이실리안의 편을 든다.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콘스탄틴이 개입하여 로마의 총회에 조사를 의뢰하고, 거기서 카이실리안을 지지하기로 하고 카이실리안의 당파를 합법적 교회로 인정하였다. 마조리누스의 당파에서 이 결정에 대해 만족 할 수 없기에 이를 다시 다루어 달라고 콘스탄틴에게 요청한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이듬해(314년)에 대도시 아를르에서 다시 다룰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도나티스들이 기대했던 바와 달리, 아를르 공의회에서는 카이실리안을 옹호했고, 도나티스트는 분파주의자로 배척하고 이단 세례라고 하며 정죄해 버렸다.이로써, 4세기 동안에 교회의 파당들이 나누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를 화해시키려는 시도들 또한 실패하게 되었다. 400년에는 대략 400명의 카톡릭 감독들이 비슷한 수의 도나티스트 감독들과 맞서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교회는 분열되었다.3.1.2도나티스트의 주장다시 발단의 문제로 돌아가 도나티스트주의에서 주장하였던 바를 알아보겠다. 북아프카에 교회들에게는 과거 순교와 엄격한 교회 규율에 기초한 엄격주의가 살아 있었고, 터툴리안과 시프리안에 의해서 대변되던 과거의 교회 개념과 성만찬 개념이 존속했는데 거기에 따르면 죽을 죄를 지은 자에 의해서 실시되는 성례전은 무효하다는 것이다.)좀더 자세히 그들의 견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죽은 자는 살릴 수 없고, 상처 받은 자는 치유 할 수 없으며, 눈먼 자는 인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제는 성례전을 집행 할 수 없다.) 거룩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직무를 담당하는 중재자인 감독이 죄인이라면, 그가 하는 성례전은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그리고 카이실리안에게 세례를 주었던 3명의 감독들 중 하나가 배반자 라는 것이다. 그 배반자에게 세례를 받은 카이실리안의 성직 임명 지워하였고, 죄와 아담의 타락과 세례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 펠라기우스의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4.1.2 펠라기우스 주장과 논쟁의 전개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의 견해에 반대한 주대변자이며, 인간의 의지의 자유를 말하고 원죄론을 반대했다. 펠라기우스는 선이나 악에 대한 도덕적 자유를 가르쳤다. 죄는 “자연의 것이 아니며 의지에 의한 것이며” 언제나 개별적 행위이다 라고 하며, 원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 주장하였다. 즉, 죄없는 사람도 존재하며, 아담의 죽음을 원죄의 형벌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인간이 항상 그들의 죄악을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했다.)더 나아가 어린 아이들은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죄를 짓도록 결정하기 이전에는 죄가 없다 라는 내용까지 포함 할 수 있다.코엘레스티우스는 이 선언이후 지역교회회의에서 정죄당하고(411년) 그의 성직 임명도 거부 되었다. 예루살렘과 리따의 두 총회에서는 펠라기우스의 신앙이 옳다고 보았지만,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견해는 이와 정반대였다. 이들은 교황들을 부추겨서 펠라기우스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국가가 그들을 정죄하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펠라기우스는 418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대총회에서 정죄당했고, 코엘레스티우스와 함께 교회에서 축출 당했다. 이후 두 사람을 역사에서 사라지지만, 420년부터 에클라눔의 율리안이 펠라기안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된다. 에크라눔의 주교인 율리안는 논쟁과 조롱과 인신 공격을 결합하여 어거스틴을 괴롭게 하기도 한다. 그는 스토아적이고 아리스토엘레스적으로 구형된 매우 세상적 도덕주의적 이성주의를 주장했고, 결혼과 성욕의 권리를 지지했다. 펠라기안주의가 정죄 당한 후 서방에서는 새로운 투쟁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세미펠라기안주의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했으나 어거스틴의 은총론의 독특성들에 대해서는 통속적 가톨릭적 관점에 매달리는 사고방식이 어거스틴의 진정한 가르침과 싸움을 벌였었다. 이러한 논쟁들은 어거스틴주의에 굴복당하고 반달족의 로마령 서도 특히 정욕적 경향성을 강조하였다. 아담의 죄는 유전병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타락 이래로 인간의 의지는 연약한 상태에 빠져있다. 그들은 인간의 자연적 타락에 관한 어거스틴의 가르침 가운데서 바로 이 점을 자기들의 성찰의 출발점으로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어거스틴의 예정론에는 반대하였다. 그들은 그와 같은 교리를 전통과 상충되는 새로운 것이라고 보았으며, 전도의 목적을 파기하고 도덕적 정신을 약화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절망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교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다양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에 반대하여 그들은 선언하기를 은혜는 전혀 일반적인 것이며, 그 리스도는 만인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예정은 예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430년에 어거스틴이 죽자 아퀴타니아의 프로스페르는 어거스틴의 교리를 위하여 궐기하여 모든 반대자들과 결전을 벌인다. 그의 주장은 모든 선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는 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일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펠라기우스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솔선한다고 가르쳤고, 교회는 은혜가 선행된다고 가르치는데 반하여, 반펠라기우스주의는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프로스페르는 또한 그들의 원죄에 대한 태도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죄된 상태를 유전적인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덕성의 씨가 남아있다고 하며, 따라서 아담으로부터의 죄를 전적타락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어거스틴과 반펠라기우스의 양측의 주장은 충분히 개진되었다. 520년 경 콘스탄티노플의 스키디아(Scythia) 수도사들 가운데서는 어거스틴의 교리에 강한 반동이 제기되었다. 풀젠티우스는 한 종교회의 이름으로 어거스틴의 교리를 옹호하는 변증을 써서(De veritate Praedestationis et Gratia Dei) 그들에게 답변하였다. 그의 노선을 따라서 고올의 유능한 두 감독, 즉 비엔나의 아비투스와 알레의 카사리우스(Ca느낀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역사란 무엇이냐” 하면 누구나 서슴없이 지나간 일의 기록이라 대답한다. 하지만 역사의 정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보다 넓고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역사를 기록된 사실자체 이상으로 그것이 지금도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현재도 살아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더, 누군가의 기록에 의한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로 보이지만, 기록자의 주관적 눈으로 기록되었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 그 사실이 가지고 있는 뜻과 해석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는 그 뜻과 해석에 대해 집중해야한다.저자 함석헌은 역사와 그 뜻을 바라볼때 ‘아가페’적 사관으로 바로 보기로 한다. 즉, 성경의 하나님을 근본으로, 역사의 근원·원리를 아가페(사랑)에 두고 바라보기로 하였다.우리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 라고 말한다. 정치·종교·예술 모든 분야에서 고난이 숨 쉬고 있으며 5천년 역사의 신음소리는 너무나도 크다. 영광스런 역사라고 부르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찢기고 갈라지고 잃음의 슬픔이 담기 역사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고난의 역사 위에 가시 면류관을 씌운 고난의 종 우리는, 세계의 역사를 뒤엎고 나아갈 용기를 가지라 말한다.저자는 단군시대에 종교에 있어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환인을 통해, 하늘을 숭상했던 것을 통해, ‘하나’와 ‘한’을 중요하게 여긴 점으로써, 환인을 대표적 인격삼아, 하나님을 믿었다고 한다. 다종교를 믿었던 단군시대에 환인을 대표적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을 믿은 민족으로 승격시키는 내용은 이 책에서 처음 본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류전체의 하나님, 우리나라에도 함께 하신 하나님으로써 넓은 세계관으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시간이 흘러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저자는 고구려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고구려가 민족통일의 앞장서서 그 일을 감당해낼 국가로 보았고, ‘정금이 쏟아져 나와야 할 용광로’ 라고 표현한다. 한반도와 만주를 비롯해 열강의 이름을 떨지고 그들의 기개와 용맹을 나타내어 민족성 사명을 감당할 제목으로 보았다. 신라와 당의 연합으로 망한 고구려를 보며 애통하였고, 고구려가 패망한것에 대해 비극의 시작이요, 민족이 고난의 연옥길을 걷게 되리라 한탄한다. 특히 고구려의 패망을 보며 저자는 책장을 찍어버리고 싶고 주먹질까지 하고 싶다고 하며 그 마음의 분함을 나타낸다. 민족 통일을 이끌어내야 할 맡아들인 고구려가 죽었다는 점에서 나 또한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고구려가 민족 통일을 이루어 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 반도는 약할때는 굉장히 위험하나, 강해졌을때는 사방으로 뻗어나갈 지리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고구려 이후로는 만주벌판을 한꺼번에 잡수신 광개토대왕과 같은 대지정벌, 널리 떨치는 기세와 위세 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후삼국시대가 지나고, 다시 주목해볼만한 나라는 고려이다. 민중의 가슴을 안고 있던 왕건이 있을 때를 민족적 주체의식이 살아났던 시기로 본다. 당나라 이후로 우리나라에 밀려들어온 중국에 쓰레기 같은 사상과 제도를 버리고, 불교를 잘 통제하고 이용하여 사회 안정을 꾀하고 민족정신의 부흥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왕건에 노력은 열매를 보지 못하였고, 고려는 이자겸의 난을 시작으로 무신정권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후 몽고가 지나간 이후, 고려는 져가는 해와 같이 종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최영은 북벌론을 주장하며 명나라를 치자고 제기하였다. 실패의 역사를 바로잡아 역사의 부끄러움을 씻을 기회는 찾아왔지만, 최영을 쫓을 용기를 가진자도 없었고 역사는 그의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저자는 최영의 죽음과 실패에 대해 고구려의 패망과 같이, 그를 마지막으로 조국수난의 역사를 극복한 인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엄청난 안타까움을 표현하였다.우리가 알고 있듯이, 최영과 함께 반대 편 기둥으로 서 있던 이성계는 북벌을 중단하고 돌아와 조선을 세우게 된다. 최영은 독립적이요, 진취적이고 의리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반면, 이성계는 현실주의적이요, 사대 예속적이며 보수적인 사람으로 표현한다. 또한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영웅 사울을 꾀하였던 것과 같이 이성계도 이때 사탄에게 넘어졌다고 말한다. 민중의 대표자로 민중의 편에 서 있어야 했던 그는 자신의 교만과 자만심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자초한다. 그렇게 세워진 조선을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라의 더러움보다 고려의 더러움보다 이조시대의 더러움이 더하며 그것은 그 속에 사는 더러운 정신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이조시대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한 왕은 세종이다. 그의 한글 만큼은, 참으로 값어치 있는 문자이며 민중의 입장에서 민중을 위하여 만든 큰 의미를 가진 산물이라 하였다. 당시 권력자들은 정치적 수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만을 위해 중국의 한문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세종의 한글 창제이후로는 민중에게도 문자가 보급되어 교육과 자기 표현에 통로를 제공하는 점에서 그 의의를 알 수 있다. 이후로 조선은 중국의 사상을 둘러싸고 지배계층에 부패가 심해져 갔다.노론, 소론이 갈리어 당파싸움만 계속되는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에서 민족을 구해낸 인물이 있다. 저자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이름은 이순신이다. 임금은 의주로 피난한지 오래요, 목숨부지를 위해 허둥지둥 대던 그 때에 바닷길을 이용해 나라를 구한 사람이다. 그가 없었으면 이 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함석헌선생은 그는 하나님이 이 백성을 위하여, 이 망할 민족을 살리기 위해 세운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그가 전쟁에서 죽었기에 숭고한 혼을 지킬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수난의 오백년 역사가 점차 기울어져 갈때쯤 우리나라는 드디어 기독교를 만나게 된다.우리나라에 기독교의 시작은 아주 특필할 만 한 일이다. 서학이라는 학문으로써, 지배계층이 아닌 불우한 남인에 의해 연구되고 머리를 숙여 세례를 구하는 과정은 신의 섭리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민중의 요구로 들어와 도덕면에서 영향을 끼쳤던 기독교이지만, 한국을 향한 과제를 수행하진 못하였다. 비장한 순교자를 내면서도 계급주의 타파, 사대사상 폐지, 숙명론의 미신을 없애는 과제 등 사회혁신을 못하고 만 것이다. 이후 왜놈이라고 업신여기던 일본은 근대식 나라를 세우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우리 조국을 삼켜 버린다. 중산계급이 없던 우리나라의 민중들은 혁명의 불씨 한번 못 피워보고 다시 잔혹한 고난의 역사로 빠져 든다. 역사는 흘러갔고, 시대는 변하였다. 오리라는 기대도 없이 해방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