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이더라김향수 지음2003년에 작고한 고 김향수씨는 한국최초로 반도체, 컬러TV를 생산한 아남산업의 창업자이다. 그는 생전에 UN 한국협회 이사, 제 4대 국회의원,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명예회장, 아남반도체 명예회장 등을 거쳤으며 반도체 산업 개척으로 태통령표창도 받았다. 1995년에 출판된 이 책은 고인이 1912년 11월에 출생하였으니, 거의 83세를 전후로 하여 나온 셈이다. 팔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저자는 이 책의 집필 목적에 대해 학자들처럼 무슨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한일 고대사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양국의 우호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아울러 한국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에게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의 얼과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받들어 나라를 융성, 발전케 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크게 패배하여 재기불능 상태가 되 다시피한 잿더미 속에서도 오늘날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을 이룩하여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지만 부존자원이나 기타 제반여건이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두뇌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건너가 오늘의 일본을 이룩하게 된 원류가 되어온 우수한 민족임에도 아직 선진국대열에 합류치 못하고 있고, 또 금전만능 풍조 속에 도덕까지 황폐화하여 전통 미풍양속이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속에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오늘날 경제 대국을 일군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전개해 나간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환경과 이후의 한국전쟁을 통한 특수 등을 시간적인 차원에서 풀어내어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처참했던 일본경제가 기사회생했다는 것은 말로만 알고 있었는데 저자의 명쾌한 해설을 통해 당시의 고도성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근면과 절약이 몸에 배어 있으며, 신사참배가 생활의 일부라고 말한다. 어느 특정일에만 참배를 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저자의 설명을 보고 일본인의 신앙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는데, 신사참배는 일본인의 생활의 일부이며 신사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곧 일왕(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한국인과 일본인 비교에서 ‘1:1로 대결하면 한국인이 이기지만, 3:3 조직으로 대결하면 일본인들이 이긴다.’라는 예시는 참 인상적이었다. 집단적 행동, 즉 팀워크의 우위성을 나타낸 말인데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말이었다.오늘의 일본인은 대부분 2천여 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과 북아시아에서 건너간 야요이인들로 구성 되었으며 이들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본토인이다. 원래 일본 본토에서 살았던 아이누족은 오늘날은 대부분 홋카이도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오키나와인들은 역시 지리적 여건으로 오키나와에서만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유불신의 사상을 가진 나라이면서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부모에 대한 효성심, 복종심 그리고 조직 내에서의 위계질서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 혼자 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고 효과 있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인들이라는 뜻이다.우리민족은 아시아 대륙 끝 한반도에 터를 잡아 단군성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대륙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승화, 발전시켜 바다건너 일본에 전하여 그들 문화의 원류가 되어왔다. 즉 저자는 일본에 자리 잡은 문화는 한국에서 온 것이며 일본건국의 시조 역시 한국이라는 것을 역사적 사실과 유적, 사진자료 등을 통해 풀어가고 있다.역사가들은 한반도의 대륙문명이 일본으로 전래된 시기를 BC 2세기경인, 일본 야요이 시대로 보고 있다. 즉 한반도에 삼국이 정립하기 이전부터 문화이전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한반도에 가야를 포함한 4국이 정립했을 당시 일본은 100여개의 부족이 난립하여 국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위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반도 사람들의 이주는, 먼저 백제는 일본 오사카에 상륙하여 나라지방에 정착하였고 고구려는 서해를 거쳐 사이타마현까지 진출을 하였다. 신라는 시마네현과 니가타현을 거쳐 일본 전역에 영향을 미쳤으며, 가야는 이보다 앞서 쓰시마섬을 거쳐 규슈로 이주해 그 전역을 장악하고 단군신앙을 중심으로 한 고대 일본의 형성의 주역이 되었다.일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삼국 국가 중의 하나는 백제였다. 신라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정치적 교류 보다는 문화적 교류가 주류를 이루었다. 오늘날의 일본인의 기질을 모방이라는 단어로 일축하듯이 그 당시의 그들 문화는 백제인의 문화였다. 흔히 그들이 말하는 ‘아스카 문화’ 이다. 책에서는 주로 일본의 한국문화를 일본 현지에서의 증언과 유산을 한국의 것과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책 곳곳에 순도 높은 사진과 연표 등이 나와 있어 비교 및 책을 읽어가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내가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배웠을 당시 현 일본 국보 제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대해서 배웠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꼭 닮은 점으로 보아 당시 우리나라에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갔을 것이란 국사선생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는데, 저자 역시 이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었다. 꼭 유형 유산뿐이 아니라, ‘구다라’라는 말도 그러하려니와 ‘남향촌 백제마을’ 등 백제와 관련한 많은 유산이 있었다. 또한 백제 외에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조선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와 관련한 수많은 문화가 일본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재미있던 것은 일본어의 뿌리가 한국어라는 저자의 설명 중 고대 일본인들은 한반도 도래인들만 보면 글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고 설명하고 이와 관련한 사진을 수록해 놓았는데, 그 사진속의 일본인의 모습이 익살스러워서 인상적이었다. 이미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이며, 즉 일본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열도한어’라는 것은 학문적으로 입증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일본의 건국신화는 가야의 건국신화와 유사한 점이 너무 많은데, 저자 역시 이것에 주목하여 가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야사가 누락된 채 엮어져 왔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국시대를 이루어왔을 뿐 아니라 일찍이 철기문화를 이루어 부국강병책으로 국력을 키웠고 김해만을 중심으로 해상왕국을 건설하여 일본에 진출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으나 가야를 병합한 신라가 그 기록을 거의 말살하였고, 후에 사대식민 사학자들이 가야사를 아예 축소하거나 왜곡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많은 역사들이 왜곡된 이유 중 하나로 ‘일본인의 열등의식’을 들 수 있다. 역사적, 지리적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문화적 혁신의 수용자 혹은 차용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남으로부터 빌려온 요소에다가 겉모습을 개조 또는 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발달, 그들 특유의 독특한 일본문화를 창조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강도 높은 외래문화를 대폭 수용하거나 차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같은 이유로 그들의 문화제공자 에 대한 열등의식을 심화시켰으며 이러한 심리적 갈등이 역사왜곡을 가중 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새로이 그 중요성을 평가받는 가야는 일본의 식민 사관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유린된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언론과 학자들이 노력으로 자주적 민족의식이 고양되어 가고 있고 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사가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김해지방에서 가야의 유물과 유적이 대량 발굴되면서 잊혀져버린 가야가 그 신비의 베일을 벗고 서서히 복원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장 경제와 정부의 역할김종석 교수 - 現홍익대학교 경제학 교수, 맨큐의 경제학 번역한국이 북한과 경제적 차이가 나는 이유는 경제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수한 민족이라도 체제를 잘못 택하면 망하기 일쑤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1950년~2000년대의 시간은 한국의 르네상스라고 말할 수 있다. 1978년의 한국은 지금의 베트남과 같은 국민소득 1000불의 시대였는데 현재는 만 사천불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와는 너무도 판이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는 50여년이라는 ‘제작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오고 있다. 한국전쟁을 끝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두 민족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그 길이란 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주변의 정치?군사적 이유로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주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이 나라의 물질적 풍요와 자유는 결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만약에 미군이 북한에 주둔했다면...?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경제는 한 세대에 걸쳐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한 세대 만에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를 유지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면서도 결과가 불평등한 시장경제―. 과연 시장경제는 어떤 것일까?시장경제는 국민 모두가 보다 잘 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운영방식이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성장을 달성한다. 그런데 그 경쟁의 동기가 재미있는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의 이기적 속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잘살고 심지어 애국심(?)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잘 살기 위해서 경쟁을 한다. 겉으로는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장경제를 선택한 것이지만 개개인은 이기적인 동기로 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우수한 제도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부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장기능과 정부기능의 장점을 조화시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그렇다면 시장경제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첫 번째로 시장경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자연 질서라는 것이다. 이는 곧 시장경제라는 것을 만든 사람이 없다는 말과 같다. 시장경제에 대한 이념도 없고 책도 없고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며 더 잘 살기 위해 시시각각으로 규칙이 변화하는 게 시장경제이다.또한 사람들의 본능에 의해 점점 발전해 온 체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양육강식의 먹이사슬(ex.노예제도)이 존재하여 ‘동물의 왕국’처럼 될 수도 있다.두 번째는 의사결정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정부가 만든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에서 계획을 세워 통제하지 않고 사람들 스스로 자기를 위해 일함으로 시장경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박이든 쪽박이든 내가 책임진다’라는 말처럼 자율과 책임이 원칙이며, 이에 따른 기회의 균등이 필요하다. 또한 경기변동과 거래비용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기도 한다(ex.위도의 핵폐기물처리 논란).시장경제를 계획경제(사회주의)와 비교를 해 본다면,?시장경제체제(자본주의)계획 경제 체제(사회주의)경제 문제 해결 기준시장의 가격 기구계획 또는 명령생산 수단의 소유 주체개인국가나 공공 단체의사 결정 주체개별경제 주체중앙 계획 당국경제 활동 동기개개인의 이익 추구공동의 목표 추구이렇게 표로 정리할 수 있다.그런데 말 그대로 ‘계획’경제체제 보다 ‘무계획’의 시장경제체제가 더 균형적이고 풍요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부론의 아담스미스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배추 가격이 상승한다고 가정해 보자. 배추 가격이 상승했다는 신호를 받은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생각 끝에 배추를 안 먹는다는 결정을 해 버리고 결국 이것은 소비자들의 행동이 변화 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신호를 받은 공급자는 순전히 자기의 ‘합리적인 이기심’대로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고 결국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에는 적절한 타협선이 생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이 전체적으로 국민경제의 이익으로 변화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다른 예로, 이번에는 오천원짜리 자장면을 놓고 생각해 보자. 오천원을 주고 자장면을 사먹을 수 있는 소비의 기회는 이천원도 아니고 삼, 사천원도 아닌, 오천원이 있는 사람들 뿐 아니겠는가? 결국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돈 이란 것이다. 반대로 오천원짜리 자장면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 있는가? 다른아닌 자장면을 오천원 미만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뿐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소비자와 가장 효율적인 생산자만이 생산과 소비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다름 아닌 인간의 잘 살겠다는 욕망, 즉 ‘합리적 이기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시장경제에서의 정부의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정부는 시장경제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유지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재산권(사유재산)의 보호, 경제활동의 자유보장,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확립 등 이다. 위의 세 가지 역할을 따지고 보면, ‘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공통분모가 나오게 되는데 이는 자원배분을 사람이 아닌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며, 기본적인 밑바탕만 깔아주고 나머지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식인 것이다. 비유 하자면, 정부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주되, 놀이터에다가 ‘끝내주게 놀았다고 소문나게 노는 방법’이 적힌 팻말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놀이터를 잘 만들어 주면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은 어린이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이다.그런데 어떤 사람의 이익추구 행위가 공익을 해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 시장실패에 대한 예를 들자면, 1.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그에 대해 보상을 하거나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그 예로 시험 부정행위, 새치기, 끼어들기, 음주운전, 공해, 환경파괴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너무 많이 생겨서 문제가 된다.또한 2. 남에게 이득을 주지는 정작 자신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자원봉사, 집 앞 눈 치우기, 예방주사 맞기, 등대, 교통정리, 길안내 등이 있다. 이것은 위에는 반대로 너무 적게 발생해서 문제가 된다. 결국 위의 시장의 실패를 통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시장의 불완전성(시장의 실패)을 ‘보완’하는 것이다.
왕년에는 아시안 게임 아마추어 은메달리스트로 잘 나가던 강태식(최민식). 하지만 지나간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은 매 맞는 남자이다. 꿈을 가진 권투 선수가 아닌, 지나가는 행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인간 샌드백일 뿐이다.그에게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로서의 긍지를 보여주고 싶지만 냉혹한 현실은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소박한 꿈마저 짓밟아 버린다. 이제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잃을 것도 없는 강태식. 그는 우연히 지하철가에 붙어있는 신앙왕공모전 포스터를 보고 다시금 희망을 품고 신인왕전 출전을 결심하게 된다.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레게머리청년 유상환(류승범). 그는 소위 ‘삥뜯기’가 하루 일과이다. 어느 날 큰 사고를 쳐서 합의금이 필요하자 동네 돈 많은 할아버지의 뒤를 밟았고 격투 끝에 경찰에 붙잡혀 소년원에 들어간다. 수감 첫날부터 그 곳의 권투부 일인자인 권록(김수현)과 싸우게 되고 그 싸움을 지켜보던 교도소 주임이 권투부 가입을 권한다. 일약 스타가 된 그는 결국 권투부에 들어가게 된다.어찌 보면 태식보다 더 밑바닥인생을 사는 상환. 그에게도 아버지는 있었다. 하지만 그 아버지도 모범적이지는 못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권투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의지에 불타오르던 상환은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과 마음고생 심하시던 할머니의 병원입원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그러나 권투연습장 벽에 써져 있는 ‘내가 세계 챔피언일지도 모른다’라는 문구처럼, 날벼락을 맞은 듯한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에게 한 줄기 희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인왕공모전이었다.이렇게 해서 두 주인공은 링 위에서 만난다. 경기에서 예전의 권투 실력을 회복하여 상대를 압도해나가는 ‘테크니션’ 강태식. 매 경기를 KO로 승리하며 무섭게 질주하는 ‘수퍼루키’ 유상환. 결국 그들은 결승 링에서 만나게 된다.태식과 상환은 영화가 3분의 2가 다 되도록 만나지 않았다. 마흔을 바라보는 태식과 이제 갓 스물인 상환. 두 사람의 경기엔 분명 이긴 사람이 있다. 심판의 판정으로 가려진 승자가.하지만 난 그 두 사람 모두가 승자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자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승자였다. 보통의 권투시합이라면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시합은 누구를 응원 할 수 없는 승부였다. 감독이 잔인하게 여겨질 정도였다.결승전 첫 라운드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시간에 그들은 서로를“주먹이 장난이 아니야.”“못 맞히겠어요.”라고 평가한다. 그 말속에 경기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있었다. 그저 그런 시합과는 전혀 다른, 정말 결승전다운 경기가 펼쳐질 것 같은 흥미진진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영화 내내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은 태식과 상환. 그러나 상대를 위협하는 주먹을 휘두르던 그들은 마지막 종소리와 함께 진한 포옹을 한다. 포옹하는 두 주인공의 표정은 주옥같은 100마디의 대사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그 두 사람의 얼굴...! 경기에서는 ‘죽어도 쓰러뜨려야하는’ 적이 한 순간 동지가 되어버린 상황. 굉장히 인상적이었다.최후의 대결 후, 쓸쓸하게 주저앉은 태식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달려온다.“미안하다...”“뭐가 미안해? 아빠가 왜 미안해?”“...”아마 이 부분에서 내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승부는 1:2로 판정패했지만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행복에 겨운 웃음을 짓는 피투성이 태식. 그는 분명 승자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어떤 아쉬움도 잘못도 용서가 된다. 사랑이 담긴 포옹 한번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게 부자지간이 아닐까? 오랜만에 아빠의 가슴에 안긴 아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아빠를 두었다고 마음속에 깊이 새겼을 것이다.그 와는 약간 사정이 다른 상환. 그는 할머니에게 안긴다. 하지만 그 또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할머니와 이미 떠난 아버지에게 이제야 효도를 한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