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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화수 마케팅
    1 달콤한 그녀들을 위한 시간 Sweet Time 매화秀2 목차 1.㈜ 진로 소개 2. 매화수 소개 3. 매화수의 브랜드 분석 4. 매화수의 마케팅 전략 5. 결론3 개요 기업명 ( 주 ) 진로 CEO 윤종웅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 1 동 설립일 1954.06.15 종업원 1,641 명 표준 산업 증류주 및 합성주 제조업 총매출액 1 조 3948 억 2700 만원 단기순이익 1548 억 300 만원 “ 불굴의 도전 정신과 창조적 마인드 , 끊임 없는 혁신과 변화 추구” 1.㈜ 진로 소개4 회사 연혁 2001.04 ‘ 천국’ 출시 2002.07 ‘ 참이슬’ 리뉴얼 2002.09 ‘ 매화秀’ 출시 2006.02 ‘ 참이슬’ 리뉴얼 20.1 도 출시 2006.05 ‘ 참이슬’ 100 억병 판매 돌파 2006.08 ‘ 참이슬 Fresh’ 출시 2006.11 ‘ 매화秀’ 리뉴얼 2007.08 ‘ 참이슬 Fresh’ 19.5 도 출시 2008.09 신제품 J 출시 1924.10 용강에 진천양조상회 창립 소주 ‘진로’생산 판매 1965.04 생산법 전환 ( 증류식→희석식 ) 1977.11 진로 소주 일본 진출 1998.03 ‘ 순한 진로’ 출시 1998.10 ‘ 참이슬’ 출시 1999.05 ‘ 참이슬’ 미국 진출 1999.12 ‘ 참이슬’ 5 억병 판매 돌파 2001.02 ‘ 참이슬’ 리뉴얼 1.㈜ 진로 소개5 2. 매화수 소개 제품 소개 품명 : 매화수 주종 : 매실주 알코올 도수 : 14% 출시 : 2002 년 9 월 리뉴얼 : 2006 년 11 월 용량 / 칼로리 : 300ml/250 Kcal 패키지 : 투명하고 날씬한 병에 매화 잎이 새겨짐 특징 : 기존 매실주 가격보다 저렴하며 술 특유의 향이 적으며 맛이 부드러운 편6 2. 매화수 소개 매화수의 특징 2002 년 매화수 출시 소주 특유의 향과 맛에 대한 거부감 여성 음용자 증가 저도수 술의 선호 건강과 숙취에 관한 고민 전통 양조주에 대한 관심 저렴한 과실주를 원하는 소비자 술 특유의 향과 맛이 매실 향에 가려짐 목 넘김에 거부감이 없음 도수가 낮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있음 매화수 원료인 매실의 효능 깔끔하고 화사한 패키지 디자인 숙취가 적음 저렴한 가격 칼로리가 낮음 ( 매화수 250Kcal/ 참이슬 504Kcal) “ 전통 과실주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재정립 시킴”7 3. 매화수의 브랜드 분석 SWOT Analysis “ 내부적 환경의 강점 약점 , 외부적 환경의 기회 위협 파악 ” Strength Weakness - 하이트 - 진로인수합병으로 인해 더 넓어진 유통망 -97’ 부도로 상장 폐지 →직접 자금 __ 조달 불가 __ 증권거래법 상의 __ 혜택 수혜 불가 - 여성 음주 증가 - 저도수 매실주 시장 리더의 부재 - 매실주의 대중화 부재 - 경쟁 기업의 _ 고급 매실주 - 집에서 쉽게 _ 만들 수 있다는 점 - 저렴한 가격의 _ 소주 선호 경향 Opportunity Threat8 3. 매화수의 브랜드 분석 STP 분석 Segment Targeting Positioning 부드러움 ㈜ 진로 저도수 고도수 저가 고가 거침 전통 과실주 시장 여성용 주류 시장 저도수 주류 시장 부드러움 “ 합리적인 가격으로 술에 약한 여성들을 위해 제공되는 목 넘김이 부드러운 과실주 ” - 술에 약한 사람 - 소주의 맛과 향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 - 여성 음용자 “ 이러한 소비자를 공략하기로 결정 ” 매화수9 4. 매화수의 마케팅 전략 4P’s “ 다른 매실주에 비해 저렴한 가격 ” “ 거품을 제거하여 실속 매실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감 ” 매실주 명 매화수 매취순 설중매 매실 마을 매실 미주 출시 년도 2002 1982 1997 1998 2007 출고가 2,000 4,100 3,705 2,340 10,000’ Price Product 리뉴얼 기존의 상표와 병을 새롭게 바꿈 녹색 병→투명한 병 기존 매화수의 진한 뒷맛을 줄임 2002.9 출시 2006.11 현재 리뉴얼 청매 숙성 원액 사용 4~5 도 저온숙성 저도수 주류 여성을 타겟으로 한 디자인10 4. 매화수의 마케팅 전략 4P’s Promotion 2003 년 , 여름 On The Rocks 이벤트를 열어 매화수를 더욱 시원하고 부드럽게 마실 수 있도록 유도 2004 년 , 봄 불황으로 인한 주류 시장 위축으로 매화수 구매 고객에게 열쇠고리 , 향비누 증정 인쇄광고 , TV 광고 등을 통해 여성들을 위한 술이라는 이미지를 정립시킴 홈페이지 내부의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여 경품을 내걸고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11 4. 매화수의 마케팅 전략 4P’s Place 전국 36 여 개 지점의 물류 센터 지역 지점 및 슈퍼 , 유통 , 특판 지점 및 영업소 등 하이트와의 인수합병으로 전국적으로 더 넓은 유통망을 통한 보급이 가능함 소주를 싫어하는 사람이 매화수를 선택할 수 있게 유도하거나 낮은 도수의 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매화수를 잘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소주가 있는 주점 , 음식점 등에는 어디든지 비치함12 4. 매화수의 마케팅 전략 그 결과 … 2008/12/12 2008 년 국내 매실주 시장 점유율 단위 % 대한주류공업협회 3 개월 이내에 마셔본 매실주 브랜드 명 단위 % 2008/05/19 C-NEWS “ 매화수가 매실주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 위를 차지하게 됨 ”13 매화수의 마케팅 전략 결론 주류 시장에서 매화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 - 전통 과실주는 저도수 , 부드러운 맛 , 좋은 원료라는 강점을 가졌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리큐르가 다양한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 그러나 국내에서는 소주 시장에 일부분 기대어 있는 기생시장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에 소주와도 경쟁해야 하는 관계에 놓인다 - 게다가 소주 역시 저도수와 웰빙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기에 소주보다는 비싸고 양주보다는 싼 전통주는 그 사이에서 경쟁력을 잃기 쉽상이다 - 고로 독립성을 추구하되 소주와 비교해도 경쟁력 있게 마케팅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전통 과실주 시장에서 매화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 - 매화수는 전통 과실주 ( 특히 매실주 ) 시장에서 다양한 4P 전략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였지만 특히 저렴한 가격이 시장을 점유하는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된다 - 하지만 언제까지나 저렴한 전통 매실주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 매취순의 순금 매취순 , 설중매 골드세트 , 배상면주가 세시주의 매실미주 한정판처럼 매화수 브랜드 내에서도 라인을 확장하여 고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14 출처 http:// www.jinro.com/ http :// www.maehwasu.com/ http :// www.soolsool.co.kr/ http :// www.mk.co.kr/ http :// gall.dcinside.com/alcohol/ http ://www.trendmonitor.co.kr /{nameOfApplication=Show}
    경영/경제| 2009.05.31| 14페이지| 3,000원| 조회(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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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의 탄생
    올바른 시장경제란? 자유방임은 빈부격차, 시장의 부패를 가져오기 때문에 곤란하고 정부의 통제는 정경유착, 부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고루 섞은 적절한 시장 경제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고 고등학생 때 배웠다. 자유 경쟁이라는 필드 아래에 왜곡을 막기 위한 억압적이지 않은 규제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장 경제 체제라고 말이다.몇 가지 사례를 얼추 들여다보면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은 어느 정도의 자유 경쟁을 허용하여 아시아의 신흥 경제대국으로 떠올랐고 중국도 경제성장을 이유로 시장경제 체제를 표방하면서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이끌어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1990년대 초 공산정권이 몰락하면서 시장경제를 선택한 러시아는 중국과는 달리 경제 안정과 성장에 있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두 국가 모두 공산주의에서 시장경제체제를 수용했는데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혹시 정부의 정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달랐기에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을까?‘시장의 탄생’은 이론이 아닌 현실적 상황을 예로 시장의 복잡하고 섬세한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시장은 세상에서 제일 효율적인 경제라고 나와 있다. 시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유롭게 표출 할 수 있게 하고 부의 축적을 가져오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켜준다. 거기에 적절한 규제를 가해 시장을 안정되게 만들어 더욱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하지만 적절한 규범이 있는 모든 시장 경제 체제가 완벽히 이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경쟁우위를 가져 시장 경제에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저작권, 재산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음반 공유 사이트 ‘냅스터’의 폐쇄한 미 연방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음반 산업의 수익이 줄어 버렸다. 오히려 ‘냅스터’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음반 매출액이 어느 때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였지만 정부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지며 인플레이션, 실업, 재정 적자, 외환 위기가 발생했다. 위기에 봉착한 뉴질랜드 정부는 정부 규제에 관한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함으로써 겨우 안정화를 되찾았다. 시장 경제를 위해 각 당사자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 일까? 어떠한 연결고리가 맞지 않았던 것일까?이 책에서는 그러한 연결고리들을 이어내는 것을 ‘설계’로 표현했다. 설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고려된다. 법, 소유권 등의 외부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시장 내부의 시스템, 성향 등 본질적 요인 역시 시장 설계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경제가 요구 하는 조건을 충족시켜도 본질적 요인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그 설계는 실패로 끝난다.러시아는 공산체제의 몰락 이후 급격한 경제 개발을 위해 가격을 자유화 시키고 국영 기업을 민영화했다. 결과는 생산 감소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혼란가중.모든 국가는 민주화를 단행하기 위해, 경제 성장을 위해 이러한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달랐다. 시장 뒷받침 제도도 없었고 국영 기업의 규모가 매우 컸기 때문에 독점이 성행했다. 협력과정이 필요한 시장경제는 제도 부실, 독점 성행, 적절한 상거래 대상을 찾지 못한 기업들로 인해 파괴되었고 결국 시장은 실패로 돌아갔다.
    독후감/창작| 2009.04.01| 2페이지| 1,000원| 조회(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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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사마리아인들
    처음 이 책의 제목만을 접했을 때는 기독교 관련 도서인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마리아인은 성경에 나온 지식이 전부인데, 성경에서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비록 다른 민족들에게 멸시를 당하지만 제사장, 지식인들도 외면하고 지나쳐버린 강도에게 당한 사람을 성심성의껏 돌보아주고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착한 사람으로 나오기 때문이다.이 책에서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성경에서 나오는 그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대부분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서슴치 않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판하고 있다.‘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선진국들을 가리킨다. 선진국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자유무역을 실행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 역시 자유무역을 향해 관세를 인하 혹은 철폐하면서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며 개발도상국들에게도 이러한 방식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 시기에 그들은 보호무역을 펼쳤다. 유가 상승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행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석유를 꺼내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협상은 경제적 격차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체결하려고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 사마리아인들은 제 정신일까?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이 올라가야할 사다리를 걷어찬다고 주장하고 있다. 100% 자유무역을 통해 이득은 모두 선진국이 챙겨간다고 주장한다. 개도국의 단물을 쪽쪽 다 빨아먹은 채 말이다.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개도국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말 대로 6살짜리 아들을 공장에 내보낼 수는 없다. 6살짜리 아들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내보내봤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두닦이, 소매치기, 공장 노동자 일 뿐이다. 조금 더 교육 시킨다면 의사, CEO, 박사가 될 수 있다. 마치 국가의 보호 아래에서 시작하여 크게 성장한 르노, 싱가포르 항공, 노키아, 삼성처럼 말이다. 저자는 개도국들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하였을 그 때,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축구 경기장에서 브라질 축구 대표팀과 열한 살 딸 유나의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경기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니까. 쇼 프로그램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하지만 자유 무역은 쇼 프로그램도, 장난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하게 일어나는 불공정한 방식에 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난하고 있다.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이 사람 좀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WTO, IMF, 세계은행을 악의 삼총사라고 부르니 조금은 욱하기도 했다. (다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WTO‘에 대해 그렇게 불렀으니까)하지만 읽을수록 풍부한 사례와 저자의 독설적인 글솜씨에 감탄하여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게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 한국의 주부들이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경제 후퇴의 방식이라며 비난하던 ’파이낸셜 타임즈‘의 특파원은 IMF가 강요했던 재정 삭감 계획은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이 이중적인 작태는 어떻게 해석해야하는 것인가?
    독후감/창작| 2009.04.01| 2페이지| 1,000원| 조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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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세계 대전사/ 세계사
    존 키건 지음 , 류한수 엮음열다섯살 중학교 2학년 시절,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라는 과목 안에 세계사가 들어있었다. 역사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중학교 3년간의 수업 중 가장 재미있는 사회 수업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 전쟁 부분을 배울 때 가장 재미있었는데 제1,2차 세계대전은 그 과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워 그 전개 과정을 달달 외우기도 했었다.시간이 흘러 수능을 치르고 ‘수능만 보면 세계사관련 서적을 모조리 읽어버리겠다.’는내 의지는 수능 후의 무기력함으로 인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 후 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2학기가 되어서야 교양 과목으로 유럽의 전쟁사에 대해 좀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과는 상경계열이지만 역사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에게 2차세계대전사는 억지로 잠재우려했던 역사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불태워주기에 충분했다. 엄청난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 두꺼운 양장본 책에 무게도 만만치 않은 이 책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배웠던 세계사 지식은 시험암기용으로 과거 있었던 사실의 존재에 인식을 하며 미시적인 관점으로 시사하는데 반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6년의 긴 시간을 900여 페이지에 거시적인 관점으로 큼지막하게 흘러가 중고등학생 시절 점수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세계의 역사를 탐구했던 나에게 더 크고 깊은 사고력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책은 서부전선, 동부전선, 태평양전선 전쟁 초중반으로 시작하여 또 다시 서부전선, 동부전선, 태평양전선 전쟁 후반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 전선의 상황과 시간의 흐름을 적절히 조합시켜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도 전반적인 흐름만은 확실히 파악하게 도와준다.이 책의 저자는 ‘존 키건’으로 영국인이며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사를 강의하고 그 이후 국방 부문 대기자로 활약하면서 20여권의 책을 서술한 현대에 살아있는 최고의 역사학자이다.단기간에 독파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이 책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절대주의 시대의 상비군과 관료제의 생성. 대포의 발달. 혁명을 거치며 확립된 민족주의의 기틀. 그리고 원거리 무기의 발달까지... 외교 우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쟁에서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원거리에서 위협을 주는 전쟁 방식에서 살상을 위한 근거리전으로, 서로 돌격하여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는 단기전에서 빗장을 걸어놓고 방어하는 공성전으로 전쟁 방식이 진화하게 되면서 사상자 수는 늘어났고 국민들의 생활 역시 피폐해져 갔다. 민족성의 대립으로 벌어진 사라예보 사건 이후 종전된 전쟁, 피폐하고 궁핍한 국민들을 위해서 국가가 할 수 있는 것 또는 이용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 히틀러나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의 내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그들의 생각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사실 초기에는 독일에 대해서 연민이 들었다. 삼국 동맹만 맺지 않았어도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인데.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지 않았으면 과연 이렇게 두 번씩이나 국가가 몰락 할 수가 있었을까? 삼국 동맹에서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사라예보 사건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 제1차 대전이 발발하지만 않았어도, 베르사유 조약에서 굴욕을 당하고 독일 내에서 감당이 되질 않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국민들이 시달리지만 않았어도 독일은 뛰어난 공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치즘에는 반감이 느껴지지만 독일 자체에는 별 다른 반감이 느껴지지 않고 연민이 들게 된다. 히틀러 역시 그렇다. ‘민족우월주의’로 유대인과 슬라브인들을 학살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는 뛰어나고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차군단으로 서부전선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을 보면 훌륭한 전략가라고 생각한다. 에르빈 롬멜장군을 아프리카 전선으로 일부러 보내 영국군을 속이고 영국군을 북아프리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고 히틀러 자신은 러시아를 침공하는 것을 보면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원유 공급이 가능한 중동으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한 것은 큰 실수이긴 하다. 중동의 원유 매장량보다 러시아의 매장량이 더 많아 보여 탐났을지도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원유가 탐이 났다면 오히려 키예프를 점령했어야하는데 스탈린 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해 애를 쓴 것을 보면 지나친 간섭이 화를 부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정치적, 군사적 동맹 입장에서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몰래 소련을 침공 한 것을 보면 머리가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이기적인 지도자로 보여 후대에 비난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근세 공성전에서 수로나 물자 공급을 막는 것이 비겁한 행동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민족우월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많은 유대인과 슬라브족 말살사건을 생각하면 더더욱 용서 받을 수 없는 잔인한 지도자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끔찍한 참극을 6년간 시행하지 않았는가.전쟁 초기에 서부전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 시키는 장면에서는 통쾌했지만 한편으로 저자가 영국인이기 때문에 연합군에게 관대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읽기 거북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국이 모든 전투에서 중요한 우위를 차지했으며 다른 국가들은 물자공급에 더 중점을 두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글들. 하지만 각 국 지도자들의 이해관계와 군수품 공급으로 인한 이득을 얻는 사업수완과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는 것은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고 이해해야하는 사실이기 때문에 비난 할 수 없을 것 같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살길을 찾아야 했던 히틀러, 대공황으로 인해 실업자로 가득 찬 거리를 보며 무조건 국가에서 사업을 총괄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루즈벨트, 공산주의 아래에서도 국가 부흥의 길을 찾아야 했던 스탈린 등 비판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비판 할 수 없는 지도자들의 속내와 행동이 책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책에서는 적국 간에도 물자를 서로 교류했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이것이 국가 간에 이루어진 것인지 개인 간에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만일 국가 간에 이루어진 거래라면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개인 간에 이루어진 거래라면 18세기에 일어났던 민족주의의 기틀이 장기전으로 돌입한 전쟁 때문에 잠시 무너진 것이 아닌가 싶다. 유럽 사람들은 전쟁의 종식을 기다릴 뿐 자국의 승리를 바란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전쟁 방식이 단기전이었던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1930년대에서 사람들이 기나긴 전쟁의 끝을 바라고 있을 1941년,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습격하여 무수한 인명을 사살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미국이 연합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제1차 대전에서도 초기에는 참전하지 않았다가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의 선박이 침몰하여 인명피해를 입자 1차 대전에 참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점으로 보아 미국은 자국민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다. 대한민국도 조금 배웠으면 좋으련만. 아무튼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이 연합군의 쪽으로 기류를 타게 되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확실한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서부 전선에 비해 태평양 전선은 손으로 페이지를 집어보았을 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훑고 갔다는 느낌을 받아 아쉬웠다.하지만 결국 전쟁을 발발한 두 국가가 안타까운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결말은 안타까우면서도 통쾌했다. 사실 독일의 경우 전쟁 발발 후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져 점점 몰락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일본의 경우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런지 안타까운 면보다는 통쾌하고 즐겁기까지 했었다. ‘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까. 도쿄나 교토에 떨어뜨려버리지...’라는 어린 시절에 철없이 중얼거렸던 생각까지 다시 하면서 말이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다. 맺은 사람이 결국 풀어야한다. 저 말대로 결국 맺은 자 (독일,일본)은 연합군에게 항복을 함으로써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패배자에게는 끔찍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살 전날 에바 브라운과 결혼 한 후 동반 자살을 하였고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 애드리안 브로디 주연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 유대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종전 후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어떻게 잡혀있는지 볼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09.04.01| 4페이지| 1,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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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전쟁사/ 전생의 세계사 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윌리엄 맥닐 지음, 신미원 옮김전쟁의 발생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잉여 생산물의 증가로 인해 사유재산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에 따른 계급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전쟁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말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영토 확장을 하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내용이 떠오른다.그렇다면 왜 계급의 분화가 전쟁을 몰고 왔으며,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왜 영토 확장을 하게 된 걸까? 계급이 분화되었으면 그 체제 속에서 문명을 발전시키면 되는 일 아닐까? 국가 발전의 방법 중에 꼭 영토 확장만이 그들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일까? 발전 방법 역시 문명 혹은 기술의 발전이 가능할텐데 왜 그들은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무기를 발달시켜 전쟁을 하게 된 것일까?그 해답은 ‘전쟁의 세계사’에 있었다.이 책의 저자 1917년 캐나다 태생 윌리엄 맥닐은 전쟁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풀어나가며 시장지향형 생활 방식이 전 세계의 역사에 전쟁이라는 큰 사건을 발생시킨 요인이라고 생각했다.목차는 고대 시대부터 1000년 ~ 1500년 사이의 중국, 중세 유럽, 근세 유럽, 유럽의 혁명, 19세기, 20세기, 전후의 미래 시대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확실하게 전쟁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는 다면 더없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고대시대부터 시작하자.고대 시대에는 특정 물건을 생산하려 하더라고 재료가 없으면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가공 기술보다 원료 입수 능력이 중요했다. 고대 시대만 하더라도 원료 입수 능력은 생산력에 직결될 정도로 중요했다. 수송과 보급이 중요했으므로 물자 확보를 위해서 군사 원정대를 조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의 군사 원정대는 물자 확보를 위한 원정대였기 때문에 원정대를 통솔하는 사람은 귀족이었고 대부분 외교를 통해 물자 확보를 하였으므로 살상이나 침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외교를 통해 자국이 상대적 우위에 서도록 전쟁을 했을 뿐 이었다.중세 초기에는 프랑크 왕국에서 등자나 철퇴, 그리고 칼 등이 발달하였으며 주로 단병접전-칼이나 창으로 단병과 맞서 싸우는 방식- 이 발달하였고 서유럽에서는 장갑기마전사가 발달하고 로드와 바살이 계약을 맺는 봉건제가 싹트게 되었다. 이란이나 지중해 연안 국가의 경우에는 봉건제가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중앙 권력을 재건하기 위해서 였다. 실제로 봉건제가 자리 잡은 국가에서는 전쟁 시 기사의 의무가 중요시되었고 기사 역시 계약의 조건을 잘 이행하나 대신 왕의 권력이 크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경우 선물외교와 국경수비를 혼합해서 하는 혼합 외교가 발달하였고 조세를 받아들이는 제도가 일반적이었다. 또한 90m거리의 적을 맞출 수 있는 석궁이 발달하였는데 석궁은 사용법은 간단하나 제작에 어려움이 많은 무기였다. 이렇게 고대 시대, 중세 시대에 무기 발달이 두드러지고 전쟁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1000년 이전에는 명령시스템이 우세했다. 쉽게 말해 왕, 영주, 관료들의 영향이 두드려 졌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관료들은 경의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교역과 상업 관련 종사자들은 불신,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과 상업으로 물자를 획득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전쟁보다 경멸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교역보다는 전쟁으로 물자를 획득하는 일이 많았다.중국 송나라의 경우 ‘무’보다는 ‘문’을 중시하는 문치주의를 채택한 나라였다. 문치주의하면 국력은 약하고 문관들이 중시되어 학문적으로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무력과는 관련이 없을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오히려 송은 무기제작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화약이나 소총류의 발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문치주의 였기 때문일까. 사대부들은 학문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상업이 경시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군인들에게도 조차 군인의 일에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송은 국력이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결국 요와 서하에게 세폐까지 바치게 되었다.그리고 몽골이 중국 대륙을 점령했을 당시에는 제철업이 대세였는데 최대 3만 5000톤을 생산할 정도로 수준 높고 거대한 제철업 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생산량은 점점 하락하게 되고 운하 운송 루트가 붕괴되면서 결국 미미해지고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명나라 말기에 다시 생산이 되었다.송나라의 경우 중세 유럽과 마찬가지로 상공업자에 대한 대우가 좋지 못했다. 상공업자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 대한 대우 마저도 좋지 못했다. 단순한 학문적 요소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몽골의 경우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군사시스템은 크게 발달하였다.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든 유목민의 특성상 몽골은 주로 물자 조달 시 곡물을 받고 수송 시스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고 후에 중국 대륙을 통일 하고나서는 상업 시스템을 중시하였다. 육 해상 무역을 발달시키기 위해역참제를 정비하거나 운하를 개수하여 교통로를 정비하였다.이슬람 국가 역시 상업을 중시하였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떠올리게 하는 이슬람인이 아니라 상업을 중시하여 무력이 아닌 교화로 종교적 영토 확장을 한 이슬람 국가의 사례를 보면 상업의 발달이 전쟁의 발달을 미미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아시아의 다음 세대를 잇는 명나라의 경우 한족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유교적 사상이 많이 발달되어 있었다. 그말인즉슨, 송과 마찬가지로 명나라 문인들은 상공업을 경시하였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태조는 쇄국 정책 실시로 동서 교통로를 단절시켰다. 하지만 영락제가 명의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환관 정화를 해외로 원정 시켰다. 정화는 이슬람계이면서 이슬람교도로 추정되는데 이 이유로 정화가 해외 원정을 하면서 조공 무역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보자. 1000년 이후 유럽은 무역이 지속적, 체계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무역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각 지방에서 생산하는 산물의 품질이 향상되게 되고 이로서 특화와 상호의존 역시 발달하게 되면서 해상 무역이 발달하게 된다. 특화와 상호의존은 재화, 서비스 등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휴양 도시 말라카를 생각해보자. 현재는 휴양도시로 이름이 나 있지만 사실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말라카는 해적의 본거지였다. 하지만 무역이 발달함에 따라 정박지로 발전하기 위해 안정한 정박과 값 싼 정박료로 전세계 여러 상인들을 끌어모으면서 무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말라카의 경우 정박지로 특화한 케이스이다.고대시대부터 11C 초만 하더라도 상업과 전쟁은 반비례의 관계였으나 그 이후부터 판도는 변하기 시작한다. 십자군 전쟁 이후 상업이 발달하게 되고 도시가 발달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경우 도시 내부에서 대립이 생겨나게 된다. 길드 끼리 서로 대립이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도시의 방위가 약화되기 시작한다. 도시 방위가 약화되기 시작하자 약탈이 늘어나게 되고 약탈보다는 상업적으로 조세를 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무기의 발달에 치중하게 된다. 무기를 개량하고 경량화 시키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 때 유럽에서 발달한 것이 석궁이다. 석궁은 기병과 결합하게 되면서 힘이 막강해지기 시작했는데 기병은 보병과의 혼합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군인의 숫자도 중요했다. 상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왕에게 세금을 국방에 힘써줄 것을 부탁했는데 이때부터 직업 군인의 틀이 제대로 갖추어지기 시작하게 되었고 상업과 전쟁은 정비례의 관계가 되었다. 직업 군인들은 상인의 조세로부터 나온 월급을 가지고 시장에 지출을 하며 시장 경제의 활성화를 도왔고 상인들은 자신의 수익을 국가에 헌납하므로써 국방 발전에 이바지하였다.시간이 흘러 유럽에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시민군의 영향이 커졌다.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했고 자연스레 시민군이 발달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따라서 군인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직업군인들은 전략 중심의 기존의 방식을 선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업 군인이 아닌 시민군의 증가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는 더욱 발달하게 되었고 군인의 증가로 인해서 군대는 조화를 이루게 되고 조직화를 높이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조화와 조직화가 높아질 수록 전체적으로는 부조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합리적인 계획은 비합리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조직화된 군대는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독후감/창작| 2009.04.01| 4페이지| 1,000원| 조회(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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