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어거스틴의 대해 레포트를 시작한 이유는 어거스틴의 고백론이라는 책을 읽어 본적이 있기 때문에 레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 레포트를 통해 알게 된 어거스틴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견줄 만큼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며 저술가라는 사실이 이었다.기독교 신학의 큰 영향을 미쳤던 위대한 인물이었던 어거스틴에 대해 알아보려한다.Ⅱ. 본론1.생애와 저서1)생애어거스틴은 354년 11월 13일 누미디아 주의 타가스테에서 이교도인 아버지 파트리치우스와 그리스도교인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356년경 어거스틴은 마다우라에 가서 라틴 문학과 문법에 대한 지식의 기초를 닦았다. 370년경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는 큰 도시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한 여성을 만나 아들을 얻었다. 그는 문란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수사학에 있어서 뛰어난 학생이었다. 이 곳에서 그는 마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374년에 타가스테에서 문법과 라틴 문학을 그리고 카르타고에서 그는 수사학을 가르쳤다. 384년에 그는 밀라노에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게 된다. 이때에 그는 ‘플라톤파’의 글과 바울의 글을 읽기 시작하며 회심의 기회를 갖는다. 심플리치아누스와 폰티시아누스 두 사람과의 만남은 결정적 회심을 일으키게 했다. 386년 여름의 일이다. 이때에 그는 《아카데미아 학파를 반박함》,《지복의 삶》,《질서론》,《영혼의 불멸론》,《독백》,《음악론》등을 저술했다. 그는 387년의 성 토요일에 암브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고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 그는 로마에 머물며《자유 의지론》,《영혼의 크기에 대하여》,《가톨릭교회의 습속과 마니교의 습속》등을 저술하고, 388년에 아프리카로 돌아온다. 391년 그는 사제로 임명되었고, 히포에 정주하여 수도원을 설립하고 마니교와의 논쟁에 착수했다. 396년에 히포의 주교가 된 어거스틴은 반도나투스파 투쟁에 헌신하면서도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고백론》도 이때에 쓰였다. 400년경에 그의 위대한 저서 《삼위일체론》의 저술이 시작되어 14년 만에 완성되었고, 《신국론》은 413년에 시작하여 426년에 완성했다. 펠라지우스파와의 논쟁도 계속되었다. 426년에 자신의 후계자로 에라클리우스를 지명하고, 430년의 늦은 봄 또는 이른 여름에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했는데 어거스틴은 포위된 그 가운데서 통회 성영을 외우면서 430년 8월 28일 죽었다.2)고백론고백론은 모두 13권으로 어거스틴의 작품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문학작품이다. 고백론은 ‘객관적’인 자전적 보고서가 아니라 주교로서 어거스틴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주교가 된 첫해를 보내면서 고백론을 시작했다.3)삼위일체론아우수스티누스 작품 가운데 삼위일체론은 신학적 주제를 가장 깊이 포괄적으로 다룬 것이다. 이 책은 향후 서방 신학 전통에 큰 영향을 준다. 고백론을 완성할 즈음 어거스틴은 두 가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창세기 1-3장에 대한 주석과 삼위일체 교리였다. 삼위일체론은 14년(399-412)에 걸쳐 12권으로 출판했다.2.사상1) 신론어거스틴이 말한 신은 일체의 범주를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사랑도 어떤 대상을 향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다(신은 주객의 분별도 초월하였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사물을 올바르게 사랑한다는 것이 곧 그 안의 신적 존재 근거를 사랑하는 것이다.삼위일체에 관해서는 서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즉, 위격이나 인격의 구별에 대해서 신의 통일성을 강조하여 삼위일체의 신 그 자체를 인격으로서 파악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신은 통일적 인격이므로 밖을 향하는 신의 모든 행위는 언제나 삼위일체 전체의 행위이며, 수육의 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어거스틴은 무로부터의 세계 창조를 부정한다. 창조에 선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면 유한한 것은 언제나 허무의 위험 아래 놓임을 의미한다. 세계는 매순간 신의 의지(사랑)에 의해 창조되고 보존되어 진다. 창조와 보존이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순간도 세계는 신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신론적 신과 세계라는 두 실재를 고정화하는 것 역시 받아들여 질 수 없다.2) 죄론어거스틴은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 요소임에는 일단 동의한다. 그러나 자유의 성격에 대해서는 약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즉, 인간의 자유란 선을 지향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은총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은 신이 아닌 유한 사물로 눈을 돌릴 여지가 많으며 여기서 죄가 생기는 것이다. 아담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자만-즉 신으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이것이 죄의 원인이다) 죄를 짓게 되었다고 어거스틴은 말하고 있다. 곧 어거스틴이 말하는 죄는 자연적이 아닌 정신적인 죄이다.최고선을 외면한 결과인 죄는 곧 최고선의 상실이라는 형벌을 가져오며 이것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멀어짐과 동시에 존재의 힘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원죄 사상과 관련하여 개인의 자유를 부정한 어거스틴은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죄는 인류의 숙명이며, 신의 특별한 은총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3) 은총론어거스틴에 의하면 신은 죄로 인하여 멸망하게 될 인류 중 일정 수의 인간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유한자이자 피조물인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없다. 다만 신의 예정에 의해 인간의 의지는 신에게로 향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은 모두 은총을 받아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단순히 죄의 사함을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곧 최고선에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의 은총은 우리들에게 착한 욕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를 돕는다.4) 교회론교회 구성원인 인간의 개체적 인격의 거룩함이 아닌 성례전의 객관적인 거룩성을 곧 교회의 거룩함으로 보는 사상은 키프리아누스에 의해 발전했는데 이것은 결국 교회의 절대적 권위에 이바지 하게 된다. 또한 어거스틴은 분열되어 있는 것의 신적 통일 즉 사랑은 교회 안에서만 있을 수 있으므로 구원 역시 교회 안에서만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구원을 중재하는 유일한 기관이 곧 교회라고 본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다시 한번 그 절대성을 확인3.논쟁1)도나투스파도나티즘은 약 312년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하였다. 시기적으로 이것은 어거스틴이 북아프리카 주변에 만연된 도나투스파들과 논쟁이 있던 약 80년 전이다. 도나티즘은 디오클레티안 박해 동안에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성경의 사본들을 정부에 반납한 것에 반대하면서 발전되었다. 몇몇 북아프리카 기독교인들(도나투스파)은 배반자들의 성직이나 감독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보았다. 도나투스파들은 결국 분열을 야기시켜 북아프리카에서 두 개의 대등하고 경쟁적인 교회들을 발전시켰다.어거스틴은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히포 레기우스가 주로 도타투스주의자였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여하게 되었다. 합리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거스틴의 첫 시도가 실패하자, 어거스틴은 정치적 및 교권 적으로 싸움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 싸움은 결국 도나투스파를 정죄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소멸시키는데 기여하였다.2) 펠라기우스주의펠라기우스의 이론에서 끌어 낼 수 있듯이 그 체제가 원죄를 부인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단지 아담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인류 전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다라서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유아들은 죄의 성향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며, 죄 없이 무죄하게 태어난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거스틴은 모든 인간이 죄의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며,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그로 하여금 죄를 지을 소기를 심어준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 이 이단을 반박하였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법이 설정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펠라기우스주의는 또한 인간의 구원이 거룩한 은혜, 즉 하나님의 선물임을 부인하였다. 펠라기우스주의는 결국, 인간들이 스스로를 구원하거나 적어도 하나님과 협력하여 자신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거스틴에게 신앙의 기원과 성장 모두는 하나님의 선물이다.4.어거스틴의 공헌인문 과학의 영역에서 어거스틴은, 오늘날 학문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그러한 소수의 인물에 속하는 사람이다. 먼저 이 사실은 그의 변화무쌍한 인생이 서양 역사의 중차대한, 참으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하는 점에 있다.
기본 심폐소생술이란?인공호흡과 인공심장압박을 합한 심폐소생술을 구급소생술이라고 한다. 사람의 생명은 혈액속의 산소와 체세포 속의 영양이 결합해 발생하는 에너지에 의해 유지된다. 모든 체세포는 산소를 저장하는 기능이 없어서 인체의 각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호흡과 혈액순환기능이 몇분 만 중단 되도 생명유지가 어렵다. 자연호흡이 멎었다고 하더라도 혈액순환은 잠시동안 계속되며 맥박이 뛰게 된다. 이 상태를 호흡정지라고 하는데 이 때는 두뇌와 신체의 다른 부분에 혈액을 순환시키는 심장의 작용은 계속되고 있으므로 자연호흡을 되살리기 위한 인공호흡만이 필요하다. 혈액순환의 정지는 호흡정지와 동시에 또는 잠시 후에 일어나며 맥박이 없어지는데 이를 심장정지라고 한다. 심장정지 시에는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고 순환시키기 위해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이 요구된다. 우리 몸의 조직 중 뇌는 가장 많은 양의 산소를 필요로 한다. 대체로 충분한 산소를 포함한 혈액의 공급이 4∼6분간 차단되면 뇌조직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고 6분 이상이 되면 생물학적인 사망상태에 이르게 된다.따라서 최초 발견자에 의한 기본소생술은 뇌조직이 손상되지 않은 시기, 즉 임상적 사망상태라는 호흡과 맥박의 정지 후 4분 이내에 시행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즉각적인 의료체계에의 연락으로 8분 이내에 전문가에 의한 전문소생술이 실시된다면 회생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심폐소생술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감전사고 ▲가스·화학물질 중독의 의한 질식 ▲물에 빠진 경우 ▲약물중독 ▲산소결핍장소에서의 질식 ▲추락 등 머리부상에 기인한 호흡중추 신경계 타격 ▲이물질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한 기도폐쇄 등으로 인해 호흡정지나 심장이 정지했을 경우심폐소생술 방법심폐소생술이란 갑작스런 심장마비이거나 사고로 인해 폐와 심장의 활동이 멈추게 되는 때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명연장 차원의 꼭 필요한 기술이다. 보통 심폐소생술은 의사나 간호사 혹은 특별하게 훈련받은 전문요원들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기본적인 심폐소생술은 조금만 배우고 익히면 의학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인도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여 전문 의료진이 도착할 때까지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올바른 지식을 정확하게 익혀야 하겠다.심폐소생술의 목적심폐소생술의 주된 목적은 우리 몸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장기인 심장, 뇌, 그리고 그외의 장기에 산소를 공급하자는 데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시행하는 속도이며, 이것이 또한 심폐소생 술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열쇠이다. 심장마비가 일어난 후 에도 우리 몸속의 폐와 혈관 내에는 6분정도까지는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산소의 여분이 있다. 만약 숨이 먼저 그쳐도 수 분 동안은 심장이 뛰게 되어 폐속의 산소는 계속 이용되게 된다. 그러나 심장이 멈추게 되면 폐와 혈관속의 여분의 산소가 더 이상 순환될 수가 없으므로 이때 심폐소생술이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심장과 폐가 멎고 나서 즉시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면 거의 대부분에서 완전소생의 기회가 높다.그렇지만 4~6분 이상 혈액순환이 안되면 뇌에 손상이 올 가능성 이 크다. 6분 이상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거의 전부 에서 뇌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고 생명을 잃게 된다.이러한 이유에서 유사시에는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지의 여부를 파악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로 판단되면 즉시 올바른 심폐소생 술을 실시하여 환자를 소생시키거나, 혹은 전문 의료진이 도착할 때까지 생명을 연장 시켜야 한다.구조호흡의 실시요령1. 의식 유무 확인먼저 처치원은 환자의 의식유무를 확인해야 한다.환자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리거나 흔들면서“괜찮습니까?” 하고 물어 본다.2. 호흡 확인환자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거나 의식이 없으면 호흡을 하는지 10초 내에 보고, 듣고, 느낀다.3. 환자의 자세 교정환자의 상태에 대한 1차 기본조사를 하기 위해 필요하면 환자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환자를 바로 눕히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를 보면서 어린이의 엉덩이와 어깨의 중간쯤에 무릎을 끓고 앉는다.▶ 필요하면 어린이의 다리를 곧게 편다▶ 처치 원 쪽에 있는 어린이의 팔을 어린이의 머리 위로 뻗쳐 놓는다▶ 어린이 쪽으로 몸을 굽히고 한 손은 어린이의 어깨를 다른 손은 엉덩이를 잡는다▶ 어린이를 처치 원 쪽으로 천천히 침착하게 끌어당기며 한번에 돌려 눕힌다.이때 어린이를 바로 눕힐 때 몸통이 비틀리거나 구부리지지 않도록 할 것.이 때 어깨와 엉덩이가 동시에 한 동작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손상이 없다.▶ 어린이를 돌려 눕힐 때 어깨에 있던 처치 원의 손으로 어린이의 목과 머리의 뒤쪽을 받친다.▶ 자세교정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10초 이내에 해야 한다4. 기도개방구조 호흡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첫 단계의 처치는 즉시 기도를 개방하는 일이다.의식을 잃은 자가 똑바로 누워 있으면 근육의 이완으로 아래턱이 처진다. 혀는 하악골과 입바닥에 붙어 있기 때문에 혀가 뒤로 물러나 목구멍의 뒤쪽을 막을 수 있다.혀에의한기도폐쇄는처치원이환자의머리를뒤로젖히고턱을끌어올리면쉽게(숨길이) 트이게 할 수 있다.5. 머리 뒤로 젖히기 / 턱 끌어 올리기기도를 개방하는 방법을 머리 뒤로 젖히기 / 턱끌어 올리기라 하는데 구체적인 실시 요령은, 한손을 환자의 이마에 대고 뒤로 밀어 머리가 젖혀지게 하고 다른 손으로는 턱 밑을 위로 끌어 올린다.6. 호흡 유무 확인(보고, 듣고, 느낌)호흡하는지의 확인은 기도개방을 유지한 상태에서 처치원이 자기의 뺨과 귀를 환자의 코와 입 가까이 대어 내쉬는 숨을 느껴보고, 눈으로는 가슴의 오르내림을 살펴보고 귀로는 호흡하는 소리를 들어보도록 한다.어린이가 호흡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어린이의 입과 코에 귀를 대고 어린이의 가슴을 본다▶ 보고, 듣고, 느껴본다. 가슴과 복부가 오르내리는지 보고, 호흡하는지 듣고, 코와 입으로 공기가 나오는지 느껴보는 일을 10초 내에 한다.숨을 쉬면 가슴과 복부가 움직이고 귀와 뺨으로 공기가 나가는 것을 듣고 느끼게 된다. 가슴과 복부가 움직인다고 항상 호흡하고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환자가 호흡을 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현상일 수 도 있다.7. 두 번 충분히 불어넣기매회 성인은 2초간 어린이와 유아는 1-1.5초 정도로 두 번 천천히 불어넣는다 불어넣기를 하는 사이에 입을 떼어 처치원 자신의 호흡을 충분히 들이쉰다.불어넣을 때 어린이 가슴이 올라가고, 불어넣은 후에 어린이의 가슴이 내려가는지 지켜본 다. 가슴이 내려갈 때 공기가 빠져나가는지 듣고 느껴본다.불어넣기를 할 때 저항감을 느끼거나 공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이는 대부분이 기도 개방을 적절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머리 뒤로 젖히기와 두 번 천천히 불어넣기를 한다.환자가 숨을 쉬는 아무런 징후가 없으면 처치원은 환자에게 두 번 충분히 부드럽게 불어 넣는다.환자의 기도를 개방된 상태로 유지하면서 이마에 댔던 손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으로 코를 잡아 막는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여 마시고 입을 크게 벌려 환자의 입언저리에 처치원의 입술을 완전히 밀착시키고 불어 넣는다.각각의 불어넣기는 1~1.5초 정도로 하되 환자의 가슴이 올라가게 충분히 불어넣어 준다.첫번째와 두번째 불어넣기 사이의 시간은 큰 숨을 들이 마시는 정도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이외의 신들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타 종교를 미워하거나 욕하거나 비판하려는 우리의 의식이 종교 간의 거리감을 조성하고 우리에게 신앙심을 떠나 종교자체를 부정적으로 몰고 가게 하고 있다. 물론 이 종교 간의 트러블이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지만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없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나도 기독교 집안에 신자로서 이런 다른 영역에 대해서 이해하고 노력할 것이다.그래서인지 이번에 교수님이 말해주신 그리스인 조르바가 읽는 누가 여행 이야기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누가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여행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기에 요한복음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이 있었고 한 가지 더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제목에서처럼 그리스인 조르바의 시각으로 전개했다는 것인데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유익했다. 배울 것이 많고 일반인과는 다른 조르바의 시각을 빌려 새로운 해석을 하신 것이다. 조르바는 자유와 투쟁의 정신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배울 점이 많았었다.책의 초반부를 읽어 나가면서 나는 조르바의 화자인 두목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동질감을 많이 받았다. 마치 나를 빗대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예수님의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비유의 초점을 두고 예수님의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비유를 계속 언급하고 누가복음을 쉽게 설명해 주었다.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도 관심이 갔다. 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악이 있기 마련이고 선한 자자 악한 자를 벌하고 일깨워 주는 장면이 정말 인상 깊었다.예수님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평소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수님의 언행에 의아해 하면서도 그 속에서 낳은 것을 깨닫고 진리를 찾아가는 예수시대의 생각 있는 인재들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조르바 독자의 시각에서는 그들을 지혜로운 바보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정말 색다른 해석 이였다.9장의 이야기 중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관련된 구절이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품었던 의문에 대한 통쾌한 해답이 나와 있었다. 나 역시 라이언 일병 한명을 구하기 위해 8명이 희생해야만 했는가? 하고 생각했었지만 예수님은 하나의 생명은 나머지를 희생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생명 하나하나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말씀이 있었는데 기존에 알았던 내용들도 포함돼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이러한 이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고귀한 희생은 또 다른 생명의 교환을 의미하고 이제 그 교환은 우리들이 일구어 할 몫인 것이다. 그러한 희생을 받아들인 우리들이 그 가치보다 못할지언정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으심이 분명하고 우리가 조금이라고 느끼는 바가 있다면 그 회생이 헛되지 않도록 조금이라고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분명 누가 여행 이야기로 완성된 것임에 틀림없다. 단지 조르바 독자의 시각에서 해석을 했을 뿐이다. 기존의 간직하던 기독교적 느낌을 탈피시켜주고 앞에서 언급한 라이언일병구하기, 사랑의 블랙홀 혹은 부시대통령과 관련된 내용 등이 책에 흥미를 끊이기 않게 만들었다. 자칫 지루한 독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책 읽는 내내 관심이 증폭되었고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새로운 지식과 기존 지식과의 조화는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사실 이 레포트를 하기 전까지는 국가관(國家觀)이라 말이 조금 낯선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할지 막막했지만 국가관이란 그 말 그대로 국가의 대한 어떤 형태로서의 견해나 주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에는 학교에서도 매주 애국조회가 있엇고 또한 국가에 대한 맹세도 자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 했던 것들은 아직도 저의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애국 조회 때의 맹세와 선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국가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점점 성장해가면서 사회에 대한 부조리나 도덕성에 저의 마음속에 있던 국가에 대한 순수한 마음들은 점차 흐려지고 없어져 버렸던 것 일지도 모릅니다. 정말이지 뉴스를 보면 가슴이 꽉 막히고 답답한 마음 밖에 들지 않습니다. 점점 흔들리는 경제, 그로인한 범죄들, 수없이 난무하는 정치계의 부조리, 정말 우리나라 국민에 한사람으로 창피하고 한심할 따름입니다. 경기침체로 인한 잔인한 범죄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의 인심은 점점 피폐해지고 이제는 예전에 훈훈했던 대한민국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를 되돌아보면 그 당시의 저의 국가에 대한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열정적이 였던거 같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슴 조리며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시합에서 이겼을 때에는 모두가 하나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고 여기저기에서는 대한민국을 외치는 진풍경이 일어났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가슴 깊은 감동이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그 당시의 마음은 줄어들었고 경기침체와 실업률 그로인한 흉흉한 사회 분위기로 그 당시의 대한민국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나라를 떠나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합니다. 자기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TV 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외에서 어떤 분야에 뛰어나서 극찬을 받을 때 그걸 본 사람들은 가슴속에 우리나라의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이 그 예 입니다. 저도 물론 박지성 선수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시간이라도 꼭 경기를 챙겨보곤 하는데 박지성선수가 좋은 활약을 보일 때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 거립니다. 또한 LPGA때의 박세리 선수나 최근에 PGA에서 타이거 우즈를 이기고 우승을 한 양용은 선수를 볼 때마다 정말이지 가슴이 뿌듯하곤 합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서 한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값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국가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좀 더 열정을 가져야 하며 그에 따라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지원과 좀 더 모범적인 행동들 보여야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 에는 마음만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강대국에 뒤처지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또한 우리나라에 대한 무궁무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위해서 저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국가에 이바지 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국가를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표출을 하지 못했던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고 지금껏 잠시 잊고 살았던 우리나라의 대한 자긍심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얻던 것 같아서 매우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우리나라를 좀 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트루먼쇼 감상문어릴 때 아버지와 바다에서 배를 타다가 폭풍우가 몰아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 외에는 별 탈 없이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던 트루먼에게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익사한 줄 알았지만 길거리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붙잡혀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는 것을 시작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연이어 방해받자 트루먼은 심상치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뭔가 짜여진 각본과 같은 생활.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은 '스타'로 선발된 사람이다.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 있는, 바다로 둘러 싸인 섬'씨 헤이븐'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1분 1초도 빠짐없이 그의 모든 것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리얼리티쇼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대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된 실비아로부터 이 모든 것은 가짜이며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트루먼은 떠난다고 한 피지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배우이자 아내인 메릴과 주변환경의 방해로 번번히 실패한다.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트루먼은 카메라의 감시를 피해 몰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트루먼 쇼의 제작자는 폭풍우를 일으켜 트루먼을 돌아오게 하려 하지만 트루먼은 마침내 스튜디오의 끝에 도착하고, 편안한 삶은 씨 헤이븐에 있다는 제작자 크리스토퍼의 말에도 불구하고 출구의 문을 열고 나간다.트루먼쇼는 현실의 미디어가 지니는 개인의 사생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트루먼이라는 한 개인을 많은 사람들이 방송이라는 이름아래 거짓된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가는 극단적인 모습을 통해 미디어가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미디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또한 트루먼 쇼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와 감독을 통해 미디어를 제작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을 보여준다. 제작자들은 개인의 삶이나 생활에 대한 미디어의 침해여부보다는 이윤을 중요시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산적인 우리 현실의 모습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은 트루먼에게 트루먼 쇼의 세트장이 트루먼을 위한 세상이며 진실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을 감독은 트루먼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내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감독에게 있어서의 미디어는 현실과도 다름없고 그 미디어 속의 모습 그 자체가 새로운 세상이며 진실임을 보여준다. 넓게는 미디어 속의 세상이 그만큼 현실과 위험할 만큼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미디어와 현실의 유사성은 자칫 개인의 사생활과 삶마저도 위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그 경계마저 뚜렷해지지 않았음을 경고 하고 있다.트루먼의 인생을 방관하며 만들어진 인생의 사건에서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트루먼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희생자를 동정하기보다는 프로그램의 의도대로의 행동을 취한다. 이런 행동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가 개인의 삶이 미치는 영향에 이미 익숙해 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 시청자가 트루먼이 세트장에서 나간 후 다른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모른다는 말에서 이미 그만큼 개인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리얼리티 쇼에 익숙해져 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