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교육과 루소의 교육사상Ⅰ. 계몽주의와 교육1. 계몽주의의 개요와 발생2. 계몽사조의 일반적 특성3. 계몽기의 교육적 특징4. 계몽사상이 교육에 미친 영향5. 계몽사조의 단점Ⅱ.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1. 자연주의의 사상적 전통2. 자연주의와 교육3. 18세기 자연주의 교육의 특징4. 에밀에 나타난 주요 교육사상5. 루소의 교육방법의 의의와 단점6. 루소의 사상이 후세에 미친 영향Ⅰ. 계몽주의와 교육18세기 유럽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기본 권리를 부인하는 모든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제한과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해 삶에서의 무지몽매함, 편견, 미신, 비합리적인 권위, 구습을 타파하고 깨우치고자 한 운동이다. 그리하여 계몽주의 시대에는 각 개인의 이성과 자율성, 자유와 존엄성을 인정하고자 했고 국가와 문화의 세속적인 성격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을 비롯하여 미국의 독립(1776)과 프랑스혁명(1789)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18세기는 교육의 세기로 표현되기도 한다.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성발달을 강조하는 합리주의와 함께 자연주의가 등장하였는데, 자연주의에 의하면 원래 자연적 상태에서의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가진 평등한 존재였다.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것은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는 길이다. 교육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길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1. 계몽주의의 개요와 발생17~18세기에 걸쳐서 군주권력이 강대해지면서 정제정치, 절대주의가 확립되었다. 계몽주의란 절대왕정의 구속과 억압을 제거하고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구체제 개혁의 정치적·사회적·교육적 운동이다. 이를 위해서 절대주의의 몽매성을 타파·일소하기 위한 운동이다.백여년의 기간에 걸쳐 전통과 권위의 속박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유로운 지식을 보급하고, 사회를 무지한 상태에서 각성시키려 했던 근세 유럽의 사회제도의 몽매성과 불합리성을 깨우치는 것이 사회진보의 첩경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계몽사상은 그 자체가 바로 교육 운동이었다. 이때의 계몽 사상가들은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개명될 수 있고, 개명된 자태에 따라 일체의 미신과 전통, 비합리적인 권위와 구폐를 타파함으로써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로 진보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교육에 의한 사회개조 및 역사적 진보의 가능성을 확신한 것은 계몽 사상가들의 공통된 특색이었다. 그들은 사회개조나 역사적 진보의 근원은 인간의 이성을 발달시키는데 있다고 굳게 믿었다. 계몽의 수단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그들의 숭배는 거의 종교적 광신의 정도에까지 이르렀었다. 이성은 실로 그들에게 신이었던 것이다.낭만적 자연주의자로 불리는 J. J. Rousseau(1712-1778)와 박애주의 교육자인 J. B. Basedow(174-1790)와 C. G. Salzmann(1744-1811), 그리고 비판철학자인 I. Kant는 물론 경험론의 J. Locke나 백과전서파의 E. Condillac 등의 감각론의 철학적 입장마저도 인간형성의 요인을 후천적인 영향에서 구한다는 교육의 가능성을 강조했다.1) 교육목적이성적 사유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종교, 정치제도 사회구조 등에 내제하는 모든 종류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즉 계몽주의 교육은 인간이 그 자신의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권위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아가 개인의 이성을 발달시켜 생활의 모든 측면을 객관적으로 비판하는 능력을 함양 시키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을 두었다.2) 교육내용합리적인 것만을 구성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배제하고 교육과 과학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철학·과학·정치·경제·미술·예법 등 실용적 교과중심으로 구성하고, 종교나 실제생활의 현실을 등한시하였다.3) 교육방법인간이성에 호소하는 교육방법을 중시함으로써 이성적인 면은 강조되고, 감정적인 면이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계시, 상상 또는 감정에 의한 방법는데 이같은 자연관을 물활론(Animism)이라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 우주관은 자연을 완전한 질서와 조화를 가진 우주 창조물의 전체로 봄으로써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자연에 대한 탐구정신은 관념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정신적인 것을 경원하고 실제적인 것, 자연적인 것, 생리적인 것 등의 물질적인 것을 유일한 실재로 여김으로써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것을 중시하는 자연주의 철학으로 발전하였다.자연주의는 가장 행복한 삶은 순박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길을 따라 가는데서 얻어지며, 그러기에 그 길을 걷도록 방해하지 말고 놓아두라고 외친다. 이것이 루소의 교육철학이자 그의 자연관이었다. 이러한 자연주의의 기본적인 입장 즉 형이상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존재는 인과율의 법칙 아래에 있다. 둘째, 자연 이외에는 어떠한 원인도 있을 수 없다. 셋째, 자연에는 아름다운 질서가 있다. 넷째, 인간성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하나로 존중되어야 한다. 다섯째, 지식은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가장 올바르게 얻어진다. 이러한 자연철학은 15,16세기의 인문주의 사상으로 연결된다. 인문주의 교육은 육체와 정신을 조화 있게 발전시켜 원만한 인격을 지닌 교양인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인간중심주의, 개성존중, 개인주의 등을 본질적 특징으로 한다. 특히 인문주의는 종래의 기독 기 세계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추구하였으며, 초자연적인 신의 섭리보다는 인간과 세계와 자연을 찬미하였다. 이러한 인문주의적 인간관은 신의 지배하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 신과 합일하는 인간관으로 인간은 자연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융합하는 인간관이었다. 특히 인문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교육사상가인 V. R. Erasmus(1466-1536)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아동의 자유교육을 주창하였다. 즉 개개의 아동을 하나의 자유인으로 보고 거기에 알맞은 교육을 행함으로써 심리주의, 자발주의, 흥미주의로 나가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아동의 정신발달과 정치적인 자연권과 자연법이 지배하는 자연 상태를 강조하고 있다. Rousseau의 사상은 Locke의 사상과 불일치한 면도 있지만 Locke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하며 특히 Rousseau의 정치, 사회, 교육, 철학에 관한 기본적인 견해들은 Locke에게서 왔음이 분명하다.즉 교육의 바탕이 되는 전통과 맹목에 대한 비난,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감각, 아동의 육체적 발달의 강조, 아동의 자연발달에 대한 옹호, 교육수단으로서의 놀이의 사용, 호기심의 중요성 등도 Locke의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그러나 Rousseau는 계몽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몽사조가 등한시했던 대중의 필요와 일반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이성보다는 감성을 존중함으로써 계몽정신을 극복하고 있다.결론적으로 자연주의 교육사상은 고대 희랍의 자연철학을 시원으로 하여 이문주의와 과학적 실학주의, 그리고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자연주의 사상은 Rousseau가 어떤 특별한 사상가나 특정한 ‘주의(Ideologie)'에 집착하지 않고 그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독특한 사상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더욱 발전되어 후에 Pestalozzi의 계발주의와 Basedow 등의 범애주의 교육학으로 계승발전 되었다.2. 자연주의와 교육자연의 완전한 순수상태에서 교육의 이상화를 추구했던 자연주의 교육사상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것은 자연을 따르는 교육, 자연에 일치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주의 교육사상은 현대교육의 특징인 과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교육의 토대가 되는 운동으로서 교육의 실제적 정신과 목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8세기의 자연주의 사상은 고대희랍의 자연철학을 시발로 소박한 인문주의와 17세기의 과학적 실학주의의 계승임과 동시에 19세기의 신인문주의 및 아동 중심적 계발주의 그리고 현대의 진보적 교육사상의 선구가 되었다.감각적 실학주의를 모체로 하는 자연주의는 Rousseau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자연적 발달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인간의 성장이나 발달에 대한 가능성은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는 선한 방향으로 발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가능하다. 자연에 따르는 교육이란 곧 인간의 본성에 합당한 교육을 의미하므로 이는 아동의 개인차를 존중하고 고려하는 교육이 동시에 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 18세기 자연주의 교육의 특징① 18세기의 자연주의는 주관적 자연주의의 입각한 교육사상이었다. 자연주의 교육은 인간의 성장발달을 조성하는 작용으로서의 외계, 즉 자연의 모방에 앞서서 먼저 인간 자체 발달의 자연성에 순응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발달의 자연적 법칙에 합치하는 교육을 주장하였다.② 자연주의 교육사조는 17세기 실학주의에 대한 반성이었다. 18세기 자연주의에서는 주체인 인간의 내적 생명으로서의 자연을 말했다. 그래서 자연적 발달에 적응한 교육을 시킬 것을 주장하였다.③ 교육의 목적을 자연인의 양성에 두었다. 자연인은 사회인의 반대의 개념으로 자신을 위하여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 순수인으로서 자연 상태의 평등인을 말한다. 사회인은 특정한 전통적 사회에 의하여 제약된 사람을 말하며, 자연인은 시민도, 국민도 아닌 일반적 인간으로서 도덕적 자유인을 의미한다.④ 교육 작용은 인간발달을 자연법칙에 일치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아동의 이해를 강조하였다.⑤ 실학적 단련주의는 실생활을 통한 교육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동을 독서로부터 해방시켜 실재장소에서 실존사물을 대상으로 자율학습이 자연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19세기 이후의 신교육운동(New Education Movement)의 선구가 되었다.⑥ 교육 방법은 합자연의 원리(인간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으로 인간 내부의 자연성에 맞는 교육)와 주정주의적 교육(생활의 원리에 의한 교육과 먼저 느끼는 교육), 실물교육(직관주의적 교육), 소극적 교육(자연의 발달순서에 따르는 교육)을 주장하였으며, 아동이 준비가 되었을 때, 필요를 느낄 때 교육을 실시하라고 했다.4. 에밀에 나타난 주요 교육사상에밀은이다.
[피터팬 죽이기] 분석 및 감상Ⅰ. 서론*피터팬의 의미Ⅱ. 내용파악1. 줄거리2. 인물 분석3. 사건 분석Ⅲ. 결론1.서론이 책에서 피터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나는 이 책의 작품론을 쓰기 위해서는 이 책 제목에서 “피터팬”의 의미는 무엇이고 피터팬 죽이기라는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예규를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아직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하나 정하지 못하고 세상에 편입하기위해 이상을 버리고 현실에 타협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이런 예규의 고민에 비추어 봤을때 피터팬의 의미는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닐까?그리고 피터팬 죽이기는 그런 인물들이 자신의 이상을 버리고 세상에 편입되기 위해 현실에 타협해가는 모습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내용을 파악해보자.2. 내용파악1. 줄거리먼저 간단히 이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소설은 승태의 칠년만의 학교방문으로 시작된다. 승태는 현실은 물론이고 학교에 서도 적응하지 못하였던 인물이다. 계속 학교에 적응 하지 못하고 사라진 승태가 동아리 방을 방문한 것이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이즈음 주인공 나(예규)는 이 세상에는 조정자가 있지 않을까 사실 나의 삶은 조정자(소설가)에 의해 쓰여 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예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즈음 사랑 했던 두 번째 애인과의 결별과(여기서 예규의 두 번째 애인은 어른세계 혹은 현실에 타협한 인물로 예규가 자신처럼 현실에 타협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예규의 모습에 그를 떠나간 인물이다) 칠년만에 등장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초라하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승태의 모습에서 예규는 조정자에 의해 예규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물들이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한 것 같다.그 후 소설은 새로운 사건의 발생보다는 과거의 사건들을 생각하는 예규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예규는 계속 해어진 첫 번째 애인과 두 번째 애인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에 죽었던 동기 생각(동기 또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 인물이다)이나,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친구의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예규가 지금 유일하게 만나는 친한 동기 영길은 단순하고 자신의 이상을 쫒는 인물이다. 둘은 같은 동아리에서 만나 콤바트 브이의 명장면을 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친해진다. 그리고 둘은 사람이 죽는 장면을 목격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픔을 공유하고 같이 아파한다.영길이는 만화가라는 꿈에만 매달려 있는데 여러 번 공모전이나, 잡지사에서 거절당한다. 영길의 이러한 상황도 역시 예규에게 조정자의 존재를 의심하게 한다. 예규 또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패배주의에 빠진 건지 조정자 때문에 안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예규는 주의에 현실에 타협하는 인물들에게 피테쿠스, 모기, 귀뚜라미등의 별명을 붙이면서 그들의 언행에 대해 경멸하지만 그저 그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방관할 뿐이다. 이런 모습에서 예규역시 이제는 현실에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듯 하다. 그러던 중에 승태는 감옥에 가겠다며 도둑질을 하고 영길이가 돈을 물어주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 후에 지하철역에서 전화한 승태에게 차갑게 말하고 전화를 끊는 일이 있었고 그 후 신도림역에서 한 남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예규는 그가 승태라고 생각한다.점점 조정자의 영향으로 꿈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주위사람들이 멀어지자 극도의 외로움에 시달리며 자살, 혹은 귀향을 생각한다. 한편 신춘문예에 응모한 영길이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당연히 조정자 때문에 당선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영길이의 들뜬 목소리에 조정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당선되어서 그런 게 아니고 영길이의 작품이 심사평에 언급되어 있어서 였다. 예규는 실망하지만 뒤이어 승태가 정신 차리고 아르바이트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규는 큰 충격을 받고 헛것인지 흰 뱀을 따라가며 소설은 끝난다.2. 인물 분석여기서 뜻하는 현실에 타협한다라는 의미는 돈과 명예를 위해 인물의 꿈, 이상을 버린 다는 의미일수도 있고 인물의 소신을 저버리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다.(1)현실에 타협하지 못한 또는 안한 인물예규예규는 이소설의 주인공이자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비관적이게 않될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주변인물들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길은 번번히 만화공모전에서 낙방하였고 승태는 칠년만의 등장에도 전과 변하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였다. 두 번째 애인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예규를 떠나갔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던 동기는 결국 자살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규는 자신 또한 주변인물처럼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뭔가 자신 혹은 주변인물의 이상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에 조정자에 의해 세상이 쓰여지고 있고 조정자에 의해 이상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기를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받지만 주위의 현실에 타협한 인물들의 언행에 그들을 경멸하며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 현실에 타협하기를 망설이지만 외로움이라는 고통은 아프고 현실에 빨리 타협하기를 재촉한다.영길영길은 예규의 친한 친구이다. 영길은 자신의 꿈인 만화가를 위해서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영길은 타고난 재주가 없어 번번히 공모전에서 낙방한다. 거기에 만화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적은 엉망이다. 말 그대로 이상만 좇는 자다.이러한 상황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끝없이 이상을 쫓는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지만 현실에 타협할 생각도 없다.예규주위의 현실에 타협한 인물들이 영길이 앞에서 예규 앞에서 했던 언행을 했더라면 영길은 예규처럼 그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이것이 영길과 예규의 차이이다.승태승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자신을 보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마냥 아기이고 싶은 것일까. 자신에게 관심을 끌려고 극단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이는 마치 꼬마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느끼면 동생을 때린다거나 폭력성 등을 내보이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게끔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사실 소설에 승태가 어떤 이상을 품고 있었는지는 쓰여있지않지만 그의 이상은 아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닐까?다만 승태의 이런 비정상적인 성향이 그를 세상에 편입하는 것을 방해한다.(2)현실에 타협한 인물모기예규와 같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주변인물들을 이용한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예규는 모기라는 별명을 붙인다.귀뚜라미역시 예규와 같은 대학원에 다니는 인물이다. 매우 불평을 많이 해서 시끄러운 귀뚜라미와 비슷해서 귀뚜라미라는 별명을 붙인다. 그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하지만 그의 상황은 대학교수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런 현실에 불만을 갖고 가진자들과 현실에 불평을 늘어 놓지만 그들앞에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대학교수가 되기위해 다른곳 으로 떠난다.피테쿠스피테쿠스는 예규의 룸메이트이다. 피테쿠스라는 별명은 그의 원시인처럼 생긴 외모 때문에 예규가 붙인 별명이다. 피테쿠스는 학원 강사이다.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할 일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다. 그는 사교육계에 자신의 몸을 헌신하면서 돈을 벌 생각이다. 그에게 돈은 매우 중요하다. 돈에 관해 매우 집착하여 하나 하나 아끼며 산다. 그러나 자신이 버리지 않는 한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개들이나 여동생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그의 모습은 자신의 가족에게는 관대하지만 그 외의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낸다이런 귀뚜라미와 모기, 피테쿠스의 성공을 위해 취하는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예규는 경멸한다. 그러나 조정자는 예규에게 이렇게 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사실 이 인물들은 현실에 타협하기는 했지만 아직 세상에 편입된 인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명예(대학교수) 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세상에 편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은 세상에 편입하기 위해 자신의 이상 혹은 소신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였다. 이들의 이상이 무엇인지 소설에서는 쓰여있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대학원에서 학문의 즐거움을 추구한다거나 아이들을 가르키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3. 사건분석1)승태의 학교방문과거승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목받기위해 친구에게 황당한 거짓말을 하는 등 초라한 모습이였다 그러나 칠년만의 학교방문에도 과거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초라했으며 여전히 세상에 편입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때 예규는 세상에 편입되지못하는 모습에 떠나간 여자친구로 인해 괴로워하던 시기였는데 여전한 승태의 모습에 혹시 조정자(소설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조정자가 자신또는 친구들이 세상에 편입하지 못하게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광수 [무정] 작품분석 및 총평이형식은 아직 독신이라 남의 여자와 가까이 교제하여본 적이 없고, 이렇게 순결한 청년이 흔히 그러한 모양으로 젊은 여자를 대하면 자연 수줍은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확확 달며 고개가 저절로 숙어진다. ……형식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우선 처음 만나서 어떻게 인사를 할까. 남자 남자 간에 하는 모양으로 '처음 보입니다. 저는 이형식이올시다' 이렇게 할까.김장로의 딸 선형을 가르치기로 하고 수업을 앞둔 형식이 긴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전 까지 여자와 교제하여 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에서 느낀 점은 형식이 선형을 가르치기 전에도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을 보아서 가르치는 것 보다 낯선 여자를 대한 다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표현하는 듯하다.선형의 눈썹과 입 언저리는 그 모친과 추호불차하니, 이 눈썹과 입만 가지고도 족히 미인 노릇을 할 수가 있으리라. 형식은 선형을 자기의 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형식이가 남의 처녀를 대할 때마다 생각하는 버릇이니 형식은 처녀를 대할 때에 누이라고밖에 더 생각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은 가슴속에 이상한 불길이 일어남이니 이는 청년 남녀가 가까이 접할 때에 마치 음전과 양전이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서로 감응하여 불꽃을 날리는 것과 같이 면치 못할 일이며 하늘이 만물을 내실 때에 정한 일이라.형식이 선형을 남의 처녀를 대하듯 누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선형에 대한 호감이 가득 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하늘이 만물을 내실 때에 정한 일이라고 한 것은 형식이 선형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박진사는 남이 웃는 것도 생각지 아니하고 영채를 학교에 보내며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는 『소학』『열녀전』같은 것을 가르치고 열두 살 되던 해 여름에는『시전』도 가르쳤다. 박진사의 위인이 점잖고 인자하고 근엄하고도 쾌활하여 어린 사람들도 무서운 선생으로 아는 동시에 정다운 친구로 알았었다. 그는 세상을 위하여 재산을 바치고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목숨까지라도 바치려하였다. 그러나 그 동네 사람들은 그의 성력을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었다.박진사는 일찍이 교육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하여 힘썼지만 그러한 모습을 보고도 그 동네 사람들이 박진사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배우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지도 않았던 것 같고 또 실제로 배움에 힘쓰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형식은 다시 영채의 얼굴은 보았다. 이제 보니 과연 그때의 모상이 있다. 더욱 그 큼직한 눈이 박진사를 생각게 한다. 영채도 형식의 얼굴을 본다. 얼굴이 이전보다 좀 길어진 듯하고 코 아래 수염도 났으나 전체 모양은 전과 같다 하였다. 마주 보는 두 사람의 흉중에는 십여 년 전 일이 활동사진 모양으로 휙휙 생각이 난다.영채가 형식을 찾아와 서로 만나게 된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과거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받은 느낌은 마치 과거의 연인이 시간이 지난 뒤에 만나 애틋한 감정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눈물에 붉게 된 눈과 두 뺨이 더 애처롭고 아리땁게 보인다. 형식은 얼른 선형을 생각하였다.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그 부모의 귀여워함은 피차에 다름이 없건마는 현재 두 사람의 팔자는 왜 이다지도 다른고. 하나는 부모 갖고 집 있고 재산 있어 편안하게 학교에도 다니고 명년에는 미국까지 간다 하는데 하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집도 없고 어디 의지할 곳이 없이 밤낮을 눈물로 보내는고.형식이 영채와 선형을 비교하는 부분이다. 부족한 것 없이 지내고 있는 선형에 비해 집안이 몰락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영채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영채의 처지가 더욱 더 가련하게 느껴진다."그래서 이 선생께서는 장가도 아니 들으시는 게로구먼"영채는 형식이가 아직 취처 아니 하단 노파의 말을 듣고 놀라 형식을 보았다. 그리고 그 장가 아니 든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이유가 자기에게 무슨 상관이 없는가 하였다. 이전 부친께서 농담 삼아 '너 형식의 아내 되랸' 하던 말을 생각하였다. 그때에 어린 생각에도 형식은 참 좋은 사람이거니 하고 사랑에 와 있던 여러 사람들 중에도 특별히 형식에게 정이 들었었다. 이래 칠팔 년간에 한강에 뜬 버들잎 모양으로 갖은 고락을 다 겪으며 천애지각으로 표류하면서도 일찍 형식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차차 낫살을 먹어갈수록 형식의 얼굴이 더욱 정답게 가슴속에 떠 나오더라. 혼자 어디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형식을 생각하고 울면서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몸이 팔려 기생 노릇 한 지가 이미 육칠 년에 여러 남자의 청구도 많이 받았건마는 아직 한 번도 몸을 허한 적이 없음은 어렸을 적 『소학』『열녀전』을 배운 까닭도 되거니와 마음속에 형식을 잊지 못한 것이 가장 큰 까닭이었다.영채는 형식이 장가를 아직 안 갔다는 소식에 놀라기도 하지만 내심 반가운 눈치인 것 같다. 집안이 몰락한 후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형식을 잊어본 적이 없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형식에 대해 남달리 키워온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기생 노릇을 하면서도 한 번도 몸을 허한 적이 없음의 큰 이유가 형식인 것을 보아도 형식에 대한 영채의 마음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된다."아니! 저편은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려고 하는데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선형씨한테 이 뜻을 말하고 약혼을 파하겠네……그것은 옳은 일이지."선형과 약혼하겠다고 한 형식은 항상 자기를 위하여 주는 영채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때문에 선형과의 약혼은 파하고 영채와 혼인하겠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는 형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형식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의문 하나가 일어난다.대체 자기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선형인가, 영채인가. 영채를 대하면 영채를 사랑하는 것 같고 선형을 대하면 선형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까 남대문에서 차를 탈 때까지는 자기는 오직 선형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듯하더니 지금 또 영채를 보매 선형은 둘째가 되고 영채가 자기의 사랑의 대상인 듯도 하다. 그러다가 또 앞에 앉은 선형을 보매 '이야말로 내 아내, 내 사랑하는 아내'라는 생각도 난다.영채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형을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전에 영채의 아버지가 농담 삼아 한 말이 기도 하지만 영채와는 서로 애틋한 마음이 있어 혼인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선형과 약혼을 하여 영채와는 사랑할 수 없게 된 형식이 이러한 갈등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이 있는 듯이,
배따라기『꽤 자란 밀 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장림의 그 푸른 빛, 만족한 웃음을 띠고 그 벌에 서서 내다보는 농부의 모양은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가 있다. 구름은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양이다, 그 밀 위에 비치었던 구름의 그림자는 그 구름과 함꼐 저편으로 물러가며, 거기는 세계를 아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새로운 녹빛이 퍼져나간다. 바람이 나 조금 부는 때는 그 잘 자란 밀들은 물결같이 누웠다 일어났다, 일록 일청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 봄의 한가함을 찬송하는 솔개들은 놓은 하늘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더욱 더 아름다운 봄에 향그러운 정취를 더한다.』≫≫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구나 라고 느낀 구절이다. 읽는 동안 봄의 아름다움이 머리에 그려졌다. 글을 쓴다는 것이 왜 예술적 활동인지 이해할 수 있던 부분이다.『부처의 사이는 좋았지만 아니 , 오히려 좋으므로 그는 아내에게 샘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시기를 받을 일을 대단히 많이 하였다. 품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는 대단히 천진스럽고 쾌활한 성질로서 아무에게나 말 잘하고 애교를 부렸다.』≫≫소설의 전개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부부로써 사이는 좋은것은 좋지만 의심을 품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부인은 남편이 시기할 만한 일을 조금 덜 하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면 남편에게 의심을 받지 않도록 남들에게 대하는 처신과 남편을 대하는 처신에 차등을 두어야 했다. 남들에게 잘 하지만 남편에게만 하는 뭔가가 있었더라면 남편도 조금 안심하고 시기를 덜 하였을 듯 하다.『젊은이들과 지껄이고 즐기고, 그 웃기 잘하는 입에서는 늘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럴 떄마다 그는 한편 구석에서 눈만 할근거리며 있다가 젊은이들이 돌아간 뒤에는 불문곡직하고 아내에게 덤벼들어, 발길로 차고 때리며, 이전에 사다주었던 것을 모두 걷어 올린다. 싸움을 할 때에는 언제든 곁집에 있는 아우 부처가 말리러 오며, 그렇게 되면 언제든 그는 아우 부처까지 때려 주었다.』≫≫주인공은 도덕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또한 시기 질투가 대단하여 현대의 사람이었다면 더욱 문제행동이 두드러졌을 것이다. 앞에서는 부인을 사람하고 좋아한다고 실컷 말해놓고 어떻게 부인을 폭행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어느 때거든 부인을 때리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고 부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인 것이다. 또 말리러 오는 아우의 부인을 같이 때림으로서 도덕심이나 예의를 모르고 앞 뒤가 없는 사람이다. 요즘 이런 사람은 전형적인 의부증 환자로 치부될 것이며 필시 부인과 격리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좋은 , 옳은 사랑이 아니다.『오월 초승부터 영유 고을 출입이 잦던 그의 아우는 오월 그믐께부터는 고을서 며칠씩 묵어오는 일이 많았다. 함께 고을에 첩을 얻어두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이 있은 뒤는 아내는 그의 아우가 고을 들어가는 것을 벌레보다도 싫어하고, 며칠 묵어서 오는 떄면 곧 아우의 집으로 가서 그와 담판을 하며 심지어 동서 되는 아우의 처에까지 못 가게 하지 않는다고 싸우는 일이 있었다. 이때도 전과 같이 그의 아내는 그의 아우며 계수와 싸우다 못하여, 마침내 그에게까지 와서 아우가 그런 못된 데를 다니는 것을 그냥 둔다고, 해보자 한다. 그 꼴을 곱게 보지 않았던 그는 첫마디로 고함을 쳤다.』≫≫이러한 부인의 행동은 주인공의 의심에 불을 붓인 격이다. 부인은 이러한 처사를 해서는 안됐다. 부인 입장에서는 나름 모두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아우의 처신을 똑바로 잡아주려는 애정에서 나왔을는지 몰라도 남편이 보기에는 전혀 아닌 것이다. 지나친 참견이며 아우의 행동을 저렇게 까지나 하는 데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계기였으리라.『방 가운데는 떡상이 있고,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어져서 목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가지고 한편 모퉁이에 서 있고, 아내도 머리채가 무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로 늘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그의 아내와 아우는 그를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움쭉도 안 하고 서 있었다.』≫≫소설의 절정부로 이러한 상황은 누가 보아도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쥐가 나와 놀란 나머지 허둥거리며 움직여 몸의 매무새가 허트러진 그 순간에 남편이 들어와 버렸다. 아내와 아우도 이것이 필시 오해할 만한 상황이란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조금만 아내와 아우에게 믿음을 가졌다면 후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듯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타이밍의 순간은 기가 막힌 법이다.『말을 끝낸 그의 눈에는 저녁 해에 반사하여 몇 방울의 눈물이 반짝인다.』≫≫과거를 털어 논 주인공은 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물은 과거의 회한이 담긴 후회의 눈물일 것이다. 그는 과거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지만 이미 늦었음과 되돌릴 수 없음을 안다. 그 이후로 과거의 그와 과거를 털어논 지금의 그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달라졌다 하여도 이미 아내와 동생을 잃고 떠도는 뱃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배따라기는 더욱 슬프고 애잔할 수 밖에 없다.총평초기의 시적인 아름다운 표현으로 봄을 표현하여 소나기 같은 풋풋한 소설이거나 아름다운 소설이겠거니 예상하였다. 그러나 소설의 앞부분과는 상반되게도 인간의 오해 속에서 일어난 순간의 행동으로 인하여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운명까지 모두 바뀌는 비극적인 소설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지나친 의부증을 가지게 되어 아내를 오히려 괴롭히게 되고 죽음에 이르게 하며 아우와 본인까지도 기존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얼마나 처량하고도 안타까운 운명인가 너무 안쓰러웠다. 순간의 행동으로 인해 평생을 속죄하고 뉘우치며 동생을 찾아다니는 주인공의 삶이 너무나 안쓰럽고 그의 한 맺힌 배따라기의 노래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부인을 사랑하는 것만큼 부인을 믿었더라면 이러한 사태는 나지 않을 텐데 그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적이며 부인을 믿지 못했다. 또한 그가 조금이라도 더 도덕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었다면 섣부르게 아내와 동생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에는 주인공의 관점으로 그려지고 있어 부인의 심리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다. 하지만 분명 부인은 그저 주변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 많은 사람이며 남녀를 구분안고 잘 지내는 귀염성있는 사람이었을 뿐일 것이다. 그녀의 잘못이라면 그저 너무 친절하고 남편이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데도 이를 고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좋은 부인인데 남편은 툭하면 다른 놈들과 희희낙락거렸다고 매질을 하지 않나 욕을하며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하는 것이다. 소설은 여성의 권위가 낮았던 때이므로 이런 행동이 아무렇지 않게 수용되었을지 모르나 만약 이것이 현대에서 일어났다면 이것은 가정폭력에 의부증이 심해 부인을 괴롭히는 것으로 요즘의 여성이라면 자살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혼을 택하였을 것이다. 부인은 남편과 살며 애정과 상관없이 억울한 것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함께 살며 이러한 억울함들이 쌓이고 쌓여 남편이 자신과 동생을 의심하게 되자 충동적으로 자살을 택한 것 같다. 내가 아직 결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결혼이라는 규약을 씌우고 행복하게 살으려면 애정도 있어야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도 중요한 것 같다. 믿음 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며 금새 깨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결혼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더 넓혀서 인간관계에도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파멸은 부인에 대한 의부증을 제외하고도 평생을 같이 자라고 같은 부모를 둔 동생까지도 믿지 못했기 떄문에 일어난 비극의 사건이다. 행동은 한 순간이지만 후회는 평생이라는 말을 이 글의 주인공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현대에도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해 여러 트러블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또한 타인을 쉽게 믿지 못해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스스로 피곤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한 타인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게 될 시에는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그가 내게 보였던 믿음까지도 깨진 경우가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나 또한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그렇지 않을 경우 생기는 비극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현대에도 이러한 비슷한 상황으로 가정에 불화가 많이 생기며 많은 이혼률에 일조하고 있고 흔히 드라마에서도 등장할 만큼 부부사이의 믿음은 바닥을 치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믿어 살아 배따라기의 주인공 같은 비극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김동인 [배따라기] 분석 및 총평좋은 일기이다.좋은 일기라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 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고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나추 뭉글뭉글 엉기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날씨가 좋은 상황을 맑은 구름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늘을 사람인양 '교만한'이라는 표현과 '서로 손목을 잡자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재미를 더한 것 같다.평양성 내에는, 겨우 툭툭 터진 땅을 헤치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 새기와 돋아나려는 버들의 어음으로 봄이 온 줄 알 뿐 아직 완전히 봄이 안 이르렀지만, 이 모란봉 일대와 대동강을 넘어 보이는 가나안 옥토를 연상시키는 장림에는 마음껏 봄의 정다움이 이르렀다.그러고 또 꽤 자란 밀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장림의 그 푸른 빛. 만족한 웃음을 띠고 그 벌에 서서 내다보는 농부의 모양은,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다.구름은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양이다. 그 밀 위에 비치었던 구름의 그림자는 그 구름과 함께 저편으로 물러가며, 거기는 세계를 아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새로운 녹빛이 퍼져 나간다. 바람이나 조금 부는 때는 그 잘 자란 밀들을 물결같이 누웠다 일어났다 일록일청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 봄의 한가함을 찬송하는 솔개들은, 높은 하늘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더욱더 아름다운 봄에 향기로운 정취를 더한다.봄의 모습을 시각적인 묘사를 통하여 잘 표현한 것 같다고 느꼈다. 밀들이 물결같이 춤을 춘다고 표현한 부분도 눈에 보일 듯해 재밌는 것 같고, 봄의 한가함을 찬송하는 솔개들이 높은 하늘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도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면서 봄의 향기로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불덩이 같은 커다란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에 도로 빠질 듯 도로 솟아오를 듯 춤을 추며, 거기서 때때로 보이지 않는 배에서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오는 것을 들을 때엔 눈물 많은 나는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이로 보아서 어떤 원의 아내가 자기의 모든 영화를 낡은 신 같이 내어 던지고 뱃사람과 정처 없는 물길을 떠났다 함도 믿지 못할 말이랄 수가 없다.영유에서 돌아온 뒤에서도 '나'는 '그'의 배따라기를 잊지 못하며 슬픔이 가시질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의 모습과 배따라기의 구슬픈 소리가 동시에 연상되면서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 배따라기가 더욱 슬프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그럴 때마다 그는 한편 구석에서 눈만 힐근거리며 있다가 젊은이들이 돌아간 뒤에는 불문곡직하고 아내에게 덤벼들어 발길로 차고 때리며, 이전에 사다 주었던 것은 모두 걷어올린다. 싸움을 할 때에는 언제든 곁집 아우 부처가 말리러 오며, 그렇게 되면 언제든 그는 아우 부처까지 때려 주었다.아내가 젊은이들에게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것이 나쁜 품행이 아니라 쾌활한 성격이기에 그러한 것인데 '그'는 이럴 때 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아내를 발길로 차고 때리는 모습에서 '그'의 성격에 결함이 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가 너무 무식하다고 느껴졌다.거울을 사가지고 장을 본 뒤에 그는 이 거울을 아내에게 주면 그 기뻐할 모양을 생각하며, 새빨간 저녁 햇빛을 받는 넘치는 듯한 바다를 안고, 자기 집으로, 늘 들러 오던 탁주집에도 안 들러서 돌아왔다.거울까지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기뻐할 아내를 생각하며 늘 들러 오던 탁주집에도 안 들러서 돌아왔다는 데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그러나 그가 그의 집 방 안에 들어설 때에는 뜻도 안 하였던 광경이 그의 눈에 벌리어 있었다.방 가운데는 떡상이 있고,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어져서 목 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가지고 한편 모퉁이에 서 있고, 아내도 머리채가 모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 늘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그의 아내와 아우는 그를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움쩍도 안 하고 서 있었다.평소에도 아내의 모습에도 불같이 화를 잘 내던 '그'는 이 광경을 보고서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그 누가 이 상황을 본다고 해도 오해를 할 것이다. 조금 억지스러운 점이 있고, 이 모습은 갈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인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느낀 점은 후에 '그'가 할 행동에 대해 상상이 되면서 점점 비극으로 치 닫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였다.분노는 실컷 하였지만, 그래도 마음속이 자못 편치 못하였다. 그는 아랫목으로 가서 바람벽을 의지하고 실신한 사람같이 우두커니 서서 떡상만 들여다보고 있었다.아우와 아내를 내치고 나서 '그'의 모습인데 아우와 아내를 내치고 나니 또 마음이 편치 않는 모양인 것이다. 항상 그러하듯 '그'는 이 부분에서도 자신의 화를 실컷 풀고 난 뒤 내친 아우와 아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가 겨우 정신을 차린 때는 밤이었다. 그리고 어느 덧 그는 뭍 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를 말리느라고 새빨갛게 피워 놓은 불빛으로 자기를 간호하는 아우를 보았다.그는 이상히도 놀라지도 않고 천연하게 물었다."너, 어떻게 여기 완?"아우는 잠자코 한참 있다가 겨우 대답하였다."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따뜻한 불기운에 깜빡 잠이 들려다가 그는 화닥닥 깨면서 또 말했다."십 년 동안에 되게 파랬구나.""형님, 나두 변했거니와 형님두 몹시 늙으셨쉐다."이말을 꿈결같이 들으면서 그는 또 혼혼히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두어 시간, 꿀보다도 단 잠을 잔 뒤에 깨어 보니, 아까같이 새빨간 불은 피어 있지만 아우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아우가 온 것을 보고도 이상하게 놀라지도 않은 '그'는 직감적으로 아우를 만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우를 보고도 놀라지 않은 그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우를 찾다가 몹시 부는 바람에 배가 파선을 하게 된 것도 운명이라서 아우를 만나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아우가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라고 말한 것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극적인 삶을 사는 것이 다 운명이니까 자신이 사라져도 찾지 말라는 의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