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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미술교재 연구
    미술 교과서 연구.p/4-51. 마음은 또 하나의 눈미술은 예술적 기술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류가 출현하고부터 인간의 본능에 의해서 표현되어 왔다. 인간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이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다.*해돋이: 예술의 태초를 표현하였다.*창살: 예술의 창, 마음의 창을 의미하고 있다.*달: 인간이 창조한 것은 자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개기일식: 예술이 시대에 따라 변화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6-72. 자연과 더불어*우리나라: 예술은 조형예술이나 시각예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기술에도 영향을 받아 다양해지고 발전해 나간다.*하늘: 재료는 수채화이며 같은 주제인 자연이라 해도 느끼고 표현하는 감상자에 따라 그림은 달라진다.p/8-93. 관찰과 도구 활용하기*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들을 통해서 감정을 이입해 개인의 감성대로 다양한 재료를 선택해서 표현해보자.*귤, 과반: 주제가 같은 귤이지만 재료와 생각에 따라 형태는 변화하고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게 된다.4.생활양식에 담긴 미술인간은 살아오게 된 배경*환경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동굴주택: 예를 들면 주거의 환경만 봐도 잘 나타나 있다. 건축물에서 그 나라, 문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예술적인 요소에 반영이 된다.p/12-135. 전통미를 찾아서현대에는 전통미를 가미한 예술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옛것과 오늘날의 것을 더한 예술 작품을 만듬으로써 전통을 이어나간다.*무제: 기존의 앞치마에 우리 전통무늬인 창살무늬를 넣음으로써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p/14-156. 도시속의 미술도시의 삭막함을 공공미술을 통해 없애기 위해 (완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설치미술과 녹지가 개발되어 가고 있다.*서울의 녹지 남산 , 삼미신P/16-177. 자유롭고 다채롭게인간은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감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남다른 발상이 나옴으로써 자신에게 의미있었던 것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다양하게 표현해보자.*음료수병 디자인: 개성적인 상표를 만들고 그에 걸맞는 디자인을 만듬으로써 작품의 설득력을 높였다.P/18-198.발견에서 발상으로*파란 베레모를 쓴여인: 발상이 어렵다면 전시대의 작가의 작품을 패러디하여 표현하여보자.피카소의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다시점으로 표현한 작품이고, 우는 여인을 패러디 하였다.P/20-219.즐거운 연상미술의 창작은 상상에 기초, 기반을 두고 만들어 진다. 이를 보고 연상한 작품을 만들어 보자.*가로수: 나무가 가로수 처럼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나무에는 구름의 형상을 한 그림들이 그려 넣어져 있다.P/22-2310. 표현의 확장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의 특성이나 특징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사물의 특성을 찾아내어 표현하여 보자.*별이 떴어요: 낮에 주로 이용되는 지하철을 이것을 색다르게 밤에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디자인 하였다.P/24-2511.기술을 익혀보자정적인 평면적인 회화 미술 말고도 조각이나 설치미술을 해 봄으로써 새로운 정서를 느껴보자*풍뎅이: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직접 관찰을 해서 표현해보자.p/26-2712. 영상미술일종의 시각예술로써 전달력이 뛰어나 생활속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계단을 내려오는 나부2: 나체의 여성이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을 연속 노출 사진처럼 그렸다.연속되는 운동의 각 위상을 중첩시켜 놓았다. 회화성이 부정되고 조형성을 강조한 작품이다.뒤샹- 다다이즘의 중심인물, 인상주의&야수파&입체파의 영향 골고루 받음p/28-2913.정보를 전달하자직접 손으로 그리는 회화 말고도 현대의 사회의 흐름은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상업적인 미술이 등장하고 있다.*택시, 광고사진: 컴퓨터나 카메라 기존의 이미지 사진들을 합성 또는 재배치 해봄으로써 다른 결과물 창작 활동을 해 볼 수 있다.p/32-3314.이야기를 보여주자좋은그림은 그림만 잘 그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림안에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p/36-3715.쓰기좋은 생활용품제일 가까이에서 흔히 볼수 있는 생활용품을 쓰기 좋게 다시 만들어보자.*전화기, 달걀받침: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좋고, 벗어나도 좋고, 기능&형태를 연구해 본 다음에 적용시켜서 만들어본 작품들이다.p/40-4116.주변을 아름답게인간은 미를 추구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공간등에서도 알 수 있다.주변을 꾸밈으로써 미술을 생활속에 적용시켜 보자.*정원: 사람들이 편히 쉴수 있도록 쉬면서 눈이 즐겁도록 생활 속 예술을 접할 수 있게 곳곳에 조형예술품을 설치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p/42-4317.생동하는 글과 그림글씨에서도 미를 찾을 수 가 있다. 글도 그림의 형상 중 하나임을 명심 하자.*안내판, 조약돌, 알파벳: 타이포그래피도 미술의 한 표현 양식이다. 다양한 재료로 표현을 해 독특한 font가 되었다.p/46-18. 미술표현은 변화해 왔어미술 표현은 역사를 미적으로 기술하는 활동이므로 각 시대별 미술품마다 시대적 (미적,문화,배경)등이 담겨있다.우리나라와 다른나라 미술표현의 흐름출토된 미술작품(유물)들을 살펴보면 의식주에 치우쳐서 만든 작품들이 다수 이다.유물을 보면 그 당시의 미적인 가치관(대상)을 파악 할 수 있다.*빌렌도르프의 비너스: 현대의 미의 표본인 밀로의 비너스와는 달리 이시기의 비너스는 다산이 중요시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특성들이 부각되어 나타나고 있다.이 작품을 보면 시대상에 따라 미의 인식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청동기~철기시대각 시기에 발달된 무기나 생활용품에 따라 미술작품도 같이 발전,변모 되어 간다.-잔무늬 거울: 청동으로 만든 무기와 도구로 무늬를 넣어 생활용품을 만들었다.*고대 왕국과 도시 국가통치자의 권위, 종교의 신성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표현 양식이 나타났다.- 아부심벨 신전: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각 왕이나 권력의 위치 마다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삼국시대비단 이집트나 다른 서양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종교,권력,왕 중심)이 시기때 벽화도 많이 발견되었고, 불교미술, 불상들도 많이 나타났다.-백호도, 석가 좌상*크리스트교와 불교 미술우리나라 불교와는 또 다른 불교의 형태를 가진 나라들도 많았다.나라마다 모시는 불상의 모습도 다양했다.-보살좌상*통일 신라 시대다양한 표현양식에서 우리는 깊은 신앙심은 미술품이 그 시대의 정서와 미의식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중세의 시작, 이슬람교와 힌두교 미술종교나 미술품은 나아가 건축물에도 영향을 주었다.*고려시대중국 송나라와의 교역의 영향으로 다양한 기술과 조형미가 나타나게 되었다.*예배당과 도상의 시대중세에는 당대 미술양식을 따른 건축물들이 많이 등장한다.예를 들면 스테인드글라스, 덩굴식물,기하학적인 도형등을 넣은 건축물도 많이 보인다.*조선시대(전기)중국의 화풍이 많이 유입되던 시기이다.꼼꼼하고 섬세한 표현 기법이 나타났다.수묵을 위주로 운치를 중시하는 화풍이 유행했다.*르네상스 시대신 중심이었던 미술이 인간중심으로 바뀌면서 미술사조가 크게 바뀌었다.이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화가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라파엘로 가 있다.-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인 작품 中 하나로써 원근법, 스푸마토기법을 표현해 작품의 공간의 깊이를 더 해 주었다.*조선시대 후기새로운 학문, 경제적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생활도 점차 나아졌고, 이 시기의 화가들의 움직임도 이에 따라 활발해졌고,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다.풍속화, 실경산수화 같은 새로운 화풍도 생겨났다.*바로크와 로코코, 인도의 이슬람 미술화려함의 극치인 바로크 예술양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건축, 표현양식도 변화 하였다.-최후의 심판: 이시기의 특징인 역동성, 화면 대비(콘트라스트), 화면 구성이 나타난다.*신고전, 낭만, 자연, 사실주의짧은 시기에 걸쳐 주의(ism)들이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 양식을 따랐던 신고전 주의 감성을 중시한 낭만주의, 현실과 사실을 표현하려는 자연, 사실 주의가 나타났다.이 시기의 화가들은 부르주아들의 주문대로 그리지 않고 그림을 자기 방식대로(의도) 그리기 시작했다.-오달리스크*조선시대 말기일본 및 서양 강국들의 개방요구와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문화적으로 정체기를 맞는다.-옥란작약도: 극히 제한되던 색의 사용이 다양해지면서 다채로워졌다.*인상주의와 그영향사물의 빛을 발견하게 되면서 (때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작품의 표현도 다양해졌다.-해돋이 인상(모네)파리 항구의 한 호텔의 창가에서 바라본 햇빛의 인상을 그린 것으로 근대미술사를 여는 ‘인상파’의 기원이된다. 모네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회화는 반드시 바로 그 현장에서 마무리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순간적인 모습을 놓지치 않으려면 붓터치가 빨라야 했으며 때문에 작품의 붓결은 거칠 수 밖에 없었다.*대한제국, 일제 감정기일제의 침탈에 의해 우리나라의 미술도 많이 위축되어 있던 시기였다.그런 가운데 고희동 등.. 서화협회를 결성하고 전시회를 열며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입체주의와 야수파, 표현주의 , 미래주의, 다다이즘평면회화의 한계성을 느낀 피카소의 입체주의 파들은 대상을 다시점에서 보기 시작했고,이를 그리기 시작했다.반면에 강렬한 색면으로 감정을 드러내려 했던 야수파 대표적인 화가로는 뭉크가 있는데 당시의 불안감을 거친 붓질&어두운 색으로 표현했다.다다이즘에는 기성품을 제시하는 뒤샹이 선두자로 있다.*근대서양의 추상 양식과 근대조소 표현기법을 수용한 것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전통 회화등 표현방식이 이전에 비해 다채로워 졌다.
    교육학| 2010.10.22| 7페이지| 1,000원| 조회(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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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재아동미술
    ※미술 영재아를 판별하는 특징 ① 시각과 관련된 것에는 무엇이든 강한 흥미를 나타낸다. ② 본 것에 대해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기억한다. ③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④ 예술작품에 열중하고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얻는다. ⑤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기술적으로 진보된 발전을 보인다. ⑥ 예술매체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대안적이거나 혁신적으로 사용하고 대안적이거나 혁신적으로 사용하여 실험을 한다. ⑦ 그림에 중요한 요소를 사용하고 배치하는 것을 미리미리 계획한다. ⑧ 그림을 그릴 때 상당한 세부사항이나 정교하게 채워 넣는다. ⑨ 구상(균형, 조화, 공간의 활용), 도안, 색의 사용이 놀랄만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다. ⑩ 독창적이고 개성이 강한 예술작품을 제작한다.
    교육학| 2010.06.03| 21페이지| 2,000원| 조회(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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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상의 모든것 평가A좋아요
    삼국시대 불상에 대하여 ...우선 삼국시대 불상에 알아보기전에 불상에 대하여 알아보자.1. 불상이란 무엇인가?우리가 보통 불상이라고 하면 부처의 형상을 회화, 조각 등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을 말하거나 법당에 모셔두고 신자들이 예배하는 상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보자면 불이란 여래, 즉 부처를 가리키는 것으로 불상이라 하면 여래의 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교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여러 정토세계와 서방세계에 걸쳐 있는 모두 부처를 가리키면서 넓은 의미에서 보살상. 신장상 등도 포함하여 불상이라고 한다.불상들은 나름대로 각기 다른 교리적 배경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불격(佛格)이라 한다. 불격은 각 상마다 모두 있게 마련이고 또 그 격을 달리한다. 이 격은 크게 불상(佛像), 보살상(菩薩像), 조사상(祖師像), 신장상(神將像)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불상(佛像)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최고의 경지인 깨달은 이(覺者)를 상징하는 것이다. 보살상은 깨달음은 얻었지만 아직 중생제도를 위해 부처가 되기를 잠시 보류하고 있는 이를 가리킨다.조사상은 부처님의 직제자와 지금까지의 덕이 높은 모든 스님들을 통틀어 일컫는다.신장상은 불법과 불타를 수호하고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호법신으로 인왕, 사천왕, 팔부중 등이 유명한데, 이들은 원래 인도의 토착신으로 훗날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2. 불상의 기원석가모니의 입멸 후 약 500년간은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으나 서기 1세기경 인도의 큐산왕조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불상이 조성되기 이전을 무불상 시대라 하는데 이 시대의 예배대상은 열반의 상징인 탑, 해탈을 의미하는 보리수, 석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연화가 불상을 대신하였다.3. 불상의 출현인도에서 처음으로 불상이 발생하게 된 것은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 즉 불멸 5백여 년 전후의 일이다. 이때에 이르러 불상이 출현하게 된 데에는 내외적인 요인이 있다. 우선 내적인 요인이란 교존인 석존에 대한 종교적 귀의 감정을 말한다. 석존 재세시에는 석존이 때때로 예배의 대상이 을 볼 수 없게 되자 코삼비국의 국왕이던 우전왕과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은 병까지 얻게 되어 마침내 우전왕은 전단나물로, 파사익왕은 자마금(紫磨金)(자마금(紫磨金: 紫자주빛 자, 磨갈다마, 金쇠금(금속광물을 통칭))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게 되었다.4. 불상의 의미와 종류불상(佛像)은 Buddha(佛陀)의 약칭이며 如來라고도 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覺者). 진리에 도달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불(佛)은 곧 석가모니를 가리킨다.불상의 종류에는 불격(佛格)에 따라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대일여래, 탄생불, 미륵불, 1,000불이나 3,000천불 등의 시간불로 나눌 수 있다.이제 삼국시대의 불상에 대하여 알아보자.삼국의 불상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전진으로 부터 불상과 불경을 같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최초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당시의 중국불상 양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불상은 중국의 불상과 같은 양식이었을 것이다. 백제의 경우는 고구려보다 10년 늦은 침류왕 2년에 한산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이 절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해방 후 뚝섬에서 발견되었다.이 불상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 불상은 높이가 5cm에 불과하지만 방형대좌 위에 앉아 있는 형상이며 이 방형대좌에는 좌우에 사자가 한마리씩이 조각되어 있다. 두 어깨를 덮은 법의는 전신을 가리고 옷주름까지 있다. 이러한 양식은 중국의 4세기 경에 북방을 중심으로 하여 유행한 금동상인데 그 하나가 백제로 전해진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그 후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여래좌상이 있는데 역시 앞의 불상과 같은 계통으로 보고 있다.1) 삼국시대삼국시대의 불상은 대체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연가 7년명 금동불입상(539년 또는 599년 추정)은 중국 북조(北朝)의 북위양식을 보여주면서도 예리하고 투박한 조각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불 상 이 름지정 번호고구려연가7년명 금동 여래입상금동 미륵반가상금동 미륵보살반가상신묘명 금동 3존상국보 119호국보 118호국립박물관 소장국보 85호백 제군수리 금동 보살입상군수리 석조 여래입상금동 여래입상서상 마애 3존불상태안 마애 3존불상금동 보살입상금동 관음보살입상금동 석가여래입상익산 연동리 석불좌상동조 미륵보살반가상보물 330호보물 329호부여박물관 소장국보 84호보물 432호국보 128호보물 195호보물 196호보물 45호국보 83호신 라금동 미륵보살반가상방형대좌 금동 미륵보살반가상동조 석가여래입상금동 관음보살 입상분황사 석탑 인왕상금동 탄생불국보 78호보물 331호국립박물관 소장국보 127호국보 30호국립박물관 소장?금동보살입상종목 : 보물 제333호분류 :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보살상수량 : 1구지정일 : 1963.01.21소재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시대 : 삼국시대소유자 : 국립중앙박물관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삼국시대 보살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높이 15.1㎝의 조그만 작품이다.머리에는 특이한 형태의 관(冠)을 쓰고 있으며, 몸에 비해 다소 긴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당당하고 강직해 보이며, 온몸을 감싸고 있는 옷 때문에 신체의 윤곽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옷은 좌우대칭을 이루면서 X자로 교차되며 날리듯 표현되어 힘이 넘친다.손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유행하던 모습인데 몸에 비해 매우 크게 표현되었다.왼손은 아래로 내려 새끼 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을 구부렸고, 오른손은 위를 향해 손가락을 모두 펴고 있는 모습이다.두 발 아래에는 역삼각형 모양의 둥근 대좌(臺座)가 있는데, 여기에 긴 촉이 붙어 있어 아래 대좌에 꽂을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아래 대좌는 없어졌다.대좌와 광배가 없어졌지만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불상으로, 손모양, X자로 교차된 옷자락 등이 삼국시대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1. 고구려의 불상372년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 인동초무늬를 새겼다.머리광배와 몸광배의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그 사이에는 작은 부처를 조각하였다.광배의 아래쪽 끝부분에 새겨진 두 협시보살은 큼직한 얼굴에 원통형의 빈약한 체구를 지니고 있다.가슴에는 X자형의 옷자락이 새겨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본존불에 비해 솜씨가 서툴러 보인다.광배 뒷면에는 다섯 사람이 모여 그들의 스승과 부모를 위해 이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글에 나타난 사람 이름이나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고구려 불상으로 보이며, 글에 나타난 ‘신묘(辛卯)’는 고구려 평원왕 13년(571)년으로 추정된다.전체적인 불상 형태는 큼직한 얼굴과 손, 원통형의 체구 등에서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강인한 기품이 줄어들고 유연하면서 세련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종목 : 국보 제119호분류 :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불상수량 : 1구지정일 : 1964.03.30소재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시대 : 삼국시대소유자 : 국립중앙박물관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고구려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옛 신라 지역인 경상남도 의령 지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광배(光背) 뒷면에 남아있는 글에 따르면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하였는데, 그 때 만들어진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이라고 하며 전체 높이는 16.2㎝이다.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머리는 삼국시대 불상으로는 유례가 드물고,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다.얼굴은 비교적 작은데, 살이 빠져 길쭉한 가운데 미소를 풍기고 있다.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허리 부분에서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게 하여 아래로 내리고 있다. 왼손의 세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유난히 두꺼운 옷에 싸인 신체는 굴곡의 표현이 없지만, 전종목 : 국보 제84호분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수량 : 1좌지정일 : 1962.12.20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시대 : 백제관리자 : 서산시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왔다.
    인문/어학| 2009.11.08| 14페이지| 2,000원| 조회(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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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영화에 관해서...(독일 표현주의 영화)독일영화는 특히 M.라인하르트에 의해서 질적으로 향상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점적인 우파(UFA)영화사가 설립됨으로써 제작 편수도 크게 증가되었다. 그 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로 대표되는 표현주의 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으며, 그 후 《아침부터 밤까지》(20) 《지크프리트》(24) 등의 걸작을 계속 내놓아 독일영화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 토키 시대가 되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선 음악영화가 많이 제작되면서 뛰어난 작품들이 속출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나치스시대에는 기록영화이외에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여전히 독일영화의 옛 황금시대가 부활될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1895년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한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는 단순히 움직이는 것을 찍어놓은 기록에 불과했다. 조르주 멜리에스 이후 영화는 단순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대중에게 쾌락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게 된다. 뤼미에르 형제와 비슷한 시기,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키네토그래프와 키네토스코프를 만들었다. 이것은 엄청난 크기 때문에 '블랙 마리아'라는 별명이 붙었고, 기계 자체의 개인적 성향탓에 널리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 후 에디슨은 뤼미에르 형제식의 영사 시스템을 개발하였고, 뤼미에르 형제와는 다른 오락적인 영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영화는 미국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D.W. 그리피스의 으로 이어지며 어느 나라보다 오락적이고 스펙타클한 면모를 띄게 된다.1914년에서 1918년까지 진행된 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유럽의 영화들이 진통을 겪을 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의 영화는 급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 당시 미국의 영화는 다분히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등장이다. 이 때 독일의 영화는 세계대전 당시 전체적으로 한 편의 독특한 그림을 연상시키듯이 상호작용한다.또한 연극을 영상물로 옮길 때처럼 단순히 3자적 시각을 견지하던 카메라도 인물의 심리와 관점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각은 인물의 불안한 심리와 회의적인 마음을 표현해내는 새로운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기울어진 카메라 각도는 신체와 사물의 형태 그리고 무대를 왜곡시켰다. 세팅은 기괴하고 부조화로 가득 차 거의 괴기적 분위기를 창출한다. 조명도 극적인 그림자를 강조하는 대조가 강한 것을 사용하였고 매우 양식화한 것이었다. 다루는 주제 또한 초현실적이거나 괴기적이며 부자연스러운 행위나 그러한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등장인물의 주관적이고 때로는 광적인 세계를 스크린 위에 투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의 시작이라고 하면 1919년 로베르토 비네가 감독한 을 꼽는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지금 우리가 제시하는 표현주의 영화의 표본이다. 연극적인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표현주의 연극에서 옮겨온 영향도 있고, 시대적인 한계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표현주의 영화라는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이 영화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영화속으로 그대로 옮겨온 내용이다. 칼리가리 박사는 몽유병 환자들을 통해 얻어내는 연구의 과정은 프로이트의 그것에 비교되고, 이것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담아내려 노력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연결된다.표현주의에서 제시된 무대양식과 카메라 테크닉, 조명같은 표현방법은 연극적인 한계에 막혀 전진이 없던 영화에 돌파구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면은 나중에 프랑스의 전위 예술 영화나 70년대 빔 벤더스를 중심으로 한 뉴저먼 시네마, 그리고 현대의 필름 누와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미국의 대표적인 청년문화지 월간 Wierd가 수호성인으로 차대했던 마샬 맥루한은 저서 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을 했다. 정보는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의 형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집착한다. 따라서 K가 비록 웃고 있을지라도 악마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대비된 조명을 쓰고 주인공의 웃는 연기조차 과장될 것이다. 자 그럼 생각해 보자. 어떤 장면이 더욱 사실적일까? 아마도 살인마란 본질에 더욱 가까운 표현주의자들의 형식에 손을 더 들어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리얼리즘에 대한 믿음이 표현주의의 시작이요 끝이다.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마치 어두운 조명과 같이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출발한다. 표현주의 영화는 문학의 로스트제너레이션 사조처럼, 1차대전 후의 포연내음 속에 나온 형식이다. 전쟁 뒤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굴욕감과 패배주의로 물들었고 기존 가치관의 붕괴, 탈도덕성, 불확실한 미래는 물가 폭등에 따른 마르크화의 폭락, 무정부에 가까운 사회 폭등 등과 맞물려 최악의 상태를 맞이했다.이렇게 위축된 심리상태와 터질듯한 불안감 속에서 새로운 양식의 영화를 발달시키려는 사회적 카타르시스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의 브레히트와 게오르크 카이저의 희곡들 차가운 추상으로 유명한 칸딘스키, 폴 클레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 경향이 대두됐고, 이런 새로운 양식들은 그대로 영화에 흡수됐다. 이렇게 형성된 표현주의 영화는 아른하임이 지적하듯 조작되는 서술구조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재배열하고 강화시킴으로써 현실세계를 초월하면서 도 얽매이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본격적으로 표현주의 영화가 확립된 시기는 1920년 전후 다.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과 프리츠 랑 감독의 < 마부제 박사>가 만들어진 것이 1919 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의 가 제작된 것이 1922년이었다. 그리고 이들 표현주의 영화 삼총사와 더불어 촬영감독 프리츠 바그너나 빌리 하메이스터, 미술감독 헤르만 바름, 오토 훈테 그리고 배우 에밀 야닝스 등이 활동하며 표현주의 영화의 기본 골격을 마련한다. 그리고 20년대 중반에 이르러 같은 작품들이 제작되어 표현주의는 세계 영화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이후 히틀러의 징고이즘적 통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표현주의 거장들은 30주는 명암이 강조된 조명 효과가 표현주의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무성 영화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표현한, 배우들의 과장된 제스춰 등이 독특하다. 아트 뷔로영화사는 이 영화의 70주년을 기념하여 1990년 작곡가인 라이너 피헤틀베리가 배경 음악을 프리 재즈풍의 현대 음악으로 재녹음을 했다. 훗날 영화 학자인 카느라카우어는 이 영화를 보고, 칼라가리 박사는 곧 등장할 히틀러를 예견했다는 유명한 분석을 했다. 이처럼 당시 바이마르공화국의 실정과 1차대전의 패전으로 집단적 우울증에 걸린 독일 사회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하였고 이는 곧 영화가 시대의 정신 분석이라는 말을 실감케 해준다.※ 아침부터 밤까지2부 7장. 1916년 출판되어, 1917년에 베를린의 독일극단이 라인하르트 연출로 초연하였다. 주인공은 소심한 은행 출납계로 평온한 가정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소시민인데, 어느 날 우연한 일로 유혹에 끌려 큰 돈을 횡령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자살하고 만다. 이것은 화폐경제의 비인간성을 통렬하게 풍자하여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의 내면적 위기를 그린 사회극이다. 인물은 개인 이름을 갖지 않고 어떤 타입으로 등장하고, 심리적 요인을 배제하여 간결한 대사를 써서 마치 악몽과 같은 현대생활을 그린 독일표현주의 희곡의 대표작이다. 1920년에는 카를 하인츠 마틴 감독, 에른스트 도이체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표현파 영화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졌다.※노스페라투감독: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줄거리-부동산 중개소에서 일하는 조나단 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노스페라투 드라큐라 백작에 다녀올 것을 요청받는다. 정확한 체류일자를 알 수 없는 긴 여정일 뿐아니라, 아직까지도 귀신을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펜실베니아 마을의 드라큐라 성.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악몽과 불안에 시달린 아내 루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나단은 드라큐라 백작의 성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만나는 이들은 모두가 가지말 것을 권하고 여인숙 주인의 아내가 그에게 준 책에는 드라큐라 백작에 대한 온카메라 촬영은 상당히 유명하다.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어떤 편집 개념을 보여주는데, 당시 초기 영화 시대엔 편집에 대한 큰 비중이 없던 때라 편집 감각이 매우 특이했다. 특히 무성 영화라 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막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상황 묘사를 정교한 연출 촬영으로, 영상 언어에 의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는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부제 박사감독: 프리츠 랑줄거리-영화는 검사가 더 이상 협조할 수 없음을 전하는 백작부인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때 백작이 비를 맞으며 검사를 찾아온다. 자기가 왜 도박을 해는지, 그럿도 사기 도박을 왜 했는지에 대해 비관하며 찾아온 것이다. 끝내 백작은 정신착란에 이르게 된다. 이에 검사는 백작에게 그와 친분이 있는 정신 분석학자인 마부제 박사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한다. 그로 인해 백작은 어느 외부인과도 단절되어 혼자 자택에서 지내며 마부제 박사의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마부제 박사의 음모이다. 부인은 박사의 집에 감금된 상태이다. 한편 카로자를 검사가 회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사는 감옥에 간수로 변장해 있는 부하를 통해 독약을 전달하게 이르고, 또 다른 부하에게는 검사의 사무실에 폭탁을 설치하도록 한다. 카로자는 죽게 되고, 폭탄을 설치하던 부하는 붙잡히고 만다. 붙잡힌 부하는 카로자가 독살당한 것을 보자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그는 경찰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부제 박사의 총에 죽게 된다. 검사는 손에 들어온 단서조차 놓치게 된다. 박사는 백작부인에게 함께 이 나라를 떠나자고 제의하지만, 부인은 남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이에 박사는 더 이상 남편 이야기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만약 백작의 이름을 입밖에 내놓기만 하면 그것은 백작의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부인이 계속 남편에게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하자 박사는 심령술을 통해 백작이 스스로 자살하게 만들다. 이에 검사는 그 환자를 맡은 마무제 박사를 찾아가지만, 그가 집에 없어 사무실로 돌아오는데었다.
    인문/어학| 2009.11.08| 7페이지| 1,000원| 조회(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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