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2= 배드민턴을 직접 치기 전에 배드민턴의 역사와 유래, 특성을 먼저 공부하고 시작했다. 눈으로 보기만 하던 배드민턴을 직접 쳐보려고 하니, 당장 라켓 잡는 법부터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립 법에 대해 조사를 했다.세계 배드민턴의 역사와 유래배드민턴이란 말은 영국의 지명에서 비롯된 말이다. 배드민턴 경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1820년경 인도의 봄베이 지방에서 성행하였던 푸나(Poona)라는 놀이를 당시 인도에서 주둔하고 있던 영국 육군사관들이 그것을 배워 본국으로 돌아와 경기 화 시키게 된 것이 정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그루스타주의 영국뷔포오드경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의 배드민턴이 된 것이다. 초창기 배드민턴이라는 지명을 따서 경기의 명칭으로 사용함으로서 오늘날의 배드민턴이 된 것이다. 초창기 배드민턴은 귀족계급의 게임으로 대단히 매너가 엄격하여 깃이 높은 셔츠에 저고리를 단정히 입고 실크모자를 쓴 채 품위 있는 차림으로 게임을 행하였다고한다. 이 격조 높은 품위를 현재에도 배드민턴 경기의 정신적 지주를 이루고 있으며 엄격한 매너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그 후 1893년 영국배드민턴협회의 창립과 동시에 규칙이 제정되었고 1899배드민턴대회가 개최되어 덴마크, 스웨덴, 서독 등의 유럽 각국과 캐나다, 미국 등으로 확산 보급되었다. 근래 세계의 배드민턴 강국으로는 영국, 스웨덴, 호주 등과 동양권의 중공, 한국, 인도네시아 등이 있다. 세계적인 경기대회로는 1939년 국제배드민턴연맹의 초대회장 조지토머스경이 기증한 토머스컵(THOMAS CUP)남자대회와 여사가 기증한 컵(UBER CUP)과 세계 배드민턴선수권(WORLD CUP)과 전영선수권대회 등이 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시범종목을 거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 외에도 세계의 각국에서 많은 오픈(OPEN)대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경기가 연중 열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1990년 코리아오픈(KO탁구의 회전에 따른 서브 법에 대해 알아보았다.준비운동- 러닝러닝은 인체의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며 격렬한 움직임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 준다. 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신에 땀이 나기 시작하면 다음단계로 전력 질주한다.- 준비체조러닝이 끝나면 신전과 굴곡운동을 통하여 인체의 전 근육을 잠에서 깨운다. 특히 배드민턴 코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동작 중에 그 빈도가 가장 높은 운동의 인체부위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풀어준다.운동의 효과① 근력 강화순발력을 통해 근력이 강화된다.② 근지구력 강화경기 시 근육이 일정한 시간동안 반복해서 힘이 발휘되므로 지구력, 전신지구력이 증가된다.③ 유연성 강화손목, 발목관절 유연성 강화④ 조정력 강화근육, 골격, 신경계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반사작용이 생긴다.배드민턴 용구- 라켓라켓은 과거에는 나무로 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스틸, 알루미늄, 카본, 티타늄 등 소재가 다양해졌다. 초보자라도 요즘에는 카본 라켓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라켓의 무게는 셔틀의 속도와 매우 관련이 깊은데 라켓이 무거우면 셔틀의 속도를 빨리 할 수 있고 라켓이 가벼우면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팔의 근력이나 손목의 힘이 강한 경우에는 무거운 라켓이 적합하겠지만 근력이 부족한 일반이의 경우는 가벼운 라켓이 적합하다. 점점 실력이 증가하고 체력이 강해질수록 좀 더 무겁고 탄력이 강한 라켓을 사용하도록 하자. 라켓을 선택할 때에는 스윙을 해보면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라켓은 형태,무게,재질 등에 대한 공식적인규정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길이(㎝)가 66, 무게(g)는 85-89, 90-94 정도이며 카본, 그라파이트, 티타늄 등 신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단, 초보자는 무게의 중심이 그립 쪽에 있는 라켓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셔틀콕셔틀콕은 나일론 셔틀, 닭 깃털 셔틀, 오리깃털 셔틀의 3가지 유형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리깃털이 많이 사용한다. 겨울철에는 셔틀콕 깃털이 라켓헤드에 맞을 경우 부러질 확률이 따뜻할 때보다 훨씬 높다. 새의 깃털로드는 치는 순간에 마루 바닥과 수직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셔틀을 수평으로 쳐 보내기 위해서다. 이 타법은 상대방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으로 셔틀을 깊숙하게 쳐 보내기 위해서 주로 사용된다.? 포핸드 언더핸드 클리어(Forehand Underhand Clear)체중을 발 앞쪽으로 이동시키면서, 몸의 앞쪽에서 셔틀을 친다. 셔틀을 상대편으로 높게, 깊이 보내기 위해 코킹되어 있는 팔을 펴면서 친다. 스윙은 위쪽으로 크게 하고, 폴로우 스로우를 한다.? 백핸드 언더핸드 클리어(Back Underhand Clear)체중을 발 앞쪽으로 이동시키면서 팔꿈치가 먼저 나간다. 그리고 몸 앞쪽에서 셔틀을 친다. 셔틀을 상대편으로 높게 깊이 보내기 위하여, 치는 순간에 코킹된 팔을 편다. 스윙은 위쪽으로 크게 하고, 폴로우 스로우를 한다.스매시(smash)높은 위치에서 굉장한 스피드로 상대 코트 면에 대해 예각인 일직선을 그리면서 셔틀이 돌진하는 것 같은 비행. 스매시의 코스는 양 사이드라인(Side Line)과 보디(Body) 등 3가지가 있다. 각각 포어 사이드(Fore Side)와 백사이드(Back Side)가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여섯 가지 패턴이 있다고 한다. 모두 체중을 실은 무거운 볼로 각도 있는 스매시를 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언제나 전력을 다하여 스매시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타이밍을 외워버리기 때문에 약 80% 정도의 힘으로 치는 하프스매시(Half smash)도 적용하면 체력을 아끼면서 게임을 진행시킬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하프스매시(Half smash)는 크로스 방향으로 치면 유리하다.보통 일반적인 스매시는 네트에서 코트 중앙가지의 범위에 날카롭게 꽂히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스매시(Straight Smash)라고 하는 각도가 얕고 볼의 거리가 긴 플라이트도 이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이브 비슷하게 길게 날아오는 스매시는 리시버의 입장에서는 의외로 받아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약간 짧은 찬스볼을 스매시 할 경우에 보디 어택(항상 셔틀로부터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된다.보폭의 크고 작음은 각자의 체격에 따라 다르지만, 항상 자기의 균형을 취할 수 있는 보폭으로 움직여야 한다.3. 풋 워크의 효과좋은 풋 워크를 실시함으로서,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보다 빠르고, 보다 높게, 보다 앞으로 셔틀을 잘 쳐서 상대 편으로 보낼 수 있다. 무리없는 움직임으로 인하여 체력의 소모를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다. 항상 정확한 스트로크를 할 수 있다.4. 풋 워크의 기본 종류배드민턴 경기에서 이루어지는 풋 워크의 형태는 크게 러닝 스텝, 슬라이딩 스텝, 호프 스텝, 그리고 피벗으로 구분되며 실제 경기에서 이런 스텝들은 단독이나 2개 이상 혼용하여 행하여 진다.? 러닝스텝 (Running Step)보통 뛸 때와 같은 방법으로 좌, 우, 좌, 우 교대로 발을 옮기는 방법이다.? 슬라이딩 스텝 (Sliding Step)양 다리를 좌우 또는 전후로 미끄러지듯이 옮긴다. 오른발을 내딛으며, 왼발을 끌어 붙이며, 또는 왼쪽 발을 내딛으며, 오른쪽 발을 끌어 붙인다.? 호프 스텝 (Hop Step)한쪽 발을 연속으로 옮겨 가볍게 뛰는 방법.? 피벗 (Pivot)한쪽 발을 축으로 상체를 좌, 또는 우의 운동 방향으로 회전 시켜 몸의 움직임을 좌우로 바꾸는 방법.5. 풋 워크의 자세? 준비 자세 (Starting Position)- 플레이어는 코트 내에서 적절히 움직이기 이하여 항상 준비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바른 자세는 야구에서의 땅볼에 대기하고 있는 내야수의 자세와 비슷하다.- 신체의 무게의 중심은 발의 앞꿈치에 두며, 양 발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깨 넓이로 한다.- 무릎은 약간 굽히고 힘을 뺀 상태이어야 하며 양 팔은 모두 몸 앞에 위치하도록 한다.- 라켓의 머리 부분(Racket Head)은 어깨 높이 정도로 한다.? 포오핸드 스트로크(Forehand Stroke)의 자세- 포어핸드 스트로크를 하려면, 코트의 준비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여, 셔틀의 방향으로 몸의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오자기의 수비위치로 즉각 돌아와야 한다.2) 앞뒤로 서기(Up And Back)-이 대형은 혼복에서 유리하며,-선수 중의 한 사람은 전면 코트에 서서 그 지역에 떨어지는 드롭을 받아넘기고, 그 위치에서 잡을 수 있는 드라이브를 차단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파트너는 그 나머지 부분의 코트를 책임진다.-앞뒤로 서기의 단점은 수비에 아주 약하다는 것이다.-백 코트에 있는 선수가 코트의 양 쪽 사이드에 오는 셔틀을 받을 때는 전면 코트에 있는 선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3) 혼합 대형 (Combination Of Systems)-우수한 선수들에게는 옆으로 서기와 앞뒤로 서기를 혼합한 이 대형이 유리하다.-이 대형은 옆으로 서기에서 두 선수가 시계 방향으로 돌아 앞뒤로 서기의 대형으로 전환하고, 또 앞뒤로 서기에서 옆으로 서기 대형으로 전환하여 가면서 경기를 하므로, 회전 대형이라고도 한다.? 이 대형에서 수비를 할 때에는, 두 선수가 옆으로 서기를 사용하고, 공격을 할 때는 앞뒤로 서기를 사용한다.? 두 선수는 시계방향,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위치를 바꾼다. 서브를 넣을 때는 앞뒤로 서기를 사용하고, 수비를 하게 될 때(클리어 사용)는, 옆으로 서기로 전환한다.? 공격의 기회가 오기 전에는 옆으로 서기를 계속하다가, 공격의 기회가 주어지면, 앞뒤로 서기를 전환한다.-리시브할 때는 보통 옆으로 서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수비를 할 수밖에 없도록 타구를 보내어, 뜻대로 행해지면, 앞뒤로 서기로 전환하여 공격을 시작한다.? 이 대형은 우수한 선수에게, 그리고 파트너가 서로 동등한 능력을 가졌을 때 아주 유리하며, 대부분의 선수에게, 가장 좋은 대형이다.2008. 4. 30※ 세계배드민턴연맹은 2006년 5월 6일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서브권'이 없어도 득점 할 수 있는 '랠리포인트시스템'으로 배드민턴 경기규정을 변경하였습니다. 따라서 이후 열리는 모든 국내,국제배드민턴대회에서 아래 규정을 적용합니다.- 경기자배드민턴경기는 남녀 단식과 복식 한다.
음악 감상문모차르트(W.A.Mozart) - - 모차르트- 작품의 배경- 작품의 특징- 작품 감상- 모짜르트오페라 '돈 죠반니'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1월 27일 - 1791년 12월 5일)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고전 주의악파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36년간의 짧은 생애를 산 모짜르트는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작곡가였다.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여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하여 아들이 6세 되던 해부터 여행을 계획하여 1762년 7월 바이에른 선거후의 궁정이 있는 뮌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하는 등 많은 일화가 있다.작곡가로서 그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준 것은 서유럽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한 여행(1763∼1766)이었다.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알게 된 J.쇼베르트(1720?∼1767),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J.S.바흐의 막내아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파리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런던에서는 최초의 교향곡(제1번 Eb장조) 등을 작곡했는데, 이 교향곡은 8세 때의 작품이었다.두 번째로 빈을 다녀온 뒤, 1769~1773년에는 3번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는데 그동안 교황에게서 황금박차(拍車)훈장을 받고,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의 입회시험(入會試驗)에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마르티니로부터 음악이론·작곡을 배운 일과 이탈리아의 기악·성악에 직접 접한 일 등은 그후의 교향곡·오페라·교회음악 창작에 풍부한 자극이 되었다. 그는 이때 10대 소년으로 오페라의 작곡 의뢰를 받고 밀라노에서 작곡한 오페라를 상연(1770)하였는데, 제2회(1771)와 제3회(1772∼1773)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곳에서 오페라를 작곡 상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그 후 1777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차차 그 직무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여 1777년 가을부터 1779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다른 궁정에 취직하기 위하여 만하임·파리를 여행하였다.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음악면에서는 만하임악파와 접촉하는 등 수확이 컸고 이때 《파리교향곡》(1778) 외에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또한 만하임에서의 아로이지아 베버와의 사랑, 파리에서의 어머니의 죽음 등 인생의 경험도 많이 하였다.여행에서 돌아온 후 궁정음악가로서의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1780년 말 뮌헨궁정으로부터 의뢰받은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의 상연을 위하여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때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대주교 히에로니무스와의 불화가 표면화하여,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빈에서 살기로 결심, 그의 인생의 후반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빈에서는 처음 작곡·연주(피아노)·교육활동을 하였으며, 오페라 《후궁(後宮)으로부터의 도주》(1782)와 《하프나교향곡》(1782), 피아노협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1782년 8월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그가 빈에 머무는 동안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과는 1785년경에 직접 알게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빈시대의 후반에 접어들자 모차르트의 작품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그 반면 빈의 청중들의 기호로부터는 차차 멀어져, 생활은 어려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빌린 빚도 많아졌다.178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러한 상황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돈 조반니》(1787) 등의 오페라는 이 시기의 걸작들이다. 후자가 초연(初演)된 해 4월 베토벤이 찾아왔고 5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구르크의 뒤를 이어 궁정실내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것은 이름뿐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이듬해에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 이른바 3대교향곡 《제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주피터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뒤에도 모차르트는 몇 차례 여행을 하였다. 1789년의 베를린 여행에서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알현하여 작곡의뢰를 받았다.이듬해 초에는 오페라 부파 《코시 판 투테》를 완성하고, 가을에는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대관식협주곡》 등을 포함한 연주회를 열었으나 빚은 늘어날 뿐이었고 1791년 8월 의뢰받은 오페라 《티투스제(帝)의 인자(仁慈)》의 상연을 위하여 프라하로 여행하였으나 이 때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9월에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魔笛)》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 두고 12월 5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의 성마르크스묘지에 매장되었으나 유해가 묻힌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다.36세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였으나, 어려서부터 창작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성악·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그의 공적은 하이든과 함께 빈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데 있으며, 그를 앞섰던 이른바 전고전파(前古典派)의 여러 양식을 한 몸에 흡수, 하이든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하였다.그가 행한 연주여행은 유럽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음악을 흡수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으며 그의 음악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모차르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그의 음악은 현재까지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모차르트는 다작을 한 작곡가로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600 여곡을 작곡하였고, 작품들은 각 장르에서 수작으로 널리 인정된다. 그의 많은 작품이 그 당시에 있던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피아노 협주곡만큼은 모차르트 혼자서 발전시켜서 대중화했다.- 작품의 배경모짜르트의 최대 걸작 '돈 조반니;는 14세기경 호색가이자 돈 많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돈 환(Don Juan)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이 소재는 최초로 1630년 스페인의 '데이르소 디 몰리나'에 의한 '세빌리아의 조롱자와 두 손님'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재를 가지고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을 쓴 '로렌쪼 다 폰테'가 이 극본과 몇몇 극본을 참조하여 그 다운 절묘한 어법으로 흥미있게 개작한 것이다. 이 작품 이전의 작품에서는 '돈환'의 성격을 여러 가지 면에서 묘사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리 심각한 면을 암시한 면은 없다.1786년에 비인에서 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반면에, 프라그에서는 상상 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모차르트는 프라그의 극장 지배인 본디니로부터 새로운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 받았다. 그리고 그 오페라가 다음에 다 폰테와 합작해서 만든 희가극 인 것이다. 작곡은 1787년 여름부터 그해 9월 음악가 프란츠 데섹의 아내 죠세파의 별장에서 썼고, 서곡은 초연 전날 하룻밤 사이에 작곡되었다.- 작품의 특징《돈 죠반니(Don Giovanni, K. 527)》는 로렌초 다 폰떼의 대본으로 작품의 제목인 '돈죠반니'는 주인공의 이름이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1787년에 작곡한 오페라이다. 그 해 10월 29일 프라하의 에스타테츠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제1막국적과 지위는 물론 나이, 외모, 성격을 불문하고 모든 여자를 유혹하는 천하의 바람둥이 돈 죠반니. 돈나 안나를 유혹하려다 달려온 그녀의 아버지와 결투를 하게 되고, 결국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순진한 시골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려는 순간, 돈 죠반니에게 실연당한 돈나 엘비라가 나타나 돈 죠반니의 만행을 제지한다. 하지만 체를리나의 결혼식 날 연회를 베풀어 주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춤추는 동안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돈 죠반니. 돈나 안나, 돈 오타비오, 돈나 엘비라는 복수를 다짐하며 돈 죠반니의 집으로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중간고사1. 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사막 (Sala de Uyuni)'사막' 하면 떠오르는 뜨거운 열기와 누런색의 모래언덕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사막이다. 고등학교 2학년,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텔레비전 속 영어채널을 살펴보던 중 오른쪽 사진 속의 모습을 담은 기행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걷고 있는 땅이 마치 거울처럼 비춰지고, 하늘과 땅이 붙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현 지구상에 존재하는 곳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당시에는 'salt', 'Bolivia' 등 몇몇 단어들만 알아들어서 우유니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이 곳이 사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부터 스스로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2년 전, 정확한 해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영상으로만 1시간 가량 본 기행 프로그램의 기억을 되살려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보게 되었다.눈처럼 새하얀 우유니 소금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소금평지로 '우유니 소금호수' 라고도 불린다.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의 실질적인 수도인 라파스로부터 남쪽으로 200㎞ 떨어져 있고, 칠레와 국경을 이룬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포토시주(州)에 속하며 우유니 서쪽 끝에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 전라남도(1만 2051㎢)에 맞먹는 넓이인 1만 2000㎢이며, 바다와 멀리 떨어진 해발고도 3,653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온 세상이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이는 우유니 소금사막은 원래는 바다였으나, 약 1억 년 전 지구의 대륙판 이동으로 인해 거대하게 융기한 안데스 산맥은 남미 도처에 화려하고도 신비한 자연환경을 만들어 냈다. 바다가 3000m 이상을 솟아올라 빙하기를 거쳐 약 2만 년 전 녹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산악 지형인 이 곳 호수의 물은 빠져나갈 수 없었고, 또한 비가 적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거대한 호수는 소금사막이 된 것이다.지구가 생성되고 처음에는 바다가 없었다. 바다는 지구 여기저기서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온 지구 속의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면서 만들어졌다. 그 때 지구 표면에 있던 물에 녹기 쉬운 물질들이 바다로 흘러들어 갔다. 육지의 암석이 풍화를 받는 과정에서 생성된 나트륨과 염소가 빗물 등 지표수에 녹아 바다로 운반되었다. 바다 밑의 화산에서도 염소 이온이 공급되었다. 이렇게 육지에서 하천을 따라 이동해 왔거나 바다 밑에서 공급된 두 가지 원소가 바다 속에서 결합하여 비로소 소금이 된 것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의 소금 총량은 최소 100억 톤으로 추산되며, 두께는 1m에서 최대 120m까지 층이 다양하다. 이렇게 이곳에는 아무리 퍼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양의 소금이 매장되어 있다. 소금의 농도는 보통 소금의 5배 정도이다. 소금사막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공업용으로 적당하며, 가공 시 식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우기인 12~3월에는 20~30㎝의 물이 고여 얕은 호수가 만들어지는데, 낮에는 강렬한 햇살과 푸른 하늘, 구름이 마치 거울처럼 투명하게 반사되어 절경을 이루고, 밤이면 하늘의 별이 모두 호수 속에 들어 있는 듯 하늘과 땅이 일체를 이루어 장관을 연출한다. 사막 가운데에는 선인장으로 가득 찬 '어부의 섬(Isla del pescador)' 이 있다. 반면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사막 전체가 메말라 소금이 온 천지를 하얗게 덮고 있다. 여기에서 절단되어 나온 소금의 단면을 보면 세월 따라 겹쳐 쌓인 자국이 나이테 같은 줄무늬로 나타난다. 그리고 잘라낸 자리에 고인 물은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소금 결정으로 된다.소금사막이 광활하게 펼쳐진 사진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그 위에 서 있는 듯 한 착각이 들만큼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소금사막의 형성과정과 여러 모습을 보면서 대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조사를 하는 동안 2년 전, 처음 소금사막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즐거웠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행의 꿈을 다시 한 번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기행문과 서적들을 살펴보니 나도 언젠간 꼭 우유니의 소금을 직접 만지고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사막'을 지켜내어 후세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보고 경험하길 바란다.* 어부의 섬 : 인까와시섬이라고도 부르며 살라드 데 우유니 소금사막에 한 가운데 있는 섬. Fish island라는 뜻. 여기 있는 선인장들은 길게는 1200년이 된 것도 있다.2. 인간-환경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명도미니카부설 초등학교에서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콜럼버스 탐험에 관한 책을 읽어주다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이는 주변 환경의 의미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지만 유럽인들로 인해 바뀌어 버린 지명을 보여준다.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에 떠 있는 섬나라이다. 지역 원주민들은 섬에 화산이 많다고 해서 '모험의 섬'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1493년 11월 3일, 이 섬을 유럽인으로서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는 발견 (산토도밍고 해안가)한 날이 일요일이어서 이 섬을 라틴 어로 '일요일'을 의미하는 도미니카라고 명명했다. 콜럼버스가 명명한 쉬운 이름이 지도상에 실리게 되었고 현재 도미니카라고 불리고 있다.러시아지명 유래 책을 살펴보다 러시아의 지명은 스웨덴계 바이킹을 뜻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다른 유래 설도 존재한다는 것이 흥미로워 찾아보게 되었다.러시아는 극동에서 동부 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로 지명의 기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민족우월 싸움으로 인하여 지명의 여러 유래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국명은 ‘루스족’이라는 말에 라틴어의 지역 접미사 이아(-ia)를 붙인 것이다. ‘루스’라는 것은 모피를 운반하는 ‘뱃사공’이라는 의미로 스웨 (모스크바 시가지)덴계 바이킹을 가리킨다. 그러나 1930년대에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아리아인의 우월’을 주장하고 나서자 그에 반발한 스탈린은 루스족이 러시아 건국의 토대를 쌓아 올렸다는 설을 부정했다. 그 때문인지 ‘루스’의 어원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드네푸르 강의 지류인 러시 강이며, ‘러시 강 유역에 사는 부족’이라는 식의 설도 등장했다.아르헨티나영어독해 책에서 '흥미로운 지명' 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이 지역 환경을 착각하여 지은 지명의 유래가 기억이 나 더 자세히 조사해 보았다아르헨티나는 라틴어로 은이라는 뜻인 아르헨티나 남아메리카 대륙 남동부에 있는 연방제 공화국으로 'Argentum'에서 온 말이다. 정복자들은 볼리비아의 은광이 라 쁠라따 강까지 이어진다고 잘 못 알고 현재의 아르헨티나를 'Rio de la Plata'라고 불다. 볼리비아야 은광이 많았지만, 아르헨티나는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또 사실 라 쁠라따 강은 볼리비아까지 이어지지도 않는다. 정복자들의 착각에서 붙여졌지만, 이미 떼어버리기에는 늦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벨리스크)첸나이세계지리를 공부할 때, 학교 지리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기억이 나서 찾아보게 되었다. 마드라사파트남(여름의 신 만다의 마을)이라는 작은 어촌 마을이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마드라스에서 첸나이로 불리워지기 까지의 과정이다.벵골만에 인접한 남인도 최대의 항만도시 마드라스는 1996년 첸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단순히 영어식 지명을 현지 발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지명이 완전히 변경된 것이다. 이 나라는 1640년에 영국 동인도 회사가 세워지기까지는 마드라사파트남(여름의 신 만다의 마을)이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땅을 인도 지배의 거점으로 삼고자 한 동인도 회사는 주변 지역과의 왕래를 촉진시키기 위해 30년간 면세특전을 부여하고, 북쪽에 센네이라는 지방 영주의 이름에 기초한 타밀인 마을 첸나파트남을 건설했다. 이리하여 영국사람이 지배하는 관청가와 타밀인이 거주하는 상업과 공업 중심의 두 마을이 생겨났는데 첸나파트남에 인구가 더 많아 양쪽이 합쳐진 후에도 지역 사람들은 이 마을을 첸나이라고 불렀다. 즉, 마드라스란 영국이 대외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격식 차린 지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실체가 없는 그러한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시의회는 1996, 첸나이로 일원화시켰다.
2008년 11월 22일, '무역형'을 보기 위해 국립국악원 예악당을 찾아나섰다. 분과활동으로 무용 중 '한국무용'을 하고 있어 '광수무'라는 공연을 보기위해 기다렸다. 벌써 11월이 다 끝나는 시기라 날씨가 굉장히 쌀쌀했다. 한 번 와본 곳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길을 헷갈리지 않고 곧바로 예악당을 찾아올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무역형'을 찾아서 온 것이라 공연이 굉장히 기다려졌다.첫 번째 공연은 관현합주로 '취타'와 '길군악'이 연주되었다. 큰 무대와 큰 무대 앞의 작은 무대가 있는데 이 공연은 큰 무대에서 연주되었다. 첫 번째 공연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연주하셨다. 남자들은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여자들은 녹색 옷을 입고 연주를 하셨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취타'는 축제 분위기처럼 즐겁고 흥겹다는 느낌이 드는 곡이었다. '취타'는 17세기 이후 군대나 궁중에서 행진 등을 할 때 연주하던 행진음악이다. 악기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거문고, 가야금, 장구, 소금 등 익숙한 악기가 많아서 더욱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길군악'은 조선후기에 왕의 행차 등에 사용하던 음악으로 향피리, 대금, 해금, 장구, 좌고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현주하던 곡이다. 행진곡으로 사용되던 곡이라 그런지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종류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피리 소리가 특히 좋았던 곡이었다. 대규모의 관현합주 답게 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유율타악기인 편종과 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유율타악기인 편경이라는 커다란 악기도 함께 연주되었다. 고등학교 음악 이론 시간에 사진으로만 보던 악기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두 번째 공연은 '해금산조'와 '아쟁산조'가 앞의 작은 무대에서 연주되었다. 산조는 장구반주를 곁들이 기악 독주곡으로 다양한 가락과 장단의 예술적인 결합체이다. 아쟁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론으로 배워온 악기라 익숙할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무대 위에서 보니 굉장히 낯설어 보였다. 장구 치시는 분은 흰 옷을 입고 갓을 쓰고 계셨는데 조선시대의 선비 같은 느낌을 주는 단정한 옷이었다. 연주 중간 중간에 '얼쑤'라는 추임새를 넣어 연주가 더욱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공연은 대체적으로 느린 음으로 연주되었는데 점차 구슬픈 느낌이 드는 곡이었다. 계속해서 듣고 있으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음들이 흘러나왔는데 사극영화에서 한두 번쯤 들어 본 적이 있는 연주였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연주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음이 높아지고 빨라질수록 마음이 급박해지고 흥이 고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연주를 하시는 분이 생각보다 굉장히 젊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국악이라 하면 전통악기를 오랫동안 다룬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 연주를 하실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젊은 사람을 보니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국악을 아끼고 있는 듯 해보였다. 그동안 너무 국악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아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공연이었다.세 번째 공연은 기다리던 '광수무'였다. 이번 공연은 큰 무대에서 이루어졌다. '광수무'는 넓은 소매로 추는 춤이라는 뜻의 궁중무용이다. 넓은 소매의 복식을 갖춘 두 명의 남자 무용수가 마주서서 대형을 바꾸어가며 창사 없이 함께 춤을 추는 무용이라고 팸플릿에는 적혀있었지만 직접 본 공연에는 각각 두 명씩 짝지어 빨강, 노랑, 파란 색의 옷을 입은 여자 여섯 분이 춤을 추셨다. 지난번에 보았던 '협종형' 공연 중 '처용무'에서 보았던 남성분들과는 달리 이번 무대에서는 절은 여성분들이 춤을 추셔서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탈을 쓰지 않으셔서 웃고 있는 얼굴 표정을 볼 수 있어 더욱 예쁜 움직임으로 보였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입고 있는 옷 색깔이 화려하여 움직임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특히 손을 하늘로 뻗칠 때 가장 예뻐보였다. 나풀거리는 옷이었으나 동시에 똑같은 동작을 하였을 때 옷이 모두 같은 쪽을 향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분과활동 수업 중에 배운 비슷한 동작이 가끔 보이기도 했지만 생소한 동작이 더욱 많았다. 무대 뒤쪽 편에는 일렬로 빨간 옷을 입을 남성분들이 앉고 가장 왼쪽 편에는 여자 두 분이 초록색의 옷을 입고 연주를 하셨다. 연주되는 음악은 느렸으나 춤은 활동적이며 신나는 동작들이 많았다. 기대했던 만큼 배운 점도 많은 훌륭한 무대였다.네 번째 공연은 가야금병창 단가 '공명가'와 심청가 중 '올라간다'였다. 가야금병창이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음악으로 장구 장단으로 반주한다. '공명가'는 판소리 '적벽가'에서 '삼국지' 중 제갈량이 남병산 제단에서 동남풍이 불기를 기도하는 내용에서부터 공명을 추적해온 오나라 서성과 정봉의 군대를 물리치고 조자룡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는 내용까지의 대목을 말한다. 판소리 심청가 중 '올라간다'는 심봉사가 황성에서 열리는 맹인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가는 내용이다. 이번 공연은 큰 무대 위에서 연주되었는데 무대 장식이 정말 좋았다. 한국미가 물씬 풍기는 한국전통 가옥의 창문에서 볼 수 있는 무늬를 무대 위에 나타내었다. 여자 세분이 밝은 색의 저고리와 붉은 빛의 치마를 입고 가야금연주를 하셨는데 손이 너무 빨라 신기할 정도였다. 남자 한 분은 흰 옷을 입고 갓을 쓰시고 장구를 연주하셨는데 노래 중간 중간에 '얼씨구', '얼쑤', '어이' 등 추임새를 넣으셔서 노래가 더욱 흥이 났다. 여자 세분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도 하셨는데 따라서 흉내도 못 낼만큼 정말 잘 부르셨다. 그러나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런지 노랫말을 알아듣기가 힘든 부분이 꽤 있었다. 노래를 부르시다 갑자기 멈추고서는 말로 줄거리를 얘기하는 장면도 있었다. 중간에 말로 해주셔서 줄거리 이해가 좀 더 자연스럽게 되어 좋았다. 그냥 말하는 것인데도 목소리가 일반인들과는 달리 굵직하면서도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 노랫말이 굉장히 길었는데 3명이 똑같이 말 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다섯 번째 공연은 평시조 '동창이'와 중허리시조 '임그린'이었다. 시조는 시조시를 장구 반주로 노래하는 성악곡으로 조선 후기에 풍류를 좋아하는 이들의 생활 속에서 널리 유행했다. 이번 공연은 작은 무대에서 이루어졌는데 총 6명이 나와 남녀 2명은 노래를 하고 나머지 4명은 연주를 하였다. 수수하면서도 단아한 옷을 입고서는 느린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셨다. 남성분이 소박한 농촌의 삶을 묘사한 내용인 '동창이'를 여성분이 임을 간절히 그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내용인 '임그린'을 부르셨다. '동창이'는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이 보였다. '임그린'을 부르시는 분은 목소리가 정말 예뻐 이 노래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조는 고등학생 때 배운 문학 작품어서 그 임을 그리는 간절한 느낌이 더욱 잘 전달되는 것 같았다.여섯 번째로는 관현악 '새'가 연주되었다. 이 연주는 자유를 상징하는 새의 이미지를 통해서 인간의 '자아의 소망', '희망의 꿈' 등을 표현하고 있다. 관현악기군과 타악기군 과의 음색 및 강약대비를 긴밀하게 밀고 당기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관현악적 음색에 많은 비중을 두었고, 주요음계도 선율적인 7음계를 사용해서 전통음악의 어법과는 의도적으로 차이를 두고 있는 공연이다. 여태껏 공연과는 달리 정말 많은 사람이 큰 무대에서 연주하셨다. 검정색의 단정한 옷, 의자에 앉아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모습, 연주자들이 앉은 구조 등은 마치 서양의 오케스트라를 연상시켰다. 국악공연에 사회자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장면 중 하나였다. 악기를 자세히 살펴보니 익숙한 탬버린, 징, 북 등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악기들도 많았다. 연주는 고요하면서도 숲 속에서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맑은 음이 위주였다. 또 후반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연주곡이었다. 연주 중간에는 악기별로 부분씩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다 같이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음악의 웅장한 힘이 느껴졌다.
음악실기 -2008년 10월 4일, 국립국악원에서 매주 열리는 토요상설공연을 보기 위해 예악당을 찾았다. 평소에 직접 국악공연을 보려고 찾아다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내게 의미가 깊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 문화를 좀 더 알고 아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우선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그 규모에 대해 놀랐다. 소규모의 작은 공연을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좌석도 정말 많았고, 국악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자리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우연히 천장을 보게 되었는데 그 구조가 정말 인상 깊었다. 커다란 연모양의 천장은 역시 국립국악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뒤, 팜플렛에 담겨 있는 오늘 공연의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워낙 국악공연에 관해 사전 지식이 없던 터라 어느 정도의 내용을 알아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0월 4일, 우리가 볼 공연은 '협종형' 이었다. 공연 목록을 살펴보니 '처용무'나 '육자배기' 등 익숙한 이름들이 많았다. 또한 요즘 배우고 있는 단소 연주도 있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처음 공연은 '수제천'이었다. 수제천은 궁중에서 정재(궁중무용)의 반주나 왕의 행차 등에 연주하던 궁중음악이며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커다란 무대 위에 붉은색의 옷을 입은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무대 옆에서 걸어나와 '집박'이라는 악기로 '짝' 소리를 내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구, 향피리, 박, 아쟁 등 여러 전통 악기들이 한자리에서 연주되었다. 악기들이 동시에 연주되어 소리가 섞였지만 각 악기의 소리가 특이해 소리하나하나 다 들리는 듯했다. 궁중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라 그런지 조금 엄숙하면서도 느린 장단이었지만 반면에 활기차다는 느낌이 들었다.방금 전 공연 한 무대의 막이 내려오고 무대 앞의 작은 무대가 올라왔다. 이번 공연은 '서도잡가 공명가' 였다. 잡가는 민간에서 전문소리꾼들이 부르던 노래이다. 서도잡가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불려져 온 잡가이며 일정한 장단 없이 노랫말에 따라 3·4,5·6박 등의 자유로운 장단붙임새로 노래한다. 공명가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노랫말로 한 대표적인 서도잡가이다. 밝은 색의 옷을 입은 3명의 여자가 무대 위에 앉아 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목청이 트였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지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부르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나 긴 노랫말을 어떻게 다 외우셨는지 신기하기도 했고, 처음에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알아듣기를 포기했던 노랫말들이 노래에 집중하니 약간씩 들리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시작할 때쯤 공연이 끝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공연이었다.다음으로 작은 무대가 내려가고 큰 무대의 막이 올라갔다. 이번공연은 '처용무' 였다. 새로운 공연의 막이 열릴 때마다 무대 양쪽 스크린에서 시작될 공연의 설명이 나오는데 처용무는 예전 문학 시간에 공부한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던 무대였다. 처용무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의 동해 용왕의 아들로 신라의 관리가 된 처용이 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물리쳤다는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가면무용이며 조선조 세종 때 궁중무용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연주는 뒤쪽 부분에 일렬로 앉아 행해졌다. 큰 무대 위에서 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5명의 사람이 탈을 쓰고 나왔다. 각각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손에 흰 천이 있어서 5명이 동시에 손을 하늘로 뿌릴 때 정말 예뻐보였다. 처음에는 느린 동작들이 많았으나 끝부분에 가서는 탈을 쓴 사람들의 행동이 활발해 졌다. 둥글게 돌면서 팔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중간에 일렬로 서서 노래를 부르는 부분도 있었다. 이번공연은 퇴장하는 부분이 특이했었는데 노래에 맞춰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한 명씩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탈을 벗고 나와 인사를 하고 공연을 끝마쳤다.다음은 '육자배기'였다. 남도민요는 우리나라 서남지방인 전라도 지역에서 불렸던 민요를 가리킨다. 육자배기는 남도민요가 지니고 있는 음악적 특징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민요이며, 보통 느리게 부르는 육자배기와 빠르게 부르는 자진육자배기를 잇대어 짝을 이루며 부른다. 방금 전 밝은 색의 옷과는 달리 수수한 색의 옷을 입고, 부채를 든 3명의 여자가 서서 노래를 불렀다. 연주는 무대의 오른쪽에서 행해졌다.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는 대체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며, 가끔씩 손짓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손을 쭉 뻗는 행동과 특히 부채를 힘껏 펴고 접는 부분은 힘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다 같이 부를 때는 가사를 알아듣기가 어려웠으나 한명씩 부르는 부분에서는 조금씩 알아듣기도 했다. 전체적인 음이 약간 구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마침 '이 생에 맺힌한…', '아미타불' 등과 같은 노랫말이 들려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이해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뻤다. 계속 듣다보니 익숙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예전에 '황진이'라는 드라마에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부분이라 굉장히 반가웠다.다음은 피리독주 평조회상 중 '상영산'이라는 무대였다. 평조회상은 낮은 조, 즉 평평한 조로된 영산회상이라는 의미로 조선후기 궁중의 잔치 때 연주하던 곡이다. 평조회상 상령산은 대금 피리 등의 독주곡으로 많이 연주되는데, 독주로 연주 할 경우 연주자의 능력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긴 호흡과 많은 장식이 표현된다. 작은 무대에서 한 남자가 혼자 독주를 하는 공연이었다. 시작 전 조용한 분위기에 내가 더 긴장이 되었다. 공연이 시작 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호흡이 정말 길다는 것이었다. 요즘 단소를 배우고 있는데 단소를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내 호흡이 짧아 숨이 너무 차다는 점이었다. 호흡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볼에 한가득 공기를 넣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음이 꺾이는 부분에서는 악기를 흔들기도 하였다. 나중에 단소를 좀 더 잘 불게 된다면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부분이었다. 연주는 대체로 맑고 높은 음이 위주였다. 연주를 하는 동안 손이 굉장히 빨리 움직였고, 한 음을 가지고 손을 움직이지 않고서 소리의 크기와 높이를 마음대로 소리 내는 부분이 정말 신기했다.이번 공연이 제일 기대되었던 부분이었다. '단소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수상곡' 이다. 교향악단의 반주에 단소 협주로 초연된 곡으로서 단소의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음색을 기본으로 하며, 서양 악기로 표현했던 반주 선율을 작곡가 김희조의 음 빛깔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국악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오늘 공연하는 악기 중 유일하게 경험해본 악기가 아닐까 한다. 불어 본 적이 있어 시작 전 유난히 관심이 많이 갔던 공연이었다. 막이 오르기 전, 무대 뒤에서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조그맣게 내었다. 각자 연습하는 소리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맑고 투명한 음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듣기가 좋았다. 무대의 막이 열리자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었다. 텔레비전에서 조차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배열과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순간 가장 먼저 서양 오케스트라가 생각났다. 국악공연에 양복 같은 옷을 입은 지휘자가 따로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연주자들이 악보를 보고 하는 것도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국악은 서양과는 달리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를 했던 것 같았다. 또한 바닥에 앉아 연주를 하는 것은 많이 봤으나 의자에 앉아 배열을 갖추고 연주를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남녀 모두 가릴 것 없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서양의 바이올린과 비슷한 모양의 악기가 있었는데 이 악기의 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다. 이러한 배열 앞으로 한복을 입은 한 여자가 단소를 들고 나왔다. 그동안 단소의 소리가 이렇게나 예쁜지 몰랐었다. 연습을 할 땐 '삐익' 소리만 나서 원래 이 악기 소리가 그런 줄만 알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단소의 소리에 푹 빠지는 느낌이었다. 단소를 연주하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연주를 하는 손가락이 굉장히 빨랐고 높은음을 위주로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단소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우러진 음률은 정말 여태껏 들은 연주 중에서 제일로 아름다웠다. 정말 감동을 받았고, 전통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이렇게나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소리가 너무 예뻐 넋 놓고 소리만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익숙한 음이 흘러나왔다. 바로 '꼭두각시'였다. 꼭두각시를 듣고 있으니 저절로 흥이 나는 듯 하였다. 연주가 끝나고 인사를 한 뒤 모두 퇴장할 줄 알았는데 지휘자를 비롯한 모든 연주자들이 단소 연주자에게 박수를 보내 더욱 인상적인 무대였다. 이번 공연이 끝나고 나서 전통악기 하나를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