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00000-----과 ---베네수엘라의 신자유주의에 도전한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정치와 인간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과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에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그렇게 양분화 되었다.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삶에 대해 현실에 분노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였고 이에 시민들은 차베스의 확고한 의지에 믿음의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차베스가 민주주의를 무기삼아 대통령이 되어, 베네수엘라가 시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점차 바뀌고 있을 때, 부유층의 반차베스 운동은 거세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본가, 중산층, 상류층, 군사 등등 안정적인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정치가는 없다는 것을 믿고는 있었지만, 차베스의 정책에 반대하는 상류층들의 시위 이유가 '노블리스 오블리제' 에 명확히 반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는 상류층의 이기주의를 절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라는 것이 원래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어 이루어진 것이라서, 그러한 사회를 다스리는 정치란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고 이해관계가 대치되어 싸우는 일이 다반사라고는 하지만, 차베스의 정책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대치되는 이 사건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부유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얻은 결실을 사회에 환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들은 그것의 이유를 묻는다. 결국 자유주의는 개인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게 만들고 타인을 짓밟게 만들어 부자들을 이기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회에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그 어떠한 의미도 만들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상류층들은 부자이기 이전에 베네수엘라의 한 시민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시민이다. 한 어미의 땅 베네수엘라에서 사는 시민끼리 서로를 짓밟고 살아간다면, 베네수엘라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사회주의가 옳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옮다 그르다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힘 있는 사람들, 능력 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 적어도 같은 나라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힘든 사람들을 돕는 다는 것, '노블리스 오블리제' 를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왜 도와야 하는가, 그들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실패했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는 '이 사회에 왜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는가, 나약한 자는 강자에게 당하고 잡아먹힐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정의이다.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그른 것이다. 차베스가 하려는 개혁 정책은, 부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부정의가 형성된 것을 억지로 하게 만들어 정의를 실현 시킨 것일 뿐이다.차베스 정책 사건에서 주목해야할 또 다른 점은, 위기에 처한 차베스를 구해낸 것도, 차베스가 사회를 개혁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도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베네수엘라 사회를 다시 살린 것은 베네수엘라 시민들이었다. 이는 시민들이 개인으로 볼 땐 나약한 사람들일지라도, 모여서 군중이 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실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가 한 곳에 집중된다면, 소수의 의견이 묵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다수가 반드시 옳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 한다면 사회의 부정의로 연결된다.
댄스 스포츠가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들어가기 위해필요한 노력 미술교육과 200908029 정한나'댄스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닌가.'에 대한논란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지만, 댄스스포츠를 하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려는 노력은 국제 댄스스포츠 연맹이 국제 올림픽 위원회 회원으로 공식 승인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돼오고 있다.국제 댄스스포츠 연맹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으로 댄스스포츠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21세기 새로운 스포츠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댄스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경기 스포츠로서 심사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단 것이다. 예술성과 기술성을 객관적으로 점수화 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문제점들이 해결되어야만 하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 될 수 있을 것이다.우선 살펴보자면, 댄스 스포츠에서 심판이 채택하는 평가요소는 실제로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짧은 경기시간에 그 모든 것을 관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문제시 된다. 더구나, 적어도 여섯 커플의 댄스를 동시에 봐야하기 때문에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를 하기란 정말 어렵다. 따라서 심판은 각 커플이 다른 선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짧게 주어지는 인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댄스 스포츠에 열정과 헌신을 다 바친 전문가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는 만큼, 여섯 커플의 짧은 댄스를 모두 충분히 평가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한 번에 춤을 추는 커플의 수를 줄이고 각 평가 요소별로 정확한 평가를 하기 위해 한 번에 추는 댄스의 시간을 조금 늘리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또한 심판들마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평가 요소와 그 비중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춤을 보더라도 심판의 기준에 따라 점수가 다르게 나오게 된다. 어느 심판은 테크닉에 중점을 두어 보고, 또 다른 심판은 음악성과 표현에 중점을 둔다. 그 두 가지 요소가 모두 다 중요한 요소이지만, 심판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점수를 받게 된다. 선수가 보기에는, 왜 어느 심판은 그들 커플에게 그렇게 점수를 잘 주었는지, 또는 그렇게 나쁜 점수를 주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겠지만, 그 이유라면, '심사의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어느 것에 비중을 두어 보았느냐' 이었을 뿐이다. 이는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 커플의 선수가 동시에 댄스를 하고 있는 경기장에서 심판이 각 선수를 볼 수 있는 것은 잠깐 잠깐이므로, 어떠한 점이 심판의 눈에 들어 왔느냐, 그것이 좋은 면이든, 또는 나쁜 인상을 준 것이든지 간에, 바로 그것이 선수를 평가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교 과 목철학의 이해담당교수김미자 교수님학 과학 번성 명0. 인체 조직의 연구- 인체 조직 연구의 필요성-인체 실험의 역사와 통제 필요성1. 인권 보호와 생명 윤리- 장기 이식-탯줄 혈액-유전자 조작2. 과학 기술과 책임-인체 실험과 윤리적 과제1.인체 조직의 연구-인체 조직 연구의 필요성각종 의학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는 인체조직의 유용성과 가치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인체 조직의 연구 필요성은 의학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며, 실험을 통해 연구자들은 보다 안전한 지식에 도달하고자 한다. 현재 사용되는 의학의 역량이 아직도 포괄적으로 검토되지 않았음에도 다시금 점검되어야 하는 새로운 치료 및 진단 방법이 더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줄기세포를 치료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줄기세포를 포함하고 있는 골수, 혈액, 제대혈 등의 인체조직 연구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시류에 힘입어 현재와 미래의 의학에서 인체조직의 연구는 급속도로 확산도리 것이다. 그러나 인체조직의 기증과 이용에는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가 수반된다.-인체 실험의 역사와 통제 필요성19세기에는 유럽과 미국의 많은 공공기관에 수용된 어린이들이 백신 실험의 대상이 되었고, 1890년대에는 생체해부 반대자들이 어린이 보호법을 요구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연구를 어떻게 그리고 언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대부분 과학자의 판단에 맡겼다. 어떤 의학적 조치가 인체 실험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따라서 그것이 엄격한 동의과정이 요청되는 특수한 도덕 범주에 속하는지 여부는 대개 연구자에게 남겨진 판단이었다.이러한 관례는 점차 과학자의 판단을 외부로부터의 강제적인 보호정책으로 보완시키는 방향으로 전향되었다. 이제 더욱더 엄격한 외적 보호감독 정책의 시대로 들어설 것이다. 엄격한 보호정책의 본질은 과학자들의 임의 판단을 최소화하고, 인간이나 인체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그들의 연구를 통제 조절하는 데 있다.환자가 동의하기 전에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 의사의 의무를 통해 한편으로는 윤리적 가치로 간주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다른 한편 사전 정보제공 후의 동의를 통해 상당히 위험하고 모험적인 의학적 시술로부터 환자를 보호해야 하며, 이 경우 환자는 시술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환자는, 예를 들어 지금까지의 의학 연구의 관행과 표준화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한 정보를 통해 환자는 자기 결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다.2. 인권 보호와 생명 윤리-장기이식(1) 장기 이식과 인간의 존엄성인간의 생명은 여러 면에서 정신과 육체가 함께 작용하는 합일체로서 파악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분화 할 수 없으며 정신과 육체는 커다란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인간에게 속하며, 하나의 통일체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영혼과 육신' 혹은 '정신과 육체'는 동일하지는 않지만,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인간의 육체는 다양한 기관과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뇌 이외의 많은 신체부분은 대체 가능하다. 뇌는 인격체의 구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개성'과 '인격' 등 인간에게 독특한 개념들은 어떤 일정한 기관, 즉 뇌와 뇌의 특수한 기능에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전체성에 관련되는 것이다.(2) 우리나라 현행법의 사체기증의 문제우리나라의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첫째, 사후 장기기증의 경우 뇌사자의 장기 적출이 법적 문제가 없으려면 뇌사가 사망과 같음이 명시되어야 하는데, 이 점이 불분명하다. 제 1장총직의 제3조 4호에서는 정의하기를 "살아 있는 자"라 함은 "사람 중에서 뇌사자를 제외한 자를 말한다"고 함으로써 뇌사자를 사망자로 보는 데 비해, 제 3장 제17조에서 뇌사자의 사망원인에 대한 규정을 보면, "뇌사자가 장기 등의 적출로 사망한 때"에는 뇌사의 원인이 된 질병 또는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본다고 함으로써, 뇌사자가 살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뇌사자가 이미 사망자인데 어떻게 또 사망할 수 있겠는가? 또한 뇌사자의 사망시간에 대한 규정도 없다. 뇌사자는 장기 적출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뇌사가 판정된 시간이 사망시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둘째, 뇌전체가 불가역적으로 기능을 상실한 경우, 죽음으로 보아 사망진단을 내리는 것이며, 뇌사판정은 장기 적출과 무관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률은 뇌사판정이 시종일관 장기이식을 위한 것인 양 구성되어 있다.셋째, 뇌사 판정은 사망진단이므로 전문의의 진단에 맡기면 될 것을 뇌사판정위원회를 만들어 의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뇌사판정 신청을 가족이 해야 된다는 것도 불합리하다. 뇌사판정은 의사가 해야 할 일이며, 단지 장기기증을 원하는 경우, 그것이 자유 동의에 의한 적법의 행위힌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윤리위원회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의 뇌사판정위원회는 "의료인, 변호사의 자격을 가진 자, 공무원, 교원, 종교인 기타 학식과 사회적 덕망이 풍부한 자 중…."이라고 명시되어 있어, 구성원들 중에는 뇌사를 판정할 수 있는 전문성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뇌사 판정은 전문의에 맡기고 뇌사판정위원회는 장기 적출의 윤리적 타당성을 심사하는 윤리위원회 정도로 명칭을 바꾸어, 역할도 그러한 윤리적 문제에 국한시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넷째,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장기기증을 할 의사가 있는 경우에만 유족은 뇌사판정 신청을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뇌사는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아 심폐소생장치를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귀하고 값비싼 의료장비를 뇌사자들에게 연결시켜놓고, 그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심장이 멈추기를 기다리게 함으로써 유족의 심적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재력이 없는 유족들로 하여금 장기기증을 원하지 않더라도 비용 때문에 결국 장기기증을 결정하고 뇌사판정을 요청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불합리한 법률인 것이다.-탯줄 혈액(1) 장점태어날 아기의 탯줄혈액(제대혈)에는 혈액과 면역체계의 근간인 조혈모세포가 들어있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으로 분화되어 인간의 혈액과 면역체계를 이루게 된다. 즉 조혈모세포는 인간의 생존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보통 골수나 아기의 태반과 탯줄에 존재한다.흔히 골수이식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은 실은 골수 조혈모세포 이식이며, 아기의 탯줄혈액의 조혈모세포 또한 똑같이 사용될 수 있다. 오히려 골수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탯줄 혈액에 들어 있는 조혈모세포는 골수에 들어 있는 조혈모세포보다 미성숙하기 때문에 이식 수술 후 면역학적인 부작용이 훨씬 적다는 장점이 있다.또한 탯줄 혈액은 골수에 비해 쉽게 채취할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 탯줄을 자른 후 태반 쪽 탯줄에서 산모나 아기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상태로 채취 된다. 그 속에 들어있는 조혈모세포의 양과 기능은 골수의 5~10배에 해당된다.이렇듯 탯줄혈액 조혈모세포는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지 않는 이식에서도 합병증이 적고, 골수 속 조혈모세포에 비해 그 채취 방법이나 조혈기능, 증식 능력이 뛰어나 골수를 대체할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백혈병과 각종 암의 치료 뿐만 아니라 유전자요법 등 그 유용성이 다양하다.(2) 윤리적 문제들첫째, 탯줄 혈액 기증이 상당한 치료 가능성을 보인다는 충분한 의학적 근거가 있는가?둘째, 누구에게 이러한 기증에 대한 권한이 있는가? 적출이 당사자인 아이에게 아무런 위험이 없다면, 아이 자신이 수혜자가 아닐지라도 부모가 이러한 기증에 대해 권한을 행사해도 되는가? 탯줄 및 태반혈액은 아이의 혈액인가? 아이의 조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혹은 아이의 혈액과 완전히 일치하므로 탯줄혈액에서 조직 적합성의 문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오히려 아이에게 엄마가 기증하는 경우인가? 자가이식이지만 자신의 혈액이 사용되지 않는 경우인가?셋째, 탯줄 혈액을 기증하는 경우 중요한 테스트가 아이와 부모의 실제적 그리고 잠재적 건강상태와 질병에 관해 고도의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정보보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박노자의 만감일기'일기를 쓰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주로 자신과의 사적인 대화를 위해서나 혹은 자신이 겪었던 여러 가지 일상을 기록해 두기 위해 쓴다. 그런데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사적인 일기의 형식을 지니면서도 흔히 생각하는 평범하고 개인적인 내용의 글인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향한 대중적 외침을 지니고 있었다.박노자의 만감일기는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가 '나', 둘째가 '우리', 셋째가 '국가와 민족' 그리고 마지막이 '경계' 이다. 이는 개인(나)의 생각을 뛰어넘어야 나와 관계 맺은 나의 사람들(우리)을 이해하게 되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나와 같은 민족, 국가 내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국경을 넘어,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박노자의 뜻이 담겨있다. 박노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사고의 틀을 깨고 나오길 바랐는지, 글 속에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았다. 각 부분별로 인상적인 내용 한 가지씩만 소개하겠다.1부 '나를 넘어' 의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인가?'였다. 박노자는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에 대해 긍정하는 나로서는 박노자가 주장하는 것이 획기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개인 간의 경쟁을 심화시킨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진 비인간적인 모습일 수 있겠으나, 이것이 자본주의의 장점이기도 하다. 경쟁은 그 체제가 얼마나 올바른가에 상관없이, 이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는 경쟁이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경쟁은 자신의 이득을 창출하기 위한 개인의 욕심에서 시작된다. 자본주의 옹호주의자들은 이를 근거로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이라 주장한다. 개인의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로써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노자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소유욕'이 정말 인간의 본성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욕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베푸는 행동과 공유하는 행위들은 무엇으로 설명하겠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유를 욕심내는 본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같도록 교육되었다고 박노자는 말한다. 욕심, 욕구가 비대화되면 폭력성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한 것들이 정말 인간의 본성이냐고 그는 묻는다. 시골의 인성좋은 사람들, 승패보다 서로 어울려 즐기는 것을 중요시 했던 옛 선인들. 지금 폭력성이 만연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박노자는 자본주의 사회가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길 바라는 듯했다.제 2부 '우리를 넘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행 잡감, 영어를 못(안) 하는 유럽' 이었다. 영어를 숭배하는 한국의 모습과는 달리 유럽은 자신의 나라에서 자국의 언어를 쓰지 않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박노자는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세계 공용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유럽의 여러 국가만 해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나라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어 숭배현상은 무엇 때문에 비롯되는 것인가. 학창시절, 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생각했다. 언어라는 것은 그 곳에서 살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우리들은 이렇게 어렵게 영어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지금도 고민이다. 앞으로 초등교사가 되어 여러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데, 학생들이 영어를 왜 배워야 하냐고 물으면 대답 할 수 없을 것 같다. 영어는 외국어이다. 외국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기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한글이라는 한국의 언어에 대해 좀 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영어를 쫓아가고 중국어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한국어를 세계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제 3부 '국가와 민족을 넘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무현에 대한 가장 위험한 착각'이었다. 박노자는 노무현의 FTA와 햇볕정책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노무현은 대표적인 빈민중심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박노자는 그런 노무현도 FTA를 체결하여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편 대통령으로 보였나보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경제체제를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로 포섭시키기 위한 또 다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였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노무현과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연결시키지 않는다. 노무현은 복지를 위해 힘썼고, 빈민을 위해 정책을 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을 기대하며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런데 박노자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나보다. 북한을 포섭하려 했던, 어쩌면 일종의 도움의 손길이나 복지 정책으로 볼 수 있는 햇볕정책을 자본주의적 배경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니 말이다. 박노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새로운 사고에 놀랐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햇볕정책을 추진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박노자의 주장은 옳은 것 같다.
훌륭한 교사란 어떠한 교사인가.훌륭한 교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이들의 앞날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사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화 시켜 선한 영향력을 설명 하자면,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1. 인간관에 대해교사가 인간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는 그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교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숙지하고, 개인 한명 한명이 귀중하다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수업을 할 때에 주로 단체 지도를 하기 때문에 교사가 쉽게 간과 할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교사의 한 가지 획일적인 생각과 잣대에 의해 학생들이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교사는 학생들 각각의 문제를 돕고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획일적 판단을 지닌 교사는 학생들 각 개인의 마음을 올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 체형에 맞는 옷이 있듯이,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교사는 학생들 각각의 문제를 올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다.학생들 개개인의 마음을 치유하여 줄 수 있는 마음의 자세 또한 필요하다. 학생에 대한 사랑 없이 교사가 형성 될 수는 없다. 중고등 교사와는 달리, 초등 교사는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전인격적 지도와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기초를 닦아 주는 것이 초등 교사의 역할이다. 인격적 지도는 학생의 심리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학생 개개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하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자세가 된 교사가 초등학생을 위한 훌륭한 교사라 할 수 있다.2. 사회관에 대해앞서 말한 바와 같이, 초등교사는 학생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아 주는 역할을 한다. 훌륭한 교사는 사회 공동체와 개인 모두가 중요하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사회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 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의 사람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예절을 지키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발적인 희생의 가치는 고귀한 것이지만,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발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은, 희생으로 인해 이익을 얻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희생이기도 하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 희생양을 만들 경우 자신 역시 그러한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도록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희생이 가치 있고 고귀하다는 점을 가르치고, 공동체 뿐 만 아니라 개개인 역시 존엄하고 귀하다는 것을 숙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 뿐 만 아니라 타인 개개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며,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희생의 가치를 깨달아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 개인과 사회에 대해 학생들에게 극단적이지 않은, 그러면서도 희생과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이다.3.세계관에 대해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올바른 사회관이 잡혀 있는 교사라면,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하여 세계에 대하여서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국적과 종교와 인종을 넘어서 편견 없이 인간으로서의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국내에 국한된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라 할 수 있다. 타인을 사랑하는 인격적 지도 이후, 타인에 대한 범위를 넓혀준다면 학생들이 국내의 사회 뿐 만 아니라, 세계적 인물로서 성장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계를 품으면 세계를 가질 수 있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도록 가르치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훌륭한 교사의 역할이다.세계관에 대한 또 다른 사고는, 철학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세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우주와 인간 세계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는 등 수 많은 철학적 사고가 세계관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평생에 걸친 고민이며, 한 번에 판단이 바로 서지 않는 사고관이기도 하다. 교사는 학생들의 이러한 생각들을 바로바로 세워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이러한 본질에 대한 생각과 사고에 대한 올바른 뱡향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형이상학적 사고는 자칫 어둡고 부정적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 스스로 판단이 설 때까지 지속적으로 세계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