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Ⅰ. 서론 ------------------------------ 1Ⅱ. 황순원의 생애 ---------------------- 2Ⅱ-1 ‘황고집’ 가문의 내력Ⅱ-2 시인의 길Ⅱ-3 소설가의 길 (해방이전)Ⅱ-4 소설가의 길 (해방 이후의 단편소설)Ⅱ-5 소설가의 길 (해방 이후의 장편소설)Ⅲ. 황순원의 소설 ---------------------- 5Ⅲ-1 아름다움과 순수함의 파괴(소나기?별)Ⅲ-2 사랑과 화해,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학?목넘이 마을의 개)Ⅲ-3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력에 대한 존중(나무들 비탈에 서다)Ⅳ. 결론 ----------------------------- 14Ⅴ. 참고문헌--------------------------17Ⅰ. 서론본고의 목적은 황순원의 생애와 그의 소설의 특성을 통해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사회상과 작가의식의 한 양상을 점검해 보는 데 있다.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황순원은 열여섯 살 때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50여 년 간 2권의 시집과 100여 편의 단편 소설과 7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는 결코 잡문을 쓴 일이 없었고, 신문 연재소설 청탁도 거절했으며, 어떠한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재직하는 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했을 때 “소설가는 소설가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사절했다.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는 오히려 안 쓰는 편이 낫다’든가 ‘가능하다면 나체의 껍질까지 벗겨 좀 더 속 알맹이를 그리고 싶다’는 말은 황순원의 문학 세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자신과 자신의 문학에 대한 이런 지독한 절제와 고고한 태도, 그리고 삶과 인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그를 순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다.황순원의 문학작품은 현실에 대한 폭넓고 애정 어린 시선이 심도 있게 구체화 되는 과정으로 급변하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바르게 살펴볼 수 있는 창의 구실을 한다. 그의 작품들은 삶의 모습을 단순화 시키거나 획일화 하지도 않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중요하다. 우리가 황순원의 소설에서 예외없이 아름답고 아늑한 서정시적 분위기를 느끼거나 지적으로 절제된 단아한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시인으로서의 그의 이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Ⅱ-3 소설가의 길 (해방이전)1940년 황순원은 『황순원단편집』(나중에 ‘늪’이란 제목으로 바꿈)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집을 냄으로써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도시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무기력하거나 권태스러워 하는 인물, 그리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인물이 많다. 심리적인 소설이나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한 소설도 많은데, 이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역사나 현실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내면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1941년부터 해방되기까지 황순원은 단편 『별』(1941)과 『그늘』(1942)만을 발표한 후 침묵을 지킨다. 일제의 탄압으로 발표할 곳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일본어로 챈일 소설을 쓰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발표할 길이 없는 작품을 한 편 두 편 써서 벽장에 넣어두곤 했다. 일본 관리들은 고향으로 와 있는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동네 사람들은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무의 도식하고 있다고 수군거렸으나, 그는 고집스럽게 한글로 소설을 써서 간직했던 것이다. 이 작품들이 위의 두 단편과 함께 묶여 『기러기』라는 제목으로 1951년에 출간된다.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 그는 비로소 토속적인 풍습과 정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Ⅱ-4 소설가의 길 (해방 이후의 단편소설)해방을 맞아 황순원은 평양의 정의여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그러나 공산화된 북한에서는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요시찰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1946년 5월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하여 서울 중고등학교 교사가 된다. 1948년 황순원은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소설집 『목넘이마을의 개』를 간행한다. 그리고 1952년에는 6?25 전쟁기의 피난 체험을 다룬 소설집『곡예사』를 칠백 부 한 그려낸 작품이라고 말해야 옳다.“내가 용기를 잃지 않는 건 나도 늙으면서 아름다워지는 축에 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욕망이 아니고 기도이다.” 황순원의 문학은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기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것은 아름다우며 동시에 외롭다는 이야기로 소설 속에서 표현된다. 황순원의 소설을 우리는 흔희 ‘아름다운 서정과 사랑’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고귀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제나 외롭고, 외로우므로 사랑은 원한다. 그런데 그 사랑은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웃음과 같고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가 본래부터 지닌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정신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순수한 상태를 그냥 두지 않는다. 황순원이 엿본 인간 세상은 거의 언제나 가혹하고 모순투성이며 악이나 비극이 넘처나는 곳이다. 황순원의 소설이 실제로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의 비극성이다. 비극적인 삶 속에서 존재의 순수함은 지켜질 수 가 없다. 『소나기』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황순원의 대표작이자, 한국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황순원의 문학에서 ‘아름다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지만, 이 소설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 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서울서 살다온 윤 초시네 증손녀 딸이 벌써 며칠째 징검다리 위에 앉아 물장난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느 날 물을 움켜쥐며 장난을 치던 소녀가 갑자기 하얀 조약돌을 집어 ‘이 바보’라고 외치며 소년에게 던진 후 갈밭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날 소년은 개울가로 나가보았으나 소녀가 보이지 않자 허전함을 느낀다. 이 후 소년은 소녀가 던져 준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하루는 소년에 소녀의 물장난을 흉내내고 있는데 소녀가 뒤에 와 지켜본다. 그것을 알아차린 소년져다 땅 속에 파묻어버린다. 이전에는 누이에게만 이복동생을 업히는 의붓어머니가 불만스러웠고 누이한테 동정이 갔지만, 이제는 자신한테 잘 하려고 애쓰는 누의의 행동이 흉하게만 여겨진다. 아이는 누이가 주는 옥수수를 먹지도 않고 버리거나, 자신의 놀이를 도와주는 누이에게 오히려 화를 내며 누이가 뒷집의 예쁜 계집애와 싸울 때는 차라리 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열네 살의 소년이 된 아이는 뒷집 계집애보다 더 예쁜 소녀를 알게 된다. 어느 날 모란봉 뒤 한 언덕에 나란히 앉았을 때 소녀가 아이를 끌어당겨 입술을 비빈다. 아이는 실망과 멸시가 가득 찬 기색으로 소녀를 뿌리치고 언덕을 뛰어 내려간다.별이 유난히 많은 첫가을 밤 아이는 별 하나가 어머니일 것 같은 생각으로 별을 찾다가 아버지의 노한 고함소리를 듣는다. 누이가 호리호리한 키에 흰 얼굴을 한 청년과 만나다 들킨 것이다.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치마에 묶어 강물에 집어넣겠다고 호통을 친다. 꽤 쌀쌀한 어떤 날 밤 아이가 누이에게 산책을 가자고 말한다. 도중에 누이는 자기 혼자였다면 벌써 죽고 말았을 것이라고 소년에게 말한다. 대동강 둑을 거슬러 오르다 아이는 갑자기 누이에게 치마를 벗으라고 말한다. 누이는 순순히 따른다. 아이는 누이를 치마에 묶어 강물에 집어넣을 생각이었으나 누이가 어머니와 같은 애정으로 그것마저 따를 것 같아 누이를 남겨둔 채 돌아오고 만다.누이는 시내 실업가의 막내아들이라는 작달막한 키의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그리고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누이가 죽었다는 부고가 온다. 아이는 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전에 파묻었던 인형을 찾았으나 이미 썩어 흙과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골목길에서 날뛰는 당나귀의 등에 올라탄 아이는 왜 누이를 죽였냐며 소리를 질러대다 굴러 떨어진다. 떨어진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어느새 하늘에 돋아난 별이 아이의 눈에 내려온다. 아이는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죽은 어머니이고 그러면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을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데나 내 손으로 감겨드리려 했다고 말한다. 고갯길을 다 내려온 곳에서 성삼이가 발걸음을 멈춘다. 삼팔선 완충 지대가 된 그곳에 옛날과 다름없이 살고 있는 학떼를 발견한 것이다. 어릴 적 덕재와 성삼이에게는 함께 학을 잡고 놀던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성삼이가 불쑥 학 사냥이나 하고 가자고 말한다. 어리둥절해 하는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든 성삼이는 덕재에게 학을 몰아오라고 한다. 덕재는 자신이 총살감이라던 성삼의 말이 떠올라 얼굴의 핏기가 가신다. 성삼이가 다시 한 번 학을 몰아 오라고 재촉하자 그제야 덕재는 성삼의 말이 자신을 풀어주려는 의도임을 깨닫고 잡풀사이를 기어가기 시작한다.성삼이는 덕재가 농민동맹에 관여했으니 죽일 놈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먹지만 어릴 때의 추억이 하나하나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풀린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학을 보고 학 사냥 하던 추억을 되살리면서 마침내 덕재를 도망치도록 해준다. 이 소설에서 성삼이와 덕재가 서로 적이 된 것은 전쟁 때문이며, 이 상처가 치유되고 과거의 우정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릴 적 같이 놀던 추억 때문이다. 성삼이는 어릴 때의 순수함을 되찾음으로써 사랑과 화해를 얻고 현실의 어둠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비정한 이데올로기나 감정의 대립일지라도 인간 자체는 순수함을 되찾는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황순원 소설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삼과 덕재는 서로의 마음을 열어 교감함으로써 현실의 냉혹한 법칙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한편 『학』과는 다른 방향에서 혈실의 질곡을 헤쳐나가는 소설의 예로 『목넘이마을의 개』(1947)를 들어 볼 수 있다. 목넘이 마을은 일제시대 고국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서북간도로 흘러 들어가는 유랑민들이 거쳐가는 국경 마을이다. 어느 날 이 마을에 배를 곯고 다리를 절뚝이는 흰 개 (신둥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신둥이는 간난이네 집 옆 방앗간에 자리를 잡고 마을의 주인 행세를 하는 동장 형제네 기와집과 동장네 전용 방앗간을 번갈아 드나들며 음식을 훔쳐 먹는다. 그러다 큰 동장에게 들켜
1. 문장성분1.2 문장 성분의 종류주성분 : 서술어(풀이말)주 어 (임자말)목적어(부림말)보 어 (기움말)부속성분 : 관형어 (매김말)부사어 (어찌말)독립성분 : 독립어 (홀로말)1.2.1 서술어개념 : 서술어는 주어로 표현되는 대상의 동작이나 상태, 성질 등을 풀이하는 기능을 가진 문장성분이다.형식 :첫째, 동사와 형용사는 직접적으로 서술어로 쓰일 수 있다.ㄱ. 괴물이 한강에 나타났다. 동사ㄴ. 하늘이 정마로 푸릅니다. 형용사ㄷ. 스님은 홀연히 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본용언 + 보조용언ㄹ. 나도 설산에 오르고 싶다. 본용언 + 보조용언둘째, 체언이나 명사구, 그리고 명사절에 서술격 조사 ‘-이다’가 붙어서 서술어로 쓰일 수 있다.ㄱ. 이 사람이 권상우입니다.ㄴ. 어제 아버님께서 데리고 온 사람은 아버님의 친구였다.ㄷ. 동생을 비난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이다.셋째, 서술절이 문장 속에서 서술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ㄱ. 형은 키가 크다.ㄴ. 이 사과는 맛이 시다.서술어의 자릿수= 서술어의 자릿수는 서술어로 쓰이는 용언 자체의 통사, 의미적인 특질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특정한 서술어가 쓰이면 그것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문장성분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ㄱ. X가 예쁘다.ㄴ. X가 Y를 때리다.ㄷ. X가 Y를 Z로 삼다.= 결과적으로 문장의 기본 골격은 서술어의 자릿수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결정되므로, 문장성분 중에서 서술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학교문법의 이해 - 문장= 서술어로 쓰이는 용언은 다른 문장성분을 선택할 때에 어떠한 특별한 종류의 말을 제한하여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선택제약’이라고 하고 선택제약을 나타내는 규칙을 ‘선택제약규칙’이라고 한다.ㄱ. 물이 흐른다. 흐르다 [주어(유동체)]ㄴ. *바위가 흐른다.= 흐르다는 문장에서 서술어로 쓰이면 주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데, 이때 주어 자리에설 수 있는 체언은 ‘유동체’여야 한다. ‘흐르다’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선택제약을 규칙화하면 ‘흐르다[주어(유동체)]’가 된다.ㄱ. 사람이 안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하던 말을 그쳤다. - 타동사= (1)~(5)에서 능격동사는 자동사일 때는 한 자리 서술어로 쓰이고 타동사일 때는 두 자리 서술어로 쓰인다. 예를 들어서 (1~5)에서 ‘움직이다, 마치다, 다하다, 돌다, 그치다’ 등의 능격동사는 (ㄱ)에서는 자동사로 쓰이므로 한 자리 서술어인 반면에 (ㄴ)에서는 타동사로 쓰이므로 두 자리 서술어이다.1.2.2. 주어? 개념 : 주어는 문장에서 서술어로 표현되는 동작이나 상태 혹은 성질의 주체를 나타낸다. 주어는 체언이나 체언 구실을 하는 구나 절에 주격조사가 붙어서 실현된다.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주어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될 수도 있고 주격조사 대신에 보조사가 붙어서 표현될 수도 있다.ㄱ. 물은 생명을 이루는 원천이다.ㄴ. 순희도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 이와 같은 때에는 보조사인 ‘-은’과 ‘-도’가 붙으면서 주격조사가 표현되지 않은 경우인데 이 때에는 주격조사 ‘-이/-가’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주격조사 : 주격조사는 체언이나 체언 역할을 하는 구나 절이 문장 속에서 주어로서의 자격을 가지게 하는 조시앋. 주격조사로는 ‘-이/가, -께서, -에서, -서’ 등이 있다.첫째, ‘-이’와 ‘-가’는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주격조사이다. 이들은 음운론적 변이형태이다.둘째, ‘-께서’는 문장에서 주어로 표현되는 대상을 높일 때 쓰인다.ㄱ. 어제 오후에 대통령께서 개헌을 발의하셨다.= 주격조사인 ‘-께서’를 실현하면 서술어로 쓰이는 용언에도 주체높임의 선어말어미 ‘-시-’가 실현되는 것이 원칙이다.셋째, ‘-에서’는 단체를 나타내는 무정명사가 동작성이 있는 서술어의 행위의 주체로 TM일 때 주격조사로 쓰인다.ㄱ. 교육부에서 2008학년도부터 수능시험을 폐지한다.ㄴ. 교육부가 2008학년도부터 수능시험을 폐지한다.= 주어가 단체 무정 명사가 아니거나, 서술어에 동작성이 없는 경우에는 ‘-에서’가 주격조사로 실현되지 못한다.ㄷ. 롯데 팀에서 타격이 가장 뛰어나요.ㄹ. 롯데 팀이 타격이 가장 뛰어나요.는 의미적인 관계를 살펴보면 이들은 목적어가 아니고 다른 문장성분일 가능성이 높다. 곧 (47)에서 ‘행인을’은 소유자의 의미로 쓰이면서 관형어처럼 기능하며 ‘점심을’은 종류의 의미로 쓰이면서 부사어처럼 기능한다. 그리고 ‘두 가마를’은 선행체언인 ‘고구마’에 대하여 동격 관계를 유지하면서 ‘수량’의 의미로 쓰인다. (48)에서 목적어로 표현된 ‘나를, 일본을, 중국어 학원을, 필리핀을, 큰스님을, 아버지를’은 서술어와 관련해서 ‘상대, 방향, 지향점, 출발점, 동반, 비교’등의 의미를 나타내면서 부사어처럼 기능한다.또한 (47)과 (48)에서 밑줄 그은 말에 붙은 ‘-을/-를’을 목적격 조사로 보지 않고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문법에서는 이들을 모두 목적어로 처리하고 여기에 쓰인 ‘-을/-를’의 기능을 목적격 조사의 보조사적 용법으로 보았다.그런데 ‘가다’와 같은 자동사가 서술어로 쓰일 때도 체언에 ‘-을/-를’이 붙어서 목적어의 형태를 취하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51) ㄱ. 시집을 아직도 안 갔니?ㄴ. 장가를 몇 번째 가는 거니?(52) ㄱ. 시집에 아직도 안 갔니? (?)ㄴ. 장가에 몇 번째 가는 거니? (*)(51ㄱ)의 ‘시집을 가다’에서는 ‘가다’가 자동사인데도 목적격조사인 ‘-을’을 취했다. ‘가다’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격 관계대로 격조사를 실현하면 (52ㄱ)에서처럼 ‘시집에 가다’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래의 문장인 ‘시집을 가다’와는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51ㄴ)의 ‘장가를 가다’에서도 자동사인 ‘가다’가 목적어를 취하였는데 이 경우는 (52ㄴ)처럼 ‘장가에 가다’로 바꾸면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고 만다. 따라서 ‘시집을 가다’와 ‘장가를 가다’는 ‘결혼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어로 처리해야 한다.1,2,4, 보어? 개념 : 보어는 ‘되다’나 ‘아니다’가 서술어로 쓰일 때 이들 서술어가 주어와 함께 반드시 요구하는 문장성분이다. 보어는 체보어’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6) ㄱ. 실리콘이 (주어) 반도체가 (보어) 된다(서술어)ㄴ. 고래는 (주어) 물고기가 (보어) 아니다. (서술어)=이러한 설은 하나의 홑문장 속에서 주어가 한 번만 나타나는 문장 구성의 원칙에도 부합하고 서술절을 무리하게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설에도 한계가 있는데 첫째, 보어라는 별도의 문장성분을 설정하므로 문장성분의 체계가 복잡해진다. 둘째, 보어설은 보격조사와 주격조사의 형태가 똑같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곧 보어설을 인정하면 주격조사와 보격조사의 형태가 모두 ‘-이/-가’로 실현되는데 동일한 형태의 격조사들이 서로 다른 격기능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셋째로 보어 설정의 범위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7) ㄱ.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항의서를 전달했다.ㄴ. 김을동 씨는 그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ㄷ. 이것은 저것과 비슷하다.= 현행의 고등학교 문법에서는 ‘되다’와 ‘아니다’의 선행하는 문장성분만을 보어로 설정한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7)에서 밑줄 그은 문장 성분도 필수적으로 쓰이므로 보어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현행의 고등학교 문법에서 ‘되다’와 ‘아니다’에 선행하면서 보격조사 ‘-이/-가’가 붙는 문장성분만을 보어로 인정한 것에 비해서 보어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게 된다. 결국 보어를 인정하더라도 보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남는 것이다.1.2.5 관형어? 개념 : 체언을 수식하는 문장성분이다. 관형사, 용언의 관형사형, 체언+관형격조사, 체언+체언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서 성립한다.관형어가 특정한 체언을 수식하면 그 체언의 의미가 제한(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관형어가 체언의 의미를 제한하는 방식에 따라서 관형어의 기능을 ‘제한기능’과 ‘비제한 기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첫째, ‘제한기능’은 의미적으로 볼 때 관형어가 중심어를 같은 부류의 여럿 중에서 ‘특히 어떠한 것’이라는 뜻으로 한정하여 수식하는 기능이다.(1) ㄱ. 이들 관형사형 어미는 체언을 수식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시간을 표현하는 기능도 함께 가진다.(63) ㄱ. 남편을 잡는 여자ㄴ. 남편을 잡은 여자ㄷ. 남편을 잡을 여자ㄹ. 남편을 잡던 여자(64) ㄱ. 맑은 날씨ㄴ. 맑던 날씨= 관형사형 어미는 ‘현재, 과거, 미래, 과거회상’의 시간을 표현한다. 이처럼 관형사형 어미는 체언을 수식하는 통사적인 기능과 더불어서 시간을 표현하는 시제 표현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65) ㄱ. 김일성의 사망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ㄴ. 할아버지께서는 독재정권의 타도에 평생을 바치셨다.ㄷ. 영수의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ㄹ. 철호의 아버지께서 우리 학교에 방문하셨다.= 이러한 점을 보면 ‘-의’ 자체가 특정한 격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선행 체언과 후행 체언 사이에 나타나는 의미적인 관계에서 격관계가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에 주목해서 ‘-의’를 관형격 조사로 보지 않고 체언과 체언을 이어주는 접속조사로 처리하는 견해도 있다.1.2.6 부사어? 개념 : 부사어는 관형어처럼 다른 문장성분을 수식하는 부속성분이다. 다만 관형어는 체언을 수식하는 데 반하여 부사어는 용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언어적인 단위를 수식하는 것이 특징이다.부사어는 서술어(용언), 관형어, 부사어, 문장 등을 수식하거나 문장이나 단어를 이어주는 문장성분이다.관형어 뒤에 부사성 의존명사가 실현되어서 관형어와 의존명사를 포함한 전체 구성이 부사어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1) 방 안은 숨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2) ㄱ. 사냥꾼은 노루를 산 채 잡았다.ㄴ. 시키는 대로 하여라.ㄷ. 그는 모르는 척 딴전을 부렸다.= 고등학교 문법에서는 이들 구성이 부사어로 기능하는지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형어+ 의존명사’의 구성 전체가 서술어를 수식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들 구성을 부사어로 봐야 한다.= 부사어는 부속성분이르모 일반적으로 수의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서술어의 종류에 따라서는 부사어가 필수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경우도.
메밀꽃 필 무렵‘메밀꽃 필 무렵’은 명실공히 이효석의 대표작인 동시에 식민지 시대가 낳은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강원도 땅 봉평 장터에서 대화 장터에 이르는 칠십 리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 길을 가는 세 인물의 과거사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연적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늙고 초라한 장돌뱅이 허 생원이 20여 년 전에 정을 통한 처녀의 아들 동이를 친자로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을 구조적 측면, 상징적 측면에 대해 분석해 보고 실제 학교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인가? 논의해 보았다.Ⅰ. ‘메밀 꽃 필 무렵’의 구조이 소설의 구조는 시간 경과의 과정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사건을 배열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중천에 있는 해 → ? 기울어진 해 → ? 부드러운 빛을 흐뭇히 흘리는 달 → ? 기울어진달이라는 시간적 배경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봉평에서 대화까지 이르는 칠십 리 길의 공간적 배경의 이동을 드러낸다. 결국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때에 봉평을 출발하여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 들판과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진 밤의 시간이 소설의 결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이 작품의 서두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봉평의 여름 장날, 파장 무렵 장돌뱅이들이 물건을 거두고 다음 장터로 떠날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 중에 충주 집을 중심으로 한 허 생원과 동이 사이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갈등은 좀 있다가 동이가 허 생원의 나귀에 탈이 난 것을 알리러 헐레벌떡거리며 와준 것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된다.해는 저물고 작품의 중간 부분에서는 대화 장터로 길을 떠난 직후 허 생원의 쓸쓸한 장돌뱅이의 반평생이 소개된다. 그리고 메밀 꽃 핀 달밤의 섬세한 배경묘사와 더불어 봉평에서 제일가는 일색이었던 성 서방네 처녀와 그 무섭고도 기막힌 밤의 인연에 대한 회고담이 이어진다. 이 때 동이는 앞에서 혼자 걷고 있었기에 이 말을 듣지 못한다.어느덧 달은 기울고 결말 부분에 이르러 허 생원이 동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 서두부분에때 허 생원은 동이가 자기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물에 빠지게 된다. 동이의 등에 업혀 따스한 부자지간의 정을 느끼며 허 생원은 나귀 이야기를 한다. 즉 서두에서 허 생원과 동이 사이에 발생됐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고 부자관계일지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육친의 정으로 발전되고 마침내는 동이 모친의 고향과 왼손잡이인 동이의 특징 들을 근거로 부자관계의 발견이라는 행복한 귀결을 짓기에 이른다. )Ⅱ. ‘메밀 꽃 필 무렵’의 상징적 해석?∮ 물레방아= 첫 만남의 장소인 물레방앗간의 물레방아의 원형은 또한 허 생원과 처녀의 끊임없는 방황을 상징 하고 있다. 물레방아의 끊임없는 회전은 그리움과 죄의식의 반복이며, 그들 관계의 숙명성을 드러내고, 나아가서는 윤희적인 만남을 상징하고 있다. )?∮ 나귀= 이 작품에는 주인공 허 생원과 함께 그와 정서적으로 융합하는 동물인 ‘나귀’를 하나의 상징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외모 역시 초라한 행색으로 일치하여, 김 첨지의 당나귀를 보고 암샘을 하는 것과 강릉 집 피마에게 새끼를 얻은 것은 주인인 허 생원이 충주 댁에게 마음을 두는 것, 허 생원이 성 서방네 처녀와 단 한 번의 인연에서 동의를 얻은 것과 일치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물에 빠진 허 생원이 나귀 생각 때문에 물에 빠졌다고 언급 하는 데서도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즉 허 생원의 길동무인 ‘나귀’는 허 생원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다.?∮ 좁은 산길과 큰길= 의사소통이 불편할 만큼 좁은 산허리 길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부자로서의 존재확인을 용이하게 하지 못하는 삶의 불구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에 산길을 벗어나 새롭게 들어서서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란히 함께 걸을 수 있게 된 ‘큰길’은 새로운 가능성 모색의 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띠게 된다. 좁은 ‘산길’이 닫힌 공간이라면, 넓게 트인 ‘큰길’은 열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큰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허 생원과 동이는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지며 그 같은 자유로움의 공간에서 동이는 양자 간 부자확 요소로 ‘왼손잡이’를 들 수가 있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허 생원과 같이 동이도 왼손잡이라는 것은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삶을 상징한다. 왼손잡이가 유전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둘이 왼손잡이라는 것이 독자들이 작품을 읽는 가운데 허 생원과 동이의 삶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러한 장치의 의미는 충분히 드러나는 것이다. 즉 왼손잡이는 이 작품 속에서 동이와 허 생원이 친자임을 상징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달빛과 메밀꽃의 백색 이미지= ‘메밀꽃 필 무렵’의 압권 부분은 소금을 뿌린 듯한 달밤의 메밀꽃 정경)이라는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과 메밀꽃의 상징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의 상징성은 배경 혹은 그 배경과 유사한 사물의 이미지를 띠고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상징적인 배경을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자연배경의 묘사가 자연스럽게 상징성을 띠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 작품에서와 같이 달밤의 정경 묘사나 백색의 메밀꽃 이미지와 같은 배경의 설정은 허 생원과 성 처녀와의 원초적인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Ⅲ.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있는 것을 부정하고 없는 것을 설명한다.’는 루소의 말은, 오늘날 우리 중등학교에서의 문학 교육 실태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문학작품을 문학으로서 이해시키지 아니하고, 불필요하거나 틀린 지식들을 암기하도록 강요하여 학생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오히려 억압한다. 문학작품의 감상과 이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학 교육은 이미 문학 교육이 아니다. 문학 교육에 대한 반성이 적지 않지만, 대개는 원론적인 비판의 되풀이에 그치고 있다. 문제의식을 가진 문학교사들도 실제 문학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 모르고 있다.)실제로 이번에 교육실습기간에 살펴본 참관 수업에 있어서도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작품의 성격, 시점, 배경 제재, 주제 등을 학생들에게 암기하고 설명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수업이 계속된다고 다음과 같은 수업을 생각해 보았다.∮ 시간과 공간구조에 초점을 둔 작품 감상우선 이 작품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매우 완벽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 입각하여,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서부터 달이 기울어진 밤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적 흐름과 등장인물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봉평에서 대화까지 가는 길 즉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이 작품에서 제시되고 있는 시간과 공간구조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시간적 배경은 여름날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후텁지근하고 불쾌한 여름이지만, 달이 뜬 밤은 낭만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강원도 땅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칠십 리의 밤길로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에 허 생원의 과거와 동이와 동이 어머니의 과거가 교묘하게 삽입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강원도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 즉 이 공간은 단순히 인물이 이동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허 생원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소이며 또한 허 생원의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부각시키는 낭만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자연은 그들에겐 환상의 세계이면서도 현실의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달밤에 허 생원이 떠올리는 과거의 연분 이야기는 떠돌이 인생의 인연이라는 작품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봉평에서 대화로 가는 이 좁다란 길과 다시 넓게 트인 길에는 작가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좁은 길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나란히 줄 서서 가게 함으로써 동이는 맨 뒤에 오다가 생원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만약 생원의 이야기를 동이가 들었더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바로 확인하려 했을 것이며 이야기는 통속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이효석의 치밀한 구성에 의해서 이야기는 동이와 허 생원이 부자지간일지도 모른다는 암묵적 기대감 속에서 막을 내리도록 한다.이 작품에 스며들어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기 보다는 활동을 통해서 몸소 파악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봉평에서 대화로 가는 여정’까지를 4컷 만화로 간략하게 그리게 하여 작품의 줄거리도 같이 파악하면서 만화 속에 시간과 공간구조를 분석한 그림이 들어간다면 자연스럽게 이 작품의 시간과 공간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러한 활동은 개별적으로 하기보다 5~ 6명 정도 모둠을 만들어서 학생들끼리 시간과 공간구조에 관한 토의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4컷 만화도 모둠별로 협동하여 함께 그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토의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레 공유할 수 있을뿐더러 작품의 시간과 공간구조에 초점을 둔 감상들이 여러 가지 측면들로 나올 수 있어서 학생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작품에 쓰여진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이 작품은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작품의 짜임새는 매우 정교하다. 충주 댁, 나귀, 메밀꽃 핀 산길, 달밤, 물레방아, 왼손잡이, 개울물 등의 에피소드들과 모티프들이 잘 어우러져서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작품의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간결한 대화와 상황 처리,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묘사, 순박하고도 낙관적인 어조는 이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언어로 만들어진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메밀 꽃 필 무렵에서 가장 인상적인 묘사로 흔히 인용되는 장면은 메밀꽃이 핀 달밤의 산길에 대한 묘사이다.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
20050794 김 영 은이청준의「잔인한 도시」, 에코페미니즘에 의한 비평Ⅰ. 에코페미니즘이란?“옛 지혜를 일컫는 새로운 용어”인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의 다양한 사회운동으로부터 성장해 나온 것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프랑쑤아즈 도본느 지만 되풀이되는 환경재앙으로 촉발된 환경파괴에 반대하는 수많은 항의와 운동을 통해 비로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에코페미니즘은 자연의 억압과 여성의 억압이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연’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억압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태 이론을 비교 분석하고 있으며 어떤 페미니즘 이론보다도 실천적 여성운동으로서 발전해온 ‘행동하는 페미니즘’이다.에코페미니즘의 등장 배경은 1970년대 초반 서구 사회의 두 가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 때문이다. 하나는 과학기술과 개발에 대한 회의로서, 산업주의에 대한 심층생태학적 비판, 경제적 제국주의에 대한 제3세계의 비판, 반핵운동이다. 다른 하나는 동등한 교육이나 경제력이 여성의 정치 사회적인 사회적 위치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현실에서 좌절되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출구로 남성의 생산에 대항하는 여성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찾으려 하였으며, 재생산(생식), 모성, 양육적 기질 등을 강조하면서 자연과 여성의 동일시를 시도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전통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과 생태주의의 연결은 에코페미니즘의 급진적 경향을 확장 시켰다. 이외에도 유물론적 에코 페미니즘, 사회주의적 에코 페미니즘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에코페미니즘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급진적 에코 페미니즘은 자연을 신비화하여 여신 종교의 부활을 주장하였으나 이미 영성까지도 상품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영성주의는 물질과 정신의 분리를 다시 초래하는 결과를 나았을 뿐이다. 또전통적인 페미니즘의 유산을 물려받으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에코페미니즘은 이제 비평 담론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에코페미니즘은 단순히 페미니즘이 발전해 온 여러 단계 가운데 하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전통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갑자기 몰아닥친 에코페미니즘의 거센 바람 탓에 전통적인 페미니즘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느낌마저 든다. “살아있는 것들의상호 의존을 내세우는 생태학적 관점이 빠져 있다면 페미니즘은 실체가 없는 이론.“이라는 이네스트라 킹의 주장은 그렇게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1990년대는 가히 ‘에코페미니즘의 시대’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Ⅲ. 에코페미니즘과 국내의 문학비평 전개한국에서 생태 문학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독일의 생태시가 『외국문학』에 소개되고 김성곤이 「문학생태학을 위하여」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태 문학의 논의는 주로 생태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생태문학에 대한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는 현실에서 용어에 대한 논쟁이 우선적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는 환경문학과 생태문학의 구별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분류 방식에 의해 생태문학 내에서의 관점들을 여럿으로 나누어서 다루고자 한다. 이 때 눈에 띄는 것은 국문학자들의 분류에서 생태여성주의 관점이 거의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김용민 역시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영국의 독문학자 재퀴 호프가 동독 작가들의 소설을 생태학적 관점에 따라 다섯가지로 분류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의 한 관점이 페미니즘적 생태주의 관점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그것을 호프는 남성적 특성(자기 주장, 경쟁, 이성주의, 물질만능주의, 발명 욕구)과 여성적 특성(아이 돌보기, 협동, 직관, 신비스러움, 자연과의 친화)으로 대립시켜 현대 산업사회가 남성성 특징에 주도되어 온 것을 비판하는 페미니즘 작품들, 볼프의 『카산드라』와 모 생태여성문학의 논의는 거의가 이 같은 본질주의 적, 이분법적 구도를 그대로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이덕화의 「여성문학과 생명주의」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구도를 이론의 틀로 삼아 여성성의 우위를 보여주고자 한다. 정진규의 시들을 생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장정렬 역시 이러한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정진규의 시들에 나타나는 자연의 여성적 은유들은 또 다시 여성의 몸을 자연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리고 이를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간(남성) 화자, 시인의 관점을 드러냄으로써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순진은 생태주의에서 보살핌의 미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부드러움에 기초하는 보살핌의 원형은 모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생태학과 여성주의가 만나는 접점”임을 설파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성은 여성만이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것도 아니”며 “보살핌은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서는 한편으로는 모성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본질주의 입장과 동시에 이를 해체하는 논리적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과 환경의 문제를 시가 아니라 여성작가의 소설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조명하고 있는 한기욱의 「우리 시대의 사랑?성?환경 이야기」는 생태여성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생태적인 기획’을 좀 더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기욱은 공선옥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모성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본질주의적 여성주의와 ‘모계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보임을 지적하고 있다.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국내에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본질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특히 모성적 여성성을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생태여성주의가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맥락에서 볼 때 논의의 여지가 많고 상당히 제한적이며 소극적인 것으로 평가신이 석방되는 날 면회 오도록 연락해 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사내는 며칠을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효성 지극한 아들이 아버지의 출감 날짜에 맞춰 마중 나올 터이나, 아마도 편지가 늦게 도착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새장사인 젊은 사내는 그런 노인의 이야기에는 무관심하다. 다음날도 노인은 동일한 행동을 되풀이한다. 새 장사는 성업 중이고, 노인은 그 많은 참새를 어디서 마련하는지 궁금해 한다. 며칠째 숲에서 머물며 돈을 주워 새를 날리던 노인은 마침내 새장수의 비밀을 알게 된다. 새장을 떠난 참새는 공원 숲으로 날아가고, 새 장사는 어두운 밤 플래쉬 불빛으로 새를 잡는다는 것, 게다가 새의 날갯죽지 밑을 예리하게 가위질해 새를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내가 새를 잡던 어느 날 밤, 새 장수에게 쫓기던 새 한 마리가 숲에서 자던 노인의 품속으로 숨어들어 오게 된다. 이상하게도 노인을 겁내지 않았다. 그 새는 노인이 전에 방생한 새였다. 노인은 그 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행복을 느끼면서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위한 방생을 계속한다.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옥중 동료들과의 언약을 기필코 실천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 장사에게 갔다가 그 새를 발견한다. 속 털이 잘려나간 새는 닥쳐올 추위에 버티지 못 하리라 생각한다. 노인은 6개월 분의 노역비를 지불하고 그 새를 사서 고향으로 간다며 남쪽으로 향한다.§3. 인물분석·사내 : 오랫동안 복역하다 출옥한 죄수.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옥중 동료와의 언약을 지키는 인물.·장수 : 풀어준 새를 다시 잡아다가 파는 사내. 우리 시대에 인간 사슬을 만드는 자로 은유된 인물.Ⅴ. 에코페미니즘과 「잔인한 도시」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는 인간의 위기이며 문명의 종말이고 생태학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환경의 위기는 전 지구적 현상으로서 최근 생태 및 생명문제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는 문젯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이컨다는 남성을 동양보다는 서양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이루어 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은 인간이 이루어 놓은 ‘문명’ 혹은 ‘문화’라는 이름 하에서 종속되고 착취당해왔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새 주인은 ‘방생의 집’이라고 하여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새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그 실상을 낱낱이 파해 쳐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님들이 날려 보내준 새들을 다시 잡아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새 주인은 날아간 새를 다시 잡기 위해서 새의 날개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방생한 새들이 멀리 날아갈 수 없게 한다. 그리고는 새벽에 숲속에서 새들이 곤히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후레쉬로 비추어 가며 새들을 다시 잡아서 자루에 무지막지 하게 넣는다. 새들은 놀랄 틈도 없이 다시 자루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방생의 집에서 타인의 손에 의해 잠깐 날개 짓을 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렇게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아무 죄 없는 새들은 그 목숨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새 주인의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작가는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두고 묘사하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새 주인은 에코 페미니즘 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모든 권력, 지식, 재산, 지위를 독점하는 존재로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부장적인 남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을 망가트리고 새들의 삶을 짓밟아 버리는 자연의 무법자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새 주인에 반하여 교도소에서 출감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늙은 사내가 등장한다. 이 사내는 ‘자유’라는 존재를 몹시 갈망하던 자로써 교도소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하여 아침마다 일어나면 공원에 떨어진 십원짜리 들을 주워서 방생의 집으로 가 새를 한 마리씩 사서 날려주곤 한다. 새를 날려주면서 교도소에 있을 동료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은 느끼면서 늙은 사내는 보람다.
구토지설을 읽고이번 주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설화인 ‘구토지설’을 읽어 보았다. 구토지설은 삼국사기 권 41 김유신 열전에 수록되어 있는 설화이다. 설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김춘추의 사위 품석이 백제군에 죽임을 당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고구려로 청병하러 떠난 김춘추가 엉뚱하게도 첩차로 오인되어 옥에 투옥되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온 청보 삼백 포를 고구려 장수에게 뇌물로 주자 그가 탈출의 암시로 ‘토끼와 지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김춘추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 속에서 토끼는 바로 김춘추가 될 것이고 자라는 김춘추를 놓아주는 신하들 용왕은 고구려의 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설화가 내포하고 있는 교훈을 알 수 있을것 같아서 흥미롭게 여겨졌다.토끼와 자라 이야기는 흔히 별주부전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고 있다. 어릴 적에 누구나 한번쯤은 전래동화 책에서 읽어 보았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그런 극박한 상황에서 지혜로운 꾀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항상 토끼의 임기응변에 감탄했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런 꾀를 발휘하지 못해서 항상 내가 손해를 본다.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일이 있을 때 동생은 요리조리 잘 피해서 혼나지 않는데 나는 그냥 묵묵히 있다가 꾸지람을 다 듣는다. 이러한 점은 내가 토끼와 같은 꾀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거 같다. 그렇다고 항상 거짓말로 부모님을 속여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는 거니까, 임기응변을 지닐 수 있도록 나도 지혜를 발휘해야 겠다.일연이 쓴 삼국사기에 구토지설 설화가 들어있고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이 설화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토지설 설화를 통해서 토끼와 같은 지혜가 필요함을 언급하는 바도 있을 것이고, 이야기 속의 상황 즉 서로 속고 속이는 세태를 풍자하는 것도 있는 듯 하다. 먼저 자라가 토끼를 속였고 이 사실을 안 토끼도 기가 막히게 자라와 용왕을 속이고 육지로 다시 되돌아온다. 이러한 설화가 그냥 쓰여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시에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도 현재와 같이 남을 속이는 일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누군가를 속이면 반듯이 자신도 속임을 당하게 된다는 원리를 이 설화는 일깨워 준다. 이러한 점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인정세태를 이 설화는 풍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급박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자신의 힘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삶속에서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 착안하여 우리는 이 설화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교훈을 가슴속에 담아 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