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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독후감머리말작가 주장의 요지글 요약작가 주장의 장점과 단점책에 대한 ‘나’의 태도끝 맺음말머리말기독교와 관련된 과거 중에 최근에 이슈가 되어 내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손꼽아 보면,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들 수 있겠다. 소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이 사건은 2007년 여름, 한국인 23명이 정부가 방문을 제한하고, 교리상으로도 일체의 선교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 한 무장단체에 납치를 당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 때, 비록 2명을 제외한 21명이 살아서 귀환을 했지만, 국내에서의 반응은 다른 여느 사건과 달랐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에도 후 폭풍은 계속되었다.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인 그 자체가 기독교의 ‘독단적인 성격’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더구나 한국정부가 피랍 한국인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무장단체 측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했다는 추측에 논쟁은 더욱 거세졌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다양한 원인들이 얽혀있는 문제이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문제를 짚어본다면, 그들이 이렇게까지 무리한 선교를 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부분으로 집중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그 원인으로서 첫 번째로, 개화기 때 선교사들 덕에 이만큼 영적으로 풍족하게 살게 되었으니 한국도 반대급부적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두 번째로, 성경에 나와 있는 땅끝까지 전하라는 가르침에 충실 하려는 기독교근본주의 정신 탓이라는 주장도 많다. 세 번째로 다른 신도들을 전도 할뿐만 아니라 기존 신도들을 신앙 훈련 차원에서 추진하는 방법이 선교콘텐츠라는 것이라는 것이다.여기서 나는 이러한 개화기 때, 아직 전혀 문명화되지 못한 그 낙후된 조선시대에서의 기독교가, 우리 한국인의 그 기독교 정신의 뿌리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생명을 걸만한 도전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사실 개화기 즉,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의 상황에서의 상황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 초 일본, 러시아 등 인근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얽혀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조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작은 관심은 급격히 소멸되어 버린다.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조선주재 공사의 지위를 강등시킨 사건이 잘 증명했다. 또, 초대 조선주재 공사의 직급을 파견 1년만인 1884년에 낮춰버린 미국 정부는 1892년 여름, 그 동안 제물포 항에 상시 정박시켜 놓고 있던 군함마저 철수시켜 버린다. 사실상 조선에 대한 미국 정부 차원의 관심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 조정은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서 충돌하는 위기 상황 앞에서 자신을 도와줄 상대로 미국을 지목하고 부국강병을 지도할 고문을 파견해달라고 여러 차례 미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대한 열강의 이해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미국정부는 조선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었다.두 나라 사이의 교역은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다. 조선의 빈약한 구매력을 고려할 때 미국인들이 교역을 통해 올릴 수 있는 수익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근대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이 필요로 하는 각종 설비를 수출하여 그런 대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고종과 친미적 관료들은 미국이 조선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원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노른자위 이권을 미국에 수여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증대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국은 별다른 세력과시 없이도 원하는 이권을 거의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 미국이 조선에서 차지한 이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광이었다. 조선의 금광은 그 질에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다. 미국이 차지한 평북의 운산금광은 조선의 금광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금 매장량이 세계적인 규모였다. 운산광산은 당시 아시아 최대규모의 개발이권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금광을 제외하면 미국이 조선에서 했던 사업가운데 가장 돈벌이가 되는 것이 석유판매였다. 존 록펠러 의 스탠더드 석유회사는 제물포경제적 의미와 파급효과를 상당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이해가 개항을 반대하는 강력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었던 터였다.결국에는 조미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이 작성한 초안의 제 10관에는 “교회를 세울 수 없다.”라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었지만 중국의 주재로 이루어진 미국과 한국의 회담에서 중국은 그런 조항은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은 교당을 설립할 수 없다는 규정을 넣지는 못하더라도 기독교를 명시적으로 허락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기독교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한 논리를 조선이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개항 이후 조선 조정이 사용한 논리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실상 조선 사신이 제 3자로 있는 동안 체결된 조미조약은 교회당은 물론, 종교나 기독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때 작성된 조미조약은 조선 측 입장을 상당히 반영하여 당시 동양 3국이 서양과 맺은 조약 가운데 기독교 선교를 명시적을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조약이 되었던 것이다.서구 열강과의 수교를 통하여 안전보장과 개화자강을 추구하겠다는 국왕 고종과 양무적 관료들의 의지는 확고하였다. 고종은 1882년 전국에 내린 유서를 통해 자신이 서양과의 수교에 나서는 입장을 정리 하였다. 여기서 확인되는 점은 첫째, 고종이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상황과 그 속에서 조선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상당히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과의 수교는 고종으로 대표되는 조선 조정이 그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한 가운데 추진되었다. 셋째, 고종은 기독교를 삿된 가르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넷째, 고종은 만국공법의 정신에 의거한 조약과 기존의 반기독교 칙령을 집행하여 기독교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 등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점은 매우 내 것은 지키면서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추진하자는 매우 실용적인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옛 것을 바탕으로 새 것을 수용한다는, 구본 신참의 자세국인이 해당국 영사관에 의해 충분히 통제 받는 조건하에 부여될 수 있는 특권이었다. 따라서 미국 영사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미국시민은 사실상 어떤 법적인 통제도 받지 않는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지방관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지역에 있는 미국인은 자신의 관할권 밖에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영사를 통해서도 적절히 통제할 수 없는 초법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해당 미국인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그의 존재는 내륙의 지방관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개항장이나 탄광 등 외국인의 거주가 허락된 지역을 벗어난 지역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거주하는 서양인은 선교사들 외에는 없었다. 결국 내지에서 지방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선교사들이었다.외국인들의 내륙 여행과 거주가 빈번해지면서 치외법권을 누리던 선교사들과 조선의 법을 집행하는 지방관들 사이의 충돌이 매우 잦아졌다. 이러한 충돌에서 생긴 갈등,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들인 정치, 외교적인 노력을 “교안”이라고 일컫는데, 이러한 교안 문제가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조선정부는 선교사들과 협약을 맺는 등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교사, 교민, 지방관, 조선정부의 행동을 명확하게 하고자 했던 이와 같은 정교협약들은 조선정부가 점점 더 불리한 입장이 되어 가는 상황에서 맺어진 것들이었다. 조불조약이 맺어진 직후만하더라도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약과 프랑스의 외교력이 어느 정도까지 선교사들의 안전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장은 반대로 되어갔다. 치외법권이 선교사들의 신분과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공사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 점점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선교사와의 관계에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불리해지는 쪽은 조선 정부였다. 예를 들어 황해도에서 벌어진 프랑스 선교사 빌렘 신부의 치외법권의 남발로 인한 사건, 그리고 제주도에서 일어난 참혹한 살육이 일어난 이들 “진보당” 혹은 “개화당”은 개항 이전부터 청을 통해 전해진 서구문물에 관심을 가졌던 북학파 계열의 개화사상개화부터 영향을 받았다. 일본과의 수교 이후 그들은 급격하게 근대화한 메이지 일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구미 문명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개화당은 서구와의 수교 이후에는 미국과 유럽을 직접 목격하고 서구 문명의 도입을 정치적 목표로 삼게 되었으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일본을 개혁의 모델로 삼았다. 중국 양무론의 영향이 개화 조정을 압도하는 가운데 일본과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온건 개화파와 다른 길을 걸으리라는 것을 예고했다.진보적 개화지식인들이 미국 선교사를 만나 미국과 기독교를 알게 되고, 선교사와의 관계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게 되는 과정은 그 집단의 지도자였던 김옥균과 미국 선교사들의 관계를 통해 잘 살펴볼 수 있다. 김옥균이 만난 선교사 가운데 미국 감리교 선교를 일보에서 처음 시작한 로버트 매클레이 부부가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과 인연이 되어 김옥균은 부부와 깊은 친분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영어를 매개로 해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에서 맺어진 관계였다.불교신자이자 한학자였던 김옥균은 처음에는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기독교보다 불교에 관하여 토론하게 즐겨 하고 조선개혁을 선불교와 연결시켰다. 사실 종교적 입장은 논외로 치더라도, 개화당의 입장에서 기독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극히 위험했다. 그러나 세 번째로 김옥균이 일본을 방문할 때부터 그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기독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여 일본에서 기독교 및 미국 선교사와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 그는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이러한 극적인 태도 변화는 최초의 서양 상주 외교관인 푸트가 조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를 배우고 미국 선교사와 교류하여 미국 공사관과의 관계를 더욱1
    독후감/창작| 2016.10.17| 34페이지| 3,000원| 조회(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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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
    “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 독후감[목 차]서론본론악의 신비에 관한 두 가지 기독교 사상의 뿌리아우구스티누스의 일원론 전통이레니우스적 신정론 유형두 신정론의 대치점과 오늘날 신정론실존적 경험에서의 악 그리고 고통의 신정론결론[ 참고 목록 ]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 존힉 지음, 열린책들 출판, 2007고통과 악, 존 헤이글 지음, 생활성서 출판, 2003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민음사 출판, 200821세기 지(知)의 도전,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청어람미디어 출판, 2003서론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고통과 악은 언제나 동반되었던 사실이었고 그 고통과 악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질문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 모두 고통과 악에 대해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의 역사’ 또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특히 기독교인에게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개개인의 신앙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이른바 믿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역사를 통해 인류는 자연재해를 통한 무의미한 죽음 앞에서 무력한 분노를 토해 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재해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악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와 차원을 부여하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체르노빌 등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현대의 ‘악’한 사건들은 예전에 비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생존의 문제, 실존적인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다.‘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 책 머리말에서 저자가 쓰고 있듯이 “악의 존재는 그 존재에 대해 무언가 쓰는 것에 대해서도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그 이유는 너무 덜 써도 또한 너무 더 써도 똑같이 재앙에 가까운 일”이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무언가 쓴다는 것은 이미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악의 문제는 강력하고 직접적으로 기독교인의 믿음에 위협이 되므로 결국 기독교 입장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악에 대해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역사적으로 기독교에서 설명하는 도구적 입장에서 보는 관점은 이레니우스에게도 적용된다. 이레니우스도 분명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악에 대한 문제를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이 타락의 사건이고 그렇기에 인간은 그곳에서 추방되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와는 달리 그 사건을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으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적인 차원에서 겪은 일이라고 이야기 한다.그에게 있어서 고통과 악은 인간이 진정으로 성숙해갈 수 있는 환경이며 하나님은 부모와 같은 존재로 인간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 과정신학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레니우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미성숙한 창조가 신의 전능성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와 관계 맺고자 하는 신의 아름다운 의도로 설명하고 신은 한없이 선한 분이라는 전제를 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정론과 함께 그리스도교 주류 신학으로 편입시켜준다.헬레니즘 교부들뿐 아니라 신정론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만들어낸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적 신정론에서도 신은 한없이 선하며 전능한 분이다. 하지만 그 역시 심미적인 관점에서 악을 대했다. 지금 존재하는 이 세계가 가장 완벽한 세계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하나님은 컴퓨터와 같이 모든 존재 가능한 세계에 대한 주도 면밀한 계산을 마치고 그 가운데서 최상의 것을 선택하여 세계를 창조했다는 이론이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실제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은 단지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다.아우구스티누스의 일원론 전통아우구스티누스의 악의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1) < 악은 형이상학적으로 무엇인가? > 라는 질문을 이론적으로 의미하는 < 악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대체한다. 2)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어디서 오는가를 묻고, 자유 의지 변증을 답으로 제시한다. 3) 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그것으로 비롯된 임의성과 불완전성과 같은 악에 대한 답에 대해서 완전함의 원리를 통해 보여준다. 4)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정론에서은 것, 풍부한 것만큼이나 빈곤한 것을 모두 창조하여 신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화합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는 것이다.또 다른 측면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나타난 미학적 주제는 “창조주의 궁극적 입장에서 그 총체성을 볼 때 우주는 온전히 선하다는 그의 믿음을 가리키는 것” 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악의 존재도 우주 전체의 선의 일부이자 악도 우주 전체의 복잡한 완전성에 기여하고자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의 미학의 핵심은 우주를 질서 지어진 예술 작품으로 여김으로써 창조의 아름다움과 적절성을 놓치려 하지 않고, 악도 아름다움의 관점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이레니우스적 신정론 유형라틴 교부들과 구별되는 동방교회적 입장을 분명히 확립시킨 사람이 바로 이레니우스인데,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전통과 논지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먼저 이레니우스는 신의 형상과 인간 안의 신의 유사성을 구별하였다. 인간의 육체적 형상 안에 거하는 은 분명히 창조주와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지적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고, 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한 인간의 마지막 완성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이레니우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유사성과 형상 안에서 창조되었고 성령의 감동으로 인하여 영적이고 완전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만일 성령이 영혼에 거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영혼은 사실 동물적인 본성을 지니고 육체로만 남아있고 불완전하며, (신의)형상은 지니고 있으되 성령을 통하여 유사성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을 둘로 나누어 본성을 쪼갠 것은 이레니우스는 인간을 신이 자신의 가장 큰 선물을 수여할 수 없는 근원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인용해 보자면 “신은 태초부터 인간에게 완전함을 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창조된 인간은 그것을 받을 수 없었거나 혹은 그것을 받았지만 수용할 수 없었거나 그것을 수용하였으나 간직할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이레니우스에게서는 인간의 유한함과 유약함라는 의미에서 자유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윤리적 원리들과 가치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의 개념을 확장하고 확립해 갈 때, 예측 불가능성의 요소를 포함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는 행위를 결정할 때마다 재형성되는 자아를 인정해가면서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자유의지 변증을 하지 못하고, 키에르케고르의 “신이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철학이 옮길 수 없는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십자가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더 탐구해야 할 주제가 있음을 시사 한다.그리고 최근 고통과 통증에 대한 주제를 심리학적, 의학적 서적들과 이에 대한 과학적 입장을 철학자들이 더 넓은 문제인 악의 문제와 연계시켜 다룬 연구 결과들이 급증하고 있다. 대략 100 여 년 전부터 신체적 통증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그 당시 널리 받아 들여진 최초의 이론은 통증이란 감각 기관에 가해진 지나치게 큰 자극에 의해 나타난 과부화 현상이라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차가움, 뜨거움, 촉각의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과 별도로 존재하는 통증 수용 신경의 존재에 대한 축적된 증거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거부되었다. 그 후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의해 통증 시스템이 자극되는 메커니즘을 자극의 종류에 따라서 분류하거나 함으로써 통증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통증은 단순한 신체적 신경학적 사건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통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까지 포함한 경험으로서의 통증이 아니다. 그리고 고통은 정확하고 일정하게 통증에 수반되는 현상이 아니라 개인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시간마다 다르다. 통증, 고통 그리고 거기서 출발되는 생물학적 가치, 통증에 대한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저자는 흄의 사상을 이용하여 더욱 깊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흄은 살아가는데 왜 통증이 존재하며, 잘살기 위해 필요한 행위들을 쾌락의 감소로 대체하면 안 되는지 물음표를 던진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 과학의 도움으로 생리적 통증 능은 해결 불가능을 낳는다는 이행에 따라 악의 문제는 형이상학적으로 잘 이해한다. 신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것은 현 실재로 이루어지며 이 현 실재는 창조성이라는 자기 고유의 결정 영역을 가지게 각 현실재가 신의 의지에 위배될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악의 발생 가능성이다.다른 한편 신의 전능 개념을 상대적 전능이라 한다. 전통적 신의 완전에서 비롯된 전능은 힘의 독점을 의미하며 이 힘의 독점으로 말미암아 현실세계는 종국적으로 아무런 자유를 가 질 수 없기에 이러한 신 이해는 현실 경험의 괴리를 가져온다. 그래서 과정신학은 신의 전능의 개념을 수정한 것이다. 이 수정된 전능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을 말하며, 타자에 의해서는 초월될 수 없고 자신에 의해서만 초월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신은 동그란 네모를 만들 수 없으며 호랑이의 특징이 없는 호랑이를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논리적으로 불가능 한 것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행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은 이해 가능한 최대의 힘을 소유한다.현실 악에 대한 변혁 의지를 유효하게 한다. 현실재의 자기 결정의 힘, 즉 자유가 있는 한 악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윤리적 응답을 할 수 잇다. 즉 현실재의 부정적 포착은 경험되는 자료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이기에 더 큰 준거 가치를 경험하기 이해 악의 경험을 배제할 수 있다. 이로서 악의 극복 가능성이 열린다.신의 양극성 이론은 기독교 신앙의 기저가 되는 성서적인 신 체험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물론 신 체험에 대한 성서의 표현이 다양하기에 여러 면을 갖고 있으나, 단적인 예로, 성서는 신의 불변성과 가변성에 대하여 증언한다. 이는 과정신학의 양극적 신 이해에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며 이 이론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에 성서적 전통과 적합성을 가질 수 있다.과정신학은 앞에서 기존의 신정론의 모순을 논리적인 부분에서 해결하지만 창조주 신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들을 완전히 뒤엎는다. 체 :D
    독후감/창작| 2016.10.17| 13페이지| 3,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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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역사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역사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독후감.이준 열사의 생애와 국권회복운동이 글은 1907년 화란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서 파견되었다가 순국한 일로 역사의 한 단편이 된 이준 열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순국한 그 장면뿐만 아니라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기독교가 그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게 그 결과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밝혀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이준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특함과 성숙함은 그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그 시기의 학자들, 김병시•최익현•홍우길과 시론을 나누고 대원군에 까지 가서 천하론 을 강론할 정도로 이미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이론, 생각이 정립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 때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항일적 대일관을 형성하여, 척사위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는 성인이 되어 북청서원의 별창 설립을 윤허 받아 북청 인사의 개화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그의 전통적인 세계관은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의 현실상황의 급박한 변화 속에서 변해갔다. 정부의 갑오개혁 후속조치 하나인 ‘법관양성소’를 제 1회로 졸업한 뒤 복잡한 정치 상황으로 다시 면관 되었고 일본으로 가서 법학을 2년간 수학했었다. 이준은 당시 보기 드문 근대 서구법학의 수용자가 되어있었다.이렇게 볼 때 이준은 젊은 시절 전통적인 구질서에서 벗어나 당시 유행처럼 되었던 개화의 흐름에 몸을 실었고, 법학을 공부하고 신여성을 재취하였으며 그 무렵 기독교에도 입교했었지만 반봉건적인 사상에 철저하지 못했고 일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도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본격적인 침략야욕을 드러내자 이준 열사는 공진회, 헌정연구회 등 활동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선도하게 되었다. 외교권을 늑탈하려는 일제의 침략행위가 가시화 되자 고종은 1907년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부당성을 폭로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wikipedia.org/wiki/%ED%99%A9%ED%95%B4%EB%8F%84" o "황해도" 황해도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9세에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8%80" o "한글" 한글과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B%AC%B8" o "한문" 한문을 배워 통감, 사략, 병서, 대학,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17세에는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18세의 나이로 수 백명의 수하를 거느리는 팔봉 접주로 임명되었다. 지시를 받고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D%99%A9%ED%95%B4%EB%8F%84" o "황해도" 황해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습격하였으나 끝내는 관군에게 패퇴하였다. 지역 유력자 안태훈(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5%88%EC%A4%91%EA%B7%BC" o "안중근" 안중근의 아버지)의 호의를 받아들여 김구는 그에게 몸을 의탁한다. 안태훈이 김구의 인품을 사랑하여 동학이 스러지게 되면 인재가 아깝다고 생각하여 비밀리에 밀사를 보내 불가침협정과 공동원조계획을 세웠다가, 동학이 패퇴하자 안태훈에게 의탁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일생 동안 사상적 영향을 받게 되는 척사위정계의 유학자 후조 고능선을 만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의병활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21세로 여행하던 김구는 황해도 치하포구의 한 주막에서 아침을 먹던 김구는 조선인 복장을 하고 셈을 치르던 일본인을 때려죽이고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EC%9D%B8" o "일본인" 일본인에게 시해 당한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AA%85%EC%84ki/1932%EB%85%84" o "1932년" 1932년 1월 8일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B4%89%EC%B0%BD" o "이봉창" 이봉창의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C%BF%84" o "도쿄" 도쿄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B2%9C%ED%99%A9" o "천황" 천황 암살 미수 및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C%A4%EB%B4%89%EA%B8%B8" o "윤봉길" 윤봉길의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C%A4%EB%B4%89%EA%B8%B8" l ".EC.83.9D.EC.95.A0" o "윤봉길"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을 지휘하였다.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1936%EB%85%84" o "1936년" 1936년에는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8F%99%EB%85%95" o "이동녕" 이동녕 등과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A%B5%AD%EB%AF%BC%EB%8B%B9_%281935%EB%85%84%29" o "한국국민당 (1935년)"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였고, 1938년 민족주의 진영 3당 통합 문제로 논의하던 중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D%98%81%EB%AA%85%EB%8B%B9" o "조선혁명당" 조선혁명당원 Hyperlink "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C%9A%B4%ED%95%9C&action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일제 강점기와 해방 초기에 걸쳐 교육, 경제, 언론, 체육, 정치 등 근대 한국의 민족•민주•통일 운동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선생이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를 전환시킨 기독교 신앙과 그와 관련된 기독교 활동을 살피는 데에 초점이 잇다. 조만식 선생은 기독교에 입신한 이후 곧 선교학교인 숭실학교와 관련을 맺었고 일본에 유학할 때에는 동경에서 장•감 연합교회를 설립하는 데에 협력하였으며, 귀국해서는 기독교학교인 오산학교와 숭인상업학교에서 가르쳤고 평양 YMCA 총무에 산정현교회 장로로 시무하였으며,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는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를 격려하며 그가 용감하게 그 반대투쟁을 선도하도록 뒷받침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일별해 볼 때, 대부분의 사회적•민족적 활동은 어쩌면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 글의 논지이다.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15세에 한문수학을 마치고, 러일전쟁이 이러나 대동강 중류 베기섬으로 피난하여, 그 때에 기독교에 입신하고 금주, 단연하게 되었다고 연보에 나와있다. 그러나 연보에는 없지만, 그가 선교사를 만나고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 것은 훨씬 이른 시기인 열 한두 살 때라고 회상하고 있다. 미국선교사의 빈번한 방문과 한때 그와 상업을 같이 한 바 있는 어린 시절 한정교의 전도로 그는 기독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숭실학교를 입학하게 된다. 숭실학교에서 다니면서 쌓은 신앙훈련으로 방탕했던 생활을 청산하고 전혀 새로운 생애를 걷게 되었다. 그 후 숭실을 졸업하자 일본유학 길에 올랐다. 그는 숭실학교에 있을 때부터 신학문에 매진하였고, 신앙으로 무장된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더 배워야 한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고당은 동경에서는 한인교회의 설립과 연합 그리고 영수의 책임을 맡았고, 귀국 후에는 오산•광성 등 기독교학교에서 성경교수와 설교를 통해, 산정현교회의 장로로 그리고 평양 YMCA의 총무로 활동하게 되었다.기독교인 조만식은 어떠한 신앙 그 돈을 벌기위하여 장사와 금광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금광 사업을 하던도중 그가 번 모든 돈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 때 그는 돈을 잃은 대신 평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상촌을 건설하는 것은 돈이 아닌 피와 땀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황무지 개발에 성공하여 개간 방법을 터득하고, 이상촌을 세워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동지애로 뭉치게 되었고 이 이상을 전 조선적으로 전개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1945년 8월 15일, 해방은 김용기 선생에게 자신의 이상촌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시켜 덴마크와 같은 이상국을 건설해보자는 포부를 안겨주었다. 농민동맹을 조직하여 정책으로 건의하려고 했지만 당시 좌익과 우익의 충돌하는 장이었던 정치에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김용기 선생도 한 때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곧 그는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1만 3천여평이나 되는 땅을, 삼각산 농장을 개간하였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김용기 선생은 농민단체에 출강하게 되면서 농촌 부흥을 위한 그의 사상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는 확실한 농사철학을 가지고 건국 초에 단시일 내에 농촌과 정부를 연결시켜 이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귀농 실천, 국가의 기초는 농업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진정한 농사꾼의 양성을 힘써 강조하였는데 정신에 대한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정부나 교회 혹은 특수교육기관을 통해 영농기술과 채산성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농사가 최고의 직업이며 농사가 최고로 애국하는 길임을 강조하고 농사일의 보람과 긍지를 심어줌으로 농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전쟁으로 그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고, 또 이러한 위기로 그는 늘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신앙이 더욱 깊어졌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인하는 신앙고백이 늘 뒤따르고 있었다. 종전 후 그는 용인의 에덴향을 건설하게 되지만 다시1
    독후감/창작| 2016.10.17| 14페이지| 2,000원| 조회(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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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고통의문제 평가A좋아요
    『고통의 문제』 독후감[ 목 차 ]서론본론하나님의 전능과 선함에 대하여인간의 악함, 타락인간의 고통결론[ 참고 목록 ]고통의 문제, C.S. LEWIS 지음, 홍성사 출판, 2007고통과 악, 존 헤이글 지음, 생활성서 출판, 2003서론C.S 루이스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꼽히는 명사로서 지성과 한계를 모를 상상력으로 비기독교인들의 지성과 감성을 매료시키고 있다. 루이스는 전통적인 기독교 변증과는 달리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현대인들에게 증명해낸다. 탁월한 논리력과 설득력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해 내는 그는 기독교인을 넘어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루이스는 전통적인 기독교 변증과는 달리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현대인들에게 증명해낸다. 그는 본문인 『고통의 문제』에서 고통, 악의 문제에 대하여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에 고통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풀어나가려는 시도를 한다. 사실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고통과 악은 언제나 동반되었던 사실이었고 그 고통과 악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질문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던 것이기도 했다.『고통의 문제』 1장에서 저자는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고통이라는 문제가 신을 믿는데 방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의 존재를 꾸준하게 믿어왔다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반증해준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장과 3장에서는 하나님의 전능과 선함이라는 속성과 고통이 서로 모순 되지 않음을, 4장과 5장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악함과 타락이 고통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6장과 7장에서는 인간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살피고 있으며, 8장부터 10장까지는 이 질문에 대해 몇 가지 가능한 질문들(천국과 지옥, 동물들의 고통)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이 책은 악과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 고통에 관하여 논리적인 답변을 하는 C.S. 루이스의 신정론이 들어있다. 이 책은 무의미한 죽음 앞에서 무력한 분노와 현대 어떤 행위자도 불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행위자 안에는 하나님도 포함되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내재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지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실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동일한 주제로, 루이스는 인간의 고통과 공과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기도로도 바뀌지 않는 저 가차없는 ‘자연법칙’은 일견 하나님의 능력과 선함에 강력한 반증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전능한 신이 인간의 고통을 간섭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피조물 자신들의 선택과 자연적 법칙에 의해 당하는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마음대로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 질서 및 자유 의지와 맞물려 있는 고통을 배제한다는 것은 삶 자체를 배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가치론 적으로도 고통이 없고 인간의 자유와 선택의 존엄도 사라진 세상보다, 고통은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자유 의지와 판단의 엄숙성이 존재하는 세상이 훨씬 의미가 있고, 옳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인간의 자유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억제된 전능 성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인 ‘하나님이 만드실 수도 있었지만 만들지 않은 세상들’이라는 가정은 하나님의 자유를 너무 의인화시킨 사고라 말한다. 인간의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하나님의 자유는 여러 대안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 중 하나를 고른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완전한 선은 추구할 목적을 결정하기 위해 숙고할 필요가 없으며, 완전한 지혜는 그 목적을 성취하는 가장 알맞은 수단을 결정하기 위해 숙고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하나님이 자유로우시다는 것은 그분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어떤 행동을 하시게 만들 수 없고 어떤 외적인 장애물도 어떤 행동을 못하시게 막을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모든 행동은 바로 그 자신의 선함을 뿌리 삼아 자라며 그 자신의 전능을 대기 삼아 꽃핀다고 표현하고 있다.하나님의 선함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함과 우리가 말하는 선함의 기준이 같을까 하는 질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전적 타락 교리에 반대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끔찍할 정도로 망가진 존재임을 인정한다.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 악해졌다는 통상적인 교리를 인정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기독교가 진단한 내용을 먼저 접하기 전에는 그 치료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주된 원인 중 하나를 지난 과거에 친절이라는 한 가지 덕목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 이외의 덕목은 그다지 좋게 여지 않으며 반대로 무자비함 이외의 악덕은 그다지 나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은 정신분석학이 대중의 정신에 끼친 영향, 특별히 억압과 억제 이론이 끼친 영향에 있다고 말했다. 이 이론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수치심, 위축감, 은폐욕구 등이 해롭다고 인식하게 만들어왔고 실제로 사람들은 그 감정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 노력들은 지금으로 봐서도 당연하게 여기지만 루이스는 기독교가 말하는 바는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의 자기 인식이야말로 유일하게 참된 인식임이 분명하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의 옛 의미를 회복시키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적 과제이며 우리가 스스로 악하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실로부터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하나님의 진노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개인의 감정은 당연하게 보인다.인간의 타락을 다루는 5장은 타락 교리를 옹호하는데, 하나님은 선한 분이고, 모든 것들을 그분의 유익을 위해 선하게 만드셨으며, 그분이 만든 선한 것들 중에 하나 즉 이성적인 피조물의 자유 의지에는 본질상 악의 가능성이 내포돼 있고, 피조물들은 그 가능성을 틈타 악해졌다. 아담의 타락을 죄 없는 순수의 지위를 박탈당한 사건으로 파악하며, 아담의 죄는 유전되지 않는 획득형질 이상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악한 욕망에 의해 지배 받는 인간성이라는 유전 인자를 획득하게 되었고, 그것은 유전에 의해 모든 세대에게 전달된다. 하나님께 반역하고 일탈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선’이란 본질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 영혼은 더 이상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더라도 이런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상실되어 버려, 인간은 고통과 노쇠와 죽음을 겪게 되었다.루이스가 주장하길, 이러한 과정은 지금 한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단순한 타락과는 양립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종의 지위를 상실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인간 특유의 고유한 본성을 상실해버렸다고 정리한다.인간의 고통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6장에서 루이스는 하나님께 반역한 인간의 일탈 상태를 회복하게 하는 선은 사람이 자신을 창조자에게 지적, 의지적, 감정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은 반역적 인간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맡는다. 만사가 잘 되어 간다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 고통의 첫 번째 효력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본질적으로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전부 우리의 것이며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 두 번째 효력이다. 고통의 세 번째 효력은 자아 양도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성적인 피조물은 창조자에게 순종함으로써 피조물 본연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며 우리를 타락시킨 행위를 뒤엎고 아담의 반역을 역전시킴으로써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고통과 시련을 맛본다. 또 루이스는 고통의 구속적(救贖的) 효과와 기능을 다루는 장에서 하나님이 반항하는 피조물들이 만들어내는 순수 악을 구원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복합적인 선 즉 고난을 받아들이고 죄를 회개하는 데 이르는 과정을 논증한다. 저자는 한마디로 고난이 가져다 주는 구속적 효과는 반항 의지 감소 속에서 경험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마음을 세상에 안주시킬 장애물을 제거하며 우리 영혼의 나침반을 하나님 나라를 향해 고정시켜 준다.고통의 가능성은 앞에서 보았듯이 영혼들이 서로 마주치는 세계의 존재 그 자체에 이미 내재되었다고 설명한다. 인간들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의 의도는 고통이 우리 비위에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데 있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로 고통을 당하는 순간은 시련의 전 체계라고 할만한 것, 두려움과 연민에 의해 확장되는 그것의 중심점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잇는 고통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결론인간의 역사에서 20세기는 특별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 인간의 존재 방식이 극적으로 변화한 시대는 지금까지 없었다. 전도서 中 ‘해는 떴다가 지며 / 하늘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이 한 구절이 공감을 가지고 읽혔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가 전개됨에 따라 날마다 새로운 것이 계속 등장했고, 결국 20세기 전체는 전도서의 안티테제와 같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 변화는 모든 측면에서 가속도를 타며 진행되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20세기가 지닌 최대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테크놀로지의 전 방위적 발전,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산업 활동의 비약적 증대 등의 테크놀로지발전의 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지탱하는 과학이다. 20세기는 과학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일어난 지식 폭발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과학 지식의 대부분은 20세기가 되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가운데 신정론의 주제는 과학을 이용한 인간의 거대한 악에 맞서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개인의 악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네트워크 간의 발달로 인간의 집단적 광기가 재앙을 낳을 수도 있는 상황이 신과 악을 설명해야 하는 신정론에 있어서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다.“왜 신은 선하시다면서, 자신이 만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가." 『고통의 문제』는 이 길고 오래된 '고통'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인 관점에서 변증하고 있는 책이 :D
    독후감/창작| 2016.10.17| 8페이지| 3,000원| 조회(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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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 성(性)과 생명윤리 - “당사자간의 합의가 있는 한 자유로운 성적관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하라.
    성(性)과 생명윤리“당사자간의 합의가 있는 한 자유로운 성적관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하라.[ 목 차 ]서론본론성(性)적 메시지에 둘러싸인 그리스도인이 처한 현실자유로운 성관계에 찬성하는 논리성관계에 관한 성경 속의 말씀들자유로운 성관계에 반대하는 논리결론[ 참고 목록 ]루이스 스메디스, 안교신 역, 크리스천의 성, 서울:도서출판 두란노, 1997유계숙, 성의 의미와 성관계의 동기에 대한 대학생의 인식*, 대한가정학회지 제43권 4호, 2005서론현재 광고 산업과 미디어는 성(性)이라는 주제를 이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으로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느낌을 주며, 자신의 성이 개인의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열쇠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남녀 평등이라는 화두는 성(性) 역시 높이 평가하고, 그 가운데서 나온 가장 심각한 결과는 천 년 이상 서구 문화를 지배해 온 도덕 규범인 전통적인 성 윤리를 의문시하는 것이었다. 이 서구 문화의 전통적인 성 윤리는 바로 기독교를 기초한 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윤리를 받아들여 여전히 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생각들을 받아들여 성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다. 자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혼전불순과 혼외 관계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순결과 정조로 일관할 것인가? 이러한 두 가지 태도가 혼재하는 전환기가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당사자의 합의가 있는 한 자유로운 성적관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러 논의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당사자’의 정의는 아무나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결혼한 남녀가 될 수도 있고, 혼전의 연인, 혼외 관계, 동성애 관계, 성매매 문제 등으로 매우 다양한 논쟁을 진행할 수 있다. 또, ‘자유로운 성적관계’는 사랑을 하든, 안 하든 말 그대로의 사람 사이의 에로틱한 관계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서 이슈가 되는 성적관계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섹스를 겨미디어와 근접한 세대들은 급격한 속도로 이 풍조를 무비판적 수용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에 관한 문제도 전 세계의 기독교의 최대 이슈가 될 만큼 많은 국가에서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 지고 있는 문제이다. 극단적으로는 네덜란드의 경우 동성애가 법적 통과되자 뒤이어 근친상간, 수간, 미성년자 상간까지 법적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이다.이것은 이혼율이 차츰 증가해 가고, 독신 여성과 독신 남성이 증가해 가고, 결혼 연령이 점점 늦추어져 가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능력이 나아져 가고, 국가의 경제단위가 가족에서 개인으로 바뀌어 가는 등의 여러 가지 변화 요인으로 인해 사람들의 성생활 패턴도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이 결혼은 영원하리라." 고리타분하게 생각되는 이 결혼의 맹세는 3천여 년을 넘게 지속되어 온 기독교 및 유태교의 교리에서 비롯되었지만 20세기를 넘기면서 이 결혼제도가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성 개방 물결과 함께 여성들이 경제력을 갖게 되고, 육아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성 의식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성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가면서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은 혼인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표시로 성관계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 안에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성 인식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자유로운 성관계에 찬성하는 논리우리는 자유로운 성관계라는 말 자체에서 ‘원래’ 성관계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 전통적인 성관계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대부분의 세상에서 폐쇄적인 면모를 지녔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상이 오고, 원래 이성중심의 세계가 해체되고 남녀평등이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남녀간의 성관계를 가벼운 것과 가볍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 보기 시작했다. 가벼운 성관계, 이른바 ‘쾌락과 계약 중심 의 성 윤리’는 으로 중립적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행위도 그것이 단지 성적 행위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르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성에만 적용되고 엄밀한 의미의 성 도덕을 구성하는 도덕적 고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적 활동을 통해 타인에게 해를 주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 성 관계에서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어느 정도의 도덕적 한계까지 부여해준다. 이 요구를 위반하지 않는 한, 즉 성과 관련된 행위가 기만이나 착취 또는 강제가 없는 한, 그리고 타인에게 어떠한 해악도 가하지 않는 한, 어떠한 성적 관행도 도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 자유주의 성 윤리의 요지이다.더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자. 가장 최근의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 조사를 살펴보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의견은 작년 22%에서 18%로 감소 추세이고, “결혼 전 이성과의 성관계는 어떤 경우도 안 된다”는 의견은 작년 16%에서 14%로 점점 감소추세로 결혼과 혼전 성관계, 남녀 간 성문화 등에 대한 보수적 태도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도, 그리스도인들도 자유주의 성윤리에 편승하여 성이 그 자체로 상품화된 감성을 가지고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결혼 전 성관계에 대해서 많은 비율의 20대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결혼을 생각하면 성관계에 대한 문제가 크다 → 결혼 생활에 있어 성생활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 성적 불일치라든가 기타 성 관련 트러블로 인해서 이혼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 해서는 안될 요소이다. → 그러므로 결혼 전 성관계는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성관계에 관한 성경 속의 말씀들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사회풍조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며, 실천을 해야 될까라는 의문을 품을 때 우리는 첫 번째 방법으로 성경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성관계에 대한 구절은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 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른 해석이 존재함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일 때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자유로운 성관계에 반대하는 논리수 많은 시간 동안 기독교의 윤리는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이성간의 일부일처제를 정상적으로 생각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해 왔고 성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므로 “당사자의 합의가 있는 한 자유로운 성적관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예 제기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자유로운 성관계를 반대하는 기독교 본연의 논리에 대해서 알아보자.기독교의 성 윤리를 중심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성욕의 본질은 아이를 낳는데 있다고 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성욕이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때는 사회가 성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물러설 수 없는 선을 긋고 있다. 그것은 성욕의 충족은 한 사람으로 인해 결코 만족될 수 없으며 성욕은 반드시 어버이로서의 책임을 동반할 때 그것이 한 사람으로 계속해서 성관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관계는 단순히 남녀의 쾌락으로서만 그쳐서는 안되며 서로의 책임을 동반하는 관계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또한 성관계에서는 반드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 안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결혼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욕을 통해 성관계를 허락하심에 있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물은 반드시 혼전순결이라는 아름다운 과정을 통해 성은 더욱 아름답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중요한 논리이다.현대사회는 육체의 성관계와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리하여 보는 경향이 퍼져있다. 이 것은 효과적인 피임법이 널리 보급되고, 남녀차별 등을 타파하는 인권운동이 전개되면서 종족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성(性)의 목적은 친밀감이나 애정, 쾌락의 추구 등 정서적인 측면에 비중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의 논리에서 성관계를 하면 사랑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성관계가 이분리시켜 생각하도록 하며, 종종 성의 쾌락적 기능에 비중을 둠으로써 성교만을 성이라고 생각하는 등 그릇된 성관련 담론을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마지막으로 논점을 정확히 직관해 본다면 현재 우리는 사랑과 성을, 가족과 성을 나누는 담론에 기초하여 영향을 받고 살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측면의 성과 괴리가 생기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현대에서 성과 사랑을 결합시키는 태도, "낭만적 사랑"이라고 이야기되는 성-사랑-결혼의 결합은 근대의 발명품으로 인식되어 그것을 해체하는 작업 또한, 문학, 철학 등의 전 분야에서 이루어져 왔다.하지만 그것은 근대에서 이루어진 작업이 아니라 인간이 몇 천 년간 살아오면서 사람과 사람들간의 관계 맺음의 원리, 즉 윤리이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그 윤리는 하나님의 법에 기초한 확실한 잣대로서의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성(性)의 목적을 친밀감이나 애정, 쾌락의 추구로 두는 생각은 일어나는 기초적 가정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판단된다.사랑과 성에 관한 접근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함으로써 더욱 깊이 알 수 있다. 가족애나 동료애, 우애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연애감정’이라는 단어가 그 범위를 더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며 그 남자와 여자가 “연예감정”을 갖고 성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당사자의 합의가 있는 한 자유로운 성적관계를 허용해야 한다”라는 문장은 이 자체로 생식장치로서의 성과 쾌락장치로서의 성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성과는 다른 방향을 걷고 있다. 즉 무신론적인 길이며 오히려 여기서는 생식장치로서의 성과 쾌락장치로서의 성을 얼마나 구분하였느냐에 따라 성적 보수성/급진성의 정도를 판단함으로 정치적으로 조절하고 정의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이로써 합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성관계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적메시지가 모든 미디어를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는 현실을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있는가에 대각된다.
    독후감/창작| 2016.10.17| 6페이지| 2,000원| 조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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