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를 수용하는 우리들의 자세목차1. 세계화란?3. 글로벌 문화 확산의 어두운 단면4.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우리들의 자세2. 다양한 글로벌 문화의 모습5. 함께 논의해봐요세계화(Globalization)란?국경을 초월하여 국가 및 지역 간에 존재하던 문화,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정보 등에 대한 인위적 장벽이 제거되어 세계가 일종의 거대한 단일체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세계화(Globalization)다양한 글로벌문화의 모습학자들의 생각Joseph E. Stiglitz (노벨경제학상 수상)소수가 아닌 지구촌 모두가 행복한 세계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세계화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잠재력이 있다. 다국적기업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윤리적인 사고를 하고 모든 경제주체는 국지적인 사고를 버리고 더 글로벌한 차원에서 행동하고 세계화를 균형있게 그리고 공정한 방향으로 개혁하는 데에 노력을 기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중-우리들의 생각각 국의 주체적인 문화가 세계라는 하나의 모체 속에서 그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보존됨과 동시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고 생활에 유용한 면을 비판적이고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수도 있는 공존과 융합의 문화우리가 향유하는 다양한 글로벌문화텍스트-다양한 작품 문화생활양식 – 식생활 문화다양한 스포츠 !이데올로기 – 다양한 종교문화글로벌 문화를 지역과 민족의 특성에 맞게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글로벌 문화의 주체적 수용글로벌문화의 주체적수용우리의 향악기라고 흔히 알고 있는 가야금과 거문고는 외래악기를 우리 식으로 개량글로벌문화의 주체적수용쌍용 건설의 전통미를 강조한 한옥 아파트 영화배우 권용운의 한옥처럼 꾸민 아파트글로벌문화의 주체적수용한복의 아름다운 선을 살리면서 현대적 미를 살린 한복 드레스글로벌문화의 주체적수용글로벌문화의 주체적 수용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모어를 기록하여 보존하기 위해 한글을 기록문자로 수용하였다. 한국교사들이 현지에 파견되어 보급과 교육에 도움을 주고 있다.글로벌문화의 주체적 수용글로벌 문화 확산의 어두운 단면학자들의 의견“세계평화를 지지한다는 사람이라면 세계화의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경제학자 우석훈경제대국의 문화제국주의화문화의 세계화가 경제강대국인 미국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세계의 문화가 서구중심으로 획일화되는 현상이 우려됨세대간의 갈등 유발가능성젊은 층에 서구사상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전통사회윤리 속에서 살아온 고령층과의 세대간 갈등 유발민족고유의 전통문화 사멸위기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의 사멸위기.(한지,나전칠기,화각,옹기 등) 생활고가 심해 몇 안되는 제자들이 페인트공 일을 하고 있는 현실아름다운 고유의 전통문화민족고유의 전통문화 사멸위기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소수민족의 언어사멸위기동아일보 언어사멸위기에 대한 기사소수민족의 언어 사멸 위기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우리들의 자세경제적 이익만을 고려하는 선진국의 행태 전통문화 보존을 위한 국가적 지원 미약 언어사멸위기에 대해 해당국가와 선진국들의 방관적 자세부작용의 원인-국가적 차원개인의 무비판적 문화 수용 전통문화에 대한 모두의 관심부족 세대간 대화 기회와 이해노력 부족부작용의 원인-개인·사회적 차원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선진국은 약육강식의 경제논리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타 국가가 자국 문화를 보존해나갈 수 있도록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G20과 유사한 형태로 문화다자주의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2. 세계화의 물살에 휩쓸려 전통문화가 사멸하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하며 구체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2-1. 전통 공예인들을 위한 공방촌 다수 설립 및 판로개선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2-2. 학교 교육과정에 전통공예 도입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2-3. 장인이 존경받는 사회의 인식 교육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2-4. 외제 명품과는 다른 전통공예작품의 명품 인식 확산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3. 언어사멸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비용이 들더라도 보존의 노력이 필요하며 모범사례로는 다음과 같다. 일본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아이누족에 의하면 80년 대 언어인 모어(母語)를 사용하는 사람이 8명뿐 - 아이누족 박물관을 건립하고 모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침. - 그 결과 오늘날 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수백 명으로 증가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2) 인도와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도 언어보존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언어 되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도는 다 언어 정책을 마련했고 영국은 켈트어를 위한 언어 되살리기 운동을 벌이며 프랑스는 소수 민족 언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 육성함으로써 획일화된 언어 공용화에 대해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3) 사어(死語)가 살아난 경우도 있다. 영국의 코니쉬의 경우 1777년 사멸했으나 최근 복원되어 현재는 1000명이 제2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음. 4) 세계에서 가장 모어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은 파푸아 뉴기니아 무려 82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해결방안 – 국가적 차원개인이 비판적이고 주체적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수용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하고, 공익광고 등을 통해 선전한다.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공익광고를 하고 언론들도 전통문화 알리기에 앞장선다. 세대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화합의 행사를 마련한다. 예) 손자손녀와 함께하는 체육대회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향후 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놀랍고 축복인 것 같아.우리들의 한마디!마자ㅋ 세계화로 인해 그 지역적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어디서든 쉽게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어글로벌 문화는 좋은 점도 있지만 그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필요로 하지그 말에는 나도 동의해 그렇지만 그 뒤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해함께 논의해봐요지역의 전통문화가 글로벌 문화화 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는 현 세계경제체제 하에서 정당한가? 비판 받아야 하는가?타문화의 수용,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월인 문화와 철학,김덕삼,한국화술정보㈜ 우리는 이제 모두 다문화인이다,네이션 글레이저,미소사 사멸위기의 문화유산,전경수,민속원 다문화사회와 국제이해교육, 유네스코아시아,동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Joseph E. Stiglitz, 21세기북스 중앙일보뉴스 동아일보 신문 시사교양지 바이트칼럼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참 고 문 헌Q A{nameOfApplication=Show}
‘정의란 무엇인가?’ 를 읽고‘정의란 무엇인가?’ 가 낳는 우려이 책은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 것은 바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점이다. 베스트 셀러가 됨으로써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독자들이 늘어났다. 너도 나도 이 책을 읽었다며 어떤 컨텐츠를 접하였을 때 어설픈 비판을 하려고 들지 모른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비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의 익명성이 만나면 뜻하지 않은 논쟁들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사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무비판적으로 컨텐츠를 수용하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발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 언급한 한가지 우려를 제외하고는 이 책은, 정말 놀랍다.Michael J. Sandel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으로서 부끄럽다. 저자는 결코 나를 꾸짖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어 보이지만. 많은 반성을 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집필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답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 목적은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이 나를 관통하면서 여태껏 그러지 못했던 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책에서는 정의와 관련한 철학을 고민한 학자들의 사상적 측면을 살펴봄과 동시에 특정하게 가정된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저자 본인의 의견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내비친다. 정의는 각각 행복, 자유, 미덕 세 가지를 연관 지어 이해해볼 수 있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행동이 정의롭다는 생각, 정의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 정의는 미덕, 좋은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정의로운 사회라면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한 견자 자신의 견해와 다른 학자들의 생각을 마주할 때에는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그 말을 정당화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상황을 상상하여 제시하기도 한다. 마이클 샌델은 독자들을 책 속으로, 아니 철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다음에서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자유지상주의,칸트,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한 생각을 써보고 마지막에 총평을 내려볼 것이다.공리주의-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제러미 벤담 공리주의의 핵심사상은 간결하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그가 말하는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가리킨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리주의란 이런 사상이며 시험에 낼 지도 모르니 외우는 게 좋을 거다’ 라고 배웠다. 그래서 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철학은 철학자들이나 고민하는 것이라며 못 박아 버렸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공리주의의 특징 및 장단점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실제 사례를 하나 제시한다. (나는 뒤에서 이 책을 읽으며 왜 우리가 도덕적 사회 현상에 대해 철학적 혹은 내면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며 살아오고 있었는지 대해 내 나름의 철학적 진단을 자세히 서술할 것이다.)공리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구명보트 사건’에서의 세 남자의 행위는 한사람이 희생함으로써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기에 행복을 극대화하는 궁극적 목적에 기여했으므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론만 들었을 때는 명료하고 완벽해 보였던 공리주의 사상은 사례에 대한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가져온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행복을 수치화하고 각기 다른 가치를 단일통화로 나타내려 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과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고 가치의 질적 차이를 부정한다. 이러한 한계점을 다음 세대의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밀이 공리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끌어드린 자유와 고급쾌락과의(Utilitarianism)>(1863)에서 쾌락은 양이 아니라 질이며 계산 가능한 것이 아니며 선호도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나는 차라리 밀이 공리주의의 옹호하고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새로운 사상화 하여 주창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마이클 샌델의 말대로 그가 공리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도입한 새로운 이론은 오히려 공리주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행복극대화를 측정할 방법을 잃으므로써 벤담의 공리주의를 반박하는 셈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 판단이 편협한 정보에 기초하였다고 비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방학 기간 동안 밀의 저서인 ‘공리주의’ 와 ‘자유론’을 제대로 읽어보고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리주의의 대답인 행복을 극대화하는 행위라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자기소유와 자유지상주의자유에 대한 논의는 끝이 없다. 자유는 대개 국가의 역할과 함께 논의된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과 개인 간의 자발적 계약은 그 어떤 경우에도 존중받는다. 국가는 계약을 집행하고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며 평화를 유지하는 일만 하는 최소국가를 지향해야한다.’ 예를 들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부자들을 설득하는 것까지가 국가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신체와 사고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누진세, 콩팥 거래, 안락사 등의 사례를 고려할 때, 자유지상주의는 많은 도덕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자유지상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옹호자들을 비난했다. 나는 누구의 주장이 옳은 지를 고민하기 앞서 다른 의문이 생겼다. ‘OO주의’는 참 어렵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가치 판단을 하는데 그 판단에 근거가 되는 철학적 기준이 있으면 좋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런데 사례를 계속는 생명을 얻으므로써 모두의 행복이 증가하게 되므로 장기거래의 법적 규제완화를 주장한다면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던 사람들은 과연 이 문제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과연 어떤 선택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이 생긴다. 다시 말해 철학 대 철학의 대결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현상에 주목해 철학적 고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논의라는 것이다.이마누엘 칸트칸트는 인간이 존중받아야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 즉 행복의 극대화가 도덕의 최고원칙이며 정의롭다는 견해에 반박하였다. 칸트는 도덕이란 행복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며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라 하였다. 칸트는 정의와 도덕을 자유와 연관시켜 이해하였는데 그에게 있어 자유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며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우리는 ‘순수 실천 이성’을 연습하여 도덕의 최고 원칙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생각은 상당히 세련된 철학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자유에서 한 단계 나아가 실천, 연습 등 이성적으로 조절하여 체득화 하는 자유. 상당히 인상적이다.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는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칸트의 철학은 정말 마음에 든다. 그는 확실히 앞 시대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욱 나는 칸트의 사상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칸트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든 무리수를 많이 던졌다. 그리고 나는 칸트의 철학을 읽으면서 철학자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살짝 엿보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는 선행동기와 의무 동기라는 용어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는데, 내키지는 않지만 의무동기를 발휘하여 ‘순전히 의무감적 기초와 사상에 맞춰야 하는, 어찌보면 일관성을 위해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난을 피하기 위한 도구일까. 거짓말에 대한 칸트의 의견을 옹호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견도 재미있다. ‘진실이지만 오해를 일으키는 발언(친구를 쫒는 살인자 혹은 빌 클린턴의 예처럼)을 하는 것은 빤한 거짓말과 달리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오히려 칸트의 의견을 빌려 칸트를 옹호하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오해를 일으키는 발언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의 언어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텔로스아리스토텔레스는 근현대의 정의론이 여러 목적에 중립적인 정의의 원칙을 찾아내고자 한 것과 다르게 정의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그리고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가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안겨줄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을 견지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며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그리고 정의를 논하기 위해서는 조직 혹은 개인의 텔로스, 즉 목적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될 수 있는 점은 만약 조직 내에서 조직의 텔로스에 대해 이견이 존재한다면, ‘어떤 잣대에 맞춰 영광과 포상을 안겨줄 것 인가’ 이다.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의 텔로스에 대한 견해는 남달랐다. 일반적으로 정치는 ‘스스로 목적을 선택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 반박하며 정치의 텔로스는 ‘어느 목적에도 치우치지 않는 권리의 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좋은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미덕이 탁월하고 공동선을 숙고하는 사람이 최고 공직과 영광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뒤에서 저자가 미덕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지 않았다하더라도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지지한다. 그래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