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지식에 대한 전통적 3조 정의를 제시하고 설명하시오.1) 믿음무엇을 안다는 말은 믿음을 포함한다. 예를들어 ‘나는 이 사람이 여자라는 것은 알지만여자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그리고 믿음에는 근거가 없어도 된다.‘나는 하나님을 믿는다’을 예로 들어보자. 누가 왜?라고 물어도 ‘나는 그냥 그렇게 믿어’라고 하면 그런 것이다.2) 정당성정당화 한다는 것은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예를들어 A라는 주장을 한다면 이에 대한 B 라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정당성이다.그러나 B라는 근거제시로 B가 아닌 어떤것을 들어야 한다. B를 똑같이 제시하는 것은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 동어반복일 뿐이기 때문이다.그리고 B라는 근거제시로 A를 들어서도 안된다. 이는 순환논증이 되므로 증명이불가능하기 때문이다.3) 참됨명제가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 명제가 거짓인것은 잘못안 것이므로 이는 안것이 아니다.그것은 그냥 인식한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명제가거짓이 아닌 참이어야만 한다.② 우리가 지식의 원천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고 각각을 설명하시오.1)감각사람들이 안다고 주장하는 가장 분명한 방식은 감각기관에 의겨해서 주장하는 것이다.“저기에 책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나는 저 탁자를 보고있기 때문이다. 만질수도 있으며 사진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지식주장을 평가하는 일은 지각회의주의와 같은 몇 가지 문제에부딪치게 된다.2) 이성이성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떤 힘이나 능력이며, 이성이란 능력은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이해하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을 포함한다.다시말해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짐으로서가 아니라, “생각으로 이치를 풀어냄으로써”지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③ 우리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일에 대한 모사실재론의 설명을 제시하고 비판하시오.모사실재론은 ‘우리가 물리적 대상을 직접 알지 못한다’ 즉 사람이 아는 것은물리적 대상을 어떻게 모사하는 감각인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고대철학자 데모크리토르의 이론에 따르면, 나무가 그 자체의 작은 모사물들을 발산한다고하는데, 그 가운데 약간이 사람의 눈에 부딪침으로써 감각인상이 생긴다는 것이다.그러나 사람이 어떤 감각인상들을 지각한다는 것만 알 수 있다면, 감각인상 너머에물리적 질서가 있고 또 그 질서가 사람의 감각인상을 지각하든 않든 상관없이 계속실존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비판을 받는다.④ 사물의 존재를 감각경험 가족으로 설명하는 버클리의 관념론을 설명하고 비판하시오.버클리는 인간이 아는 것은 오직 감각인상들뿐이라며 관념론을 주장하였다.감각 경험들은 질서 정연한 계열을 이루는데 그 질서 정연한 계열을 하나의 감각 경험 가족이라고 버클리는 말한다. 물리적 대상은 감각 경험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감각 경험은 어느 감각 경험가족인가에 속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그러나 버클리는 신을 경험의 원인으로 도입함으로써 자기의 기본전제인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만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전제를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물리적 대상을 감각 경험 가족이라고 정의하지 않고 달리 정의할 수 있는 적극적 방법은없는것인가와 같은 비판을 받는다.⑤ 현상주의가 감각자료의 특징으로서 주목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고,감각자료 진술을 비판하시오.1)객관적이다.2) 감각자료는 물리적 대상과 달리 나타난 것과 다를수 없고, 추리하지 않고 인간이 직접아는 것이기 때문에(의식에 대한 매개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확실하고 정확하다.그러나 감각자료에 관한 진술은 우리의 경험 내용에 관한 진술이며,물리적 대상에 관한 진술은 우리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실존하는 안정되고 지속적인물리적 질서에 관한 진술이다.즉 물리적 대상은 감각자료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물리적 대상에 관한 진술이감각자료에 관한 진술로 번역될수 있는가? 와 같은 비판을 받는다.⑥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을 대비해서 설명하시오.분석판단은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다. 칸트는 분석명제는 주어안에 술어의 개념이포함된 것이기에 분석판단은 선천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한다.이와 반대로 종합판단은 ‘경험의 산물’이다. 즉 감각 자료를 모아 판단하는 것이기에개연적이고 경험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칸트는 종합명제는 주어를 벗어난 술어의 개념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는 명제이므로종합판단은 감성적, 경험적 판단이라 하였다.⑦ 선천적 종합판단을 설명하시오.선천적 종합판단은 칸트가 분석명제의 특징인 ‘선천적’인것을 통해 종합판단을 설명하려한 것으로, 필연적이면서 우리의 지식을 확장시켜가는 판단이다.칸트는 ‘선천적 종합판단’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물체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다.” 경험에 의하여 설명을 한다면“실험을 해 보니까 A, B ,C 중에서 A가 가장 짧았다.”라고 하는데이는 A보다 짧은 것이 있을 수도 있음을 내포한다.그러나 이는 “물체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직선보다 짧은 건 없다)는 명제와 같은 말이 아니다.이를통해 경험으로 알수 없는 명제 즉 선천적으로 알수있는 종합명제가 있고,이를 ‘선천적 종합명제’라고 칸트는 말한다.⑧ 자연법칙은 경험명제로서 보편적 가언명제의 형식을 가져야함을 설명하시오.자연법칙은 옳은 ‘보편적 경험명제’이어야 하고, 이는 ‘보편적 가언명제’의 형식을가져야 한다. 보편명제란 그 명제가 어떤 집단의 구성원 모두에게 예외없이 적용되는주장이다. 이런 보편명제는 가연형식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가연명제는“만일....라면.....이다”라는 형식의 명제이다. 이와같은 형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불변의 한결같은 존재와 관계는 없으므로 가정적 조건을 달아 공간과 시간, 둘 다 전혀제약되지 않는 적용능력을 가지기 위함이다.⑨ 이론의 입증과 반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시오.이론을 입증한다는 것은 A다음에 B가 일어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을 정당화 하겠다는것이다. 입증을 하기 위해서는 한 없이 관찰을 하면서 정합성을 찾고 이론들간의 관계성을찾으며 긍정사례를 누적해나가야 하는데, 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완전한 검증은 이루어질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론에 대한 입증은 한상 잠정적 승인이지최종적 승인이 아니다.이론을 반증한다는 것은 A다음에 B가 일어나는 것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어떤 명제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 없이 관찰을 해도 맞다는 것을 논리적으로추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뒤집기 위해서는 그 명제와 모순되는 사례를 하나만 모으면된다. 철학자 ‘칼 포퍼’는 누구도 까마귀가 검은지 검지 않은지 알아보기 위하여 모든까마귀를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흰 까마귀 한 마리만 발견되어도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진술을 반박할 수 있다며 이론에 대한 시금석은 확증가능성(입증가능성)이 아닌 반증가능성
①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이성은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한다.교회의 타락과 권위상실, 자연과학의 발전, 인간의 능력과 과학에 대한 신뢰를 하게 되면서내재적 변화가 생겨나게 되고,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이전까지의세계관으로 세계를 설명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문주의적 관점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종교개혁을 지나쳐 시민사회가 성립하게 되었다.위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아를 인식하게 되고 그에따라 개인의 의무가 아닌 권리를 주장하면서 개인의 시민권을 요구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자유가 확대되었다.또 이성보다는 신앙에 우위를 두며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고, 자국어를 공식어로 사용하고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중세의 권위를 부정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사회계약론이등장하게 되었다.* 과학혁명적 관점(1) 과학혁명 전과 이후의 우주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 과학혁명 전 : 형이상학적 믿음(권위에 대한 맹목적 믿음)속에서 과학체계를 짜맞춤∴ 믿음, 권위 > 과학- 과학혁명 후 : 기독교 믿음체제 유지위해 과학연구 하는 것이 아닌 과학적사실과실험. 발견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이전의 잘못된 과학이론은 과감히폐기∴ 과학의 권리 우선시(2) 모든 운동의 근원은?- 고대 : 정신적, 지적인 실체에 의하여 (형의상학적 실체) - 목적론적- 근대 : 수학적으로 파악할수있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현상하는 힘(3) 실험관찰의 방법- 고대 : 목적론적 신념에 따라- 근대 : 실험관찰 (과학.수학적 방법)∴ 목적론적 신을 제외하고 과학적 사실과 발견을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연구하기 시작?* 모던하다는 것은- 옛날의 권위와 기존의 세계관에 복종하고 예속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깨달음이 발견 되었을 때, 예전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그것을 개개인 모두가 속속들이 받아들이는 것.- 모든것을 수량화하여 수학적, 이성적으로 생각하려하고, 수학법칙을 세우면 자연현상인간, 사회현상, 마음의 문제까지 모든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 전근대적인 현상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아직 전근대적 정치적 행동을하고있구나하고 생각하였다. 여야모두 뚜렷한 명분이나 검증보다는 모호한 여론조사,맹목적인 물갈이, 실질위주의 공천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라를대표한다는 이들이 국익보다는 사익을 중시하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국민을 위한 공천이라 말을 하지만 실은 자기자신들의 권위의식을 유지키위한 것이라생각되었다.* 근대적인 현상한 여론조사 사이트의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데 몇일전 ‘청소년 폭력의 심각성과 이에 따른자살률‘이란 제목으로 내가 만약 피해학생이라면 어떤 심경일지 그 고통은 어떨지를평가하는 항목이 있었다. 청소년 왕따와 폭력사태, 자살률, 또 다른예로는 국민의 행복지수와 국가의 만족도등과 같은 것들을 통계화할수 없는 개인적 고충, 행복 등이 있음에도불구하고 궂이 수학적방법에 기반하여 통계화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모던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② 데카르트의 회의란 중세적 상식과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견해로부터 이성을 해방시키기위한 방법으로 편견에 대해 회의하면서 “그것이 과혁 진짜일까?”라고 되묻는 행위이다.오늘날 우리 현대사회에서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돈, 명예, ...) 여러가지가 있지만나는 권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사회적 지위에 따른 권위와 이에대한 복종)우리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고 더 높은자리, 더 인정받는 직업과 자리에나가기 위해 공부하고, 열심히 스펙을 쌓는다.그리고 “높은 자리에 앉으신 분”, “개천에서 용났다.”, “출세했다”라는 말을 쓰며벼슬, 고급인것처럼 생각하며 그런사람들은 대단하다여기고 쩔쩔매며, 그 사람들 역시우쭐대며 힘을과시하려든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을 시민이 양도할수 없는 권리를그들에게 나눠줘서 계약에 의해 사회를 이루었다는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그런사람들은우리와의 계약에 의해 맺어진자로서 시민을 위해 마땅히 일을해야 할 의무를 지닌자들이며우리는 마땅히 그들이 베푸는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는것이다.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높게보며 대단하다고 쩔절맬 필요도 없으며, 그들의 권위에 대해복종을 할 이유가 없는것이다.“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자연법사상을 우리시민모두가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인식하였음좋겠다.③ 데카르트가 말하는 사유와 연장의 개념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나오는 개념들이다.이원론은 실체가 정신과 육체, 즉 사유와 연장으로 나뉜다는 이론으로 여기서 사유는정신적인 실체이고 연장은 물질적인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사유와 연장으로 나눈 이유?당시시대는 근대초반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였다. 그래서 그 당시주된 세계관은 목적론적 자연관으로 신의목적으로 모든것을 설명코자한 형이상학적 요소가짙었다. 그러나 이런 자연관으로는 데카르트가 주장한 기계론적 자연관과 그의 사상을정당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실체를 사유와 연장으로 나누면서인간의 의지나 정신영역에서는 완전한 자발성,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서, 그 당시 지배적이던도덕이나 종교에 반박하고 반대로 자연계에는 단지 물질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함으로서기계론적 설명을 가능케 하였다. 그리고 신이나 우주의 문제가 아닌 마음과 몸의문제즉 심신문제를 철학적 논의의 중심으로 상정키 위해서 실체를 나누었다.* 문제점정신이기도 하고 신체이기도 한 인간은 마음과 몸 즉 심신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존재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실체를 사유와 연장으로 확실히 구분짓고, 정신과 물체는상호간섭없이 각자의 활동을 할뿐이라 한다. 그렇기에 데카르트의 이원론은“인간의 정신은 사유하는 실체에 지나지 않는데 어떻게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하기 위해
< 20세기의 매체철학자 - 장 보드리야르 >2001년 뉴욕에서 911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생중계되던 TV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실제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와 TV장면에서 911과 같은 테러 장면을연출하였고 이는 모두 허구였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리얼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실재로 믿게 하거나 이것에 무감각해지도록 하였다. 현대 미디어는 어떤 것이 실재이고어떤 것이 가상인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되어온 것이다.실재로 우리는 현실에서 TV나 영상의 시나리오를 모방하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다.가상의 실재가 실재를 낳은 것이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시뮬라크르(Simulacres)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인공물(원본에 대한 복제, 실제의 대체물)’을 지칭한다면,시뮬라시옹(Simulation)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로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을 일컫는다.시뮬라크르한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또한 이 가상의 이미지는 본인 스스로를 복제함으로써 또 다른 시뮬라크르를만들어 내는 데 이것이 바로 시뮬라시옹인 것이다.이를 코스프레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본이 있다고 하면 모사물들이 원본을닮으려고 한다. 그런데 코스프레는 참된세계에 있는 사람이 허상세계의 인물을 그대로닮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원본은 허상세계가 되게 된다.* 미국과 디즈니랜드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시뮬라시옹’이 가장 철저하게 관철된 사회는 미국이다.사실 미국 사회 자체가 거대한 복제사회다. 미국의 경우 서구의 다른 나라들처럼 국가의성립에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게 아니다.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인위적으로국가를 세웠고, 그 과정에서 유럽을 거의 그대로 복제했다.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문화와 건축물까지도 철저하게 유럽을 복제하였다. 그리하여 원본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복제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부정하면서 디즈니랜드를 통한 시뮬라시옹의 전략을전개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디즈니랜드의 성이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을그대로 복제한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디즈니랜드는 실제로 존재하는 ‘랜드’가아니라 허구의 세계, 가상의 세계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디즈니랜드의 기능은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이다. 즉 디즈니랜드는 미국 사회 자체가 거대한 가상의 세계, 유치한 허구의세계라는 점을 망각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디즈니랜드가 ‘허구의 세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말할 때,그로써 실은 디즈니랜드의 경계 바깥, 즉 미국 사회는 허구가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다.바로 이것이 디즈니랜드를 통한 시뮬라시옹의 전략이다.* 대중매체현대사회에 와서는 이 파생실제가 사회전반을 지배하고 구성한다.여기서 이러한 파생실체의 사회를 가속화 시킨 것은 ‘대중매체’이다.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실재의 외부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TV등의 미디어매체로 전달되는 기호와 정보를 받게 된다. 범람하는 정보 앞에서 대중들은 무관심과 ‘침묵하는 다수’가 되어버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용만을 실재로 믿어버린다. 즉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이 사람을 보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시뮬라크르에 지배당한다.즉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에서 리얼리티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다.또한 이 허구의 실재는 조작이 가능하여 대중을 선도한다.ex) 걸프전 : 걸프전은 텔레비전 전쟁 즉 이미지 전쟁이다. 미국의 언론은 자국과전 세계에 항공모함 띄우고 폭탄터트리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기고 진 것도 없다.저항세력의 게릴라전으로 미군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tv에서 전쟁을 보여줄 때 전체적인 것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아니라 일면만, 편집된 실제로 보여주면서 그것을 전쟁이라고 한다.그러나 보는 우리는 그것이 전쟁의 실제라고 믿는다.* 이미지 - 상징적 가치로서의 생산과 소비시뮬라시옹에서 ‘이미지’는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미지의 중요성은 위에서 언급한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현대사회에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보드리야르는 1972년에 쓴 『기호의 정치경제학적 비판』이라는 책에서 기호에 대한 소비가 점점 강화되면서 사람들은 그 기호를쫓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말하며 생산 중심인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비판하였다.마르크스는 사물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았다.그러나 보드리야르는 사물의 이 두 측면 외에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가령 생일에 받은 선물을 예를 들면 선물 자체의 물건으로서 사용, 교환 가치 외에선물이라는 특징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또한 자동차를 예를 들어 고급자동차는 그 것이자동차라는 기능적이나 상품적인 가치 외에도 자신의 품격을 높여준다는 의미를 지니게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이처럼 기호화된 상품을 소비하고 있으며 우리는 물건을고르거나 살 때 이 기호가치, 즉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는 광고의 힘이 매우 크다. 사람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먼저 제품을 접하게 되고 광고에 쓰인 이미지의 제품을 기억하고, 광고모델을 기억한다.그리고 매장에 가서 이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어떻게 제품을 만드느냐를 넘어서 ‘어떻게 제품에 이미지를 부여하느냐’이다.생산자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필수품으로서의 상품을 어필하는 것이 아니다.그보다는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주는 물건을 생산한다.또한 소비자의 사고자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광고를 만든다.여기서 광고는 기호이다. 즉 결국 소비자는 이 기호 ? 이미지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즉 시뮬라크르의 이미지나 기호가 사물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란 무엇인가?철학적인 측면에서 실존주의의 근본 개념 중심 문제는 당연히 실존이다.‘실존(Existence)’이란 본질(Essence)에 대한 현실 존재를 의미한다.희랍 철학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서양 철학의 전통적인 핵심 두 축은 바로 실존과 본질의 문제로, 다음의 두 가지 명제가 성립된다.1.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Essence precedes existence 또는 Essence comes before existence.)2.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또는 Existence comes before essence.)‘본질’이란 일반적이며 보편적이고,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진리를의미하며, 방법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이성을 중히 여긴다고 볼 수 있다.전자를 취하는 것이 플라톤의 철학을 이어받은 서양 관념론의 철학이다.그러나 실존주의는 후자의 명제를 진리라고 보고 있으며, 결국 관념론의 철학에 대한철저한 안티체제라 할 수 있다. 관념론의 철학이 본질 추구와 규정을 위해 객관성과외면성, 보편성(보편자)과 영원의 필연성을 강조한다고 하면, 그와는 대조적으로 실존주의는 실존의 의미를 추구하고 규정하기 위해 주관성(주체성), 내면성, 단독성(단독자)와시간적인 우연성을 강조한다.한 마디로, 존재 즉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명제이다.*키에르케고르가 실존을 강조하게 된 동기키에르케고르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헤겔철학의 전성기였다.이성을 중시하는 헤겔의 객관적 진리(관념론)는 케에르케고르의 주관적 고뇌와 실존문제에 관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즉, 인간의 본질(本質)을 탐구하기 보다는인간은 어떠한가, 내가 나의 사명을 깨닫고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탐구하는 실존(實存)의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헤겔이 말하는 ‘체계(대중,다수)’는 불완전 하며개인을 경시하고 있다고 비판하였고, 한편 당시 기독교의 잘못된 모습들은 삶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그는 신앙이 철학이나 사색의 대상이 아닌, 삶 또는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무엇을 인식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니고, 나는 무엇을 해야하느냐?나는 이것을 명백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나의 사명을 깨닫고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신의 뜻을 통찰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문제다.객관적 진리를 발견해 보았자, 또 철학의 체계를 파악한다해도, 또 국가이념을 전개하고 세계를 구성해 보았자, 그것이 무슨 소용이있단 말인가? 그 속에서 나는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나의 실존의 가장 깊은 근본과 관계가 있는 것, 말하자면 그것을 통해서 내가 신적인 것에 접하고 있는 것, 설사 온 세상이 무너져 버리더라도 내가 거기에 매달려의존할 수 있는것, 이것이 나에게 부족하다. 나는 그것을 탐구하겠다.“* 실존의 3단계주체적, 실존적 사고의 주체로서 실존하는 자는 시간 안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주체적인사고는 곧 시간상에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인,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실존이란 인간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어떤 정적인 상태나 단계가 아니라끊임없이 본래적 자아를 자각하고 항상 새로워지는 자신을 파악함으로써 더욱 깊은 자아에도달하려는 노력과 생성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을 우리는 키에르케고르의실존의 3단계설에서 발견한다. 실존의 삼 단계는 서로 질적으로 구별되고,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이행은 내적 결단을 통한 비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그러나 이 비약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항상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 비약을 위하여 개인은 항상 자신에 대한 주체적인 실존적 사고와 탐색을 계속해야만한다.(1) 심미적 단계 (미적 실존)이 단계는 실존의 가장 직접적이고 낮은 단계로서 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을 즐기려고하는 단계이다. 순간적인 향락과 도취가 이 단계의 최고의 목표가 된다.하지만 이러한 감각적인 삶은 결코 자신의 목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결코 만족될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하는 삶은 곧 우수와 불안 그리고 무엇보다 권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권태로부터 도피하려는 필사적인 시도가 다양한 형태의 쾌락을 추구하는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러한 구조를 쳇바퀴같이 반복하게 된다.(쾌락-권태-쾌락.......)이러한 절망으로부터 미적 실존의 한계를 드러내는 아이러니가 등장한다.즉 향락과 탐미를 위하여 쾌락을 추구하던 주체는 도리어 자신이 쾌락의 노예로전락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자각하게 된다.이런 질문에 직면한 주체의 내면에는 일종의 뉘우침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쾌락적, 감각적 자기에 밀려 무시당했던 양심이 고개를 드는것이기도 하다.이를 통해 주체는 더 높은 단계의 실존, 즉 윤리적 실존에 눈을 돌리게 되며절대적 결단 앞에 서게 된다.(2) 윤리적 단계 (윤리적 실존)윤리적 실존이란 자기 안에 있는 보편성과 절대성을 발견하는 것이다.윤리적인 명령이나 규칙이 항상 보편적 형식을 띠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윤리적 실존은 이런 보편성을 나의 구체적인 실존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따르는것이다. 즉 보편적인 윤리성이 나의 실존을 통하여 나의 의무, 나의 도덕적 가치,나의 규칙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윤리적 실존의 본질은 양심을 가지고 동일한,보편적인 것을 지속하고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이다.이러한 윤리적 실존의 단계에서 주체는 진정한 인격체가 되며 이를 근거로 사회적 자기로변모한다. 윤리성은 개인이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을 동반한다.하지만 윤리적 실존도 다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절대적으로 윤리적일 수없으며 나 자신에게 그렇게 엄밀하고 철저할 수 없다는 자각과 함께 등장한다.결국 자신의 양심 앞에 스스로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주체는 양심을 뛰어넘어 자신의실존을 보장해주는 또 다른 근거를 찾으려 한다.이를 통하여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의 보편성의 윤리는 부정되고 죄의 개념과 더불어주체는 종교적 실존에로의 비약을 시도한다.(3) 종교적 단계 (종교적 실존)실존의 최고 단계로서의 종교적 실존은 신앙을 통하여 윤리적 역설을 극복하고오직 신앙을 가지고 살 것을 결단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의 궁극적인 모습은 기독교인으로서 ‘신 앞에선 단독자’(개인이 주체적으로 신과의 만남을 (대면하는) 단독자)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역설한다.신의 아들로서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든 고난을 짊어진 채로 살고 또 죽었던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동시성을 이루고 사는 것,즉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 살듯이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키에르케고르가말한 종교적 실존의 최고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신앙을 가진 실존적 존재로 규정.인간이란 신 앞에서 겸손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사랑으로 완성시켜가는 존재이며, 인간은 완전자에게로 향하는 미완성의 존재이다.* 현대에 대한 그의 외침겉치레로 살지 마라! - 이것이 거짓 주장으로 가득 찬 현대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외침이다. 그대는 기독교도가 아니라면 기독교도인 체하지 말라! 그대는 인간적이 아니라면 인간인 체하지 말라! 그대는 경건하지 않다면 경건한 체하지 말라! 그대는 철학자가 아니라면 철학자인 체하지 말라! 키에르케고르의 외침은 각별히 현대 우리네 시대에도 알맞다.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인간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우리는 비인간화의 위험 속에서 떠돌고 있다. 모든 지배 형태에는 비인간화의 유혹이숨겨져 있고, 특히 지배자에게 무한한 권력 수단이 부여되어 있는 기술시대에는그러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되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고 과제이다.* 주체성이 진리다 (주체성이 참이다)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인간적으로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키에르케고르는 이에 대해 철학 이론이나 종교의 교의만으로는 불충분하기에,끊임없는 훈련과 과정(실존적 과정-변증법 적)을 통하여 실존의 3단계에서 가장 우위에
? 고구려 4 : 사유와 무 (고국원왕편) -김진명-- 원목중걸 “차후로는 모든 장수들을 형제같이 여기고 믿겠습니다.”모용외 “아니다. 너는 계속 의심하라. 내 들은 것은 적으나 책사의 덕목은 의심이라 하더라.믿음은 군주의 덕목이다. 그러니 너는 네 할 일을 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먹고, 마침내는 술이 술을 먹었다.- 무 “옛일을 기록한 병서를 읽다 보니 군장 간의 싸움에 따라 군사의 승패가 갈리는 일이비일비재했습니다. 장수 일인의 무예가 아무리 높아도 수백, 수천의 군사를 대적할 수 없을진대 어찌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아영 “네가 열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아라.그들 중에는 겁이 많은 자도 있고, 의심이 많은 자도 있을 것이다.어쩌면 적의 간세가 섞였을지도 모를 노릇이지. 네가 그 열 수하의 성격과 속내를알고 합당한 일을 맡기며 부리기까지 얼마만한 시간이 걸리겠느냐?”무 “하루에 한 명을 살피어, 열흘이면 할 수 있겠습니다.”아영 “수하가 천 명이면 천 일이 걸리겠느냐?”무 “큰 장수와 작은 장수를 세우겠습니다. 큰 장수에게 작은 장수 열 명을 살피게 하고,작은 장수에게 병졸 열 명을 살피게 하겠습니다.”아영 “그렇게 군영의 장졸이란 서로 정교하게 얽혀 있는 법이다.한데 이 장수가 사라지면 병졸은 누구에게 명을 받아 움직이느냐?그래. 작은 장수를 쓰러트리면 열 명의 병졸을 흩는 것이고,큰 장수를 쓰러트리면 백 명의 병졸을 흩는 것이다.그러니 수장을 쓰러트리면 천 명의 병졸 모두를 잡는 것과도 같은 이치란다.”- 을불 “사유야, 너는 좋은 왕이란 어떤 왕이라 생각하느냐?”사유 “병사의 손에 농기구를 쥐어주는 왕이라 생각합니다.”- 최비 “계책으로 될 일이 아니다. 꾀로 망가진 일은 마음으로 되돌리는 법.”- “병사 몇 명을 죽여봤자 적의 독기만 오를 뿐이다.그러나 밥과 잠을 죽이면 의지가 꺾이는 법이지.”-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모르고 떠드는 건 죄라 할 만하다.” 어기는 신하를더 높이 보곤 하지요.“- “좌물촌 사람 중 낙랑대전에서 살아남은 이가 넷에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어찌 얼굴을 들겠습니까. 다른 마을에서는 서로 공훈을 자랑하고 유세를 한다고도합니다만, 저희는 그러는 법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형제가, 자식이, 친구가 모두 전사자요 부상병인데 그들의 희생을 딛고 살아 돌아왔으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저희 생존자는 이렇게 가끔 밤을 틈타 나올 뿐 평소에는 얼굴을 잘 비치는 법이 없습니다. 희생자의 유족을 볼 낯이 없는 까닭이지요. 저는 좀 낫습니다.아까 그 친구는 몸이 온전히 성하니 더욱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합니다.동시에 을불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얼마 되지 않는 전공을 경쟁하듯 한껏 과장하여내세우는 이들을 수도 없이 보아온 그에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희생자를 볼 낯이 없다고 말하는 맹인 젊은이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모습으로 다가왔다.을불 “그대는 이리오라. 나라를 위해 눈을 바치고도 평생을 숨어 산다고?그대에게 고구려가 무엇이기에! 고구려가 그대에게 무얼 해주었기에그렇게 희생하느냔 말이다!”“자식이 있습니다. 제가 몸을 바쳐 나라를 지켜내면 제 자식은 평화롭게 살 수 있지않겠습니까? 어버이 된 마음이 다들 그렇겠지요.”- 아영 “ 왕실에 장자 승계의 기틀을 다지려 함이었다면 그 판단은 너무도 때에 맞지 않은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씨앗은 비가 오지 않을 때 뿌리는 법이며,소와 돼지를 치는 것은 맹수를 막을 울타리를 세운 이후입니다.지금 모용부가 강해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인데 영특하고 용맹하여 온 백성의추앙을 받는 무 대신 천하에 유약한 사유에게 태자위를 주셨음은 오판을 넘어망국의 실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람쥐가 재주를 넘는 데도 이유가 있고닭이 홰를 치는 데도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말하고 가세요. 어째서 모두가 원하는 무가 아니고 사유가 태자인지를!............“(좌물촌 이야기 ? 양우의 고향이며 양우를 따라 고을의 장정이 전장에 나설 정도로용맹하기가 한 마음인 마을을 을불, 사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크게상반되어 있었다. 건장하고 몸이 온전한 사내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무용담을 들으며장수와 병사의 덕목을 논하고, 꺾은 나뭇가지로 합을 겨루며, 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노래를하는 무. 그리고 비참한 몰골을 한 사내들의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울듯한 얼굴로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떨어트린 사유. 언젠가부터 그는 손을 들어 그들의 사라진 팔다리 어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을불 “장애가 심한 사람일수록 무의 곁에는 가지 않았소. 무는 온 마을이 장애인인그 마을에 가서도 온전하고 건장한 젊은이들만 모아 무용담을 듣고 전략을 논하며끝없이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사유는 자식 잃은 노파를 어머니라 부르고 팔다리 떨어져 나간 불구자들을 어루만지며 눈물로 그들을 위로해 주고 있었단 말이오.왕후, 백성이란 무엇이오? 군주란 또 무엇이오? 전쟁에 이기면 왕실과 조정은부유하고 행복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백성은 목숨을 잃고 불구가 되며 가정은망가지지 않소. 전쟁을 피하여 더 이상 싸움이 없다면 왕실은 궁색하고 고관대작들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오히려 백성은 가정에서 식구들과 살 수 있지 않겠소?나는 그때 확신을 얻게 되었소. 항상 전쟁에 이기고 그리하여 모든 백성들을 싸움터로 몰아내는 용행한 군주에 비해 전쟁에 지더라도 백성을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애쓰는 옹졸한 군주가 못하지 않다는 걸 말이오. 무는 너무 전쟁을 잘할 아이요.백성의 수효도 얼마 되지 않는 이 고구려의 장정들은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끝도 없이 목숨을 잃고 팔을 잃고 다리를 잃을 거요.군주는 백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광을 이루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오.태자로는 사유가 맞소!”- 창조리 “태자께서는 여전히 글을 열심히 읽으신다고 들었습니다.”사유 “네, 아무래도 글 숙에 들면 편합니다.”- 우문부실독관“오늘 획득한 마필과 군량, 황금 등 전리품 모두를 정확히 따져 그 사분의 일씩을각 군영에 나누어 보내도록 하라. 한본들 어떠하겠느냐”- 사유 “강한 것은 오히려 부드러움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지난번 낙랑은 고구려가 힘으로이겨냈지만 이번 모용부는 고구려가 부드러움으로 이겨내야 합니다.나라가 어찌 싸움마다 항상 이겨내겠습니까. 싸움이란 반은 이기고 반은 지는것입니다. 저는 잘 지는 것 또한 이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세상이 강자의 것만은 아니고 싸움이 나라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그래서 외교가 있는 것일 테지요. 아버님, 지금 모용부는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와같습니다. 거기에 살갗을 맞대어 가며 불을 끄는 것보다는 웃으며 물러서는 것이지혜입니다. 전쟁이란 물러서고 물러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싸우는 게 강한 것이지만 세상에는 물러서는 강함이란 것도 있을것입니다.“- 사유 “ 복수는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 한쪽에서 먼저 용서하는 게 옳습니다.”-모용외 “아영이 고구려로 간 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나는 혼례 선물을 보내는 한편 그녀를 잊으려 수없는 시간을 번민하며 괴로워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신하들조차 나를비난했고 내 자식은 나를 패배자라 불렀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나는 오히려 승리자였다. 고구려를 쳐부수고 아영을 빼앗은 것은 을불에게만승리하는 일이나, 나는 마음속에서 아영을 깨끗이 잊음으로써 그 둘에게 모두승리하려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야 안평하에서 낚싯줄을 드리우던 모용외의 모습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아영, 을불과 싸운 것이다.“- 무휴 “논어나 중용은 왜 안 좋은 책이지요?”사유 “저의 생각으로는 장자께서는 아마 그 책들이 다만 고급의 처세술에 불과하다여기시는 것 같습니다.”무휴 “고급의 처세라면 무엇을 말함이오?”사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바루지 말고 외밭에서 신발 끝을 고쳐 매지 말라는 선인의 가르침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고쳐 매는 게 올바른 것이지요.논어나 중용의 가르침은 결국 남과의 관계를 최상으로 두는 것이지요.그 가르침대로 한다면 남과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가벼움과 교만을 떨치지 못해후회할 일을 일삼으니 수신을 강조하는 논어와 중용은 필요한 책이기도 합니다.”무휴 “허허, 모두가 존중하는 유서를 적당한 수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 하니태자의 기개가 괜찮소. 특히 제왕은 새롭고 거친 길을 걸어야 하니 논어와 중용에묶여 있어 가지고는 백성을 잘 살피기 어렵소.”- 모용외 “중걸, 나는 죽일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얼굴에 그녀가 있는데어찌 죽인단 말이냐.....너는 왜 그런 꼴이냐?.“원목중걸 “제가, 제가 사람을 잘못 본 죄입니다. 주공,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아그 천하의 광인을 주공 곁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오로지 저의 잘못입니다”원목중걸은 모용외의 앞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시뻘건 피로 뒤덮인 동그란 물체 두 개.바로 방금 전 스스로 후벼 파낸 두 눈이었다.중걸 “송구합니다, 주공, 송구합니다.”모용외 “멋지다. 너 같은 신하를 두었으니 이 또한 멋진 삶이다.”중걸 “주공, 수레에서 내리십시오!”원목중걸은 비틀거리는 모용외를 들쳐 업었다. 두 눈이 있던 자리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원목중걸은 모용외를 업고 걸음을 옮겼다.“영광이었습니다.” 스스로도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걸음을 옮기며 원목중걸은 독백과도같은 목소리를 밀어냈다.“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최고의 영웅을 곁에서 모실 수 있었습니다.”“너는 남자의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너만이 알아주었지.천하와 바꾼다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느냐.”모용외의 입가에 다시 알 수 없는 그 미소가 떠올랐다.- 을불 “고구려 군사들아! 바야흐로 마지막 결전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괴로운 싸움이 있으리라! 저들은 사납고 거칠다.그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어쩌면 우리 고구려보다도 강할 것이다.오늘의 싸움은 이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나조차 이 싸움을 피하고싶다. 그러나...그러나 묻겠다. 고구려 병사들아! 너희는 너희가 살고 너희의 아들이 저 무서운 적과 싸우기를 바라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