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로 승부하라 서평책의 제목이 한가지로 승부하라 여서 정말 많은 것 중에 한 가지만 선택을 해서 노력하면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책보다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미없었던 것 같다. 저자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란 사람은 동기유발전문가, 경영 상담가,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어서 성공한 교수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성공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은 삶을 고양시키는 훌륭한 습관을 지니고 있다. 반면 성공하지 못하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해치고 발전을 저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습관은 학습의 결과이고 학습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모든 것은 쉬워지기 전에는 어렵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과와 행동의 새로운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단 습관을 확실하게 붙들어만 둔다면 이전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훌륭한 습관은 기르긴 어렵지만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기는 쉽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쉽게 몸에 붙지만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따라서 자신이 지닌 습관과 자신을 통제하는 습관이 인생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습관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에서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생각해 봤고 이제는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떤 습관을 길러야 할지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결론이 안 났지만. 자신이 개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습관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경우 분명하게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NO라는 말은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 중 가장 강력한 말 중의 하나다.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요구에 대해선 즉시 NO라고 말하라. 그러면 정말 즐길 수 있는 활동에 대해서는 YES라고 말할 수 있다.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결정한 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좌우한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결정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가장 강력한 힘으로 남는다. 이 힘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행복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통제하면 자신의 세계 전체가 변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최고의 증거는 바로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떤 사람들이 크게 성공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말했다. 열린 마음 자세와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고칠 수 있는 태도는 급변하는 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엄청난 장점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방향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결정된다. 그 생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건설적이든 비판적이든 그 순간 마음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신의 생각에 의해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보낸다. 성공한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이 낙관주의라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낙관적인가는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하며 부유하고 오래 살 것인지를 알려주는 최고의 척도이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얻을 것이다.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낙관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어떤 다른 특성보다도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이끌어내는 데 더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정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전체적인 인생 경로를 결정한다. 목표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그렇다고 너무 조급하고 조잡하게 만들지 않고 여유롭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 7단계로 구성된 포컬 포인트 프로세스는 인생의 각 부분에서 어디에 핵심을 주어야 하는 가를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1. 가치 설정 : 생활의 각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나 미덕, 특성, 특징은 무엇인가?2. 비전 정립 : 만약자신의 생활이 지금부터 5년 후에 완벽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3. 목표 수립 :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이상적인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성취해야하는가?4. 지식과 기술 습득 : 목표를 성취하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미래에 어떤 분야에서 뛰어나야 할까?5. 습관 만들기 :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고와 행동의 구체적인 습관은 무엇인가?6. 활동 계획수립 : 자신이 확실히 되고자하는 사람이 되고 성취하고 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구체적인 활동은 무엇인가?7. 행동으로 실천하기 : 자신의 이상적인 미래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즉각 취해야 할 구체적 행동은 무엇인가?이 부분이 다음 부분의 생각들을 7가지 생활 영역을 7단계로 분류를 해서 생각해나가는 것이 책의 또 다른 내용이다. 인생에는 중요한 7가지 생활 영역이 있다. ① 비즈니스와 커리어 ② 가족과 개인 생활 ③ 재정 ④ 건강 ⑤ 자기계발 ⑥ 사회 공헌 ⑦ 정신적 발전이 그것이다. 그 7가지 생활 영역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영역이며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그 7가지 생활의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이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보겠다.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더 큰 명료성을 가지고 있을수록 당신은 더 빨리 발전할 것이다. 또 당신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며 모든 분야에서 당신의 인생은 더 나아질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한 직장에 들어가면 대부분 일생동안 그 일에 종사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영원히 가버렸다. 그러므로 이제는 항상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당신을 위한 세 가지 미래 예측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보다 미래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무슨 변화이든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둘째, 자신의 분야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경쟁이 나타날 것이다. 셋째, 자신의 분야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당신이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고 다른 영역에서 생겨날 것이다. 개인과 조직 양자 모두에게 있어서 비즈니스 성공의 출발점은 가치를 얼마나 명료하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장 높은 가치와 마음속 깊이 있는 신념이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많은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이 옳다고 믿는가?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마음속 깊이 있는 신념과 조직 원칙은 무엇인가? 당신의 행복과 커리어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의 정확도일 것이다. 일단 비전을 가졌다면 다음 단계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사명을 만드는 것이다. 사명이란 향후 몇 년에 걸쳐 자신의 커리어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상적으로 묘사해놓은 것이다. 사명선언문은 매우 짧고 적절해야 한다. 코카콜라의 사명 선언문은 “펩시를 이겨라!”이다. 펩시콜라의 사명선언문은 “코크(Coke)를 이겨라!”이다. 나의 사명선언문은 어떻게 만들까 생각해 보게 되는 문장들이다. 돈이 없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돈을 너무 많이 가져서 일어나는 문제는 지극히 적다.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과 감정을 파괴하는 문제는 항상 그들에게 돈이 너무 적게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어난다. 모든 사회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장기적인 전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장기적인 시야를 개척하고 있다. 그들은 미래의 10년, 20년, 심지어 40년까지 생각하고 계획한다. 그들은 매일 매주의 활동을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장기적인 목표와 일치되게 조직한다. 건강과 체력의 가치를 결정하고 비전을 명확하게 하라. 목표를 정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건강과 체력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항상 업그레이드하고, 습관이 되도록 노력하라.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다른 이들이 어떤 점에서 더 훌륭하고 현명할지 모른다. 만약 누군가가 오늘 당신보다 더 훌륭하게 일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당신보다 먼저 인과 관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해낸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일정한 한계 내에서 당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성장에 관한 장기적인 비전을 창조하라. 5년이나 10년 앞을 내다보고 자신이 인생의 모든 중요한 부분에서 대단히 발전했다고 상상하라. 자신을 모든 점에서 뛰어나다고 간주하고 이상화 하라. 자신의 개인적인 꿈에 대해 타협하기를 거부하라. 당신에게 정말 중요하고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당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짧은 인생에서 잘할 수 없는 일에 억지로 매달리는 건 시간낭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기도 하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고 싶다면 잘하는 일에 집중하라. 성공한 사람이라고 모든 것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잘할 수 있는 한 가지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잘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 누구라도 성공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①다른 나라 사람. 외국인(外國人). 이국인(異國人) ②언어(言語), 풍속(風俗), 사고(思考) 방식(方式) 따위가 아주 다른 사람... 이것은 내가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찾아보았던 이방인에 대한 사전의 정의이다. ‘과연 이 책속에서 이방인이 누구일까? 알베르 카뮈에게 이방인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책이 그리 두껍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쓴 카뮈의 서술방식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일정을 따라다니면서 훔쳐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더욱더 흥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카뮈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모친의 사망소식에도 별다른 감정의 미동도 없는 사람, 어머니의 시신조차도 확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단지 자신의 육체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초반에 그려진 뫼르소의 모습이다. 나로써는 이 책의 앞부분이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었고 뫼르소가 아니, 카뮈가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사람이라는 느낌까지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개별적인 존재인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를 깨닫는 것이 주된 관심사인 실존주의적 사고를 가진 카뮈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이 책의 앞부분을 통해서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언젠가는 모두 죽음에 이른다는 실존주의적인 사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에도 슬픔을 느끼거나 애통해 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그 당시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주는 피로감에 더 무게를 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이 책의 결말에서 뫼르소는 잠깐이지만 턱을 덜덜 떨며, 몸에 한기를 느낄 정도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사형선고가 미루어 질 수 있는 어떠한 기회를 찾게 되고, 또 상상하게 된다. 물론 후에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초연할 수 있지만 그 죽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결코 초지일관으로 의연하거나 초연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읽을 수 있었다.평범하게 살고 있던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기까지가 이 책의 중반과 후반부를 차지한다. 뫼르소는 아래층에 사는 레이몽이라는 사람과 친구를 하게 되고, 점차 레이몽과 그의 여자친구 일에 관여 하게 되는데 이것이 뫼르소의 인생에 잘못 끼워진 단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몽과 친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따라 해변에 있는 별장에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레이몽이 건네준 총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뫼르소는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였다. 결국 뫼르소는 햇빛이 유난히도 내리쬐는 해변에서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뫼르소가 레이몽의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카뮈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에 빌미를 제공한 레이몽에게 법정에서 뫼르소의 증인으로 나와 진술을 한 것 이외에 어떠한 역할도 맡기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실존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실존주의적 사고를 가진 카뮈는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한 인간(뫼르소)이 스스로 깨닫고 선택한 것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이 살인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타인(레이몽)에게 묻지 않았던 것이다. 뫼르소의 판단이었고 선택이었으므로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카뮈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또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뫼르소에게 지식 뿐 만 아니라 감정과 의지까지도 포함한 체험의 세계를 중시하는 실존주의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뫼르소는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그에 대해 어떠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으며, 살인범인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자기변호에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자신의 일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뫼르소는 마치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주변 사물이나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그들이 조성하는 분위기를 경험하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를 통해 나는 뫼르소가 단지 그 순간의 감정과 경험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뫼르소는 죽기 전에 신부로부터 잘못을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받으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하지만 뫼르소는 신부의 권유를 여러 차례 단호히 거절하고, 종교에 의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죽음’이라는 숙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는 사형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죽음을 영원히 관계없는 세계로의 출발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점차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정리하며 행복을 깨닫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뫼르소의 깨달음과 함께 이 소설도 끝나게 되었다.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처음에 내가 가졌던 의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결국 뫼르소는 현실 속에 함께 존재하지만 자신만의 절대적인 사고방식과 고독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한 이방인이 되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그 날 육체의 요구에 따라 마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일,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일.. 이 모든 것이 그를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고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뫼르소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고는 있지만 그들과 함께 감정이나 사고를 공유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실존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카뮈가 쓴 책의 곳곳에서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고, 뫼르소를 통해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실존주의적인 사고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전반에 걸쳐 저자의 사상이 책속에 뭍어 나는 것을 보고서 책을 선별해서 읽어야할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또한 나라면 뫼르소의 입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나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의 죽음에서 그처럼 의연한 태도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의 일에 휘말리게 되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면, 뫼르소처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다가오는 죽음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이다. 실제로 뫼르소와 같은 인물이 현실세계에 존재한다면 그는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고,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방인으로 살아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과 전반적인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인 카뮈 역시 뫼르소와 같은 인물이 현실세계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실존주의자의 한명인 알베르 카뮈가 지은 한권의 책을 통해서 실존주의에 대해서 전부 알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알게 된 실존주의의 주요내용을 단지 암기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시간들이 참 유익했다고 느낀다.
쥐 : 밤에 걷는 방랑자 서평쥐라는 단어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 혹은 느낌은 더럽고 불쾌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쥐들의 주요 서식처인 지하실, 하수구 구멍, 틈서리, 창고, 쓰레기 더미, 오물통 등 어두운 공간을 통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끊임없는 불쾌함과 고통의 시간을 선사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문득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쾌함의 근원은 무엇인가? 내가 왜 쥐라는 존재에 관해 더럽고 불쾌한 느낌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인가? 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쥐로 인해 피해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직접적 간접적 피해를 준적이 없는 쥐라는 대상에 나는 왜 그토록 강한 혐오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회적 권력, 타인의 영향력 때문이다. 나의 의식은 타인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며, 나의 존재는 타인에게서 배운 경쟁 방법을 무기로 경쟁의 전쟁터로 향한다.나의 존재는 온전히 나로 인해 형성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실체가 없는 권력, 그 권력에 의해 사회에 내재된 종속된 관념적 억압이 나를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스스로 권력의 결과물을 습득하지 않는다. 습득의 과정 또한 타인에 의한 교육, 행동, 언어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편적으로 오물통, 하수구 구멍, 지하실 등은 어릴 적부터 타인에 의해, 크게는 사회에 의해 어두운 공간, 부정적 의미가 큰 공간이라 습득된다. 이에 그 어둡고 부정의 공간에 사는 주요 생명체인 쥐 또한 더럽고 질병을 유발하는 불쾌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 인식은 쥐가 나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개인의 사고를 의식적 무의식적 영역에서 선점해버림으로써 쥐에 대한 부정의 인식을 남긴다. 즉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영향으로 인해 사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형성한다. 이 책에서 부모 쥐, 늙은 쥐의 존재가 바로 그러하다. 책의 주요 시선인 주인공 쥐는 부모로부터 그리고 늙은 쥐로부터 자신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형성한다.타인의 존재는 나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타인이 있어야 곧 나 자신이 존재 할 수 있다. 부모 혹은 늙은 쥐의 존재 그리고 그 존재에 의한 영향은 나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 책에서 주인공 쥐는 살육과 약탈, 무리간의 전쟁 등 끔찍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왜냐하면 부모로부터, 늙은 쥐로부터 인간과 다른 무리의 쥐는 적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한 학습은 자연스레 주인공 쥐의 의식과 사회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며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주인공 쥐는 다른 무리의 쥐가 자신에게 뚜렷한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그들과 잔혹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똑같다. 우리는 부모, 친구, 선생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사회의 억압된 관념의 틀에 갇힌다. 문제는 그 틀 안에서 나는 ‘경쟁’이라는 가장 큰 무서움을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리 짓기, 구분하기, 영어 사교육, 조기교육, 원정출산, 왕따, 지역갈등, 차별, 학점 스펙 이라는 키워드들은 모두 권력에 의한 사회 관념의 억압에서 비롯된다. 그 억압에 의해 ‘나’라는 존재는 무한 경쟁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나라는 존재의 의식과 사회관은 타인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며, 타인에 의해 ‘경쟁’이라는 전쟁터로의 출전명령을 종용 받는다.'경쟁'의 전쟁터에서 우리는 타인에 의해 학습한 경쟁의 방법을 통해 경쟁을 한다. 책의 주인공 쥐는 늙은 쥐를 따라다니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그 관찰을 통해 자신의 생존 기술을 터득한다. 나도 정치평론연습 수업을 들으면서 김학노 선생님을 관찰한다. 그 관찰을 통해 나는 독창적 글쓰기, 두괄식, 5문단 나누기, 사물 혹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 글을 쓰는 기술을 익힌다. 기술을 습득한 나는 같이 수업을 듣는 20여명의 학우들과 A+이라는 학점을 두고 경쟁을 한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타인에 의해 배운 경쟁의 방법과 그 기준을 얼마만큼 잘 수행했느냐에 달려있다. 미괄식, 평범한 글 등이 분명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나는 독창적이지 않은 것, 미괄식, 평범함을 지양하려 애를 쓴다. 결국 나의 생각과 의지는 타인의 틀에 갇히게 되며 그 틀 안에서 경쟁을 행한다.
영화 피아니스트 감상문딱히 명언 없는 딱히 감동적이지 않은 이 영화는 두 시간 반 동안 ‘살아라’라는 세 마디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피아니스트는 실화를 바탕을 한 영화이다. 작가는 전쟁의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필체로 글을 썼다. 영화에서도 그 담담한 필체는 그대로 반영되어 코믹이과 같은 희화화의 장치나 공포를 극대화 하는 요소 없이 현실처럼 다가와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영화는 너무 길고 지루했다.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네 삶이 너무 지루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처럼 그리고 가족의 바람과 사회적 기준, 제도적 억압을 지고 만들어 지는 수많은 인생과 열풍에 이끌려 가는 나와 내 또래 친구들 그리고 그런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와 현대인의 모습을 비교하여 그냥 목숨만 부지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써보려 한다.영화 속에서 스필만을 통해 현대인을 보았다. 스필만에게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은 사회적 권력이요, 밥줄이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으로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말끔하며 매력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갑자기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인해 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뿐인 그는 의지할 곳도 하나 없이 강제 노역을 하고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인 게토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면서도 그곳에서 좀 더 편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인맥을 이용한다. 결국 그는 살아남는 데 성공하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필만의 삶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스필만의 처절한 삶을 통해 치열하게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을 보았다. 현대인에게도 직업은 권력이자 밥줄이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저 살아있는 식물에 불과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의 제도에 맞추어 살고 이미 만들어진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해진 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제도가 들어오면 힘없이 추락하고 만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철학이다. 예를 들면 고3 수험생들은 기존의 제도가 아닌 새로운 제도를 마주했을 때 기초가 튼튼한 아이들은 새로운 제도 안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은 새로운 제도 안에서 쉽게 무너진다. 교육에서의 기초는 우리 삶의 철학과 같다. 즉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떤 상황에서도 잘 지켜나가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이 있을 때 부는 바람대로 기우는 것이 아니라 기준의 잣대가 되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스스로 이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영화 안에서 스필만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이 시기의 최대 목표인 목숨만을 지켜왔지만 사실 유대인은 다른 민족으로부터 오랫동안 시기와 질투를 받아 힘들게 종족을 보존해오면서 그들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그들은 유대교를 믿으며 그들만의 종교적 철학을 가지고 21세기에 가장 적은 수의 민족이지만 세계 시장에서 그 활동을 많이 인정받고 있다. 그들의 역사 중에는 그들의 철학이 얼마나 뚜렷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유대인의 마사다 항전 중에 전 유대인이 자살한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의 내막은 마사다의 방호벽을 파괴하는 데 수차례 실패한 로마군이 요새를 포위하고 공격을 위한 누벽을 쌓으며 전진해왔을 때 유대인 저항군은 이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그 누벽을 쌓는 데 동원된 6000명의 노예들이 바로 동족인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저항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결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들의 율법은 자살을 엄격히 금지해서 고민 끝에 제비뽑기를 통해 선출된 10명의 남자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10명 1명이 9명을 죽인 뒤 자살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결론은 로마인들이 승리를 했다는 사실 뿐이지만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자존심과 긍지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0.2%민족으로 남아 미국의 월스트리트와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미국의 정치계 경제계를 손 안에 넣고 있다. 그들은 세계에 위상을 떨치기 위해 살아오지 않았지만 그들의 철학과 믿음으로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영화 뱅뱅클럽 감상문딜레마. 이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바일 것이다. 직업적 사명감과 인륜 사이에서의 딜레마. 처음 이 영화를 접한 나 또한 이 ‘딜레마’에 대한 생각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째 감상한 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종군 기자, 그들 자신들이 느끼는 것은 당연히 딜레마일 것이지만 정작 영화에 나오는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종군기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정작 흑인들은 그들에 대해 왜 그토록 적대적일까? 종군기자의 입장에 서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반대로 흑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자들이 찍는 사진에 대한 그들의 불쾌감이 와 닿았다. 나아가 그 사진들이 지구상에 유색인종을 향한 차별, 특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낳는 것이 아닐까?우선 이 영화의 제목을 살펴보자. 뱅뱅 클럽(the Bang Bang Club) 4명의 종군 기자들이 내키지 않아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뱅뱅 클럽’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총소리를 뱅뱅(Bang Bang)이라 하여, 총소리가 있는 곳에 그들이 있다는 뜻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찍은 흑인들의 잔혹상과 참상들로 퓰리처상까지 받는다. 흑인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사진을 찍고 상을 받으면서 여러 종군 기자들의 존경을 받아 뱅뱅 클럽이라고 불리는 것이 과연 좋게만 보일까? 흑인들에게는 종군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마치 총소리 뱅뱅(Bang Bang)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그들은 총소리보다 오히려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흑인들이 쏘는 총소리가 남발할 때 기자들의 셔터소리도 함께 남발된다. 그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한 위압감을 준다. 피사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피사체 그 자체로만 생각하여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런 사진들이 후에 작품이라며 세계에 알려지고 정작 그들의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 그것을 흑인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사실 종군 기자들이 처음 오지에 나가서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의 사진으로 세상에 참여하고 그런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사명감이 컸을 것이다. 그렉 마리노비치의 경우도 그랬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줄루족의 노동자 밀집소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줄루족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기 때문. 정작 신문보도에 나간 것은 그들의 공격적인 면만 보이는 사진일 뿐이었지만. 그 후 우연히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위험을 무릅써가며 그들을 말리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카메라의 노출값만 생각하며 사진을 찍는다. 범죄현장의 증거로써 경찰들이 사진을 넘기길 바랐지만 정작 그렉은 흑인들의 공격을 받고 싶지 않아하며 거절하고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그런 죄책감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린다. 그 후 처음 사명감을 가진 그와는 달리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죽은 어린아이를 찍을 때 조명만 생각하며 사진을 찍으며 사명감을 가진 종군 기자와는 완전히 멀어진 모습이었다. 더 이상 처음의 취지를 가지지 않은 종군 기자들의 행동이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다. 그들에게 흑인 (유색인종)은 더 이상 같은 인간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밥벌이로만 이용되는 피사체일 뿐이다.종군 기자들만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그렉의 줄루족 사진을 신문사에서는 흑인들의 잔혹상만을 뽑아 보도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이 짧은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언론은 자극적인 흑인들의 사진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진들이 이슈가 되고 돈벌이가 될 테니까.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흑인은 난폭하고 잔혹하며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늘 가난에 힘겨워 하는 불쌍한 인종이라는 생각, 편견,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낸다. 사실 독자들이, 특히 아프리카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언론기관의 보도일 뿐인데 그들이 내보내는 정보는 모두 흑인에 대한 자극적인 내용들 뿐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언론 기관들 또한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런 언론기관들이 종군 사진 기자들을 사명감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