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보고서)풍류 속에 지어진 옛 선비들의 정원- 명옥헌과 소쇄원을 비교하여 -학 과 :학 번 :성 명 :Ⅰ. 프롤로그 : 옛 조상들의 자취를 찾아서Ⅱ. 아름다운 조상들의 정원1. 명옥헌 : 자연과 인공이 완벽하게 조화된 정원1) 설립배경2) 구조 소개2. 소쇄원 : 자연에 동화된 정원1) 설립배경2) 구조 소개Ⅲ. 에필로그 : 귀거래사를 읊으며 돌아오다- 답사에서 얻은 교훈- 귀거래사Ⅰ. 프롤로그 : 옛 조상들의 자취를 찾아서10월 30일 토요일, 어제 막 중간시험이 끝났고 오늘은 답사를 가기로 한 날이다. 마침 한 친구가 시험을 마친 기념으로 자신의 차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고 때문에 답사지로 가는 이동수단은 순조롭게 확보하였다.학교 공부에 열중하느라 지치고 지겨운 일상에 이번 답사는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잠깐만이라도 한적한 시골마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본래 도시인의 로망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이것은 과제와 여행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답사였다.성공적인 답사를 위해 나는 사진기와 필기도구 등 준비물을 챙기고 답사 장소로 향하는 지도도 검색해 보며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내가 계획하고 있는 주요 답사지는 교수님께서 골라주신 곳들 중에서도 특히 명옥헌과 소쇄원이다. 이 두 곳을 택한 이유는 일단 다른 답사지들에 비해 아름답다는 것이다. 백자같은 소박함과 청명함을 추구했던 조선선비들의 멋이 담긴 이 정원들은 맑고 공허한 자연과 만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이것은 또한 과거 우리 조상들께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전체적인 구조를 구상했으며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즉, 이번기회에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느껴보기 위해 이곳을 목표로 두고 출발하게 되었다.Ⅱ. 아름다운 조상들의 정원1. 명옥헌 : 자연과 인공이 완벽하게 조화된 정원1) 설립배경명옥헌은 조선 중기 오희도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원림이다. 오희도는 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인조의 부탁으로 인조반정에 가담했는데 그것이 성공하여 한림학사라는 벼슬을 맡게 된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높은 벼슬을 마다하고 이 후서마을로 귀향해 명옥헌을 짓고 살게 된다. 그의 아들 오이정도 이 곳에서 세상을 버리고 칩거하게 된다.2) 구조 소개명옥헌은 명소이지만 시골에서도 외진 곳에 있어 지도가 있어도 찾기 힘들었다. 우리도 사전에 위치를 조사 했으나 주변이 모두 논밭뿐이었고 특별한 이정표가 없어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좋은 면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찾는 이가 적어 한가롭게 답사하기에 좋다는 것이다.소쇄원이 깊숙한 계곡의 한쪽을 차지했다면 명옥헌은 산언덕 너머 전망이 툭 터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맨 처음 고서면 산덕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에 ‘인조대왕 개마비’가 서 있는데 여기서 산허리의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언덕배기 중턱에 이르면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가 후산마을. 마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어 동네의 연륜을 말해준다. 이 은행나무는 이조가 말고삐를 맨 곳으로 때문에 ‘인조대왕 계마행’으로 불린다고 한다.이곳에서 마을 사이로 조금 더 올라가면 눈앞에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명옥헌이 나타난 것이다. 명옥헌은 소쇄원과 달리 작고, 연못과 그 위쪽에 정자만이 위치한 단조로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연못 주위의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단조로운 구성을 충분히 커버하여 장엄한 느낌을 주었고 개방된 주변 구조는 시원한 기분도 들게 하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데다가 이런 장엄한 느낌까지 더해지자 마치 이곳에 신선이라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하였다.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가 방문했을 때의 날씨가 가을이라 배롱나무의 꽃이 지고 없어 진정한 명옥헌의 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책에는 대부분 명옥헌의 여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진녹색의 산장막에 빨간 배롱나무 꽃으로 무늬를었다. 하지만 가을 나름대로의 매력도 있었으니 넓고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과 노란 풀빛으로 인한 고요함 및 잔잔함이 그것이다.우리가 방문한 가을의 명옥헌명옥헌의 여름(참고사진)명옥헌은 물소리도 구슬이 부딪쳐 나는 소리와 같다고 여겨, 명옥헌이라고 하였다.화구의 모습왼쪽에 보이는 구조물이 굴뚝이다아름다운 이름처럼 이곳은 오희도가 자연을 즐기며 쉬어가기 위해 만든 정자이지만 송강정이나 취가정 처럼 단순한 구조의 정자와는 다르다. 정자에는 화구와 굴뚝이 있는데 이것들은 오희도가 여기서 불을 때고 밥을 해먹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온돌시설을 갖추고 있어 겨울을 나기에도 충분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즉, 애초에 오희도는 건물을 지을 때 오직 이 외진 산속에서 작정하고 남은 삶을 보내기로 계획했던 것이다.이러한 명옥헌이 소쇄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쇄원은 계곡 속에 숨어있는 듯한, 그리하여 비교적 자연에 대해 낮은 자세를 취하는 원림이라면 명옥헌은 인공연못과 섬을 조성하고 정원수를 식재하는 등 우리 고전 건축에서 보기 드물게 인공을 가미시킨 정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명옥헌을 현대 건축분야에서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2. 소쇄원 : 자연에 동화된 정원1) 설립배경양산보는 조광조의 제자였다. 또한 그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고 성리학 사상의 신봉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소학’ 공부에 힘썼고 자신의 후손들에게도 ‘소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사상들은 후에 소쇄원을 건립하는데 그대로 투영되게 된다.양산보는 17세에 현량과에 합격하였으나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가 죽게 되자 양산보는 충격을 받고 고향으로 낙향하게 된다. 그는 이때 소쇄원을 짓게 되는데 소쇄원의 큰 큐모로 보았을 때 그 혼자 힘으로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왜냐면 양산보는 관직에 나간적이 없어서 주요한 경제기반이나 노비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쇄원을 짓는 데는 처가 김윤제이 컸다. 그들은 소쇄원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양산보와 여러 가지 학문적 논의를 통해 서적과 시를 남기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장차 소쇄원이 호남 사림들의 교우의 장소가 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2) 구조 소개소쇄원은 광주뿐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무척 유명하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끔씩 이곳을 들렀었다. 때문에 이미 소쇄원의 구조는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답사 계획을 하고 간적은 없었기에 이번 소쇄원 방문은 조금 특별했다.처음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반겨주는 것은 푸른 대나무 숲이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 숲은 마치 소쇄원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느끼게 하는데, 때문에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좁은 대나무 사이 길을 통과하면 갑자기 밝고 넓어진 정원이 나타나게 된다. 바로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건축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흐르는 계곡을 중심으로 주변에 담을 쌓고 정자를 지었는데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나무숲과 곳곳에 뭉쳐있는 나무들은 건물과 자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즉, 넓은 터를 잡고 소쇄원을 건축했으나 어느 것 하나 파고 옮긴 것 없이 자연을 그대로 두고 사이사이에 정자나 담을 지었기 때문에 마치 자연과 하나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제 월 당소쇄원에서 핵심인 구조물은 제월당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양산보가 글을 쓰고 밥을 해먹으며 삶을 보낸 곳인데 화덕과 굴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명옥헌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예전에 소쇄원을 방문했을 때는 이곳이 평범한 정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강의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생각하며 다시 방문해보니 모든 부분이 새롭게 보였다.예를 들면 화구와 굴뚝의 모습이 명옥헌의 것과 닮았다는 것에서 조선시대의 가옥들이 대부분 이런 식의 구조를 하였을 것이라는 예측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굴뚝은 지붕위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굴 뚝화 구제월당은 소쇄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아마도 누군가 손님이 찾아온다면 바로 알아보기 위함일 것이다. 과연 양산보는 이러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계획하고 건물을 지었던 것일까.제월당에서 조금 내려가면 광풍각이라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정자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낮은 대문을 지나야 하는데 필자는 이 대문을 지나다가 머리를 부딪쳤다. 괜히 ‘양산보는 키가 작아서 대문을 이렇게 낮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모습을 본 한 어르신이 다가와 ‘그 낮은 대문은 항상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라는 뜻에서 지은 거다.’ 라고 설명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생각해보면 양산보의 그 뜻은 정말 지당한 말이었다. 손님이 왔다고 해서 정신없이 급하게 뛰어나가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 문을 지나다가는 머리를 부딪치기 십상이다. 즉, 자신의 옷매무새라도 한번 점검해보고 마음을 단정히 한 후 차분하게 문을 지난다면 절대 머리를 부딪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광풍각으로 내려와 다시 곳곳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광 풍 각모양의 마루는 손님과 아무 곳에나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좋은 구조로 되어있었다. 특히 광풍각의 마루에 앉아 바로 앞에 보이는 시원한 계곡은 고통과 시름을 모두 잊게 만들며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다. 양산보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김인후는 이 계곡의 물고기가 알아 볼 정도로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는데 새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명옥헌은 연못을 조성하고 배롱나무를 심는 등 인공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냈다면, 소쇄원은 자연을 그대로 두고 아름다움을 취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멋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소쇄원은 넓지만 자연물이 곳곳에 가득하여 아늑함을 느끼게 하였다.Ⅲ. 에필로그 : 귀거래사를 읊으며 돌아오다- 답사에서 얻은 교훈처음 방문했던 명옥헌의 주변은 잘 정리되어 있고 깔끔했으며 내부 또한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
제1장 선거와 유권자1. 선거의 개념- 민주주의의 중요한 제도중 하나로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 후보자가 선거승리를 위해 모든 인적자원이나 물적 자원을 동원해서 자신의 지지를 위 해 활동하는 현상.-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평가하는 장이 된다.(책임정치실현)- 대의민주주의 정당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투표참여율이 중요하다.(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으면 정당성에 의미가 없어진다)- 모든 유권자는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다.(단, 요구하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1) 선거의 기원-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됨(기원전 500년)- 남성시민만 할 수 있고 공개투표였다.(굉장히 적은 수만 했다. 최대 6만명 정도)- 자갈, 조개(도자기) 투표- 투표 대신 추첨을 하기도 했다.- 유권자가 적었으므로 집회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집회민주주의- 요즘은 인구가 너무 많아서 집회를 할 수가 없다.- 너무 느린 의사결정과정이 민주주의의 단점이 된다.-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하지만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지 못하 므로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 그래서 심의민주주의가 발생했다. 심의 민주주의란 다수와 소수가 대화를 해야 한다. 즉, 다수와 소수가 공통된 의견을 이끌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효율적이나 소수자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며 가장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해있다.- 로마에 계승되지만 점점 약해지다가 절대왕권의 등장으로 사라짐.- 서구사회에서 근대로 가면서 다시 부활함.2) 선거를 자주하지 않는 이유(후보자의 임기가 긴 이유)- 정책의 일관성(보호)를 위해서- 비용의 문제(자주하면 좋지만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다)- 유권자들이 정책권자를 통제 및 평가하기 위해서2. 선거의 형태1) 보통선거 ( 反 : 제한선거 )- 모든 사람이 일정연령에 도달하면 선거권을 갖는다는 원리.- 당연한 원리지만 이렇게 되는 과정은 힘들었다.2) 평등선거 ( 反 : 차등선거 )- 모든 사람이 1표씩만 갖는다는 원리.(모든 사람의 표의 가치는 같다)- 옛날에는 엘리트층에게 표를 투표를 두 번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단점이 없다.(단순다수제 한번 + 비례대표제 한번)- 우리나라는 비례대표제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5. 대통령 선거1) 미국의 대통령선거(과정)- 우리나라는 2002년 민주당(노무현)이 처음으로 미국식 국민경선제를 도입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당차원에서 점점 미국식 경선이 전파되고 있다.A. 예비선거- 각 정당의 전당대회에 나갈 대의원을 뽑는 주 단위 정당행사를 지칭한다.- 대의원을 뽑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코커스(caucus)- 명망가 집단- 당원들 가운데 대의원을 뽑는 것*프라이머리(primary)- 일반 시민 즉, 유권자들이(당원이든 아니든) 전당대회에 나갈 대의원을 뽑는 것B. 전당대회- 대통령후보와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행사- 전국에서 모든 대의원 후보들이 모여 4년마다 한번 치러지며 3~4일간 진행된다.- 현직 대통령이 있는 여당은 8월경 개최되고 야당은 그것보다 20일 먼저 개최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후보로 뽑아 달라고 홍보를 한다.C. 본선거- 11월 첫 번째 월요일 다음 화요일에 개최된다.- 국민이 선거인단(elected college)을 뽑는 선거- 선거인단으로 상원의원은 모든 주마다 2명씩 해서 총 100명이 선출되고 하원의원 은 435명 선출되며(10년마다 인구비례에 따라 수가 달라짐) 워싱턴 D.C에서 특별 히 3명을 뽑는다.(즉,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 선거인단을 뽑는 것에 있어서 주별로 어느 당(민주당/공화당)의 선거인단(상원/하 원)이 뽑히는가에 따라 이미 예상이 된다.D. 대통령선거- 12월 둘째 주 화요일 이후 첫 월요일에 개최된다.- 선거인단에 의한 투표(당선되기 위해 선거인단 수의 과반수가 넘어야 된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대통령은 하원에서 재투표 하고 부통령은 상원에서 재투표하여 선출한다.* 종 합-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임기가 국회의원 임기보다 더 길다.- 때문에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제의 주장 : 과거에는 간부 정당의 모습이 많았으나 앞으로는 대중정당의 모습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은 맞지 않다. 오늘날의 사회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사회다. 문화적으 로 전통(전근대)과 근대적인 문화와 탈근대적인 문화가 동시적인 상황에 있다.(우리나라 로 볼 때 유교적 가치와 업적주의적 가치의 혼합 및 압축적 경제성장으로 혼란의 상황 에 있다) 서구처럼 순차적인 상황이 아니다. 정당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다른 유 형의 정당이 생겨나고 있다.6. 정당조직의 세부 유형1) 간부정당(cadre party)- 정당은 의회 내의 의원들의 모임에서 발전했다.- 교양 있고 재산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진 시기 즉 보통선거가 실시되기 이 전의 지배적인 정당형태이다. 때문에 선거운동을 위해 대중적인 정치조직이 필요하지 않았고 정당의 당비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냈다.- 정당은 공익이나 국민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로 이해되었다.- 선거는 지식이나 교양을 갖춘 소수사람들의 업무로 인식되었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사적인 선이 겹친다.- 정당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잇는 가교(bridging)역할을 했다.(관계 묘사)2) 대중정당(mass party)- 보통선거의 등장 하에서 나타난 20세기의 표준형 정당이다.- 참정권이 확대됨에 따라서 정당은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사회적 균열에 기반한 정당으로 균열에 입각하여 정당 활동을 한다.(계급, 이념 표방)- 시민사회와 국가가 엄격히 구분되고 사적인 선이 무너짐.-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개념이 생기게 됨.- 때문에 국가는 시민사회에 대해 책임정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제재 (punishment)가 들어간다.(관계 묘사)간부정당대중정당지지기반소수 엘리트나 명망가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대중적 당원당의 재정소수사람들의 다액의 기부금다수 사람들의 소액의 당비이념지향성약함굉장히 강함정당의 위상국가와 시민사회가 동일 구성원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명한 구분이 있고 교량역할을 함.3) 촉진적 이익집단- 어떤 생각 혹은 관점 및 쟁점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주로 인종이나 종교, 환경에 대한 내용으로 조직된 이익집단으로 이들이야말로 우리 가 '이익집단' 이라는 말을 들을 때 처음 떠올리는 집단이다.- 취미나 여가로 인해 이익집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예로 전미총기협회가 있다.- 그러나 특정사회세력을 위한 것이 아닌 전체를 위한 이익집단도 있는데 그 예로 국 제사면위원회가 있다.3. 이익집단의 전술- 이익집단이 힘을 가지려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요소로 재력(재정), 네트워크(인맥, 환 경), 조직력(멤버십, 회원) 이 있다.- 재정이 굉장히 부족한 이익집단이 할 수 있는 전략은 멤버십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든 구성원을 통한 e-mail폭탄이나 홈페이지 동시 접속으로 인한 서버 마비가 있다.- 멤버십이 부족하나 자금이 많은 이익집단(전경련 같은)은 재력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신문이나 TV등의 매체를 통해 광고 및 홍보를 한다.- 주로 할 수 있는 전략은 선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를 대표하는 후보에 게 노동조합 같은 이익집단이 표를 몰아주는 것이다.1) 정보와 전문지식에 대한 통제- 노동조합은 노동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고 의사협회는 의학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즉 이익집단은 자기 이익에 관한 부문에 잘 알고 있는데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제정할 때 예를 들면 의학에 관한 정책을 제정할 때 그러한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의사협 회에 자문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익집단은 정부의 정책에 관해 조율하고 통 제한다.2) 선거활동(표 몰아주기)- 회원들로부터 돈을 모아서 후보에게 기부하거나 선거운동원을 제공하고 회원들의 표 를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3) 경제적 힘의 사용- 자신들의 경제적 공헌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총파업이 이러한 전략의 예가 된다.4) 선거자금 기부(돈 기부)- 선거 후보에 대한 자금 기부5) 대중홍보운동- 공식적인, 규칙이나 법에 의해 조직화된 집단인 제도적적지향적인 비공식적 집단행동이다.사회운동정당이익집단정부에 대한 영향력 추구YesYesYes정권 추구NoYesNo단일의제(똑같은 주제)YesNo(다양한 의견 수렴)Yes공식적 조직(지도부)NoYesYes정치참여 형태비관습적관습적관습적- 시민단체라는 것은 공식적 집단이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공식적이지만 사회운동은 비공 식적이다. 범주로 치면 시민운동이 사회운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3. 사회운동의 발생원인(배경)1) communication(소통)의 발전 - 커뮤니케이션수단의 발전2) 탈물질주의적 정치이슈가 발생(비정치적이슈)- 기존의 정당이나 정부가 탈물질적인 이슈를 등한시 함. 때문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 여가 이루어짐 즉, 비공식적 정치참여인 사회운동이 발생함.- 구사회운동(물질적인 것으로 투쟁)에서 신사회운동(삶의 질적인 이슈로 투쟁)으로 변 화하게 됨.3) 정당활동의 약화- 유권자의 정치 행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정당에 대한 일체감이 굉장히 약화됨.- 정당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위상이 쇠퇴함.- 때문에 사회운동의 등장 가능성이 높아짐.4. 사회운동의 활성화(성패) 요인1) 자원 동원(resources mobilization) - 운동 자원의 동원- 사회운동의 활성화는 사회운동의 조직, 혹은 활동가의 자원추출 능력 및 자원 활용 능력의 함수다.- 즉, 동원이란 얼마만큼 많은 멤버십을 가지고 있는가, 재원의 규모가 얼마나 큰가, 제 도적 차원의 지원, 전략적 사고와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지적 자원을 통틀어 의미한 다. 이런 것들이 많을수록 사회운동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2) 정치적 기회구조(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 사회운동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 정치체제가 권위주의적일수록 사회운동이 수축됨.(기회구조가 닫혀있다)- 민중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일수록 정치적 기회구조는 열려있다.- 사회운동은 정치적 기회구조가 열려 있을수록 활성화 된다.3)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 사
리비아 사태와 국제사회- 미국의 개입과 관련하여 -학과학번이름I. 혁명의 시작· 거세게 부는 민주화 바람· 민주화 씨앗 재스민 혁명· 국제사회의 개입II. 리비아 사태와 미국1. 리비아 사태1) 카다피란 누구인가2) 내전의 전개과정2. 미국의 중동 개입1) 중동 개입 사례2) 미국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3. 국제사회의 개입1) 찬성 근거2) 반대 근거3) 군사개입의 정당성III. 향후전망 및 평가* 서 문이 리포트는 리비아 내전의 발생 원인이나 배경보다는 미국 및 서방의 내전에 대한 개입의정당성에 초점을 맞춰 작성하였다. 또한 미국이 리비아 내전 같은 국제 분쟁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여태까지 있었던 몇 가지 사례를 비교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I. 혁명의 시작· 거세게 부는 민주화 바람2011년 1월, 튀니지의 국민혁명을 시작으로 독재정권 및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화의 바람이 인근의 중동과 아프리카 등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일명 재스민혁명으로 불리는 튀니지의 혁명은 벤 알리 정권을 퇴진시켰으며 이집트에도 영향을 미쳐 30년 독재정치,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퇴진을 달성하게 하였다.이집트에 이어 혁명은 인근의 알제리와 요르단, 예멘, 리비아, 그리고 동유럽의 알바니아에 반정부 시위로 퍼졌으며 중국까지도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카다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리비아의 민주화 혁명이 가장 거셌는데 현재 리비아의 혁명은 유일하게 내전으로 번져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있다.· 민주화 씨앗 재스민 혁명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도대체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씨앗이 된 재스민 혁명이란 무엇일까. 어째서 발생하였으며 주변국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된 것일까.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월에 걸쳐 일어났다. 이 튀니지 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국화인 재스민을 들고 나와 민주화를 외쳤는데 이것에 기인하여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재스민 혁명은 튀니지 혁명 뿐 아니라 튀니지 혁명을 기폭제로 번지기되었다고 한다. 1956년 수에즈 사태에서는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가했다.그는 청년시절 담배와 술을 멀리하고 코란을 즐겨 읽는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미래의 지도자상을 그리며 꿈을 키웠다. 특히 1963년 벵가지의 리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벵가지의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재학 당시부터 동료 생도들과 왕정타도를 목표로 하는 을 조직했다. 1965년 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1년 간 영국으로 유학 겸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고, 귀국 후 첫 보직으로 통신부대 장교로 부임하였다. 나중에 그리스 아테네의 헬레나 군사 학교와 영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대위까지 진급하며 꾸준히 경력을 쌓던 카다피는 1969년 9월 1일 동료 장교들과 함께 수도 트리폴리를 공격하면서 기습적으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당시 해외 순방 차 터키에 체류 중이던 국왕 이드리스 1세는 객지에서 그대로 퇴위당해 터키로 망명했고, 국가의 중추기관도 유혈사태 없이 간단히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무혈 쿠테타'로 사실상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쿠데타 직후 군 총사령관에 올랐고, 그 해 11월에 잠정헌법을 공포한 이후 신생 리비아 공화국의 최고정치기구인 혁명지도평의회의 의장에 취임했다. 쿠데타 이후 리비아는 왕조가 교체되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1974년에는 정치이론을 연구하는데 전념하여 혁명평의회의 의장 권한을 2인자에게 잠시 위임하였고, 다음 해 그의 정치이론을 집대성한 책이 나왔으니, 이것이 이다. 1977년 소위 '인민주권확립선언'을 공포한 후 초대 전국인민위원회서기장에 취임했으나 1979년에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그 대신 오로지 혁명지도자라는 명예직함만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의 국가원수이자 리비아의 모든 국가 업무는 카다피의 지도하에 돌아가고 있다.쿠데타 집권 이후, 철저히 반미주의를 주창하여 미국 군사기지를 철수시키고, 이탈리아인을 추방했다. 외국의 석유 회사들을 추방하고, 석유를 국유화했다. 1970년부터 총리·국방장관을 겸하다가 1972년 이들 자리를 내놓고 완전한 이슬람 국가를서 무기고를 연다. 반정부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겨, 그들을 죽인다. 우리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을 패배시켜, 춤추자. 노래하자."는 연설을 하면서, 지지자들에게 반정부세력과의 철저 항전을 호소하였다.● 2월 26일 ~ 28일수도 트리폴리 이외의 지역이 거의 반정부 세력의 손에 떨어지자,카다피는 지지 시민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반정부 운동의 봉쇄에 나섰다.반정부 세력도 미스라타에서 의용병을 모으기 시작해 수백명이 행렬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수도에서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3월 1일반정부 세력이 리비아 동부 지역 및 서부의 다수 도시에 대한 통제력 확보한 가운데 수도인 트리폴리는 카다피 정권 지배 아래 남아있음.● 3월 5일반군이 벵가지에서 대표기구인 국가위원회 설립, 리비아 국민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 자처.● 3월 9일카다피 원수가 반정부 시위대 배후에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있다고 주장.● 3월 10일카다피 정부군이 수도 트리폴리 인근지역인 자위야에 대한 통제력을 탈환,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가 리비아 반군의 국가위원회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 3월 16일카다피 정부군이 반군의 근거지인 벵가지 인근까지 진격.카다피의 아들이자 리비아 정부의 2인자인 세이프 알-이슬람이 반란이 48시간 내에 진압될 것이라고 주장.● 3월 17일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내전에서 유엔의 군사적 개입을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 채택.표결에서 미국.영국.프랑스 등 10개국은 찬성, 중국.러시아.독일 등 5개국은 기권.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 설정.● 3월 18일유엔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한지 하루만에 리비아 정부 "즉각적인 정전과 모든 군사작전의 중단" 결정.제라르 아로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가 리비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19일 파리 정상회의 직후 수 시간 내로 대리비아 군사개입 이뤄질 것이라고 밝힘.● 3월 19일(오디세이 새벽 작전 : 리비아 시간)카다피군 벵가지에 대한 공세 강화 속 파리아에서 리비아 사태 논의 중, 카다피는 트리폴리 활보자신의 건재함 과시● 4월 21일미스라타에서 6주 동안 계속된 카다피 군의 집중적인 공격으로 천여 명 사망영국의 유명 사진기자 취재 도중 로켓에 맞아 사망반정부군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지상군 지원을 공식 요청● 4월 22일러시아가 서방의 리비아 지상군 투입 움직임에 대해 경고"리비아 지상군 투입 위험한 결과 초래할 것"● 4월 24일반정부군이 미스라타 장악)● 5월 1일나토 공습으로 카다피 아들과 손자3명 사망2. 미국의 중동 개입1) 중동 개입 사례A. 아프가니스탄9.11 테러 발생 뒤 미국은 즉시 전쟁상태를 선포하고 테러에 대한 장기전을 선언하였다. 이어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 라덴을 보호하고 있는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라덴의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탈레반 정권이 이를 거부하자, 10월 8일, 미군과 영국군은 아프간의 수도 카불과 남부 칸다하르, 동북부의 잘랄라바드 등 주요 도시의 군사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 아프간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10월 29일 미국과 동맹국들은 공중을 이용한 제한공격을 계속 감행해 탈레반의 군사시설 대부분을 파괴한 뒤, 다음달 18일에는 반 탈레반인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아프간 국토의 80%를 장악하였다. 이 공격으로 탈레반의 방공망과 본부·공군기지 등이 거의 파괴되거나 막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탈레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전쟁은 개시 한 달 만에 종결되었다. 같은 해 12월 22일, 아프간에서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경비 속에 과도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B. 이라크미증유의 9.11 테러를 경험한 부시 행정부는 테러조직을 지원하거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불량국가들을 대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라크, 북한, 이란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친 뒤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에 대한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이전 의혹과 함께 특히 그들이 핵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의심스런 활라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하여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물론 이라크 전쟁의 모든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지율 상승을 위한 정치적인 이유나 손실과 이익으로 따져 분석한 전망이론 등 많은 주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석유는 미국을 움직이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이다. ‘노암 촘스키’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중동 석유 이권은 유럽과 아시아의 재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며 이는 냉전 이래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 “A국가가 자의적 판단으로 B국가의 영토에 군사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이유는 만약 이러한 행동이 정당화 된다면 다음 순서가 우리나라가 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었을 때 국제사회는 역시 묵인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가별 석유 소비량 (2007, BP)3. 국제사회의 개입1) 찬성 근거- 내전의 지속으로 인해 리비아 사상자들이 늘고 있다.때문에, 생명권을 존중해서라도 외국의 개입은 필요하다.- 카다피 학살은 국제적인 인권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내전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에 혼란을 줄 것이다.- 국제사회의 개입만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2) 반대 근거- 리비아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개입은 또 다른 학살을 가져오고 더 큰 전쟁을 일으킨다.(아랍, 서구 전쟁확산 가능..)- 카다피가 군사개입에 대해 보복조치로 석유시설을 폭파시키는 등 공급을 중단한다면 원 유값 폭등 등 세계경제가 극도로 불안해질 것이다.- 리비아의 역사와 카다피 정권의 특성상 외국군의개입은 더 많은 희생과 부작용으로 오 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리비아가 과거 이탈리아에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 다는 점, 카다피도 오랫동안 반미, 반유럽 인사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또 다시 식민지가 되느니 강경대응으로 더 큰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개입은 석유에 대한 개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