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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소년이온다 독후감 평가B괜찮아요
    채식주의자 작가로 잘 알려진 한강의 작품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책은 한 시골집을 배경으로 아들만 셋인 집의 막내아들인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년이 온다는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나와 네 두 어미가 반복되어 사용되며 2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진행되는데 실제 그 당시 광주의 모습만큼이나 어수선한 분위기를 풍기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골집은 실제로 작가가 서울로 떠나오기 전까지 생활을 하던 집이자 주인공인 동호가 살던 집이다. 작가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집을 팔게 되고 동호네 가족이 들어와 살게 된다. 동호네 집 문간방에는 또 다른 가족인 정대와 정미누나가 세 들어 살고 있다. 동호와 동갑인 정대는 또래 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탓에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중학생 소년으로 두 형들과 터울이 많이 지던 탓에 외로움을 많이 타던 동호에게 친구이자 형제와 다름 없는 가족같은 존재였다. 꽃내음이 아닌 총포소리와 최루탄 냄새로 가득 하던 5월 어느 날 공장에 다니던 정미누나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 마음에 정대와 동호는 정미 누나를 찾아 집을 나서게 된다. 무장한 군인들과 시민군의 데모 행렬 사이에서 동호와 정대는 정미누나를 찾아 해매 돌아다니게 되고 그러던 중 군인들이 쏜 총에 정대가 맞아 쓰러지게 된다. 놀란 동호는 어찌해볼 틈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무장군인들의 폭행과 총격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행렬에 휩쓸려 의도치 않게 자리를 벗어나 정대를 놓쳐버리게 된다. 정대를 놓쳐버린 동호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정대의 시체를 찾기 위해 대모를 하다 죽은 시민들의 시신을 쌓아 모아 둔 곳을 돌아 다니게 된다. 매일 같이 시체를 찾아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던 동호는 도청의 상무관에서 대학생 봉사자들과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하게 된다. 동호의 엄마와 작은형은 매일같이 상무관으로 찾아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동호를 설득하지만 정대와 정미누나의 시신을 찾기 전까지는 돌아 갈 수 없다며 엄마와 형을 돌려보낸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시신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동호는 상무관에서 만난 진수 형과 선주 누나 그리고 은숙이 누나와 함께 매일같이 시신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초를 밝힌다. 그러던 어느 날 시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군이 광주로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계엄군이 들어오는 자정 전까지 성인남자를 제외한 여자와 아이들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며 진수 형은 동호에게도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계엄군이 들어오기로 한날이 찾아오고 소식을 들은 동호의 어머니는 도청으로 동호를 데리러 간다. 집으로 가자며 팔을 이끄는 어머니에게 동호는 저녁 전까지 모든 걸 정리하고 들어가겠다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동호는 고등학생이라 속여 도청에 남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진수 형은 동호에게 시민군이 계엄군에게 잡히게 되면 총을 버리고 두손을 들고 도청밖으로 항복한채 나가라고 말을 한다. 항복하는 어린 아이들을 죽이지 않을 것 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무장군인은 총을 버리고 두 손을 머리위로 올린 채 걸어 나온 동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날 동호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진수와 그곳에서부터 지켜내지 못한 수연과 은숙 누나 그리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각 챕터마다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직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퇴색되어 버렸을 지도 모르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 이다.
    독후감/창작| 2017.05.20| 2페이지| 1,000원| 조회(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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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빈에대하여 독후감 평가A+최고예요
    케빈에 대하여는 주인공 에바와 그녀의 아들 케빈에 대한 소설이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인 그녀는 배낭족들에게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사의 대표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인물이다. 자유로우면서도 도전적이기 까지 한 에바의 이면에는 그녀의 불우한 성장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어릴 적 에바는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그녀의 엄마를 대신하여 모든 일들을 책임져야만 했다. 이로인해 에바는 날선 모습의 어른으로 성장했고 심지어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에바의 곁에는 자상하면서도 늘 자신감 넘치는 남편 프랭클린이 함께했다. 어느 광고회사의 담당자인 그는 에바와의 결혼 생활이 3년째에 들어서던 이듬해 아이를 원했고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채 에바는 케빈을 낳게 된다. 그녀는 케빈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키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케빈은 마치 자신의 존재를 반기지 않았던 그녀를 뱃속에서부터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모든 것들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태어나자 마자 엄마의 젖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에바의 앞에서는 밥을 먹지 않거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으며 그녀에게 늘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케빈에게 에바는 엄마는 오줌싸개 케빈이 오기 전 까지는 행복 했데 라는 말을 하면서 케빈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에바와 케빈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진 채 시간이 흐르게 되고 어느 덧 케빈은 청소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 일어나던 그 날 케빈은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죽이게 되고 하나뿐인 여동생 실리아와 아빠 프랭클린을 죽이게 된다. 미성년의 신분이었던 케빈은 소년원에 수감이 되고 에바는 케빈을 찾아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지만 케빈은 그저 모르겠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시간이 흘러 케빈이 소년원에서 교도소로 이감 되던 날 케빈은 엄마에게 자신이 무엇을 찾으려 했었는지 자신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남긴 채 끝이 난다. 모성은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엄마라면 당연히 자식에게 모성이라는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흔히 사람들은 모성을 여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본능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얼핏 보면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는 모성이라는 감정은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관념은 아닐까? 에바는 모성을 선천적으로 지닌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에바를 보더라도 모성이라는 것은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다고 해서 가지게 되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케빈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낸 가해자 일뿐 동정의 이유로 피해자로 보일 수 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흔히 그들의 부모에게서 찾는다. 우리가 잘못된 가정교육의 예라고 들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케빈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모든 원인과 책임을 에바에게서 찾는 것은 옳은 일일까? 모성과 결부시키면서 에바가 단지 케빈의 엄마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 모든 일들이 에바에게 결여된 모성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인가? 케빈이 보여준 악의 모습은 태어날 때 부터 선천적으로 내재되어있던 그의 본성으로 보아야 할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본성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에바의 모성과 연결 짓기에는 객관전인 접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케빈은 영악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행동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난 뒤 에바의 표정을 살피며 그녀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케빈은 에바의 눈빛만 보아도 엄마인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의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케빈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에바는 분노와 좌절감 같은 것들을 케빈에게 표출했고 그런 엄마로부터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학습하게 된 것은 아닐까? 케빈은 그저 에바의 관심이 필요했을뿐이다. 어느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두사람 모두의 이야기이다. 케빈을 소시오패스 였기 때문에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그들의 관계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케빈은 태어난 것인가 만들어 진것인가? 아이는 엄마의 완벽한 일부가 되는 것일까 타인이 되는것일까?
    독후감/창작| 2016.12.27| 2페이지| 1,5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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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그물 감상문
    영화 그물에서는 철우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북한 경계선 주변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철우는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일이 직업인 어부 이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던 그날 아침 철우는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일을 하기 위해 강으로 향한다. 초소 앞에서 어업허가증을 내밀고 배에 올라 나갈 준비를 하던 철우에게 북한군은 오늘은 안개가 너무 심하니 남쪽 경계선과 여유 있게 공간을 확보하라 말하며 농담으로 만약 배가 잘못하여 남조선 쪽으로 흘러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온다 뒤이어 배를 버리고 돌아올 수 있겠냐며 묻는 북한군에게 철우는 배는 자신의 전 재산이라 대답하고 그럼 남조선으로 가기라도 하겠단 말이냐며 묻는 북한군에게 그런 건 아니라며 얼버무리며 배를 출발시켜 버린다. 철우가 배를 몰고 강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하듯 엔진에 그물이 걸리게 되고 그물을 빼려 하면 할수록 경계선 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철우는 당황하여 손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때는 이미 늦어 철우는 남한 경계선을 넘어가게 된다. 결국 남한경계선을 넘어가버린 철우는 남한 정보요원들과 조사를 위해 국정원 으로 가게 되고 이동하는 차안에서 철우는 남한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물들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는 행동을 보여준다. 국정원에 도착 하자마자 철우는 조사를 받게 되고 자신은 그저 그물이 엔진에 걸려 넘어오게 된 것 이라며 아내와 딸이 있는 북한으로 다시 보내 달라 하지만 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사원들은 철우를 잠재적 간첩으로 몰아가며 조사한다. 계속되는 강도 높은 조사에 철우는 서서히 지쳐가던 중 남한으로부터 북에 돌아가도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남한으로 전향하라는 회유를 받게 된다. 하지만 북에 남겨진 가족을 생각해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조사관들은 가학적인 조사를 펼치며 철우를 점점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넣는다. 당국의 반복되는 강경과 회유 속에서도 간첩이 아니라는 말을 유일하게 믿어주는 국정원 직원 진우에게 자신이 그물로 너무 많은 물고기를 잡았나 보다 라며 이제는 자신이 그 그물에 단단히 걸린 듯하다 라는 말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간첩일지도 모르는 남자로부터 국밥집에서 일하는 자신의 딸에게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당국의 의도에 의해 원치 않는 자유를 경험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결국 철우는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환송되지만 그곳에서도 보위부의 이중 간첩 혐의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고 어업정지와 함께 감시대상으로 분류 된 채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그토록 돌아오길 원하던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철우는 자신이 경험한 끔찍했던 기억과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야한다며 억지로 배를 몰고 나가다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철우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물들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눈을 감는 행동은 단순히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 행동뿐만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자유를 억압 받은 채 보고 싶은 것 과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못한 채 살아 온 철우가 낯선 환경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부적응으로 인해 나온 행동 이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철우가 북한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 조사관이 보여준 자신이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 만 듣는 행동은 이후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된다.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과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는 것은 다르게 보이는 듯 하지만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또한 타인에 의해서 가려지는 눈은 보여 지지 않는 상황이 가져다주는 공포로 인해 철우가 자신들이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이끌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독재정권으로 다시 돌려보낼 수 없다며 그러니 잘 설득해보라는 조사부장의 말처럼 우리는 사회주의 사상에 세뇌되어 사는 그들의 삶은 행복할리 없다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북한에 대한 생각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영화에서 철우가 북한으로 돌려보내달라는 그의 행동은 단순히 이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아야 할까? 체재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정도는 개인 마다 다르듯이 사회주의에 노출된 그들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위한 만큼만 체제를 받아 들일수도 있는 것이고 그 속에서 그들이 느끼고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과는 또 다를 지도 모를 일이다. 보여지는 모든 것이 다일 수 없듯이 타인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런 고정관념을 가진 우리가 세뇌된 존재는 아닐까? 정작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하지 못했던 건 어부의 배와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분법적인 사고와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결국 철우는 자신에 대해 물고기가 그물에 걸렸으면 죽어야지 라고 표현 한 것처럼 자신 앞에 놓인 죽음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철우를 남한으로 오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그물은 계속해서 등장 하는걸 보면서 결국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들을 조여 오는 그물에 걸려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철우에게는 가족이라는 그물과 조사부장에게는 독재정권에서 한명이라도 더 풀어줘야 한다는 자신이 만든 신념이라는 그물, 조사관들은 간첩체포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그물과 같은 것 들 말이다. 결국 한 인간과 가족에게 이념은 허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실체가 없는 이데올로기가 오랜 시간 동안 무의식적으로 우리 모두의 눈을 가려버린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국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던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6.12.08| 2페이지| 1,5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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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 황혼 독후감
    강변의 한 아파트 18층 3호에는 젊은 여자라 불리는 여자와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늙은 여자가 함께 살고 있다. 이 둘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이지만 서로를 어머니와 며느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시어머니라 부르는 대신 그녀의 아이들을 매개로 하여 노인이나 할머니라는 호칭을 쓸 뿐이다. 시집 온지 며칠이 지나도록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자는 자신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게 되고 친구들은 오이소박이 맛이 너무 좋다며 누가 만든 것인지 물어보게 된다. 친구들이 칭찬한 오이소박이는 늙은 여자의 솜씨였고 그 순간 늙은 여자는 자신의 하나뿐인 며느리인 젊은 여자가 자신을 시어머니라 불러 주리라 내심 기대 했지만 젊은 여자는 우리 집 노인네 솜씨야 라고 말해버린다. 이렇게 젊은 여자는 의도적으로 늙은 여자를 시어머니라 부르지 않았고 꼭 불러야 할 기회에는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부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부자연스러운 호칭 만 큼이나 불편한 관계는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에게는 불편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와 자신의 아들에게 가슴앓이 병이 있다고 말하며 명치 부분을 좀 문질러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젊은 여자는 과식을 해서 그런 거라며 자리를 피해버리고 젊은 여자의 남편이자 늙은 여자의 아들은 거북해 하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 한다. 하지만 병원에 가 보아도 늙은 여자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 버린다. 어느 날 집으로 젊은 여자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게 된다. 젊은 여자의 친구는 늙은 여자의 증상이 성적인 욕구 불만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이라고 진단하게 되고 우연히 젊은 여자의 전화통화를 엿듣게 된 늙은 여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늙은 여자는 그저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에 대한 공허함에 그랬던 것인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두 사람에 대해 미운 마음이 든다. 늙은 여자는 방에 드러누워 아들내외가 들여다 봐 주길 바라지만 늙은 여자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내외는 들여다 봐 주지 않는다. 늙은 여자는 방에 혼자 누워 자신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의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가족관계를 드러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호칭 대신에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친밀함을 없애는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늙은 여자가 쓸쓸함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한 행동을 젊은 여자가 오해한 부분에 대해서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사이의 거리감을 짐작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에 대해 무관심한 가족들의 모습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며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늙은 여자의 소외의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6.12.05| 2페이지| 1,000원| 조회(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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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순이언니 독후감
    소설은 화자인 “나”가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부터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주인공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은 화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그 기억 속엔 잠시 잊고 지내던 봉순이 언니가 자리하고 있었다.현재에 화자인 “나”가 있다면 기억 속엔 어린 시절의 짱아가 있다 어린 짱아의 옆엔 늘 봉순이 언니가 함께 였었고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던 식모들 중 하나였던 봉순이 언니는 짱아에게 그 이상의 의미였다. 짱아에게 봉순이 언니는 가족이였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 지던 그 시절 여느 중산층 가정들과 다를 바 없던 짱아네 집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오랜 유학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 의해 살림살이가 점점 늘어나게 되고 예전 과는 다르게 눈에 띄게 풍요로운 생활을 이어 갈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족한 것 하나 없는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이어가던 짱아네 집에서 어머니가 아끼던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지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늘 가족이라고 말해오던 짱아네 가족들은 제일 먼저 봉순이 언니를 의심하게 되고 반지를 찾는 과정에서 짱아네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봉순이 언니를 완전이 배제 시켜 버린다. 그 사건으로 인해 짱아네 가족 사이로 속하지 못하고 소외당한 봉순이 언니는 집을 나가버리고 만다. 봉순이 언니의 가출은 짱아에게 단순히 집을 나가버린 것만이 아닌 오랜 세월 짱아에게 0 순위 였던 언니와 짱아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리게 되는 의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봉순이 언니가 돌아온 짱아네 집에는 더 이상 봉순이 언니를 가족으로 당연시 여기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짱아네 가족들에게 봉순이 언니는 가족이 아닌 단순히 식모로써 짱아네 가족들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자신을 가족으로 반기지 않는 봉순이 언니에게도 짱아네 집은 더 이상 예전의 따뜻했던 집이 아니었다. 많은 것이 바뀌어 버린 그 이 후 더 많은 갈등을 겪게 되고 어린 짱아가 기억하는 늘 밝고 웃음 짓던 봉순이 언니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봉순이 언니가 짱아의 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강요받아온 낙태를 하고 돌아온 그날 밤 짱아의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와 끔찍한 잔상들이 준 역겨움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 이후로도 봉순이 언니가 남자와 도망을 갔다 다시 돌아올 때면 그녀는 아이를 낳아 한명 씩 달고 올 뿐 언니에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가난해지게 될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짱아는 지하철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 사실을 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 털어놓게 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녀의 얼굴이 가물거려서 라고 주인공은 회고 하지만 그녀가 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 봉순이 언니였다고 털어놓지 않은 그녀는 분명히 봉순이 언니 였다. 그렇게 소설은 주인공이 그저 정신이 나간 것만 같다고 가리킨 그 여인이 봉순이 언니가 맞는지 정확히 언급하지 않은 채 끝이 난다.봉순이 언니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 할 때 불쌍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이 이루 어 지던 그 시절 수많은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봉순이 언니의 삶 또한 선택에 의한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에 의한 삶 일뿐... 소설 속에서 봉순이 언니는 여러 남자들을 사랑했지만 그 결과는 매번 배신으로 끝나고 말았다 봉순이 언니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도망치듯 떠났다가 실패 후 집으로 돌아올 때 마다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을 절망적으로 보았을까? 다른 이들은 봉순이 언니가 매번 결과가 뻔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인생이 미련하거나 끔찍하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이런 생각들을 뒤로 한 채 매번 그녀가 보여준 행동을 보았을 때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의 행복한 삶의 기준이 얼마나 비뚤어진 감상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할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누군가가 바라보았을 때 불행해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불행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봉순이 언니는 자신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속의 봉순이 언니의 삶에서 우리들이 본 무언가가 아닌 봉순이 언니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독후감/창작| 2016.11.24| 2페이지| 1,500원| 조회(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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