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고..가나다과 000000학번 홍길동‘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아프리카 남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한국인 사제 이 태석 사제가 그 곳 병원과 학교를 지어 환자들을 돌보고 아이들에겐 기본 교육과 음악을 가르치는 이야기다. 종전에 영화로도 익히 이 이야기를 알게 된 지라 책으로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프리카 남 수단은 잦은 내전과 가난, 말라리아 등의 질병까지 악조건들로 인해 학생들의 교육과 인권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조차도 힘든 곳이다.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생활은 우리네 청소년들 보다 더욱 더 비참하였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놀랍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꿈을 꾸며 성장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도 여전히 속칭 ‘골통’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존재하고 매매혼과 같은 풍습 속에서 순수한 사랑을 꿈꾸기도 하며 미래를 위해 펜을 잡는 학생들의 강한 학구열도 보았다. 이것은 비단 작은 톤즈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 가?선생님이신 어머니의 덕에 나도 적잖은 ‘꼴통’들을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고 선생님에게도 욕을 내뱉으며 너무나 폭력적 이여서 어떻게 다가서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는 아이들을 듣고 있자면 정말 이런 구제불능인 아이들이 또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또 이 아이들만큼 불우한 아이들도 없었는데 부모님의 이혼, 가난, 가정 폭력, 방임 등 각자 온갖 아픔으로 범벅이 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을 꾸짖어야 할 손가락을 우리에게 돌려야 한다는 이 태석 신부의 말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스쳐지나간다. 청소년 분야 중 그 동안 특히 관심이 많은 청소년의 문제행동 영역을 보자면 학생들에 따라 다양하고 그 정도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이 문제들은 연쇄 고리 마냥 연결되어 있어 한 특정 상황이 한 문제를 야기하고 또 그 문제가 다른 문제 행동을 유발시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한 공식이다. 이 태석 신부 또한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에 험한 욕들을 내뱉는 까만 ‘꼴통’들에게서 보호 처분을 받은 ‘희찬이’를 겹쳐 생각하였고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할 공통되는 열쇠로 사랑과 인내를 찾아냈다.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사랑과 인내. 나는 사회와 학교, 가정에서 먼저 이를 실행하여야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사회에서 가정이 안정적으로 존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적더라도 지원금이 절실한 가정에 정확히 지원되어야 하며 특히 교육과 문화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본다. 최근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겐 문화적 할인 혜택을 개시한다는 광고도 보았는데 이는 낮은 SES(social economic status)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문화 결핍을 충족시켜 줄만한 긍정적인 대안이라 본다. 이 태석 신부도 톤즈 아이들의 문화 결핍을 만족시켜 줄 시도로 음악을 도입하였고 결국 밴드부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교육에서도 국가 장학 혜택을 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며 이 단순한 ‘꼴통’에게 그 보다 더 단순무식한 격려와 감시가 아닌 관심, 칭찬으로 학교생활에 조금이나마 흥미를 가지도록 도와야 한다. 설령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의 안전망에서 벗어나더라도 낙인을 찍기 보다는 진정한 반성의 의미를 깨닫고 다시 우리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항상 교육의 기회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는 참된 가족의 의미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태석 신부는 자신에게 말라리아 진단을 받은 한 어린 아이가 환자에게 배급되는 수수죽 한 그릇을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아버지에게 드리자 아버지가 거절하며 아이에게 주며 서로 실랑이를 버리는 모습을 아름답게 회상하였다. 비록 우리는 톤즈 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해졌지만 그러는 동안 의미를 잊고 산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 태석 신부의 말을 빌리자면 진정한 재료의 맛이 아닌 화학조미료의 맛이 나는 음식처럼 말이다. 물론 가정에 있어서 SES를 포함한 그 외의 요인들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그 속에 가족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단합이 강한 가정에서는 문제행동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부모들에게도 ‘부모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 제3자는 최종적으로 개입해야 할 문제라고 보며 최우선적으로는 가족 구성원들 간에 서로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접촉을 통하여 많은 인내와 시간, 노력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일궈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욕구와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크기에 더욱 더 대화와 접촉의 중요성이 크다. 매매혼 풍습이 만연한 사회에서 순수한 연애결혼을 원하던 톤즈 소녀 ‘아북’이 행복하게 첫사랑의 아이와 함께 그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도 기존 세대와의 소통을 통한 하나의 결실일 것이다. 이 태석 신부가 무기 대신 악기를 처음 대하던 아이들을 보며 진흙에서 진주를 찾은 느낌을 받으며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작은 씨앗들의 싹을 틔우듯 학생들을 돕겠다고 생각하였다. 톤즈의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이 태석 신부에게 전해 들으며 세계 곳곳에는 아직도 우리 알아보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진주와 씨앗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채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훗날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진주들과 싹이 터지지 않은 작은 씨앗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 내게 오게 된다면 비록 이 태석 신부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의미와 같이 숭고한 의미는 갖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들을 알아보고 기쁘게 진흙을 닦아주고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물과 거름을 주어 이끌어 주고 싶다.
..PAGE:1사이버 상담의 이해가나다 학과 000000학번 홍길동..PAGE:2목 차1. 정 의2. 특 징3. 방 법4. 실 태5. 기 법6. 상담 방법 별 비교7. 효 과8. 한 계9. 개선 방안..PAGE:3사이버 상담이란 ?사이버 상담은 실제 상담실이 아닌 가상의 상담실에서이루어지는 전문상담활동PC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 감정, 행동상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상담과정을사이버 공간에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함사이버상담 이외의 다른 명칭으로 넷 상담(Net Counseling) 또는 웹 상담(Web Based Counseling),원격 상담이라는 말도 사용됨...PAGE:4이론적 배경미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가 상담에 활용되었으나 주로 진로지도 및 진로상담에서 Computer-Assisted Career Guidance System으로 개발되어 사용됨.일반 심리상담 분야에서도 컴퓨터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내용과 방법이 소개되고 있지만 아직은 대면상담실을 안내하거나 대면상담실로 유도하기 위한 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임...PAGE:5사이버 상담의 필요성사회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함.PC 통신이나 인터넷에서 건전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함.상담의 대중화를 위해 필요함...PAGE:6사이버 상담의 특징컴퓨터를 이용한 상담상담자와 내담자가 컴퓨터를 매개함.대면상담과 달리 상담자는 내담자의 문제나 감정, 생각, 행동상의 특징에 대해 내담자의 실제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고, 컴퓨터 모니터에 올려진 문자나 영상을 통해서만 내담자를 파악할 수 있음...PAGE:72.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한 용이한 상담 방법사이버상담의 가장 큰 장점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만 있다면상담을 받을 수 있음.E-mail로 상담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담자에게 보내면빠르면 24시간 내에 전문가의 답신을 들을 수 있게 됨영상 및 문자채팅 상담을 통해 즉시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상담자와 함께 상호적으로 대화할 수 있음..PAGE:83. 문자중심의 의사소통사이버 상담은 주로 문자를 통해 상담이 이루어짐.내담자의 감정, 사고, 행동이 문자를 통해 상담자에게 전달되고, 상담자의 배려, 경청, 이해 설명 등의 메시지가 문자를 통해 전달됨.문자중심의 의사소통은 내용이 복잡하거나 애매하고 다양한 정서적인내용을 담고 있을 경우에는 제한적인 의사소통이 되기도 함.이때는 문자를 조합한 이모티콘이 쓰여지기도 함.(예. ^^(눈웃음), -_-+(화난얼굴), ㅠㅠ(울음) 등)..PAGE:94. 익명성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말함.대면상담과 달리 자신에 대한 정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감추거나바꿀 수 있기에 상담자는 내담자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상담을 하게 됨.이러한 상담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이버상담 이용 시회원가입을 필수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이용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채팅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음...PAGE:10사이버 상담의 방법1. 실시간 상담내담자가 상담을 원하는 상황에서 바로 상담자와 대화를 통해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문자채팅상담, 영상상담)채팅상담 : 컴퓨터에서 문자메시지를 교환하면서 상호간에 대화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상담은 상담자와 직접 대화기 가능하며 대면상담과 달리 얼굴을 대해야 하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내담자가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받는 것이 용이하다고 볼 수 있음.영상상담 : 얼굴을 보면서 일상 대화하듯이 상담하는 것으로 이는 대면상담과 유사하며 사이버상담의 장점과 합쳐진 상담방법이라 볼 수 있음...PAGE:112. 비 실시간 상담상담이 원하는 때 즉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메일이나 게시판을 통해 편지를 보낸 후 자신의 상담에 대해 답신을 받아보는 것.이메일 상담 : 이메일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고민사항을 상담자에게 전달하고 상담자는 그에 대한 공감이나 해결책 등을 내담자에게 답신으로 전달함으로써 상담이 이루어짐. 이 상담은 타인에게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내담자가 비밀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상담 형식임.게시판 상담 : 사이버상담실의 홈페이지 메뉴에 게시판을 개설하여, 내담자가 자신의 고민을 게시판에 올려놓으면 상담자 뿐 아니라 다른 제3자도 그 고민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 상담형태로 이 상담은 이메일 상담과 달리 다수에게 공개 된다는 차이가 있음. 이러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신을 듣게 됨으로써 자신의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공유되어지고 관심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됨...PAGE:123.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상담문제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여러 가지 자료들을 서버에 저장해 놓고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4. 심리검사편리하고 경제적이며 객관적이라는 장점을 지녔으며심리검사의 결과를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임...PAGE:13사이버 상담의 실태인지도빈도(%)사이버 상담 방에 직접 들어가 본 적이 있다.5(1.4)벽보나 안내 책자를 통해 알고 있다.115(32.4)전혀 모르고 있다.233(65.6)..PAGE:14..PAGE:15..PAGE:16사이버 상담의 기법정서적 표현에 괄호치기글 속에 숨어 있는 정서적인 내용에 괄호를 침으로비언어적 단서의 결핍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치료자와 내담자가 쉽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내담자의 자기 인식 수준을 증가시킬 수 있다.내담자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들을외제화 시킬 수 있다...PAGE:172. 즉시성과 현시기법상담자가 자신의 심정과 모습을 생생하게시각화시켜 표현하는 것내담자와 상담자 간의 관계의 질을 심화시키는 것을목적으로 사용함3. 비유적 언어사용사이버 상담은 비언어적 요소가 결여되기 때문에 ,글의 표현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비유적 언어를 사용함..PAGE:184. 마침표 사용하기자판을 통한 의사표현이 없을 경우, 내담자로 하여금상담자가 컴퓨터 앞에서 떠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침표를 사용함5. 글씨체글씨체는 내담자의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하며,상담자는 내담자와 같은 글씨체를 한 두번 사용해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음..PAGE:196. 이모티콘, 스마일리, 아바타의 사용사이버 공간 특유의 언어로,실제 만남에서와 같은 대화효과를 낼 수 있고자신을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로내용을 보다 생동감 있게 구성할 수 있음7. 문자 기반의 외제화내담자로 하여금 갈등하는 자아의 각 부분을다른 부분이 간섭 없이 충분히 듣도록 돕고,두 자아의 측면들을 명확하게 탐색하도록 하는 기법임..PAGE:20상담방법별 비교(대면, 메일, 채팅상담)단계기법대면메일채팅관계맺기내담자맞아들이기-상담자의 첫인상관리- 내담자에게 호감주기글 표현으로 내담자 환영자발적 내담자 격려신속한 반응으로 내담자 환영보조 맞추기-심리적/물리적 관심기울이기음성/비음성 잘 듣기공감잘하기-심리적 관심기울이기-글 잘 읽기-공감하기‘그렇군요’ ‘아하’ 등의 표현을 통해 상담자의 경청표현
‘쿠마리’ 살아있는 여신 (Living goddess)1. 쿠마리의 정의달라이 라마와 에베레스트 산의 나라 네팔. 험준한 산맥에 쌓여 있는 전설 속의 나라답게 많은 관습과 전통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에게 가장 낯설고도 신기하게 다가오는 존재가 바로 쿠마리(Kumari)입니다. 쿠마리(=쿠마리 데비)란 산스크리트어로 '처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처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힌두교의 여신 '탈레주(Thaleju)'의 현신(現身)으로 쓰입니다. 즉 쿠마리란 '살아있는 여신'인데 이는 쿠마리의 기원을 통해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쿠마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에 얽힌 전설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말라 왕국(12~17세기)의 왕 자야프라카쉬의 일화입니다.2. 쿠마리의 다양한 기원1) 옛날 힌두의 탈레주라는 여신이 인간의 몸을 빌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카트만 두 왕국에 출현했습니다. 왕은 여신을 극진히 모시며 여신이 영원히 같이 있어주기를 희망했는 데 어느 날 여신과 장기를 두고 있던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그만 이성을 잃고 여신을 범하려 들었습니다. 그러자 여신은 분노하여 저주하며 이승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왕은 크게 잘못을 뉘우치고 여신이 돌아올 것을 빌었으나 그 여신은 다시 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의 절망적인 기도는 계속되자 그의 진심을 이해한 여신은 그에게 직접 다시 나타나는 대신 초경을 겪지 않은 순수한 어린 여자아이를 선 택해 그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섬기기를 명했습니다. 왕은 여신이 제시한 조건에 따라 어린 여자아이를 뽑아 여신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아이가 바로 쿠 마리인 것입니다.2) 어느 날 밤 붉은 뱀으로 변한 여신 탈레주가 왕의 방으로 찾아왔고, 왕과 함께 트 리피사라는 네팔 전통 보드 게임을 하며 매일 밤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탈레주는 그들의 만남을 함구한다는 조건으로 놀러왔으나 왕비에게 발각되고, 이를 안 여신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탈레주가 즉시 떠나려 했으나 왕은 여신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탈레주는 자신이 샤카족의 어린 여자아 이로 현신해 있을테니 내가 보고 싶거든 찾아내라'고 말하고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기원이야 어찌됐든 쿠마리는 아직도 네팔인들에게 추앙받는 "살아있는 여신"입니다.3. 쿠마리 선정과정쿠마리가 된다는 것은 단번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 위치에 오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쿠마리는 대개 기초적인 분별력만이 생성되는 2세에서 8세의 나이에서 선발된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카트만두 지역의 네와르 족의 카스트를 지녀야만 하고 그것도 성이 샤카인 씨족에서만 선택된다고 하는데, 샤카는 '석가모니'의 성인 샤카라고 합니다.신체적 조건도 까다로운데 경전에 따르면 쿠마리가 되려면 32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쿠마리의 조건은 전체 다 알려지지 않고 몇 가지만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러합니다.1) 왕과 별자리가 맞아야 한다.2) 몸이 완벽하게 건강해야합니다. (즉 기형이 없어야하고 아픈 적이 없어야한다.)3) 몸은 보리수와 같아야 한다.4)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한다 (속눈썹이 길어야하며 짙고 분명해야한다.)5) 허벅지는 사슴과 같아야 한다.6) 그 어떤 상처자국이나 천연두 자국이 없어야한다.(피는 불결하므로 흘린 자국이 없어야한다.)7) 검은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지니며 미인형 얼굴을 지녀야 한다.8) 고른 치열을 가지며 빠진 치아가 없어야 한다.9) 항시 우아함을 갖추어야하며 두려움이 없어야한다.일단 기본적인 조건이 만족되면 쿠마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테스트로서 칼라트리, 혹은 어둠의 밤이라고 불리는 고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이 테스트는 네팔의 전통 축제인 다샤인 축제 기간 중 실시되는 데 다샤인 축제 기간 동안에는 힌두교의 신 칼리를 기리기 위해 총 108마리의 버팔로와 염소, 닭 등을 도살합니다. 이 짐승들의 시체를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탈레주 신전의 안마당에 방치해 두는데, 쿠마리 시험을 치르는 어린 여자 아이들은 안마당에 갇혀 이 시체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야 합니다. 아이가 무서워서 견디지 못하고 울거나 소리를 지르게 되면 신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여기게 되는 데 그녀가 진정한 탈레주의 현신이라면 울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즉, 쿠마리가 되려면 두려움과 슬픔, 기쁨 등 속세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끔찍한 과정을 거쳤다고 바로 쿠마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관문이 남아있습니다. 쿠마리 후보 소녀 앞에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는데, 그 물건 중 하나는 탈레주의 개인물건입니다. 이 때 쿠마리 후보소녀는 많은 물건들 중 탈레주의 개인물건을 택해야 비로소 쿠마리로 인정받는 것입니다.4. 쿠마리의 생활일련의 시험을 거쳐 선택이 되면 쿠마리라는 이름의 여신이 되는 데 쿠마리로 지내는 동안은 그야말로 여신에 준하는 대접을 받습니다. 특히 쿠마리로 선정되면 국왕이 제일 먼저 쿠마리에게 무릎을 꿇고 복을 빌며 여신으로 섬김을 맹세합니다. 왕과 높은 관료들은 물론이고 많은 힌두교인 (참고로 네팔 인구 중 90%)의 숭배를 받는 데 이들 사이에선 쿠마리의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행운이 깃든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쿠마리로 있는 동안 아무런 물질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쿠마리는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으며 그녀는 물론 가족까지 신의 일족으로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거주지 근처에서 여신 강림을 기다립니다. 네팔에는 12명가량의 쿠마리가 존재하는데, 이 중 수도인 카트만두 두르바르 광장에 있는 쿠마리를 일컬어 '로얄 쿠마리'라고 부릅니다. 2008년부터는 마티나 사키아(4)가 로얄 쿠마리의 자리에 있으며 부모는 종종 그녀를 볼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쿠마리를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쿠마리를 보기 위해 항상 그녀의 거주지 근처를 맴돌거나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어야 창틈으로 비추는 여신의 자태를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영광은 직접 그녀를 알현하는 것인데 고민이 있거나 병을 앓는 사람들이 쿠마리를 찾아와 축복해주길 원합니다.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도 쿠마리를 자주 찾아 선물이나 음식, 금전을 쿠마리에게 바치고 그녀의 발을 만지거나 입을 맞추며 소원을 비는 데 이 때 쿠마리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미래를 예견하는 행동을 보입니다.대부분의 경우 무표정한 표정으로 꽃을 신도의 머리에 올려놓는데,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의 소원의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쿠마리가 만약에 크게 울거나 웃으면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암시한다는 믿음도 있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눈을 비비면 죽음이 임박했다는 표시, 떨면 투옥을 의미합니다. 쿠마리는 항상 짙은 화장에 이마에는 '티카' 라 불리는 제 3의 눈이 그려진다. 이것은 불교의 스투파 상단의 제3의 눈과 같은 것으로서,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와 법을 꿰뚫어본다는 신성한 눈이 되는 셈입니다. 또 화려한 꽃 장식과 많은 장신구, 붉은색 계통의 옷만 입습니다. 쿠마리로 있는 동안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절대로 피가 몸에서 나와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피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며 쿠마리는 신이기 때문에 피가 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넘어져 다치거나 뾰족한 것이나, 심지어 작은 가시에 찔려 한 방울의 피를 흘린다고 해도 이미 그녀는 부정을 타는 것이 되고, 쿠마리의 자격도 바로 박탈당하게 됩니다. 12세 전후 첫 생리가 시작되면 쿠마리의 생활도 끝이 나게 되고, 화려한 여신 쿠마리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되고 이럴 때에는 그 즉시 또 다른 쿠마리 여신을 선출하게 됩니다.5. 쿠마리 이후의 삶쿠마리 자격을 박탈당한 소녀는 여신이 아닌 평범한 소녀의 자격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집에서는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데 쿠마리가 되었던 소녀가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이 망하고 가족들이 죽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혼도 하기 어렵다는 데 쿠마리 였던 처녀는 신을 담았던 여자이기 떄문에 결혼을 하면 남편이 비명횡사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가정에서 외면을 당하는 소녀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거나 멀리 떠나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회에 속하지 못한 쿠마리로 지냈던 많은 여성들이 결국 매춘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900년대 들어서 조금씩 인식이 바뀌어 쿠마리를 지내고 나서도 결혼해서 자녀도 낳고 잘 사는 케이스도 많습니다.
..PAGE:1*..PAGE:2*Hillary Rodham Clinton힐러리의 대선출마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130&aid=0000014995 [동영상]..PAGE:3*Hillary Rodham Clinton1. 선정이유現 미국 국무장관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에 도전행정에 깊게 관여했던 퍼스트레이디..PAGE:4*Hillary Rodham Clinton2. 가정 환경1947년 10월 26일 출생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어머니..PAGE:5*Hillary Rodham Clinton..PAGE:6*Hillary Rodham Clinton(1),(2) 어린 시절의 힐러리..PAGE:7*Hillary Rodham Clinton3. 학교 생활항상 뛰어난 성적의 학생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자신감이 넘치며 리더십을 가진 학생..PAGE:8*Hillary Rodham Clinton졸업생으로써 연사를 맡은 힐러리대학생시절의 힐러리..PAGE:9*Hillary Rodham Clinton(3), (4) 대학생 시절의 힐러리..PAGE:10*Hillary Rodham Clinton4.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인물빌 클린턴(Bill Clinton)같은 꿈을 꾸는 동반자정치적으로 좋은 협력자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파트너..PAGE:11*Hillary Rodham Clinton힐러리는 예일대학원 시절 빌 클린턴을 만나게 된다.1975년 10월 11일 결혼하게 되다...PAGE:12*Hillary Rodham Clinton서로에게 좋은 파트너인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PAGE:13*Hillary Rodham Clinton5. 성격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앎변화를 가져오는 중재능력을 지님성별의 고정관념에 억압받지 않음
안녕하십니까? 발표자 000입니다.저는 이번 시간 힐러리 로댐 클린턴에 대해 발표하고자 합니다.1. 선정이유훌륭한 웅변가, 정치인, 후원인, 행정가임과 동시에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아내 등 그녀를 표현할 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치밀함과 당당함’이 그녀를 나타내는 데 가장 적합한 형용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자는 힐러리가 드세고 강한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클린턴 임기 시에 가장 행정에 깊게 관여했던 퍼스트레이디이며 비록 패배했지만 최초로 미국 여자 대통령에 도전했으며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아동복지에 힘쓰고 의료보험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주지사의 아내, 대통령의 영부인 등 누군가의 배경으로 만족하지 않았으며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했고, 여성을 주저앉히는 요소들에 굴복하지 않으며, 결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본인만의 파워를 발휘할 줄 알고 원하는 것은 꼭 이루어 내고야 마는 여자 힐러리 로댐 클린턴.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세계의 많은 대학생들의 롤모델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런 그녀의 삶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2. 가정환경힐러리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1947년 10월 26일 아버지 휴 엘즈워스 로댐과 어머니 도로시 하월 로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카고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였는 데 대공황 시대를 겪으며 성장하여 궁색하리만큼 검소하였으며 아이들에게 칭찬하는 것에 서툴고 야단을 치는 데 익숙해 하며 항상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였습니다. 또한 힐러리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동안 해군의 수병으로 훈련받았으며 딸 힐러리에게 깊은 애국심과 경제적 책임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르쳤습니다. 힐러리의 아버지는 비록 공격적이고 가족들에게 항상 긴장감과 공포감을 주었지만 이런 아버지를 견뎌냈던 경험 덕에 힐러리는 빌과의 결혼이라는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두뇌싸움을 이겨낼 수 있었고, 살벌한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반면 어머니 도로시 하월 로댐은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척들의 학대 속에 공포에 떨며 자랐는 데 후에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힐러리는 아동복지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머니 도로시는 그러나 쾌활한 성품으로 딸 힐러리와 마찬가지로 역경을 극복해 내는 능력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무심하고 냉담한 남편과는 대조적으로 도로시는 지적인 측면에서 개방적이었고, 남편이 감정에 휩쓸려 쉽게 화를 냈던 것과는 반대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변화시켰으며 60대 후반의 나이에 평생의 꿈이었던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주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칭찬을 주곤 하였으며 특히 딸이 자신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큰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망설이지 말고 목표를 높이 두고 그 목표를 추구해나가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힐러리를 자기 인생에 주도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여성으로 키워낸 힐러리의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책에서 그녀는 가족끼리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대개 정치나 스포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 지붕 밑에서도 여러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과 어떤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무언가가 옳다고 믿는다면 그것을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3. 학교생활힐러리는 어렸을 적부터 학교에 쉽게 적응했는데 유진필드 초등학교에서는 특히 자신감이 넘쳤으며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으며 거의 언제나 전 과목 A를 받았습니다. 특히 여성들과의 깊은 친분을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힐러리는 학교 시절부터 돋보였으며 결단코 누군가의 명령을 받기 보다는 자신이 뭐든 경영하고 지휘하고 싶어 하여 걸 스카우트단 등 다양한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반 친구들은 또래 여자아이들이 대부분 몸치장이나 남자아이들에 관심을 가지던 때 힐러리는 이미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녀는 메인이스트 고등학교에서도 거의 모든 특별활동에 참여 했는데 학생자치회, 교지편집부, 문화가치위원회 그 밖에 퀴즈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서기도 하였으며 내셔널메리트장학금(미국 내 최대 규모의 장학금제도로서 우수한 성적의 학생에게 주어진다)의 최종 후보 11명에 선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학교생활에 항상 강한 의지와 노력, 그리고 철저한 준비 자세로 임하였으며 특히 토론 수업에서 힐러리의 놀라운 기억력과 철저한 준비는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12학년 때 그녀는 백인만 있는 메인이스트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있는 메인사우스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곧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종 차별에 대한 연설을 들은 후 미국의 인종 비극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북부 7대 명문 여대들 중 하나인 웰즐리 여대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지냈던 로버트 라이히는 당시 신입생이었던 힐러리를 자칭 학생 ‘개혁가’ 였다고 회고했는데요, 함께 인권운동 행진에 참여하고 더 많은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요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정치성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후에 힐러리가 가진 천성적인 따뜻함과 유머감각, 그리고 그녀의 확실한 일처리 능력에 매료되기 시작하여 웰즐리의 부유하고 특혜 받은 여학생들도 자신들처럼 사립학교 출신인 다른 친구들을 과감히 져버리고 힐러리를 기꺼이 그들의 지도자로 뽑아주었습니다. 힐러리는 대학생활 동안 주로 인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행진에 참가했으며 그녀의 주장으로 도심에 사는 아동들을 위한 업워드 바운드 프로그램(소외계층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웰즐리 내에 진행되었고 흑인 교수의 채용이 확대되었으며 복수전공제가 최초로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전례 없이 졸업생으로써 최초로 학위수여식 연사로 뽑혔으며 당시 그녀 세대가 겪었던 격동의 시기와 관련하여 연설하여 타임사의 대표 주간지 (Life)에 실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웰슬리 대학교 졸업 후 예일 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는 법률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며 어린이와 가정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힐러리의 활동은 어머니 도로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힐러리에게 강한 정의감을 심어주었고, 어린이들이 절대 불우해서는 안 되며 모두 사랑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4. 인생에 있어서 영향력 있는 인물힐러리의 학창시절 빌 클린턴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스승이었던 돈 존스를 소개합니다. 존스 목사를 만나기 전까지 힐러리의 정치관과 종교관은 별개의 문제였으나 존스 목사의 ‘인생대학’을 통해 두 개로 나누어져 있던 힐러리의 가치관은 하나로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힐러리에게 피카소의 그림들을 보여주고는 신학이나 지정학적(제1.2차 세계대전 중 널리 쓰였던 국가과학의 용어)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설맹해주기도 하였으며 또한 후에 힐러리의 정치관에 파장을 주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집회를 열자 힐러리와 청년부 학생들을 이끌고 그이 집회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어린 힐러리의 삶에서는 가장 중요한 스승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힐러리의 상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힐러리가 역경에 처하여 가장 힘든 순간에 스스로 헤쳐 나오는 방법, 즉 선을 행함으로써 ‘곤란에 빠진 다른 영혼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녀는 고통이나 모멸감에 찬 위기가 있을 때 마다 어린 시절 배웠던 존스 목사의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그녀는 20년 이상 존스와 꾸준하게 서신을 주고받으며, 신앙의 요건과 변덕스러운 인간의 본성에 대해 토론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