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처음 보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예전에 봤던 몇몇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땐 주연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봤다면, 이번엔 좀 더 장애인의 삶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느끼려고 노력하며 감상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렸을 때 느꼈던 느낌과 커서 느끼는 감정이 사뭇 다른 것처럼, 약 8년 만에 다시 보는 말아톤도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는 수십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해마다 동물들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습니다. 저기 갓 태어난 새끼와 함께 있는 어미 얼룩말이 보이는 군요. 이제 새끼에게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야생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끼들 주변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하지만 세렝게티 초원은 분명 이제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천국입니다. 어미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새끼들에게 풀을 뜯고 달리게 할 수 있지요.먼 옛날엔 지구 전체가 그러했겠지만 말입니다.”자폐증을 가진 초원이의 위와 같은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도입부에 깔리는 독백은 극 사이사이 종종 삽입되는데, 이 말 속에 영화 ‘말아톤’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보는 내내 초원이의 순수한 말씨가 더해진 저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초원이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생명과 자유를 품은 드넓은 세렝게티 초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세렝게티 초원은 인간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무한경쟁도, 적자생존도, 약육강식도 아닌,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지켜지는 야생의 세계를 의미한다. 세렝게티 초원은 초원이가 자신을 가두는 장애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있는 드넓은 초원을 의미하지만, 이곳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기란 역시 녹록한 일이 아니다. 초식동물인 얼룩말이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달리고 또 달리는 일이듯, 초원이 역시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위 끊임없이 달린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초원이는 장애인 중의 하나가 아닌 한명의 자유로운 인격체로 완성된다.초원이는 자폐증이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대신 특정 분야에서 만큼은 남들보다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능력은 달리기와 암기력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몇 키로 뛰기도 힘에 부쳐 엄두도 못내는 정식 마라톤 코스 42.195km를 당당히 완주하고, 암기력도 좋아 TV 내레이션을 마치 주문 외듯 줄줄 이야기 한다. 초원이가 가진 남다른 달리기 재주를 일찌감치 발견한 초원이 어머니는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다방면에서 희생하고 서포트 해준다. 어머니가 있기에 초원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 중반까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희생정신에 감동하며 봤는데,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 커지고 커지다 어느 순간 집착으로 변해갈 때는 참 안타까웠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양날의 칼처럼 초원이를 옭아 멜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사람을 대하는 일만큼 복잡한 감정선이 없다고 한다. 하물며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하는데 있어서는 얼마나 더 예민하고 미세한 감정들이 오고 가는지 생각해보면, 비록 그 마음이 집착이고 욕심이라 해도 극 중 어머니를 비난하고 들 수만 있을까 싶다. 스무 살 나이에도 불구하고 5세 아이의 지능을 가진 아들을 돌보는, 돌봐야만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제 3자가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내적 갈등과 회의감으로 인해 초원이가 마라톤을 잠시 접어야 했을 때 더 착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공장에서 회색 빛 유니폼을 입고 단순 노동을 하는 초원이는 더 이상 초원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초원이를 보니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현실의 어려움으로 혹은 적절한 지도의 부재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수업시간에 사례로 들어주셨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려내는 일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로 코치를 받지 못해 안내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학생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도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해서 혹은 현실의 어려움으로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이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아니 이 말에는 이기심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장애인들은 본인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일에 다가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그렇기에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누군가 이기심에 눈이 멀어 위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건 나에게도 장애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측근들의 관심이나 사회적인 시스템이 결여되어 있다면 장애인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가기란 비장애인들에 비해 너무 어렵고 고달프다.우리나라 1000명 중 1명은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몇 다리만 건너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우리들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계속 배척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너무 많은 부분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함께 가야할 존재이지 배척하고 나와 관련 없단 듯 볼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극중 초원이의 자폐증상은 개중 꽤 양호한 편에 속한다. 비록 자폐가 있긴 하지만 본인의 의지, 어머니의 사랑, 장애인 교육 등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느 정도의 성취감도 느끼며 살고 있다. 이처럼 자폐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증상이 심해질 수도 나아질 수도 있다. 이들을 조기에 교육하면 각자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지만. 방치해 두어 상태가 악화되면 후에 이들에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당장엔 낭비 같아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비용을 감소할 수 있는 것이다.최근 학교 커뮤니티에 ‘자폐아에 대한 선진국 국민 의식수준’이란 제목의 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나는 이 영상을 클릭하면서 아마 평소라면 이런 제목의 영상에 내가 관심을 갖고 클릭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작은 변화지만 왠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상은 한 선진국의 실험카메라였는데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레스토랑에서 자폐아를 연기하는 연기자와 그의 가족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투입되어 레스토랑 내를 소란스럽게 만든 후 같이 있던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또한 그 곳에는 자폐아가 거슬리니 나가라고 시비 거는 연기자도 투입되었다. 곧 식당 내에서 자폐아가 소란을 피우고, 시비를 걸기로 했던 연기자가 자폐아 가족에게 핀잔을 준다. 그러자 갑자기 조용했던 다른 손님들이 시비 거는 연기자에게 맹비난을 퍼부으며 이곳에서 나가야 할 사람은 저 아이가 아니라 당신이고 당신이 지금 이 곳의 분위기를 망쳤다며 어서 나가라고 이야기 한다. 이 실험카메라는 장애인에 대한 선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의 국민들의 의식을 살펴본 실험이었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만약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오히려 그 시비 거는 연기자에게 묵언의 동조를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 레스토랑에서 그들 가족을 출입은 시켜줬을까. 많이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해 특히 정신에 장애가 있는 자폐증 환자들에게는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실험이 끝나고 한 할아버지가 인터뷰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만약 우리가 저 아이들이고 우리 중 한명이 저 아이 같다면 누구도 우리 친구를 이곳에서 내쫒고 싶지 않을 겁니다. 당신도 그렇잖아요.” 정말로 우리 모두가 이 사회의 일원이라 느끼게 만드는 말이었다.
게슈탈트 원리는 일반적으로 이미지가 인간의 시각인지에서부터 두뇌로 해석되어지는 과정에서 정보들을 기억하기 쉽거나 특정화로 그루핑 되어진 형태로 해석하려는 경향에 대한 이론으로서 인간의 시각과 지각은 어떤 대상을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망막에 맺힌 형상을 시각이 인지한다는 개념에서 더 나아가 감상자의 재해석을 통해 두뇌로 지각되는 과정에서 더욱 흥미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원리이다. 게슈탈트라는 말은 형태나 모양을 의미하는 독일어 명사에서 유래되었다. 게슈탈트 이론은 독일의 심리학자 박스 베르트하이머가1910년 여름 기차여행을 하는 동안 영감을 얻어서 주장하게 되었다. 그는 기차의 불투명한 벽과 창문 프레임이부분적으로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도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이 단순하게 모든 영상 자극을 받아들이고 뇌는 이러한 감각을 일관된 이미지로 정리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베르트하이머에 의한 최초의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서 영상 인식은 감각적 요소와 형태를 다양한 그룹으로 조직한결과라고 결론지었다.게슈탈트 시지각 이론은 다음과 같이 범주화 할 수 있다.
1. 대안학교란?1) 대안학교의 정의2) 대안학교의 특징3) 대안학교의 유형4) 대안학교의 등장배경2. 대안학교의 사례1) 간디학교2) 변산 공동체 학교3) 이우학교3. 대안학교의 문제점과 개선방향1) 문제점2) 개선방향4. 토론1) 토론주제2) 팀원들의 의견5.대안학교에 대한 팀원들의 생각 (발표 후기)1. 대안학교란?1) 대안교육의 정의사전적 의미에서의 ‘대안’이란 ‘어떤 안을 대신하는 안’, ‘이미 이루어진 안에 대신할 안’, ‘기존의 방안을 대신할 만한 더 좋은 방안’,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대신할 다른 것’을 말한다.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대안교육이란 우선 잠정적으로 현행 학교교육의 문제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대안학교란 서구 교육계의 '얼터너티브 스쿨(alternative school)'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학교를 말한다. 이는 공교육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종래의 학교교육과는 다른 학교이다.2) 대안학교의 특징① 아동관 -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을 중시 (←루소의 아동중심 교육관)②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공동체적 가치를 중요시③ 학습 내용과 방법의 변화 →학생의 능동적 참여와 주도가 이루어짐④ 생명존중사상과 생태주의⑤ 작은 학교 지향⑥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 유지3) 대안학교의 유형1) 1996년 초의 대안교육 관련자들의 모임: 당시 여러 형태의 대안교육들을 공교육 제도와의 관련 정도에 따라 ‘제도 안’ ‘제도 밖’ ‘제도 곁’의 대안교육으로 유형화 하였다.① 공교육제도 안의 대안교육: 기존의 학교 제도 속에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 대안 교육을 추구하는 경우.② 공교육제도 곁의 대안교육: 기존의 학교교육을 그대로 둔 채 방과 후나 주말, 또는 방학을 이용해 학교교육이 빠뜨리는 부분을 내용적으로 보완하는 것, 프로그램 형태로 이루어지는 대안학교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③부가 14일 전국 10.324개 초,중, 고교를 대상으로 ‘2000학년도 출국 학생 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45명이 해외이민, 유학 등의 이유로 출국했다고 한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 볼 때, 국내 교육에 만족하지 못해 이민을 선택하는 추세가 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늘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3) 탈학교 현상수없이 논의되던 학교붕괴 문제는 이제 ‘학교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 탈학교 연대모임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교육을 위한 모임을 추진해 나가기도 하고, 또는 제도권교육을 거부하고 집에서 교육을 하는 ‘홈스쿨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들은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대두시켰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을 시작으로 대안교육운동이 시작되었다.2. 대안학교의 사례1) 간디학교1) 간디학교 탄생일 1997년 3월 학교를 열었다.2) 양희규 선생의 새로운 학교에 대한 구상1. 작은 학교: 적은 수의 학생을 받아 교사, 학생, 학부모 간의 유대가 가능하게 한다.2. 불복종의 정신: 오늘날의 입시준비장이 되어 버린 획일적 학교에 복종하지 않는 정 신3. 쓸모 있는 교육: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한 교육4. 탁월성의 교육: 개성과 자신의 고유한 잠재력 속에서 탁월성을 발굴3) 새로운 학교의 모델1.교육의 목표: 전인적 삶, 공동체적 삶, 자연과 하나 된 삶2.교육의 내용: 기존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 교육, 합창, 연극 등의 감성 교육, 음식 만 들기, 텃밭 가꾸기 등의 노동교육3.교육의 방식: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식을 함께 탐구해 나가는 살아 있는 활동(주입식 교육에 대한 경계)4) 간디학교의 교육 철학= 자기만족의 삶을 살 수 있는 행복*행복한 사람 = 건강, 사랑, 자유, 지혜 등의 요소를 갖춘 사람5) 각 요소를 위한 간디학교만의 방법1. 건강-인스턴트 음식에 들어 있는 화학 물질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앗아간다.인간이 아니라 순종학고 복종하는 로봇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일이다. 수업 지침서는 단순하고 기억하기 쉽게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지침으로 아이들을 교육한 결과 창조성과 비판의식을 상실한 아이들로 성장시켜버렸다. 때문에 저자는 이러한 독일 교육을 비판하며, 학교는 공동체의 한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아래, 마을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써의 학교로 공동체 학교를 구성하였다. 저자는 도시가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비 적합한 장소라 믿었으며, 도시 밖으로 갈수록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을 실시 할 수 있다고 한다.-민주시민을 생성하기 위한 교육-독서 교육감각교육과 표현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할 초등교육에서 아이들의 인지 발달 단계와 맞지 않는 관념 교육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독서교육의 길은 좁을 수밖에 없지만, 양보다는 질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독서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3) 이우학교1) ‘이우’의 뜻이우 - '以友'란 벗과 함께, 벗 삼아’以友'라 정한 것은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무엇보다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있는 친구를 만나고 스스로 그런 친구가 되라는 뜻.학부모와 교사, 학생들, 그밖에 뜻있는 분들이 수평적 관계를 이루며 긴밀히 의사소통하고 협력하는 학교, 나아가 '21세기의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확산하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뜻을 담아내었다.2) 이우학교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 상첫째, 더불어 사는 사람.성·계급·인종·종교·장애 여부를 떠나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과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21세기의 현실 속에서 나와 다른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둘째,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자신과 세계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 나가는 사람.셋째, 창조적 지성인.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사람넷째, 머리·가슴·손발이 조화롭게 발달된 사람.창조적 지성, 따뜻한 마음, 잘 발달된 오감과 섬지금의 대안학교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꾸려가고 있다. 민간의 순수한 열의와 지원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교육을 위해 폭넓은 사회적 인식과 투자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대안학교의 걸림돌이다.2) 대안학교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적인 시각일부 교육 관련자들이나 사회일반의 시각은 대안교육을 중도탈락자교육으로 단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중도 탈락자들을 수용하는 대안학교로만 여기고 혐오시설로까지 바라보아 지역 주민들이 설립을 거부하는 님비현상까지도 나타난 적이 있다. 천주교 청주교구가 퇴학생이나 문제 학생을 위해 세운 ‘양업 고등학교’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곤란을 겪은 것은 그 실례이다.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현장이 확산, 소개됨에 따라 대안교육에 대한 오해나 왜곡의 강도가 완화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까지도 사회 주류의 정서는 여전히 중도 탈락생의 교육으로 한정 지어버린다는 안타까움이 있다.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안교육이 낙오자를 만들거나 사회와 동떨어진 이상주의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나고 공동체 속에서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키우는 학교라는 점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3) 교사 및 행정지원 인력 부족대안학교 교사들은 시간적, 경제적 어려움과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에서 인가된 대안학교에서는 일반 학교와 동일하게 수많은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게다가 단순주입식 교육방법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방법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교재 연구개발, 교육내용과 수업준비방법 에 대한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4) 학력인정 허용 문제대안학교의 경우 정규학교로 인정되지 않으면 재정지원, 학력인정, 교사월급 등의 난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올해 3월 초 교육부가 “대안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시행령을 마련하여 3월부터 시행됨으로써, 학력 인정을 못 받는 기존의 비인가 대안학교의 경우 문제가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각종학교로 분류, 정규학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교육부가 시행령 안에 담을 내용에 따르면 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빗댄 언어)이라고도 불리는 무서운 중학생이라지만, 학교에서의 수업과 학생들이 생각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쩜 학교가 이렇게도 많이 무너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이 결과를 초래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서 진정한 배움이 이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행학습의 사교육으로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서의 수업이 재미없을 것이고, 이에 따라 학교의 선생님들도 의욕을 상실해 선생님이라는 사명감을 잊고 포기해 버리는 실정이 아닌가 싶다.하지만 대안학교에서는 대안교육을 희망하고 대안학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학교에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들도 무자비한 사교육을 아이들에게 시키지 않을뿐더러 아이들 또한 선택하여 들어온 학교에 신뢰하며 진정한 배움을 요구할 것이다.학교를 선택할 때는 각 학교에 프로그램과 교육이념 등 학교 자체 내에서 행해지는 것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이지만, 각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과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 그리고 선생님들의 마음가짐 또한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그러므로 정말 내 아이가 원하는 교육에 맞는 학교, 그리고 내가 부모 된 입장에서 갖고 있는 교육이념에 맞는 대안학교가 있다면 보낼 의사가 있다.* 지금 현재 중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은 항상 지친 모습을 하고 있어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물론,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 후 수업이 좋은 취지이긴 하죠. 근데 중학교 2학년일 뿐인 아이들도 아침부터 저녁8시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해요.이렇게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교과서적인 내용만 공부할 뿐 분명히 우리가 다양한 영역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를 하지는 않아요. 이 아이들도 벌써부터 입시걱정, 취업걱정을 하고 있고 학교의 획일적인 수업내용과 방식에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가끔가다 영어, 수학이 아니라 아이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니다
Land Art, Earth Art 혹은 Site Art라고 불리는 대지미술은 실내공간에서 벗어나 대지환경 속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이다. 주변 환경 전체가 활용된다는 점에서 Environmental Art, 작품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Process Art 라고도 한다. 프로세스 아트적인 속성으로 인해 대지미술은 완성된 작품보다 그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갖는데, 이는 과정 중에 그 작업의 구조가 더 잘 보일 뿐 아니라, 완성 이후에도 작품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이다. 대지미술은 그 용어부터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고, 왜 저런 예술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갖기 쉬운데, 대지미술의 발생 배경을 알아보면 이런 낯선 느낌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지미술은 196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하였는데, 특히 넓은 대지의 활용이 가능했던 미국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대지미술은 당시 전후 추상미술이 가진 과도한 관념성과 상업성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팝아트처럼 상업성에 편승하려하는 당시의 예술에서 벗어나고자 제도적 미술관이나 상업적 화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업 하고,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게끔 자연공간에 미술품을 전시하였다. 이처럼 대지미술은 상품으로서의 예술을 부정하고, 모더니즘에 저항하는 반문명적 예술에 대한 희구로서 발생한 것이다.대지미술이 가진 의의와 특성을 자세히 알아보면 첫째, 대지미술가의 작업은 매우 다양하다. 사막, 산악, 해변, 설원 등을 선택하여 장소의 제약도 뛰어넘고, 표현방식과 재료도 다채롭다. 둘째, 대지미술은 탈장르, 탈매체의 성격을 지닌다. 그동안 미술작품은 일정한 형체가 있어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되어왔지만, 대지미술은 시간이 지나면 철거되거나 자연적으로 소멸되어 견고하게 지속되는 형태를 지니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랜드아트 예술가들로부터 종종 엔트로피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비상업적인 미술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 대지미술은 매매의 대상이 아니며,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는 작품도 아니다. 이는 종래의 미술제도와 관습에 위배되는 일종의 공격행위이지만, 랜드아티스트들은 이런 행위를 통해 미술창작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묻는다. 넷째, 개념미술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시각적 대상은 없고 단지 그것에 대한 개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는 행위 자체로 인간 의식의 원형을 찾아간다고 보아 행위예술의 범주에 놓기도 한다.앞서 20세기 후기 현대미술로서 대지미술이 가진 의의와 특성의 이론적인 특징들을 알아보았는데, 그렇다면 이 혁신적인 작업들이 어떤 작가들에 의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대지미술의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크리스토 자바체프, 데니스 오펜하임, 다니엘 뷔렌, 리차드 롱 등을 언급할 수 있다. 조금은 낯선 대지미술이지만 대중들이 한번쯤 봤을법한 유명한 작업을 남긴 사람이 바로 크리스토 자바체프이다. 주로 천을 소재로 건물을 포장하고, 땅에 천을 길게 연결하기도 하면서 자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계곡의 커튼, 달리는 울타리, 국회의사당 포장, 둘러싸인 섬 등이 있다. 이렇게 자연물과 인공물을 포장함으로서 그 동안은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국회의사당 포장’의 경우, 사람들이 이전에는 간과하고 지나쳤던 역사적인 아픔을 포장 행위를 통해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의 작업은 인근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작업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연을 대상으로하다보니 에콜로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특별 제작한 천을 사용하였으며, 그 조차도 금방 제거하였다. 비록 원작은 금방 사라져버리지만 그의 작품은 사진으로 남아 계속 전해지고, 이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의 상업성을 띠기도 했다. 미국의 랜디아티스트인 데니스 오펜하임은 우연한 효과나 단시간만 지속되는 작품을 주로 하였고 완성된 결과보다 퍼포먼스의 개념을 더 중요시 하였다. 이런 특징은 ‘Annual Ring’에 잘 나타난다. 또 그는 ‘Reading position for second degree burn'이라는 조금은 황당한 작업도 진행했다. 프랑스작가 다니엘 뷔렌은 도시 길거리에 수직성이 반복되는 작품을 전시하여 장소의 특수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작품을 붙이자마자 떼어버리고 그 뗀 그림을 가지고 나가 길거리에 붙이는 일련의 행동을 보여주어 작품이 벽 너머에 있는 것임을 시사했다. 그가 구겐하임에 전시했던 작품은 전시 당시 강력한 몰입도로 인해 다른 작가 작품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이 작품 역시 얼마 후 밖으로 가지고 나갔고, 이런 행위는 기존 회화에 대한 관점을 부수는 계기가 된다.
테크놀로지 미술의 흐름을 생각할 때 가장 초기적인 단계를 생각해 보고자한다면 키네틱 아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키네틱 아트란 움직임을 중시하고 그것 차체를 요소로 하는 예술로,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화로 인해 등장했다. 사실 이전에도 미술에서 움직임의 요소는 자주 거론되어 왔으나, '움직임 자체‘가 작품의 본질이 된 것은 바로 키네틱 아트에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키네틱 아트의 선례는 러시아 구성주의와 이탈리아 미래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운동을 재현하는 작품 즉, 실제로 움직이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모빌 조각이나 키네틱 조각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은 운동을 수반하는, 다시 말해 움직임은 없지만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는 옵아트 같은 작품을 했다. 라즐로 모흘리 나기는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과 윤곽, 영역을 규정짓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빛, 공간, 시간, 움직임의 요소들을 중요시 했다. 그가 제작한 ‘빛-공간변조기’는 작품에서 빛과 소리가 나고 돌아가기도 한다. 우리에게 ‘샘’이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뒤샹도 후기에는 기계에 의해 움직이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원래 그림을 그리는 작가였던 그는 인간 시각의 무의성을 깨닫고 이러한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회전하는 유리판’은 유희적 정신이 강한 작품으로, 역시 인간 시각의 무의성을 드러내고 있다.이러한 움직이는 키네틱에서 나아가 본격적으로 테크놀로지가 미술에 접목이 되면서 후기 현대의 테크놀로지 미술은 여러 방면으로 미학적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이전에는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와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로 그 영역이 구분 지어졌다면, 테크놀로지의 개입으로 이제는 감상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요구되어 관객은 관람자이면서 동시에 제작자가 되는 위치에 서게 된다.TV와 일렉트로닉 이미지를 사용하여 무한한 표현가능성을 지닌 비디오 미술은 전통 매체의 한계를 깨고 현대미술의 지평을 열어주어 전 세계 작가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로부터 카메라, 필름, CD-Rom, DVD, 인터넷 등을 이용한 뉴 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가 등장하게 되었다. 앞서 테크놀로지가 예술에 접목되면서 일어난 관객의 역할변화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디지털 미디어영역에서 이러한 변화의 선구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제프리 쇼이다. 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 바로 관람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었던 ‘읽을 수 있는 도시’라는 작품에서부터였다. 이 작품에 경우, 관람자는 자전거에 앉아서 페달을 밟는 행위를 통해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관람자의 행위는 컴퓨터그래픽에 의해 처리되고 스크린 속의 문자들 사이를 달려가는 모습으로 연결이 된다. 관객은 자신이 체험할 도시와 자전서의 속도, 방향 등을 자유롭게 컨트롤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간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획기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인터렉티브한 아티스트로서 나는 지휘자나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의 위치에 있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작품을 제공하는 일이나 받아들이는 일 모두를 관객의 역할로 돌리고, 자신은 그 여건을 제공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사고는 그의 작품세계에도 계속해서 반영된다. ‘Eve’라는 작품을 보면 감상자는 자신이 착용한 아이 트래킹 시스템에 의해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영상을 투사할 수 있다. 감상자가 어디를 볼지, 어디를 보고 싶어 할지 선택한다는 점에서, 인터렉티비티의 기본 개념과 목표를 달성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 작품에 속하는 ‘Web of life’ 역시 인터렉티비티의 개념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3D 영상의 활용으로 이전 작품에 비해 훨씬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정리하자면, 제프리 쇼는 미술관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트렉티브 미디어 아트를 구현하였다. 또한 인터페이스로의 몰입을 유도하면서도, 관람객과의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상호작용성을 높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